Category Archives: 해보고 싶은 것들

페이트 코어/기동형 페이트에서 시도해보고 싶은 일 : ‘기회 만들기’ 액션을 다른 액션에 결합시키기.

페이트에서는 무언가 행동을 할 때는 극복/기회 만들기/공격/방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극복은 무언가 행동을 방해하는 요인을 처리하는 액션이고, 공격은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제거하는 액션이며, 방어는 상대의 행동을 저지하고, 기회 만들기는 유리한 상황 면모를 만들거나 쓸 수 있는 면모를 유리하게 이용하는 액션이지요.

그런데, 페이트 코어 이후 면모는 “이야기 속 현실”의 역할을 한다고 특히 강조되었습니다. 이전에 쓴 글에서(http://blog.storygames.kr/?p=1339) 말했듯이 ‘수갑에 묶임’ 면모를 얻은 캐릭터는 손을 쓸 수 없고, “날개” 면모가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터널을 파서 성 안으로 들어간다면 극복으로 들어간 걸까요, 기회 만들기로 “터널”이라는 면모를 만든 걸까요? 상대방의 무기를 뺏는 건 무기를 뺏는 극복 행동일까요, “무기 뺏음”이라는 면모를 붙인 걸까요? 숨겨진 고대의 비밀을 발견한다면 이건 그 정보를 “극복” 행동으로 알아낸 걸까요, 숨겨진 “면모”를 파악한 걸까요?

미국 쪽 RPG 커뮤니티에서도 위 문제로 몇 번 논의가 있었고, 게임 디자이너 중 한 명인 Ryan Macklin은 “정보를 밝혀내는 행동은 별도로 “Discovery Action”을 만들자!( http://ryanmacklin.com/2014/10/fate-the-discover-action/) 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페이트 원작자인 Fred Hicks는 도표까지 만들면서 (https://plus.google.com/+FredHicks/posts/FT6DyiLdD3u) 기존 규칙으로 충분히 이런 애매한 부분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지요.

페이트 팬들의 의견은 대체로 “기회 만들기는 보조 수단이며, 장면을 확실하게 끝내는 정보나 행동은 공격이나 극복이어야 한다.” 라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이 부분이 좀 불만입니다. 왜 굳이 두 액션을 인위적으로 분리한 걸까요?

면모가 이야기 속 현실이라면, 무언가 행동을 할 때마다 실제 플레이에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면모가 붙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페이트 코어에서도 “딱히 공짜 발현을 얻으려는 건 아니고, 그저 지금 이런 상황 면모가 있는 게 개연성이 있겠다고 생각하여 제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사위를 굴리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이러이러한 면모를 만들고 싶다고 제안하고, 다른 사람들이 수긍하면 바로 써 넣으십시오.” 라고 설명을 하고 있지요(p.84 면모의 창조와 발견). 게다가 누누이 강조했듯, 페이트에서는 굳이 기회 만들기를 활용하지 않더라도 상황 면모에 따라 특정 행동의 난이도가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 있고, 심지어는 특정 행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인위적으로 기회 만들기라는 행동을 따로 분류해서 면모를 활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실 이미 기회 만들기는 다른 액션에 어느 정도 결합이 되어 있습니다. 기회 만들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극복이나 공격, 방어에서 대성공이 나오면 목적을 달성할 뿐만 아니라 증강도 얻고, 공격을 맞아 입은 피해를 흡수하면 타격이라는 면모를 얻으니까요. 저는 이런 부분에서 페이트의 면모보다는 AWE의 ‘태그’ 쪽이 좀 더 이야기와 규칙을 부드럽게 결합했다고 생각합니다. AWE에서는 굳이 별도의 액션을 분리해 면모를 만들거나 활용할 필요 없이 태그라는 요소를 플레이에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극복과 방어, 공격은 캐릭터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반면, 기회 만들기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뭔가 붕 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언젠가는 한번 이 기회 만들기를 극복과 공격, 방어 속에 자연스럽게 녹이는 규칙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그냥 막연한 생각일 뿐이지만…

p.s : 애스디님이 이 글에 답변으로 쓴 좋은 글이 있습니다 : (클릭)

