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내가 하던 놀이

[마우스가드/후기] 질주의 기억

마우스가드 1화 후기입니다. 플레이 게시판은 네이버 TRPG Club D&D 기타 소모임 ‘인디 RPG 클럽’입니다.
———-
리암, 켄지, 색슨야산의 풀숲은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 새로 나는 파릇파릇한 풀에 섞인 죽은 풀을 헤치며 지나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털이 곤두서면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 주변을 살핀다. 아까 시꺼먼 놈한테 찔린 어깨가 매번 욱신거린다.
빌어먹을.
쉴새없이 실룩거리는 코와 움찔거리는 귀는 공기중에 떠도는 정보를 걸러낸다. 아까 시꺼먼 놈들? 아니, 풀잎에 스치는 바람이다. 살괭이? 바람이 냄새를 불어올 뿐, 아직은 멀리 있다.
풀이 쓰러져 있다. 많은 인원이 지나간 길이다. 깊이 패인 쥐 발자국은 중갑주를 입은 상대다. 시꺼먼 놈들… 엘가르는 이를 드러내며 달려간다.
깔쭉깔쭉한 풀줄기에 붙은 흰 망토조각이 작은 꽃처럼 흔들린다. 켄터 대장이 일부러 남긴 흔적인가?  얼마 뒤, 무거운 것을 끌고간 듯 흙이 쓸린 곳. 피투성이가 되어 늘어져 있던 비올레타를 기억하고 엘가르는 목구멍에 차오르는 분노를 삼킨다.
빌어먹을 비올레타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일까, 다시 이렇게 막막하게 달려가던 기억이 번져온다. 숨도 안 쉬는 것 같은 여자를 어깨 위에 들쳐메고 돌투성이 맨땅을 질주하던 지난 가을, 비올레타의 피에 젖은 어깨는 차가웠다.
비올레타 조장을 이곳에서 데려가, 엘가르! 족제비들이 진군하는 길목을 막아서던 정찰대원의 목소리는 잊히지도 않는다. 지원군을 불러와라!
부드러운 밤색 털이 붉게 엉긴 비올레타를 들쳐업으며 엘가르는 그 명령을 어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찰대원님 죽을 거에요. 조원들이랑 다 죽을 거라고요. 그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그 벽력같던 명령이 머릿속에 울리고 또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조장을 메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달렸다.
엘가르… 어깨에 걸쳐멘 비올레타가 몸을 뒤척이며 목쉰 소리로 불렀을 때에는 안도감에 주저앉을 뻔했다. 내려놓고… 빨리 가… 지원군을…
피로가 온몸에 한꺼번에 부딪치면서 발이 끌렸다. 타는 듯한 폐가, 망토를 찢어 싸맨 뒷다리의 상처가, 저려오는 어깨가 각자의 고통을 호소했다.
명령이다. 없는 힘을 쥐어짠 비올레타의 목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울렸다.
엘가르는 자꾸 접히려는 무릎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바위투성이 정경에 몸을 숨길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부상당한 생쥐 한 마리는 한입거리도 안 되는 포식자를 막거나, 눈을 가릴 수단이라고는.
조장님은… 비척거리며 그는 한 발 앞에 다른 발을 끌어다 옮겼다. 비올레타 조장께서는 지금 부상이 심하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는 가슴을 한껏 부풀려 아픈 폐에 공기를 집어넣었다.
지금 말씀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엘가르…! 다시 혼수상태로 빠져드는 목소리에는 가냘픈 절망이 얽혀들었다.
마우스가드의 외곽 초소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는 당시에도 몰랐고, 이후에도 계산하지 않았다. 비올레타를 놓치고 땅에 구른 엘가르는 놀라서 달려온 가드들에게 단어를 토해냈다. 도토리 언덕에 족제비 습격… 정찰조… 지원군… 요망…
며칠 후, 검은 악몽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오면서 동료들의 용감한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엘가르는 멍하니 이것 역시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비올레타 조장의 거대하고 차가운 분노 역시 꿈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올레타는 명령대로 자신을 두고 지원군부터 불러왔으면 부하들을 살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랬으면 조장님도 죽었을 거라고 엘가르는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엘가르에게 죽음이 무서워 득달같이 도망친 비겁자라고 했고, 그는 반론할 말이 없었다.
동료를 버리는 자는 마우스가드의 자격이 없다는 비올레타의 말에 엘가르는 어깨를 움츠리고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그녀의 고통이 울부짖으며 자신을 휩쓸어 지나가게 내버려두었다.
기억의 안개를 뚫고 한 줄기 바람에 생쥐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들이다. 켄터 대장, 신참, 시꺼먼 놈들, 호위대, 비올레타. 엘가르는 땅을 박차는 다리에 힘을 가한다.
주어진 임무만을 생각한다면 과학자들을 스푸르스턱에 데려다주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초냄새 나는 아저씨들 앞발 잡고 마을에까지 바래다주는 게 명령이라면, 그런 명령은 부엉이한테나 채여가라지.
그웬돌린 사령관의 명령은 분명 쥐들의 ‘안보에 필수적인’ 과학자들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스푸르스턱 주변 길을 엘가르보다 잘 아는 과학자들이 적도 없는 안전한 길로 무사히 못 돌아간다면 그건 안보에 필수적인 게 아니라 식량이나 축내는 밥충이니까 신경쓸 필요가 없다.
과학자들이 무사히 찾아갈 만큼 똑똑하면 쫓아갈 필요가 없고, 그러지도 못할 정도로 멍청하다면 더더욱 쫓아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임무는 완수했고 이제는 동료들을 구하면 되는 거다. 아, 역시 마우스가드는 명령을 잘 따르는 게 최고다.
적과 동료들이 점점 가까와오자 엘가르는 신중한 걸음으로 돌과 식물에 몸을 붙이며 이동한다. 이제 금방이다. 엘가르에게 신세를 지면 비올레타 그 성질 더러운 여자 표정이 볼만하겠지? 두려움과 기대감에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경비대원 엘가르는 풀잎 사이로 내리는 어둠 속을 움직여 간다.
———-
용어: Matriarch – (총)사령관, Patrol leader – 정찰조장, Patrol guard – 정찰대원, Guardmouse – 경비대원

