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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슈터 SF RPG 노바(NOVA) 출시 확정!

태양이 폭발했습니다. 태양 파편이 태양계를 가로질러 지구와 달에 부딪혔습니다. 인류는 전멸에 가까운 끔찍한 피해를 입었고, 움푹 팬 달은 여전히 하늘에 못 박힌 채 희미한 빛을 발하며 우리의 종말을 밝히는 등대가 되었습니다.

태양샘

수백 년 후, 우리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태양 파편은 지구 표면에 내려앉아 식었습니다. 인류는 이 파편 주위에 모여 그 온기와 빛을 이용했습니다. 이제, 이 “태양샘” 덕분에,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이 새로운 에너지원은 인류의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태양샘 주변에 건설된 도시는 옛 지구의 유물과 새로운 테라의 기술이 혼합된 도시입니다. 우리는 어둠에 맞설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파크

우리는 태양샘의 에너지로 구동되는 강력한 외골격 슈트를 만들었습니다. ‘스파크’라고 불리는 이 슈트는 태양샘으로 보호받는 영역 너머의 어둠을 탐험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며, 저 바깥에 숨어 있는 모든 위협으로부터 조종사 자신과 인류를 보호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스파크입니다.

옛 지구는 폐허로 가득 차 있으며, 이 폐허 속에는 문명을 재건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이 있습니다. 황혼땅 저편에는 태양의 파편을 차지하려는 자들도 있고, 아예 파편을 파괴하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슈트를 입으세요. 새로운 새벽을 맞이할 시간입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 계약 작품, ‘노바’는 태양 폭발 후 완전히 바뀐 세상을 무대로 하는 SF RPG입니다.

여러분은 태양의 파편을 동력으로 하는 강력한 외골격 슈트 ‘스파크’의 파일럿들입니다. 스파크는 도시를 지키고, 폐허가 된 옛 지구를 탐사하며, 사람들을 위협하는 각종 위협과 싸우는 인류의 수호자입니다.

루멘 시스템

노바는 빠르고 강력한 전투를 플레이하는 데 중점을 두는 루멘(LUMEN)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루멘 시스템은 ‘워프레임’, ‘데스티니 가디언즈’ 등의 게임에서 선보인 루터 슈터 장르의 전투를 RPG로 구현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플레이어들은 플레이 동안 스파크의 강력한 능력과 무기로 여러 적을 무찌르고, 노획물을 얻어 캐릭터를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파크

플레이어들이 조종할 스파크는 폐허가 된 옛 지구, 이제는 “황혼땅”이라고 불리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 위해 설계된 특수한 외골격 슈트입니다. 총 아홉 가지 클래스로 구성된 스파크는 클래스마다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혼땅

황혼땅은 태양샘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저 너머의 어두운 땅입니다. 황혼땅에는 옛 지구의 막대한 지식과 각종 자원, 그리고 무궁무진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스파크들은 잃어버린 지식을 되찾기 위해,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를 위협하는 각종 위험요소와 맞서 싸우기 위해 황혼땅으로 출격합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는 이 황혼땅을 주무대로 합니다.

시는 언제?

현재 노바의 출시 예정일자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능하면 내년 초 크라우드 펀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메트로배니아풍 솔로 RPG, 불빛지기(Firelights) 출시 확정!

수 세대에 걸쳐 망자들은 반그림자의 땅 곳곳에서 죽은 육체에 갇힌 언데드가 되어 세상을 괴롭히고, 고통에 빠뜨렸습니다.

한때 망자들을 장막 너머로 인도하던 불빛지기들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은 남아있습니다.

수호자들의 세심한 보호 아래 마지막 고치가 방금 부화했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불빛지기입니다.

여러분은 생명 없는 괴물들 사이를 헤쳐 나가, 이 땅의 모든 옛 봉화에 불을 붙여서 다시 한번 망자들을 장막 너머로 인도해야 합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 계약 작품인 ‘불빛지기’(Firelights)를 소개합니다.

불빛지기는 역병의 땅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여정을 다룬 롤플레잉 게임입니다. 여러분은 부패로 인해 병든 지하세계에서 망자들을 다시 안식으로 인도하는 최후의 불빛지기 역할을 합니다. 이 작품은 “브레스리스”의 제작자 르네 피에르 디쉐이즈가 할로우 나이트, 오리와 눈먼 숲 등의 메트로배니아 비디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습니다.