공유 배경세계에 대한 생각

RPG에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 관련 글에 대한 세션 토론에서 나온 MMORPG 얘기를 보고 떠올랐는데, 팀 내에서 혹은 여러 팀이 하나의 배경세계를 공유해서 함께 변화시키고 살을 붙여가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시간을 내기보다는 1:1이라든지 그때그때 모인 사람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것이 편한 법이고, 플레이마다 변화시키고 심화한 설정을 다음 플레이에서 또 사용할 수 있다면 역동적인 느낌의 세계와 사건을 겪으면서도 시간대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A, B, C, D, E라는 5명의 참여자가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전원이 맞는 시간이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A-B가 모였을 때든 A-B-C가 모였을 때든 시간 되는 사람끼리 플레이하고 플레이한 내용을 도시 설정에 반영한다면 이후에 D와 E라든지, B와 D라든지 누구든 같은 배경을 플레이할 때 지난번 플레이와는 또 달라진 도시를 배경으로 플레이하겠죠. 마찬가지로 거기서부터 또 플레이는 도시를 변화시킬 테고요.

물론 이건 그다지 새로운 생각은 아닙니다. 특히 공통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플레이는 온라인상에 상당히 흔하고, 저도 그런 소설 사이트에서 아사히라군의 소개로 RPG로 옮겨오기도 했었죠. 역시 다수의 사용자가 같은 배경에서 노는 MMORPG도 있고, RPG계에서도 이전에 동환님의 Timeline of Fairytales도 있었고, 당장 저만 해도 정기 캠페인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와 외전격 비정기 플레이인 스타워즈: 콘체르토가 같은 배경을 공유했었고요.

다만, 온라인 소설이든 MMORPG든 RPG계의 예이든 한계는 있었다고 봅니다. 소설 쪽은 제가 참여해본 곳에서는 정말로 역동적인 세계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어느 한 사람이 배경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따르고 그런 것을 규율할 규칙도 없다 보니 각 소설은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로망 속에 따로 논다는 인상이었습니다.  MMORPG 역시 공존하며 놀 수 있었지만 역시 사용자가 하는 행동이 세계에 의미있는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고, 그 속에 정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왠만한 시간이나 노력으로는 어렵겠더군요.

RPG계 쪽에서 제가 본 공유 세계관의 어려움이라면 역시 진행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서술 범위가 배경 세계이다 보니 그런 세계의 변화를 결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몫이 되었고, ToF도 두 스타워즈 캠페인도 진행자가 붙어있어야 하니 시간대의 유연성이라는 장점에도 한계가 있었죠. 한편으로는 진행자가 궁극적으로 세계의 관리자이며 통제자라는 점은 진행자에게 창의적 권한이면서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유 배경세계는 훨씬 권한이 분산된 형태로서, 위에서 예를 들었듯 한 사람의 진행자가 플레이에 늘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참여자 중 누구나 플레이 내용에 따라 배경을 변화시킬 권한이 있는 체계입니다. 플레이 때마다 진행자가 같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플레이마다 규칙이 같은 필요도 없습니다. 또 플레이 때마다 같은 인물을 잡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좀 고난이도로 간다면 같은 시간대일 필요도 없겠죠.

물론 중앙 통제를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도 따릅니다. 참여자가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니 뭔가 새로운 변화를 추가하기 전에 합의를 한다는 안전망도 없어지고요. 저는 성질이 나빠서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변화가 세계에 일어나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좀 자신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는 거부권이라든지 하는 간단한 규칙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세계에서의 개연성의 범위 같은 것을 원칙으로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의논해서 추가할 수도 있을 테고요. 결국 무엇이든 감각이 맞고 협조가 잘 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없을 테지만요.

어쨌든 이런 식으로 참여자 구성에 상관없이 플레이가 세계를 변화시키고, 또 그 변화한 세계는 새로운 플레이의 틀이 되면 세계의 역동성과 플레이의 유연성을 함께 느끼는 놀이를 하면 RPG의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의 변화를 규율하는 규칙이나 원칙, 그리고 변화를 기록하는 체계를 잘 잡으면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변해가는 세계, 언제든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겠지요.

유니버설리스를 이용한 게시판 플레이에 대한 생각

유니버설리스 (Universalis)는 아직 끝까지 못 봐서 소개하지 못한 책인데, 그야말로 이야기 만드는 놀이입니다. 토큰이라는 자원을 써서 인물이나 배경 요소 등 극적 요소를 만들고, 서로 진행에 대한 의견이 다를 때는 교섭 규칙을 매개로 교섭하거나 교섭이 안 되면 극적 요소의 특징과 토큰을 사용해 서술권을 두고 경합을 벌이는 방식입니다. 진행자 (GM) 개념이 없고, 전담하는 인물도 없고, 특정 인물의 역할을 맡는 RP는 부차적인 등 RPG 범주에서는 좀 벗어나 있죠.