함께하고 헤어진다는 의미: 패스파인더와 룬로드의 부흥

Rise of the Runelords 표지어쩌다가 모두가 나답지 않다고 하는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나답다’는 테두리 그 자체에 저항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변화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바람처럼 찾아오고는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그분들에게, 그 공기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함께하는 시간과 공유하는 즐거움에 대한 그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 그리고 만남을 바라는 정중한 부탁의 말씀. 이분들이라면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

지인들은 누구나 얼마나 가겠느냐고 했지요. 그 ‘나다움’이라는 기대치를 깨보려고 의욕적으로 시작했고, 또 그만큼 좋은 시간도 많았어요. 함께하는 시간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분들의 재치와 실력에는 정말이지 감탄했고, 저를 칭찬해주시고 챙겨주실 때마다 뛸듯이 기뻤답니다.

언제부터 무리가 생긴 걸까요. 결국 나다움의 울타리는 너무나 견고한 것이었는지, 함께하는 시간들 속에 ‘나’와 ‘실제’의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주문이나 경험치, 물품처럼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저에게는 먼 일 같기만 했고, 저의 관심사는 그 시간 속에서는 현실이 되기 어려워 보였죠.
모두 걱정해 주시고, 대화와 노력과 고민이 따랐지만, 그 끝에 저는 결국 초심의 의욕을 잃어갔어요. 만나는 시간에도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지켜보는 시간이 늘면서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답니다. 좀 더 노력했더라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옳은 길이었을까요?
고민 끝에 어느 추웠던 날, 모니터 위에 외롭게 빛나는 채팅창에서 저는 결국 결별을 고하고 말았답니다. 누구도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거에요.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또 미련이 남는다 해도 서로 더 좋은 인연을 만나 이어가기를 바라는 저의 마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 만남에서 여전히 저는 할말이 많지 않았지만, 헤어지기로 하자 처음에 저를 매혹시켰던 그분들의 열정은 더더욱 돋보였답니다. 이별을 물리고 다시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다시 시작하더라도 같은 일의 반복임을 알고 있었기에 참았지요. 마치 당긴 고무줄처럼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의 습관일 뿐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모든 일에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를 좋아하지요. 끝까지 함께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어떤 이유로든 마지막까지 가지 못한 만남은 실수였거나, 잘못이었거나, 시행착오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흘러간 인연의 빛깔과 눈부심을 바로 보지 않는다면, 그 역시 당신과 나의 일부라고 소중히 품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온 시간을 뭉텅이째 잘라내는 참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이별로 끝난 만남은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 그 역시 인연이라고 저는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함께한 시간들은 다른 어떤 색깔보다 ‘고마움’의 고운 빛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함께해 주어서, 소중한 시간을 우리의 만남에 써주어서, 그 많은 배려와 웃음과 대화에 감사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갈망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어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답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
백만 년만에 나타나서 이상한 글 남깁니다 ㅋㅋ Big Stick Carrier 팀의 패스파인더 캠페인 ‘룬로드의 부흥 (Rise of the Runelords)’에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재밌는 세션도 많았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맵툴도 처음으로 제대로 써보았고, 다들 대단한 마스터와 플레이어셔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제가 헤맬 때에 참을성 있게 챙겨주시고, 작은 일에도 칭찬해주셔서 더욱 감사했고요. 스토리도 탄탄하고 방대해서 공식 시나리오의 힘을 느꼈달까요. 결국 저하고는 잘 안 맞았지만, 패스파인더를 통해 이어지는 D&D의 생명력과 재미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즐거운 RPG 라이프 되시길!

