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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네 20문 20답

아르네 인 스티그나 라그나르손 아프 보딜스폴크

1 히어로는 어느 나라 출신인가?

베스텐마나브냐, 보딜스폴크 출신. 다른 어떤 부족보다도 상왕을 많이 배출한 보딜스폴크 혈통이라는 것은 아르네에게 자부심이면서 동시에 어깨가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벤델과의 투쟁을 단순히 전투와 약탈이 아닌 권력과 동맹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죠. 전통과 신앙을 영속시키는 임무를 맡은 스칼드이기에 더더욱… 베스텐마나브냐르의 전통과 삶의 방식, 그가 사랑하는 땅의 영혼을 벤델에게서 지키기 위해 그는 언제나 필사적입니다.

2 히어로는 어떻게 생겼는가?

키가 6척이 넘는 강인하고 단단한 신체, 긴 금발 고수머리가 거의 등 중간까지 내려오며, 잘 다듬은 턱수염을 기르고 길게 늘어진 콧수염을 땋은 아르네는 척 봐도 ‘베스텐 야만인’입니다. 동시에 준수한 생김새의 미남이기도 하죠. 호소력 있는 새파란 눈과 섬세하고 지적인 얼굴 생김새, 표정이 풍부한 입매는 외국인이 흔히 생각하는 베스텐인과는 어딘가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옷은 베스텐마나브냐르인이 즐겨 입는 무릎까지 오는 양모 튜닉 밑에 긴 아마포 셔츠를 받쳐입고 있으며, 그 아래로는 가죽혁대를 두른 바지, 그리고 긴 가죽끈으로 단단히 고정한 부드러운 가죽 부츠를 신고 있지요. 그 위에 거친 양모제 외투를 팔을 움직이기 쉽게 오른쪽 어깨 쪽에 베베겔세 룬이 새겨진 구리 브로치로 고정하고 있습니다. 근육질의 오른쪽 윗팔에는 꼭 맞는 구리 팔찌를 끼고 있지요. 등뒤에는 큰 검을 메고 있습니다. (하이랜더의 클레이모어 검대에서 그의 마을 무기장인이 베낀 디자인입니다.)

3 히어로의 버릇은 어떤가?

상당히 지적인 사람이지만 화가 날 때면 가슴속 깊이에서 짐승의 으르렁거림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영락없이 야만인 취급을 받곤 합니다. 무슨 사건이 닥치면 그와 관련돼서 떠오르는 베스텐마나브냐르의 옛 노래나 전승, 수수께끼를 끄집어내기도 하죠.

4 히어로의 주된 목표는 무엇인가?

아르네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베스텐마나브냐르의 부흥… 다시 한번 지혜롭고 인자한 상왕 밑에서 모두가 선한 길을 따르며 그룸파더와 조상들을 흡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외국 문물을 보며 이미 변해버린 이 세상에서 베스텐마나브냐르도 더 이상 옛날과 똑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베스텐마나브냐르가 어느정도 현대화의 길을 따른다고는 해도 그 가장 저변이 있는 선한 길만은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5 히어로의 가장 큰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가?

아르네는 시력이 유난히 좋아서 ‘날카로운 눈의 아르네’라는 별칭까지 얻었습니다. 멀리서부터 물체를 포착하는 능력 때문에 배를 탈 때면 종종 망루에 올라가 망을 보곤 했죠.

아르네가 약한 것이라면 재미있게도 술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하루 저녁에 꿀술 한잔 이상은 마시지 않으려고 하지만, 분위기가 무르익다 보면 가끔 폭음하는 때도 있죠. 그럴 때면 형편없이 취해버린 모습을 재밌게(?) 구경할 수 있습니다.

6 히어로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고, 무엇을 가장 싫어하는가?

굴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굴 요리라면 사족을 못쓰죠. 싫어하는 것은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거든요.

7 히어로의 성격은 어떤가?

쾌활한 호남형으로,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그의 모습은 주변 사람까지 덩달아서 즐겁게 합니다. 노래를 부르든 싸움을 하든 아르네는 항상 자신의 모든 것을 후회없이 쏟아붓고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반면 조상들과 선한 길을 잊은 것처럼 보이는 벤델의 행태와 베스텐마나브냐르의 몰락 앞에서 그는 많은 울분을 삼켜야 했고, 그 때문에 쉽게 폭발하는 성격과 완고한 고집이 생기고 말았죠. 조금이라도 자기 입장을 바꾸면 그건 곧 금에 이름과 영혼을 팔은 벤델인과 똑같이 되는 것이라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음유시인이면서 전사입니다. 시적 영감과 용맹을 둘다 그룸파터의 축복으로 높이 치는 베스텐마나브냐르인들에게 이건 모순되는 일이 아니죠. 말과 검이라는 두가지 무기 중 그가 단연 선호하는 것은 말로, 스칼드라는 존경받는 위치 때문에 유랑하면서 종종 분쟁의 중재를 맡기도 했습니다.

8 히어로는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

항상 까마득히 넓은 거대한 공동주택에서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란 아르네는 좁은 공간을 무서워합니다. 보통의 방 정도만 해도 있기 싫어해서 자꾸 밖으로 나돌려고 하고, 옷장 정도의 폐쇄되고 좁은 공간에서 나갈 수 없게 되면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집니다.

9 히어로의 최대의 꿈은 무엇인가? 가장 사랑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르네가 가진 꿈이라면 언젠가 벤델 사람들을 부자도 가난뱅이도, 어른도 아이도 아주 많이 모아놓고 그들 조상들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영웅성과 선한 길에 대해 들으면, 정말로 귀기울여 들으면 벤델 사람들도 마음을 돌리고 이 땅의 갈라진 혼도 아물지 않을까… 하고 혼자 상상하곤 합니다. 별로 현실적인 건 아니라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뭐 상상은 자유겠지요.

아르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하루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쉬며 음식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그는 한번도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베스텐마나브냐르의 모든 집이 그에게 기꺼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어디 가나 선한 길을 따르는 선한 사람들이 노래와 웃음을 함께 하는데 어떻게 가난할 수가 있을까요.

10 히어로는 자신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17 히어로는 얼마나 종교적인가? 어느 교파를 따르고 있는가? (아르네에게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얘기인지라…)

아홉 섬의 땅, 베스텐마나브냐르의 혼은 그의 피 속에 흐르고 있고 그가 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게 지켜줍니다. 조상들은 언제나 그와 함께 하고, 삶의 사건 하나하나마다 그룸파더의 자애로움과 옛 전설의 숨결은 그 존재를 드러내죠. 살아가는 하루하루 속에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동시에 유구하게 이어지는, 살아 숨쉬는 그의 민족의 이야기들 속에 그는 비옥한 토양에 선 나무처럼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뿌리뽑혀진다면 그의 영혼은 마르고 비틀어져 생명도 풍요도 사라지겠지요. 그 무한한 자양분은 베스텐마나브냐르의 땅을 떠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지라 이국을 여행해도,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아르네는 언제나 느낄 수 있습니다. 그가 선한 길을 따르며 넘어지지 않도록 등을 받쳐주는 조상들의 손길을. 용기와 충실, 정직과 행운. 이 네 가지를 지키는 한 그는 어느 먼 타국에서 죽는다 해도 혼만은 발할라에서 혈육과 친구들과 재회할 것을,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가 사랑하는 땅 베스텐마나브냐르를 보듬을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11 히어로에게 편견은 없는가?

아르네는 소데르만바르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그 폐허에… 다 타고 아무것도 안 남은 마을에서 그는 죽어서까지 고통받는 혼들의 분노를 느끼며 위문곡을 불렀지요. 결국 그 땅에 남은 건 폭력의 기억과 악의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야 했지만… 소데르만바르만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한 후 벤델에 대한 그의 생각은 더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선한 길과 조상들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는 것을요. 그는 대체적으로 벤델인에게 별로 감정이 좋지 않고, 그 때문에 사촌 마그누스와는 늘 다투곤 합니다.

12 히어로는 무엇에 충성하는가?

가족, 친구, 보딜스폴크, 베스텐마나브냐르, 조상들, 살아있는 룬들, 그룸파더… (10번 참조)

13 히어로는 사랑에 빠졌는가? 배우자나 약혼자는 있는가?

스칼드로서 베스텐 전역을 여행다닌 그는 결혼하거나 장기적으로 누군가를 사귈 기회가 없었습니다. 가는 마을들에서 젊고 잘생긴 스칼드를 눈여겨보는 마을 처녀가 종종 있었고, 강가에서, 숲속에서, 들판에서 서로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처럼 하룻밤의 추억을 나누기도 했지요. 얼마 전에 그중 한명이 자기 마을 청년과 결혼하는 날 아르네는 결혼식에서 기쁜 마음으로 노래를 불러 주었고요.

그는 마음을 나누되 소유하지 않는 사랑이 자신 같은 떠돌이 스칼드에게는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리품과 땅을 많이 가진 야를도 아니고, 솜씨 좋은 장인이나 밭을 가는 농부, 매일 사냥감을 들고 돌아오는 사냥꾼도 아니니까요. 어떤 여자가 가진 것 없는 방랑 스칼드와 결혼하려고 할까요? 게다가 그러려는 여자가 있어도 뜯어말리는 편이 그 여자를 위해 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아내는 집을 몇 달씩 비우는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밭을 갈고 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을 해야 할테니까요.

14 히어로의 가족은 어떤가?