전에 소개한 게시판 플레이용 규칙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도 토큰 (연구자금) 사용 등 유니버설리스의 영향이 꽤 있는데, 아예 유니버설리스를 게시판 플레이에 활용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유니버설리스에서도 사건과 인물 등을 추적하는 기록자를 두게 되어 있는데, 그럴 바에야 아예 놀이 자체를 기록으로 해도 될지도요.

수정주의 역사에 비해 유니버설리스의 장점이라면 놀이 단위가 연구 기사가 아니라 장면이므로 형식과 내용의 제한을 덜 받는다는 점. 근거 제시와 결론을 생각할 필요없이 소설 형태로 쓸 수 있고, 후대에 남을 만한 기록과 증거를 따질 필요가 없으므로 내면 묘사라든지 사적 대화처럼 기록이 안 남는 내용도 쓸 수 있죠. 장면은 꼭 시간 순서로 쓸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과거나 먼 미래로 장면 배경을 옮기려면 토큰이 더 들기는 합니다.

어려움이라면 유니버설리스는 기본적으로 대면 상황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게시판이나 위키상으로 하려면 교섭과 대결이 까다로워진다는 점. 비동시성 플레이인데 반박이 시간 제한을 너무 받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 보이고, 그렇다고 단일 서사인데 오래 전에 지나간 장면이 나중에 뒤집혀서 이후 전개가 다 영향을 받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얘기가 나오면 바로 반박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단일 서사와 서술권의 객관적 규율의 장점을 둘 다 취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수정주의 역사의 단순성과 유니버설리스의 서술 자유도를 결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유니버설리스에서 하듯 연구가 아닌 허구 그 자체를 다루고 극적 요소를 토큰으로 관리하되, 수정주의 역사처럼 글을 쓰는 시간 순서는 자유롭게 하고 참조 규칙을 사용해서 그 글에 근거해 쌓인 서술이 많을 수록 반박하기 어렵게 할 수 있겠죠. 아니면 그냥 수정주의 역사에서 연구 관련을 빼버리고 경매는 순전히 참가자끼리 해서 소설 쓰는 놀이로 할 수도 있고, 가능성은 이것저것 생각해볼 수 있겠군요.

폴라리스 캠페인 ‘별이 지다’

국가의 건설 캠페인에서 우리들이 함께 만들어간 세계를 배경으로 폴라리스 (Polaris) 캠페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국가의 건설에서 중요한 정서적 축을 이루었던, 새로운 신앙과 시대 앞에서 사라져가는 요정들의 비극을 담은 캠페인으로요. 폴라리스는 전부터 해보고 싶은 규칙이기도 했는데 특히 우리가 함께 만들어간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는 점이 더욱 기대되네요. 캠페인 제목은 일단 ‘별이 지다’가 될 것 같습니다.

자꾸 ‘별이 지다’ 생각이 떠올라서 공부하기도 싫고 폴라리스 번역을 시작했는데, 그중 플레이가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개격인 ‘시간 속에 얼어붙은 순간들’입니다. (이제 갓 시작한 규칙 번역본은 뱀프님, 승한님, 엔님이 보실 수 있게 해놓았으니 참고하시길. 분위기나 예시를 이해하려면 배경도 필요할 것 같아서 순서대로 다 번역하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 얼어붙은 순간들

오랜 옛날, 이 세상의 북쪽에서도 가장 북쪽에 이 세상에 있던 모든 민족 중 가장 위대한 민족이 살았도다. 그들의 옛 모습은 사라졌지만, 햇살 속에 녹아 사라지는 눈송이처럼 죽어가는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으리.

세상이 아름다운 모든 것을 파괴하듯 그들도 파괴되어 이제는 사라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순간들, 시간 속에 얼어붙은 파편뿐.