플레이 방식

불빛지기는 6면체 주사위 두 개와 플레잉 카드 한 벌, 여정을 기록할 공책을 가지고 플레이를 합니다. 플레이어는 카드를 넘겨서 만든 새로운 구역에서 역경을 헤쳐 나가고, 위험한 괴물과 싸우고, 보물을 찾고, 봉화를 밝혀야 합니다.

이 게임은 플레이어들이 아이디어 표를 사용해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GM이 없는 솔로/협동 RPG입니다.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플레이어는 주사위를 굴려 표에 나온 소재에 따라 새로 이야기를 만듭니다.

쉽고, 간단하지만, 깊이 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불빛지기는 A4 두 장 분량의 짧고 간략한 게임이지만, 원하는대로 여정을 기록하고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혼자서, 혹은 같이 플레이를 하면서 여러분의 모험담을 만들어 보세요.

오픈 라이선스 RPG

제작자 르네 피에르 디쉐이즈는 “불빛지기의 인도”(Guide by Firelights) 아래 자유롭게 자매작을 만들 수 있도록 규칙을 저작자 표시 4.0 라이선스로 공개했습니다. (https://fari-rpgs.itch.io/firelights-creator-kit) 한국어판 불빛지기를 출시할 때, 제작자용 키트 역시 같이 번역해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언제 나오나요?

번역은 이미 끝났습니다. 한국어판 레이아웃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itch.io의 이야기와 놀이 사이트에 출시하겠습니다. 명확한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내놓겠습니다!

신규 계약 작품: 올드 스쿨 에센셜즈(Old School Essentials)

한국의 RPG 문화는 1994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RPG”가 발매되면서 본격적으로 막을 올렸습니다. 그때 그 시절, 여러분은 붉은 책(베이식 세트)에서 던전을 탐험해서 악의 하수인들을 무찔렀고, 파란 책(엑스퍼트 세트)에서 던전 밖 더 넓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영웅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이 “클래식 RPG”를 즐기고 있지요.

1974년 이래 반세기 동안 이 판타지 RPG는 수많은 판본을 통해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 스타일을 선보였고, 판본마다 언제나 큰 인기를 끌었지만, 1970~80년대에 나온 작품들은 특별합니다. 바로 이 때 던전 판타지의 틀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지요. 그 때문인지, 많은 팬이 그 시절 모험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OSR, 즉 ‘올드 스쿨 르네상스’는 1970~80년대의 규칙과 플레이 스타일을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서 새롭게 즐기자는 RPG 운동입니다. OSR 덕분에 수많은 옛 작품들이 재조명받았지만, 그중에서도 1981년에 나온 베이식 세트와 엑스퍼트 세트는(일명 “B/X”)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에 출시된 작품은 1981년 판본을 확장한 1983년 판본, “BECMI” 입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로운 계약 작품, 올드 스쿨 에센셜즈(Old School Essentials, 줄여서 OSE)는 바로 이 1981년 B/X 판본의 규칙을 명확하게 정리하고 다듬어서 새롭게 소개한 RPG입니다. OSE는 빠른 캐릭터 제작과 위험천만한 전투, 샌드박스식 플레이,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지원합니다.

국내에 나올 첫 번째 OSE 작품은 OSE의 내용을 수록한 ‘규칙서’(Rule’s Tome)와 1-2레벨용 던전인 ‘떡갈나무 속 구멍’(The Hole in the Oak)입니다. 떡갈나무 속 구멍에서, 모험가들은 나무에 난 구멍으로 들어가 넓게 펼쳐진 지하 던전을 탐사하고 각종 적과 장애물을 극복해서 보물을 얻어야 합니다.

물론, 저희는 이후에도 계속 OSE용 모험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신규 계약 작품: 브리치(The Breach)

1943년, 계몽 연맹 산하의 문화과학부에서는 뫼비우스-힉스가 연구한 시공의 흐름 이론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연구실의 입자 가속기가 폭발하면서, 우리 세계와 헤아릴 수 없는 이차원들 사이를 잇는 통로가 발생한 것입니다. 바로 “틈새(The Breach)”라고 불리는 차원문 말입니다.

폭발을 피해서 지하 방공호 “요새”로 대피한 연구원과 근무자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새로운 임무를 수행합니다: 요새에서 무기한 대기하면서, 틈새 너머로 감시원들을 보내 새로운 이차원들을 탐험하고 관찰하라.