아이젠가르드 전기 3화

요약
벨레판은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쓰고 처형을 면하려고 망자 군단의 일원이 되었지만, 시해자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자 군단에서도 가혹행위를 당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시합’을 제의받고 호기롭게 심연의 길 깊이 내려갔다가 동료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위기에 빠진 그를 어둠 속에 속삭이는 목소리의 마물이 구해줍니다. 마물이 잡아다준 동료를 벨레판은 잔인하게 살해해버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뚤어질 테다 (주:그림 링크)
마물에게 폐허가 된 고향 스트롬가르드에서 광란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세칸은 역시 그 죄로 망자의 군단에 입단하고, 다른 망자들에게 패배주의에 빠졌다며 심연의 길로 혼자 정찰을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길을 잃고 라그나블레이드가 잠든 호수에 갔다가 검에 이끌리고, 그것을 잡는 순간 칼의 혼에 씌워서 이성을 잃습니다. 신참이 걱정되어 따라왔던 츤데레 벨레판을 공격하던 그를 보다못해 세칸의 죽은 연인 미크투의 혼이 라그나블레이드와 스스로 일체화되어 세칸을 진정시킵니다. 정신이 돌아온 세칸은 벨레판에게 물고문 타박을 들은 후 둘은 함께 귀환합니다.
한편 친위대의 말단 병사가 된 시베르트는 라그나블레이드를 찾는 명장 싱지드를 호위해 심연의 길로 내려오며 최근의 혼란한 정국을 함께 걱정합니다. 이때 이들은 올라오는 길이던 세칸과 벨레판과 마주치지요. 라그나블레이드를 알아보고 싱지드가 세칸과 이야기하는 동안 시베르트는 벨레판에게 왜 국왕 시해의 죄를 뒤집어썼느냐고, 지금이라도 진실을 증언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벨레판은 그렇게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며, 시베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결국 시베르트는 스스로 정권을 잡기로 하고, 독립적인 조직이었던 망자 군단이 시베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감상
혼탁한 세상에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긋나고 꼬이는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끝에 벨레판의 쿠데타 드립에 대해서는 호오가 교차하더군요. 민트님은 지나치게 빠른 진행이라고 생각하셨고, 크랑님은 그래서(?)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진도는 빨리 빼자는 쪽이라 재밌을 것 같은 거 기회가 보이자마자 해버리는 편입니다. 아끼다가 뭐 된다고, RPG에서는 어차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기에 속에만 품고 있으면 영영 못 꺼내기 쉽거든요. 그런 자유도 높은 서술 때문에  폴라리스 같은 규칙을 좋아하죠. 물론 그래서 산으로 가기 쉬운 점은 경계해야겠지만, 지금까지는 산으로 좋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망자 군단이 시베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목도 서술 교섭의 일부로 나온 내용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그래서 더 의외성 넘치고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키-암흑: “우리가 하나처럼 뭉쳐 강하게 대응하지 않는 한 스트롬가르드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될 거다!”
로키-암흑: 그 말과 함께 시베르트는 벨레판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 깨닫는다.
로키-암흑: 독재자의 길… 군사정권을 잡는 것.
애스디-바위: (쿠데타!)
로키-암흑: (음하하!)
로키-암흑: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강력한 아이젠가르드라는 비전에 시베르트는 마음이 사로잡힌다!
애스디-바위: 뿐만 아니라 망자의 군단은 시베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애스디-바위: 직위: 국왕 친위대의 기사 주제 소진 하겠습니다..
민트-모루: (약간 개연성이 부족하긴 한데.. 동의합니다)
크랑-화로: (음
애스디-바위: (아니면 반역에 연루된 자… 로 해서 진짜 반역자가 되거나; )
크랑-화로: 동의
로키-암흑: 뿐만 아니라 망자 군단이 공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할 수는 없으니 비밀리에 해야 한다.
로키-암흑: 주제는.. 직위는 이미 했고..
애스디-바위: (암흑은 우리 안에… ㅎ)
로키-암흑: 암흑은 우리 안에 있으므로 비밀리에? ㅋㅋ
애스디-바위: 더는 말하지 않겠다! 
애스디-바위: (실패해도 좋으니 성장해보자!)
로키-암흑: 광맥인가 보석인가
애스디-바위: 광맥일 거 같네요.
애스디-바위: 1d
dice-kun: (notice) 애스디-바위님의 굴림은 1d6 (1) = 1 입니다.
애스디-바위: (헉; 성공했어;;; 아악; )
애스디-바위: (실패하길 바랐는데…)
로키-암흑: ㅋㅋㅋㅋㅋㅋㅋ
애스디-바위: (마지막 서술만 취소니까, 공개 충성 맹세인가요…)
로키-암흑: (응)
실제로는 이렇게 된 일이었죠 ㅎㅎ 판정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역동적인 것이 폴라리스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점점 급박하게 치닫는 아이젠가르드의 운명은?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