보라…

  • 얼어붙은 불모지에 혼자 선 아름다운 소녀가 별빛에 빛나는 도시를 지켜본다. 얼굴에 표정은 없으나 독살스러운 질투는 입술에서 눈송이가 되어 떨어진다.
  • 그의 피가 차마 붙잡을 수 없는 이질적인 꽃송이처럼 떨어져 내리는 동안 누이는 손을 감싼 채 울음을 참으며 칼날의 차가운 입맞춤을 기다린다.
  • 소용돌이치는 진눈깨비 속에서 보이는 것은 그들의 검광밖에 없다.
  • 그녀의 손짓 하나, 노래 한 소절에 부패한 의원들의 살이 찢어져 내리면서 그 밑에 꿈틀거리는 구더기가 드러난다.
  • 얼음의 무도회장에 가득 춤추던 수천의 남녀가 갑자기 멈추면서 무지갯빛 창밖에 막 모습을 드러낸 여명을 지켜본다.
  • 아름다움에 홀린 그는 발톱을 보지 못한다.
  • 빙하 골짜기의 가장자리에서 칼과 칼이 부딪는다. 하나는 별빛처럼 창백하게 노래하고 다른 하나는 태양처럼 불탄다. 기사는 적의 얼어붙은 불길과 같은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형을 알아본다.
  • 잠든 기사들의 무덤에서 그녀는 동료들에게 배신당한 전사 위로 몸을 숙인다. 위로의 말을 속삭이며 그녀는 얼어붙은 입술에 부드럽게 입맞춘다.
  • 아주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는 연인의 가슴에 칼을 꽂아넣는다. “용서해 줘.” 말하며 죽어가는 그는 그녀에게 축배를 든다.

이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며, 아직 이야기가 아니로다. 남은 것은 이것뿐. 만들어가는 것은 그대의 몫이다.

정기 온라인 미니컨벤션?

Story Games 쪽에서 이 글 (영문)을 보고 떠오른 생각인데, RPG인들이 모여서 얘기하고 놀다가 원하면 플레이도 할 수 있는 공간이 정기적으로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금요일과 토요일 밤마다 열리는 IRC 대화방이라든지요.

물론 지금도 IRC나 다이스&챗 잡담방이 있는 걸로 알고 저도 한두 번 그런 식으로 사람이 모여서 플레이한 적도 있습니다. (영혼의 우물, 오티엘 밴드 이야기 등) 하지만, 목적이 잡담이나 무한잠수(?)가 아닌 플레이 쪽에 맞춰져 있어서 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높은 공간, 말하자면 정기적 온라인 미니컨벤션 성격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가제 ‘RPG의 밤’ 정도? RPG뿐만 아니라 온라인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도 할 수 있을 테고요.

채팅방에서 언제나 문제가 되는 건 고정적 정보 전달입니다. 예를 들어 RPG의 밤을 위해 사람들이 채널에 모인 상태에서 몇 명이 의기투합해서 IRC 채널이나 다이스&챗 방을 열어서 플레이를 시작했다고 하죠. 그렇게 하면 새로 들어온 사람은 남 잠수하는 모습 혹은 빈 방만 구경하다가 슬그머니 나가기 쉽습니다. 즉, 이벤트가 진행중이어도 찾아갈 수 없는 일이 생기죠.

그래서 그런 부분은 게시판하고 연계하면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IRC 채널 방제에 ‘(게시판 글 링크): 오늘 RPG의 밤 이벤트 목록’ 하는 식으로 입력해 놓고, 방에서 갈라져 나가는 사람들은 댓글로 IRC 채널, 다이스&챗 방 등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적어놓고 사람이 더 필요하다든지, 인원은 다 찼지만 관전 환영이라든지, 몇 시에 끝났다든지 하는 식으로 현재 상태에 따라 글을 편집할 수 있겠죠. 본 채널에서는 잡담이나 구인 등을 할 수 있을 테고요.

이런 미니컨벤션 형태의 이점이라면 인디 RPG 생체실험 대상 획득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는 부담 없이 가끔만 들러도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를 안정적으로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뜻과 시간대가 맞으면 여러 세션을 진행할 수도 있을 테고, 장기 캠페인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겠죠. 짧은 플레이 중심이 되므로 플레이테스트 등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있고요. 그 외에 RPG인들이 폭넓게 서로 만나고, 생각을 나누고, 플레이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홍보가 잘 된다면 초보자들이 찾아와서 RPG의 뜨거운 맛(?)을 볼 수 있을지도요.

