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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기획회의 486호(2019.04.20)에 기고한 글입니다. (리디북스 링크)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어느 놀이 이야기

“여러분 앞에는 3m 정도 높이의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었고, 튼튼해 보이네요. 덫은 없어 보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반대편에서 막은 것 같습니다.”

“문 상태는 어떤가요?”

“적어도 몇백 년은 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썩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들이받아서 부수겠습니다.”

“근력 판정을 하세요.”

“주사위를 굴려 보겠습니다… 성공했네요!”

“문은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서집니다. 문 안쪽 방 한가운데는 거대한 악마상이 있고, 석상 앞에는 붉은 피부의 괴물이 이쪽을 바라봅니다. 한눈에 봐도 무척 화난 것 같네요.”

“두말할 것도 없네요. 칼을 뽑습니다.”

“저는 일행들에게 축복의 마법을 걸겠습니다.”

“좋아요, 전투 준비하세요.”

위의 이야기는 즉흥극도 아니고, 소꿉놀이도 아니다. 더더구나 컴퓨터 게임도, 보드게임도 아니다. 바로 TRPG를 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다.

TRPG?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즉 TRPG는 플레이어들이 테이블에 모여 상상 속 무대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맡아서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선언하는 역할연기 놀이이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 등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캐릭터들의 행동이 성공했는지는 정해진 규칙과 지침에 따라 결정한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은 게임마스터 역할을 맡아 캐릭터들이 만날 친구나 적, 그리고 세계 그 자체를 연기하고 전체 플레이를 조율한다.

난독증도 치료하는 TRPG의 매력

2017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는 ‘던전스 & 드래곤스의 기이한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TRPG의 대표주자인 ‘D&D(던전스 & 드래곤스)’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는 자신의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해 D&D의 게임마스터를 맡고 있는 존 프리먼이 겪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느 날, 어느 플레이어의 어머니가 길가에서 존을 불러 세우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을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 여성의 아들은 난독증을 앓고 있었고, 몇 주 전부터 D&D를 플레이하기 전에는 단 몇 초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아이는 밤을 새워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어떻게 했든 간에, 그 비법을 알려주세요.”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조차 글을 쓰게 한 TRPG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TRPG는 게임이다

아이가 TRPG에 푹 빠진 이유는, TRPG가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을 갖추고 규칙을 추가한 놀이, 즉 ‘게임’이다.

사람이 즐기면서 무언가를 할 때 발휘되는 잠재력은 무척 크다. 공자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아이 역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놀이로 인식했기에 장애마저 극복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글을 쓸 정도로 몰두할 수 있었다.

게임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GAME-상호작용 이야기》(이용설 저)에서는 게임을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성을 조합한 매체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상대에게 알리려는 내용을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책이나 TV, 영화처럼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와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취하는 행동에 반응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 행동과 반응이 연쇄 과정을 일으키면서 상호작용성을 만든다. 즉, 게임은 사용자를 스토리텔링 속에 참여하게 하는 매체이다. 직접 경험해서 받아들이는 내용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순자가 “듣지 않음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TRPG는 즉흥극이나 소꿉놀이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형식을 갖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TRPG는 플레이어가 선언한 행동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 속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분명한 규칙을 가졌다. “내가 너를 칼로 찔렀어.” “아냐! 네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널 총으로 쐈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TRPG에서는 규칙을 사용해 결과를 명확하게 정한다.

이처럼 TRPG가 게임이 된 이유는, TRPG가 게임말을 가지고 테이블 위에서 상대의 말과 싸워 이기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TRPG의 탄생과 발전

TRPG의 역사는 게리 가이각스가 TRPG 회사인 TSR을 세우고 D&D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게리 가이각스는 플레이어들이 각자 게임말을 하나씩 맡아 플레이하는 미니어처 워게임 ‘체인메일’을 만들었는데, 이후 게리 가이각스는 체인메일을 데이브 아네슨의 아이디어에 따라 가상의 세계에서 캐릭터들이 모험을 하는 형식으로 바꾸어서 1974년 최초의 D&D를 완성했다.

하지만 TRPG는 탄생할 때부터 워게임이나 보드게임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TRPG의 진짜 목표는 정량적이고 명확한 승리 대신 플레이어들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은 D&D 플레이어 핸드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재미를 위해서다. 각각의 플레이들은 재미를 맛보면서 “승리한다” – 그러므로 당신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승리한 것이다! 당신의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도 재미를 맛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당신은 언제나 새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실제의 생활에서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어가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재미는 게임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지, 끝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게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게 되고,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전드 오브 더 파이브 링스, ‘세븐스 씨’ 등의 TRPG을 만든 게임 제작자 존 윅은 “만약 체스 말에 이름을 붙이고, 각 말이 가진 동기에 따라 말을 움직인다면, 이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즉, TRPG는 승리를 위해 사용하고 소모하는 게임말을 캐릭터로 삼아 동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된 것이다.

이후 TRPG는 ‘크툴루의 부름’, ‘트레블러’,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등의 작품이 나오면서 호러, SF, 어반 판타지 등 여러 장르로 뻗어 나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 RPG의 붐과 함께 ‘폴라리스’, ‘평온한 한 해’, ‘퀼’ 등 게임마스터를 두지 않거나, 플레이어들이 게임마스터처럼 세계를 관리하거나, 아예 혼자서 즐기는 규칙을 제공하는 등 실험적인 게임들도 많이 등장했다.

꺼지지 않는 TRPG의 인기

하지만 ‘규칙에 따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게임’이라는 TRPG의 형식은 오늘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이 계승했고, 그에 따라 TRPG가 다른 게임에 비해 가지고 있던 장점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1970년대 중반 D&D에 영감을 받아 그 경험을 모사하기 위해 등장한 CRPG는 이후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콘솔의 발전과 함께 플레이어들에게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를 제공하며, 인간 게임마스터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펼친다. 게다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가상 세계 안에서 동시에 협력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TRPG는 오히려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D&D 5판의 출판사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1997년 TSR을 합병한 이후 가장 많은 D&D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2016년 한 해 동안 D&D를 즐긴 미국인의 수는 860만 명에 다다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한 TRPG를 즐기는 미국 성우들이 진행하는 D&D 플레이 ‘크리티컬 롤’은 2016년 1월 기준으로 트위치에서 누적 시청 시간 3700만분을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1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TRPG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90년대 중반 D&D(1983년 개정판)가 한국에 소개된 후 잠시 인기를 끌면서 몇몇 작품들이 추가로 소개되었다가, 초여명의 ‘겁스’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긴 침묵에 빠졌던 한국의 RPG 시장은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작가 및 성우 등이 ‘던전월드’를 플레이한 영상 ‘침X펄X풍 TRPG’가 화제가 되었다.