아버지 라그나르, 어머니 보르그힐드, 어느날 바다에 나갔다가 실종된 형 발더, 시집간 누님 게르드, 10대 후반의 남동생 지그문트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두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 에이가, 그리고 아르네의 할아버지가 웃스라를 여행하다가 한 귀족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형제 가예브가 그 둘입니다. 에이가는 10대 후반이 되었을 때 벤델로 건너가자고 우기면서 라그나르와 심하게 다투었죠. 형이 안가면 혼자 가겠다는 동생을 라그나르는 창고에 가둬 버렸지만, 에이가는 도망쳐서 결국 키르크유베어라우스터로 가버렸습니다. 그때 이후로 라그나르는 동생의 이름만 나와도 화를 내게 되었죠. (이 설정들은 제멋대로 일단…)

에이가에게는 마그누스라는 아들이 있는데, 그와 몇 번 마주친 아르네는 그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야만적이라면서 조상들로부터 이어내려온 선한 길을 무시하다니, 아르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죠. 마그누스는 마그누스대로 기회가 날 때마다 무식한 짐승인데다 이름은 계집애같다고 아르네를 놀려대곤 합니다. 아르네가 마그누스를 즐겨 부르는 이름은 에이가손, 혹은 테아어로 ‘작다’는 뜻인 미니무스.

15 히어로의 부모는 히어로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성한 스칼드가 된 아르네는 부모님에게 기쁨이자 자랑입니다. 아르네가 고향 마을에 들를 때면 그의 노래를 들으며 부모님은 행복해 하죠. 라그나르는 아꼈던 동생 에이가가 자기 뜻을 어기고 벤델로 가버리고 몇 년 전에는 장남 발더마저 잃으면서 많이 쓸쓸해 했는데, 그런 그에게 아르네가 자기 일에 만족하며 기운차게 살아가는 모습은 크나큰 위안입니다.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두 부자는 서로를 깊이 아끼고 존중합니다.

16 히어로는 신사, 또는 젠틀우먼인가?

그런 남방의 허영은 모르는 북해의 사나이입니다, 아르네는!

17 -> 10 참조

18 히어로는 신사 클럽, 혹은 비밀 조직의 일원인가?

아닙니다.

19 히어로는 마법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룬의 힘은 살아있는 룬들의 은총, 그룸파더가 그의 민족을 지킨다는 증표입니다. 오직 베스텐마나브냐르인만이 룬이 가진 힘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죠.

20 가능하다면, 당신은 당신의 히어로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은가?

좀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면 좋겠어요. 베스텐마나브냐르에 대한 당신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처음 벤델이 생긴 것은 베스텐마나브냐르 지도층의 불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었으면… 당신의 나라는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세상 어떤 나라도 완벽하지 않듯이. 마그누스를 찍어내리려 드는 것보다는 둘이 화해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 아닐까요? 당신이 골빈 짐승이 아니듯이 (하는 짓 보면 때로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마그누스도, 그리고 벤델인도 선한 길을 저버린 것은 아니니까요.

[시트]아르네 인 스티그나

아르네 인 스티그나 라그나르손 아프 보딜스폴크 (‘보딜의 부족에서 태어난 라그나르의 아들, 날카로운 눈의 독수리’)

극주사위: 0
경험치: 18XP

힘 3 잽쌈 4 끈기 4 재치 4 멋 3
베스텐마나브냐르 R/W, 아발론 R/W, 까스띠예, 아이젠 R/W, 몽테뉴 R/W, 테아 R/W, 웃스라, 보다체
평균 이상의 외모, 독수리 눈, 큰 몸집, 언어 재능, 맷집
선원: 균형잡기 3, 기어오르기 2, 매듭짓기 1, 삭구 1, 뛰기 2, 바다 전승 1, 수영 1
스칼드: 역사 1, 웅변 3, 노래 2, 작가 1, 외교 1, 고무 1, 수수께끼 1, 룬 지식 1, 이야기꾼 1
운동선수: 기어오르기 2, 발놀림 3, 질주 1, 던지기 1, 뛰기 2
무거운 무기: 공격(무거운 무기) 3 , 막기(무거운 무기) 5
배경: 증오하는 친척 2, 로맨스 2
영기: 고집

-사회판정에 +1 언킵
-멀리 볼 때 +2 언킵
-피해에 +1 언킵
-피해저항에 +1 킵
-위협에 +1 언킵

총 소모 HP: 110
총 소모 XP: 82 (50[보너스] + 4[마스터링 보너스] + 28[플레이])

특성치
-힘: 3 (16HP)
-잽쌈: 4 (16HP + 20XP)
-끈기: 3+1 (16HP)
-재치: 4 (16HP + 20XP)
-멋: 3 (16HP)

강점
-언어 (10HP): 베스텐마나브냐르어 읽기/쓰기(1HP), 아이젠어 읽기/쓰기(1HP), 테아어 읽기/쓰기(2HP), 웃스라어(2HP), 아발론어 읽기/쓰기(1HP), 까스띠예어(1HP), 몽테뉴어 읽기/쓰기(1HP), 보다체어(1HP)
-평균 이상의 외모(5HP): 사회판정에 +1언킵
-독수리 눈(2HP): 멀리 볼 때 +2언킵
-큰 몸집(3HP): 피해와 위협에 +1언킵
-언어 재능(DS): 언어 가격 -1HP
-맷집(DS): 피해저항에 +1 킵

기능
-선원(2HP): 균형 잡기 3 (2HP), 기어오르기 2 (운동선수), 매듭짓기 1, 삭구 1, 뛰기 2 (6XP), 바다 전승 1 (2XP), 수영 1 (2XP)
-스칼드(2HP): 역사 1, 웅변 3 (2HP), 노래 2 (4XP), 작가 1, 외교 1 (2XP), 고무 1 (2XP), 수수께끼 1 (2XP), 룬 지식 1 (2XP), 이야기꾼 1 (2XP)
-운동선수(2HP): 기어오르기 2 (선원), 발놀림 3 (2HP), 질주 1, 던지기 1, 뛰기 2 (선원)
-무거운 무기(2HP): 공격(무거운 무기) 3 (2HP), 막기(무거운 무기) 5 (2HP + 18XP)

배경
– 증오하는 친척 2 (2HP)
– 로맨스 2 (DS)

영기
-고집 (-10HP)

콘스탄차 – Apologia

‘선택이 없었단 말은 하지 않겠어. 난 선택했으니까. 선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줄리앙 가르니에 뒤 블랑샤르가 그녀에게 바다를 빼앗아 간 존재였다면 느와르 아사생은 미우나 고우나 그 바다를 돌려준 존재… 지옥과도 같던 감옥섬에서 빼내어 주고, 그녀를 배신했던 일등 항해사를 찾아내 주었죠. 라 메르큐리아를 나포해 억류해 두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콘치타는 바라던 복수가 다가온다는 기대감과 함께 느와르 아사생의 뜻을 한번 어기면 라 메르큐리아의 승무원 하나가 교수대에 목매달리는 이중의 강력한 동기부여를 받게 되었습니다. 레기온과의 계약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그때 절감하게 되었지만, 이미 빠져나가기엔 너무나 깊이 들어가 있었지요. 그리고 몸을 뺄 수 있었더라도…그렇게 했을까요? 잠 못 드는 밤마다 그녀를 괴롭힐 질문입니다.

자신을 배신하고 블랑샤르 자작에게 찾아간 것이, 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획책한 것이 일등항해사 프란시스코라는 것을 알았을 때 콘스탄차는 분노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선상 첩보활동을 숨기기 위해 가끔 입이 가벼운 부하들을 처리해야 했을 때도 (귀에서 귀까지 목이 그어진채 거친 항구도시의 시궁창에 처박힌 선원의 시체…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사략의 수익을 까스띠예 당국에 거짓 보고했을 때도 프란시스코는 묵묵히 그녀를 따랐고, 언제나 훌륭하게 보좌해 주었습니다. 그런 그가 블랑샤르 자작과 모의해서 자신을 사지에 몰아넣고, 게다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에게 지휘권을 넘겼다니… 콘스탄차의 증오는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 복수는 단순한 바램이 아닌 확신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라 로즈 블뢰에 올랐고, 자작과 클레이씨와 재회하고, 리아와 루시아와 상그리엘을 만나면서 콘스탄차는 기묘한 발견을 했습니다. 더이상 라 메르큐리아의 선장은 아니지만 그녀는 여전히 선장이었던 것이죠. 라 로즈 블뢰의… 메르큐리아의 선원들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에 피를 묻히든, 사기를 치든 국가에 거짓말을 하든 아무 거리낌이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라 로즈 블뢰에 탄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사이렌이 득시글거리는 얼음장 같은 물에도 뛰어들 수 있었고, 위험한 유적에도 걸어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선장이었고, 그들은… 테아 각지에서 온 떠돌이, 부적응자, 괴벽자들은 그녀의 친구가 되었으니까요. 라 로즈 블뢰의 모두가 자신의 가슴 깊숙히 자리잡은 것을 느꼈을 때쯤 라 메르큐리아의 포획 소식이 왔고, 그녀는 또다시 선택했습니다.

아끼는 사람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죠. 그리고 이 사실은 콘스탄차를 의기소침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의욕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조금 더 헌신한다면, 조금 더 모두를 위해준다면 아주 작은 보상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 밑에 깔려있던 생각은 어쩌면…그러다가 죽는다 해도 그건 후회할 일은 아니라는 마음. 자신이 계약한 레기온과 자기 마음 속에 또아리튼 레기온을 둘다 잠재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일 거라고… 하지만 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살아남았고, 자신이 정한 별을 향해 흔들림없이 항해해갈 것입니다. 그 귀결이 어떤 모습이든 자신이 선택한 길이니까요.

콘치타가 보는 동료들

콘치타가 보는 동료들의 모습입니다.

PC – 공평하게 가나다순으로!

