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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하고 대화하는 RPG 3: 우리가 모르는 것들

지난번 글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초기 목적은 정보 수집이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들이 다음과 같이 많이 때문이지요.
1. 타인의 관점과 정보를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현실에 대한 개별적인 해석이지요. 누구든지 감각 정보를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걸러내고 해석해서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상식 수준의 얘기입니다. 그러한 걸러내기와 해석 과정을 거치지 않고 현실을, 즉 감각정보를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인다면 감각정보의 홍수에 묻혀서 살 뿐 사람으로서, 아니 동물로서도 기능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걸러내기와 해석 과정 때문에 입장에 따라 같은 현실에 대한 결론도 크게 다르다는 것도 역시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같은 경기를 보면서 A팀 팬에게는 심판 오심인 것이 B팀 팬이 보기에는 심판의 명판정이고 B팀의 나이스 플레이입니다. A팀 팬도, B팀 팬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둘다 옳을 수 있습니다. A팀 팬과 B팀 팬은 같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관점에 맞는 것을 선택해서 확대하고,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지극히 당연한 걸러내기와 해석 과정을 거쳤을 테니까요. 그들이 각각 선택한 정보 내에서는 아마 그들의 해석은 각자 옳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A팀과 B팀 팬이 서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른다면 당연히 싸움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A팀 팬이 걸러내서 해석한 정보 (선을 넘지도 않았었는데! 그 심판은 경기 내내 A팀에 불리하게 판정했어!) 내에서 B팀 팬의 결론을 도출한다면 어불성설일 테고, 마찬가지로 B팀 팬이 걸러내서 해석한 정보 (휘두른 순간 공이 확 휘어져서 헛스윙했지! 그날 내내 A팀 경기는 엉망이었어!) 내에서 A팀 팬의 결론을 도출하는 것도 말이 안 되니까요.
스포츠 팬끼리 적당히 싸우는 건 스포츠의 재미 중 하나기도 합니다만, 인간관계를 해칠 수도 있는 문제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럴 때에는 상대가 왜 나하고는 의견이 다른지, 즉 같은 상황에서 어떤 정보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했기에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 들어보기 전에는 의견 차이의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상대는 다른 정보를 가지고 다른 해석을 해서 당연히 결론이 다른 것인데, 그 생각을 (원론적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한 채 말이죠.
뿐만 아니라 입장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자체도 다릅니다. 플레이에 매번 늦는 참가자는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갔다가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동생과 싸워서 컴퓨터를 쟁취해낸 후에야 플레이를 위해 접속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정보는 공유하기 전에는 그 참가자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같은 현실을 어떻게 걸러내고 해석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어떤 정보를 아는지는 제대로 대화를 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정보입니다. 이 점을 모르면 자신이 취사선택한 정보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하고,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만 고려하는 반쪽 대화가 될 테니까요. 결국 공감대 없이 서로 목소리만 높일 뿐, 진정 주고받는 소통은 없기 쉽습니다. 그래서 상대의 관점과 정보를 알아내고 자신의 관점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중요한 시작점입니다.
2. 타인의 의도를 모른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의도를 타인이 한 행동의 결과에 따라 추정합니다. 예를 들어 참가자가 플레이에 늦어서 플레이에 곤란이 생겼다면 참가자는 플레이를 곤란하게 하려고 했다, 혹은 곤란해져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가 일방통행식 진행을 해서 재미없어졌다면 진행자는 내 재미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는 의도가 나쁜 사람은 곧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런 상종 못할 게으르고 무배려한 인간, 저런 천하의 독재자 하는 식으로 우리의 삶에는 악역이 꽤 많지요. 타인을 나쁜 사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만큼 대화로 문제를 풀어내기는 어려워지고, 감정이 쌓이거나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쉬워집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독심술사가 아닌 이상 타인의 의도를 모릅니다. 행동의 결과에 따라 추정할 뿐이지요. 자꾸 늦는 참가자는 자기 때문에 시간을 바꾸자고 하기가 미안해서 시간을 맞추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것일 수도 있고, 일방통행식 진행자는 참가자의 적극성이 부족해서 자꾸 진행이 표류하니까 어쩔 수 없이 일방적으로 이끄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행동의 의도와 결과는 서로 별개의 개념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행동의 결과가 의도와 어긋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과로부터 추정한 의도는 그저 추정일 뿐, 남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추정한 의도로 타인을 마음 속에서 악역으로 만들고 왜 당신은 무배려하고 무책임하느냐, 왜 마음대로 하려고만 하느냐 하고 윽박지르는 것도 비생산적이지요.
따라서 타인의 의도를 지레짐작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추정은 그저 추리, 혹은 가설로 남겨놓고 타인의 진짜 의도를 알아내는 편이 더 정확하고, 감정적 소모가 적습니다. A님이 의도적으로 플레이를 곤란하게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러이러한 점이 힘든데, 이유를 알 수 있겠는지, 혹은 B님의 진행 속에서 참가자는 할일이 없어 보이는데 어떤 방향을 생각하고 계신지 하는 식의 대화는 한결 얘기할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이 문제에서도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3. 타인에 대한 내 행동의 결과를 모른다
타인의 행동의 결과에서 타인의 의도를 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의도에 맞게 추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는 플레이를 곤란하게 할 의도가 없으니까 실제로 곤란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독재자가 될 의도가 없으니까 실제로 참가자들은 내 진행을 독재로 받아들일 리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상대가 자신의 의도와 다른 반응을 보이면 그것은 상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플레이를 곤란하게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화를 내는지, 내가 독재적 진행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왜 참가자가 할일이 없다고 그러는지 말이죠. 결국 자신의 좋은 의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를 원망하며 역시 머릿속의 악역을 늘리게 됩니다.
여기에서도 의도와 행동은 별개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행동의 결과가 반드시 좋지는 않으며,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의도란 복잡해서 자신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좋은 의도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비생산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다툼에 빠지기 쉽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의도보다는 행동의 결과이며, 대화의 목적은 의도가 좋았네 나빴네 다투는 것보다는 행동의 실제적 결과에서 생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참가자가 남을 배려하려고 시간을 바꾸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고 시간을 맞추려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자꾸 늦는다면 플레이가 곤란해지며, 진행자가 진행이 표류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참가자가 낄 데가 없다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타인의 의도를 혼자 억측하지 않고, 또 자신의 의도에서 결과를 유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의도는 논의할 만하지만,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의도보다는 결과입니다. 감정이 쌓이지 않게 생산적으로 논의한다는 점에서 의도에 대한 토론은 분명 가치가 있지만 (감정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결국 의도와 결과는 별개이니까요.
4. 자신이 한 원인 제공을 모른다
위 1번에서 다루었듯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관점과 결론이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에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타인의 원인 제공을 크게 보고 자신의 원인 제공은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잘못했다, 내가 잘했다 하는 시비가 흔히 붙는데, 이것이 무익하다는 것은 이미 이전 글에서 다루었습니다.
문제를 정말 해결하려고 한다면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논의는 원인 제공, 혹은 기여도입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과는 다른 개념으로, 상황에 대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죄 없이 따져보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번 늦는 참가자가 현실적인 시간으로 플레이 약속을 잡지 않은 점, 진행자가 참가자 이야기를 듣지 않고 진행하는 점은 그들이 상황에 한 기여이지만, 다른 참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상황에 기여했을 수 있습니다. 플레이 시간을 다시 잡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거나, 진행자에게 충분히 의견을 표현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이 그 예이지요.
원인 제공에 대해 대화하는 것은 둘다 잘못했다는 식의 얘기와는 다릅니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는 별개의 얘기이니까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문제에 기여는 했을 수 있으며, 그것은 잘잘못을 따지는 문제와는 다릅니다. 또한 예를 들어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이 잘못이 없는 행동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대화의 중점을 잘잘못에 둘 것인가, 문제 해결에 둘 것인가 중에서 후자를 선택한다면 정죄보다는 원인 제공 논의가 낫다는 것이지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목표라면 잘잘못과 별개로 기여도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거의 어떤 상황에서든 양측 모두, 비록 한쪽이 99%이고 다른쪽이 1%라도 기여도가 있게 마련이기에, 어느 한쪽의 일방적 잘못이라는 결론이 나면 다른 쪽의 원인 제공은 묻히기 쉽습니다. 그래서 진행자가 자신의 일방통행식 진행은 잘못이었다고 인정하고 행동을 고친다 하더라도, 참여를 잘 하지 않는 참가자의 원인 제공에 대응하지 않으면 같은 문제를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의 원인 제공, 혹은 기여도를 파악해야 하는데, 타인의 원인 제공은 비교적 알기 쉽지만 자신의 원인 제공은 상대적으로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이 문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모두 알아야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위에서 논한 바와 같죠. 그래서 자신이 문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아내고 타인이 어떻게 기여했는지 (정죄 없이) 알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초석입니다.
5. 호기심의 관점으로 접근하라
오랜 옛날에 어느 위대한 성현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면 탐구할 의욕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크고작은 문제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면 대화를 통해서 알아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신의 추정과 억측을 기반으로 하여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위 1~4번에서 다루었듯 타인의 개입이 있는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정보의 반쪽밖에 모릅니다. 그 정보를 수집하지 않는 한 혼자 추정할 뿐이지요. 모르는 상태에서 내리는 진단과 해결은 불완전하고 상대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쉽습니다. 결국 혼자 납득할 뿐 상대의 협력을 끌어내기는 어렵지요. 그리고 그 추정이 실제와 맞아떨어졌다 하더라도 먼저 대화로 풀어내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없이는 옳은 말도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확실성의 관점으로 대화에 접근하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우며, 호기심의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모르는 정보를 알아내려고 대화를 하면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고 상대의 공감과 협력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 수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첩보전을 벌이거나 독심술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역시 상대의 관점과 의도, 자기 행동의 결과와 자신의 기여도를 알아내는 방법은 대화이며, 그 중에서도 발언보다는 경청이겠지요.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경청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하고 대화하는 RPG 2: 옳고 그름은 무의미하다