CRPG의 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여전히 TRPG를 즐길까? CRPG가 대체할 수 없는 TRPG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

CRPG와 TRPG의 가장 큰 차이는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유무이다. CRPG는 제작자가 완성한 스토리텔링이다. CRPG의 이야기에는 바꿀 수 없는 끝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이에 대응하는 게임 세계의 반응 역시 제작자들이 준비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공략법이 준비된 대작 RPG라도 몇십 시간 동안 플레이를 즐긴 다음에는 콘텐츠 대부분을 소진한 채 다음 작품이나 업데이트, 또는 DLC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직접 MOD를 만들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메일, SNS를 통해 제작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즉석에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TRPG는 즉흥적인 창조력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소통이 필수적인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가는 놀이는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임마스터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분기와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도 없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심지어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석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혼자만의 결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TRPG는 모두 같이 즐기는 게임이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는 순간 플레이는 재미없어 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게임마스터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부사항을 덧붙이고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결말이나 반전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즉석에서 새 규칙을 고안할 때도 있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할 뿐만 아니라, 게임마스터에게 제안을 던져 이야기의 방향을 새로 정하기도 한다.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맥락

이렇게 모두가 함께 창조력을 발휘해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테이블에는 플레이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나 배경지식, 즉 그 테이블의 맥락이 생긴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서로를 믿고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므로 맥락이 만들어진 테이블에서는 불확실성이 플레이를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질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다. 맥락은 CRPG처럼 복제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며, 오직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플레이를 해야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작품

결국, TRPG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미리 완성된 기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고 좌충우돌하며 점점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오직 우리만이 그 내역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겁스에서는 “RPG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다른 문화는 최대 다수의 관객을 노리고 만들어지지만, RPG 플레이는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수제품”입니다.

자기 자신이 빚어낸 작품은 그 어떠한 걸작보다도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TRPG는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관심있는 OSR 작품들.

트위터에서 쓴 이야기이긴 한데, 몇 가지 글을 덧붙여서 다시 써봅니다.

예전에 이야기했지만, OSR은 고전 D&D를 개량해서 새로운 RPG를 만드는 RPG의 한 흐름입니다.

관련 글 (클릭하면 이동합니다):

OSR RPG의 흐름

RPG펀딧이 분류하는 OSR 운동의 세 가지(+하나 더) 흐름

DC인사이드 TRPG 마이너 갤러리 니컬님 소개글1소개글2

OSR은 오픈 게임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작품과 작품끼리 서로 교류를 하면서 영향을 주고, 이에 영감을 받아 다시 새로운 게임이 만들어지면서 점점 재미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이점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 OSR이 흥한 가장 큰 장점인 “옛 D&D를 뿌리로 하기 때문에 작품과 작품 사이 호환이 쉽다.” 라는 특징이 우리 나라에서는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OSR의 원래 목적 중 하나인 “고전 명작 시나리오를 현대풍으로 다시 즐기기”는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요즘 나온 OSR 작품 사이의 호환이라는 특징도 한꺼번에 OSR 작품들이 번역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OSR 중에서도 규모가 큰 Labyrinth Lord나 Swords & Wizardry, Lamentations of the Flame Princess 같은 건 다른 거 다 포기하고 그 라인만 들여오겠다는 결심 없이는(최소한 저한테는) 번역판이 나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외 가볍고 괜찮은 D&D 개량형 판타지 OSR들은 보통 다른 OSR과 겸용해서 사용하거나 기존에 나온 어드벤쳐를 그걸로 즐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OSR 작품들이 많아도 선뜻 번역하기는 어렵네요. 다행히 울타리 너머는 이 작품만으로도 내적인 완결성을 충분히 갖췄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육아 때문에 일이 많이 늦어지고 있지만, 가능하다면 다른 OSR과 연관성은 적지만 그 작품 자체로 충분히 완결성을 갖추고 재미도 있는 OSR 작품 몇 가지를 한국에 더 들여오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 조건에 해당하는 작품 중 제가 재미있게 본 거를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꼭 번역하겠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ㅎ):

1. Godbound: 이건 몇번이고 말했지만, 제가 OSR의 혁신으로 드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소개글 링크)

 

2. Wolf-Packs & Winter Snow: 빙하시대 말기 원시인들을 다룬 선사시대 RPG입니다. Lamentations of the Flame Prince에서 파생됐습니다. PC들은 전문가, 사냥꾼, 마법사, 네안데르탈인 등이 되어서 부족의 생존을 책임지고, 맹수와 혹독한 날씨에 맞서 싸우고, 동굴을 탐험합니다.

 

3. The Nightmares Underneath: 전성기 이슬람 문명풍의 왕국을 배경으로 한 RPG입니다. PC들은 현실로 침입해 오는 악몽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모험가들입니다. PC들이 탐험하는 던전은 악몽이 실체화된 공간입니다.

 

4. Silent Legions: 샌드박스 호러 RPG입니다. 이 RPG는 직접 러브크래프트풍 신화와 컬트, 괴물을 만드는 각종 틀을 제공합니다. 게다가 D100을 사용하는 호러 RPG의 자료를 차용하는 방법도 제공합니다. 여기에서 제공하는 샌드박스 자료가 워낙 훌륭한지라 반대로 호러 RPG를 사용할 때 자료집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p.s 그렇다면 “그럼 왜 우리가 굳이 OSR RPG를 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는데, 저는 “쉽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을 뿐더러, 위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OSR이 아닌 다른 작품과 비교해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RPG 크라우드 펀딩 진행하기.

RPG 펀딩 이야기가 트위터 타임라인에 조금씩 보이네요. 크라우드 펀딩을 직접 했고(링크), 앞으로도 할 사람으로서 몇 가지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글은 스스로 반성할 점을 짚어보는 글이기도 합니다.

제 시각에 국한된 이야기라 무의식적인 편견이나 오해가 섞일 수도 있으니 정 마음에 안 드시면 지적해 주셔도 좋습니다.

 

1.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이유: 최소자금 확보와 홍보

자금 문제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여러 사람이 지적한 대로 펀딩의 목적은 “수익”이 아니라 책을 찍을 수 있는 “최소자금 확보”라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목표액수보다도 더 큰 금액을 얻었다고요? 대부분은 추가 목표로 내건 약속들을 실현하기 위해 다 씁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알게 모르게 많은 돈이 나갑니다. 특히 처음 펀딩을 진행할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돈이 나갑니다. 제가 저번에 했던 ‘폴라리스’ 펀딩도 결과만 보자면 살짝 적자였습니다. 만약 크라우드 펀딩 없이 그대로 냈다면 집 기둥뿌리가 흔들렸을 겁니다.

그리고 크라우드 펀딩은 홍보 측면에서 무척 유리합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을 내놓지 않았더라면 후원자들이 해당 프로젝트를 SNS로 퍼뜨리거나, 언론매체에서 관심을 가지는(제 경우는 아니었지만) 일이 없겠지요.