한계라면 TRPG도 아니고 ORPG인 만큼 하루 저녁 플레이로는 많은 이야기를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인물 제작이 복잡한 규칙이라면 진행할 사람이 인물을 미리 만들어 온다든지 하는 부담을 지지 않으면 단편 플레이는 어렵겠죠. 해결책으로는 다이스&챗의 황실 특수 수사대 플레이처럼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모이는 사람끼리 그때그때 등장 인물이 달라지는 옴니버스 방식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 온라인 미니컨벤션은 RPG인들이 모이고 플레이를 찾을 수 있는 좋은 만남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면 기존 잡담방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고요. 추가적으로 필요한 요소라면 홍보, 그리고 안정적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꾸준히 시간을 공지하고 같은 시간에 방을 여는 관리 정도겠죠.

공화국의 그림자 – 스카이프와 겁스에 대한 생각

언제나 이상한 궁리하면서 남을 끌어들이는 게 취미인 로키입니다! (사실 진짜 취미는 RPG가 아니라…) 공화국의 그림자 관련해서 두 가지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첫째는 전에 썼던 글에서처럼 인터넷 전화를 일종의 잡담 채널로 사용해보는 것. 본플레이는 채팅으로 하고, 짧은 설명이나 잡담은 원칙적으로 말로 하는 식으로요. 플레이 기록을 정리하다 보니까 잡담이나 의논이 차지하는 분량이나 시간이 꽤 되는 것 같으니 한 번쯤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괜찮으시면 스카이프 설치하고 가입하신 후 스카이프 아이디 알려주시길.

또 하나 제안이라면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 겁스 전환…은 농담이고 (물론 해도 좋지만 진행자를 새로 구하셔야..), 지금 인물들을 언제 겁스나 스타워즈 d20 같은 규칙으로 제작해서 판정을 해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 특히 이미 캠페인에서 해본 판정의 초기 조건에서 시작해서 규칙이 달라져서 중점이나 진행이 달라지는 게 있나 보면 더욱 재밌지 않을까요?

오래전에 같은 시나리오로 규칙을 다르게 해서 두 팀이 각각 플레이를 해보고 비교해보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비교할 거리가 있는 실험이고 또 실제로 규칙 때문에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은 보통 판정이라는 점에서도 비교의 의미가 더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전 스타워즈 d20는 책도 없고, 겁스는 있지만 고 CP 인물을 만들거나 제대로 돌릴 자신은 전혀 없다는 점. 따라서 한다면 아마 주인공끼리 하는 판정이어야 할 것 같아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군사물 캠페인 구상

아더왕 전설을 역사적으로 해석한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Rosemary Sutcliff)의 소설 ‘황혼의 검 (Sword at Sunset)’을 최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더왕을 인간적으로 다룬 감명깊은 소설이라는 평이 많지만, 사실 제게는 잘 쓴 역사·군사 소설로 더 감명깊게 다가오더군요. 아더왕을 다룬 소설이 보통 영웅성과 전투 묘사에 치중하는 반면 황혼의 검은 군마 양성, 병력 확보, 보급, 정찰 등 실제 군대를 운용하는 어려움을 크게 다루었던 점이 인상깊었습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이런 내용을 RPG 혹은 그와 유사한 플레이로 재현할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굴리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RPG의 뿌리인 워게임으로 돌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원 관리와 병력 배치 못지 않게 전쟁의 정서적, 인간적 영향도 풍부하게 다룰 수 있는 플레이라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전에 했던 센타레스 성역 전투와 비슷하되, 전술성을 더 강조하는 형태이겠죠.

그 외에 군마 구입과 교배라든지 기병 양성 등 군대를 향상시키는 시도도 하나의 모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군사 지도자의 정치적, 외교적 성공이 군사작전을 더 쉽게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군대의 전투 판정과 개별 인물의 판정이 얽힐 수도 있겠죠.

이렇게 정교한 플레이를 지원하는 규칙을 생각하기가 좀 어렵다는 점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가까운 것은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의 임시 면모와 부상 규칙입니다. 군대와 주요 인물들을 모두 인물 제작 규칙으로 만들어서 개별 인물의 판정과 모험이 군대에 면모를 부여하는 식으로 말이죠. 센타레스 성역 전투에서처럼 진행자가 딱히 필요없이 참가자끼리 경쟁하고, ‘대규모 전투’ 모드와 ‘모험’ 모드를 구분해서 모험에서는 모든 참가자가 편에 상관없이 인물을 맡아서 RP하는 형식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가자가 둘을 넘어가면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것도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듯합니다. 참가자가 셋이라면 한 명은 묘사와 규칙 판정을 맡는 진행자 역할을 맡을 수 있고, 넷부터는 편을 나눌 수도 있겠죠.

