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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의 제다이 11화 – 카론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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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은신처에서 나온 제다이들은 어떻게 할까 잠시 얘기하다가 센이 카론 방송사의 방송망을 해킹해서 신토넥스에 대한 에반스와 아를란의 증언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시청에 에반스 부자를 내려놓은 뒤, 도주하려는 다쓰 프리아트를 우주항에서 붙잡기로 합니다. 시스템과의 악전고투(..) 끝에 센은 해킹에 성공해서 녹화된 증언을 내보내고, 시청에 들러 에반스 부자를 내려놓고 문서화된 증거를 데란 펠에게 전한 제다이들 (+아를란)은 우주항으로 향합니다.

정문 경비가 매수당했는지 시간을 끌자 차단기를 부수고(..) 들어간 제다이들. 자락스는 라이트세이버로  신토넥스 전용기 문을 자르고 들어가고, 셋은 신토넥스 경비 제복을 입은 시스와 마주하게 됩니다. 자락스의 화려한 예측불허의 검술,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 공격하는 센의 침착한 전투 스타일에 시스들은 여지없이 무너져 가고, 자락스의 포스공격으로 전체 마무리. 하지만 싸움중 다크포스를 남발하던 아를란이 갑자기 쓰러지고,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 상황에서 마침내 다쓰 프리아트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센의 예지력

자락스 토레이: “그 다스 프리아트를 때려잡는 일에서 손 떼라고 아를란을 설득하는건… 그건 자신이 없군요.” -빙긋 웃으며
센 테즈나: “뭐 굳이 설득으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무덤덤히 차를 몹니다.

결국 다쓰 프리아트가 나타나기도 전에 제풀에 쓰러진 아를란이었다..(..) 싸움중에는 18d6을 굴려서 6이 하나도 안나오더니만 피해 굴림에는 3d6에서 6 6 6 나오고 뻗은, 나름대로(?) 대단한 녀석입..

포도원의 제다이 시범플레이 완결/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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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의 제다이 시범 플레이였던 기엔나 편을 자락스 중심의 외전으로 대충 완결지었습니다. 시범 플레이 2회 중 자락스와 다룬이 병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마무리짓고 몇가지 후속 장면을 덧붙인 것입니다. 왠만한 정규 플레이만큼 길면서도 사건 자체보다는 엄청난 양(..)의 대사와 감정의 흐름에 중점을 둔 플레이가 되었군요.

다룬 오르가나가 루바트의 동생이라는 얘기를 듣고 동요하던 자락스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이번에는 다룬이 동요합니다! (..) 자락스는 용서를 구하면서 루바트의 자리를 차지한 자신이 한참 부족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보입니다. 하지만 다룬은 냉담하기만 합니다.

자락스는 플린 볼렌이 시스와 협력하고 있다는 다룬의 말을 스승에게 전하고, 마스터 모트는  오르가나가 상당한 야심가이며 어쩌면 볼렌 의원의 입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제다이를 이용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렵게 얘기합니다. 자락스는 루바트의 빈자리를 메꿔야 한다는 강박감은 자신 뿐만 아니라 다룬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지요.

조사 결과 볼렌이 시스에게 협박당하고 이웃 티카샨의 압박에 시달린 끝에 결국 시스에게 어느정도 활동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오르가나는 기다렸다는듯 그를 구속합니다. 하지만 영주의 구속 때문에 혼란은 오히려 가중되고, 마스터 모트는 오르가나에게 볼렌을 처벌하는 것보다는 시스와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역설하지만 루바트의 기억을 들추는 다룬의 냉소 앞에 할말을 잃고..

보다 못한 자락스가 끼어들어서 오르가나와 첨예하게 대립합니다. 공화국의 법과 권위를 내세우며 자락스의 시스 전적을 들먹이는 다룬에게 자락스는 현재 상황은 다쓰 세데스가 사용하는 적진 분열 수법과도 유사하다면서, 시스의 작전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형을 죽인 시스의 이름에 냉정을 잃은 다룬은 루바트의 죽음에 대해 공의회와 마스터 모트에게 비난을 퍼붓고, 자락스는 루바트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다룬의 아픔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제다이를 신뢰해줄 것을 호소합니다. 결국 다룬은 제다이가 어떻게 하는지 똑똑히 지켜보겠다며 일단 후퇴.

다룬이 나간 후에 마스터 모트는 자락스도 다룬도 루바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리를 발견해야 한다며, 자락스에게 반드시 루바트를 뛰어넘으라고 말합니다. 볼렌 의원을 풀어주러 가면서 자락스는 루바트와 다룬, 어느 쪽에도 지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집니다.

포도원의 제다이 시범 플레이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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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옛날(..)에 했던 포도원의 제다이 시범 플레이 2회입니다. 진행이 아닌 참가자들 플레이 보는 게 목적이었던데다, 내용이 정신도 없고 완결도 못 본 등의 이유로 당시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방인님과의 1:1로 기엔나 줄거리를 대강 마무리지으면서 미관상(?) 올려둡니다.

아난케, 크라일드, 라스는 문제의 가속패드를 조사하기 위해 호수로 나가던 중 저택의 하인에게 엔진실에서 살인사건이 난 얘기를 듣고 달려갑니다. 엔지니어 중 하나가 살해당한 모양인디… 아마 제 인터넷 사정으로 여기에서 로그가 끊겨서 내용연결이 안됩..(..) 그러다가 나이트 로크락이  기엔나에 도착해서 자락스와 마스터 모트, 플린 볼렌 영주와 인사한 것 같습니다.

한편 라스는 경비책임자에게 시스에 대한 수사의 전권을 제다이들에게 넘겨달라고 설득합니다. 또한 아난케와 크라일드는 조사 방법을 논의하다가 크라일드는 손님 명부를 조사하러 가고, 아난케는 로크락과 합류해서 호수로 나가서 조사합니다. 조사 결과 내부인 소행이라는 증거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자락스는 다룬 오르가나를 찾아가서 얘기를 나눕니다. 오르가나 의원은 플린 볼렌이 시스와 협력하고 있으며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죽은 루바트가 다룬의 형이었다는 것도 밝혀집니다.