영세한 한국 RPG 시장 규모로 볼 때, 곧바로 RPG책을 내놓는 건 여러모로 큰 모험입니다. 몇년 전까지 한국 유일의 RPG 출판사였던 초여명의 경우를 보시면 크라우드 펀딩을 도입하기 전과 후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크라우드 펀딩이 아니었다면 뱀파이어 : 더 마스커레이드 20주년 판, 누메네라 같은 대작들이 한국에 나오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2. 크라우드 펀딩의 시간 문제 : 독자적인 내용과 외부 인력의 비율.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자 자신.

 저번 크라우드 펀딩인 폴라리스는 결과적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됐습니다. 늦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얼마나 독자적인 계획이 들어가느냐, 외부 인력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 그리고 프로젝트 진행자 자신을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독자적인 내용 : 우선 번역서가 직접 만드는 규칙보다 만들기 훨씬 쉽다는 건 모두 짐작할 수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룰북 내용보다도 디자인과 삽화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룰북의 내용보다도 독자적인 삽화와 디자인을 만드는 데 더 큰 시간이 듭니다.

번역서는 원 책의 삽화와 레이아웃에 그대로 한글 텍스트를 옮기기만 하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하지만 삽화를 별도로 계약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폴라리스도 그랬습니다). 물론 초여명의 <던전 월드> 같은 경우는 번역 작품이면서 삽화와 레이아웃을 새로 만든 경우이지만, 초여명이 갖춘 노하우와 실력 덕분에 기한 내에 출시됐습니다.

폴라리스는 어땠을까요? 이 또한 번역서이면서 삽화/레이아웃을 새로 만든 책이지만, 아쉽게도 제 미숙함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물론 한국어판 폴라리스는 원판 이상으로 예쁘다고 자부하지만, 시간이 지체된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독자적인 내용을 준비하는 데 드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펀딩 전 최대한 준비를 해 놓는 게 정답이지만, 사전 준비에 비용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펀딩 전 삽화 및 디자인을 준비한다면 그만큼 삽화가와 디자이너에게 돈을 내야지요. 그러고도 펀딩에 실패한다면…? 그게 바로 ‘리스크’이지요. 사전 준비에서 드는 ‘리스크’를 얼마나 감수할지는 프로젝트 진행자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사전 준비를 많이 할수록 펀딩 후 제작 시간이 줄어드는 건 확실합니다. 최소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 놓고 펀딩을 시작하세요.

또한, 추가 목표를 주의 깊게 설정하세요. 추가 목표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계획이 있다면, 이 또한 시간을 지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는 정도로 그친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독자적인 자료집을 낸다면? 혹은 리플레이집을 낸다면? 그만큼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하세요.

극단적인 사례로, 크라우드 펀딩으로 발표한 <Technoir>는 제작자가 ‘창의성이 고갈된 탓에’ 추가목표로 설정한 자료집을 내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원망을 듣고 있습니다. 규칙 자체는 무척 훌륭한 RPG이지만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외부 인력의 비율 : 삽화가가 그림을 늦게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번역가가 번역한 텍스트를 줬는데 엉망이라면? 도와주기로 했던 사람이 나 몰라라 관둔다면?

이런 일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정말로요. 일해 주기로 한 사람이 돈을 받고 그대로 잠적해버려서(…) 큰 차질을 빚은 프로젝트도 본 적이 있지요.

프로젝트를 순조롭게 진행하려면 프로젝트에 참가한 사람들을 얼마나 통제하고 일정을 관리하느냐가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더욱 어렵고,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이 아닐수록 더욱 어렵습니다(아니, 어쩌면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어렵습니다. 그 사람이 지체되는 사정을 알면서 독촉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체된다면 가차 없이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만큼 돈도 더 들고 질이 괜찮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지요.

이런 변수를 최소화하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검증, 그리고 세밀한 계획(외부인력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이 필요합니다. 사전 준비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작업한 이전 성과를 보고 주위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세요. 물론 과감하게 “무명의 신인”을 기용할 수도 있지만, 옥이 될 것이냐, 돌이 될 것이냐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세밀한 계획이란 ‘이 사람한테 어떤 일을 시킬지 사전에 설명하고, 그대로 시행하는 일’ 입니다. 사전에 서로 계획을 세운 대로 시행하라고 독촉할 수 있으니까요. 외주인원은 시킨 일만 합니다. 그래서 계획은 세밀할수록 좋습니다. 폴라리스가 지연된 이유도 이 부분을 제가 잘 몰랐던 부분이 큽니다.

프로젝트 진행자 자신 : 하지만 무엇보다도 프로젝트 기간을 길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은 프로젝트 진행자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Exalted 3rd> 펀딩은 프로젝트 진행자가 큰 병에 걸려서 시간이 크게 지체됐습니다. 후원자들은 병에 걸린 사람을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가슴앓이만 했고요.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변수는 매우 많습니다. 본업이(프로젝트가 본업이 아닌 한) 바빠져서 이쪽에 투자할 시간이 적어진다면? 연인과 싸워서 일할 정신 상태가 아니라면? “훌륭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지금까지 만든 일을 갈아엎을 정도로 가치가 있다고 결정한다면?

프로젝트 진행자 본인이 프로젝트 연기에 영향을 주는 사례는 그 종류가 너무 많아 무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폴라리스를 할 때 개인적인 문제를 겪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굳건하게 마음을 먹으세요. 흔들리지 마세요. 여러분이 어떤 일을 겪어서 프로젝트를 늦춘다고 해서 후원자들이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리 중간에 훌륭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더라도, 프로젝트를 지체할 변수가 된다면 과감히 포기하세요.

일단 제가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입니다. 앞으로 크라우드 펀딩에 도전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이런 요소를 고려해 보세요.

막힌다면 다른 길을 찾아라

저번 일일 플레이 뒤풀이 때에 다른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와 비슷한 고충을 느끼고 계신 점이 놀라웠던 기억이 납니다. 두 분 모두 WoD, 겁스 등의 캐릭터 시트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고 계신 점이 저와 비슷했지요. 시트를 짤 수는 있는데 효과적으로 만들기는 어렵다는 고충을 함께 나누기도 했고요.

