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슈터 SF RPG 노바(NOVA) 출시 확정!

태양이 폭발했습니다. 태양 파편이 태양계를 가로질러 지구와 달에 부딪혔습니다. 인류는 전멸에 가까운 끔찍한 피해를 입었고, 움푹 팬 달은 여전히 하늘에 못 박힌 채 희미한 빛을 발하며 우리의 종말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습니다.

태양샘

수백 년 후, 우리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태양 파편은 지구 표면에 내려앉아 식었습니다. 인류는 이 파편 주위에 모여 그 온기와 빛을 이용했습니다. 이제, 이 “태양샘” 덕분에,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 새로운 에너지원은 인류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태양샘 주변에 건설된 도시는 옛 지구의 유물과 새로운 테라의 기술이 혼합된 도시입니다. 우리는 어둠에 맞설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파크

우리는 태양샘의 에너지로 구동되는 강력한 외골격 슈트를 만들었습니다. ‘스파크’라고 불리는 이 슈트는 태양샘으로 보호받는 영역 너머의 어둠을 탐험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며, 저 바깥에 숨어 있는 모든 위협으로부터 조종사 자신과 인류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스파크입니다.

옛 지구는 폐허로 가득 차 있으며, 이 폐허 속에는 문명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이 있습니다. 황혼땅 저편에는 태양의 파편을 차지하려는 자들도 있고, 아예 파편을 파괴하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슈트를 입으세요.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 계약 작품, ‘노바’는 태양 폭발 후 완전히 바뀐 세상을 무대로 하는 SF RPG입니다.

여러분은 태양의 파편을 동력으로 하는 강력한 외골격 슈트 ‘스파크’의 파일럿들입니다. 스파크는 도시를 지키고, 폐허가 된 옛 지구를 탐사하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각종 위협과 싸우는 인류의 수호자입니다.

루멘 시스템

노바는 빠르고 강력한 전투를 플레이하는 데 중점을 두는 루멘(LUMEN)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루멘 시스템은 ‘워프레임’, ‘데스티니 가디언즈’ 등의 게임에서 선보인 루터 슈터 장르의 전투를 RPG로 구현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플레이어들은 플레이 동안 스파크의 강력한 능력과 무기로 여러 적을 무찌르고, 노획물을 얻어 캐릭터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파크

플레이어들이 조종할 스파크는 폐허가 된 옛 지구, 이제는 “황혼땅”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 위해 설계된 특수한 외골격 슈트입니다. 총 아홉 가지 클래스로 구성된 스파크는 클래스마다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혼땅

황혼땅은 태양샘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저 너머의 어두운 땅입니다. 황혼땅에는 옛 지구의 막대한 지식과 각종 자원, 그리고 무궁무진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스파크들은 잃어버린 지식을 되찾기 위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를 위협하는 각종 위험요소와 맞서 싸우기 위해 황혼땅으로 출격합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이 황혼땅을 주무대로 합니다.

시는 언제?

현재 노바의 출시 예정일자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능하면 내년 초 크라우드 펀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메트로배니아풍 솔로 RPG, 불빛지기(Firelights) 출시 확정!

수 세대에 걸쳐 망자들은 반그림자의 땅 곳곳에서 죽은 육체에 갇힌 언데드가 되어 세상을 괴롭히고,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한때 망자들을 장막 너머로 인도하던 불빛지기들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수호자들의 세심한 보호 아래 마지막 고치가 방금 부화했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불빛지기입니다.

여러분은 생명 없는 괴물들 사이를 헤쳐 나가, 이 땅의 모든 옛 봉화에 불을 붙여서 다시 한번 망자들을 장막 너머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 계약 작품인 ‘불빛지기’(Firelights)를 소개합니다.

불빛지기는 역병의 땅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여정을 다룬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여러분은 부패로 인해 병든 지하세계에서 망자들을 다시 안식으로 인도하는 최후의 불빛지기 역할을 합니다. 이 작품은 “브레스리스”의 제작자 르네 피에르 디쉐이즈가 할로우 나이트, 오리와 눈먼 숲 등의 메트로배니아 비디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플레이 방식

불빛지기는 6면체 주사위 두 개와 플레잉 카드 한 벌, 여정을 기록할 공책을 가지고 플레이를 합니다. 플레이어는 카드를 넘겨서 만든 새로운 구역에서 역경을 헤쳐 나가고, 위험한 괴물과 싸우고, 보물을 찾고, 봉화를 밝혀야 합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아이디어 표를 사용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GM이 없는 솔로/협동 RPG입니다.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플레이어는 주사위를 굴려 표에 나온 소재에 따라 새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쉽고, 간단하지만, 깊이 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불빛지기는 A4 두 장 분량의 짧고 간략한 게임이지만, 원하는대로 여정을 기록하고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혼자서, 혹은 같이 플레이를 하면서 여러분의 모험담을 만들어 보세요.

오픈 라이선스 RPG

제작자 르네 피에르 디쉐이즈는 “불빛지기의 인도”(Guide by Firelights) 아래 자유롭게 자매작을 만들 수 있도록 규칙을 저작자 표시 4.0 라이선스로 공개했습니다. (https://fari-rpgs.itch.io/firelights-creator-kit) 한국어판 불빛지기를 출시할 때, 제작자용 키트 역시 같이 번역해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언제 나오나요?