그리고 25년이 흘렀습니다. 탐험과 연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바깥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부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감시원들은 오늘도 틈새로 나갑니다. 무한한 차원들을 탐험하면서, 계몽 연맹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서 말이지요.

블러드스톤의 제작자 마테오 시유테리의 새로운 작품인 브리치는 1970년대 SF 소설의 분위기를 구현한 레트로 SF 탐사 RPG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이차원을 탐험하는 과학자 겸 군인인 감시원들을 플레이합니다. 감시원들은 틈새 너머로 나가 새로운 정보를 얻고, 타 문명과 접촉하거나 자원을 수집하고, 때로는 생물을 사냥해 표본을 얻습니다. 이차원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는 장소인데다가, 한번 만들어진 틈새는 늘 불안정합니다. 감시원들은 새로 형성된 틈새가 사라지기 전에 임무를 수행한 다음 복귀해야 합니다.

브리치는 ‘브레스리스’라는 미니 좀비물 RPG의 공개 규칙을 기반으로 합니다(SRD 홈페이지 링크). 브레스리스에서는 각종 특성치를 다면체 주사위로 표현하는데(횃불 d4, 민첩 d8 등), 위험한 상황에서는 해당 특성치를 사용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특성치 판정은 주사위를 굴려서 1-2가 나오면 실패, 3-4가 나오면 대가가 따르는 성공, 5 이상 나오면 성공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모든 특성치는 사용할 때마다 주사위가 한 단계씩 낮아집니다(d12 » d10 » d8 » d6 » d4). 감소한 특성치는 휴식을 통해 회복할 수 있지만, 휴식을 할 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합니다.

브리치는 브레스리스를 바탕으로 각종 설정과 추가 자료, 탐험물에 어울리는 게임 절차를 덧붙여서 내용이 훨씬 방대하며, 아직도 제작이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번역될 한국어판은 완성본을 낼 예정입니다.

브리치는 현재 준비 중인 작품들의 출시가 끝난 다음 발매할 예정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블러드스톤: 액션 호러 RPG 한국어판 출시.

저주받은 도시 헬리위어에서, 옛 존재들의 차원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승천 의식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정이 되기 전, 의식을 거행하는 사도를 찾아 사냥해야 합니다. 의식을 막을 방법은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액션 RPG, 블러드스톤의 한국어판 PDF를 itch.io에서 판매 중입니다!

링크: 블러드스톤: 액션 호러 롤플레잉 게임 by StorynGame (itch.io))

블러드스톤은 어떤 RPG인가요?

  • 단편용 RPG

블러드스톤은 단편용으로 만든 RPG입니다. 여러분은 저주받은 도시 헬리위어에 파견된 사냥꾼을 플레이하며, 사도를 사냥하면(혹은 사냥에 실패하면) 게임이 끝납니다. 

이 게임은 도시 제작 규칙과 아이디어 표를 통해 매번 다른 모험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플레이할 때마다, 매번 다른 사냥꾼이 언제나 새로운 장애물과 난관을 맞이할 것입니다.

  • 포지드 인 더 다크

블러드스톤은 ‘어둠 속의 칼날’과 그 자매작들에서 사용한 ‘포지드 인 더 다크’ 규칙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단편용에 맞추어 많은 부분이 간략화되고 개조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 스트레스는 ‘블러드본’ ‘다크 소울’ 등의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체력 규칙으로 대체됩니다.
  • 캐릭터 제작은 몇 가지 질문과 선택(출신, 의복, 무기)으로 이루어집니다.
  • 행동 수치 용맹결의재치, 이 세 가지로 구성됩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만든 한국어 캐릭터 시트를 구경해 보세요! (링크)

블러드스톤은 One Seven Design의 존 하퍼가 제작한 ‘어둠 속의 칼날’을 기반으로 만든 게임이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 3.0 Unported 라이선스를 통해 사용이 허락되었습니다. 한국어판 블러드스톤 RPG의 번역 및 출판은 이야기와 놀이가 담당합니다.

D&D의 탄생

트위터에 썼던 ‘프리 크릭스슈필이 D&D 탄생에 끼친 영향(링크)에 좀 더 살을 붙여서 D&D가 탄생한 과정을 적어봤습니다.