그와 관련하여 다른 두 분은 아직 진행 (마스터링)을 맡으신 적은 없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행자는 누구보다 규칙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므로 규칙 운용과 시트 짜기에 자신이 없다면 당연히 맡기 어려울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구르고 깨지다 보면 결국에는 해낼 수 있겠지만, 처음에는 심리적 부담감과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로 겁스나 D&D처럼 제가 잘 모르는 규칙이었다면 아마 아직도 마스터링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몇 번 플레이를 한 겁스도 시트를 짜려고 하면 멀미부터 나니까요. 분명히 읽어본 규칙인데도 옆에서 얘기하고 있으면 외계어 같고요. 정도는 덜하겠지만 저와 얘기하신 분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느끼신 것 같았습니다. 자신에게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규칙을 플레이하는 것 이상으로 마스터링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저는 RPG를 시작한지 약 6개월 후에 진행질(?)을 시작했으며, 그 이후도 대부분 참가보다는 진행을 맡았습니다. 1년 반짜리 캠페인을 진행해서 종결을 보기도 했고, 수많은 단편과 중편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저에게 맞는 규칙으로 진행을 하고, 그런 규칙이 안 보이면 찾아나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규칙을 찾아보라는 바바 히데카즈씨의 글과 각종 RPG를 소개한 존 킴씨의 사이트가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진행을 해본 규칙이 주인님과 함께 (My Life with Master)였지요. 인물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 간단한 규칙, 그리고 서사와 규칙의 밀접한 관계가 서사와 참가자의 서사 제어를 중시하고 복잡한 규칙을 싫어하는 제 취향에 잘 맞아서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 진행자로서 사용한 규칙도 이와 특징이 비슷한 인디 RPG, 내지는 이야기를 규칙으로 다루는 이야기 놀이 (story game)였죠.
결국 진행을 잡기 어렵다면, 혹은 RPG에 흥미가 떨어진다면 답은 ‘난 진행을 못한다’나 ‘RPG는 재미없다’가 아니라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한다’일 확률이 높습니다. RPG는 워낙 다양성이 풍부한 놀이인지라 특정 형태의 RPG에 재미를 못 느낀다면, 그러면서도 인물성 표현과 사회적 창작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다면 아마도 다른 형태의 RPG가 끌릴 것입니다.
RPG에 길은 무수히 많습니다. 어렵다면, 재미를 못 붙인다면, 혹은 권태를 느낀다면 다른 길로 가보면 됩니다. 그러다가 그것도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되고요. RPG에서 해볼 수 있는 시도에 제한은 없으며, 그것이 RPG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RPG의 비효율성?

요즘에는 RPG는 꽤나 노력이 드는 취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시작만 하려고 해도 최소한 규칙을 익히고 인물을 만들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실제로 플레이에 나가고 참가 혹은 진행 (특히 진행)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말이지요. 물론 잘 되면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많지만, 좋은 결과를 내려면 추가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노력도 듭니다.

RPG가 소수 취미인 것도 이전에 종종 지적이 있었듯 이러한 비용 투자가 작용하겠지요. 그런 시간과 노력 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결과물의 효용을 높게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니까요.

느끼는 결과물의 효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RPG와 다른 놀이의 상대적 효율성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전투의 게임적 재미가 가장 크다면 그쪽은 대개 컴퓨터 (콘솔 포함) 게임이 더 효율적입니다. 이것저것 계산할 것 없이 컴퓨터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고, 점점 휘황해지는 그래픽과 음악도 있으니까요.

단순히 친구끼리 같이 웃고 떠드는 재미가 가장 크다면 이 목적에도 훨씬 효율적인 활동은 많이 있습니다. 수다를 떨고 논다든지,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한다든지. 역시 노력은 덜 들면서 사교적 즐거움이라는 효용은 제공하지요.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은 사교의 즐거움과 함께 머리를 쓰는 재미도 제공하고요.

잘 만든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RPG에서 느끼는 최대의 재미라고 한다면 이 분야에서도 RPG는 반드시 가장 효율적인 활동은 아닙니다. 일단 비용 면에서는 위에 얘기한 다양한 노력이 들어가고, 또 효용 면에서도 RPG인은 대개 전문 작가가 아닌 만큼 책, 컴퓨터 게임, 영화만큼 개연성이 있고 이야기가 재미있지는 않은 일이 많습니다.

개인적 창의성을 발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RPG에서 느끼는 최고의 재미라고 한다면 소설을 쓰는 것이 RPG보다 효율적이겠지요. 규칙을 익히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에 플레이를 하는 노력이 들지 않으니까요.

결국 위의 재미 중 어느 한 가지, 혹은 한두 가지만에 효용을 느끼는 사람은 RPG라는 활동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고 RPG에서 빠져나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RPG의 비용이 효용에 비해 너무 크다고 느끼지 않고 RPG를 하는 인구는 어떤 효용을 찾는 것일까요? 즉, RPG라는 활동이 다른 활동에 비해 우위가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일까요?

그것은 아무래도 위에서 열거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인물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면서 게임적 재미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노력이나 역량에 따라서는 상당히 수준이 있는 결과물도 낼 수 있을 테고요.

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가 따로 없기에 RPG는 그 외견적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효용을 모두 즐기려면 다른 놀이에 비해 노력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작자가 이미 만들어놓은 시나리오나 그래픽은 컴퓨터 게임을 편하게 하지만 그만큼 제약 또한 되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RPG는 소수 취미라는 생각도 듭니다. RPG가 제공할 수 있는 재미 중 어느 한두 가지만 즐기려면 다른 활동을 즐기는 게 더 효율적인 만큼,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재미를 한꺼번에 즐기려는 소수뿐이겠지요.

그래서 RPG는 그 속성상 노력이 안 들기도, 그리고 그다지 대중적인 취미가 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장 종합적인 놀이라는 바로 그 강점 때문에.

놀이문화와 남녀, 불편한 소재에 대한 생각

주의: 말 그대로 ‘불편한 소재’를 다루는 글이므로 폭력, 외설, 성적 폭력 등을 언급합니다. 그런 내용이 많이 불편하신 분들은 읽지 말아주시길.

미국 쪽 RPG 게시판 돌아다니다 보면 홍일점 여자 참가자에게는 상담 한 마디 없이 그 참가자의 여자 PC가 강간을 당했다… 같은 호러스러운 이야기를 심심찮게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일행의 다른 PC들에게 윤간을 당했다는 얘기도 있지요. 플레이 내에 있는 일은 물론 진짜가 아니지만, 누군가의 비유마따나 자기 PC를 죽인다고 선언하는 참가자가 총을 차고 있다고 상상하면 대충 그런 상황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도 그렇게 심한 상황은 없었습니다만 (약간 비슷한 일은 한두 번 있었지만), 플레이 내에, 그리고 플레이 주변부에서의 불편한 소재는 ‘저런 갈아마실 놈들!’ 소리가 절로 나오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어도 생각해볼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반드시 남녀만의 문제도 아니고 결국은 개개인의 감수성 문제이기도 합니다. 다만, 남자가 다수인 취미에 있다 보니까 남녀차 쪽으로 좀 더 생각할 기회가 있었던 것이겠죠.