번역은 이미 끝났습니다. 한국어판 레이아웃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itch.io의 이야기와 놀이 사이트에 출시하겠습니다. 명확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내놓겠습니다!

크래시 카트 소개

근미래 디스토피아/사이버펑크 배경의 작품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활극을 펼친 주인공이 정신을 잃은 후 눈을 떠보니 어느 병원 침대 위에서 붕대를 칭칭 감고 있더라… 같은 전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들을 후송하는 구급대원들의 활약이 더 흥미진진할 수도 있지요.

(구급기 ‘로미호 78호’)

갈렌 피저의 크래시 카트(링크)는 21세기 말 초거대 스프롤인 캘리포니아 광역대도시 연합, 일명 ‘캘엑시스’을 무대로 한 근미래 구급대원 RPG입니다. PC들은 민간 구급 서비스 회사 “크래시 카트 HQ”의 직원들로, 매일 밤 교대근무마다 긴급출동에 나서 위기에 빠진 고객을 구출해 지정한 장소까지 안전하게 후송합니다. 원문의 설명을 빌리자면 “여러분은 특별히 사이버하지도 않고 펑크하지도 않은, 그저 별탈 없이 근무 시간을 버티려 노력하는 평범한 노동자”입니다.

(게임의 참고자료 중 하나인 조 코넬리 원작, 마틴 스콜세지 감독 <비상근무>.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평범한 구급대원들의 평범하지 않은 구조 활동

구급대원들은 늘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하루하루 펼쳐지는 근무 현장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매 출동마다 구급대원들은 시속 300km로 비행하는 구급기를 타고 건물 사이를 위태위태하게 날아 몇 분 내로 구조신호 위치로 도착해야 합니다. 무사히 도착해도 끝이 아닙니다. 착륙 현장에는 각종 골칫거리가 가득합니다. 구급대원들은 고객을 노리는 갱단이나 킬러들과(혹은 경쟁사 구급대원들과) 충돌할 수도 있고, 고객이 갇힌 불타는 빌딩 속으로 달려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고객이 크게 다쳤다면 현장에서 수술을 집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착륙을 마음 편히 할 수 있으면 차라리 낫습니다. 착륙하기도 전에 지대공 미사일의 환영인사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고객을 태운 다음에도 추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진땀을 빼거나, 한참 위험한 상황에 느닷없이 연락해와 이런저런 계약상 허점을 물고 늘어지는 고객의 변호사를 상대하며 진땀을 뺄 수도 있습니다. 행여나 구조 과정에서 구급기가 크게 망가지기라도 한다면 격납고 정비원들과 법무팀, 높으신 분들의 곱지 않은 눈총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대다수 직원들은 삼 주 안에 번아웃 증후군에 빠집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몇 달도 전에 그 경지를 지났습니다. 여러분은 돈도, 직업 안정성도 아닌 훨씬 더 큰 무언가를 좇아 일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평범한 사람이 이토록 크나큰 위험을 짊어질까요? 플레이를 통해 알아봐야 합니다. 이 과정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어둠 속의 칼날과 레이디 블랙버드가 결합하면

크래시 카트는 존 하퍼의 ‘어둠 속의 칼날’과 ‘레이디 블랙버드’를 참고해서 만든 RPG입니다. 우선 크래시 카트는 ‘포지드 인 더 다크’. 즉 어둠 속의 칼날 자매작임을 표방하고 있으며, 플레이 구조와 판정 방식을 따왔습니다. 매 근무(매 세션)마다 캐릭터들은 긴급 출동을 나서고, 고객을 구출한 다음 격납고로 복귀합니다. 복귀한 다음에는 막간 활동으로 휴식과 개인활동을 한 다음, 다음 근무에 다시 출동에 나가는 플레이를 반복합니다. 판정 방식 역시 몇 가지 차이점은 있지만 어둠 속의 칼날처럼 처지와 효과를 정한 다음 결과를 알아보는 방식입니다. 다만 크래시 카트에서는 판정을 주사위 대신 플레잉 카드로 하며, 카드 뽑기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게임 규칙에 활용합니다. 이 부분은 잠시 후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레이디 블랙버드(링크) 역시 크래시 카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블랙버드 공녀와 그 일행이 밀수선 올빼미 호를 타고 정략결혼을 피해 도망치다가 순양함 비탄의 손 호에 잡혔다’라는 초기 상황과 캐릭터가 주어진 레이디 블랙버드와 마찬가지로, 크래시 카트 역시 기본 설정이 어느 정도 정해진 네 명의 캐릭터가 (새로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구급기 로미오 78호를 타고 활약하는 RPG입니다.

플레잉 카드로 보여주는 팍팍한 직장인의 삶,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수면 시간

앞에서 언급했지만, 다른 어둠칼 자매작들과 다른 크래시 카트의 가장 큰 특징은 주사위 대신 플레잉 카드를 판정에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크래시 카트의 카드는 성공과 실패를 나타내는 판정 수단이자, 캐릭터들의 점점 마모되는 의지와 체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선 캐릭터들은 판정을 할 때 카드를 뽑습니다. 붉은색 카드만 나오면 실패, 검은색 숫자 카드가 나오면 부분 성공, 검은색 인물 카드(잭, 퀸, 킹)가 나오면 성공, 검은색 인물 카드가 여러 개 나오면 대성공, 이런 식입니다. 이렇게 쓴 카드는 다시 섞는 대신 그냥 버립니다. 즉, 초반 상황이 쉬우면 나중에는 점점 상황이 어려워지는 반면, 초반에 각종 실패에 시달리면 이후 판정에서 극적인 성공을 거둘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한 버린 카드는 플레이가 끝나도 카드 더미로 돌아가지 않으며, 특정한 조건이 발동되어야 다시 카드 더미에 섞입니다: 조커가 나오거나, 아니면 캐릭터들이 잠을 자거나.