싱지드 마크스톤

나만 싱글이네

지난 목요일에는 지하 드워프 도시 배경으로 한 폴라리스,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화에는 대장장이 싱지드가 데몬스폰과 싸울 궁극의 무기 라그나블레이드를 찾다가 공격해온 데몬스폰과 싸우느라 전사들이 죽어가는 동안 도망을 쳤죠. 비겁한 행위를 했으므로 성장을 굴린 결과 열정 이하의 결과가 나와 성장했고, 이로 인해 불화가 2점 증가하여 6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도시 내의 부패를 드러내는 사건을 정했는데, 이는 국왕 시해 사건으로 정했죠.
이 사건과 관련된 각자 장면에서 벨레판은 에르타와 함께 있다가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쓰고 (1화 장면보다 이전 시점입니다만), 시베르트는 이에 관여하였다는 누명으로 재판을 받아 친위대 최하위 병사로 강등됩니다. 이 일로 그는 제르문트에게 반대하는 귀족 비밀결사의 구심점이 되지만, 그의 연인 록산느가 제르문트에게 협박당해 첩자가 됩니다. 세칸은 광란중에 친위대원을 죽인 보복으로 국왕의 돌무덤에 갖히는데, 이때 국왕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왕비 이사르나에게 부탁해 구출됩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문을 연 세칸은 스트롬가드에서 죽은 연인 미크투와 빼어닮은 모습에 놀랍니다. 이로써 새로운 러브라인이! (…)
이번 화에는 저번의 요청대로 규칙을 설명하고 시작한 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판정규칙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더 극적인 내용이 된 것 같네요. 참가자 입장에서는 에르타가 벨레판이 발각되는 것을 막으려고 누명을 쓴 경위도 흥미진진했습니다. (그러게 왜 집에 가랄 때 안 가 이 여자야!ㅠㅠ) 대체로 1인당 한 장면씩 하면 무난한 것 같군요. 왕이 죽고 도시의 문제가 드러난 지금, 앞으로의 진행이 기대됩니다.

아이젠가르드 전기 1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백만 년만의 포스팅입니다. 지난번 목요일에는 폴라리스를 드워프 지하왕국 설정에 적용한 아이젠가르드 전기 1화 플레이를 했습니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Dragon Age: Origins)을 재밌게 했는데 거기 나온 드워프 왕국 오자마 설정이 폴라리스 RPG 원작과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한 캠페인입니다. 몰려오는 괴물 때문에 도시가 위기에 처했는데 정작 권력자들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는 암울한 설정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아니 그건 혹시 현실세계였나
배경은 자유도를 위해 게임하고는 분리해서 아이젠가르드라는 지하 도시로 했고, 주인공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심연의 길에서 괴물들과 싸우는 망자의 군단, 혹은 엘리트 부대인 국왕 친위대 소속으로 했습니다. 드워프 배경에 어울리도록 규칙 용어도 일부 바꾸었습니다. 마음-보름달-그믐달-후회 라는 참가자 역할은 바위-모루-화로-암흑 이 되었고, 서술 교섭을 위한 의식 언어도 ‘그러나 그러려면‘ 대신에 ‘네 뜻이 그렇다면‘이라거나,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대신 ‘무익하다!‘ 하는 식으로 간결하고 단호하게 고쳤습니다. (의식 언어 순서도에 사용한 글씨체 이름도 무려 양재튼튼체. 게다가 제가 리브르오피스로 그릴 때 배율 86%로 작업해서 부담스럽게 크군요(…))