규칙이라든지 하는 부분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나름 즐거운 군사물 캠페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

얼마 전에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을 아쉽게 끝낸 후에도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에 대한 욕구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스타워즈 캠페인을 하는 동안 정기 캠페인을 또 시작할 여유는 없고 해서 승한님과 얘기하다가 플레인스케이프 배경의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캠페인은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배경 자체도 방대하고 난해한 데다가 글을 정기적으로 올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사람을 많이 타는 캠페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요. 어떤 참여자와 함께 해야 재미있을까 생각해보니 조건이 꽤 까다롭더군요.

1. 플레인스케이프에 대한 관심

지식 자체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만, 정말 플레인스케이프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넘치지 않으면 굳이 플레인스케이프를 사용할 필요도 없죠. 일단 관심만 많으면 지식은 필요에 따라 스스로 늘려갈 테고요. 제가 보기에는 사실 기본적인 내용만 알아도 되고, 여기에 덧붙이는 재해석과 상상력이 진짜입니다만 어쨌든 플레인스케이프의 분위기나 특색에 매력을 느끼는 게 시작이죠.

2. 어느 정도의 원서 해독 능력

이것도 영어를 기가 막히게 해서 플레인스케이프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따위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스스로 습득할 능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위에 말했듯 지식 수준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3.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성실성과 열정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에서 유일하게(..) 안 까다로운 점은 바로 시간대죠. 글이야 언제 올리든 1~2주에 한 편 올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꾸준히 일정량의 글을 올린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에 따라서는 최악의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쓰는 데 부담이 별로 없고, 재미있게 장기에 걸쳐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 쓰는 게 늘 그렇듯 뻔뻔함은 필수고요. (…)

4. 의견을 활발하게 내는 주인의식

수정주의 역사에서 초기 설정은 모두 참여자들이 합의해서 정하고, 그나마 끌고갈 진행자도 없는 플레이입니다. 다들 의견 안 내고 우물쭈물하면서 눈치보면 캠페인 그냥 망합니다. 특히 정해진 시간대가 없는 플레이라서 토론은 게시판이 (혹은 위키 코멘트가) 중심이 될 것 같은데, 게시판이 유령 게시판이 되거나 한두 사람만 활개치면 이미 망조는 성큼..(..) 한 번 시작한 것은 뿌리를 뽑고 보는 사람, 활발하게 의견 내면서 주인의식 가지고 캠페인 끌고 가는 참여자가 아니면 재밌게 하기 힘듭니다.

5. 스포츠맨쉽 (?)

수정주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는 규칙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의견이 충돌하면 해소할 장치도 준비되어 있고요. 동시에 진실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도 하죠. 이런 규칙으로는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면서도 남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소통력이 중요합니다. 눈치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남의 의견도 듣고 좋은 게 있으면 취해서 재해석하고 조합하고, 정 충돌하면 반박 판정을 해서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죠. 서로 규칙을 능력껏 교활하게 활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마구 밀고, 후회없이 싸우고, 깨끗이 승복할 때 제일 재미있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식 ‘사상의 자유시장’ (Marketplace of ideas) 성격이 강하죠. 협력 자체보다는 경쟁과 연맹의 이합집산이 중점이라는 면에서 RPG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을 듯.

6. 어느 정도의 글 솜씨

명문을 쓸 필요는 없지만, 근거에 맞춰 글을 논리적으로 쓸 필요는 좀 있습니다. 물론 안 그럴 수도 있지만 당장 지적이나 반박 들어오는 건 각오해야겠죠. 그리고 그런 지적이나 반박 앞에서 대범할 수 있어야 할 테고요.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보면 글 솜씨 늘리는 데도 꽤 좋은 방법입니다. 일단 글을 꾸준히 계속 쓰고, 계속 지적과 도전을 받는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러면서도 공부가 아닌 놀이이니 학습의 적인 심적 부담도 적고…

7. 기술적 능력 내지는 호기심

한다면 저의 숙적(..) 제로보드보다는 위키에서 할 생각이므로 위키와 인터넷을 어느 정도 알면 도움이 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배워보겠다는 열의는 있어야 할 겁니다.