아난케과 로크락은 아일레 시에 있는 캔티나로 찾아가 오르가나가 타고 있던 배를 젓던 사공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스의 습격을 받는데… 여기서 시간관계상 끝! (..)

포도원의 제다이 10화 – 카론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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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란과 에반스 부자와 함께 숙소로 돌아온 두 제다이는 뭔가 단서를 쫓고 있다는 나이트 로어틸리아의 메세지를 받지만, 로어틸리아 자신은 숙소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로어틸리아 혼자 언니를 쫓아도 괜찮을까 걱정은 돼도 이쪽도 손을 뗄 수 없는 상황.

데란 펠을 만나러 간 두 사람은 아를란과 코레트 에반스에게 각각 폭력사태와 돈세탁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을 알게 되고, 두 사람의 죄목이 신문에 대서특필까지 된 것을 보고 다쓰 프리아트도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라고 오히려 웃습니다. 아를란과 에반스의 신변을 넘기는 것을 거부한 두 사람은 펠이 잠시나마 모른척 하도록 설득하고, 잠시 서문의 경비가 허술할 거라는 펠의 지나가는(?) 얘기대로 시청 차를 몰고 서문으로 유유히 나옵니다.

잠시 숨어있을 곳이 필요하다는 자락스의 말에 아를란은 아는 뒷골목의 캔티나로 센과 함께 찾아가고, 돈을 요구하는 캔티나 주인에게 성질내는 아를란을 저지한 센은 스스로 교섭을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아를란의 컴링크 지시에 따라 자락스는 강변 도로로 빠지다가 미행하는 차와 추적전을 벌이고, 마침내 지시대로 무사히 하수도를 타고 쓰지 않는 터널로 들어옵니다.

한편 경찰이 캔티나를 급습하자 센과 아를란은 서둘러 캔티나 지하에 숨겨진 은신처로 내려오고, 하수도쪽 입구를 열자 터널에서 대기하고 있는 자락스와 에반스 부자와 합류하게 됩니다. 머리 위의 캔티나에서 경찰 수색이 벌어지지만 다행히도 경찰은 은신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경찰이 간 후 한숨 돌린 두 제다이는 에반스와 아를란의 증언을 녹화합니다.

신토넥스 카론 지사와 시스, 범죄조직간의 관계가 증언을 통해 드러난 상태에서 자락스는 신토넥스를 고발할 증거를 모두 확보한 뒤 다쓰 프리아트가 발을 빼기 전에 붙잡는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전적이 떳떳하지 못한 두 사람의 증언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에반스의 걱정에 자락스는 그렇기 때문에 증거의 사본은 언론사에 보낼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자락스 토레이: “그 진실을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신토넥스에 생계를 의지하고 있는 카론 주민들이 신토넥스를 정죄할까 에반스가 의문을 표하자 그와 센, 자락스 세 사람은 이익과 이성, 도덕성의 관계에 대해 토론을 벌이고, 센은 이성과 우주의 불가사의한 의지 사이에 모순이 없다고 주장하던 중(주: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제가 정리한 바로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인도자의 눈을 통해 넬반 행성의 피폐한 모습을 잠시 엿보게 됩니다.

센 테즈나: “세상의 의지는 그 자신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니까요, 그 원칙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센 테즈나: “그것이 세상의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일부, 모든 생명의 일부고, 그리고 우리의 일부이기도 하죠.”

그때 센의 드로이드 BR-100이 차에서 뭔가 신호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오고, 센은 차 엔진에 숨겨져 있던 발신장치를 부비트랩을 해제한 후 떼어냅니다. 이 은신처도 발각당한 일행은 다시 이동할 준비를 서두릅니다.(주:진행자는 전~혀 죄책감은 느끼지 않습니다. 경고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특별 서비스로 경고까지 했었으니..낄낄.)

참가자의 선택에 대하여

CB마스터님의 이 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왠지 게시판 토론 삘이?) 특히 다음 부분이 인상에 남더군요.

다만 이런 방식을 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예상하실 수 있듯이 캠페인의 주도권이 대부분 마스터에게 넘어갑니다. 마스터
머릿속에서 이미 캠페인 엔딩까지 결정이 다 돼 있고 PC는 거의 마스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식이 돼 버리기 쉽더라구요. 앞서 말했듯이 마스터가 먼저 마련한 배경은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보장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마스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는 걸 아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은 곧잘 수동적인 대응만을 하게 됩니다.

RPG의 게임성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RPG의 재미는 의사결정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참가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과 일치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제일 쉽다는 면에서 두가지는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CB마스터님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선택의 여지, 혹은 그 인상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인물 설정이나 지금까지의 사건에 비추어 선택이 뻔하고 어떻게 해도 진행자의 손안에서 놀 뿐이라고 생각되면 참가자는 자신의 선택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2005년 말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 나온 케사르라는 주인공이 그 예였죠. 케사르는 설정상 연쇄살인(..) 전적이 있는 청년으로, 찾던 친부모를 마침내 만나지만 친부모가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키워준 요정족의 숲을 구하려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궁지를 넘어 주인공을 거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셈이었으니까요. 좀더 운신의 폭이라든지 권력기반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7회짜리 단기 캠페인의 시간제한도 있었고, 케사르에게는 아버지에게 대항할 기반도 부족했죠. 결국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손에 입을 맞추며 후계자가 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숲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버립니다.