플레이 중, 혹은 플레이 후 잡담을 하다 보면 제게는 불편한 얘기가 꽤 자연스럽게 나오고는 합니다. 저도 음담패설에는 일가견이 있는지라 왠만한 얘기에는 기죽는 일이 없는데, 강간이나 유아애 쪽으로 농담이 나오기 시작하면 곤혹스럽더군요. 재밌게 하고 있는 얘기를 저 하나 때문에 끊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계속 듣고 있기는 좀 그렇고. 보통 생각하는 동안에 말이 지나가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종종 남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RPG가 남자 다수 취미인 건 그런 문화적 차이도 한 원인이 아닌가 합니다. 여자들이 강공이니 수니 하고 야오이 얘기를 하면 남자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 있듯, 남자들이 세 살짜리 여자애를 어떻게 하네 조교가 어떻네 사육이 어떻네 같은 이야기를 하면 여자들도 여긴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겠죠.

결국 뭐, 남자는 짐승이다 같은 식상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남자가 짐승이라면 여자도 짐승이겠죠. (암수가 다를 뿐 (?)) 성적 대상화야 어느 한쪽 성만의 이야기도 아니고요. 다만, 이곳에서 내가 ‘주체’인가 ‘객체’인가에 따라 여기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자리인가 하는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 즉 남자 혹은 여자가 환영받는 분위기인지 하는 차이일 뿐입니다. 별로 환영받는 기분이 아니라면 좀 더 자신이 환영받을 자리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야 이심전심이죠.

물론 위에도 얘기했지만 이것은 비단 남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떤 여자 혹은 남자에게는 아주 재밌는 얘기도 다른 여자 혹은 남자에게는 찝찝한 소재일 수 있습니다. 성별과 무관한 경험이나 개인적 사정으로 객관적으로는 별로 불편하지 않은 소재가 불편해질 수도 있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뱀파이어 LARP에서 자기 사이어가 죽는 내용에 충격먹은 일화가 그런 예겠죠.

그래서 자신에게 불편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에게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타인에게 지나친 노력이나 희생을 요구한다면 (야오이 없이는 플레이 내용이 확 달라진다든지) 스스로 떠나는 것이 낫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도 있기 편한 자리가 되도록, 그리고 남들도 어떤 이야기는 피하는 게 좋고 어떤 이야기는 자유롭게 해도 다들 편한지 알 수 있게 개인적 경계와 감수성의 한계를 공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게 알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보통 남에게 싫은 이야기를 하는 건 거부감이 들게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잠시 남녀차로 돌아가자면, 여자들은 자기 의견이나 호오를 확실하게 밝히는 것이 문화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대가 세느니, 잘난 척 하느니 하는 소리를 들으니까요. (제 생각에는 여자들이 확실한 의사표시를 못하는 게 남녀 간 오해에 약 50%의 원인 제공을 합니다.) 게다가 남자란 존재는 종종 작살나게 눈치가 없어서(..) 아주 대놓고 얘기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 일도 잦습니다. (이것이 나머지 50%!)


자신에게 무엇이 불편한지 얘기하기 어려운 만큼 그냥 말 안하고 참거나 슬그머니 떠나버리는 식의 회피 행동이 더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감정이란 참으면 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사실 감정이란 증기와 같아서 덮어놓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은근히 새어나오거나, 아니면 참고 참았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하게 마련이지요. 그런 일이 없으려면 자신을 불편하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만든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런 소재는 피해달라고 공지를 확실하게 하는 것은 역으로 타인의 마음도 더 편하게 해줄 수 있습니다. 무엇을 피해야 하고 무엇은 표현해도 좋을지 혼자 짐작하는 대신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런 만큼 피하지 않아도 되는 소재에 대해서는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러다가 혹시 지나쳐서 남의 심적 경계를 침범하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대신 저쪽에서 그럴 때는 확실히 알려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있다면 더욱 마음은 편해집니다. 비유하자면 어떤 행동이 범죄인지 명문의 법으로 정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회의 필수조건인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또한, 자기 마음이 불편하다고 알리는 것이 꼭 싫은 소리일 필요도 없습니다. 예의바르게 자기 입장을 알리고, 타인에게 악의가 있었다고 확신하고 정죄하는 태도를 취하는 대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로 접근할 수 있지요. (이건 사실 모든 어려운 대화에 적용할 수 있는 얘기기도 합니다.) 악의가 없는 건 알지만 그 얘기 때문에 내 기분은 이러한데, 그런 소재는 좀 피해줬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의바르게 얘기해도 기분나빠한다면 역시 그 자리는 미련없이 떠나는 게 낫겠죠.

정리하자면 RPG처럼 사람이 같이 모인 자리에서는 사람이 다 다른 만큼 본의아니게 남의 감수성을 침해할 수 있습니다. 남자가 다수인 취미인지라 그게 남녀차로 가면 더욱 심해지기도 하고요.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마음이 불편한 얘기가 플레이 중이든 플레이 전후이든 나오면 그 사실을 정중하게 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이 모두 마음이 편해지도록. RPG는 다같이 하는 놀이이니까요.

게리 가이각스의 세계

스티브 잭슨씨가 게리 가이각스에 대한 최고의 추모문이라고 했다는 글을 승한님의 제보로 번역해 봅니다. 원문은 Geek Love (영문, 회원 등록 요구). 글에서 하는 주장이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미롭기는 하더군요.

기크 (geek)란 대체로 과학과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SF와 판타지, 만화책 등에 열성적인, 내성적이고 별로 인기 없는 (보통은) 남자… 정도의 의미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오타쿠 정도? 오타쿠에 똑똑하다는 뜻은 보통 안 들어가는 것 같지만요.

어쨌든 높은 학업 성취도와 장르 문학, 컴퓨터 게임과 애니 등 흔히 기크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우리는 미국과 좀 달라서 원문에 비해 기크란 말의 사용은 줄였습니다.

게리 가이각스가 지난 주에 사망했는데도 우주는 무너지지 않았다. 창조주인 그가 갔는데도 멀쩡하다니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빅 뱅으로 생긴 우주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거야 비행 스파게티 괴물의 소행인 건 누구나 아니까. 하지만 가이각스씨는 던젼스 & 드래곤스 게임을 공동 제작한 장본인이며, 역할놀이와 정다면체 주사위의 기반 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회적, 지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D&D는 워게임과 하워드의 코난, 판타지 작가 잭 밴스의 마법 주문 한둘, 불핀치의 신화론 살짝, 성경 약간과 톨킨을 잔뜩 섞은 놀라운 합성물이었다.

가이각스씨의 진정한 천재성은 보드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인물과 동화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주사위를 굴리면 사용자는 힘이나 지능 같은 개인적 능력을 갖춘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한 ‘질서 선’이나 ‘혼돈 악’ 등 도덕적 성향도 고를 수 있었고, 칼도 살 수 있었고, 용과 싸울 수도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필자도 D&D를 좀 했었다. 중학교 때, 그리고 나중에도. 질서 선 성향의 팔라딘이었고, 불타는 검을 들고 다녔다. 그걸 한다고 여자에게, 아니 누구에게도 인기인이 되지는 않았다. 기하학을 좋아하는 점이나 스타워즈 대사를 다 외우고 다닌 것도 인기에는 도움이 안 됐고.