폴라리스가 원래 그렇지만, 이번 플레이의 재미도 바위와 암흑 (마음과 후회)끼리 밀고당기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첫 테이프를 끊은 명문가 전사 시베르트 아이자른은 암흑의 따스한 배려로 초장부터 반역자로 몰리는 풍파를 겪게 되었지요. 원래는 약혼녀와 파혼시키려는 의도였는데, 교섭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전개가 되었습니다.
암흑: 정혼자를 기다리는 록산나의 마음은 그러나 편할 수 없었으니, 왕이 죽은 후 섭정을 맡고 있는 제르문트가 자신의 야심을 위하여 그녀와 시베르트의 정혼을 해제하였기 때문이다.
바위: 잠깐! 탐욕은 화를 부른다. ‘정혼녀 록산나 글리테렌’ 면모가 있는 운명 주제를 소진한다.
-> 탐욕은 화를 부른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는 방금 내놓은 것과 규모나 효과가 다른 서술을 내놓으라는 뜻이며, 요구하는 측에서는 인물의 주제 (직위, 운명, 축복, 능력) 중 하나를 소진해야 합니다. 각 주제는 초기화할 때까지 바위가 한 번, 암흑이 한 번씩 소진할 수 있습니다.
모루, 화로: 주제 소진을 인정한다.
-> 주제 소진이 적합한 지는 모루와 화로 (보름달과 그믐달) 둘이서 인정해야 합니다.
암흑: 쳇. 그렇다면… 섭정 제르문트는 아이자른 가문을 반역으로 몰았으며, 록산나를 겁박하여 미끼로 시베르트를 안심시키고 체포하려고 전사를 잠복시키고 있었다.
모루, 화로: 종전과 다른 서술이라고 인정한다.
바위: 그렇게 되었다.
-> 상대방의 서술을 받아들이고 서술 교섭을 끝내려면 ‘그렇게 되었다”로 마무리하면 됩니다. 이후에는 다시 자유 RP로 돌아가죠.
저 자비로운 암흑은 누굴까 이렇게 교섭을 마친 후에 RP를 통해서 시베르트는 잠복했던 전사들에게 포박당했고, 역시 서술 교섭을 통해 시베르트의 사건은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장면 커트.
4인 폴라리스의 묘미라면 마음과 후회 (여기서는 바위와 암흑)이 서로 복수전을 펼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후 사랑을 위해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쓴 벨레판 베라리트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암흑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감싸느라 국왕 시해자가 되어버린 벨레판이 사형을 면하기 위해 망자 군단에 자원하고, 입단을 위하여 장례식을 치르는 대목이었죠.
바위: 그때 군중 사이에서 다시 돌이 날아오자 벨레판은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날린다!
암흑: 도끼는 벨레판의 아버지 토르벤에게 적중한다.
바위: (으악!)
화로: (얼쑤!)
모루: (으익)
바위: 탐욕은 화를 부른다! 살육의 도끼 면모가 있는 축복 주제 소진.
모루, 화로: 인정한다.
암흑: 벨레판은 무의식중에 도끼를 연인 에르타의 남편 미칼에게 날렸고,
암흑: 에르타가 미칼을 감싸고 대신 등에 도끼를 맞는다.
화로: (인정!)
화로: 에르타가 애처롭게 미칼을 잠시 쳐다본후, 떨리는 눈동자로 벨레판을 바라본다
-> 화로는 정서적인 관계에 있는 주변인물을 담당합니다.
바위: 뿐만 아니라 에르타는 심한 부상을 입되 죽지는 않아야 한다. ‘망자 군단의 전사’ 면모를 근거로 직위 주제 소진.
-> ‘뿐만 아니라’는 (원래는 ‘그리고 또한’) 교섭 상대의 서술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추가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네 뜻이 그렇다면’ (‘그러나 그러려면’)과 같지만, 주제 소진을 요구하고 뒤에 올 수 있는 답변이 제한적입니다. (순서도 참조. ‘네 뜻이 그렇다면’에는 6개의 답변 가능, ‘뿐만 아니라’ 뒤에는 4개의 답변이 가능합니다.) 여기서도 주제 적합성은 모루, 화로가 인증하는데 분량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암흑: 뿐만 아니라 에르타는 부상으로 반신 불수가 되어야 한다. ‘암흑은 우리 안에 있다’ 면모가 있는 운명 주제 소진.
바위: 탐욕은 화를 부른다. 적합한 주제가 없으므로 남은 주제 2개 다 소진.
-> 적합한 주제가 없으면 주제를 2개 소진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바위는 주제를 모두 소진했으며, 주제를 초기화할 때까지 주제 소진을 요구하는 교섭어 (‘탐욕은 화를 부른다’와 ‘뿐만 아니라’)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자가 되었어 엉엉 위에 에르타 안 죽는다는 부분을 암흑이 뒤집지 못하게 뿐만 아니라를 사용했는데, 제 꾀에 제가 넘어갔군요.
암흑: 에르타는 벨레판이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바위: 일은 그렇게 되었다.
-> 더 망하기 전에 끝내야지… 시베르트 차례가 돌아오면 복수해줄 테다ㅠㅠㅠ
이렇듯 화기애애하게 원한을 불태우는(?) 구조는 바위와 암흑이 밀고 당기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전개와 변화를 가져오는 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망가지려나 얼마나 극적인 전개가 되고, 인물들과 그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해갈 지 기대됩니다. +_+
폴라리스의 서술 교섭 규칙이 의외성을 증진시키는 이유는 논의를 구조화하고 제한한 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탐욕은 화를 부른다’ 같은 교섭어를 보면, 현재 한 서술을 바꾸라는 요구는 하지만 어떤 서술을 대신 해달라는 요구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전 서술과 다른 것을 내놓으라는, 그리고 다른 서술이라는 인증을 받으라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요건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참가자의 마음에 쏙 드는 서술이 나올 확률은 적지만, 다르게 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서술이 나오는 의외성은 더욱 증진됩니다. 결국 ‘원하는 내용이 나오는’ 욕구충족성에 더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나오는’ 의외성에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플레이 스타일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비극을 지향하는 폴라리스에는 확실히 후자 쪽이 어울리는 것 같고요.
다른 주인공인 대장장이 싱지드 마크스톤은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병기를 만들고자 스승의 뜻을 어기고 심연의 길로 떠납니다. 심각한 갈등은 없이 서장에 가까운 장면이었지요. 그리고 다른 도시 스트롬가르드의 유일한 생존자 세칸은 구출하러 온 아이젠가르드 전사 중 하나를 광란 상태에서 살해하고, 그 죄로 망자의 군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베르트는 반역의 죄를 벗을 수 있을까요? 망자 군단의 전사로서 벨레판과 세칸의 미래는? 싱지드는 심연의 길에서 무엇을 발견할까요?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를 기대해 주세요~ 바위와 암흑으로서 저와 폭풍 디스를 주고받은 광열군, 차분한 RP를 보여주신 크랑님, 그리고 세칸으로서 열연하신 민트님 모두 수고하셨고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캠페인 종결자: 몸을 사리지 않는 당신이 아름답다