조커를 뽑으면 상황이 악화됩니다. 픽션 속에서는 무언가 골칫거리가 발생하며, 지금까지 사용한 붉은색 카드(실패 카드)만 전부 카드 더미로 다시 섞입니다. 즉 판정에서 실패할 확률이 훨씬 커집니다.

검은색 카드(성공 카드)를 카드 더미로 다시 섞으려면 막간 동안 조금이나마 눈을 붙여야 합니다. 그러면 버린 검은색 카드 일부가 카드 더미로 되돌아 갑니다. 쪽잠을 자겠다고 선언한 캐릭터는 그 막간 동안 스트레스 해소도, 자기 개발도, 치료도, 그 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매 막간마다 플레이어들은 잠을 잘지 말지 항상 고민해야겠지요. 끊임없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직장인의 서글픔을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캐릭터들의 결말, 두 장의 편지

이토록 고생하며 구조 현장으로 달려가는 캐릭터들은 도대체 무슨 미래를 꿈꿀까요? 플레이어들은 매 세션이 끝날 때마다 두 장의 편지 중 하나를 선택해 한 줄을 채웁니다. 하나는 자신이 미처 구하지 못한 고객의 가족에게 쓰는 위문 편지이고, 다른 하나는 본사에서 제안한 임원직을 승낙하는 편지입니다. 어느 쪽 편지를 채울지는 플레이어 자유지만, 편지 중 하나가 완성되면 플레이어는 그 편지를 보내고 구급대원을 그만둘지, 아니면 편지를 묻어두고 계속 팀원들과 활동을 할지 선택해야 합니다. 두 편지가 모두 완성되면 어느 쪽 편지를 보낼지 선택해야 합니다. 이제 캐릭터의 이야기는 막을 내립니다.

마지막으로

크래시 카트는 세상을 흔드는 영웅 대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부품처럼 일하다가 사라지는 개인을 플레이하는 작은 RPG입니다. 캐릭터들이 아무리 열심히 날고 뛰더라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캐릭터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캐릭터 자신의 미래와 이번 출동에서 구할 환자의 목숨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 출동을 나서서 난관을 극복하고, 누군가를 구하고, 격납고에 돌아와 편지를 쓰다 보면 영웅담만큼이나 흥미진진하고 풍성한 이야기가 완성되겠지요. 크래시 카트는 바로 그런 RPG입니다.

신규 계약 작품: 올드 스쿨 에센셜즈(Old School Essentials)

한국의 RPG 문화는 1994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RPG”가 발매되면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 여러분은 붉은 책(베이식 세트)에서 던전을 탐험해서 악의 하수인들을 무찔렀고, 파란 책(엑스퍼트 세트)에서 던전 밖 더 넓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이 “클래식 RPG”를 즐기고 있지요.

1974년 이래 반세기 동안 이 판타지 RPG는 수많은 판본을 통해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였고, 판본마다 언제나 큰 인기를 끌었지만, 1970~80년대에 나온 작품들은 특별합니다. 바로 이 때 던전 판타지의 틀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문인지, 많은 팬이 그 시절 모험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OSR, 즉 ‘올드 스쿨 르네상스’는 1970~80년대의 규칙과 플레이 스타일을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서 새롭게 즐기자는 RPG 운동입니다. OSR 덕분에 수많은 옛 작품들이 재조명받았지만, 그중에서도 1981년에 나온 베이식 세트와 엑스퍼트 세트는(일명 “B/X”)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출시된 작품은 1981년 판본을 확장한 1983년 판본, “BECMI” 입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로운 계약 작품, 올드 스쿨 에센셜즈(Old School Essentials, 줄여서 OSE)는 바로 이 1981년 B/X 판본의 규칙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다듬어서 새롭게 소개한 RPG입니다. OSE는 빠른 캐릭터 제작과 위험천만한 전투, 샌드박스식 플레이,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지원합니다.

국내에 나올 첫 번째 OSE 작품은 OSE의 내용을 수록한 ‘규칙서’(Rule’s Tome)와 1-2레벨용 던전인 ‘떡갈나무 속 구멍’(The Hole in the Oak)입니다. 떡갈나무 속 구멍에서, 모험가들은 나무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 넓게 펼쳐진 지하 던전을 탐사하고 각종 적과 장애물을 극복해서 보물을 얻어야 합니다.

물론, 저희는 이후에도 계속 OSE용 모험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신규 계약 작품: 브리치(The Breach)

1943년, 계몽 연맹 산하의 문화과학부에서는 뫼비우스-힉스가 연구한 시공의 흐름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연구실의 입자 가속기가 폭발하면서, 우리 세계와 헤아릴 수 없는 이차원들 사이를 잇는 통로가 발생한 것입니다. 바로 “틈새(The Breach)”라고 불리는 차원문 말입니다.

폭발을 피해서 지하 방공호 “요새”로 대피한 연구원과 근무자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임무를 수행합니다: 요새에서 무기한 대기하면서, 틈새 너머로 감시원들을 보내 새로운 이차원들을 탐험하고 관찰하라.