루시아

우리의 선상 악사님으로 빼어난 미모와 총명한 두뇌, 마법과도 같은 음악적 재능에 빛나는 보다체 기녀. 사람 넋을 빼놓는 그 만돌린 솜씨에 귀기울이다 보면 보다체의 페이트 위치들이 음악에 운명의 실가닥을 엮어넣어서 사람을 홀린다는 얘기까지 떠오를 지경이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세련되고 도회적인 여성으로, 아무래도 나같은 거친 뱃사람으로서는 여자로서 자격지심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대. 그래도 귀한 자리에서라면 감히 얼굴도 마주할 수 없을 아가씨가 험한 모험 상황에서는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호본능을 자극한달까, 은근히 으쓱하달까.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착하고 예의바른 아가씨니까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뭔가 이상한 놈팽이들에게 말려들어서 연애사에 고민이 많아보이는 점도 불쌍하고 말야. 늘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요, 루시아양.

리아

나한텐 그야말로 남동생 녀석처럼 느껴지는 선의 선생. 이뻐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고… 배운 것도 많고 무진장 똑똑한 양반이 맹하고 얌전한 게 너무너무 귀엽다. (본인이 들으면 화내려나?)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실력에 감탄하다가도 소극적이고 답답한 평소 행동거지를 보면 한편으론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고 한편으로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어진다.

의사선생에게 훨씬 어두운 면이 숨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선 마법사라는 사실… 세이렌의 호수에서의 경험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순식간에 내 안에 수많은 영혼과 수많은 이야기가 들어오는 느낌… 알아들을 수 없는 속삭임이 귓가에 울리면서 갑자기 자신감과 활력이 넘쳤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필연이나 운명, 혹은 옛날얘기 같은 확실성이 느껴졌다. 전설의 힘, 아발론의 글래머… 그건 한편으로는 희열이었고, 한편으로는 공포이기도 했다. 시간의 연속성, 살아있는 전설 속에 서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경험.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척 했지만 그때 처음으로 난 의사선생이 무서웠다. (하, 결국 나도 어쩔 수 없는 까스띠예인인 건가. 자작님의 옛 친구, 엘 푸에고 아덴트로 마법사와 리바이어던의 뱃속에서 마주쳤을 때 이미 내 편견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 버린 것 같다.)

그래서 의사선생이 우리에게 숨기는 게 또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더 심하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글래머 마법사에다가 시와의 모종의 관계. 도대체 저 선량한 얼굴 뒤에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거지? 덜컥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때 처음 보았던 의사선생의 차갑고 냉정한 얼굴…예전과 같은 눈으로 의사선생을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무조건적으로 신뢰해 왔지만 사실 의사선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되고야 만 것이다.

아아, 복잡한 건 정말 질색이라고. 내가 왜 저 착한 의사선생을 의심해야 하는 거지? 싫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하루빨리 예전처럼 될 수 있기를…

상그리엘

가만있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묵묵한 군인형. 한편으로는 가늘고 고운 선이 덜 자란 소년 같은 인상을 주는 기묘한 느낌의 사내다. 원래 말을 아끼는 사람이 더 할말이 많다고 하는데, 상그리엘은 확실히 그런 경우일 것 같다. 사제에다가 검객이라는 범상찮은 배경, 그리고 특이한 이름… 이름의 어원으로 보이는 ‘상그레알’은 몽테뉴어로 sang real(왕의 피) 혹은 san greal(성배)의 이중적 의미로 읽을 수 있는 말인데, 확실히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동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뭔가 비밀이 있는 것 같아서 정말 답답하단 말야.

줄리앙

별로 좋은 감정은 가질 수 없는 사람이지만 미우나 고우나 현재는 내 고용주, 그리고 역시 만만찮게 숨기는 게 많은 사람. 나의 바다를 빼앗아가고 다시 돌려준 사람이기도 하다. (에피파니오에 따르면 이런 경우를 카타이에선 ‘병 주고 약 준다’고 한다고 한다.) 혈우병이라도 있나 왜 툭하면 피를 흘리는 건지, 그러면서도 왜 결국엔 도로 지혈이 되는 건지 참 이상한 일이다. 특이체질인가? 역시 경계를 풀 수 없는 인물.

NPC

라 로즈 블뢰 – 현재 내가 지휘하는 배, 그리고 테아 둘째가는 미녀. 첫번째가 될 수 없는 건 라 메르큐리아가 아직 저 먼 바다 어딘가에 항해하고 있기 때문이지. 비록 악취미와 낭비의 소산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있어도 아주 착한 아이다, 라 로즈 블뢰는. 훨씬 작고 다루기 쉬운 배에 익숙한 나로서는 왠만한 항구엔 끌고 들어갈 수도 없는 갈레온선이 영 어색하지만, 그래도 무식하게 큰 선체에 비해 말도 잘 듣고 움직임도 안정된 배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로자.

라 메르큐리아 – 내가 처음 맡은 배, 그리고 내게는 7대양을 항해하는 배 중 최고의 미인. 첫사랑은 잊지 못한다던가. 처음 사랑한 남자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처음 선장으로서 갑판을 밟았던 배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석양을 배경으로 그리던 그 우아한 윤곽도, 꿈처럼 부드럽게 바람을 타던 돛도, 은청색 눈을 빛내며 차분히 항로를 바라보던 선수상(船首像) 메르큐리아도… 지금쯤 까스띠예나 보다체 근해를 가르고 있을 그 날씬한 선체와 날렵한 돛, 시끌시끌하지만 선량하던 선원들에게 축복을. 내 아름다운 첫사랑에 어딜가나 행운이 함께하길. 못나게도 배를 빼앗긴 선장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멀리서 빌어주는 것 뿐이겠지.

윌리엄 클레이 – 하아. 난 있지, 벌써 반평생을 바다에서 보낸 뱃사람이라고. 교양이나 순수와는 오래 전에 담 쌓았고, 가는 항구마다 남녀간의 게임, 그 긴장과 즐거움에는 익숙했지. 선술집에서 마주친 이름도 모르는 선원부터 소년기와 성인기의 달콤한 경계에 선 제니하우스의 하인까지*… 한마디로 기약없는 짝사랑에 목을 매고 일개 집사에게 ‘보다체 귀공자’니 유치한 별명 붙여가며 가슴 두근거릴 때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는 얘기야.

그런 나한테 유치찬란한 짝사랑의 상대가 생겼어. 이게 정말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어. 어쩌면 그와 그렇게 마주쳤던 당시의 난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뭔가 매달릴 대상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그를 생각하는 마음이 날 지탱해 주었고, 그래서 이제 와서도 놓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몰라. 뭔가 붙잡을 대상이 필요해서 매달린다는 건 클레이씨에게도 내게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도 드는데… 근데도 그냥 좋은 거야. 그의 따스한 마음이 좋고, 그 조용한 미소가 좋고, 검은 보다체 눈이 좋고, 그와 함께 있을 때면 설레이는 내 마음이 좋아.

요즘 들어서는 그에게 나 혼자서만 묻게 되지. 아직 한동안 당신을 좋아해도 될까? 어쩌면 내가 당신을 놓을 수 있을 때까지만, 혹은 거절당할 때까지만…당신을 바라보아도 될까? 그렇기만 하다면 아직 한동안은 그를 향해 달려가고 싶어. 어쩌면 영원히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수평선을 향해…

‘제독’ – 선장을 꽤나 주눅들게 하는 경력과 실력의 일등 항해사. 또 고양이 앞의 쥐처럼 벌벌 떨게 되는 상대이기도 하지. 자작님이 날 감옥에 처넣지 않았더라면 내 현재 일등항해사에게 목매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우습달까, 모골이 송연하달까. 제독이 교수대에 매단 수십명의 해적 중 상당수는 까스띠예인이었거든. 라 메르큐리아의 선장이던 당시 난 돈 알다나의 부탁으로 몽테뉴에 대항해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고, 가끔 몽테뉴 상선을 상대로 사략질도 했었고… 그러다가 까딱 잘못해 제독에게 걸렸더라면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어. 그저 이 사내가 지금은 나의 적이 아닌 부하라는 사실이 다행일 따름이지. 앞으로도 절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사내야, 제독은.

에피파니오 – 자작님이 보다체의 뒷골목에서 주운 카타이인 꼬마. 에피파니오는 ‘깨달은 자’라는 뜻으로 내가 붙여준 이름이야. 놀리고 싶으면 ‘깨달은 꼬맹이’라는 뜻으로 에피파니뇨라고 부르지. 조그만 녀석이 속에 영감이 들어앉았는지 어린애같질 않다니까. 자작님이 어떻게 그렇게 확고하게 충성하는 자기 사람을 만드는지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경우이기도 하지. 뭐 그 시궁창에서 벗어난 건 분명 니뇨에게 다행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한 생각도 지울 수 없긴 해. 이로서 자작은 자신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충복을 얻은 것도 사실이잖아? 뭐, 내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긴 하지. 그 두 사람, 주인과 신하 사이에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일.

댐젤 – 의사선생의 빌어먹을 까마귀. 댐젤이란 말의 뜻을 물어보니 까스띠예어의 다미셀라(아가씨)와 비슷해서 나는 다미셀라라고 부르고 있지. 의사선생에게 접근하는 여자는 다 공격하라는 지령이라도 받고 있는지(내 눈이 얼마나 높은데 내가 의사선생을…;ㅁ;), 이놈의 새한테 내가 쪼인 횟수를 생각해 보면 정말 오래전에 한끼 식사로 잡쉈지. 의사선생 봐서 참고 있는 거라고. 게다가 까마귀고기를 만들어도 도로 돌아올 것 같은 무시무시한 생각이 든단 말야. 분명히 죽은 모습을 내 눈으로 봤는데도 멀쩡하게 회복하더란 말이야. 그냥 무지하게 튼튼한 건가? 어쨌든 꺼려지는 녀석이야. 단지 원한이 쌓인 걸수도 있지만.