대화를 할 때면 대화의 목적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평소에 편하게 하는 대화야 그냥 재미로 하지만,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꺼려지는 곤란한 상황이거나 대화를 통해 뭔가를 결정하는 뚜렷한 기능이 있을 때에는 그 대화에 임하는 자신의 목표의식에 따라 대화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때 대화의 목적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라면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즉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납득시키는 것이 대화의 진짜 목적이라면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거나 매우 비효율적인 목표이므로 침묵만 못합니다. 기껏 대화를 시작했다가 대판 싸움이 나고 후회하는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렇습니다.
옳고 그름이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상대적입니다. 이것은 언쟁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요. 보통 어느쪽도 자신이 옳았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면 대개의 사람에게 그것은  ‘내가 옳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속에서는 옳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이기에 상대의 마음 속에서는 그가 옳고 내가 틀렸지요.
그래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대화는 스스로 옳다는 자신의 확신을 강화할 뿐, 상대를 납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설사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상하기 쉬우며, 관계를 손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 토론에 결론이 안 나는 이유이며, 우리말에서 ‘시비’라는 말의 어감이 부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옳고 그른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시비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하는 문제는 사람의 자아 정체감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더더욱 지기 어려운 문제이고, 결론을 내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서 내가 그르면 나는 바보이거나 나쁜 사람이 된다면, 누구든지 절대로 그르다는 인정을 하지 않겠지요. 혹은 한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균형을 잃고 감정이 상할 것입니다. 내가 똑똑하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하려고 타인에게 그런 굴욕을 안겨주는 것도 다르게 보면 참 못할 짓입니다. (정체감에 대해서는 나중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대화는 결론을 내기도 어렵고, 낸다 하더라도 대가가 큰 비효율적인 활동입니다.
이렇듯 효용이 적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라면 한결 현실성이 있습니다만, 이때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고 상대를 설복시키는 것’이나 ‘내 해결책대로 상대가 따라오는 것’이 문제 해결의 수단이라면 역시 위의 결론이 안 나고 소모적인 시시비비로 돌아갑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선 필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해결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특히 감정이 얽힌 문제일 수록 사람은 이미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참가자가 플레이에 매번 늦는다면 그 참가자는 무책임한 사람이고 일찍 와야 하며, 진행자가 일방통행식으로 진행한다면 그 진행자는 독재자이고 참가자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는 이미 문제와 해결책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대화에 임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 진단과 해결의 옳고 그름을 두고 역시 소모적인 대화를 하기 쉽지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요? 실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모르는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자신의 관점은 알지만 타인의 관점은 모르고, 자신의 의도는 알지만 타인의 의도는 모르고, 타인이 한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는 알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는 모르며, 타인이 문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알지만 자신이 한 기여는 잘 모릅니다.
이렇듯 모르는 것이 많다면, 먼저 모르는 정보를 알아야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알아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대화이지요. 따라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처음에는 그 목적은 정보를 알아내고, 상대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글에는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들을 다루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초기 목적은 정보의 획득과 공유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경청하고 대화하는 RPG 1: 문제의 제기

사람이 모여 하는 일이 다 그렇듯 RPG도 하다 보면 크고작은 문제가 발생하게 마련입니다. 참가자가 원하는 인물 설정이 마음에 안 드는데 차마 뭐라고 하기는 그래서 그대로 진행하는 일도 있고, 반대로 뭐라고 했다가 싸움이 나기도 하지요. 진행자의 일방통행식 진행이 불만일 수도 있고, 진행자가 참가자의 설정을 왜곡하거나 참가자를 괴롭히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옆에서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군요! 족쇄를 끊는다고요? 난이도는 초특급. 저런, 실패했습니다. 이번에는 눈앞에서 여동생이 칼에 찔립니다.”)
이러한 문제 앞에서 흔히 제시되는 해결책은 배려와 의사소통입니다만, 배려와 의사소통이 정확히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배려와 의사소통이 각각 다음과 같은 형태가 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첫째, 배려가 침묵이 될 때. 기분이 나쁜데도 분위기를 깨지 말자고 생각하고 혼자 참는 것을 배려라고 생각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냥 넘기면 대수롭지 않은 일도 많지만, 실제로 감정이 상하고 플레이에 문제가 있는데도 그냥 참고 있다 보면 감정은 점점 쌓이고 플레이는 그만큼 망가집니다.
게다가 무조건 침묵하는 배려는 타인에 대한 배려일 지는 몰라도 자신에 대한 배려는 부재한 반쪽 배려입니다. 분명히 자기 자신도 플레이에 참여하는 사람인데, 참여자 어느 한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은 전원이 배려받는 건강한 분위기가 아닙니다. 그 무시가 자신이 스스로 하는 것이라도요.
두 번째 문제는 의사소통이 말다툼이 될 때입니다. 용기를 내서, 혹은 도저히 못 참고 말을 꺼냈는데, 그 결과 감정싸움과 언쟁이 일어나고 플레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까지 손상이 오는 것 역시 건전한 의사소통은 아니겠지요. 왜 이런 인물을 만들었느냐, 왜 그런 진행을 하느냐, 참을 만큼 참았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왜 맨날 그러느냐.
역으로는 다들 역시 너무 조심하고 ‘배려’하느라 정작 중요한 얘기는 피하고, 아무 실질적인 해결도 변화도 없는 대화를 하는 것도 의사소통이 왜곡된 형태입니다. 아 예,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참고하겠습니다. 예 그건 몰랐네요. 앞으로 고치도록 하죠. 오늘 얘기해서 참 다행입니다. 등등 얘기하고 나서 다음번에도 또 똑같은 문제가 벌어진다면 그것도 아주 김빠지는 일이지요.
언쟁이든 예의바르고 공허한 대화이든 가장 큰 문제는 실질적으로는 소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할 얘기를 하고, 상대의 얘기에는 제대로 귀기울이지 않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지기 쉽지요. 그나마 예의바르고 알맹이 없는 대화는 예의 면에서는 진일보한 것입니다만, 역시 쌍방향 소통과 이해가 없이는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쓰려는 ‘경청하고 대화하는 RPG’ 시리즈에서는 RPG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플레이 중 문제가 생겼을 때는 물론이고 인물이나 배경 설정에 대해 토의할 때에, 앞으로 플레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때에 등등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일상생활에도 그렇고요.
글에 나오는 내용은 여러분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것이라도 이론적으로 정리해서 생각해보면 더 체계적으로 실행하고, 무엇이 효과가 있고 무엇이 효과가 없는지 생각할 수 있겠지요. 또한 이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기에도 글이 있는 편이 좋을 테고요. 그래서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시간나는 대로 써내려가보려고 합니다.
(이번 글 시리즈는 이전에 쓰려고 했던 놀이와 대화 시리즈를 대체하며, 역시 내용은 Difficult Conversations에서 따온 것에 제 생각을 덧붙인 것입니다. 책의 구성을 따라가기는 영 안 맞아서 그냥 제가 원하는 구성으로 새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플레이하듯 마스터링하기: 인물 주도형 RPG