그리고 25년이 흘렀습니다. 탐험과 연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깥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부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감시원들은 오늘도 틈새로 나갑니다. 무한한 차원들을 탐험하면서, 계몽 연맹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말이지요.

블러드스톤의 제작자 마테오 시유테리의 새로운 작품인 브리치는 1970년대 SF 소설의 분위기를 구현한 레트로 SF 탐사 RPG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이차원을 탐험하는 과학자 겸 군인인 감시원들을 플레이합니다. 감시원들은 틈새 너머로 나가 새로운 정보를 얻고, 타 문명과 접촉하거나 자원을 수집하고, 때로는 생물을 사냥해 표본을 얻습니다. 이차원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장소인데다가, 한번 만들어진 틈새는 늘 불안정합니다. 감시원들은 새로 형성된 틈새가 사라지기 전에 임무를 수행한 다음 복귀해야 합니다.

브리치는 ‘브레스리스’라는 미니 좀비물 RPG의 공개 규칙을 기반으로 합니다(SRD 홈페이지 링크). 브레스리스에서는 각종 특성치를 다면체 주사위로 표현하는데(횃불 d4, 민첩 d8 등), 위험한 상황에서는 해당 특성치를 사용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특성치 판정은 주사위를 굴려서 1-2가 나오면 실패, 3-4가 나오면 대가가 따르는 성공, 5 이상 나오면 성공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모든 특성치는 사용할 때마다 주사위가 한 단계씩 낮아집니다(d12 » d10 » d8 » d6 » d4). 감소한 특성치는 휴식을 통해 회복할 수 있지만, 휴식을 할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브리치는 브레스리스를 바탕으로 각종 설정과 추가 자료, 탐험물에 어울리는 게임 절차를 덧붙여서 내용이 훨씬 방대하며, 아직도 제작이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번역될 한국어판은 완성본을 낼 예정입니다.

브리치는 현재 준비 중인 작품들의 출시가 끝난 다음 발매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몬스터하트 2: 한 꺼풀 아래

2년 전, 트위터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몬스터하트 자료집인 ‘한 꺼풀 아래’를 무료 공개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야기와 놀이 님의 트위터: “#차별금지법이_제정되면_나는 몬스터하트 자료집 ‘한 꺼풀 아래’를 무료 공개하겠습니다. https://t.co/uNl4BoqYlF” / 트위터 (twitter.com)

2년이 지난 지금, 국회에서 첫 공청회가 열렸네요. 정식 제정까지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언젠가 이 법을 위해 노력하신 많은 분의 노력과 기원이 결실을 맺기를 기원하면서 자료실에 공개하겠습니다.

자료실(링크)

한 꺼풀 아래는 몬스터하트에 다음 내용을 덧붙입니다.

  • 열 개의 새로운 플레이북.
  • 세 군데의 마을
  • 죽음과 피해를 다루는 새로운 규칙.

블러드스톤: 액션 호러 RPG 한국어판 출시.

저주받은 도시 헬리위어에서, 옛 존재들의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승천 의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정이 되기 전, 의식을 거행하는 사도를 찾아 사냥해야 합니다. 의식을 막을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액션 RPG, 블러드스톤의 한국어판 PDF를 itch.io에서 판매 중입니다!

링크: 블러드스톤: 액션 호러 롤플레잉 게임 by StorynGame (itch.io))

블러드스톤은 어떤 RPG인가요?

  • 단편용 RPG

블러드스톤은 단편용으로 만든 RPG입니다. 여러분은 저주받은 도시 헬리위어에 파견된 사냥꾼을 플레이하며, 사도를 사냥하면(혹은 사냥에 실패하면) 게임이 끝납니다. 

이 게임은 도시 제작 규칙과 아이디어 표를 통해 매번 다른 모험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플레이할 때마다, 매번 다른 사냥꾼이 언제나 새로운 장애물과 난관을 맞이할 것입니다.

  • 포지드 인 더 다크

블러드스톤은 ‘어둠 속의 칼날’과 그 자매작들에서 사용한 ‘포지드 인 더 다크’ 규칙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단편용에 맞추어 많은 부분이 간략화되고 개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 스트레스는 ‘블러드본’ ‘다크 소울’ 등의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체력 규칙으로 대체됩니다.
  • 캐릭터 제작은 몇 가지 질문과 선택(출신, 의복, 무기)으로 이루어집니다.
  • 행동 수치 용맹결의재치, 이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만든 한국어 캐릭터 시트를 구경해 보세요! (링크)

블러드스톤은 One Seven Design의 존 하퍼가 제작한 ‘어둠 속의 칼날’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이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3.0 Unported 라이선스를 통해 사용이 허락되었습니다. 한국어판 블러드스톤 RPG의 번역 및 출판은 이야기와 놀이가 담당합니다.

D&D의 탄생

트위터에 썼던 ‘프리 크릭스슈필이 D&D 탄생에 끼친 영향(링크)에 좀 더 살을 붙여서 D&D가 탄생한 과정을 적어봤습니다.