* 흥미가 있는 사람에게 한가지 조언이라면, 제니길드에 속한 하우스에 있는 하인이나 요리사 같은 남자 일꾼들을 눈여겨 보라고. 제니와는 달리 남창들은 특별히 ‘저쪽 저 젊은이’에 대해 문의하지 않으면 거래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우스 일꾼으로 해놓거든. 고객에게 자신만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상술이지. 이런 청년들은 보통 그 자신 제니의 아들로서, 얼마든지 사창가를 벗어날 수 있는데도 스스로의 각오와 선택으로 매춘을 택했기 때문에 갈곳 없이 함부로 몸을 굴리는 뒷골목의 남창들과는 태도나 실력, 교양 정도 같은 게 전혀 달라.

콘스탄차 – Eres Tu (당신은)

콘치타가 그녀의 ‘보다체 귀공자’를 생각할 때면 연주하는 곡. (누구일까요? 딴청) 역시 시간과 공간 따위야 가볍게 무시합시다. 제 취향상 엄청난 의역임을 밝힘니다.

당신은…

내게 희망과도 같은 당신은
흡사 여름날의 푸르른 아침
조용한 미소와 같은
그래, 그것이 내가 아는 그대

내 모든 소망인 당신
두 손에 고인 신선한 빗물과도 같아
부드럽고도 강한 바람
그래, 그것이 바로 그대

(후렴)
내 목을 축이는 샘물이여
내 집을 환하게 밝히는 불길
나를 따뜻하게 지키는 모닥불과도 같이
일용할 양식만큼 내게는 소중한, 그래 그게 당신이죠.

내 입술에 시(詩)와 같은 당신
밤에 들려오는 기타의 선율
내가 영원히 쫓는 수평선
그래, 그것이 내가 아는 그대

(후렴)

콘스탄차 – El Aparecido (유령)

기우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음대로 슬쩍슬쩍 고쳤…) 빅토르 하라, 나중에는 Inti-Illimani가 부른 유명한 노래 ‘유령’입니다.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얘기라는 설도 있으나 하라가 피노체트가 집권 당시 살해당했기 때문에 원작자의 의도는 알길이 없는. 시간과 공간을 기적적으로 뛰어넘어 콘스탄차가 까스띠예 기타를 연주하며 즐겨 부르는 노래입니다. (인띠-이이마니가 부르는 동영상)

엘 아파레시도(유령)

언덕 사이로 작은 길을 열어
바람 속에 발길을 남겨라
독수리 날개로 날아오르면
침묵이 당신을 덮는다
추위에도 불평하지 않고
지쳐도 불평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들이 당신의 발길을 느끼고
장님처럼 뒤를 쫓는다.

(후렴)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이쪽으로 또 저쪽으로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그들이 당신을 죽이러 온다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그들이 당신을 죽이러 온다
달려, 달려, 달려

당신은 다시 한번 죽었지
황금 발톱을 가진 까마귀에게
십자가에 못박혔지
권력자의 분노에…
반란의 아들이여
그들이 당신을 쫓고 또 쫓는다
당신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당신을 죽이기 위해

(후렴)

콘스탄차 외모와 배경

외모

콘스탄차는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으로*, 키는 작지만 탄탄하고 꽉 짜인 몸매에 살짝 이국적인 치장, 뱃사람답게 그을린 매끄러운 갈색 피부가 눈에 띕니다. 어깨까지 기른 곧은 갈색 머리 사이로는 비즈와 깃털을 엮어 한줄기 늘어뜨리고 있고, 이마에 화려한 색의 천 머리띠를 두르고 뒤쪽에 매듭을 지은 나머지는 등뒤로 흘러내립니다. 차분한 눈썹선과 숱많은 속눈썹 밑에 흑갈색 눈은 무표정한듯 빈틈이 없고, 그 아래로는 두드러진 광대뼈와 곧은 코, 얇은 입매가 위엄있고 침착한 인상을 각인시키는 얼굴입니다.

옷은 소매에 레이스장식이 화려한 흰 블라우스 위에 짧은 조끼, 그리고 꼭 맞는 바지와 부츠. 혁대에도 비즈와 깃털 장식을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혁대 위에 엇갈려 검은 가죽으로 검대(劍帶)를 따로 하고 있고, 왼쪽 허리에는 품질 좋은 가예고스산 검이 빛나고 있죠. 뽑아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이리저리 휘며 번쩍이는 그 날렵한 검신은 주인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변화무쌍하고, 유연하며, 치명적인…

비록 평소에는 빈틈없어 보이는 인물이지만, 달빛 비치는 뱃전에 앉아 까스띠예 기타로 정교하고 애수어린 곡을 연주할 때면 떠나온 모든 것을 회상하듯 감상적인 표정이 되지요. 또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있을 때 웃고 떠드는 모습은 여느 유쾌한 젊은 여성과 다를 바 없는 등 의외로 다양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GM 가이드에 25세부터 중년이라는 거 제가 보기엔 순 엉터립니다. 나이 페널티 룰 자체가 모순투성이고 전혀 밸런스가 안 맞는 건 차치하고라도 서플먼트하고도 맞지 않으니 원. 20대 후반의 ‘젊고 아름다운’ 에리카 뒤르켕부터 30대 초반의 ‘젊은’ 도넬로 팔리치까지, 25세가 중년이면 말 되는 거 하나도 없는.

배경

이름은 콘스탄차 에르난데즈 데 가르시아 데 가예고스 델 까스띨리오. 어릴 때 줄여서 ‘콘차’ 혹은 그 애칭인 ‘콘치타’로 부르던 것이 애칭으로 굳어졌습니다. 가예고스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다섯 형제가 있는데다 내륙이 온통 산지여서 해양 전통이 강한 가예고스에서 태어난 콘치타. 그녀는 16세때 보다체 상선에 선원으로 등록해 돈도 벌고 세상도 보기 위해 바다로 나섭니다!

그렇게 바다로 나간 콘치타는 이 일이 소질에 꽤 맞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작은 체구와 재빠른 몸놀림은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큰 이점이 되었고, 선원이라지만 팔힘만으로 이끄는 게 아닌지라 영민한 두뇌는 빠른 승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한 어린애처럼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터프한 태도로 거친 선원들도 잘 다루었고요. 결국 몇 번 배를 옮겨타고 그때마다 선장의 신뢰를 얻어 라 메르큐리아의 일등 항해사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28세의 나이에 당당히 라 메르큐리아의 선장이 되지요.

작지만 기동력 있고 아늑한 배인 라 메르큐리아는 콘치타의 지휘 하에 보다체, 까스띠예, 몽테뉴 등지를 항해하며 사람과 짐을 옮기는 등 성공적인 운항을 계속했습니다. 특히 ‘귀족’이라는 짐을 실어나르는 게 수입이 짭짤하다는 것을 콘치타는 알아차렸죠. 신경써서 호화롭게 장식한 객실에 대한 투자를 전부 회수할 정도로요.

그러던 어느날, 교황의 죽음과 함께 까스띠예와 몽테뉴 사이의 긴장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콘스탄차는 까스띠예 귀족 돈 알다나에게 사업상 제안을 받습니다. 항로를 대체로 몽테뉴와 까스띠예 사이로 제한하고, 몽테뉴 귀족에게 배편을 제공하는 일을 주로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죠. 그리고 손님들의 대화가 ‘우연히’ 들리거나 서류가 ‘우연히’ 눈에 띄면 그 내용을 자신에게 옮긴다고 해서 몽테뉴에 일러바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그리고 뭐, 까스띠예 앞바다를 지키는 보루이며 경제 활성의 원동력인 정직하고 성실한 까스띠예 선원들에게 자신이 가끔 감사하는 의미의 사례금을 줘도 부담 가질 것은 아니라고 말이죠. 콘치타는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협상 끝에 사략 허가서까지 받아낸 뒤 돈 알다나를 상대로 정보 장사를 시작합니다.

그녀의 일처리 솜씨는 고객을 감동시킬만한 것이어서, 얼마 안가 돈(Don)의 책상에는 몽테뉴 귀족들의 입과 펜에서 직접 나온 고급 정보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콘치타는 시킨 일에 그치지 않고, 몽테뉴에 입항할 때마다 선원들에게 도시의 동정을 살피고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죠. 그리고 그 결과를 정제해서 역시 까스띠예에 보내는 보고서에 올렸습니다. 콘치타는 안전하게 투자하는 쪽을 선호했기 때문에 라 메르큐리아의 선원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흥청망청 쓴다는 소문 같은 것도 돌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에게, 더구나 하인과 호위병을 둔 귀족에게 정보를 훔쳐내는 일이 선장 혼자서만 진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닌지라 일등 항해사를 포함한 몇몇 간부급 역시 첩보활동에 동참했거나 최소한 알고는 있었지만(그리고 수익도 나누었지만), 항상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고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 포함시켰죠. 이때가 가히 라 메르큐리아의 최고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최고의 건수로 보이는 블랑샤르 자작이라는 자를 태웠을 때가 전성기의 끝이라는 걸 누가 알았을까요. 황당할 정도의 재력가인 이 자작이 생각없이 던져주는 팁 한번이 선원이 몇 년 일해도 구경하기 힘든 액수였으니 선원들의 그에 대한 열광을 상상할만 합니다. 콘스탄차 입장에서는 그가 아랫사람과 선실에서 나누는 대화 한마디 한마디가 몽테뉴 경제가 왔다갔다 하는 내용이니 더더욱 즐거웠고요. 좁고 차가운 통풍구에 기어들어가 귀기울이면서도 이번에 받는 보수는 어디에 쓸까 즐거운 고민을 하는 나날이 지나가고, 몽테뉴쪽 항구에 무사히 입항했는데…

선원들이 항구에서 보낼 즐거운 며칠을 생각하며 경사로를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귀중한 반지가 없어졌다면서 자작의 하인들이 야단법석을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몽테뉴 총사들이 배에 우르르 타고서는 아무도 못 내리게 하고 수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배를 전부 뒤졌다가는 베껴뒀던 서류들을 들킬 테고, 총사들의 감시의 눈길이 번득이는 상황에서 그 많은 서류를 안전하게 없앨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자작의 시녀장이라는 여자가 요염한 미소와 함께 선장님은 선실에서 기다리시지 그러냐고 아주 의미심장하게 말하고, 뭔가 그 말투가 심상찮다고 느낀 콘스탄차는 그대로 따릅니다.