1. 태초에 인물이 있었으니

다른 놀이와 구분할 수 있는 RPG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여럿이서 하는 놀이, 대화로 하는 놀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재의 목적상 제가 주목하고 싶은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RP로 하는 놀이라는 점. 즉, 직접 인물의 입장이 되어서 하는 놀이라는 특징입니다. 이 점은 참가자 (플레이어)든 진행자 (마스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인물에 대한 몰입도나 주목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RPG는 참여자 전원이 자기 담당 등장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직접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인물 중심적인 놀이입니다.

두 번째 주목할 만한 RPG의 특징은 직접 인물의 입장이 되는 RP가 실질적으로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인물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정함으로써 공동 서사의 방향을 결정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RPG의 역동성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종합해보면 RPG의 참여자는 인물에 대한 서술을 통해 놀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한다는 명제가 나옵니다. (포괄적인 설명으로는 이전에 쓴 서술권 글 참조.) 마왕이 공주를 납치하는 것은 인질을 확보하려는 작전이고, 공주가 일부러 납치당한 것은 마왕을 암살하기 위해서이고, 용병이 공주를 구하러 가는 것은 돈이 필요해서이고… 하는 식으로 대개의 이야기는 인물의 행동과 결정, 동기가 맞물리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고, RPG에서는 그 인물을 참여자들이 직접 제어합니다.

참가는 보통 진행보다 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가자는 자신의 인물을 움직여서 진행자가 제시하는 사건에 반응하면 되니까요. 반면 진행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참가자가 반응할 사건을 제시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RP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면 실은 진행도 참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작업입니다. 담당하는 인물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직접 등장하지 않고 막후에서 움직이는 인물도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그 외에 엄밀히는 인물이 아닌 자연현상 등도 움직인다는 차이도 있지만, RPG 속의 서사를,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끌어가는 것은 역시 등장인물들입니다. 그게 왕이든 괴물이든 말이죠.

그렇다면 진행 역시 참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참가와 다른 점에 대해 대응하면 참가를 하듯이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시나리오를 미리 짜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말이지요. 그에 더해 시나리오를 미리 짰을 때와는 또 다른 예측불허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흡사 참가자가 느끼는 재미처럼 자신의 인물로부터 이야기가 나오는 묘미도 있습니다. 즉흥성이 있는 만큼 참가자의 선택도 더 의미 있게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2. 준비와 논의: 천을 짜기 시작하다

인물 주도적으로 플레이를 끌어가려면 무엇보다 준비와 논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참여자가 맡은 인물을 이해하고 흥미도 느끼는 것이 중요해지니까요. 인물이 주도적일수록 모든 인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플레이 자체의 재미에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인물은 같이 앉아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차선책으로는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면서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요. 각자 따로 만들어오면 특히 참가자들은 어떤 인물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하기 쉽고, 또 능력이 중복되는 것과 같은 문제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 간 응집력이 떨어져서 인물 주도적으로 통일성 있는 서사를 꾸리기 어려워집니다. 서로 같은 방향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십상이니까요.

따라서 인물 주도형 캠페인을 준비할 때는 인물을 같이 만드는 것에 더해서 되도록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서 인물 배경과 특징도 함께 만들어갈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인물을 같이 엮고요. 나는 전사를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나는 워로드가 어떨까, 얘네는 맨날 티격태격 싸울 것 같다, 이런 능력을 넣으면 서로 보완이 되겠구나, 어떤 식으로 만났을까, 하는 논의를 거치면서 각 인물은 따로 노는 대신 유기적인 연관이 생깁니다.

이렇게 인물 사이 연관성을 만드는 과정은 주인공 (PC)뿐만 아니라 조연 (NPC)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인물 주도적인 캠페인을 하려면 조연도 진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야 합니다. 진행자가 이미 어느 정도 생각해둔 이야기 틀이 있고 등장시키고 싶은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주인공과 연관성을 만드는 편이 참가자 흥미를 확보하기도 좋고, 또 인물이 끌어가는 극을 만들어가기에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하나가 어렸을 때 마을이 몰살당했다면 누가 몰살시켰는지, 왜 그랬는지 생각해 두고, 그 장본인이나 관련 이야기를 나중에 등장시키면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결성을 부여하기 좋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디까지 참가자와 논의를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인지 참가자에게 명확한 생각이 있다면 자세한 논의와 조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그 생각이 너무 확고하고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RPG보다는 소설을 쓰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참가자가 마을 몰살이라는 실마리를 던졌을 뿐 자세히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진행자가 재량껏 설정해서 참가자를 놀라게 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최소한의 논의를 통해 참가자가 싫은 내용이 나오지 않게 조정할 수도 있고요. (“친족이 그랬다는 건 너무 흔한 전개이려나?”) 저는 자세한 논의와 혼자 한 설정, 양쪽 접근 모두 상황에 따라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인물의 이야기와 설정을 캠페인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반드시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있지 않아도 조연은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연관성을 만들기 좋습니다. 내 편이 되어달라거나, 뭔가 해달라거나, 사랑을 받아달라거나, 방해하지 말라거나, 인정해달라거나, 죽어달라거나(..) 하는 것이 그 예겠죠. 아주 단순한 것이라도 조연들이 주인공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연관성이 생기므로 조연이 주인공에게 원하는, 혹은 상황에 따라 원할 만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그 조연은 빼는 게 나을지도요.

이렇게 주인공과 조연 설정을 마쳤으면 진행자는 추가로 약간 준비를 합니다. 주요 조연의 동기와 자원,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 다음에 그들이 각자의 욕구와 계획에 따라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적어보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돌리는 주인공과 달리 진행자가 돌리는 조연은 늘 등장하지는 않으므로 그들이 ‘화면 밖’ 혹은 막후에서 취하는 행동들을 생각해보는 과정으로서, 조연 RP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마왕

동기: 북방의 영토를 두고 왕국과 하는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거한다. 어디가나 차별받고 살해당하기도 하는 마물들을 위한 평화로운 왕국을 세우려고 한다.

자원: 수많은 병력, 국민의 충성, 북방의 일부 영주들이 마왕과 내통하고 있다

한계: 자신의 영토 외에서는 자유롭게 운신할 수 없고, 눈에 띄는 수하 대신 동맹이나 고용인을 통해 행동해야 한다.

행동: 북방에 시찰을 나온 공주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았다

주인공 관련성: 주인공인 용사와 아는 사이로, 용사는 마왕과 몇 번이나 싸우고도 마왕의 이상과 사람됨을 봐서 살려준 적이 있다

공주

동기: 전쟁을 빨리 끝내서 왕국을 구하고, 가능하다면 영웅도 된다

자원: 뛰어난 전사이지만 내숭도 뛰어나다. 왕국 내에서 꽤 인기가 좋다

한계: 무모한 성격이며, 왕국을 떠난 이상 혈혈단신이다

행동: 마왕을 암살하려고 일부러 납치당했다

주인공 관련성: 어려서 시골 영지에서 지내던 당시 용사와 함께 검을 배운 동문이다. 주인공이 마왕의 성에 온다면 함께 마왕을 죽이자고 할 것이다



동기: 전쟁을 빨리 끝내고, 경쟁을 물리치고 왕권을 공고히 한다

자원: 자신의 군대, 영주들의 충성, 왕으로서의 통치권

한계: 왕권을 확고하게 세우지는 못하고 있어서 대영주들과 누나 등 경쟁자를 의식해야 한다.