1974년 탄생한 TRPG 던전스 앤 드래곤스(D&D)는 반세기 동안 게임 문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고, 지금은 전세계 5천만 명 이상의 팬이 플레이하는 거대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D&D의 창시자는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인데, 저는 D&D를 ‘게리 가이각스가 만든 육체에 데이브 아네슨이 생명의 숨결을 집어넣은 창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D&D의 뿌리를 이야기하려면 ‘프리 크릭스슈필’부터 언급해야 합니다. 크릭스슈필(독일어로 ‘워게임’)은 19세기 프로이센 육군에서 장교들에게 전술 교육용으로 실시한 이래 널리 퍼진 워게임입니다.

크릭스슈필에서는 시야 제한 구현이나 복잡한 규칙을 해석하기 위해 심판을 두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규칙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심판들은 처리에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게다가 규칙이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딱딱한(rigid) 규칙 대신 심판이 자유롭게(free) 상황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방식의 워게임”, 프리 크릭스슈필입니다.

프리 크릭스슈필은 이후 미국의 워게임 ‘스트라테고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트라테고스는 19세기 당시 장교 훈련용으로 흔히 사용되던 워게임이었으나, 이후 20세기 들어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1967년, 워게임 팬이자 제작자 데이비드 위슬리는 미네소타 대학교 도서관에서 스트라테고스를 발굴하고, 이 게임의 각종 요소를 자신이 속한 게임 동호회 ‘미드웨스트 밀리터리 시뮬레이션 어소시에이션(MMSA)에 소개하고 보급했습니다. MMSA의 멤버 중에서는 데이브 아네슨도 있었습니다.

1969년, 데이비드 위슬리는 프리 크릭스슈필의 원칙을 적용한 ‘브라운스테인’을 만들어 테스트 플레이를 해보기 시작합니다. 브라운스테인은 나폴레옹 시대 가상의 독일마을을 배경으로 한 워게임입니다.

브라운스테인은 플레이어들이 지휘관이 되어 병력을 운영하던 기존 워게임과 달리 여러 플레이어가 마을 사람 개개인의 역할을 맡아서 각자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운영하는 방식이었는데, 원래는 플레이어들이 별도의 방에서 각각 심판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캐릭터 연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마을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두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하게 서로 결투를 시작해서, 웨슬리는 즉석에서 결투 규칙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웨슬리는 이 테스트 플레이는 ‘혼란한 실패작’으로 생각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이 롤플레이를 매우 즐거워했고, 웨슬리에게 게임을 더 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군대에 간 웨슬리를 대신해 데이브 아네슨이 브라운스테인의 심판을 맡았고, 그는 브라운스테인을 개조해서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가들을 플레이하는 배경 무대인 ‘블랙무어’를 플레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데이브 아네슨은 ‘캐슬 앤 크루세이드 소사이어티(C&CS)’라는 소모임에도 가입했는데, 이 소모임은 게리 가이각스가 운영하던 중세 미니어처 워게임 동호회였습니다.

게리 가이각스는 C&CS를 운영하면서 ‘그레이트 킹덤’이라는 가상의 판타지 왕국과 이 무대를 배경으로 플레이하는 ‘체인메일’이라는 워게임을 만들어서 C&CS 회원들이 왕국 내 각 지방을 맡아 워게임을 플레이하게 했습니다. 데이브 아네슨은 블랙무어의 무대를 그레이트 킹덤에 통합시키고, 체인메일의 1:1 스케일 플레이, 마법, 몬스터 규칙 등을 적극 차용합니다. 그러면서 가이각스와 아네슨은 적극적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1972년 가을, 아네슨은 가이각스가 사는 레이크 제네바로 가서 블랙무어 플레이를 시연합니다. 이 게임의 잠재성을 깨달은 가이각스는 아네슨과 협력하여 ‘던전스 앤 드래곤’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질문으로 만들어가는 시나리오

전제조건: 어떤 RPG는 아예 시나리오를 만들 수 없거나, 룰과 시나리오 제작법이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RPG에 이 내용을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평온한 한 해’나 ‘마이크로스코프’에서는 시나리오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인세인’이나 ‘어둠속의 칼날’ 같은 경우는 룰에 맞춰서 내용을 조정해야 할 것입니다. 반면, ‘울타리 너머’나 ‘미로의 쥐’같은 전통적인 RPG에서는 아래 내용을 잘 활용할 수 있겠지요.

1. RPG 시나리오는 플레이를 위한 빈칸을 마련하는 틀

RPG 시나리오를 만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완성된 이야기’를 꿈꾸고 RPG 시나리오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완성된 이야기는 플레이어의 경험이 고정되어 버립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답든, 이는 RPG 시나리오가 아닙니다. 가상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자기 팀에서 같은 시나리오를 플레이했습니다.

A: 우리 탁에서도 OOO 시나리오를 플레이했는데, 마지막 대결에서 왕자 PC가 죽을 결심을 하고 왕 앞에서 “소자는 절대 그를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칼을 던지는 거, 정말 인상 깊었어.

B: 아, 그 부분 정말 훌륭했지. 어떻게 시나리오 작가는 그런 멋진 대사를 만든 거지?

이 시나리오에는 분명 어딘가 문제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테이블에서 PC들이 동일한 감정을 느끼면서 동일한 대사와 동일한 행동을 한다면, 아무리 감명 깊은 플레이였어도 이는 좋은 RPG는 아닙니다. 이건 대본이지요. RPG 시나리오는 플레이어의 경험이 고정되면 안 됩니다.