참가자분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지금 생각해도 멋진 장면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저 상황에서 참가자분이 ‘에잇 선택의 여지 따위 없잖아! 알았수다. 후계자 합죠 뭐.’ 라고 반응했어도 진행자로서는 크게 할말은 없었던 상황이기도 합니..(..) 그만큼 저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혹은 극히 적은 상황설정은 최대한 아끼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인물 설정이라는 또다른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참가자의 이해와 협력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플레이 내에서의 선택이 제한되는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참가자의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원인에 대해서는 링크한 CB마스터님의 글과 얼마전에 천승민님이 다셨던 댓글이 실마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진행자가 뭔가 ‘준비’했고,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가자의 선택권을 줄이는 게 아닌가 하는, 어떻게 보면 기운빠지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 때 제 경험이 그랬습니다. 특정한 결과를 예상하고 상황을 만들다 보니 참가자들을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요정숲을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겠지? 아직 이유가 부족해? 자, 여기 또다른 이유가 있다! ..)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도 눈치채고 진행자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줄여가는 게 아니었을지… 아마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 등 많은  인디 RPG들이 어떤 사건의 진행이나 귀결을 절대로 정하지 말라고 진행자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선택의 제한, 내지는 부정을 극복하는 법 역시 천승민님의 댓글 중 두번째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젠 아주 대놓고 남의 댓글을 우려먹고 있습..) 즉 모든 사건을 준비하는 대신 초기 상황설정 외의 부분은 개방형으로 해놓고 참가자의 선택에 따라 귀결을 실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참가자의 선택을 최대한 확보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제 경험으로 예를 들면, 최근 진행하고 있는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첫 마을이었던 셀렌의 진행이 정말 아무 결과도 생각하지 않고 초기 세팅만 해둔 경우입니다.(주:다크포스 진행표는 포도원의 개들 원래 규칙에 나온 것을 찰스 페레즈씨가 스타워즈용으로 고친 것입니다. 페레즈씨의 글은 이곳에.) 포도원의 개들 같은 경우 저런 진행표를 통해 결과를 정하지 않은 개방형 진행을 지원합니다만, 사실은 어떤 규칙이나 캠페인에든 적용 가능한 것이기도 하죠.

이 진행표에서 정해진 것은 제다이들이 오기까지 마을에서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제다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그리고 몇몇 조연과 이들이 제다이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 제다이들이 들어와서 일으키는 변화에 저는 조연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 각자가 바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반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캠페인 내의 모든 사건은 제가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이 방식의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자칫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뭔가 엄청난 상황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가 없으면 그건 선택의 폭이 너무 커서 결국 선택의 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죠. 따라서 참가자에게 이 상황을 이렇게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과제가 보이도록 실마리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일만 보여주면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는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참가자가 적극적일수록 실마리는 조금만 주고 참가자가 창의적으로 방향을 창출할 수 있고, 참가자가 소극적일수록 실마리를 뚜렷하게, 많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장소, 인물, 초기 상황 설정만 하면 된다는 면에서 진행자의 부담감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나리오식 진행보다 준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사항입니다. 일단 시나리오가 짜지면 그로 인해 참가자가 접할 수 있는 장소와 인물이 어느정도 정해지는데 반해 참가자가 (이론적으로는)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준비해야 할 장소와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여기에 유의미한 제한을 가하고 진행자 머리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상황이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이 살인사건의 해결이라면 실마리가 그쪽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갑자기 스트립바를 가진 않을 테니까요. (..가려나요?) 따라서 상황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적절히 던져서 이미 준비된 장소와 인물로 이끄는 진행의 일반 기법이 중요해지고, 이것은 위의 ‘참가자 막막하게 만들지 않기’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 피해자하고 마지막으로 얘기한 사람이요? 그건 옆집 루시였죠, 아마.’ 하는 증언이 있으면 이미 설정이 된 인물인 옆집 루시를 찾아갈 테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진행자 손안에서 노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진행자는 특정한 상황을 주고 그 상황 속에서 운신할 수 있는 수단을 쥐어줄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참가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해진 것이 없이 참가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참가자 선택은 사건의 귀결에 하나하나 충실하게 반영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투로 얘기했는지부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했는지까지. 그것이 바로 참가자가 선택의 여지를 갖는다는 말의 의미 아닐까요.

물론 이것은 저같은 경우 이렇게 하니까 참가자 선택 여지가 커지더라… 하는 경험담일 뿐이지 모든 경우에 이렇다거나 모든
캠페인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완성도 높은 줄거리라든지 특색있는 세트와 같은 요소를 즐기는 데는 부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가자의 선택에 의해 유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미리 정해진 줄거리의 철저한 완전성은 부족할 테고, 완벽하게
준비된 세트는 참가자들이 있는지도 모른채 안 가거나 부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진행 방법을 결정할 때는 RPG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미들을 서로 저울질할 수밖에 없고, 저같은 경우 그중 참가자
선택의 극대화를 택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는 참가자들이 만족을 표시하고 있으므로 유지할 생각이며, 이것은 어떤 진행 방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놀이인 RPG에서 ‘재미’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재미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방법이니까요.

[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5/5)

5.

차에서 내려 집안에 들어섰을 때는 노을이 깔려 있었다. 그 붉은 빛이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며 아직도 상중으로 엄숙하게 꾸며진 집안을 비추었다. 장식들이 한 집안 후계자의 죽음에 걸맞는 격식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 다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쪽이 옳았다. 루바트가 죽으면서야 자신은 비로소 진정한 후계자일 수 있었으니까.

하인과 드로이드들이 코루선트에서 돌아온 도련님을 맞으러 한동안 북적거리다가 썰물처럼 빠져버린 끝에, 어머니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저렇게 힘겹게 내려오셨던가? 다룬은 두 계단씩 뛰어올라가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카모밀과 바닐라의 향이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것을 느끼며.

“저 왔어요.”

“왔니? 아버지는 벌써 오셨는데.”

부드러운 손이 아직 쓰린 얼굴을 감싸자 다룬은 흠칫 물러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웃음지었다.

“예, 얘기 좀 하자는 사람들이 있어서 먼저 가시라고 했습니다.”

“하긴, 그럴만도 하더구나.”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홀로비드로 다 봤단다. 어찌나 놀랍던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는 쑥스럽게 뒷목을 긁적였다.

“겸손하구나.”

어머니는 그의 뺨에 입맞춰 주었고, 허리를 숙여 입맞춤을 받으면서 다룬은 다시 얼굴의 고통을 참았다.

“올라가서 씻으렴. 뭐 간단한 요기거리라도 올려보내마.”