행동: 전쟁에 시달리는 북방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인망이 높은 누나를 북방에 보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이 위험한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러 호위를 부실하게 했다. 인질이 잡힌 이상 공개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용사에게 잠입 구출을 의뢰할 것이다. 물론 상당히 많은 보수를 약속하고! 하지만 실제로 공주의 구출이 성공하게 내버려둘 의도는 없어서, 용사가 공주를 구해온다면 배신할 생각.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물쩍 누나를 마왕과 결혼시켜 정적 제거 + 종전 효과를 보려고 한다.

주인공 관련성: 용사의 실패를 바라고 있고, 성공한다면 제거하고 공주는 다시 마왕에게 귀환시킬 생각이다.

물론 이건 단순화한 예시이고, 실제로는 주인공이 여러 명인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둘 이상의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조연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사이에 연관성이 많을 수록 처음부터 공통적으로 연관이 있는 조연도 많을 테고요.

이렇게 주요 조연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개별적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그로부터 생기는 결과를 포함해 상황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고, 주인공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시작할지 생각합니다.

상황: 공주가 마왕에게 납치당해서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면 왕이 누나인 공주를 포함한 정치적 경쟁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북방의 전황은 교착 상태. 왕은 어서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하지만 그러려면 상당한 양의 영토를 내주어야 하며, 때문에 북방 영주들의 반발이 강하다. (등등)

시작: 공주 구출 의뢰를 하려는 왕에게 용사가 불려가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 외에 플레이하면서 또 새로운 조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조연 이름 목록을 미리 뽑아 준비해놓으면 좋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하면 이름을 붙여서 조연 기록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면 되니까요.


3. 진행: 나비 효과

일단 시작 상황을 던져주면 주인공은 뭔가 RP를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조연의 동기와 이미 한 행동, 자원과 한계 등을 고려해서 반응하는 RP를 하면 됩니다. 왕이 용사에게 공주의 구출을 의뢰하는데 용사가 좀 건방지게 굴면 왕은 불쾌한 표시를 미묘하게 드러낼 테고, 이 점은 나중에 용사에 대한 왕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요. 반면 용사가 아주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면 그를 배신하려던 생각이 좀 흔들릴 수도 있고요.

한 세션이 끝나면 조연, 특히 주요 조연의 정보를 수정해서 그 세션의 결과, 그 세션 동안에 무대 위에서 혹은 막후에서 한 행동과 벌어진 사건 등을 정리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중략)

행동: 전쟁에 시달리는 북방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인망이 높은 누나를 북방에 보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이 위험한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러 호위를 부실하게 했다. (중략)

1 세션: 용사에게 의뢰해 누나를 구출해달라고 보낸 후 북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주 크라이스데일 남작에게 전령을 보내 용사의 인상착의를 알리고, 그를 환대하면서도 철저히 감시할 것을 명령했다.

주인공 관련성: 용사의 실패를 바라고 있고, 성공한다면 제거하고 공주는 다시 마왕에게 귀환시킬 생각이다.

1세션: 그러나 알현 이후 용사의 정중함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 생각이 다소 흔들리고 있다.

1세션에 왕이 막후에서 한 행동의 결과로 크라이스데일 남작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생겼으니 이번에는 그 설정을 하면 됩니다.

남작

동기: 입신양명! 영지를 확장하고 이기는 쪽에 줄을 선다. 일단은 좋은 혼처부터.

자원: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영지, 뛰어난 검술, 잘생긴 외모

한계: 영지 외에서는 영향력이 별로 없고, 주변에 강한 영주가 많다.

행동: 반란이나 독립을 모의하는 북방 영주들과 왕 중 어느 쪽에 붙을까 고민하고 있다. 양쪽 사이에 위치한 영지 때문에 어느 쪽이든 최전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지금으로서는 양쪽 모두에게 고분고분하게 굴면서 정세를 엿보고 있다.

1세션: 왕에게서 공주 구출 작전에 대한 전령이 오자 역시 양쪽 모두에게 잘 보일 기회를 포착하고 북방의 영주 중 가장 강한 레오딘 공작에게 비밀리에 알렸다.

세션을 거듭하면서 진행자가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RPG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있는 부분, 즉 인물 설정과 인물성 살리기입니다. 이렇듯 인물 단위로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있고, 이야기를 딱히 미리 정해둘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쌓인 것을 기반으로 해서 주인공들의 행동에 반응하다 보면 이야기가 생길 뿐이죠. 각 주인공과 조연이 상황에 반응해 행동하며 미래를 알지 못하듯, 진행자도 캠페인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따라서 참가자도 진행자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물을 얼마나 자세히 설정할지, 혹은 인물 외의 다른 것 (장소 등)을 얼마나 설정할지는 그때그때 판단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격이란 인물을 RP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하므로 설정 한두 마디로 제약하기보다는 그냥 그의 동기와 이익에 맞게 RP하는 편을 선호하지만, 다른 분은 성격을 설정해놓으면 한결 RP하기가 편할 수도 있습니다. 조연의 말투와 성격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대사 예시 같은 것을 적어놓을 수도 있을 테고요. 마찬가지로 캠페인 성격에 따라서는 자원과 한계 같은 항목보다는 인연과 감정 등이 중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소 등은 특히 맵을 사용하는 전투가 있는 규칙이라면 자세한 설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각적 상상력이 형편없는지라 장소 설정은 잘 못하지만, 그런 부분을 잘 설정하는 분은 장소를 통해 한결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도 있겠죠.

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사건–갑작스러운 폭풍이라든지 지진 등–역시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지역과 세계 설정에서 여기는 폭풍이 잦은 지역, 여기는 가끔 가다 지진이 있는 곳 하는 식으로 생각한 다음에 그 지역에 갔을 때 무조건 폭풍이 온다거나, 아니면 확률을 정해 놓고 (1d6에서 2 이하이면 폭풍이 몰아닥친다는 식) 폭풍을 등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뭐 결국 비는 진행자가 내리고 싶으면 내린다는 게 지론입니다만..(..)

또한, 이런 우연한 사건에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행동에 반응하면서 조연 설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용사가 온다는 전갈을 받았던 남작이 수색대를 보낸다든지, 용사는 생존 판정에 성공해서 동굴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나이든 은둔자와 마주친다든지. 여기서 또 생겨나거나 떠오르는 설정이 있으면 조연 설정에 추가하거나 새로운 조연을 만들면 됩니다.

4. 결론이 있다면…

이상과 같이 인물 중심, 혹은 인물 주도형 진행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1년 반짜리 스타워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며, 저에게는 제법 잘 맞았습니다. 그 캠페인을 하면서 저조차도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서 굉장히 즐거웠던 생각이 납니다. 한편 참가자들도 미래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을 아니까 자유도에 제약이 적었던 것 같고요.

인물 중심 진행을 요약하자면 준비된 임기응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물을 준비한 다음에 준비한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는 RP의 연속이지요. 그런 면에서 참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물을 한 사람씩만 다루면 되는 참가에 비해서 인물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방법론이 그렇듯 이것도 만인에게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를 잘 쓰고 필요에 따라 쉽게 변형할 수 있는 분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용하는 규칙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꽤 복잡한 스탯의 적을 준비해야 한다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진행 방식보다는 시나리오 진행이 안정적일 것입니다. 또한, 여러 인물을 가지고 한꺼번에 임기응변을 펼치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인물 중심 진행을 사용하기 좋은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만들고 참가자 선택에 따라 바꾸는 작업이 어렵거나 재미없는 분, 조연을 비교적 간단하게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분, 그리고 여러 인물 RP를 한꺼번에 즉석에서 하는 게 괜찮은 분. 이런 분이라면 인물 중심 진행이 꽤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사용하고 있으실 수도 있고요.