1974년 탄생한 TRPG 던전스 앤 드래곤스(D&D)는 반세기 동안 게임 문화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고, 지금은 전세계 5천만 명 이상의 팬이 플레이하는 거대한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D&D의 창시자는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인데, 저는 D&D를 ‘게리 가이각스가 만든 육체에 데이브 아네슨이 생명의 숨결을 집어넣은 창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D&D의 뿌리를 이야기하려면 ‘프리 크릭스슈필’부터 언급해야 합니다. 크릭스슈필(독일어로 ‘워게임’)은 19세기 프로이센 육군에서 장교들에게 전술 교육용으로 실시한 이래 널리 퍼진 워게임입니다.

크릭스슈필에서는 시야 제한 구현이나 복잡한 규칙을 해석하기 위해 심판을 두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규칙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심판들은 처리에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게다가 규칙이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때로는 현실과 동떨어지는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바로 “딱딱한(rigid) 규칙 대신 심판이 자유롭게(free) 상황을 판단하고 처리하는 방식의 워게임”, 프리 크릭스슈필입니다.

프리 크릭스슈필은 이후 미국의 워게임 ‘스트라테고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트라테고스는 19세기 당시 장교 훈련용으로 흔히 사용되던 워게임이었으나, 이후 20세기 들어서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1967년, 워게임 팬이자 제작자 데이비드 위슬리는 미네소타 대학교 도서관에서 스트라테고스를 발굴하고, 이 게임의 각종 요소를 자신이 속한 게임 동호회 ‘미드웨스트 밀리터리 시뮬레이션 어소시에이션(MMSA)에 소개하고 보급했습니다. MMSA의 멤버 중에서는 데이브 아네슨도 있었습니다.

1969년, 데이비드 위슬리는 프리 크릭스슈필의 원칙을 적용한 ‘브라운스테인’을 만들어 테스트 플레이를 해보기 시작합니다. 브라운스테인은 나폴레옹 시대 가상의 독일마을을 배경으로 한 워게임입니다.

브라운스테인은 플레이어들이 지휘관이 되어 병력을 운영하던 기존 워게임과 달리 여러 플레이어가 마을 사람 개개인의 역할을 맡아서 각자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운영하는 방식이었는데, 원래는 플레이어들이 별도의 방에서 각각 심판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선언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캐릭터 연기를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마을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두 플레이어가 예상치 못하게 서로 결투를 시작해서, 웨슬리는 즉석에서 결투 규칙을 고안했다고 합니다. 웨슬리는 이 테스트 플레이는 ‘혼란한 실패작’으로 생각했지만, 플레이어들은 이 롤플레이를 매우 즐거워했고, 웨슬리에게 게임을 더 돌려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군대에 간 웨슬리를 대신해 데이브 아네슨이 브라운스테인의 심판을 맡았고, 그는 브라운스테인을 개조해서 판타지 세계에서 모험가들을 플레이하는 배경 무대인 ‘블랙무어’를 플레이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데이브 아네슨은 ‘캐슬 앤 크루세이드 소사이어티(C&CS)’라는 소모임에도 가입했는데, 이 소모임은 게리 가이각스가 운영하던 중세 미니어처 워게임 동호회였습니다.

게리 가이각스는 C&CS를 운영하면서 ‘그레이트 킹덤’이라는 가상의 판타지 왕국과 이 무대를 배경으로 플레이하는 ‘체인메일’이라는 워게임을 만들어서 C&CS 회원들이 왕국 내 각 지방을 맡아 워게임을 플레이하게 했습니다. 데이브 아네슨은 블랙무어의 무대를 그레이트 킹덤에 통합시키고, 체인메일의 1:1 스케일 플레이, 마법, 몬스터 규칙 등을 적극 차용합니다. 그러면서 가이각스와 아네슨은 적극적으로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1972년 가을, 아네슨은 가이각스가 사는 레이크 제네바로 가서 블랙무어 플레이를 시연합니다. 이 게임의 잠재성을 깨달은 가이각스는 아네슨과 협력하여 ‘던전스 앤 드래곤’의 개발을 시작합니다.

2021년 이야기와 놀이 소식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공지사항을 올립니다.

우선 기존 출간 예정 작품의 진행상황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전광세계 배스천랜드(Electric Bastionland)

Electric Bastionland RPG by Chris McDowall — Kickstarter

일렉트릭 배스천랜드의 번역명은 ‘전광세계 배스천랜드’로 정했습니다. 현재 초벌번역이 거의 끝났습니다. 번역을 다듬은 다음, 올해 펀딩을 시작하려 합니다.

