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

얼마 전에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을 아쉽게 끝낸 후에도 플레인스케이프 캠페인에 대한 욕구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렇다고 스타워즈 캠페인을 하는 동안 정기 캠페인을 또 시작할 여유는 없고 해서 승한님과 얘기하다가 플레인스케이프 배경의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캠페인은 어떨까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배경 자체도 방대하고 난해한 데다가 글을 정기적으로 올려야 하는 부담이 있다는 점에서 정말 사람을 많이 타는 캠페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요. 어떤 참여자와 함께 해야 재미있을까 생각해보니 조건이 꽤 까다롭더군요.

1. 플레인스케이프에 대한 관심

지식 자체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만, 정말 플레인스케이프를 좋아하고 호기심이 넘치지 않으면 굳이 플레인스케이프를 사용할 필요도 없죠. 일단 관심만 많으면 지식은 필요에 따라 스스로 늘려갈 테고요. 제가 보기에는 사실 기본적인 내용만 알아도 되고, 여기에 덧붙이는 재해석과 상상력이 진짜입니다만 어쨌든 플레인스케이프의 분위기나 특색에 매력을 느끼는 게 시작이죠.

2. 어느 정도의 원서 해독 능력

이것도 영어를 기가 막히게 해서 플레인스케이프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따위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스스로 습득할 능력과 열정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입니다. 위에 말했듯 지식 수준 자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요.

3.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성실성과 열정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에서 유일하게(..) 안 까다로운 점은 바로 시간대죠. 글이야 언제 올리든 1~2주에 한 편 올리면 되니까요. 하지만 꾸준히 일정량의 글을 올린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에 따라서는 최악의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일단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쓰는 데 부담이 별로 없고, 재미있게 장기에 걸쳐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 쓰는 게 늘 그렇듯 뻔뻔함은 필수고요. (…)

4. 의견을 활발하게 내는 주인의식

수정주의 역사에서 초기 설정은 모두 참여자들이 합의해서 정하고, 그나마 끌고갈 진행자도 없는 플레이입니다. 다들 의견 안 내고 우물쭈물하면서 눈치보면 캠페인 그냥 망합니다. 특히 정해진 시간대가 없는 플레이라서 토론은 게시판이 (혹은 위키 코멘트가) 중심이 될 것 같은데, 게시판이 유령 게시판이 되거나 한두 사람만 활개치면 이미 망조는 성큼..(..) 한 번 시작한 것은 뿌리를 뽑고 보는 사람, 활발하게 의견 내면서 주인의식 가지고 캠페인 끌고 가는 참여자가 아니면 재밌게 하기 힘듭니다.

5. 스포츠맨쉽 (?)

수정주의 역사는 기본적으로 각자의 ‘진실’을 가지고 경쟁을 벌이는 규칙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의견이 충돌하면 해소할 장치도 준비되어 있고요. 동시에 진실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도 하죠. 이런 규칙으로는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면서도 남의 의견에 귀기울이는 소통력이 중요합니다. 눈치보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남의 의견도 듣고 좋은 게 있으면 취해서 재해석하고 조합하고, 정 충돌하면 반박 판정을 해서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죠. 서로 규칙을 능력껏 교활하게 활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마구 밀고, 후회없이 싸우고, 깨끗이 승복할 때 제일 재미있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미국식 ‘사상의 자유시장’ (Marketplace of ideas) 성격이 강하죠. 협력 자체보다는 경쟁과 연맹의 이합집산이 중점이라는 면에서 RPG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정말 재미있게 할 수 있을 듯.

6. 어느 정도의 글 솜씨

명문을 쓸 필요는 없지만, 근거에 맞춰 글을 논리적으로 쓸 필요는 좀 있습니다. 물론 안 그럴 수도 있지만 당장 지적이나 반박 들어오는 건 각오해야겠죠. 그리고 그런 지적이나 반박 앞에서 대범할 수 있어야 할 테고요. 그럴 수 있다면 어떻게 보면 글 솜씨 늘리는 데도 꽤 좋은 방법입니다. 일단 글을 꾸준히 계속 쓰고, 계속 지적과 도전을 받는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러면서도 공부가 아닌 놀이이니 학습의 적인 심적 부담도 적고…

7. 기술적 능력 내지는 호기심

한다면 저의 숙적(..) 제로보드보다는 위키에서 할 생각이므로 위키와 인터넷을 어느 정도 알면 도움이 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배워보겠다는 열의는 있어야 할 겁니다.

…뭐 쓰다 보니 이게 캠페인 참여 얘긴지 필살! 직장 생존법인지 모르겠군요. 실제로 이걸 다 갖춘 분이라면 1번 정도 빼고는 대충 성공의 조건은 다 갖추었을지도요..(…) 전에 말했듯 RPG 진짜 잘하는 사람은 뭐든 잘합니..(먼산)

어쨌든 한다면 약 한 달 정도의 시범 기간을 두고 실제로 의견 나오는 거랑 글 올라오는 걸 볼 생각입니다. 그 다음에는 참가자끼리 투표하거나 로키 독재(?). 이 글은 이런 캠페인에 대한 관심도가 대충 얼마나 되나 하는 관심도 측정용이랄까요. 어쨌든 진짜 오래, 재밌게 할 사람만 모집하면 플레인스케이프는 정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세계이니까 뭔가 작품이 나와도 나오지 않을까요.

6 thoughts on “수정주의 플레인스케이프?

  1. 소년H

    3,4번이 약간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참가할지도 모르겠습니..(어쩌라는 건지 (…))

    (아니 실은 1번 5번 6번 7번이 문제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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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뭐 동환님은 잘 하실 것 같은데.. 별로 사람을 가릴 정도로 관심도가 높은 것 같진 않고, 한 명쯤 더 흥미를 보이는 분이 있으면 1개월쯤 시범적으로 돌려보고 장기적으로 할 수 있겠나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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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카스트

    플레인스케이프는 사랑하고, 영어야 뭐…(우물우물). 그런데 글쓰기가 문제가 되는군요. 이걸 참가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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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로키

    생각했던 것보다는 관심도가 높군요. (?) 세션 쪽에서도 19일까지 모집할 생각이니까 처음 계획대로 한 달 시범 플레이를 돌리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게시판 플레이라 딱히 인원을 줄이는 게 목적이라기보다는 그냥 다 같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지 서로, 그리고 스스로 확인하는 기회랄까요.

    아카스트// 한 달간 시범 플레이 참여하시고 판단하시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이런 문제는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니까요.

    성큼// 지식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식보다는 관심과 창의성이 훨씬 중요하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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