결국 진행자의 스타일이나 욕구가 다양한 만큼 진행 방법도 다양하겠지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보이면 기존에 진행을 하지 않던 분도 진행을 잡게 될 수도 있고, 기존에 진행을 하던 분도 더욱 편하고 재미있게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다양한 진행 방법론이 정리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놀이와 대화 1-2: 감정에 대해 대화하기

지난번 ‘놀이와 대화’ 글에서는 대화에 드러나는 관점 차이, 즉 사건의 경위를 보는 시점의 차이, 상대와 자신의 의도와 결과에 대한 생각의 차이, 그리고 잘잘못에 대한 생각 차이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에 이어 모든 어려운 대화에 숨은 두 번째 대화, 감정에 대한 대화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1. 감정 회피의 문제점

보통 감정은 대화의 주제가 아닌 주변적인 문제, 혹은 방해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예 못 참고 감정을 막 쏟아내는 게 아닌 이상은 ‘이성적인’ 대화에 감정을 끌어들이고 감정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피 행동이지요.

그러나 감정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새어나오거나 분출하게 마련입니다.

감정이 대화에 새어나오는 예로 대표적인 것은 감정의 대리물로 대화 중 옳고 그름을 따지고 외부적 기준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글에서 예를 든 M과 P의 대화가 그렇습니다.

M: P’는 왜 다른 주인공들하고 동떨어지는 거죠? 일행이 안 모이고 있어서…
P: 걔는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할 수 없어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P: ……

여기서 M은 자기 감정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M의 말은 분명히 감정적입니다. 이성적 기준을 빌어서 얘기하고 있어도 사실 중심은 P가 ‘핑계’를 대고 있다거나 ‘재미를 저해’한다는 말을 통해 드러나는 짜증스러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감정은 어떤 식으로든 대화에 드러나게 마련인데도 그 실체를 외면하고 대신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인 (역설적이게도) 감정 싸움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외면한 채 억누르고 또 억누르다 보면 어느 순간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리는 일도 적잖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후회할 말이나 행동을 하고 인간관계가 돌이킬 수 없어져버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봐도 감정을 부인하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기는커녕 오히려 감정에 지배당하는 지름길입니다.

2. 감정을 직시하고 분석하기

물론 감정을 직시하고 대화에 생산적으로 끌어들이기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우선해야 한다고 배우며, 또 감정, 특히 분노, 질투,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흔히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감정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반응입니다.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마저.

그래서 감정이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좋은 사람도 얼마든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분노나 질투를 느낀다고 해서 그 감정이 곧 자기 자신은 아닙니다.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많은 감정 중 하나일 뿐이죠. 원인을 공략해서 극복하고 해결할 대상이기는 하지만, 그 실체를 외면해서는 극복은 더 어려워집니다.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려면 감정을 세분화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의 M은 P에게 짜증이 난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조금 나누어 보면 사실 그 실체는 훨씬 복잡할 수 있습니다. P에 대한 분노 외에도 캠페인 상태에 대한 실망감,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진행자인 자신의 무능이라는 두려움과 부담감, 협조하지 않고 있는 P에 대한 당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은 알지 못한 채, 아니 자신은 감정 따위 없이 철저히 이성적이라고 믿으면서 이 모든 감정의 무게를 P에게 한꺼번에 풀어버리는 것은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겠지요.

또한, 감정을 다른 것으로 둔갑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을 직시하고 표현하는 어려움은 감정 대화를 감정 아닌 것으로 해결하려는 데서도 드러납니다. ‘좋은 참가자라면 일행 융합에도 협조할 거야.’라는 심판이나 ‘왜 캠페인을 망치려는 거지?’라는 의도 단정, ‘당신은 배려심이 부족해요.’라는 평가, ‘이제부터는 일행과 함께 다니면 돼요.’라는 문제 해결은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의 대체물일 따름이죠. 감정은 자신이 느끼는 것이지, 타인에 대한 판단이 아닙니다. 감정을 다른 것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는 감정을 회피하는 또 다른 수단일 뿐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면 감정과 교섭하기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감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만큼 인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지난 번 글에서 다룬 관점 차이를 하나씩 생각해 보면 감정을 다스리기가 좋아집니다. 사건의 경위, 상대와 자신의 의도와 행동의 결과, 사건의 원인 기여가 정말로 M이 생각한 그대로인가. P의 관점은 M의 관점과는 한결 다르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압박을 덜 수 있으며, 그만큼 상대의 관점에 귀기울이고 문제 해결을 향해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됩니다.

3. 감정에 대해 대화하기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면 비로소 감정에 대해 생산적으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감정을 무시해야 할 부산물로 치부하는 대신 대화 중 직접 다루고, 심판, 단정, 평가, 문제 해결 대신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정직하게 이야기하면 감정은 대화에서 다룰 수 있는 사안 중 하나가 됩니다. 예를 들어 위의 M과 P의 대화에서 M이 감정이 실린 가치 평가를 하는 대신 감정을 정직하게 얘기한다면 대화는 한결 달라지겠지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대신에

M: 근데 일행이 잘 모이지 않아서 저로서는 진행하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캠페인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했고요. 계속 일행이 흩어지면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좀 되는데, P님 생각은 어떠세요?

하는 식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인정하지 못하는 감정이 대화에 새어나가서 내가 잘했다 네가 못했다는 싸움이 되는 대신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상대의 감정 역시 들어줄 자세가 되었다는 표시를 할 수 있으니까요. (눈썰미 있는 분은 1-1에서 다룬 관점 대화도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P의 의도가 나쁘다고 단정짓는 대신 자신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다루니까요. 종합적으로 다루는 것은 2부에 할 예정입니다만, 일단 맛배기 (?))

이렇게 감정을 다룰 때면 자기 감정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품고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점 차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와 자신의 감정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필요한 정보이니까요.

또한, 위에서 얘기한 감정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 문제를 피하려면 자신의 것이든 상대의 것이든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일단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 인정이 곧 동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왜 너는 그렇게 느끼느냐 혹은 내가 이런 감정이 있다니 참 바보다 하고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물론 감정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비합리적이고 말도 안 되는 감정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그런 감정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설득하고 싶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감정은 이성이 아닌 만큼 논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은 잘못되었다고 논리적으로 주장하려는 것은 감정에 대한 외면과 부정직함, 그리고 억압을 유발할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습하는 대화를 통해 인식을 조정해 가면서 감정 역시 변화시키고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감정을 인정하고 감정에 대해 정직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대상은 다스릴 수도 없게 마련이지요. 감정의 존재와 그 성격에 대해 자신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정직해야 감정에 지배당하는 대신 감정을 제어하고, 감정을 비롯한 주변 문제를 생산적으로 해결할 기반을 쌓을 수 있습니다.

놀이와 대화 1-1: 관점 차이

RPG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인 상황이라 별별 문제가 다 생깁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죠.

캠페인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가자 중 P의 주인공 P’가 나머지 일행을 거들떠도 보지 않아서 일행이 섞이지 않고 자꾸 평행 진행이 됩니다. 따라서 진행자 M과 다른 참가자들은 다소 짜증이 나는 상태입니다.

예, 별로 명랑발랄한 상황은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사건들 때문에 한이 맺혀서(..?) 곤란한 행동유형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요.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따르는 대가가 있지요. 아예 팀에서 자를 수도 있지만, 이건 P와의 인간관계에는 거의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곤란하면 캠페인 중단한다고 하고 P만 따돌린 후 나머지 사람끼리 모이는 방법도 있지만, 얍씰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아무 말 없이 P와 P’는 무시하고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서로 계속 오해와 감정이 쌓이기에 딱 좋은 방법이기도 하죠.

역시 가장 정공법이며 생산적인 해결책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겠지만, 이게 또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로 예의 차리느라 어색하고 곤란한 침묵으로 빠져들거나 정말 캠페인 파토날 만한 감정싸움으로 가기 쉬우니까요. 예를 들어 이런 대화가 되기 십상입니다.