 

푸른 수염의 신부

Bluebeard's Bride by Marissa Kelly — Kickstarter

푸른 수염의 신부는 기존 계획보다 번역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명확한 일정은 미정이지만, 내년 중순 안에는 펀딩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모래 서걱대는 소리

A Rasp of Sand: A Roguelike Tabletop RPG Experience by David Cox — Kickstarter

모래 서걱대는 소리는 전광세계 배스천랜드가 끝난 다음 펀딩 또는 일반 출판으로 발간하려고 합니다(2022년 초중순 예정).

 

 

새 출간 예정 RPG: 원더홈(Wander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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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길만의 노래가 있습니다. 산꼭대기를 가로질러 날아갈 때도, 작고 잊힌 신들이 있는 시궁창에서 잠들 때도 노래는 항상 귓가에 들렸지요. 그 노래는 제 머리칼에 단단히 엉키고, 장화 밑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어떤 날은 폭풍보다도 더 크게 온몸을 훑고 지나갔고, 또 어떤 날은 그런 노래가 있었는지 잊을 정도로 아주 희미한 흥얼거림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길의 노래에 굳건히 매달려서 망토를 걸치고, 지팡이를 꼭 붙잡고,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길 것입니다.

저는 그 노래를 믿습니다. 저는 길을 믿습니다. 언젠가, 어느 마을에 도착해서 풀밭에 누워 여기야말로 내가 있을 곳이라고 깨달을 거라 믿습니다. 길은 저를 집으로 인도하는 강물입니다.

여러분이 손에 든 이 책에는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풀이 무성한 벌판과 이끼 낀 신전이 있는, 목동이 호박벌 떼를 몰고 다니는, 선드레스를 입은 토끼와 멜빵을 찬 도마뱀붙이가 사는, 별이 빛나는 밤하늘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그 세상으로 떠날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집채만 한 사슴벌레를 길들이고, 떠다니는 산의 왕과 말싸움을 벌이고, 구름 위로 날아다니는 열기구 속에서 사랑에 빠지고, 바랄 수 있는 가장 멋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겠지요. 이 여정은 몇 달, 몇 계절, 몇 년에 걸쳐 계속될 것이며, 우리는 그동안 나뭇잎이 떨어지고, 다시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어디로 갈까요? 무엇을 볼까요? 함께 찾아야 합니다. 같이 떠나지 않을래요?

제이 드래곤이 만든 원더홈은 포섬 크릭 게임즈(Possum Creek Games)에서 2021년 출시한 동물/여행 RPG입니다. PC들은 각자 다양한 이유로 여행을 떠난 동물로, 여정 동안 새로운 풍경과 친구들을 접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진정한 집을 찾아서 여행을 마치지요.

원더홈은 토베 얀손(무민), 브라이언 자크(레드월), 미야자키 하야오(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작품에서 큰 영향을 받은 RPG입니다. 게임의 무대인 ‘헤스’는 몇 번의 전쟁을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고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 땅의 동물 종족들은 다양한 문화를 지니고 살아가며, 여행객들에게 친절합니다. PC들이 접할 다양한 자연은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며, 그 나름의 비밀과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규칙으로 볼 때, 원더홈은 BOB(Belonging Outside Belonging)을 사용하는 RPG입니다(링크). 기본적으로 원더홈의 플레이어들은 마스터 없이 함께 여행 이야기를 만들면서 원할 때 각자 NPC나 장소를 맡아 플레이합니다. 하지만 원한다면 마스터 역할을 할 ‘가이드’를 정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주사위를 사용하는 대신 캐릭터가 역경에 처하거나 재미있는 일을 겪을 때 토큰을 받고, 무언가 맡은 일을 해내거나 활약을 할 때 토큰을 주는 방식으로 판정을 처리합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원더홈 읽기 타래(링크)를 보세요.

원더홈은 전광세계 배스천랜드와 푸른 수염의 신부가 끝난 다음, 내후년 펀딩을 통해 출간할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새 계약 작품: 서걱대는 모래 소리(A Rasp of Sand)


아주 오래전, 여러분 조상들은 녹음이 무성한 어느 대륙의 해안에서 큰 산맥 사이 계곡을 덮고 있던, 저지대의 어느 젊은 숲 근처에 마을을 세웠습니다.