소설이나 대본, 게임 등은 레디메이드로 완성된 이야기를 독자들이, 아니면 관객이 보는 매체입니다. 이미 완성된 이야기는 독자가 아무리 무엇을 하더라도 절대 달라질 수 없습니다. 독자나 관객에 따라 다른 감상을 가질 수도 있지만(비극을 코미디로 생각한다든지), 그건 해석의 차이이지, 결국 이야기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RPG는 플레이로 완성하는 매체입니다. 제작자 여러분은 캐릭터 작가가 아닙니다. 플레이어들이 캐릭터 작가입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자기 캐릭터의 능력, 맞부딪친 상황, 다른 캐릭터들과의 인터액션을 통해 이야기를 완성해나갑니다. 이렇게 완성된 이야기는 그 테이블에서 직접 만든 수제품이기 때문에, 결코 다른 테이블의 플레이와 동일할 수 없습니다.

즉, 제작자 여러분은 완성된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생각 대신, 테이블에서 캐릭터의 경험이 완성되는 틀을 제공해야 합니다, 플레이어들이 플레이로 채울 빈칸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죠. 아포칼립스 월드에서 무척 유명한 강령이 있습니다. “플레이를 통해 알아간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빈칸으로 남겨야 할까요?

2. 빈칸은 질문으로 나타내라

시나리오 제작자는 마스터와 플레이어에게 이 빈칸을 어떤 형태로 전달할까요? 저는 ‘질문’을 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습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겼습니다.”라는 서술은 상대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사랑할까요?” “거북이는 토끼를 어떻게 이길까요?”라고 묻는다면, 상대 마음속에 반응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생각한 답을 찾으려 하지요. 질문은 상대를 행동의 주체로 인정하고, 상대에게 답을 맡기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즉, 시나리오는 플레이어들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제작자 여러분이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시나리오를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이 부딪칠 주제입니다. 시나리오는 질문이지, 완성된 답이 아닙니다. 진정 시나리오로 만들고 싶은 건 질문으로 던지세요.

그리고 주의할 점, 절대로 정답을 만들지 마세요. RPG 제작자 폴 체게는 ‘문제와 해결책을 같은 사람이 정하면 재미가 없다’라는 원칙을 말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이 만든 시나리오에서는 특정한 답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예시’일 뿐이지, 정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시나리오를 즐길 플레이어들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플레이어들 역시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3.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과정인가, 선택인가

그렇다면, 제작자 여러분은 시나리오를 만들 때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에 따라 시나리오의 형태는 달라집니다. 저는 질문을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행동할래요?” “무슨 선택을 할래요?”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면 적진을 돌파해야 합니다. 어떻게 통과할래요?”

“그래서, 당신은 부모의 원수를 용서할 건가요?

첫 번째 질문은 캐릭터의 행동 방식을 강조합니다. 이 시나리오는 아마도 캐릭터가 어떻게 적진에 갈 것인가에 비중을 두겠지요. 반면 두 번째 질문은 캐릭터의 판단을 강조합니다. 아마도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사정, 원수를 갚아야 하는 사정을 늘어놓고, 캐릭터를 심적 고뇌와 갈등에 빠뜨릴 것입니다.

캐릭터의 행동을 물어보는 시나리오는 보통 캐릭터의 목표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보물을 얻거나, NPC를 구출하거나, 보스와 싸우거나 등등. 여기서 강조할 부분은 그 과정입니다. 캐릭터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무슨 장애물에 부딪히고, 어떻게 극복할까? 가 핵심 질문이지요. 플레이어들은 어떤 과정을 어떻게 극복할지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던전물입니다. 던전은 마지막 방에 캐릭터들의 최종 목표가 있습니다. 목표까지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떤 수단을 동원할지? 전투? 비밀문 찾기? 방화? 은신? 전투가 불가피하다면 어떤 식으로 전투할지? 정면으로 부딪칠지? 기습을 할지? 모두 플레이어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할 사항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어떤 장애물을 마주칠지, 혹은 어떤 방법으로 장애물을 마주칠지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과정은 생략될 수도 있고, 어떤 과정은 허무하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일입니다. 오히려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한 플레이어들을 칭찬할 일이지요. 제작자 여러분은 과정의 자유를 플레이어들에게 맡겼기 때문입니다.

캐릭터의 선택을 물어보는 건 그 반대입니다. 캐릭터들은 마지막 순간 가장 중요한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원수를 용서할까요? 사랑을 위해 왕의 명령을 거역할 건가요? 이런 시나리오에서는 마지막 선택을 위해 플레이어들이 꼭 얻어야 할 정보나 과정이 있습니다. 원수를 용서할까요? 라는 핵심 질문이 있는 시나리오에서, 캐릭터들의 선택에 고민을 더하려면 그 원수가 사실 어릴 적 생명의 은인이라는 정보가 꼭 필요할 것입니다. 즉, 캐릭터들의 최종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는 반드시 캐릭터들이 마주칠 필수 장면이나 전투가 있을 것입니다. 시나리오를 만들 때 어떤 부분을 강제 진행으로 할지, 어떤 정보를 반드시 줘야 할지 꼭 명시적으로 밝히세요. 그리고 중요한 점, 선택이 쉬워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말했지만, 시나리오 제작자 자신도 정답을 몰라야 합니다. 어느 쪽 선택도 극복할 난관이나 감내할 여파가 있어야 합니다.