그리고 선장실 책상 한가운데에 한낮의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것은 후작의 손가락에서 익히 보던 반지. 비록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이지만 후작으로서는 없어졌는지도 모를만한 것이었습니다. 부하들이 총사들과 실랑이하는 소리와 반지 찾는다고 배를 뒤집어엎듯이 뒤지는 소리를 들으며 콘스탄차는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깁니다. 천천히 반지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 돌리며…

타협.

그녀에게 반지의 의미는 그 한가지로밖에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들킨 것인지 모르지만 후작측은 거의 레기온을 방불케 하는 눈치로 이쪽의 첩보를 눈치챈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반지는 라 메르큐리아의 유일한 탈출구, 혹은 탈출구가 있다는 달콤한 속임수. 배의 승무원이 승객에 대한 첩보활동을 벌이고 있다면 그 우두머리는 당연히 선장일 것이고, 콘스탄차만 빠져 준다면 더 이상의 첩보는 불가능하겠지요. 어차피 라 메르큐리아는 몽테뉴의 영해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또한 몽테뉴 귀족을 감히 속인 것에 대한 죄값도 치르게 되는 셈이니 계산은 그걸로 끝. 저 몽테뉴 귀족이 선처해 준다면. 선처해 준다면.

그것이 가장 문제되는 부분이었고, 또한 이가 갈릴 정도로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몽테뉴 항구, 저쪽은 몽테뉴의 재력가 귀족. 칼자루는 확연히 저쪽이 쥐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며 콘스탄차는 반지를 공중에 던졌다가 받아내고는, 그대로 쥔 채로 갑판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총사들에게 자신이 반지를 훔쳤다고 거짓 자백하지요.

숨막히는 한순간 동안 콘치타는 반지가 사실은 속임수였고 결국 라 메르큐리아의 승무원 전원이 감옥에 처박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좀전의 그 요염한 시녀장이 자작님께서 너그럽게 죄없는 선원들을 용서하셨다고 전하고(콘치타로서는 죄없는 사람을 용서한다는 게 말이 되냐! 라고 외치고 싶은 대목이었습니다만), 베낀 서류가 발견되기 전에 배의 수색은 멈춥니다. 총사들에게 포박당하면서 콘치타는 침착한 목소리로 배의 지휘권을 일등 항해사에게 넘기고, 오늘 내로 출항해 최대한 빨리 까스띠예로 귀항할 것을 지시하지요. 그리고 돛의 수리와 중간 기착점에 대해 몇가지 마지막 지시를 내리고서는 그대로 끌려내려옵니다.

비록 귀족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평민들에게 절대로 불리한 체계라 해도 몽테뉴에서는 범죄가 있으면 재판을 하긴 하지만, 콘스탄차의 경우 외국인 선원, 그것도 까스띠예인이고, 이미 자백을 한데다 피해자가 무려 블랑샤르 후작이었던 이런저런 이유로 재판 없이 서류등록만 하고 몽테뉴의 감옥섬 중 하나로 실려갑니다. 선원이라 가는 길을 나중에 기억할지도 모르므로 얼굴에 검은 천을 덮어씌운채, 작은 배에 수많은 다른 죄수들과 우겨넣어져서…

그렇게 가면서 콘치타가 쉴새 없이 생각한 것은 지난번에 찾아갔을 때 유난히 작고 늙어보여서 왠지 콧잔등이 찡했던 부모님의 모습, 가예고스의 먼 산봉우리에 빛나던 만년설, 그리고 라 메르큐리아… 언제 또 발밑에 흔들리는 갑판을 느낄 수 있을까, 얼굴에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로운 항구에 대한 기대에 부풀 수 있을까 막막하기만 했고, 그 며칠간 콘치타는 얼굴을 가린 천 뒤에서 무수히도 많은 눈물을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몽테뉴의 한 이름없는 감옥섬에 도착한 콘치타의 일념은 오직 탈출 뿐이었습니다. 일주일간 기회를 엿본 끝에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되죠. 데우스가 도우셨는지 섬에 와 닿은 보급선의 경비가 마침 자리에 없었고, 이 틈을 타 그녀는 보급선의 짐 사이에 숨어듭니다. 처음 배를 탔던 때처럼 조그마한 몸집은 엄청난 이점이 되어 주었고, 몇 번의 아슬아슬한 고비를 넘기고 약간의 빵과 물만으로 허기와 목마름을 견디며 마침내 탈출에 성공한 것입니다. (그나마 절대 배멀미 안하는 체질 덕에 버텼지 멀미까지 했으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보급 임무를 마친 선원들이 좋아하면서 술과 제니를 찾아 시내로 달려간 깊은 밤, 콘스탄차가 선창에서 기듯이 나와 마침내 땅에 두 발을 딛었을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부두에서 비를 그대로 맞으며 콘치타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빗물이 잿빛의 우울한 기억들을 씻어내도록 놔둔채, 다시 찾은 자신의 바다가 부르는 노래에 깊이 공명하는 영혼을 느끼며. (사실 진짜 경이의 순간은 이때였을지도요..ㅋㅋ) 그리고 당연히(?) 배에 남아있는 길더와 귀중품을 싹 훔쳐서 달아납니다!

탈출은 그녀의 삶을 되찾는 데 있어 시작이긴 했지만 결코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탈옥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 때문에 이제는 아예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려졌기 때문이죠. 다행히도 다른 수많은 지명수배자에게 묻히기는 했지만, 가끔 잡힐 뻔한 위기를 넘긴 일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제는 확실히 잡혔다고 생각한 어느날, 콘스탄차는 잊지 못할 경이의 한순간을 경험합니다. 현상금 사냥꾼들과의 싸움으로 부상당한채 쫓기던 콘스탄차는 급한대로 어느 건물 외벽의 담쟁이덩쿨을 타고 올라가 열린 창문으로 들어갑니다. 방에 혼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보다체 귀공자(콘치타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죠)는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고… 검을 꺼내 다가오지 말라고 위협하며 콘스탄차는 1층으로 달려내려가려고 했지만, 이미 추적자들이 2층으로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이제 틀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힘없이 방문을 닫으며 여기서 결전을 할까, 다시 창밖으로 나갈까, 차라리 잡히기 전에 목숨을 끊을까 생각하는 동안 문밖에서 추적자들의 발걸음은 점점 다가오고…

보다체 귀공자는 침착하게 책을 덮고 일어서더니, 콘스탄차에게 가구 뒤에 숨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추적자들이 문을 쾅쾅 두드리자 문을 열고 한치 흔들림없이 예의바르면서도 더없이 차갑고 매서운 말 몇마디로 추적자들을 쫓아버리지요. 문을 닫은 그는 서랍장 뒤편에서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서는 콘스탄차에게, 레이디가 무슨 일로 쫓기시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슨 일이 있어도 용기를 잊지 말라고 말해줍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낯선 땅에서 쫓기는 몸이 된 콘치타에게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의 감동. 따스한 벽난로 불빛에 청년의 얼굴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는 잘생긴 얼굴의 또렷한 윤곽을 더욱 돋보이게 했고, 검은 눈 속에는 붉은색과 금빛이 춤추며 지적인 얼굴에 생기를 더해주었죠. 옷은 피투성이가 돼서 출혈과 갑자기 풀린 긴장의 여파로 벌벌 떨며, 배고프고 추운 채 그녀는 오랜만에 벅찬 행복감을 경험합니다.