조상들은 땅과 바다의 정령들에게 새로운 마을을 위한 깨끗한 수원(水源)을 달라고 빌었습니다. 정령들은 물과 식량이 풍족한, 마을을 짓기 좋은 다른 장소들을 환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조상들은 이 숲에 훌륭한 목재가 나고, 산에는 값진 광석이 채굴되며, 바다에는 물고기가 무성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소를 정착지로 택했지요. 조상들은 정령들에게 계속 간청했으나, 정령들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상들은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정령인 ‘깊은 곳의 여왕’은 자신의 왕관을 사원에 두었는데, 이 왕관에는 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조상들은 이 사원이 바다를 내려다보는 높은 산의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원을 찾아 왕관을 훔쳤지요. 깊은 곳의 여왕은 여러분 조상들의 오만함에 마음이 상했으나, 창의적이고 똑똑한 인간 아이들을 사랑했기에 왕관을 가져가도록 허락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왕관을 사용했을 때, 여왕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조상들은 큰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불행히도, 솟아나온 물은 자연스럽게 낮은 장소로 흘렀습니다. 깊은 곳의 여왕의 바다 안개와 산의 정령 ‘엘콘트라’의 풍부한 산의 광물 사이에서 태어난 그 숲으로 말입니다. 조상들은 숲을 물에 가라앉혔고, ‘녹색 왕자’라고 불리던 젊은 숲의 정령 역시 빠져 죽었습니다. 어머니인 깊은 곳의 여왕은 분노와 슬픔에 가득 차 인류에게 징벌을 내리기로 맹세했습니다.

그리하여 비가 계속, 계속, 수년간 계속 내렸습니다. 조상들이 물에 휩쓸린 원래 마을을 버리고 근처 산꼭대기로 터전을 옮길 때까지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이제 그 산은 여러분이 지금 사는 섬이 되었고, 수평선 너머 여왕의 사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원으로 가 왕관을 돌려주거나, 돌려주려 애쓰다가 죽을 것입니다. 어떻게 되든, 희생이 치러질 때마다 비는 25년간 지상을 삼키지 않기 때문에, 남은 인류는 이 물이 차오르는 땅에서 언제까지나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 채 남은 몇몇 섬에서 근근이 생존할 것입니다.


이야기와 놀이의 새 계약 작품, 서걱대는 모래 소리(A Rasp of Sand)를 소개합니다.

 

서걱대는 모래 소리?

서걱대는 모래 소리는 과거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에 한 세대마다 희생을 치르는 가문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네이브 RPG 기반의 어드벤처입니다. 수많은 희생이 있은 다음, 처음으로 여러분의 가문들은 여러 계승자를 함께 보내 사원 깊은 곳에 머무는 여왕에게 왕관을 돌려주고 죄를 씻으려 합니다. 비록 이번에는 실패하더라도, 분명 다음 세대의 계승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대를 이어 반복하는 로그라이트풍 어드벤처

여러분은 각자 특정 가문의 계승자가 되어 다 함께 깊은 곳의 여왕이 거주하는 사원으로 떠납니다. 모험 중 누군가가 죽으면 희생이 완료되면서 그 세대의 모험은 끝납니다. 나머지 PC들은 은퇴하여 마을로 돌아가고, 다음 세대의 계승자들이 선대의 경험과 지식을 조금씩 물려받아 다시 사원으로 들어갑니다.

 

플레이어들의 숙련을 요구하는, 매번 변화하는 던전

로그라이트를 표방하는 어드벤처답게, 여왕의 사원은 세대마다 매번 모습이 바뀌고 새로운 사건들과 괴물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던전의 패턴을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결국 수많은 위험을 돌파하고 깊은 곳의 여왕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네이브용 OSR 어드벤처

서걱대는 모래 소리는 이야기와 놀이에서 공개한 RPG인 네이브를 위한 어드벤처로, 이 어드벤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와 물품, 마법, 괴물들을 모두 수록했습니다. 여러분은 네이브만 가지고도 완벽하게 서걱대는 모래 소리를 즐길 수 있으며, 원한다면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블랙 핵처럼 국내에 번역된 다른 OSR 자매작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 나오나요?

빠르면 올해, 늦으면 내년에 나옵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낼지, 그냥 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역사를 만드는 RPG, 마이크로스코프 펀딩 시작!

이야기와 놀이의 신작, 마이크로스코프 펀딩이 시작됐습니다. (링크)

마이크로스코프는 2011년 벤 로빈슨이 만든 RPG로, 플레이어 2~4명이 모여 즉석으로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 탐구하는 롤플레이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은하제국의 흥망성쇠”,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은 후의 세계”처럼 하나의 핵심 아이디어를 만든 다음, 이 아이디어를 토대로 장대한 역사를 만듭니다.