그러나 그러한 류의 능력 때문에 필자는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재산이나 권력, 특별한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주류에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아는 허구와 기술에 대한 지식은 이제 누구든 알아야 할 것이 되었으니까.

우리는 게리 가이각스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은 마법사와 마법 검을 다룬 판타지 책이다. 가장 많이 보는 영화는 수퍼히어로 만화책이 나오는 것. 가장 인기있는 TV 프로는 정교한 RPG처럼 복잡하고 복선이 가득한 SF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친 수학적 게임과 연관이 깊다. 그리고 여러분 시청자도 여기 끼려면 아이폰에 오디오 파일을 내려받고 고래의 음성 주파를 이용해 거꾸로 처리한 후 그 결과를 야후 그룹에 방송할 수 있을 만한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다.

책이 수백만 부씩 팔리고 학부모는 D&D와 사탄 숭배의 연관성을 걱정하던 전성기에도 가이각스씨의 창조물은 주류는 아니었다. 애들이 또래와 어울리는 대신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하는 놀이라는 인상이 강했으니까. (물론 하려면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했으니까–모험가 둘과 던젼 마스터 하나–사회적인 놀이이긴 했다. 한심할지는 몰라도 사회적이었다.) 그러나 D&D는 머리 좋고 내성적인 많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기크 (geek)는 규칙성을 좋아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정상인은 그런 규칙에서 늘 벗어나서 행동한다. 사람이란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렵다. D&D 캐릭터 시트 같은 것을 만들어보기 전까지는. 가상의 인물을 주사위, 연필과 종이로 제조한 수로 분석해내면 이것을 실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에게 캐릭터 시트와 가상 세계에서 하는 모험을 위한 규칙은 사람에 대한 안내서와 같았다. 삶은 거대하고 끝나지 않는 RPG 캠페인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보지 말아주길. 필자가 팰러딘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매트릭스 속에 사는 게 아닌 것도 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언제나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는 깨달음은 세계에 규칙과 질서를 부여했다.

우리들은 얼굴 표정이나 무심한 한 마디의 숨은 의미를 직관으로 알아내는 건 잘 못하지만, 행동의 규칙성을 알아내면 인간관계란 분석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주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처리해낼 수 있다. 신체 언어와 어색한 침묵을 관찰해서 우리는 터미네이터 TV 프로에 나오는 시간 여행을 원형 양자 중력(주:Loop quantum gravity의 번역. 우리말로 loop을 이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제 맘대로..)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에 주변 사람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다. 어디서 들은 얘기지 경험담은 아니다. 정말로.

가이각스씨의 게임은 기크들이 햇빛에 눈을 깜박이며 던젼에서 나와 전자기기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D&D는 초창기의 컴퓨터 게임, 마법과 검을 사용하는 던젼 탐험물인 ‘어드벤쳐’의 모태가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D&D와 어드벤쳐를 기반으로 첫 다중 사용자 온라인 판타지 세계가 탄생했다. 당시에는 MUD (multi-user dungeon)이라고 한 이 구조물은 주로 MIT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가이각스씨가 소개한 가상 정체성의 제작을 요구한 점은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는 수백만이 게리 가이각스의 노예가 되었다. 에버퀘스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컨드 라이프 등을 통해. (이들 서버의 대규모 다중 접속은 오늘날 구글 등의 원동력인 거대한 서버 군집의 개발을 촉진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게임 문화 얘기다. 1974년 D&D가 생겼을 때보다는 더 폭이 넓어졌고 산업으로서는 훨씬 더 수익성이 있지만–1년에 약 4백억 달러–여전히 좀 샌님 같긴 하지. 하지만 드래곤 잡는 부분을 빼면 훨씬 주류 문화에 가까운 것이 보인다. 가상 아바타의 거대한 우주, 페이스북 (Facebook)이.

페이스북과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실제 사용자가 기반이기는 하지만 별개의 개체인 건 변함없다. 사용자의 인물은 다른 인물과 관계를 쌓아간다. D&D와 마찬가지로 경쟁적인 게임은 아니다. 이길 방법은 없다. 그저 플레이할 뿐.

가이각스씨의 1970년대 던젼에서 시작한 진화는 이보다도 훨씬 폭이 넓다. 모든 이메일 로그인, 모든 채팅 아이디, 플리커 (Flickr)의 모든 공개 사진집, 모든 블로그 댓글 가명은 새롭게 만든 정체성, 실생활 속에 노는 가상의 인물이다.

게리 가이각스에게 우리는 작별을 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우리의 오늘을 만들었기에. 내가 전술적 선택을 할 때마다 (아내에게 이번 여름에는 ‘다크 나이트’ 대신 ‘아이언 맨’을 보자고 제안할 때처럼) 난 경험치를 세고, 민첩성이 충분하기를 바라며 주사위를 굴린다. 그때마다 가이각스씨는 내 곁에 있다. 지금보다 문명화된 시대의 세련된 무기였던 단순한 게임을 든 채, 푸르게 빛나는 신비한 환영이 되어.

참고로 방금 그건 스타워즈 얘기였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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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그런 의미에서 음성 편집 프로그램으로 자르고 페이드 아웃 효과를 적용한 스타워즈 엔딩곡으로 끝내도록 하죠(…))

RPG 산업과 RPG 취미

사업으로서 RPG는 별로 판매량이나 수익성이 많은 편은 아닙니다.(주:TRPG 혹은 펜&페이퍼 RPG를 가리키는 것이며, CRPG나 MMORPG 얘기는 아닙니다) 원체 소수 취미인 데다가 원한다면 돈을 별로 안 들이고도 즐길 수 있는지라,(주:’어둠의 경로’ 따위 얘기가 아니라 좋은 무료 규칙도 많고, 규칙책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오랫동안 플레이할 수 있죠.) 돈이 많이 되기는 구조적으로 좀 어렵죠. 소비자와 공급자층의 분리가 적은 것도 다르게 말하면 좋아서 하는 일이지 돈이 되어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전세계 최대 규모의 RPG 회사인 위저드 오브 더 코스트 (Wizards of the Coast)마저도 수입의 규모는 모회사인 완구 회사 하스브로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겁스(GURPS)로 잘 알려진 SJ사나 7번째 바다 (7th Sea), 오륜전설 (Legend of the Five Rings) 등을 출간한 AEG도 수익이 많이 나는 쪽은 RPG 라인이 아닌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이라고 들었습니다.(주:정확한 수치를 조사하지는 못했으므로 거의 풍문에 가까운 얘기긴 합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지적 주시기 바랍니다.)