M: P’는 왜 다른 주인공들하고 동떨어지는 거죠? 일행이 안 모이고 있어서…
P: 걔는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할 수 없어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P: ……

그러면 이 짤막한 대화를 중심으로 이 대화 속에 숨은 다른 대화들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이 글과 다음번 글에서 다룰 세 가지 대화 중 첫 번째, 관점에 대한 대화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는 대화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경위로 문제가 생겼는지 하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있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우리는 문제의 경위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위의 예에서 P가 주인공 P’의 성격을 핑계로 독불장군 노릇을 하는 게 문제인 건 명백한데. 따라서 P의 RP가 문제이고, 허구적 주인공의 성격으로 자기 행동을 변호하는 행동이 잘못이고,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P이며 P가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건 M의 관점입니다. P의 관점에서 본 이 상황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P가 정말로 주인공의 성격을 핑계대고 문제를 일으키는지 P의 속마음은 P밖에 모릅니다. 핑계라는 건 P의 행동에 대한 M의 평가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P의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도 M의 생각입니다.

위의 문단에서 빠진 것은 바로 P의 관점입니다. M과 P의 이야기 중 우리는 M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셈이죠. M이 옳은데 그게 무슨 상관이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M이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도 옳다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갈등상황 자체가 관점의 갈등이기에 (P의 RP에 대한 관점의 차이) P의 관점을 들어보지도 않고 설득하려는 것은 아무 설득력이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는 근본적으로 자기 주장을 투척하는 대화가 아닌 학습하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관점 차이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먼저 무슨 관점 차이가 있는지 알아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데, 서로 관점을 이해하기 전에는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니까요.

이러한 관점 차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Difficult Conversations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경위, 의도와 결과, 원인에 관한 관점 차이이지요.

1. 경위에 대한 관점 차이

우선,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경위에 대한 생각은 다들 다소간에 다릅니다. RPG를 할 때면 놀라운 재미와 놀라운 두통(..)의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상황에 있어도 사람마다 기존 경험, 들어오는 정보, 세계관, 성격 등에 따라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관점을 알고 있다고, 혹은 상대가 나의 관점을 안다고 생각하는 확신은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저쪽의 관점 따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위에 얘기한 대로입니다.

예시로 돌아가자면 같은 상황이라도 문제의 경위에 대한 P의 생각은 아마 M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P가 보기에는 자신이 맡은 주인공인 P’의 성격을 충실히 살리는 RP를 하면서 일행을 합치는 계기를 진행자 M이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행동이 문제라고 하니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겠죠.

또한, P는 주인공의 성격 RP를 훨씬 중시하는 팀 출신일 수도 있고, 일행을 뭉치게 하는 주도적인 역할은 진행자가 맡는 것에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팀에서는 주인공 성격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주의를 들은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주인공 성격을 살린다고 진행자가 뭐라고 한다면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얘기하고 파악하지 않으면 이런 차이를 알 수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관점 차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환상적인(..) 생각, 혹은 상대의 관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독선적인 생각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죠.

2. 의도와 결과의 차이

사람은 보통 어떤 의도를 품고 행동을 합니다. 사회적인 상황에서 그 행동은 상대에게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예에서 P’의 무덤덤하고 비사교적인 성격에 충실하려고 했던 P의 행동은 M과 다른 참가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결과를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역시 얘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신경 써서 파악은 할 수 있겠습니다만 (속칭 ‘알아서 눈치 깔기’), 결국 M이 확실히 아는 것은 M 자신의 의도, 그리고 P의 행동이 M에게 일으킨 결과뿐입니다. 마찬가지로 P 역시 자신의 의도와 M의 행동이 P에게 미친 영향밖에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요.

사람은 다 보는 관점이 다른데도, 그리고 한 사람이 보유한 정보는 이렇듯 제한적인데도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훤히 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에게 유발한 결과를 기준으로 상대의 의도를 단정짓죠. P의 행동은 나를 불쾌하게 했다는 결과에서 P는 이기적인 의도로 행동했다는 의도를 유추하고, M의 지적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는 결과에서 M은 나를 제멋대로 조종하려고 한다는 의도를 유추하는 등.

이게 얼마나 비생산적인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정보가 부정확하니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문제를 모르니 해결하기도 어렵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최악의 의도를 부여해 버리면 상대는 더 이상 상종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결국 생산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이 못된 사람을 찍어누르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결국 길게 얘기했다..(…))

여기에서도 역시 확신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도와 상대 행동의 결과. 상대가 알고 있는 것은 상대의 의도와 우리 행동의 결과뿐. 결과에서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대화를 통해 이 정보의 차이를 줄여가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원인 제공

문제가 내 탓인지 남 탓인지 얘기하라고 하면 후자를 고르는 일이 아마 대개의 사람은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정당화에 강하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래서 잘못을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선 사람은 방어적으로 되고, 변화에 저항하게 됩니다. (이건 나중에 다룰 정체성 대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물론 자기가 잘못했다고 깨끗이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하는, 정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상대 역시 문제에 원인을 제공한 일이 많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잘잘못과 별개의 개념으로서의 원인 제공입니다.

위의 예로 돌아가 보면, P의 RP가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지만 M 역시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둘 다 잘못이라거나 서로 사과하라거나 하는 시시비비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상호 행동 교정의 문제이죠.

예를 들어 주인공 P’가 좀 비사교적인 성격이라도 일행과 융화할 수 있도록 M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었는데 P가 자기 인물의 성격을 희생해 가면서 스스로 융화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일행이 합치지 못하는 문제에 원인이 될 수 있었겠죠. 물론 P’의 성격이 비사교적이라 일행을 무시할 것이라는 P의 태도 역시 원인 제공을 했겠고요.

둘  다 원인 제공을 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M이 P가 잘못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하는 것은 따라서 크게 두 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P가 심리적 방어성이 발동해서 행동을 교정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둘째, P의 탓이 크고 P가 이를 인정해도 M의 원인 제공은 그냥 지나가므로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떠나 문제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에 기여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플레이 중, 그리고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든 문제가 발생할 때면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게 마련이고, 그 관점 차이 자체가 갈등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알 수 있을 뿐, 상대의 관점은 알기 어렵습니다. 상대의 관점을 모르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요.

그래서 문제의 경위에 대한 상대방의 관점, 상대의 의도와 자신이 한 행동이 상대에게 유발한 결과, 그리고 문제의 원인에 기여한 점을 서로 이야기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확신을 상대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상대가 아는 정보를 수집하려는 학습하는 대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생산적 대화의 기본이 됩니다.

놀이와 대화: 플레이 중 문제에 대응하기

이전에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7가지를 나름 적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전에 성일님 지적도 있었듯 ‘나 저 사람 싫어’로 끝나면 발전이 없죠. 물론 RPG 팀 구성하기와 같은 글을 통해 서로 스타일이 맞고 안 맞는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방법론이 아예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만, 문제 행동유형 글 자체는 건설적인 얘기라기보다는 거의 살풀이에 가깝기는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집 방식만으로는 플레이 중 생기는 모든 문제에 대응할 수 없기도 합니다. 모집을 신중하게 한다 해도 모집 단계에는 알 수 없었던 문제가 나중에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요. 플레이 중 참여자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고, 참여자 사이에 악감정이 생길 수도 있고, 성격이 잘 안 맞을 수도 있고요.