뭔가 도울 일이 없겠느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귀공자 앞에서 콘스탄차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이만 가야겠다고 하며,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창문으로 도로 나오지요. 같은 창문으로 들어간지 겨우 5분 남짓, 하지만 추운 밤거리의 어둠 속을 혼자 걸으면서도 콘스탄차는 손끝, 발끝까지 뜨거울 정도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검은 보다체 눈의 기억을 떠올리며… 제니하우스와 선술집에서의 유희에 익숙한 그녀였지만 보다체 귀공자와의 만남은 전에 없는 강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언젠가는 저 사람을 다시 만나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친절과 걱정 이상의 감정을 그 매혹적인 눈에 담고 나를 보게 되리라. 소원과 일념을 넘어 그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졌고, 그를 생각하는 한 어둡고 지저분한 거리마저, 혼란스럽게 망가진 자신의 삶마저 콘스탄차의 눈에는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선장, 첩보원, 범죄자, 탈주자… 하지만 그 모든 이름 밑에 그녀는 그저 콘스탄차, 맨발로 바닷가를 달리던 콘치타일 뿐. 그 사실만은 언제나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는 발밑에 흔들리는 갑판이 행복하고, 저 지평선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선장님, 우리 또 길잃었어요?” “시끄러!”) 꿈은 이루기 때문이 아니라 꾸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을 조금은 깊어진 눈빛으로 콘스탄차는 깨닫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알 수 없는 내일을 조금은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기대감에 부푼 채 기다리며…

나탈리아–시트

나탈리아

힘 2, 잽쌈 3, 끈기 2, 재치 4, 멋 3
장점: 연줄 2(언니 사비네/루트), 위험한 아름다움, 보다체 R/W, 몽테뉴 R/W, 벤델 R/W, 왼손잡이, 후원자
예술가: 작가 2, 연주자(만돌린) 1
기녀: 춤 1, 에티켓 1, 패션 1, 겸손함 3, 제니 1, 전령 1, 유혹 1
도시 토박이: 사교성 1, 거리 누비기 1
하인: 에티켓 1, 패션 1, 하인 업무 1, 겸손함 3
나이프: 공격 2, 막기 1
배경: 저주 2(루카), 은혜 1(에밀리오)

보다체 히어로
100HP

특성치(64HP)
-힘 2 (8HP)
-잽쌈 3 (16HP)
-끈기 2 (8HP)
-재치 3+1 (16HP)
-멋 3 (16HP)

강점(17HP)
-연줄(2HP): 친구 – 언니 루트(사비네)
-위험한 아름다움(3HP)
-언어(6HP): 보다체 R/W(1HP), 몽테뉴 R/W(2HP), 벤델 R/W(3HP)
-왼손잡이(1HP)
-후원자(5HP): 40길더, 한달에 한번

기술(16HP)
-예술가(2HP): 작가 2, 연주자(만돌린) 1 (1HP)
-기녀(2HP): 춤 1, 에티켓 1 (하인), 패션 1 (하인), 겸손함 3 (1HP, 하인), 제니 1, 전령 1 (1HP), 유혹 1 (3HP)
-도시 토박이(2HP): 사교성 1, 거리 누비기 1
-하인(2HP): 에티켓 1, 패션 1, 하인 업무 1, 겸손함 3 (기녀)
-나이프(2HP): 공격 2 (1HP), 막기 1

배경(3HP)
-저주(2HP): 루카 베투리노
-은혜(1HP): 에밀리오 비니콜라

나탈리아–주변 인물

주변 인물:

사비네 – 여성, 25세. 본명 루트이며, 사비네는 제니로서의 예명(?)입니다. 나탈리아의 친언니로, 둘이서 있을 때면 피아와 루트라는 이름으로 서로 부르지요. 항만 근처의 제니하우스에서 선원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고, 마르코라는 까스띠예 선원과 6년 전에 결혼했습니다. 뭐, 말이 결혼이지 어차피 항구에서 항구를 전전하는 마르코를 자주 볼 일은 없고, 아마 가는 항구마다 여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요. 대충 모른척하면 편한 일을 뭐하러 긁어 부스럼 만들겠어요.

동생 피아에게도 ‘공짜로 해주는 남자’가 생긴 것을 알고 참 잘된 일이라고 좋아했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동생의 하소연을 통해 알게 되었죠. 한번 삐끗하면 헤어나기 어려운 그런 위험한 세계에 속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동생의 속을 썩이고 있는 점이라면 메디코에서 제니길드를 세운다는, 피아가 보기에는 영 어처구니없는 계획입니다. 보다체 상인 군주들이 벤델 길드가 발붙이게 둘 것 같냐며, 어느날 아침 수로에 처박힌 시체로 발견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관두라고 설득중이지요.

도넬로 팔리치에게는 에릭 힐더라는 벤델인 손님이 와 있는데, 말로는 모험가라고 하지만 사실은 벤델 체어들의 스파이라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가 타고 온 배의 선원들에게 소문을 전해들은 루트는 힐더를 만나서 상의하기를 몹시 바라고 있고, 따라서 이미 파티에서 힐더와 안면이 있고 벤델어도 아는 피아에게 소개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피아는 기암을 하며 거절했죠. 언니가 자꾸 졸라대는 통에 요즘에는 방문 빈도를 줄였을 정도입니다.

에밀리오 비니콜라 – 남성, 27세. 귀족은 아니지만 팔리쉬가와 서출 쪽으로 혈연이 있는 가문의 장남으로, 큰 와인 수출업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가.

그동안 팔리쉬가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와인을 공급받으며 번성해온 사업이지만, 최근의 자기 대에서 가운이 기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니콜라 가문은 대대로 바닷길로 까스띠예 수출을 담당해 왔습니다만, 몽테뉴와 까스띠예의 전쟁으로 뱃길이 불안정해지고 해적 문제가 전에 없이 심각해지면서 벌써 몇번이나 와인을 실은 배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팔리쉬 와인 수출할당을 준다고 하면 당장 줄을 설 사람들이야 널렸고,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수출 할당량을 줄이거나 경우에 따라선 아예 뺏어가겠다고 은근한 압박이 들어오고 있는 상태입니다. 별로 야심만만하거나 머리좋은 사내가 아닌 비니콜라는 어려서부터 누려온 안락한 생활이 사라지고 위신이 대폭 깎일까봐 전전긍긍하고 있고, 어떻게든 예전의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파티를 찾아다니며 인맥을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죠. 나탈리아는 그 전모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주변 사람들의 눈치나 가끔씩 보이는 비니콜라의 표정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첼리아 마로네 델라 비니콜라 – 여성, 18세. 에밀리오의 아내로, 부유한 가정 태생의 반혈 페이트위치입니다. 놀랍도록 예쁜 얼굴과 가녀리고 우아한 몸매를 검은 너울과 우중충한 옷으로 가린 이 젊은 부인은 페이트 위치에게 가해진 온갖 제약들을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런 욕구나 불만들은 엄격한 교육을 통해 철저히 억눌려 왔죠.

때문에 평소에는 쥐죽은듯 유순하다가도 한번 욱하면 격렬하게 감정을 표출하고, 그랬다가 감정에 휩쓸린 것을 강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우울해지는 다소 불안정한 성격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사람을 꺼리는 편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싫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 부대끼다 보면 자기 내면의 끝없는 갈등 때문에 한결 더 힘들어지니까요.

그런 그녀는 친정에서부터 가져온 거미군집을 품종개량하고 훈련시키면서 지켜보는 게 낙입니다. 침실에서 문 하나 더 열고 들어가야 하는 그녀의 내실에 가보면 거미의 발광(發光) 형질을 관찰하기 위해 휘장은 밤낮으로 내려놓은 어스름 속에 희여멀건하게 빛나는 온갖 크기와 모양의 거미들이 돌아다니고, 거미가 잔뜩 든 유리구와 뭉친 거미줄이 굴러다니고 있죠.

남편인 에밀리오와는 관계는 달콤한 애정에서 불안한 어색함까지 수도 없이 엇갈립니다. 하지만 에밀리오는 종잡을 수 없는 어린 아내를 어려워하면서도 한편 진정한 애정을 느끼고 있어서 첼리아가 조금은 마음을 붙일 데가 생겼지요.

레베카 몬다비 – 여성, 21세. 도넬로 팔리쉬의 어린 사촌 라파엘로의 약혼녀. 군주 알치데 몬다비가 반도 영토의 평민 여자에게 낳은 서녀로, 어려서 기녀집에 보내졌지만 들어가자마자 시험 결과 소르테, 그것도 어떻게 된 일인지 강력한 순혈 마녀의 힘이 발견되어서 페이트 위치로서 몬다비 본가에서 양육되었습니다.

페이트 위치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하는 것은 이전의 두 약혼자가 각각 병사와 사고사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한명은 빈첸조 칼리가리만큼이나 오래 살 것만 같던 60대의 호색한이었는데 어느날 풍이 들려서 삽시간에 사망(뇌졸중이 풍이던가요?), 또 한명은 잔인한 성품에 대한 소문이 돌고 전 부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석연찮은 점이 많은 젊은 귀족이었는데 어느날 수로에 익사.

불운과 악의를 구분할 수 없는, 내지는 악의가 곧 불운이 되는 소르테의 특성상 아무것도 증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에게 들어오는 모든 혼담이 조용히 끊겼을 뿐… 알치데 몬다비는 소심하고 무던한 평소 인상과는 달리 불같이 화를 냈다고 전해지지만, 그렇다고 죽는 게 두려워서 벌벌 떠는 신하에게 억지로 떠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레베카는 아버지를 설득해 수녀원으로 보내달라고 했고, 비록 그녀의 아버지이자 보다체의 군주중 하나지만 더이상 몬다비마저도 레베카에게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몬다비는 어차피 시집보낼 수도 없는 딸이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결국 허용하지요.

하지만 페이트 위치가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그 힘을 사용할만한 대담성이 있다는 건 나쁜 일만은 아니었죠. 다만 데려오는데 위험 부담이 너무 클뿐… 도넬로 팔리쉬는 특히 레베카의 두 약혼자가 둘다 조건은 좋지만 평판이, 특히 여자에 관련해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필요한 것은 아직 악행을 저지를 기회가 없었던 다정다감한 젊은이. 팔리쉬에게는 고아인 열여덟살짜리 사촌동생 라파엘로가 있었는데, 차마 자기 피후견인인 어린 친족의 목숨을 걸게 할 수는 없었지만 동시에 강력한 페이트 위치를 가문에 끌어들이고 싶다고도 생각하고 있었죠.

결국 그는 일종의 타협으로 레베카 몬다비가 들어갈 수녀원 근처로 라파엘로를 보냅니다. 그쪽에 있는 사람을 방문하는 여자 친척을 에스코트해서 가라고 말이죠. (사실 누가 누구를 보호하고 있었는지는 뻔한 일이지만…) 당연히 경험 많은 페이트 위치인 이 친척은 방문을 마친 후 수녀원 주변의 유명한 정원을 보고 싶다고 라파엘로에게 말하고, ‘우연히도’ 서원 전의 수련 수녀들이 정원을 가꾸고 있을 시간에 도착하지요. 그곳에서 부인은 ‘우연히’ 마주친 레베카와 라파엘로를 서로 소개시킨 후 정원을 혼자 거니는 척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실가닥을 매섭게 지켜봅니다.