…뭐 쓰다 보니 이게 캠페인 참여 얘긴지 필살! 직장 생존법인지 모르겠군요. 실제로 이걸 다 갖춘 분이라면 1번 정도 빼고는 대충 성공의 조건은 다 갖추었을지도요..(…) 전에 말했듯 RPG 진짜 잘하는 사람은 뭐든 잘합니..(먼산)

어쨌든 한다면 약 한 달 정도의 시범 기간을 두고 실제로 의견 나오는 거랑 글 올라오는 걸 볼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가자끼리 투표하거나 로키 독재(?). 이 글은 이런 캠페인에 대한 관심도가 대충 얼마나 되나 하는 관심도 측정용이랄까요. 어쨌든 진짜 오래, 재밌게 할 사람만 모집하면 플레인스케이프는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세계이니까 뭔가 작품이 나와도 나오지 않을까요.

포도원의 순사들

(2018. 5.9)

이야기와 놀이입니다.

원래 이 글은 해당 사이트를 개인 블로그로 쓰던 시절인 2007년에 일제강점기 시절의 순사들을 포도원의 파수견으로 플레이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생각나는 대로 쓴 글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민감한 소재를 부주의하게 다루고,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 불쾌감을 드린 점을 사과드리면서 글을 지우겠습니다.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캠페인 구상 – Transhuman Adventures

이것저것 신청받은 것이 있어서 어째 진행 대기줄이 길어지는 느낌인데(..) 어제는 승한님과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캠페인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급변하는 기술과 사회가 인간 삶의 조건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녹록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방대한 배경이라, Rpg.net 등지에서는 ‘매혹적이지만 부담되는 설정’에 꼽힌 걸 본 기억도 나더군요.

다른 진행자는 어떻게 접근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 매력적인 괴물을 다룬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더군요. ‘무조건 인물 중심.’ 사실 철학 토론을 할 생각이 아니라면 기술이 인간 정체성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하는 게 무슨 상관이랍니까. RPG 세션은 인문 수업시간이 아닌걸요. 하지만 구체적인 인물, ‘사람’의 얘기로 다가올 때는 훨씬 피부에 와 닿죠. 자신을 컴퓨터에 업로드한 인물이라든지, 인체 기관보다 기계 부속이 많은 인물이라든지…

그리고 이렇게 해서 만든 인물 설정을 중심축으로 캠페인을 풀어가려면 제가 아는 규칙 중에서는 역시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이 가장 적당하겠더군요. 주인공들의 인간적 고민이 곧 캠페인의 화두가 되는 형태이고, 철저히 참가자 주도형이니까요. 또한, 시즌 하나가 5화나 9화 하는 식으로 떨어지니까 규모가 큰 배경에 자칫 눌리기 쉬운 완급 조절도 긴장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길게 하고 싶으면 시즌을 이어가며 재계약(..)하면 될 테고요. (안방극장 한 기를 마쳐보는 건 제 오랜 소원이기도 합니.. 조기종영은 싫어요! ;ㅁ;)

그러니까 첫 단계는 일단 모두가 마음에 드는 프로 기획. 두 번째는 논의와 조정을 좀 강도 높게 해가면서 인물 제작. 물론 주인공 상호 간의 조정도 중요할 테고요. 인물에 설정을 좀 밀도 있게 집어넣고, 자기 인물의 주변 설정 정도는 참가자가 알 수 있게 교육(?)을 시키면 이 시점에서 참가자에게 필요한 설정 정보는 대부분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 인물과 관련된 것이니 관심도도 대체로 높겠지요. 그리고 진행자도 실제 장면 진행을 하고 참가자의 장면 신청에 제안과 조언을 풍부하게 해줄 만큼의 설정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 할 테고요.

여기까지 준비되면 준비가 좀 세지, 실제 플레이는 오히려 편할 것 같더군요. 참가자들은 자기 인물의 고민과 주제의식을 생각하며 장면 신청하고, 진행자는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제안과 조언 역할, 그리고 진행. 시즌 진행 중 서로 고민이 충돌하고 융합하면서 THS 배경의 주제의식이 재해석과 재창조를 거치고, 인간적, 극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지적 자극이 되는 하드 SF가 나름 나오는 거죠, 뭐. 물론 세세한 규칙상 구현을 중시하는 취향이라면 안방극장은 끔찍하겠지만요. (..)

과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상만으로도 나름 즐겁군요. 요즘에는 구상하는 캠페인 중 몇 개나 끝내 못 하고 죽을까 하고 상상하는 것도 재미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