이번 펀딩은 10월 24일까지 진행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참여해 주세요!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기획회의 486호(2019.04.20)에 기고한 글입니다. (리디북스 링크)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어느 놀이 이야기

“여러분 앞에는 3m 정도 높이의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었고, 튼튼해 보이네요. 덫은 없어 보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반대편에서 막은 것 같습니다.”

“문 상태는 어떤가요?”

“적어도 몇백 년은 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썩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들이받아서 부수겠습니다.”

“근력 판정을 하세요.”

“주사위를 굴려 보겠습니다… 성공했네요!”

“문은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서집니다. 문 안쪽 방 한가운데는 거대한 악마상이 있고, 석상 앞에는 붉은 피부의 괴물이 이쪽을 바라봅니다. 한눈에 봐도 무척 화난 것 같네요.”

“두말할 것도 없네요. 칼을 뽑습니다.”

“저는 일행들에게 축복의 마법을 걸겠습니다.”

“좋아요, 전투 준비하세요.”

위의 이야기는 즉흥극도 아니고, 소꿉놀이도 아니다. 더더구나 컴퓨터 게임도, 보드게임도 아니다. 바로 TRPG를 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다.

TRPG?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즉 TRPG는 플레이어들이 테이블에 모여 상상 속 무대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맡아서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선언하는 역할연기 놀이이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 등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캐릭터들의 행동이 성공했는지는 정해진 규칙과 지침에 따라 결정한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은 게임마스터 역할을 맡아 캐릭터들이 만날 친구나 적, 그리고 세계 그 자체를 연기하고 전체 플레이를 조율한다.

난독증도 치료하는 TRPG의 매력

2017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는 ‘던전스 & 드래곤스의 기이한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TRPG의 대표주자인 ‘D&D(던전스 & 드래곤스)’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는 자신의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해 D&D의 게임마스터를 맡고 있는 존 프리먼이 겪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느 날, 어느 플레이어의 어머니가 길가에서 존을 불러 세우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을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 여성의 아들은 난독증을 앓고 있었고, 몇 주 전부터 D&D를 플레이하기 전에는 단 몇 초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아이는 밤을 새워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어떻게 했든 간에, 그 비법을 알려주세요.”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조차 글을 쓰게 한 TRPG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TRPG는 게임이다

아이가 TRPG에 푹 빠진 이유는, TRPG가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을 갖추고 규칙을 추가한 놀이, 즉 ‘게임’이다.

사람이 즐기면서 무언가를 할 때 발휘되는 잠재력은 무척 크다. 공자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아이 역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놀이로 인식했기에 장애마저 극복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글을 쓸 정도로 몰두할 수 있었다.

게임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GAME-상호작용 이야기》(이용설 저)에서는 게임을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성을 조합한 매체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상대에게 알리려는 내용을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책이나 TV, 영화처럼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와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취하는 행동에 반응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 행동과 반응이 연쇄 과정을 일으키면서 상호작용성을 만든다. 즉, 게임은 사용자를 스토리텔링 속에 참여하게 하는 매체이다. 직접 경험해서 받아들이는 내용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순자가 “듣지 않음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TRPG는 즉흥극이나 소꿉놀이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형식을 갖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TRPG는 플레이어가 선언한 행동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 속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분명한 규칙을 가졌다. “내가 너를 칼로 찔렀어.” “아냐! 네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널 총으로 쐈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TRPG에서는 규칙을 사용해 결과를 명확하게 정한다.

이처럼 TRPG가 게임이 된 이유는, TRPG가 게임말을 가지고 테이블 위에서 상대의 말과 싸워 이기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TRPG의 탄생과 발전

TRPG의 역사는 게리 가이각스가 TRPG 회사인 TSR을 세우고 D&D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게리 가이각스는 플레이어들이 각자 게임말을 하나씩 맡아 플레이하는 미니어처 워게임 ‘체인메일’을 만들었는데, 이후 게리 가이각스는 체인메일을 데이브 아네슨의 아이디어에 따라 가상의 세계에서 캐릭터들이 모험을 하는 형식으로 바꾸어서 1974년 최초의 D&D를 완성했다.