라파엘로는 스트레가의 검은 너울을 수녀의 잿빛 너울로 바꾼 레베카와 한시간쯤 정원을 거닐며 얘기를 나누고, 그동안 그 페이트 위치 친척은 한가지 예상치 못한 발견을 합니다. 레베카와 라파엘로 사이에 형성되는 실가닥은 우려했던 죽음의 검은 실이나 적대감의 붉은 실, 심지어는 은근히 기대했던 열정의 푸른 실도 아닌 의무와 권력의 녹색 실이었던 것이죠.

게다가 라파엘로와 얘기를 나눌수록 레베카에게서는 자신을 향해서도 녹색 실이 형성되고 있었고, 온갖 방향으로 녹색과 금색의 실가닥들이 감기면서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라파엘로에게서도… 이 만남에서부터 시작해 두 가문 사이에 권력과 금전의 운명이 거미줄처럼 얽히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부인은 몸을 떱니다. 적대감의 붉은 실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운명이 얽히기 시작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예측불가. 하지만 운명의 거미줄이 짜이기 시작한 이상 더이상 막을 길 또한 없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도넬로 팔리쉬에게 보고했고, 군주는 놀라면서도 적대감이나 죽음의 기운이 없다는 사실에 크게 안심했죠. 아니나다를까 갑자기 몬다비 가문과 동맹을 맺어서 유리할만한 상황들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혼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결국 라파엘로 팔리치와 레베카 몬다비는 약혼까지 이르릅니다.

보다체 최대의 곡창 지대를 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군주들 사이에서 상호 불가침의 불문율로 보호받고 있는 알치데 몬다비, 그리고 테아 최고의 와인을 생산해 부를 거머쥐고 거대한 인맥망을 형성하고 있는 도넬로 팔라쉬. 이 둘의 서녀와 피후견 사촌이라는 별볼일없는 두 젊은이의 만남이 두 가문 사이에 운명의 실가닥을 비정상 증식시켰다는 사실, 그리고 이렇게 얽힌 운명의 결과는 어떨지 하는 불확실성이 페이트 위치들을 불안하게 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건의 구심점이 된 레베카 본인은 마르고 키큰 젊은 여자로, 생김새도 평범하고 순해서 너울 너머의 얼굴은 정말 쥐새끼 하나 못 죽일 인상이라죠. 어중간한 갈색 머리와 커다란 회갈색 눈, 창백하고 갸름한 얼굴과 꼭 다문 조그만 입술을 보면, 그리고 가느다랗고 맑은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정말 그녀의 약혼자들은 우연히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보기에 따라 페이트 위치로서는 우스울 정도로 신심이 깊어서, 미사 한번 거른 적 없고 매일마다 기도하며 온갖 자선에 열심인 아가씨입니다. (수녀원에 있을 때는 아직 서원하지 않은 수련 수녀였기 때문에 글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반도 본토에 있는 몬다비 본가에서 자라난 그녀는 알치데 몬다비의 아내, 자신을 키워준 병약한 메아 몬다비와 사이가 유난히 좋아서 기회가 날 때마다 직접 수발을 들고, ‘어머니’라고 부르며 따른다고 합니다.

레베카가 몬다비 특유의 수수한 외모를 물려받았다면 그녀의 세번째 약혼자,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경이의 대상이 되고 있는 어린 청년 라파엘로는 팔리쉬 특유의 수려한 외모가 벌써부터 돋보이는 젊은이입니다. 여자깨나 꼬실텐데 마누라 무서워서 어디 그러겠냐고 벌써부터 팔리쉬 사교계는 키득거리고 있지요.

보다체 귀족남녀간의 미묘한 권력관계 때문에 결혼할 때도 보통 테아의 다른 국가보다 더 남편과 아내의 나이차이가 큰 편인 (남편이 8~10세쯤 많은 게 절대 다수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보다체 귀족사회에서 아내가 남편보다 나이가 많은 커플은 극히 드뭅니다. 레베카의 석연찮은 전적과 겹쳐 여러모로 두 사람은 구설수에 많이 오르내리지만, 정작 라파엘로 팔리쉬는 만족스러워 보입니다. 아무리 고아이긴 해도 팔리쉬가의 적자이며 군주를 후견인으로 둔 그가 그가 몬다비가의 서녀와 결혼하게 됐고, 게다가 그 약혼녀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말이죠.

그런 레베카와 라파엘로는 종종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는 합니다. 처음 운명의 실가닥을 무수히 만들어낸 그들의 첫 만남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고개를 맞대고 낮게 속삭일 때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도대체 왜 이 여자에 대한 얘기만 무한증식을 하는 거지! ;ㅁ;) 나탈리아와 만난 것은 레베카가 16세, 나탈리아가 15세때 일로, 당시 나탈리아는 올림피아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너무 많아서 귀찮으시면 그냥 나탈리아로 했다고 해주시길. 다만 기녀는 페이트 위치한테 신분을 숨기고 싶어할 것 같아서…)

올림피아에게서 레베카는 소르테의 힘만 없었으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던 모습–화려하고, 지적이고, 자유로운–을 보았고, 연배도 비슷했던 둘은 얘기가 잘 통했습니다. 올림피아는 레베카에게 기녀 교육 얘기를 들려주고, 레베카는 소르테를 쓰는 게 어떤 기분인지 하는 얘기를 해주었죠. 또 레베카가 바느질하는 동안 올림피아는 책을 읽어주고…

페이트 위치 학교(딜레탄테)의 다른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소리내어 읽는 기녀들에게 귀기울이면서도 그런 ‘천박한’ 여자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는 선생들에게 주의를 듣고 있었지만, 레베카는 자신도 기녀가 될 뻔한 전력 때문인지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몇몇 학생들도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올림피아와 종종 얘기하곤 했죠.

딱 한번 레베카가 지나가는 얘기처럼 자기도 글을 읽을 줄 알면 덜 답답할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올림피아는 화형대에 올라가면 글을 읽으나 마나 아무 소용도 없다고 농담처럼 받아넘겼지만, 그 다음부터 몰래 어린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쉬운 책을 골라서 글자를 짚어가며 읽어주곤 했죠. 뭐 한마디도 뭘 알려준 건 아니고, 실제로 레베카가 그런 식으로 얼마나 글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으니 글을 가르친 건 아니라고 열심히 자기합리화하면서요. 그러면서도 그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난 왜 이렇게 무른 걸까…하고 자학한다죠.

레베카는 나탈리아보다도 먼저 딜레탄테 학교를 떠났습니다. 결혼할 사람이 정해졌기 때문이죠. (약혼자 1호!) 두 사람의 작별은 뭐 특별히 감동적인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둘이서만 얘기하곤 했던 도서관의 한 골방에서 나탈리아는 깊이 허리숙여 인사하며 약혼을 축하했고, 레베카는 가볍게 목례하며 데우스의 축복이 있으라고 말해주었죠. 다만 레베카가 가기 전에 한 말이 나탈리아의 가슴에 거북하게 박혀 있습니다.

‘아가씨와 부군께서 부디 행복하시길 빌어요.’ 하고 나탈리아가 인사하자 레베카는 너울 밑으로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글쎄…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아.’라고만 대답했었거든요. 그리고 다시 나탈리아가 고개를 들었을 때 레베카는 이미 등을 돌려 나간 후였습니다.

(레베카 몬다비 설정은 강조했다가는 너무 거해질 수가 있으니 자유롭게 무시해 주시길~ 그저 페이트 위치는 무섭고 모순투성이다 정도를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거랄까요.)

브루닐다 델오로 – 여성, 35세. 왕년에 꽤 유명하던 기녀로, 탐스런 금발머리는 이제 꽤 완숙한 나이에도 변함없이 눈부십니다. 보다체에서 보기드문 눈부신 금발머리 때문에 ‘금빛의 브루닐다’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보다체인 기준으로는 키가 유난히 커서 브루닐다 랄타(키큰 브루닐다)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현재 피오리 디 세타 기녀집의 파드로나로 있습니다.

큰 키와 조각한듯 위풍당당한 외모, 서늘한 푸른 눈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꽤나 잊기 힘든 첫인상을 남깁니다. 짐작하신 분도 있겠습니다만 보다체 태생이 아닌 베스텐 쪽 사람이죠. 적어도 본인은 베스텐마나브냐르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벤델인이 아니냐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매춘을 극도로 죄악시하는 베스텐인이 과연 기녀가 됐을까 하는 의구심, 그리고 탁월한 계산과 사업 감각 때문이지요.

기녀로서의 화려한 경력 말고 그녀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기녀집 재정을 잘 꾸려가는 뛰어난 사업 수완,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한 깔끔한 성격, 그리고 많은 훌륭한 기녀를 배출한 명성으로 유명할 뿐이지요. 좀 차갑긴 하지만 일단 그 어려움만 극복하면 많은 기녀 수련생들이 그녀에게 훌륭한 조언과 도움을 받곤 합니다.