진행자 위시송군이 이미 글을 썼듯, 연초부터 한 마계인천 드레스덴 파일 RPG 캠페인이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도시를 양분한 뱀파이어와 타락천사라는 두 초자연 세력 사이에서 어느쪽 편도 들지 못하고 ‘이놈도 저놈도 싫어!’를 외치며 어떻게든 도시를 구해보려고 달린 끝에 달콤씁쓸한 해피엔딩을 맞았지요.

위군도 얘기했듯 이번 캠페인의 참가자분들은 상당히 대담한 RP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담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진행자가 우리에게 쉽지 않은 도전을 제시해주어서 가능했던 일이지요. 가족을 선택할 것인가, 악의 세력과 싸울 것인가? 더 많은 사람을 살리려고 한 사람을 죽일 것인가? 신념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도시의 번영과 정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극명한 선택상황 앞에서 참가자들은 선택을 피하거나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면돌파했습니다. 훈님의 캐릭터인 화염술사 제임스는 얼굴에 끔찍한 흉터를 입어가며 괴물과 싸워 이겼고, 나중에는 동료의 목숨을 구하려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강해지는 힘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캠페인 종결 후 인천 대화재를 일으킨다는 뒷이야기가..;ㅁ; 전혀 거리낌 없이 인물을 망가뜨리는 훈님의 투혼(?)에는 참 감명을 받았었죠.