플레이 중 문제가 생길 때는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잘 얘기해서 해결한다든지, 플레이를 끝낸다든지, 문제가 되는 참여자를 축출한다든지. 그러나 종종 얘기를 꺼내기 자체가 어려운 일이 많고, 그래서 문제를 회피한 결과 감정은 상하고 플레이는 재미없어지는 일도 상당히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일이 많았고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방법론으로 플레이 중 생기는 민감한 문제에 대응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관계를 손상하지 않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법을 몇 부로 나누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내용은 더글래스 스톤 (Douglas Stone) 외 2인 著 ‘어려운 대화 (Difficult Conversations)’를 기반으로 합니다. RPG에 적용하고 있지만 방법론 자체는 어떤 대화에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죠.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할 예정입니다. 제가 쓴 이전 요약본을 참조한 것이라 책을 참조하면서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1. 세 가지 대화
    1.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1. 서로 다른 관점
      2. 의도와 결과의 차이
      3. 원인 제공
    2. 감정에 대한 대화
    3. 정체성 대화
  2. 대화를 시작하기
    1. 제3의 관점에서 시작하라
    2. 문제 해결을 향한 공동 접근
  3. 대화와 경청
    1. 정보수집을 위한 질문
    2. 바꿔 말해서 명확화하기
    3. 상대의 감정 인정하기
    4. 진의를 이야기하기
    5. 주도적 문제 해결
  4. 결론과 정리

RPG란 결국은 인간관계인 만큼 인간관계와 대화의 기술을 활용하고 발전시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만병통치약은 아니고 이런 것을 고려하면 한결 부드러워진다는 얘기 정도지만요. 놀이 중 발생하는 문제가 왜 건드리기 어려운 소재인지, 그리고 어려운 대화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로 바꿔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4) – 외전

긴 캠페인을 하다 보면 참가가 상당히 성실하다 해도 누군가 빠지는 일이 가끔 생깁니다. 이전에 참가자가 빠진 세션이라는 글에서도 다루었지만 이런 때 플레이를 쉬면 캠페인의 추진력에 심각한 제약이 됩니다. 일단 정기 플레이를 많이 쉴 수록 기억은 희미해지면서 내용의 연결성이 끊어지고, 완급은 늘어지므로 캠페인을 지속하기 어렵게 됩니다.

참가자가 빠질 때마다 플레이를 쉬면 파토가 나기 쉬운 것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빠지면 플레이를 쉰다고 하면 사실상 성실하게 참가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기 쉽습니다. 내가 잘 나와도 다른 사람이 빠져서 아무것도 안한다면 플레이에 나간 사람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결과가 되니까요. 다른 사람의 참석 여부는 제어하기 어려운 만큼 성실하게 참가하는 것만으로는 참가의 목적 (플레이)을 달성하기 어려워집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나라도 빠졌다는 이유로 플레이가 없으면 역으로 성실하게 참가한 사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성적으로는 그런 이유로 쉬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약속대로 참가한 3명보다 오지 않은 한 명이 더 중요해지고, 그 결과 생기는 박탈감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으로 이어집니다. 일단 캠페인의 분위기가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계속할 동기는 약해집니다.

그런 악영향이 있는 만큼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 또 불참이 잦은 참여자가 있다면 빼든지 아니면 매회 나오지 않아도 플레이를 계속할 수 있게 하든지 뭔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캠페인을 계속하기는 어려워질 테니까요.

그러나 때로는 글 첫머리에서 말했듯 참가가 전반적으로 성실한데도 가끔 한 사람씩 빠지는 일도 있습니다. 때로는 미리 연락하고 빠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정으로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때는 부재가 잦지는 않으므로 문제는 덜하지만, 그렇다고 한 사람이 빠졌다는 이유로 플레이를 아예 쉬면 캠페인에 위와 같은 악영향이 생기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내용 연결상 빼고 진행하기는 어려운 일도 많죠.

이럴 때 제 경험상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캠페인 외전 세션입니다. 과거 이야기, 캠페인 세계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일, 일행의 또 다른 모험, 심도 있는 대화 등. 외전은 본편 진행에서 잠시 벗어나는 좋은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하는 등 단편 진행에서 다룬 다양한 이점도 있으며, 캠페인 세계와 사건을 다양하게 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캠페인에 깊이가 생기고 풍부해지므로 더욱 추천할 만하죠.

한 사람이라도 오면 본편이든 외전이든 뭔가 플레이가 있다는 것은 성실하게 참가할 좋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남이 잘 참가하는 건 직접 제어할 수 없지만, 스스로 성실하게 참가하면 (그리고 진행자도 그러리라고 믿을 수 있다면) 참가의 목적인 플레이는 어쨌든 이루니까요. 오히려 자신은 참가했는데 다른 참가자가 안 나온다면 개별 세션으로 자신의 주인공을 더 부각시킬 수도 있고, 플레이도 더 많이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누군가 빠져도 플레이를 한다는 것은 세션에 나온 사람에 대한 존중의 표시도 됩니다. 안 나온 사람도 있지만 나온 사람이 더 중요하니까 플레이를 하자는 표시라는 의미에서요. 아니면 마침 본편이 슬슬 늘어지는데 다른 걸 할 수 있어서 잘 됐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약속대로 참가한 데에 대한 존중, 그리고 캠페인에 대한 열정을 전달하는 만큼 감정적 결속도 강해집니다.

물론 외전을 참가자가 빠진 상황으로 꼭 제한할 필요도 없겠죠. 캠페인에 대한 다각도의 조명, 기분 전환 등 참가자 부재와 상관없는 이점도 크니까요. 외전을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주인공을 달리 해서 본편 캠페인과 배경만 같은 별도의 캠페인을 진행할 수도 있고, 규칙이나 매체가 다른 캠페인을 동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편은 채팅 플레이, 외전은 게시판 플레이라든지.)

요약하자면 외전은 참가자의 부재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고 캠페인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장기 캠페인의 흥미와 완급을 유지하는 데 거의 필수적이기도 하죠. 적극 활용하면 장기 캠페인 운영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3) – 즉흥

RPG 창시자의 기일이 되어버린 GM의 날을 맞아 (?), 그리고 전에 물고기님과 한 얘기에서 생각난 것을 적어봅니다. 어떻게 보면 전에 썼던 많은 글을 재탕한 거기도 하군요.

진행이 어렵다는 얘기를 꽤 보게 됩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 시작할 때 어렵게 느꼈었고, 지금도 참가에 비하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요즘에는 그래서 진행자 없는 규칙에 부쩍 관심이 늘었고요. 그러나 좀 어렵게 느껴져도 또 굉장히 재미있을 수 있는 게 진행이며, 재미있으면서도 비교적 편하게 하는 열쇠를 저는 ‘즉흥’에서 찾습니다.

즉흥이라고 하면 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사실 즉흥은 대개의 진행자가 이미 해본 것이며 진행 중에도 계속해서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가를 할 때면 즉흥은 당연하게 하죠. 캐릭터 시트와 배경 설정이라는 기본 자료만 가지고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 인물의 행동을 선언하니까요.(주:물론 이게 어려운 분도 있습니다. 한 해결책으로 전에 질문을 제시했었고요.) 비슷하게 조연 (NPC)이 주인공을 만날 때도 무슨 말을 할까, 무슨 행동을 할까 하나하나 다 각본을 짜는 진행자는 (아마 거의) 없습니다. 성격과 설정에 따라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 서술할 뿐. 이렇게 보면 즉흥 자체는 진행자와도 먼 얘기는 아닙니다.

물론 진행자가 해야 하는 서술의 범위는 개별 인물 단위의 즉흥보다는 좀 더 넓습니다. 수많은 인물 외에 집단, 지역, 나아가서는 세계 자체가 진행자의 서술 범위에 들어가는 만큼 진행자는 참가자보다 준비를 더 많이 하고, 부담도 큽니다.(주:물론 설정 책임 등을 참가자와 나눌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때는 역할을 어떤 식으로 분담할 것이느냐의 문제가 또 남죠. 참가자가 그런 책임을 원하는지도 팀마다 다를 것이니 여기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인물 하나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즉흥적으로 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즉흥이란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제자리에서 만들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건 다같이 그 자리에서 설정과 상황을 만들어간다면 몰라도 진행자가 어느 정도 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한 플레이에서는 직무유기에 가까우니까요. 그래서 여기서 얘기하는 즉흥은 ‘밑도끝도 없이 즉흥’이라기보다는 ‘준비한 즉흥’입니다. 즉, 인물을 일단 만들어놓고 그 설정에 맞추어 서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전체든, 지역이든, 집단이든 설정을 만들어놓고 사건과 상황–특히 참가자의 선택–에 반응해서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준비한 즉흥’ 방식은 사건의 귀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하고 선택지를 만든다거나 하는 시나리오 방식에 비해 사전 준비 노력이 덜 들고, 참가자 자유도를 살리기 좋고, 무엇보다 진행자 자신도 전개에 따라 놀라게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구성, 개연성, 주제의식, 복선 등도 설정을 만들고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내적 일관성, 설정을 통해 표현하는 주제, 현재 전개상 미래에 나왔으면 좋겠을 장면 등을 고려해가면서 할 수 있고요.