RPG 산업의 이러한 현실 때문에 RPG의 미래는 어둡다는 얘기가 습관적으로 나옵니다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제 생각과 경험상 산업으로서의 RPG와 취미로서의 RPG는 별개이며, 전자의 전망이 어둡다고 해서 후자의 전망까지 어둡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위에서 말했듯 RPG는 별로 돈이 들지 않는 놀이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RPG 산업에는 돈이 안 들어가고 있어도 RPG 취미는 활발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만 해도 지금 1년 가까이 하고 있는 캠페인에서 실제 RPG 상품에 들인 돈은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규칙책에 들어간 2만원이 전부인 등, 적어도 제 경험상 RPG라는 취미의 활기와 RPG 산업의 건강은 큰 관계가 없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상품이 꾸준하게 나오는 원동력으로 RPG 산업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해도 독자적 소규모 출판이 대형 출판에 대한 대안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PDF 판매, 주문이 들어올 때만 인쇄하는 POD (Print on Demand) 책 등 신기술을 이용한 저가 출판 방식의 활용이 늘어나는 추세니까요.

이러한 추세는 한편으로는 수익이 낮아도 비용을 낮추고 규모를 줄이면서 RPG의 상업적 창작은 존속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주업이 아닌 부업 내지는 취미로서 RPG 창작의 미래를 시사해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지금도 RPG에 전업으로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기도 하고요.

결국 RPG 취미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RPG가 고수입 산업이 되는 것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후자는 별로 현실적이지 않기도 하고요. 그보다는 소규모 출판이나 비상업적 창작 활성화 등 RPG 취미에 활기를 불어넣는 방안을 생각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합니다. 큰 돈이 되는 산업의 뒷받침이 없어도 이 취미는 얼마든지 존속할 수 있고, 또 재밌을 수 있으니까요.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RPG를 하다 보면 실제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규칙도, 시나리오도, 인물 표현도 아니고 바로 실제 플레이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사회적인 놀이라는 RPG의 본질적 성격은 재미의 근원이지만, 의사소통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행동은 RPG의 재미를 망치기 쉽죠. 어떤 행동 혹은 성격 유형이 곤란한지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경험에 기반을 두지만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보고 찔리는 분은 개인적으로 문의하십..),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등 어떤 한 사람을 완전히 한 유형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문제 행동 유형은 제가 느끼기에 곤란한 순서로 나열해 보았고, 마지막은 나머지로 설명할 수 없는 포괄적인 유형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의 바른 암살자

아마 수동적 공격성이라는 성격 유형과 꽤 잘 들어맞을 것입니다. 예의 바른 암살자 유형의 특징은 우선 말 그대로 예의 바르고 조용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2번부터 나올 유형들과는 달리 일찍 진단하고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가 바르고 얌전하다 보니까 시비가 붙어서 파토나는 일도 좀처럼 없죠. 그래서 제가 곤란하게 꼽는 유형 1위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예의 바른 암살자의 문제는 바로 이 조용하고 얌전하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조용한 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반대와 비판, 거절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조용하고 얌전해진 사람들이거든요. 때문에 예의 바른 암살자는 의견을 교환하는 데 상당히 인색합니다. 의견을 내라고 해도 잘 내지 않고 (님들의 침묵 참조), 상대가 뭔가 제안하면 마지못해 대충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예의 바른 암살자는 6번 투명인간과는 달리 플레이 내용에 아예 관심을 끄거나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정당한 토의 과정에서 남과 부딪히고 제안이 거절당하는 게 싫을 뿐이죠. 같은 이유로 다른 참여자의 제안에도 별 저항 없이 동의하지만, 그건 진정한 합의가 아니라 무원칙한 회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공개적인 토의가 아닌 다른 형태로 표출할 뿐.

예의 바른 암살자는 모두가 의견을 교환하는 토의 자리가 아닌, 남이 반대하기 곤란한 순간에 기습 작전을 펼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 도중에 제안이 아닌 단정의 형태로 뭔가를 서술해버린다든가, 원하는 설정을 토론 없이 최종 결정의 형태로 끼워넣으려고 한다든가. 제안해서 거절당하기는 두렵고 그렇다고 플레이상 욕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결국 토론을 차단하는 기습적인 형태로 ‘의견’이 아닌 ‘결정’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이 예의 바른 암살자의 특징입니다. 자기 의견을 ‘나의 의견’이 아닌 ‘당연히 그래야 할 것’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것도 의견 제시를 두려워하는 예의 바른 암살자에게 볼 수 있는 행동이죠.

예의 바른 암살자 유형은 허심탄회한 의사소통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RPG의 재미를 저해하는 유형입니다. 게다가 이런 행동은 딱히 지적할 잘못은 없으면서도 (그것이야말로 예의 바른 암살자가 피하려는 바이니) 짜증과 적개심을 은근히 쌓이게 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위에 얘기한 대로 예의 바른 암살자는 기본적으로 대립을 회피하는 얌전한 성향이라 자칫하면 감정적 학대를 유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짜증이 나니까 주변에서 화풀이를 하면 예의 바른 암살자는 그런 취급에 대해 항의하지는 못하고 더욱 움츠러드는 거죠.

이런 수동적 공격성은 유달리 심한 사람도 있지만 누구든지 가끔은 보일 수 있으며, 다른 문제 행동을 보강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추가(주:동환님과 얘기한 부분입니다.): 물론 반드시 플레이 외적 토의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참여자 사이 역할 분담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역할 내에 있는 부분을 뜻대로 하는 것을 기습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보다는 일단 다른 참여자의 영역, 혹은 공동 영역이라고 인정한 부분인데 제안이나 의논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강요, 그것도 은근슬쩍 강요하려는 행동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2. 제왕 (황소고집)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해야 하는 게 이 행동 유형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의사소통과 협조를 아예 거부해버리죠. 때로는 예의 바른 암살자의 수법을 일부 사용해 의논을 슬슬 피하기도 하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벽을 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아래 4번 황야의 레인저와 마찬가지로 남하고 놀기 싫다는 뜻이니까 소원대로 해주면 됩니다. (..)

추가(주:역시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 문제 유형이란 뭐든지 정도의 문제라서, 자기 목소리가 확실하고 주장이 분명한 분은 오히려 환영입니다. 바로 자기 뜻을 꺾어버리면 밀고 당기는 재미가 없죠. 문제는 자기 의견을 절대로 꺾지 않거나 의견이 꺾이면 삐져서 뒤끝이 안 좋은 분입니다.

3. 프리마돈나 (질투쟁이)

이 유형은 뭐든지 자기가 제일이어야 합니다. 인물 능력치든 주목도든 뭐든 자신이 우선이어야 하고 다른 참여자는 그런 자신을 우러러봐야 합니다. GMPC를 굴리는 진행자일 수도 있고, 진행자를 끼고 일행 최강 PC를 만든 참가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론은 ‘너 혼자 놀아’인 겁니다.