“감사합니다. 어머니…”

“응?”

내려가려다가 돌아서는 어머니를 보며 다룬은 이게 지금 꺼내도 되는 얘기일지 좀 머쓱해졌다.

“그때 얘기하셨던 왜… 테레아 별장 있잖아요. 강가에 있는 거요.”

“응, 기억나는구나.”

어머니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다룬은 놓치지 않았다. 역시 많이 바라셨던 일인 걸까. 부모님이 둘다 별장으로 옮기시면 본가는 텅 빈 기분일지도.

“사람을 보내서 좀 치우고 수리하라고 시켰어요. 몇주만 있으면 아버지랑 바로 들어가셔도 될 거예요.”

“어머나…얘야.”

어머니는 난간을 잡으면서 가슴에 한쪽 손을 댔다. 다룬이 놀라서 부축하자 어머니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바라던 바이긴 하지만… 네 아버지도 동의하실까? 아직 은퇴할 준비는 안되셨다고…”

조심스런 희망에 가득한 그 눈빛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룬은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동의하실 거예요.”

다정한 말에 담긴 차가운 확신을 눈치채지 못한채 어머니는 아들의 어깨를 대견하게 쓸어주었다.

“이제는 이렇게도 듬직한 아들이 있으니 말이다.”

다룬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아버지를 어머니에게 돌려드릴 때가 되었다… 공화국이나 가문, 알데란에 대한 책임을 떠나 어머니의 남편으로서. 형을 잃은 슬픔 앞에 두분이 평온하게 함께 지내며 서로 위안을 찾으시게 하자. 지금은 납득하지 못한다 해도 아버지는 차차 이해하실 것이다.

“올라가서 쉬렴, 응?”

“예, 어머니.”

인사하고 올라간 다룬은 일단 침대에 몸부터 던졌다. 홀로비드를 켜자 이제는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그 연설이 또 나오고 있었다. 자신을 끝없이 화면에서 본다는 것은 의외로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화면 속의 남자는 묘하게 거슬리는 데가 있었다. 어둠도, 미움도, 자기불신도 없다는 듯 그저 모든 것이 밝고 자신있는 그 태도. 귀기울이다 보면 다룬 자신마저 마음이 움직일 정도로 맑고 확고한 신념.

‘형님 말고는 그런 사람은 모르는데 말야.’

다룬은 다시 부어오르는 뺨 안쪽을 혀로 짜증스럽게 건드리며 연설의 마무리에 귀를 기울였다.

“ ‘우리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제다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결코… 루바트 오르가나의 죽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그는 홀로비드를 꺼버렸다. 제다이 공의회에 보내는 지극히 공적인 사적 메시지, 그리고 그들이 알아챌지도 모르는 작은 선전포고. 나이트 리엘은 그 의미를 깨닫고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공의회에 다룬 오르가나만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게 두자. 크고작은 모욕과 형의 죽음, 그리고 공의회의 배신과 업신여김에도 불구하고 제다이라면 하늘처럼 모실 것이라고 말이다. 굴욕을 참는 세월은 익숙했다. 결국 인내는 더 큰 성과로 돌아올테니.

모트 클라인도 자락스 토레이도, 때가 오면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용인한 제다이 공의회 역시. 때가 되면…

서버 드로이드가 와인과 과일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 다룬 오르가나는 이미 지쳐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쟁반만 내려놓고 나가는 동안 드로이드의 청각 센서는 잠든 공자의 목소리를 감지했다.

“형…”

SRV-36는 마치 질문을 던지듯 계기판의 조명을 깜박거렸지만, 다룬은 조금 뒤척일 뿐 반응하지 않았다. 드로이드 뒤로 문이 닫힌 방안에는 조용하고 고른 숨소리만이 남았다.

신들이 사랑하는 이는 젊어서 죽는다.
– 그리스 격언

[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4/5)

읽는 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꿋꿋이 올라갑니다!

4.

사무실로 들어서자 곧바로 벽의 홀로비드와 비서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그를 맞이했다.

“..르가나 의원 대리로 기조연설을 한 다룬 오르가나의 연설은 전쟁 후 공의회의 위상을..”

“…오늘 의회 앞에 처음으로 선 오르가나 의원의 젊은 후계자는 일대 폭풍…”

“ ‘우리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의 양심으로서-’ ”

“아버지는?”

정신없는 홀로비드 보도의 홍수에 고개를 저으며 다룬은 비서에게 물었다.

“안쪽에 계십니다. 공자님…”

“걱정 말아요. 다들 내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것 뿐이니,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

어깨를 토닥여준 후 다룬은 빠른 걸음으로 내실로 갔다. 문이 열리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해야 했다.

내실로 들어서자마자 한손에 크리스털 잔을 들고 서서 홀로비드 보도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허나 저는 형님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간 방식으로 루바트 오르가나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그 모습을…’ ”

“아버지.”

아버지는 천천히 화면 속의 아들에게서 현실 속의 아들에게 몸을 돌렸다. 언제나처럼 냉정한 모습이었지만, 눈빛은 평소보다도 더 차가웠다. 다룬은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몸이 아팠던 모양이구나. 나도 몰랐는데 말이다.”

다룬은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죄송하다고 하는 건 뻔뻔함에 뻔뻔함을 더하는 짓이겠지. 실은 전혀 미안하지 않았으므로 더욱. 하지만 아버지의 침묵은 뭔가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그는 결국 중얼거리듯 말했다.

“예 뭐… 때로는 모르는 병이 가장 중한 법이지요.”

잔의 내용물이 얼굴에 끼쳐오자 눈이 따끔거려서 감아야 했다.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맛으로는 아마 20년 묵은 아르베니아산 거품와인이라고 생각하며 다룬은 대충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아버지는 잔을 내던지며 돌아섰지만 크리스털은 푹신한 카펫 때문에 깨지지 않았고, 벽에서 뻗어나온 청소 드로이드의 팔이 곧 잔을 주워서 치우고 카펫에 진 작은 얼룩을 청소했다.