4. 후크 만들기

핵심 질문을 정한 다음에는 후크, 즉 갈고리를 만들어보세요. 후킹은 캐릭터들을 시나리오에 끌고 오는 계기입니다. 물론 플레이어들은 시나리오를 하겠다고 동의한 상태지만, 캐릭터가 왜 이 상황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캐릭터들의 개인사나 욕망과 연결한다면 시나리오를 매끄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은 해당 테이블에서 마스터가 정하겠지만, 제작자 여러분은 마스터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캐릭터와 시나리오를 연결시키는 몇 가지 예시를 만드세요. 빚 때문인가요? 그럼 채권자가 캐릭터들을 독촉할 것입니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인가요? 그럼 부모님이 원수에게 죽었다고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아예 캐릭터들이 왜 이 시나리오를 하는지 그냥 명확하게 제시하고, 처음부터 상황에 휘말리게 만드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처음부터 거두절미하고 적을 등장시키거나, 던전 입구에 캐릭터들을 보내거나, 말싸움이나 추격전 현장부터 시작해 보세요. 플레이어들이 첫 장면에 뭘 할지 명확하게 알려주세요.

5. 첫 장면 만들기

후크를 정했으면 이제 장면을 만들 차례입니다. 장면에도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핵심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의 장면은 플레이어들이 이 질문에 답을 내릴 때 끝납니다. “저 성벽을 어떻게 통과할까요?” “친구와 연인이 서로 다투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장면 질문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장면의 모습도 달라집니다.

우선, 장면 질문이 액션을 강조하는지, 드라마를 강조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장면의 종류가 액션이라면, 캐릭터들이 극복해야 하는 외부적인 난관이 등장합니다. 가장 흔한 난관은 적이나 장애물입니다. 액션 장면은 외부적인, 눈에 보이는 목표가 있고, 캐릭터들이 이 난관을 극복하느냐, 극복하지 못하느냐가 장면의 핵심입니다. 장애물이 무엇인지 소개하면서 장면을 시작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면서 장면을 끝내세요. 원수가 있는 성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할까요? 성벽을 타고? 변장해서? 경비병에게 뇌물을 줘서?

장면의 종류가 드라마라면, 캐릭터들의(혹은 플레이어들의) 정서나 가치를 건드리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드라마 장면은 캐릭터가 어떻게 극적 갈등을 해소할지,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할지가 장면의 핵심입니다. 드라마 장면은 캐릭터들이 어떤 요청이나 질문을 마주하면서 시작하고, 그 질문에 답을 내릴 때 끝납니다. 굶주린 난민이 도움을 호소합니다. 식량이 부족한데, 어떻게 할래요? 사랑하는 상대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릅니다. 어떻게 할래요? 여러분 가족이 감옥에 갇혔는데, 부패한 관리가 재판관이에요. 뇌물을 주면 쉽게 풀어줄 거고, 뇌물을 안 주면 재판을 지연하면서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입니다. 어떻게 할래요?

어떻게 보면 장면 질문은 중간 과정/마지막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의 핵심 질문과 비슷합니다. 제 경험상, 중간 과정을 강조하는 시나리오에서는 액션이 더 많이 등장하는 경향이 있고, 마지막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에서는 드라마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다음, 장면 질문을 일종의 장애물로 구체화하세요. 앞에서 말했듯 장애물은 외부적인 난관일 수도 있고, NPC나 PC 사이의 관계, 혹은 신념이나 정서와 관련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장애물을 통해 질문에 부딪히게 만들어보세요. RPG 디자이너 로빈 D. 로스는 의미 있는 장애물을 만들기 위해 네 가지 사항을 강조했습니다.

  • 딜레마: 장애물의 세부사항.

딜레마는 캐릭터들이 직면할 장애물의 상황입니다. “성벽이 높고, 경비가 10분마다 순찰을 돈다”, “오래전 헤어진 동생이 원수의 양자가 되었고, 여러분 앞에 있다.” 같은 식으로 상황을 만들어보세요. 마스터가 플레이어들에게 줄 상황 정보를 잔뜩 제시하세요. 플레이가 재미없어지는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뭘 할지 모를 때입니다. 누가 봐도 캐릭터들이 뭘 할지 알게 하세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목표를 확실하게 보여주세요. 장면 질문이 액션을 강조했다면, 딜레마 역시 외적인 어려움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로 드라마를 강조했다면, 캐릭터의 사회적, 내적인 문제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관심거리: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하기를 바라는 이유

관심거리는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애물을 만들었어도 PC들이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지?” 라고 말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성벽을 넘어야 연인을 구할 수 있고, 동생을 설득해야 원수와 은원을 풀기 쉬워질 것입니다. 일종의 장면 후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선택: PC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책

선택은 PC들이 장애물을 해결할 방식입니다. 어떤 선택은 무척 명확하게 보입니다. 적이 눈 앞에 있다면 제압하거나 피하거나 교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예시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만들어 두는 것이 편합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신념이나 가치관과 관련된 문제, 혹은 플레이어의 도덕적 선택과 관련된 문제는 선택지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예시 선택보다는 캐릭터들의 행동 때문에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예시 결과를 몇 가지 만든 다음(만약 상대가 분노한다면? 만약 상대가 기뻐한다면?) 플레이어들의 행동에 따라 마스터가 알맞은 결과를 선택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만약 장애물을 해결하기 위해 캐릭터들이 무언가 필수적인 단서를 찾거나, 필수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면(특히 추리물 같은 데에서), 최소한 세 가지 단서, 혹은 세 가지 해결책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핵심 증거를 찾아야 한다면, 세 가지 단서를 장면 안에 집어넣고 하나라도 찾으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이 굳게 잠겨 있다면, 문을 통과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적어주세요. 적이 지키고 있는 보물을 손에 넣어야 한다면, 보물을 손에 넣는 방법을 세 가지는 적어 주세요. 왜 세 가지인가? 세션에서 병목 현상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병목 현상은 보통 플레이어들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찾지 못해 벌어집니다. 이럴 때 오직 한 가지 길밖에 없다면, 마스터는 어떻게든 플레이어들에게 그 길로 가도록 유도하는 레일로드 플레이를 하거나, 입을 꽉 다물고 플레이어들이 그 방법을 찾아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세 가지 방법이 있다면, 마스터는 “이런저런 방법이 예로 있어요”라고 말하면서 플레이어들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네 번째 길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요.

