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배경세계에 대한 생각

RPG에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 관련 글에 대한 세션 토론에서 나온 MMORPG 얘기를 보고 떠올랐는데, 팀 내에서 혹은 여러 팀이 하나의 배경세계를 공유해서 함께 변화시키고 살을 붙여가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시간을 내기보다는 1:1이라든지 그때그때 모인 사람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것이 편한 법이고, 플레이마다 변화시키고 심화한 설정을 다음 플레이에서 또 사용할 수 있다면 역동적인 느낌의 세계와 사건을 겪으면서도 시간대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A, B, C, D, E라는 5명의 참여자가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전원이 맞는 시간이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A-B가 모였을 때든 A-B-C가 모였을 때든 시간 되는 사람끼리 플레이하고 플레이한 내용을 도시 설정에 반영한다면 이후에 D와 E라든지, B와 D라든지 누구든 같은 배경을 플레이할 때 지난번 플레이와는 또 달라진 도시를 배경으로 플레이하겠죠. 마찬가지로 거기서부터 또 플레이는 도시를 변화시킬 테고요.

물론 이건 그다지 새로운 생각은 아닙니다. 특히 공통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플레이는 온라인상에 상당히 흔하고, 저도 그런 소설 사이트에서 아사히라군의 소개로 RPG로 옮겨오기도 했었죠. 역시 다수의 사용자가 같은 배경에서 노는 MMORPG도 있고, RPG계에서도 이전에 동환님의 Timeline of Fairytales도 있었고, 당장 저만 해도 정기 캠페인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와 외전격 비정기 플레이인 스타워즈: 콘체르토가 같은 배경을 공유했었고요.

다만, 온라인 소설이든 MMORPG든 RPG계의 예이든 한계는 있었다고 봅니다. 소설 쪽은 제가 참여해본 곳에서는 정말로 역동적인 세계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어느 한 사람이 배경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따르고 그런 것을 규율할 규칙도 없다 보니 각 소설은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로망 속에 따로 논다는 인상이었습니다.  MMORPG 역시 공존하며 놀 수 있었지만 역시 사용자가 하는 행동이 세계에 의미있는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고, 그 속에 정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왠만한 시간이나 노력으로는 어렵겠더군요.

RPG계 쪽에서 제가 본 공유 세계관의 어려움이라면 역시 진행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서술 범위가 배경 세계이다 보니 그런 세계의 변화를 결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몫이 되었고, ToF도 두 스타워즈 캠페인도 진행자가 붙어있어야 하니 시간대의 유연성이라는 장점에도 한계가 있었죠. 한편으로는 진행자가 궁극적으로 세계의 관리자이며 통제자라는 점은 진행자에게 창의적 권한이면서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유 배경세계는 훨씬 권한이 분산된 형태로서, 위에서 예를 들었듯 한 사람의 진행자가 플레이에 늘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참여자 중 누구나 플레이 내용에 따라 배경을 변화시킬 권한이 있는 체계입니다. 플레이 때마다 진행자가 같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플레이마다 규칙이 같은 필요도 없습니다. 또 플레이 때마다 같은 인물을 잡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좀 고난이도로 간다면 같은 시간대일 필요도 없겠죠.

물론 중앙 통제를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도 따릅니다. 참여자가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니 뭔가 새로운 변화를 추가하기 전에 합의를 한다는 안전망도 없어지고요. 저는 성질이 나빠서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변화가 세계에 일어나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좀 자신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는 거부권이라든지 하는 간단한 규칙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세계에서의 개연성의 범위 같은 것을 원칙으로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의논해서 추가할 수도 있을 테고요. 결국 무엇이든 감각이 맞고 협조가 잘 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없을 테지만요.

어쨌든 이런 식으로 참여자 구성에 상관없이 플레이가 세계를 변화시키고, 또 그 변화한 세계는 새로운 플레이의 틀이 되면 세계의 역동성과 플레이의 유연성을 함께 느끼는 놀이를 하면 RPG의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의 변화를 규율하는 규칙이나 원칙, 그리고 변화를 기록하는 체계를 잘 잡으면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변해가는 세계, 언제든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겠지요.

5 thoughts on “공유 배경세계에 대한 생각

  1. Sihaya

    그렇게 진행되는 게 가세나 통환류라고 할 수 있겠죠. ㅇㅅㅇ
    그래도 결국 어느 정도의 조정자가 있는 게 편하겠지만요.

    Reply
    1. 로키

      오, 그런 게 있군요. 확실히, 좀 조정하는 사람이 있는 게 여러모로 좋긴 하겠죠.

      Reply
  2. BlueRiver

    저희 팀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다른 방식을 만든 적 있습니다.
    http://orient.pe.kr/2337
    사람끼리 서로 겹치는 시간이 거의 없어도 플레이가 가능하게 하는 방식 중 하나지요. 대신 아무래도 마스터의 부담이 가중되는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단지 시간대의 유연성 면은 어느정도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생각하여 소개해 봅니다. 🙂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