“어떻게…”

분노로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수많은 질문을 한꺼번에 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버지를 기조연설에서 따돌리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는지, 어떻게 아버지가 제시하려던 법안을 미리 알 수 있었는지.

어떻게 아버지를 이렇게 배신할 수가 있는지. 어떻게 루바트의 자리를 뻔뻔스럽게 차지한 채 아비를 능멸할 수 있는지.

질문만큼이나 대답도 많았고, 할 수 없는 대답도 많았기에 다룬은 쉬운 것부터 시작했다.

“아버지의 일정을 교란해서 따돌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아버지 수행원의 대부분은 이미 제 사람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계획을 아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요. 법안이 완성되자마자 전문이 이미 제게 들어올 정도면 짐작하시겠죠.”

수행원의 대부분이라기보다는 주요 인원 몇몇일 뿐이었고 그걸로 충분했지만, 아버지가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내버려 두자. 끝없는 의심에 빠져 자충수를 두면 다룬으로서는 한결 일이 쉬워질 것이었다. 돌아선 아버지의 몸이 분노로 떨리는 모습을 다룬은 무표정하게 지켜보았다.

“속인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필요?”

아버지는 천천히 다룬을 마주보면서 손짓으로 홀로비드 보도를 가리켰다.

“네 형이 죽고 공의회가 어떻게 했는지 보지 않았느냐! 모트 클라인 그 자가… 공의회의 늙은이들이! 그들을 온 우주 앞에서 오르가나의 이름으로 두둔하고… 놈들과 한패가 되어서 날 능멸해? 네가…!”

알레산드로스 오르가나를 다룬은 차라리 슬프게 바라보았다. 한때는 그가 두려웠던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분노할 때면 온 우주가 자신을 버린 것처럼 떨려오던 시절이. 지금은 아버지가 든 손의 궤적은 너무 느리고 둔해 보여서, 손목을 붙잡아 막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쉽겠지.

아버지가 손을 휘두르는 것을 뻔히 눈으로 따라가면서 다룬은 움직이지 않았다. 뺨에 불이 붙는 기분과 함께 고개가 옆으로 꺾였을 때는 오히려 아버지가 언제 이렇게 약해졌나 싶었다.

그는 맞은 쪽 뺨을 손가락 관절로 살짝 건드려 확인했다. 이를 미리 물어서 입안에 상처는 없었고, 반지에 긁혔는지 뺨에 생채기가 나긴 했지만 의료 드로이드에게 처치받으면 어머니가 눈치 못챌 정도는 될 것이다. 부기가 심하다면 나가면서 카메라는 피해야겠지.

“죽은 형의 이름을 팔아 형을 배신한 기분이 어떠냐?”

다룬은 아버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언제 아버지를 내려다보게 된 것일까. 아버지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고, 이렇게 시야가 좁았던가. 변한 것이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었지만, 아직 실감은 나지 않았다.

“형님이 살아있었다면 똑같이 했을 것입니다.”

“닥쳐! 루바트라면 그런 식으로 날 속이지 않는다. 루바트는-”

“예, 형님이라면 아버지를 속일 필요가 없었겠죠. 형님이라면 아버지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상의했을 테고, 형님이 설득하면 포기하셨을 테니까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그도 루바트처럼 완벽하고 싶었고, 루바트처럼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루바트처럼 빛나고 싶었다. 루바트처럼 정직하고 명예롭게, 루바트처럼…

하지만 루바트 오르가나는 죽었다. 오르가나 가문을 위해 살아가기보다는 공화국을 위해 죽는 쪽을 택했고, 가문의 희망에게 버림받은 부모와 가문을 끌어안는 것은 고스란히 다룬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가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루바트가 아닌 다룬 오르가나. 어쩌면 공화국에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아버지가 저를 후계자로서 대우하셨더라면… 이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다못해 귀띔이라도 해주셨다면, 그리고 제가 합당한 의견을 얘기할 때 귀를 기울이셨더라면 제가 왜 아버지 주변에 첩자를 두고 아버지를 속였을까요? 속임수밖에 남은 것이 없었으니 속임수를 사용했습니다. 아버지가 오르가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다시 손이 올라갔지만, 다룬도 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형이 떠난 후 10년을 넘게 참아온 지금, 누가 누구를 참아주고 있었는지 이제는 아버지도 알 필요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손목을 그대로 잡아 팽개치듯 뒤로 밀어냈다. 균형을 잡으려고 비틀거리는 아버지에게 그는 언성을 높였다.

“아직 말 안 끝났습니다! 더 때리려면 얘기라도 마저 듣고 때리시죠.”

아버지는 눈이 휘둥그래진 채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 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예, 제다이에 대한 통제는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가한 모욕을 아버지만 느끼는 줄 아십니까? 형님의 시신이 채 식기도 전에 그 자리를 시스에게 내준 공의회의 처사를 제가 잊을 것 같아요? 하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합니다.”

욱신거리는 뺨의 통증을 잠재우려고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병을 들어 잔에 반쯤 따랐다. 좀전에 얼굴에 뒤집어썼던 것과 같은 와인이 목구멍으로 따뜻하고 달콤하게 넘어갔다.

“공화국의 영웅들에게 고삐를 씌우는 게 누가 되든, 적어도 그 과정에서 오르가나 가문이 악역이 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르가나의 이름을 구델이나 트리노와 엮겠다니, 무슨 생각이셨던 겁니까? 한 번의 전투를 위해 전쟁을 내주겠다고요? 제가 미리 알아채고 상황을 수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뻔했습니까!”

“넌… 넌 이해 못한다. 루바트는 공의회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쳤는데, 공의회 놈들은…”

아버지의 더듬거리는 핑계에 다룬은 잔을 탁 내려놓았고, 아버지가 순간 흠칫하는 모습이 섬뜩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루바트는 제 형이었습니다. 두 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공의회가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결코 잊지 않아요. 제 연설을 못 보셨습니까?”

아버지의 얼굴에 뒤늦게 떠오르는 이해를 지켜보며 다룬은 와인을 좀더 부었다.