하지만 TRPG는 탄생할 때부터 워게임이나 보드게임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TRPG의 진짜 목표는 정량적이고 명확한 승리 대신 플레이어들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은 D&D 플레이어 핸드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재미를 위해서다. 각각의 플레이들은 재미를 맛보면서 “승리한다” – 그러므로 당신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승리한 것이다! 당신의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도 재미를 맛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당신은 언제나 새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실제의 생활에서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어가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재미는 게임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지, 끝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게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게 되고,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전드 오브 더 파이브 링스, ‘세븐스 씨’ 등의 TRPG을 만든 게임 제작자 존 윅은 “만약 체스 말에 이름을 붙이고, 각 말이 가진 동기에 따라 말을 움직인다면, 이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즉, TRPG는 승리를 위해 사용하고 소모하는 게임말을 캐릭터로 삼아 동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된 것이다.

이후 TRPG는 ‘크툴루의 부름’, ‘트레블러’,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등의 작품이 나오면서 호러, SF, 어반 판타지 등 여러 장르로 뻗어 나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 RPG의 붐과 함께 ‘폴라리스’, ‘평온한 한 해’, ‘퀼’ 등 게임마스터를 두지 않거나, 플레이어들이 게임마스터처럼 세계를 관리하거나, 아예 혼자서 즐기는 규칙을 제공하는 등 실험적인 게임들도 많이 등장했다.

꺼지지 않는 TRPG의 인기

하지만 ‘규칙에 따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게임’이라는 TRPG의 형식은 오늘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이 계승했고, 그에 따라 TRPG가 다른 게임에 비해 가지고 있던 장점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1970년대 중반 D&D에 영감을 받아 그 경험을 모사하기 위해 등장한 CRPG는 이후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콘솔의 발전과 함께 플레이어들에게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를 제공하며, 인간 게임마스터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펼친다. 게다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가상 세계 안에서 동시에 협력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TRPG는 오히려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D&D 5판의 출판사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1997년 TSR을 합병한 이후 가장 많은 D&D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2016년 한 해 동안 D&D를 즐긴 미국인의 수는 860만 명에 다다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한 TRPG를 즐기는 미국 성우들이 진행하는 D&D 플레이 ‘크리티컬 롤’은 2016년 1월 기준으로 트위치에서 누적 시청 시간 3700만분을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1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TRPG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90년대 중반 D&D(1983년 개정판)가 한국에 소개된 후 잠시 인기를 끌면서 몇몇 작품들이 추가로 소개되었다가, 초여명의 ‘겁스’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긴 침묵에 빠졌던 한국의 RPG 시장은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작가 및 성우 등이 ‘던전월드’를 플레이한 영상 ‘침X펄X풍 TRPG’가 화제가 되었다.

CRPG의 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여전히 TRPG를 즐길까? CRPG가 대체할 수 없는 TRPG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

CRPG와 TRPG의 가장 큰 차이는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유무이다. CRPG는 제작자가 완성한 스토리텔링이다. CRPG의 이야기에는 바꿀 수 없는 끝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이에 대응하는 게임 세계의 반응 역시 제작자들이 준비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공략법이 준비된 대작 RPG라도 몇십 시간 동안 플레이를 즐긴 다음에는 콘텐츠 대부분을 소진한 채 다음 작품이나 업데이트, 또는 DLC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직접 MOD를 만들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메일, SNS를 통해 제작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즉석에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TRPG는 즉흥적인 창조력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소통이 필수적인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가는 놀이는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임마스터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분기와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도 없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심지어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석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혼자만의 결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TRPG는 모두 같이 즐기는 게임이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는 순간 플레이는 재미없어 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게임마스터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부사항을 덧붙이고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결말이나 반전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즉석에서 새 규칙을 고안할 때도 있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할 뿐만 아니라, 게임마스터에게 제안을 던져 이야기의 방향을 새로 정하기도 한다.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맥락

이렇게 모두가 함께 창조력을 발휘해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테이블에는 플레이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나 배경지식, 즉 그 테이블의 맥락이 생긴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서로를 믿고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므로 맥락이 만들어진 테이블에서는 불확실성이 플레이를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질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다. 맥락은 CRPG처럼 복제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며, 오직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플레이를 해야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작품

결국, TRPG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미리 완성된 기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고 좌충우돌하며 점점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오직 우리만이 그 내역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겁스에서는 “RPG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다른 문화는 최대 다수의 관객을 노리고 만들어지지만, RPG 플레이는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수제품”입니다.

자기 자신이 빚어낸 작품은 그 어떠한 걸작보다도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TRPG는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