키님의 캐릭터인 사이코메트리 능력자 주연은 신비한 힘을 부여해주는 반지의 속삭임을 따르면서 마이 푸레셔스 점점 도덕적 회색지대로 빠져들고 결국 임무의 성공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릅니다. 키님 역시 인물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고 어둠에 빠져드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훌륭한 RP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전 겁스 캠페인 PC를 재활용한 제 인물 리이는 살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댄스클럽 조명을 햇빛으로 바꾸는 주문으로 인천의 뱀파이어를 대부분 몰살시켰고, 그 결과 뱀파이어 세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대신 타락천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뱀파이어들 회사와 거래를 트고 있던 가족의 가세는 많이 기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너 죽고 나 죽자의 묘미인가…) 무엇보다 그 보복으로 오빠가 뱀파이어들에게 감염당해 피를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러한 극명한 선택과 대가를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스터인 위시송군이 그러한 상황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택도 녹록하지 않은 대가가 따르도록 하고, 선택의 극적 의미를 부각함으로써 ‘선택’이라는 RPG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진행이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런 성과에는 인물의 극적 키워드를 시트에 적어놓고 규칙상 효과를 부여한 드레스덴 RPG라는 규칙도 한 몫 했지요.

결국 이번 캠페인에서 배운 것은 RPG에서는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재지 말고, 빼지 말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재밌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야 신중해야겠지만, 허구적인 인물은 이런거 저런거 따지지 말고 적극 망가뜨리는 것이 RPG의 묘미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더 큰 즐거움을 위하여…

서울 캠페인 5화: 의심

11월 7일 플레이입니다.

1085659356.html

요약
희숙은 살인사건으로 들어온 시체를 부검하던 중 기묘한 금속 조각을 발견하고 태영이 쓰던 칼을 생각합니다. 태영은 서울역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낌새를 채고, 저승사자에게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를 듣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역 광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노숙자들이 사라진 현장을 조사합니다.
감상
다소 극적 추진력이 떨어지는 화였던 것 같습니다. 캐릭터 이야기를 어떻게 엮고 어떻게 플레이어 흥미를 이끌어낼 것인지가 이번 캠페인의 최대 과제인 것 같네요.

서울 캠페인 외전: 변상 계약

요약
웨어울프 환경보호 운동가인 알레한드로 페데리코와 이전에 그와 아마존 삼림 개발을 두고 적대했던 몰락 귀족 뱀파이어 프리스카 레 이스케에나르 보랑은 외국계 SN (Supernatural)이 자주 드나드는 이태원 주점 바 에볼루션에서 마주칩니다. 둘은 말다툼을 하다가 이내 치고받으며 78년산 샤토 라피트 병을 포함해 주점을 박살내 버리고, 주인장 서이화는 그들을 간신히 진정시키지요. 이화는 두 사람에게 변상을 위해 노력봉사를 하겠다는 계약을 받아내고, 두 사람은 두고 보자고 으르렁거리며 헤어집니다.
감상
정규 플레이어 두 분만 오셔서, 아무래도 플레이어 두 명으로 본편 진행하기는 좀 썰렁하다고 판단해서 (결국 이 다음 주에는 두 명으로 본편 진행합니다만) 본편에서 조금 벗어난 외전을 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본편보다 외전이 훨 낫군요(..) 논의해 가면서 하는 즉흥적인 진행이 제 취향에 좀 더 맞는다는 점도 있고, 프리스카와 알레한드로가 초점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인물이라 장면이 그만큼 재밌었던 점도 작용했습니다. 처음에는 장면의 귀결에 대해 뚜렷한 생각이 없었는데, 기물을 파손해서 변상에 코꿰이는 게 어떻겠느냐는 좋은 의견을 삭풍님이 제시해 주셨고, 이방인님이 특1등급 와인인 78년산 샤토 라피트를 깨버렸다는 멋진 애드립을 하셔서 재미있는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인물을 만들 시간은 없어서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면모와 기능을 채워넣게 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면 첫 판정이 인물의 능력치를 너무 좌우하는 문제가 있군요. 게다가 두 참가자가 경쟁하는 구도라 더욱 경쟁적으로 군비증강(..)을 한 것 같습니다. 덕분에 둘다 희대의 전투괴물이 되어버린… 일이 꼬여서 본편의 주인공 일행과 맞붙기라도 하면 아~주 재밌겠네요. (휘파람) 이 플레이는 전투 규칙을 연습한다는 의미도 있었는데, 와인 랙을 넘어뜨린다든지 잔을 깬다든지 하면서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재밌었습니다. 전투 자체는 참가자들이 별로 바라지 않은 이능배틀이기는 했지만, 가끔 먼치킨이 되어보는 것도 재밌죠.
알레한드로와 프리스카 두 사람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처음에 캠페인 설정하면서 생각했던 화두 중 하나를 대변하는 대립항이기도 해서 본편 캠페인에도 충분히 역할을 할 것 같네요. 얼결에 등장시킨 아이템 로보의 이빨도 본편 중에 써먹을 수 있을지도요. 좋은 조연도 건지고 플레이도 재밌었던,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세션이었습니다.