“때가 되면 그들을 제 방식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허나 그 과정에서 오르가나의 손을 더럽혀서는 알데란의 왕좌는 멀어질 뿐입니다.”

아버지는 안쓰러울 정도로 화들짝 놀랐고, 다룬은 웃음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저도 어린아이는 아닙니다. 알데란에 두 번째 의석을 얻어낸 것, 이번 기조연설이 왕가측 의원이 아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국고가 거의 바닥나고 영향력을 잃은 채 쇠퇴해가는 왕조에 아들마저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도.”

그는 아버지와 똑바로 눈을 마주쳤다.

“비록 아버지는 제가 후계자 노릇을 제대로 못하도록 온갖 애를 쓰셨지만, 그래서 오히려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의외로 많습니다. 감사할 일이죠.”

웃으며 잔을 들어보이는 그를 아버지는 무표정하게 마주보았다.

“모르시겠습니까?”

그는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일어서서 천천히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주춤주춤 물러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는 기색이었고, 그 모습에 악의어린 기쁨을 억눌러야 했다.

“아버지.”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 아직은 이렇게 올려다보는 것이 편했다. 아직 한동안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맹세합니다. 오르가나가 알데란의 왕좌에 오르는 것도, 제다이 공의회의 전횡을 제어하는 것도. 아버지가, 그리고 그 위의 조상들이 준비하고 계획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게 날개를 펼칠 공간만 주신다면…”

“너 따위를 위해 준비된 것들이 아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여전히 오르가나 가주이다. 너를 반드시 후계자로 유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을 잊었느냐?”

다룬은 한숨을 쉬고 싶은 것을 참았다. 아버지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상황파악이 느린 것일까. 루바트에 대한 집착에 눈이 먼 나머지 재앙을 부르려는 실책을 어떻게든 무마해 놓았더니만 이번에는 이런 소리나… 역시 가문을 위한다면 아버지를 가능한한 빨리 은퇴시켜야 했다.

“물론 후계자를 바꾸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입니다. 오르가나 가주로서 말이죠.”

마치 어린아이에게 타이르듯 천천히, 부드럽게 얘기하며 다룬은 일어섰다.

“하지만 오늘 일로 상황이 달라진 것을 모르시겠습니까? 젊어서 죽은 영웅의 동생, 온 의회의 마음을 움직인 연사, 공화국의 미래를 믿는 젊은 기대주를 갑자기 내치는 것은 설명이 꽤 필요할 겁니다. 물론 그런 무리수를 두고 싶으시다면 그건 아버지 자유입니다.”

문간으로 걸어간 그는 도어스위치를 작동시키기 전에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바닥 한가운데 우두커니 선 모습이 왠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아버지 몫이죠. 아버지마저 속일 수 있는 수완의 후계자에게 책임을 넘기고 오르가나를 일으키게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버지 말 잘 듣는 미숙한 친척을 다시 허울뿐인 후계자로 두고 끝까지 권력을 붙들다가 이번 세대의 기회를 그냥 보내시겠습니까.”

그는 빙긋 웃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머리만은 맑았고, 승리감은 전류처럼 온몸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적어도 저를 내치신다면 오르가나 다음으로 유력한 가문에 몸을 의탁해서 그들을 왕가로 만들 것만은 약속드리죠. 오르가나의 유일하게 남은 직계손이 다른 가문에서 신하 노릇하는 꼴과 더불어서, 수 세대에 걸친 준비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되실 겁니다.”

아버지는 표정도, 자세도 변하지 않았지만 다룬 오르가나는 그가 안쪽에서부터 구겨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차지한 자리는 조금도 변하지 않으면서 왠지 오그라든다는 인상.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애써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지 얼마 안 되는 아버지 아닌가.

“어머니가 한동안 테레아 남부에 있는 그 별장 얘기 하시더군요. 경치도 좋고 일 년 내내 따뜻한 곳입니다. 생각해 보시죠.”

아버지는 묵묵히 그를 쳐다보았다.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는 눈으로… 다룬은 목례를 하고 도어스위치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아버지를 등뒤에 둔 채 자신의 미래를 향해 걸어나갔다.

[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3/5)

3.

“준비되셨습니까?”

분장 스폰지의 촉촉한 감촉이 감은 눈꺼풀을 스치고 뺨과 코, 턱도 매만지더니 곧 사라졌고, 분장 드로이드가 물러나는 동안 다룬은 자신의 얼굴을 향한 수많은 공중부양 거울들을 건성으로 한번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공중파를 타기 전의 준비는 어려서부터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때마다 떨리는 일이었다. 지금은 훨씬 더했다.

“시작합니다. 대기해 주시고…”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한두가닥의 머리를 빗어내리는 손들도 그가 연단 플랫폼을 밟자 곧 물러났다.

“3… 2… 1.”

위로 올라가는 플랫폼의 움직임은 너무나 부드러워서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떨어질 위험은 없다고 자신에게 상기시키면서 다룬은 단호히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저 위의 조명이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주사위는 던져졌도다.”

중얼거리는 동시에 조명이 그를 가득 감쌌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한번 훑었다. 수백 수천의 얼굴들, 온갖 종족과 온갖 문화에서 온 행성 대표자들이 까마득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화국 의회의 압도적인 규모는 홀로비드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더군다나 수백억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 장소에서 전 은하계의 대의원들에게 연설을 하려는 순간은 그 어떤 경험이나 상상하고도 달랐다.

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새삼 겁이 났지만, 결정을 내린 이후로 어차피 계속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감흥은 없었다. 연습한 그대로 말이 자신있게 나오기만을 빌며 그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공화국 상원의원 여러분, 그리고 공화국의 시민 여러분. 저는 알데란 제 2 의원 알레산드로스 오르가나 대리 다룬 오르가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대신 이 자리에 나온 점, 양해를 구합니다.”