  • 결과: PC들이 선택한 결과

마지막으로, PC들이 선택한 결과에 따라 무엇이 달라질지 결과를 만드세요. 드라마를 강조한 장면에서는 여러 가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혹시, 성공과 실패에 따라 분기점을 만들고 싶나요? 사실 미리 만드는 시나리오에서 분기점을 만드는 건 품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 판정은 실패하면 이야기가 아예 진행이 안 돼!” 같은 부분을 시나리오에 넣는 건 위험합니다. 물론 과감하게 “여기서 시나리오는 실패했습니다.”라고 선언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별로 매력적인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캐릭터들의 성공이나 실패에 따라 캐릭터들을 약화/강화시키거나, 이후 PC들이 맞닥뜨릴 장애물에 변화를 주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서 PC들이 원수의 양자가 된 동생을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동생은 이후 원수의 동료로 등장하거나 영영 PC들을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PC들이 성을 넘지 못한다면, 모든 준비를 마친 적이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나타나거나 정보 상인이 성안으로 잠입하는 길을 제안할 것입니다. 대신 훨씬 비싼 대가와 원하지 않는 부탁을 들어줘야 하겠지요.

각 장면의 결과는 의미 있어야 합니다. 의미 있는 결과는 캐릭터들이 선택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없거나, 돌아가기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누군가를 죽였다면 살인자라는 딱지가 붙거나, 그 사람의 지인이나 가족이 새로운 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한번 성을 넘었으면, 일을 마칠 때까지는 성 밖으로 나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6. 시나리오의 기본 구조: 다섯 장면.

이렇게, 총 다섯 장면을 만들어보세요.

과정을 묻는 시나리오라면, 다양한 방향으로 캐릭터를 시험하는 다섯 개의 액션 장면을 준비하세요. 던전이라면 다섯 방을 준비하고, 전쟁터라면 다섯 번의 위험을 준비하세요. 어려운 도전을 준비하되, 플레이어들이 머리를 짜낸다면 난도를 낮추거나 우회할 기회와 정보를 주세요. ‘다섯 방 던전’을 인터넷에서 찾아보세요.

스스로 물어보세요. “어떻게 해야 캐릭터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장애물을 안겨줄까?”

반대로 마지막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라면, 캐릭터의 신념과 믿음을 시험하는 다섯 개의 드라마 장면을 만드세요. 장면마다 새로운 부분을 부각시켜서 캐릭터들을 흔들고 시험하세요. 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캐릭터들이 인터액션을 하게 하세요. 이렇게 다섯 장면을 만들고, 지금까지의 선택지를 돌이켜보는 짧은 장면을 덧붙이세요.

스스로 물어보세요. “어떻게 하면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선택의 중요함과 그 여파를 고민하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다섯 개일까요? 보통 한 장면은 적으면 10분, 많으면 20분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소비합니다. 이 다섯 개의 장면에다가 도입부, 그리고 마지막 결말까지 합치면 대략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가 소요됩니다. 저는 이 정도가 만족스러운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최소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장면을 만든다면 더 깊은 내용을 준비할 수 있지만, 여기서부터는 선택입니다.

물론 과정을 묻는 시나리오에서 드라마 장면이 나올 수도 있고, 반대로 마지막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에서 액션 장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보통 과정-액션 위주, 마지막 선택-드라마 위주로 흘러가기 쉬웠습니다.

다섯 장면을 만든 다음에는 최종 장면을 준비하세요. 최종 장면에서는 캐릭터들이 마지막 시련을 마주치고, 마지막으로 내릴 선택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최종 장면이 끝나면, 이 시나리오가 끝난 후 캐릭터가 어떻게 변했는지 플레이어들에게 돌아가면서 서술하게 하는 과정을 넣으세요. 이 과정은 필수가 아니지만, 플레이어들에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고 느끼게 하는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7. 주의사항

마지막으로, 제작자 여러분이 주의할 사항입니다.

첫 번째, 핵심 질문은 플레이어들이 명확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과정을 묻는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들은 마지막에 자신들이 무엇을 할지(보스전, 보물 획득, 범인 체포, 기타 등등) 알아야 하며, 결론까지 이르는 과정을 자신들이 만들어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반대로 마지막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결국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시나리오 동안 캐릭터들이 그 선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플레이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플레이어들이 핵심 질문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 시나리오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핵심 질문과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내용이 나오면 안 됩니다. 핵심 질문은 시나리오의 전제조건입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다루고 싶은데, 플레이 동안 “경주 말고 다른 거 하고 싶어요?” 이런 내용이 나오면 시나리오가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