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5/5)

5.

차에서 내려 집안에 들어섰을 때는 노을이 깔려 있었다. 그 붉은 빛이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며 아직도 상중으로 엄숙하게 꾸며진 집안을 비추었다. 장식들이 한 집안 후계자의 죽음에 걸맞는 격식이라는 것을 알아챘을 때 다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불평할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그쪽이 옳았다. 루바트가 죽으면서야 자신은 비로소 진정한 후계자일 수 있었으니까.

하인과 드로이드들이 코루선트에서 돌아온 도련님을 맞으러 한동안 북적거리다가 썰물처럼 빠져버린 끝에, 어머니가 계단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저렇게 힘겹게 내려오셨던가? 다룬은 두 계단씩 뛰어올라가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카모밀과 바닐라의 향이 그를 포근하게 감싸는 것을 느끼며.

“저 왔어요.”

“왔니? 아버지는 벌써 오셨는데.”

부드러운 손이 아직 쓰린 얼굴을 감싸자 다룬은 흠칫 물러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웃음지었다.

“예, 얘기 좀 하자는 사람들이 있어서 먼저 가시라고 했습니다.”

“하긴, 그럴만도 하더구나.”

어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홀로비드로 다 봤단다. 어찌나 놀랍던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요.”

그는 쑥스럽게 뒷목을 긁적였다.

“겸손하구나.”

어머니는 그의 뺨에 입맞춰 주었고, 허리를 숙여 입맞춤을 받으면서 다룬은 다시 얼굴의 고통을 참았다.

“올라가서 씻으렴. 뭐 간단한 요기거리라도 올려보내마.”

“감사합니다. 어머니…”

“응?”

내려가려다가 돌아서는 어머니를 보며 다룬은 이게 지금 꺼내도 되는 얘기일지 좀 머쓱해졌다.

“그때 얘기하셨던 왜… 테레아 별장 있잖아요. 강가에 있는 거요.”

“응, 기억나는구나.”

어머니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다룬은 놓치지 않았다. 역시 많이 바라셨던 일인 걸까. 부모님이 둘다 별장으로 옮기시면 본가는 텅 빈 기분일지도.

“사람을 보내서 좀 치우고 수리하라고 시켰어요. 몇주만 있으면 아버지랑 바로 들어가셔도 될 거예요.”

“어머나…얘야.”

어머니는 난간을 잡으면서 가슴에 한쪽 손을 댔다. 다룬이 놀라서 부축하자 어머니는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바라던 바이긴 하지만… 네 아버지도 동의하실까? 아직 은퇴할 준비는 안되셨다고…”

조심스런 희망에 가득한 그 눈빛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다룬은 어머니를 꼭 끌어안았다.

“동의하실 거예요.”

다정한 말에 담긴 차가운 확신을 눈치채지 못한채 어머니는 아들의 어깨를 대견하게 쓸어주었다.

“이제는 이렇게도 듬직한 아들이 있으니 말이다.”

다룬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는 아버지를 어머니에게 돌려드릴 때가 되었다… 공화국이나 가문, 알데란에 대한 책임을 떠나 어머니의 남편으로서. 형을 잃은 슬픔 앞에 두분이 평온하게 함께 지내며 서로 위안을 찾으시게 하자. 지금은 납득하지 못한다 해도 아버지는 차차 이해하실 것이다.

“올라가서 쉬렴, 응?”

“예, 어머니.”

인사하고 올라간 다룬은 일단 침대에 몸부터 던졌다. 홀로비드를 켜자 이제는 지겨워지기 시작하는 그 연설이 또 나오고 있었다. 자신을 끝없이 화면에서 본다는 것은 의외로 피곤한 일이었다.

게다가 화면 속의 남자는 묘하게 거슬리는 데가 있었다. 어둠도, 미움도, 자기불신도 없다는 듯 그저 모든 것이 밝고 자신있는 그 태도. 귀기울이다 보면 다룬 자신마저 마음이 움직일 정도로 맑고 확고한 신념.

‘형님 말고는 그런 사람은 모르는데 말야.’

다룬은 다시 부어오르는 뺨 안쪽을 혀로 짜증스럽게 건드리며 연설의 마무리에 귀를 기울였다.

“ ‘우리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제다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결코… 루바트 오르가나의 죽음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

그는 홀로비드를 꺼버렸다. 제다이 공의회에 보내는 지극히 공적인 사적 메시지, 그리고 그들이 알아챌지도 모르는 작은 선전포고. 나이트 리엘은 그 의미를 깨닫고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공의회에 다룬 오르가나만한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게 두자. 크고작은 모욕과 형의 죽음, 그리고 공의회의 배신과 업신여김에도 불구하고 제다이라면 하늘처럼 모실 것이라고 말이다. 굴욕을 참는 세월은 익숙했다. 결국 인내는 더 큰 성과로 돌아올테니.

모트 클라인도 자락스 토레이도, 때가 오면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용인한 제다이 공의회 역시. 때가 되면…

서버 드로이드가 와인과 과일을 가지고 들어왔을 때 다룬 오르가나는 이미 지쳐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쟁반만 내려놓고 나가는 동안 드로이드의 청각 센서는 잠든 공자의 목소리를 감지했다.

“형…”

SRV-36는 마치 질문을 던지듯 계기판의 조명을 깜박거렸지만, 다룬은 조금 뒤척일 뿐 반응하지 않았다. 드로이드 뒤로 문이 닫힌 방안에는 조용하고 고른 숨소리만이 남았다.

신들이 사랑하는 이는 젊어서 죽는다.
– 그리스 격언

2 thoughts on “[포도원의 제다이] 신들이 사랑하는… (5/5)

  1. 이방인

    오오… 그런 말이었습니까… 이 친구가 이런 맘 먹고 나서 꽤나 시간이 흐른뒤에 마주치게 된 셈인데 과연 그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라나요. 이친구(…) 벌써부터 내일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자락스군이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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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루바트에 대한 설정이 하나둘 쌓이면서 저 격언이 점점 더 생각나더라고요. 뭐 사실 죽은놈만한 놈이 없는 게 너무 당연한 것이, 죽은 사람은 그리움과 왜곡이 겹쳐서 얼마든지 뻥튀기시킬 수 있고 죄가 쌓이지도 않으니..(..) 루바트가 좀 특별한 녀석이긴 했던 모양이지만요. 그래도 다룬의 회상 속에서는 말썽도 부리고 스포츠나 여자 얘기도 하는 평범한 소년으로서의 모습도 그릴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뭔가 곡해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급패치를..)

      아, 연설의 그 마무리가 건전한(..?) 쪽으로 해석되셨었다니 다행이네요. 다룬도 그걸 노렸습(?) 공의회로서는 안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요. ‘당신 왜 우릴 미워해!’ 하고 정식 항의할 수도 없고 말입.. 젊은 제다이들은 그나마 엄청 열광하면서 본 연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안습.

      이제 공화국 상원의원이자 오르가나 각하가 되신 이 친구(..)라면.. 글쎄요? 저도 잡은지 좀 된 녀석이고 이쪽 얘기하고는 좀 시간간격이 있는지라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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