그는 연단에 준비된 물을 한모금 마시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명확하고 날카로운 목적의식이 남았을 뿐. 그리고 가급적이면 짧게 끝내야 했다. 아버지가 의회 건물에 들이닥칠 경우 어떻게든 지체시킬 조치는 취해 놓았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지난 몇개월은 우리 가족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형인 파다완 루바트 오르가나가 시스에게 목숨을 잃은 비극을 들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잠시 침묵하며 회장 안의 분위기를 저울질해 보았다. 숙연하고 동정적… 완벽했다. 좀더 자신감을 얻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실을 겪은 것은 저희 가족 뿐만이 아닙니다. 공화국의 수많은 가족들이 혈육을, 배우자를,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으며, 그러한 분들에게… 그 아픔을 이해하는 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위로를, 애도를, 그리고 무엇보다 우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뜻밖에도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면서 회장 안을 감쌌다. 순간 다룬은 당황했다. 아직 끝이 아닌데, 어떻게 벌써 끝났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혹시 그만하고 내려가라는 뜻인가?

박수소리가 짧게 잦아들고 다시 침묵이 흘렀을 때에야 다룬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했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회중의 분위기를, 그의 말과 그들의 기대감이 혼합되어 전류처럼 공중에 흐르는 흥분을 맛볼 수 있었다. 어떤 고급 술보다, 어떤 여자의 품보다 더 아찔한 그 쾌감을.

“전쟁의 상처가 아직 깊이 남아있는 공화국이 당면한 사안은 많고도 다양합니다…”

당면한 과제들을 짧게 얘기하고 그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있다면 좀더 짚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었고, 무엇보다 죽은 형의 후광을 입은 초보 연사가 긴 시간 동안 이 많은 인원의 관심을 붙잡아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전쟁의 길고 어두운 나날 중에도 우리를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걸어야 할 험난한 길 위에서도 우리를 이끌어줄 것은 많습니다. 공화국에 대한 우리의 신념,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 민주주의의 전통… 그리고 스스로의 목숨과 바꿔 공화국을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지켜갈 공화국의 군인들, 그리고 제다이 공의회입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다룬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재빨리 그는 연단의 화면을 조작해서 트리노, 구델, 스쿠식 등의 얼굴을 띄웠다. 아버지가 오늘 오지 못한 것부터 이미 당황하고 있을텐데 그 아들이 기대를 와장창 깨기 시작하면 그들의 반응이 어떨지.

“제가 특별히 제다이 공의회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하실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최근에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제다이로서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제 형을 생각하면 공의회에 대한 제 감상은 남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마치 말을 이을 수 없다는듯 잠시 침묵했다. 박수소리 대신 숙연한 침묵이 따르는데 만족하며. 지금 그는 이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제 이 기세가 흩어지기 전에 단숨에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다.

“허나 저는 형님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간 방식으로 루바트 오르가나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그 모습을, 대의 앞에서 자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헌신을. 그것은 제 형님 뿐만 아니라 모든 제다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박수가 터져나오는 동안 그는 곁눈으로 화면을 살폈다. 구델과 스쿠식은 혼란스럽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고, 트리노는 굳은 표정으로 컴링크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숙연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며 그는 잦아드는 박수소리의 뒤끝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헌신은 제다이 공의회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공화국이 공의회에 영구 임대로 부여한 행성들에서 나오는 수입의 60% 이상을 재건사업에 사용하면서 공의회 산하 모든 기관에서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있는 청렴함은 공화국의 왠만한 정부기관도 부러워할만 합니다.”

웃음소리와 박수소리. 아버지와 그 공모자들이 제출하려고 계획한 법안의 핵심이 이런 식으로 나오자 구델은 이제 땀을 닦고 있었다.

“우리는 큰 전쟁을 치렀고 아직도 그 뒤끝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허나 공화국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적 뿐만이 아닙니다. 내부의 불의가, 우리 안의 부패가 결국에는 더 큰 화를 불렀고, 앞으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앞길을 막는 먹구름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양심의 목소리와 양심의 힘이 언제나 함께합니다. 바로 공화국의 수호자, 제다이 공의회가!”

갈채가 터져나올 틈조차 주지 않고 다룬은 바로 밀어붙였다.

“공화국의 손이 미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선량한 시민들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자들이 있다면, 제다이의 손길이 그곳에 있습니다. 이윤을 위해 힘없는 부족들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제다이의 힘은 그곳에도 있습니다. 정복전쟁의 야욕으로 공화국을 다시한번 전화(戰火)의 구덩이로 몰아넣으려는 이가 있다면 제다이가 그들을 막을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무력과 자금을 갖춘 자들의 범죄라도, 그래서 공화국이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제다이는 정치적 밀물과 썰물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적 기관이 아닌 공화국의 확고한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박수는 전에 없이 우렁찼지만, 서로 불안하게 마주보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화면에서 트리노는 아예 일어나 나가고 있었고, 구델과 스쿠식은 뭔가 말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 다룬은 속으로 웃음지었다. 오르가나라는 적법한 구심점 없이 이 정치적 야합이 유지될리는 만무했고, 저들은 늘 그랬듯 스스로의 이해충돌에 허우적거리다 와해될 것이다.

다룬은 좀 기다려서 분위기가 차분해지도록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법안통과를 위한 연맹을 흩어 놓는다는 목적은 달성했고, 마무리만이 남았다.

“존경하는 공화국의 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깊이 존경하는 손윗형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함께 있으면 그저 즐거운 친구이며 자신을 끝없이 재는 잣대가 되는 경쟁자, 때로는 어떤 원수보다도 심하게, 치사하게 싸우는 적수,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스승. 제게는 형님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목이 메이는 것을 느끼며 다룬은 물을 한모금 마셨다.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무 분위기에 휩쓸린 모양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조금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 형이 믿는 것, 말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가는 모습은 어린 제게 곧 신앙과 같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하루하루 다시 그 진실을 확인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믿음으로, 그리고 성인의 이성으로 저는 여러분 앞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시련을 딛고 공화국은 끝없이 미래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공화국이 있는 한 제다이는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키리라는 것을. 우리의 하인도, 주인도 아닌 우리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의 양심으로서.”

