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3/5)

3.

“준비되셨습니까?”

분장 스폰지의 촉촉한 감촉이 감은 눈꺼풀을 스치고 뺨과 코, 턱도 매만지더니 곧 사라졌고, 분장 드로이드가 물러나는 동안 다룬은 자신의 얼굴을 향한 수많은 공중부양 거울들을 건성으로 한번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공중파를 타기 전의 준비는 어려서부터 익숙한 일이었지만, 그때마다 떨리는 일이었다. 지금은 훨씬 더했다.

“시작합니다. 대기해 주시고…”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한두가닥의 머리를 빗어내리는 손들도 그가 연단 플랫폼을 밟자 곧 물러났다.

“3… 2… 1.”

위로 올라가는 플랫폼의 움직임은 너무나 부드러워서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떨어질 위험은 없다고 자신에게 상기시키면서 다룬은 단호히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저 위의 조명이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주사위는 던져졌도다.”

중얼거리는 동시에 조명이 그를 가득 감쌌고, 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한번 훑었다. 수백 수천의 얼굴들, 온갖 종족과 온갖 문화에서 온 행성 대표자들이 까마득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공화국 의회의 압도적인 규모는 홀로비드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더군다나 수백억의 운명이 결정되는 이 장소에서 전 은하계의 대의원들에게 연설을 하려는 순간은 그 어떤 경험이나 상상하고도 달랐다.

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새삼 겁이 났지만, 결정을 내린 이후로 어차피 계속 두려움에 사로잡힌 상태였기 때문에 오히려 감흥은 없었다. 연습한 그대로 말이 자신있게 나오기만을 빌며 그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공화국 상원의원 여러분, 그리고 공화국의 시민 여러분. 저는 알데란 제 2 의원 알레산드로스 오르가나 대리 다룬 오르가나입니다. 아버지께서 몸이 불편하셔서 제가 대신 이 자리에 나온 점, 양해를 구합니다.”

그는 연단에 준비된 물을 한모금 마시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두려움은 천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명확하고 날카로운 목적의식이 남았을 뿐. 그리고 가급적이면 짧게 끝내야 했다. 아버지가 의회 건물에 들이닥칠 경우 어떻게든 지체시킬 조치는 취해 놓았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으니까.

“지난 몇개월은 우리 가족에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제 형인 파다완 루바트 오르가나가 시스에게 목숨을 잃은 비극을 들으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잠시 침묵하며 회장 안의 분위기를 저울질해 보았다. 숙연하고 동정적… 완벽했다. 좀더 자신감을 얻으며 그는 말을 이었다.

“물론 이러한 상실을 겪은 것은 저희 가족 뿐만이 아닙니다. 공화국의 수많은 가족들이 혈육을, 배우자를, 친구를 잃은 슬픔에 잠겨 있으며, 그러한 분들에게… 그 아픔을 이해하는 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위로를, 애도를, 그리고 무엇보다 우정을 전하고 싶습니다.”

뜻밖에도 박수소리가 터져나오면서 회장 안을 감쌌다. 순간 다룬은 당황했다. 아직 끝이 아닌데, 어떻게 벌써 끝났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혹시 그만하고 내려가라는 뜻인가?

박수소리가 짧게 잦아들고 다시 침묵이 흘렀을 때에야 다룬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했다.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회중의 분위기를, 그의 말과 그들의 기대감이 혼합되어 전류처럼 공중에 흐르는 흥분을 맛볼 수 있었다. 어떤 고급 술보다, 어떤 여자의 품보다 더 아찔한 그 쾌감을.

“전쟁의 상처가 아직 깊이 남아있는 공화국이 당면한 사안은 많고도 다양합니다…”

당면한 과제들을 짧게 얘기하고 그는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시간이 있다면 좀더 짚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는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었고, 무엇보다 죽은 형의 후광을 입은 초보 연사가 긴 시간 동안 이 많은 인원의 관심을 붙잡아둔다는 보장이 없었다.

“…전쟁의 길고 어두운 나날 중에도 우리를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걸어야 할 험난한 길 위에서도 우리를 이끌어줄 것은 많습니다. 공화국에 대한 우리의 신념,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 민주주의의 전통… 그리고 스스로의 목숨과 바꿔 공화국을 지켜왔으며 앞으로도 지켜갈 공화국의 군인들, 그리고 제다이 공의회입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다룬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졌다. 재빨리 그는 연단의 화면을 조작해서 트리노, 구델, 스쿠식 등의 얼굴을 띄웠다. 아버지가 오늘 오지 못한 것부터 이미 당황하고 있을텐데 그 아들이 기대를 와장창 깨기 시작하면 그들의 반응이 어떨지.

“제가 특별히 제다이 공의회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하실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최근에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면… 제다이로서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제 형을 생각하면 공의회에 대한 제 감상은 남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마치 말을 이을 수 없다는듯 잠시 침묵했다. 박수소리 대신 숙연한 침묵이 따르는데 만족하며. 지금 그는 이들을 휘어잡고 있었다. 이제 이 기세가 흩어지기 전에 단숨에 끝까지 밀어붙여야 했다.