나탈리아

배경: 보다체의 팔리쉬 섬(메디코 시)에서 활동중인 20세의 기녀. 본래 이름은 피아, 기녀명은 나탈리아. 반도의 아레네 칸디데 지방의 카시굴라 로사 외곽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후 빚에 허덕이는데다 몸도 안좋던 어머니는 15세의 루트와 10세의 피아 두 딸을 키워줄만한 곳을 찾아달라고 지역 유지에게 맡겼습니다. 친절한 어르신은 그래주마고 약속하고 두 아이를 팔리치 섬의 제니하우스에 팔아넘겼지요. 루트는 바로 일을 시작했지만 피아는 얼마 후 피오리 디 세타(비단 꽃송이)의 파드로나(여주인) 브루닐다 델오로의 눈에 띄어 제니 대신 기녀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피오리 디 세타는 메디코 시의 큰 까사 델레 파르팔레(‘나비의 집’), 즉 커티젼 하우스로, 기녀의 자질이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키우며 교육시켜 주고 나중에 돈을 벌기 시작하면 수입을 전액 관리하는 곳이지요.

피아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수많은 기녀 후보생 중 하나였지만, 자기만의 특화랄까, 특징이랄 것은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소식이 끊겼던 언니를 후보생 시절에 다시 찾아내서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지요.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제니인 언니는 까스띠예 뱃사람과 결혼하기도 했고, 따라서 선원들이 체감하는 정도의 해상 상업의 흐름은 언니를 통해 곧 들을 수 있습니다. 물건을 기껏 가지고 도착하니 이미 벤델 상선이 더 싼 값으로 갖고 와서 장사 공친 얘기라든지, 영해에 침입했다면서 공격하는 벤델 상선들의 얘기를 전해듣고 점점 고조되는 벤델과 보다체의 긴장을 느낀 피아는 벤델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꽤 잘합니다.

또하나, 고객의 페이트 위치 처에게 괜히 나대다가 패가망신하는 몇몇 선배를 지켜본 피아는 페이트 위치에게는 어차피 대항할 수 없으니 우호정책으로 나가자고 결심하게 되었죠. 그래서 브루닐다에게 부탁해 세리네 섬으로 ‘공부’하러 가서 도서관에서 바느질하는 어린 페이트 위치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한 몇달 했습니다. 데우스가 도우셨는지 그때 친해진 스트레가 중 하나인 레베카 몬다비가 이번에 도넬로 팔리쉬의 사촌 라파엘로에게 시집온다는 소식이 들려서 동맹에 대한 조심스런 기대를 걸고 있지요.

16세때 ‘나탈리아’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피아는 돈과 권력을 갖춘 남자들과 교제하면서 괜찮은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보다체 전역과 몽테뉴에까지 유명한 팔리쉬가의 호화스러운 파티 때문에 업계는 늘 호황. 크게 빠지는 데 없는 기녀가 성공하기는 결코 어렵지 않았습니다.

1년여 전에는 현재 후원자인 에밀리오 비니콜라를 파티에서 만나 비교적 만족할만한 동반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팔리쉬 가와 서출 혈연이 있는데다 성공적인 와인 수출사업을 이어받은 그에게 기녀들이 은밀한 눈빛을 보냈지만 에밀리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죠.

나탈리아는 이 남자가 은근한 유혹의 게임에 식상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대담하게 접근해 즉흥시의 대결을 제안합니다. 자신이 이기면 2층으로 함께 올라가지 않겠냐는, 모든 규칙을 깬 유혹으로 당시 그녀의 위치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후원자를 잡을 수 있었죠. 그리고 비니콜라를 통해 이전보다 소수정예(?)의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파티에 참석하고, 높은 분들께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지금은 할 수만 있다면 팔리치 가의 남자로 옮겨갈 수 없을까 기회를 엿보는 중입니다. ‘몽테뉴 여자’에 대한 도넬로 팔리쉬의 구애가 메디코의, 그리고 보다체의 정치계에 가져올 수 있는 파란을 주목하면서요.

어쨌든 현재로서는 비니콜라의 정부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페이트 위치 아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그의 집에서 지내는 대신 시내의 아파트를 달라고 해서 기거하고 있으며(물론 작지만 화려한 곳이지요), 그가 찾아오는 밤이면 와인 한잔을 사이에 두고 아무 이야기나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거나, 파티에서 그의 위신을 세워주기도 잘합니다. 전반적으로 에밀리오가 그녀에게 쏟는 돈과 관심만큼 값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그 역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현재의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나탈리아의 미래 설계는 적당한 때에 은퇴해서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이지요. 누군가 계약서를 사주는 것은 또다른 구속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꿈을 위해 지금부터 영향력 있는 인맥을 많이 만들어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게임’의 틈바구니에서 조금의 안정과 보장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정직한 보다체 여자, 이것이 나탈리아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 말에 ‘보다체 여자가 얼마나 정직한데?’ 라고 파티에서 한 몽테뉴 귀족이 비웃자 나탈리아는 고혹적으로 웃으며 ‘몽테뉴 여자가 정숙한만큼 정직하지요.’라고 대답했었죠.)

이 모든 건전한(?) 인생계획에 초를 치는 존재가 최근 나타나서 나탈리아를 매우 신경쓰이게 하고 있는데, 그는 루카 베투리노라는 잘생긴 곤돌라 사공. 어느날 저녁, 에밀리오가 다른 기녀들과 추근덕거리는 걸 본 나탈리아는 걱정이라도 좀 시킬까 해서 언니에게 하룻저녁 다녀오려고 곤돌라를 잡아탔지요. 사공은 왜 기녀가 혼자 곤돌라를 타고 가냐며, 되게 인기없는 모양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 그녀를 짜증나게 했고, 볼 사람도 없겠다 오랜만에 교양은 저만치 벗어던지고 말다툼을 하는 도중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어떻게 얘기해도 유치해져 버리니 결론만 말하자면, 그때 이후 나탈리아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곤돌라 사공을 만나왔습니다. 루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만나면 두 사람은 부드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도 아니고, 거의 말한마디 없이 서로의 욕망에 거칠게 탐닉하는 낯선 사람일 뿐.

그뿐인데 왜 그게 다른 남자이면, 예를 들어 에밀리오이면 안되는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루카가 필요한지 나탈리아로서는 미치겠는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짓일 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후원하는 기녀가 자신을 두고 미천한 사공 따위와 놀아났다는 걸 비니콜라가 아는 날에는 그와의 관계는 바로 끝날 것이고, 팔리치가의 남자를 꼬셔보겠다는 야망도, 편안한 노후에 대한 꿈도 물건너간 일.

하지만 몇번이나 헤어지려고 해도 얼마 가지도 못해 그가 그녀의 아파트로 찾아와 미친듯 문을 두드리거나 그녀가 수로변에서 몇시간이나 기다리다가 그의 곤돌라로 뛰어드는 짓을 반복한 끝에 지쳐서라도 그와 헤어지려는 시도는 당분간 포기했습니다. 혹시 페이트 위치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먼 희망일 따름입니다. 이 지독한, 아니 지겨운 집착 때문에 그녀에게 이전보다 말할 수 없이 위험해진 위대한 게임은 오늘도 그 그물을 한올 한올 짜갑니다.

외모: 중키에 약간 통통한 체격. 웃을 때 보조개가 패이는 볼과 풍만한 몸매가 매력적입니다. 보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머리와 황갈색 톤의 피부, 검은 눈에 또렷한 이목구비이죠. 아름답다기보다는 그저 적당히 예쁜 바탕 위에 필사적으로 꾸민 것이지만, 왠지 남자를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건 음탕한 약속과 반짝이는 기지를 오가는 눈빛 때문일 수도 있고, 토라져서 삐죽이는가 싶은 순간 은근한 경멸에 웃음짓는 새빨간 입술 때문일지도요. 큰 편인 몸집도 화려하고 노출이 심한 기녀의 옷 때문에 오히려 당당하게 돋보입니다.

어차피 24시간 대기상태이고 기녀가 보통 여자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지만, 기녀의 치장과 태도를 치워놓을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시간에는 그저 여느 젊은 여자로 보입니다. 그런 때는 표정도 훨씬 편안하고 누그러지고, 쉽게 웃고 떠드는 소박한 처녀일 뿐. 피오리 데 세타의 선생들이 가르쳤듯 기녀가 쓰는 가면은 한가지가 아닌 법.

성격: 나탈리아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잃으면서 믿을만한 것은 자신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신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어린 피아에게 위대한 게임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자기를 위해줄 사람은 (언니 정도 빼고는) 아무도 없으니, 자신도 남을 신경쓸 새 따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모두 자신을 이용할 테니 자기도 최대한 이용해 주면 그만이고요.

문제가 있다면 이 여자 본래 성격이 그다지 모질지를 못하다는 점이겠지만요. 적을 만들기를 꺼려하고, 남에게 모욕주거나 충돌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얼마든지 하지만, 뒷맛이 개운한 일은 아닙니다. 적을 만들기 싫다는 건 단순한 실용주의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합리화하지만, 자신이 기본적으로 별로 독하지 못하다는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인 것이지요. 언젠가 이런 점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루카를 만난 이후로 그 두려움은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오고 있고요.

재능과 취미: 나탈리아의 최대의 무기는 ‘말’입니다. 언어의 흐름과 기교 속에서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교묘하거나 탐미적인 문구를 사랑하지요.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풍부한 쇼맨쉽 때문에 문학적 재능은 더욱 돋보이곤 합니다. 딜레탄테 학교 근교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는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어린 페이트 위치들이 바느질하던 시늉마저 멈추고 귀기울이는 바람에 선생에게 주의를 듣곤 했죠.

만돌린 연주도 어느 정도 해서, 긴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온 에밀리오는 종종 소파에 누운채 연주를 들으며 긴장을 풀곤 합니다. 외국어로는 몽테뉴어와 벤델어를 하는데, 몽테뉴 귀족이 많은 팔리치 섬에서 기녀에게 몽테뉴는 필수에 가깝고 벤델어는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브루닐다에게 배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