서서 말만 하는 것이 이렇게 지치는 일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온몸이 땀에 젖은채 그는 기분좋은 탈진감에 휩싸였다. 카메라상에 번들거리는 것을 막을만큼 분장이 잘 되었기를 바랄 수밖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고 있는 회중의 숨죽인 기대감에 대고 그는 조용히 마지막 말을 띄웠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꼭 전하고 싶었던 진짜 용건일지도 몰랐다.

“오르가나 가문은 언제나 제다이 공의회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제다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동생으로서 저는 결코… 루바트 오르가나의 죽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소리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대의원들이 아예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하는 모습을 벅차게 지켜보며 다룬은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서 그는 아버지의 법안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플랫폼이 내려갈 때가 됐다는 신호가 오자 그는 마지막으로 심장 위에 손을 얹고 깊이 인사한 뒤 플랫폼 하강 내내 똑바로 섰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탈진해 쓰러질까 두려웠다. 제일 힘든 싸움은 여기서부터였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스탭이 얼굴을 닦아주고 겉옷을 둘러주는 동안 조수 하나가 다가와 컴링크를 내밀었다. 소란 위로 목소리를 높이며.

“공자님, 사무실에서 연락입니다.”

올 것이 왔는가. 정확히는 올 사람이. 컴링크의 이어피스를 조수가 대주었다.

“오르가나요.”

“공자님, 아버님께서 오셨습니다.”

비서의 불안한 목소리는 귀를 바로 때려왔다.

“지금 잘 말씀은 드리고 있습니다만…”

“알았소. 조금만 더 붙잡고 있어줘요, 바로 갈테니.”

그는 컴링크를 떼고 스탭을 큰소리로 치하하면서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에게 한턱 내겠다는 약속을 끝으로 문이 등뒤로 닫혔고, 그는 잠시 벽에 기댄채 숨을 골랐다. 지친 몸과 마음에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하며 다룬 오르가나는 걸음을 옮겼다.

포도원의 제다이 9화 – 카론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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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락스와 아를란 쪽도 물증을 얻는데 큰 성과는 내지 못하고, 로어틸리아는 잠시 바람을 쐬러 나갑니다. 센은 자락스에게 아를란이 결정적인 증거를 쥐고 있을지 모른다고 전하고, 두 사람은 심문을 위해 아를란의 방으로 향하지만 아를란은 이미 창밖으로 탈출해 사라진 후. 두 사람은 아를란의 기척을 쫓아 시내로 향하고, 와츠 센터에 불이 나간 것을 보게 됩니다. 경계도 혼란 상태인지라 무사통과한 두 제다이는 층계로 올라가다가, 창밖 홈통 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아를란을 센이 인도자의 도움으로 발견하지요.

아를란은 스승을 죽이러 간다며 제다이들을 따라오지 않으려 하지만, 말다툼과 포스다툼 후 센의 포스력에 의해 층계참으로 끌려들어옵니다. 자락스는 그런 아를란을 심하게 질책하고, 막무가내인 아를란에게 라이트세이버를 건네며 자신을 찌르고 스승을 죽이러 가라고 하지만 아를란은 하지 못합니다. 조금 진정한 그는 센에게 어떻게 센의 부족이 당하는 핍박에도 분노하지 않냐고 묻고, 센은 절망을 절망으로 끝내지 않고 같은 일을 반복시키지 않으려는 의지라고 답합니다.

와츠 센터에 다시 전원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서둘러 나온 두 제다이 + 시스. 아를란은 제다이들에게 로어틸리아의 언니가 다시 카론에 돌아왔음을 알리고, 서둘러 시청에 돌아와도 숙소에 로어틸리아는 없습니다.

처음 예정대로 센은 아를란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끝에 자락스는 결정적인 물증의 반은 아를란이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나머지 반은 코레트 에반스이므로 다쓰 프리아트가 아를란을 유인해 죽이려 했듯 다음 목표는 에반스. 셋은 서둘러 에반스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에반스의 집에서 경계를 서던 두 제다이는 센은 집안에서 창으로 들어온 시스와, 자락스는 복도 층계로 올라오는 시스와 일대 활극을 벌입니다. 자락스가 시스를 슥삭 처리하는 사이 아파트 안의 시스는 뜻밖에도 에반스 노인을 인질로 잡습니다. 끝까지 몰린 상황에서 센은 넬반 가상환경에서 보았던 늑대의 춤을 시작하며 무아지경으로 들어가는데…

비명소리를 듣고 아파트로 달려온 자락스는 끔찍하게 온몸을 난도질당한 시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고, 일종의 폭주상태에 빠졌던 센은 자락스의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립니다. 살아날 가망이 없는 시스를 결국 자락스는 빠르게 목숨을 끊어주고, 에반스 노인은 피로 뒤덮인 센의 모습에 벌벌 떨면서도 고맙다며 눈물짓는 동안 밖에는 먼동이 터옵니다.

드로이드의 시간

TL-320: BR, 주인님 못봤니? 너네 주인님은?
BR-100: 삐립삐립삐리삐삑?
TL-320: 코코아 다 식을텐데 어디가셨지… 이 일을 어쩌나…

김이 오르는 쟁반을 들고 어쩔줄 모르며 서성이는 TL이었다..(..)

시스의 신조

“우리는 시스다! 문을 통과할때 먼저 여는 것은 약자나 하는 짓!”

로키: 아를란은 센이 포스로 강하게 당기자 창을 와장창 깨면서 층계참으로 떨어져 들어옵니다.

로키: 갑자기 창문에 비오는 밤의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드리운다 싶더니
로키: 아파트 창문을 와장창 깨고 두명의 시스가 한꺼번에 들어옵니다!

로키: 덩치큰 시스는 갑자기 몸을 날려 에반스 노인이 있는 내실 문을 부수며 들어갑니다.

…그리고 재회

“오랜만이야, 사랑하는 내 동생.”

돌아보자 젊은 여자가 빙긋 웃으며 서있다. 거센 바람에 긴 외투가 걷잡을 수 없이 날리는 사이 빗줄기는 더욱 굵어진다.

두 라이트세이버 크리스털의 공명음이 빗소리와 섞여 귓가에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