서울 캠페인 4화: 설명/외전: 습격

10월 24일 본편을 바탕으로 외전 회상을 한 액자식 플레이입니다. 로그 제공해주신 삭풍님께 감사드립니다.

1113743187.log

요약
절에 도착한 일행은 주지인 법현 스님에게 서지영 기자는 정림 본부 뒤편에서 습격당했는데 희숙의 남편 형준이 구출해서 이곳에 데려왔으며, 형준이 일행을 지켜보고 있다가 도와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희숙은 여러 해 전, 남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괴한에게 습격당했던 일을 회상합니다. 당시 수환은 병원에 가기 곤란한 사람을 아무것도 묻지 않고 현금만 받고 치료해주는 의사 (바로 희숙)를 찾아서 희숙이 사는 동네에 왔다가 희숙을 도와주고, 형준을 두 번 죽기 직전까지 두드려 팹니다(…)
현재로 돌아와 법현 스님은 형준이 희숙과 아이들을 해칠까 두려워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도 불가에 귀의해서 상당히 자제심을 키웠다고 하지요. 자세한 이야기는 형준이 돌아오면 둘이 만나서 설명을 들을 것을 권하지만, 희숙은 망설이며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서현은 굿을 하면서 엿보았던 형준의 모습, 죽은 혼이 몸에 부자연스럽게 묶여있었던 것을 회상하지만 법현 스님에게 에둘러 물을 뿐 희숙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합니다.
감상
역시 이능력 없는 완전 일반인이야말로 최강자군요(…) 수환의 전투력에는 정말 감탄했습니다. 전투 특화 인물인데다가 (가족을 잃기 전에 다녔다는 회사의 정체가 궁금하다!) 운명 점수도 넉넉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군요. 자칫하면 형준이 맞아죽어서 회상 외전 때문에 현재의 플레이가 송두리째 달라질 뻔했어요. 희숙이 초자연계의 유명한 의사라는 점은 개인적으로 좀 더 활용해보고 싶은 설정이고, 의사로서의 능력 자체도 좀 더 등장시키고 싶습니다.
이번 화에는 희숙이 오랫동안 반응이 없어서 어떤 문제가 있나 삭풍님과 나중에 얘기했습니다. 그때 토로하신 어려움이 희숙의 인물성이 잘 안 잡히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오체스님과 비슷하게 사전 논의가 없어서 기대치를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끼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편이 살아돌아오는 가능성을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일단 희숙의 컨셉은 남편의 죽음을 파헤친다는 쪽이었지 남편이 느닷없이 되살아나는 쪽은 아니기는 했으니까요. (으음 역시 다시 죽여야 (?))
지난화에 걱정했던 오체스님은 이번 화에는 대화 중심의 편안한 플레이라 그런가 잘 참여하셨습니다. 다른 캐릭터들과 잘 모르는 사이여서 그런지, 서현은 정보가 있어도 얘기해서 활용하게 하기보다는 혼자 알고 있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인물로서는 그럴 수 있는데, 그렇다고 서현이 그 정보에 입각해 다른 조치를 취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제공한 정보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컨셉 자체가 초자연을 피하는 인물인지라 뭔가 싸워볼가치가 있다는 신념이 있어야 적극적으로 협력도 할 텐데, 그 성장의 길이 잘 보이지 않는군요. 과거의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맞대결을 시켜서 한 번 된통 흔들어놓으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