진행을 즉흥적으로 하면 참가자의 선택으로 곤란해질 일은 없어집니다. 행동 그대로 결과를 주면 되니까요. 예를 들어 공작이 제3 세력에 암살당하는 것과 주인공 일행이 구해내는 것 사이에 선택지를 만들고 준비했었는데 주인공 일행이 공작을 살해해 버린다면 미리 준비한 전개가 틀어질 수도 있겠지만, 미리 만든 설정을 상황에 반응해 움직인다면 주인공 일행은 쫓기는 몸이 된다든지, 사실은 공작의 후계자가 배후에서 조종한 일이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그 상황에 따를 만한 결과를 서술하면 됩니다. (이때 뻔해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준비한 즉흥은 시나리오 진행의 보조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준비한 즉흥 방식을 정형화한 좋은 예로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 나오는 마을 제작 길잡이가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서 무엇이 어디까지 잘못되었는가, 어떤 인물들이 휘말렸는가, 그들이 주인공 일행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주인공 일행이 마을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를 정해놓고 주인공 일행을 이 마을 한가운데 빠뜨려서 상황을 전개하는 것이죠. 승한님이 이 기법을 M&M 플레이에 활용하기도 하신 등, 규칙과 상관없이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기법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리플레이가 없군요! 찰싹찰싹)

그 외에 제가 즉흥을 하는 방식을 정리한 글로는 준비와 진행, 관리가 있고, 즉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가자의 흥미를 끄는 방식은 신호 중심 준비 방식이 있습니다. 신호 중심 준비와 진행의 구체적인 예로는 영혼의 우물 단편이 있고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이면 좋겠고, 많은 질문과 비판, 반론 부탁드립니다~

놀이와 교섭: ‘무엇’보다는 ‘왜?’

※ 주: Roger Fisher의 교섭 지침서 Getting to Yes와 수업 중 배우고 교섭 훈련받은 내용 등을 놀이라는 상황에 맞춰 정리한 것입니다.

RPG 등 여럿이서 하며 규칙 외의 영역이 꽤 되는 놀이를 하다 보면 의견 차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런 때면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만 다루면서 의견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거나 (“아니 외교 중심 캠페인이랬는데 왜 전투귀신이야!”), 충돌하는 요구사항 사이에 타협하기도 합니다(“전투에 투자한 것 중에서 반만 사회 기능으로 돌리자, 응?”). 때로는 상대의 기분이나 팀내 화합을 먼저 고려하는 의미에서 양보하기도 하고 (“알았어, 인정하지.”), 때로는 진행자이니까, 혹은 지난번에는 내가 양보했으니까 등의 이유로 의견을 관철하기도 하지요(“처음부터 그랬지, 외교 중심 캠페인이라고!”).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하고 간단한 사실이라면, 요구사항 자체만을 다뤄서는 교섭 결과에 만족하기 어려우며 가치를 창출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섭에서 중점이 되어야 할 것은 ‘무엇을 원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째서 원하는가‘입니다. 전자가 요구라면 후자는 그 요구의 이유가 되는 관심사이지요. 이 차이를 이해하면 바로 그 요구 말고도 같은 관심사를 충족할 수단을 모색할 수 있고, 그런 수단 중에는 양자 모두의 관심사를 충족할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관적으로 훨씬 만족스러운 합의사항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죠.

위의 외교 캠페인의 예로 돌아가보면, 사실 참가자 P가 진행자 G의 공지에도 불구하고 전투 중심 인물을 만든 것은 전에 어려운 전투 때문에 인물이 죽은 일이 있어서 어떤 전투에도 대응하려는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예를 든 P나 G의 의견 완전 관철은 물론이고 타협책 역시 어느 쪽의 관심사에도 충분히 부응하지 못합니다. 전투능력이 반으로 줄면 P의 위기감은 늘어나기만 할 테고, G도 외교 능력이 부족한 P의 인물 때문에 캠페인에 이런저런 조정을 가해야 할 테니까요. 요구사항의 배후에 있는 관심사를 이해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가 있을 때면 상대의 관심사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위의 P는 전투를 잘하는 인물을 만들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굳이 외교 캠페인에 전투에만 치중한 인물을 만들어온 동기는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G도 외교 중심 캠페인이니까 주인공 일행은 외교관이어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그게 정말로 외교 캠페인을 재미있게 돌리는 방법인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교섭은 자신과 상대의 관심사를 이해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어떤 관심사가 있는지 알아야 그 관심사에 만족스럽게 부응하는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놀이에 임하는 자신과 상대의 관심사를 알아내고, 맞수가 아닌 협력자 입장에서 해결책을 함께 찾아나갈 수 있다는 면에서 의견 차이는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심사를 알아내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입니다. 그 요구의 이유를 물어보고 귀기울이면서 정리해가는 것이지요. 단순히 자기가 다음에 할 말을 생각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이 경청이 아니라, 정말로 상대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소화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말합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실생활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경청을 침묵으로 끝내지 않고 상대의 관심사를 추출하는 한 가지 중요한 기법으로는 능동적 경청이 있습니다. 먼저 상대가 말을 하면 듣고 인정합니다. (“그렇구나.”) 그 말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말의 배후에 있는 관심사를 정리해서 자기 말로 다시 표현합니다. (“즉, 전처럼 전투가 위험해지면 왠만한 실력으로는 견디기 어려우니까 자기 방어 차원이라는 거?”) 그리고 자신이 정리한 관심사가 옳은지 확인합니다. (“맞나?”) 이들 단계는 함께 하거나 짧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다시 표현 단계를 질문형으로 하면 확인의 역할도 하죠), 각자 효용이 다르므로 개념적으로는 따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경청은 이익을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인 한편 감정적으로도 서로 가까워지는 중요한 방법이기도 하죠. 누군가 자기에게 귀기울여주고 정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은 그만큼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하니까요.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놀이에 임하는 교섭의 특수성이라면 요구의 배후에 있는 관심사는 무의식적이거나 내밀한 것도 많다는 점이기에. 그래서 나오는 것이 관찰의 중요성입니다.

요구의 배후에 있는 상대의 관심사를 파악하는 두 번째 주요한 수단인 관찰은 좀 덜 점잖게 말하면 ‘알아서 눈치깔기’라고도 할 수 있고, 결국 사람에 대한 감인 만큼 설명하기도 좀 어렵습니다. 대화를 나눌 때 계속해서 등장하는 주제나 태도, 잘 만드는 인물 유형, 놀이 중에 열성적으로 반응하는 요소 등을 관심있게 보다 보면 이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무엇을 좋아할 것 같은지 느낌이 오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G가 평소 보기에 P는 능력이 튀는 편을 선호하는 것 같다면, 그것 역시 P의 관심사라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관심사를 파악하면 다양한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볼 기반이 생깁니다. P가 원하는 것이 꼭 전투귀신이라기보다는 플레이 중 허무하게 죽지 않는 것이라면 그 욕구를 충족하면서 G의 관심사 역시 충족하는 방법은 많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경호원 조연을 둔다든지, 전투는 어느 정도 난이도가 적합할지 함께 생각해 본다든지, 전투 중 너무 쉽게 죽지 않게 규칙을 고친다든지.

마찬가지로 G가 원하는 것이 반드시 전원 외교 중심 인물로 구성한 일행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외교 캠페인이라면 전투 중심 인물이 있는 것이 꼭 외교 캠페인의 재미를 해칠지 생각해보고, P의 인물은 경호원이라든지, 유명한 군인인데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협용으로 데려온 인물이라든지 하는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겠죠. P와 G가 각각 처음 내놓은 요구사항만을 다루었다면 생각하기 좀 더 어려웠을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이미 많은 팀에서 하고 있는 새삼스러운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라 해도 정리해 두면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상황에도 적용할 수도 있고 비판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론이 된다는 점에서 이렇게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더 좋은 놀이와 더 많은 토론의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