“허나 저는 형님의 죽음이 아니라 살아간 방식으로 루바트 오르가나를 기억하고 싶습니다.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그 모습을, 대의 앞에서 자아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 헌신을. 그것은 제 형님 뿐만 아니라 모든 제다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박수가 터져나오는 동안 그는 곁눈으로 화면을 살폈다. 구델과 스쿠식은 혼란스럽게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고, 트리노는 굳은 표정으로 컴링크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숙연한 표정을 애써 유지하며 그는 잦아드는 박수소리의 뒤끝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헌신은 제다이 공의회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일례로 공화국이 공의회에 영구 임대로 부여한 행성들에서 나오는 수입의 60% 이상을 재건사업에 사용하면서 공의회 산하 모든 기관에서 긴축재정을 실시하고 있는 청렴함은 공화국의 왠만한 정부기관도 부러워할만 합니다.”

웃음소리와 박수소리. 아버지와 그 공모자들이 제출하려고 계획한 법안의 핵심이 이런 식으로 나오자 구델은 이제 땀을 닦고 있었다.

“우리는 큰 전쟁을 치렀고 아직도 그 뒤끝은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허나 공화국을 위협하는 것은 외부의 적 뿐만이 아닙니다. 내부의 불의가, 우리 안의 부패가 결국에는 더 큰 화를 불렀고, 앞으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앞길을 막는 먹구름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양심의 목소리와 양심의 힘이 언제나 함께합니다. 바로 공화국의 수호자, 제다이 공의회가!”

갈채가 터져나올 틈조차 주지 않고 다룬은 바로 밀어붙였다.

“공화국의 손이 미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선량한 시민들을 물건처럼 사고 파는 자들이 있다면, 제다이의 손길이 그곳에 있습니다. 이윤을 위해 힘없는 부족들의 권리를 박탈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제다이의 힘은 그곳에도 있습니다. 정복전쟁의 야욕으로 공화국을 다시한번 전화(戰火)의 구덩이로 몰아넣으려는 이가 있다면 제다이가 그들을 막을 것입니다. 그것이 설사 무력과 자금을 갖춘 자들의 범죄라도, 그래서 공화국이 움직이지 못하더라도! 제다이는 정치적 밀물과 썰물에 따라 흔들리는 정치적 기관이 아닌 공화국의 확고한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박수는 전에 없이 우렁찼지만, 서로 불안하게 마주보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화면에서 트리노는 아예 일어나 나가고 있었고, 구델과 스쿠식은 뭔가 말다툼을 하는 것 같았다. 다룬은 속으로 웃음지었다. 오르가나라는 적법한 구심점 없이 이 정치적 야합이 유지될리는 만무했고, 저들은 늘 그랬듯 스스로의 이해충돌에 허우적거리다 와해될 것이다.

다룬은 좀 기다려서 분위기가 차분해지도록 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법안통과를 위한 연맹을 흩어 놓는다는 목적은 달성했고, 마무리만이 남았다.

“존경하는 공화국의 시민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깊이 존경하는 손윗형제가 있을지 모릅니다. 함께 있으면 그저 즐거운 친구이며 자신을 끝없이 재는 잣대가 되는 경쟁자, 때로는 어떤 원수보다도 심하게, 치사하게 싸우는 적수,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스승. 제게는 형님이 그런 존재였습니다.”

목이 메이는 것을 느끼며 다룬은 물을 한모금 마셨다.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너무 분위기에 휩쓸린 모양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조금 길어지고 있었다.

“그런 형이 믿는 것, 말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가는 모습은 어린 제게 곧 신앙과 같았고, 어른이 되어서는 하루하루 다시 그 진실을 확인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의 믿음으로, 그리고 성인의 이성으로 저는 여러분 앞에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시련을 딛고 공화국은 끝없이 미래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공화국이 있는 한 제다이는 우리의 곁에서 우리를 지키리라는 것을. 우리의 하인도, 주인도 아닌 우리의 수호자로서, 그리고 언제까지나 우리의 양심으로서.”

서서 말만 하는 것이 이렇게 지치는 일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온몸이 땀에 젖은채 그는 기분좋은 탈진감에 휩싸였다. 카메라상에 번들거리는 것을 막을만큼 분장이 잘 되었기를 바랄 수밖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주목하고 있는 회중의 숨죽인 기대감에 대고 그는 조용히 마지막 말을 띄웠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꼭 전하고 싶었던 진짜 용건일지도 몰랐다.

“오르가나 가문은 언제나 제다이 공의회의 곁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제다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동생으로서 저는 결코… 루바트 오르가나의 죽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박수소리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대의원들이 아예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하는 모습을 벅차게 지켜보며 다룬은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 열화와 같은 반응 속에서 그는 아버지의 법안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플랫폼이 내려갈 때가 됐다는 신호가 오자 그는 마지막으로 심장 위에 손을 얹고 깊이 인사한 뒤 플랫폼 하강 내내 똑바로 섰다.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탈진해 쓰러질까 두려웠다. 제일 힘든 싸움은 여기서부터였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스탭이 얼굴을 닦아주고 겉옷을 둘러주는 동안 조수 하나가 다가와 컴링크를 내밀었다. 소란 위로 목소리를 높이며.

“공자님, 사무실에서 연락입니다.”

올 것이 왔는가. 정확히는 올 사람이. 컴링크의 이어피스를 조수가 대주었다.

“오르가나요.”

“공자님, 아버님께서 오셨습니다.”

비서의 불안한 목소리는 귀를 바로 때려왔다.

“지금 잘 말씀은 드리고 있습니다만…”

“알았소. 조금만 더 붙잡고 있어줘요, 바로 갈테니.”

그는 컴링크를 떼고 스탭을 큰소리로 치하하면서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모두에게 한턱 내겠다는 약속을 끝으로 문이 등뒤로 닫혔고, 그는 잠시 벽에 기댄채 숨을 골랐다. 지친 몸과 마음에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하며 다룬 오르가나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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