추가: 이것 역시 억지스럽고 짜증나는 정도가 아니면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자기 인물이 돋보이는 걸 원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고, 서로 멋져 보이려고 하는 플레이야말로 활발하고 즐겁죠. 문제는 그 기준이 ‘내가 멋진 것’이 아니라 ‘남보다 멋진 것’일 때, 더 큰 문제는 ‘남을 깎아내리기’가 일상이 될 때입니다.

4. 황야의 레인저 (천상천하 유아독존)

제 경험으로는 참가자에게만 나타나는 유형인데, 이 유형은 다른 참가자하고 협력하는 데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1:1 플레이가 아닌데도 1:1 플레이를 하고 싶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주인공은 비사회적인 성격이라서 다른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든가, 습관적으로 일행에서 이탈하면서 진행자가 자기만 따라오기 기대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이죠.

3번 프리마돈나 기질도 보인다면 혼자 잘나고 싶어서 하는 짓이고 (반사회적이고 고독한 주인공을 하고 싶은 ‘개폼’이 많죠), 6번 투명인간 기질이라면 혼자 떨어져서 그냥 구경만 하고 싶어서 그러기도 합니다. 어쨌든 혼자 놀고 싶으면 혼자 놀게 해주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추가(주:역시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 역시 가끔씩 주인공이 혼자 돋보이거나 일행하고 떨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사회적인 성격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되는 건 일관되게 일행하고 따로 놀려고 할 때,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인물의 성격을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아니라 주인공을 극적으로도 분리시키는 핑계로 삼을 때입니다. 즉, ‘얘는 반사회적인 놈이라 일행하고 아예 안 놀아요’하고 ‘얘는 반사회적인 놈이라 일행이랑 갈등이 생겨요’의 차이인 거죠. 특히 반사회적인 인물은 일행하고 함께 다닐 이유가 확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5. 세기의 석학(주:승한님이 해주신 얘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도움 주신 승한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식으로 남을 누르려고 드는 유형입니다. 지식을 논의의 근거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지식으로 논의를 차단하려고 드니까 문제가 되는 유형이죠. 토의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려는 예의 바른 암살자나 제왕일 수도 있고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프리마돈나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가능성이라면 특정 배경 세계나 규칙에 집착한 나머지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그게 모두에게 더 재밌다고 해도) 견딜 수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조하지만 아는 게 많고 그 지식을 활용한다고 해서 문제 유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판정의 공평성이나 일관성에 문제가 보여서 지적할 수도 있고 (이것도 절대 자기 뜻을 안 굽히면 제왕 쪽으로 가지만요), 진행에 고려 사항으로 배경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시할 수도 있죠. 다만 ‘이러이러한 게 있으니까 저러저러한 방향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이러이러한 게 있으니까 꼭 저러저러하게 해야 해!’의 차이 정도입니다.

이는 반드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실제로 세기의 석학 중에서는 초보자에게 도움을 많이 주거나 판정이 애매할 때 중재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으므로 이 유형의 곤란도는 대체로 낮습니다. 대신 제왕 등 다른 유형 쪽으로 기울면 비약적으로 곤란해지죠.

6. 투명인간(주:동환님에게 들은 내용이 일부 들어갔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사람입니다. 특히 ORPG를 할 때는 이 사람이 장을 보러 갔나, 딴 짓 하나, 자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기도 하죠. (실제로 컴퓨터 앞에서 조는 일시 투명인간 증세도 있고..(…)) 때로는 정말로 플레이 내용에 관심이 없이 딴 짓 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행자는 못하지만,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는 참가자로서는 그냥 무난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로 조용한 것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테고, 정말로 구경이 재밌으면 그냥 내버려둬도 상관없을 유형이죠. 참가자 전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플레이에서 지나치게 조용하다면 참가자 대신 관객으로 은퇴(?)시키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7.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RPG는 사회적인 놀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긋날 길은 수도 없이 많으므로 한정된 유형에 그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유형은 다 집어치우고라도 정말 같이 지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극도로 무책임하다든가, 자제를 못 한다든가, 폭력적이라든가, 아니면 그냥 뭔가 파장이 안 맞는다든가. 이런 사람은 보통 나뿐만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도 다 싫어하는데 참는 일이 많죠.

문제가 누구에게 있든 RPG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이며, 소중한 시간이 들어가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재미가 없고 감정만 상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의지가 없다면 내가 나오든, 그쪽이 나오든 끝내는 게 백 배 낫습니다.

이상과 같이 RPG에서 제가 본 문제 행동 유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노우맨, 언어의 홍수 등 RPG를 통해 만난 분들에게 본 유형도 있지만, RPG하고 직접 상관은 없으므로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RPG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의 진단과 해결에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취미 속의 취향: 우리는 어째서 민감한가

어째 쓰고 나니 묘하게 야릇한 제목이 돼버렸습니다만..(퍽)

별건 아니고, 그냥 RPG인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규칙책이나 스타일 (특히 규칙책)에 대한 비판에 유난히 민감한 이유를 다루는 게시판 글을 읽고 그럴듯하다 싶었습니다.

(불행히도 이 글은 당시에는 그냥 읽고 지나간 거라 지금 와선 찾기가 막막하군요..;; Rpg.net 쪽 글이었던 것 같은데, 누가 쓴 글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분에게는 출처를 못 쓰는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을..;ㅁ;)

그분의 설명에 의하면, 즐기는 사람이 적은 취미일수록 (예를 들어 RPG) 누군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예를 들어 규칙)을 싫어하면, 듣는 사람은 그 취미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읽고 보니 말이 된다 싶었습니다. 더이상 자신의 취향은 설 데가 없어진다는 무의식적 불안감… 단순 계산으로 도식화할 수도 있는 게, 즐기는 사람이 100만명인 취미라면 그중 100명이 자기 취향인 걸 싫어해도 0.01%일 뿐이지만, 즐기는 사람이 100명인 취미라면 그중 한명만 자기 취향과 달라도 1%가 될테니까요.

그런데 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느낌은 그야말로 착각이 아닌가 합니다. 일단 팀이 있고 그 팀과 정기적으로 RPG를 즐기고 있다면, 어딘가의 RPG인이 나와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건 아닐테니까요.

또 취향 너머의 논의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규칙책이 ‘좋으냐 싫으냐’를 따진다면 ‘난 좋아.’ ‘난 싫어.’ ‘난 관심없어.’ ..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더이상 논의라는 게 되지 않으니 싸움이 나기는 안성맞춤. 반면 어떤 규칙책이 ‘그 규칙책의 지향점에 부합하느냐’가 논점이라면 훨씬 더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하겠죠.

뭐, 결국엔… 주저리주저리 길어졌지만, 자신의 취향에 대해 방어적이 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D&D에 관심이 없어도, 당신이 인디 RPG에 관심이 없어도, 저기 저 사람이 겁스에 관심이 없어도 우리 모두는 이 취미 속 어딘가에 설 자리가 있으니까요. (사실 인디 RPG 하는 인간이 설 자리 있으면 나머지 분들은 문제없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