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하듯 마스터링하기: 인물 주도형 RPG

1. 태초에 인물이 있었으니

다른 놀이와 구분할 수 있는 RPG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여럿이서 하는 놀이, 대화로 하는 놀이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현재의 목적상 제가 주목하고 싶은 특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RP로 하는 놀이라는 점. 즉, 직접 인물의 입장이 되어서 하는 놀이라는 특징입니다. 이 점은 참가자 (플레이어)든 진행자 (마스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인물에 대한 몰입도나 주목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RPG는 참여자 전원이 자기 담당 등장인물의 행동과 감정을 직접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인물 중심적인 놀이입니다.

두 번째 주목할 만한 RPG의 특징은 직접 인물의 입장이 되는 RP가 실질적으로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인물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지 정함으로써 공동 서사의 방향을 결정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RPG의 역동성이 나옵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종합해보면 RPG의 참여자는 인물에 대한 서술을 통해 놀이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한다는 명제가 나옵니다. (포괄적인 설명으로는 이전에 쓴 서술권 글 참조.) 마왕이 공주를 납치하는 것은 인질을 확보하려는 작전이고, 공주가 일부러 납치당한 것은 마왕을 암살하기 위해서이고, 용병이 공주를 구하러 가는 것은 돈이 필요해서이고… 하는 식으로 대개의 이야기는 인물의 행동과 결정, 동기가 맞물리는 과정으로 생각할 수 있고, RPG에서는 그 인물을 참여자들이 직접 제어합니다.

참가는 보통 진행보다 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가자는 자신의 인물을 움직여서 진행자가 제시하는 사건에 반응하면 되니까요. 반면 진행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하는 일이 많습니다. 참가자가 반응할 사건을 제시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해야 한다는 통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RP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하면 실은 진행도 참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작업입니다. 담당하는 인물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직접 등장하지 않고 막후에서 움직이는 인물도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요. 그 외에 엄밀히는 인물이 아닌 자연현상 등도 움직인다는 차이도 있지만, RPG 속의 서사를,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끌어가는 것은 역시 등장인물들입니다. 그게 왕이든 괴물이든 말이죠.

그렇다면 진행 역시 참가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참가와 다른 점에 대해 대응하면 참가를 하듯이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시나리오를 미리 짜거나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말이지요. 그에 더해 시나리오를 미리 짰을 때와는 또 다른 예측불허의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흡사 참가자가 느끼는 재미처럼 자신의 인물로부터 이야기가 나오는 묘미도 있습니다. 즉흥성이 있는 만큼 참가자의 선택도 더 의미 있게 반영할 수도 있습니다.

2. 준비와 논의: 천을 짜기 시작하다

인물 주도적으로 플레이를 끌어가려면 무엇보다 준비와 논의 과정이 중요합니다. 서로 다른 참여자가 맡은 인물을 이해하고 흥미도 느끼는 것이 중요해지니까요. 인물이 주도적일수록 모든 인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플레이 자체의 재미에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인물은 같이 앉아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차선책으로는 충분히 의사소통을 하면서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요. 각자 따로 만들어오면 특히 참가자들은 어떤 인물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하기 쉽고, 또 능력이 중복되는 것과 같은 문제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물 간 응집력이 떨어져서 인물 주도적으로 통일성 있는 서사를 꾸리기 어려워집니다. 서로 같은 방향이 아니라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십상이니까요.

따라서 인물 주도형 캠페인을 준비할 때는 인물을 같이 만드는 것에 더해서 되도록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서 인물 배경과 특징도 함께 만들어갈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인물을 같이 엮고요. 나는 전사를 하고 싶은데, 그렇다면 나는 워로드가 어떨까, 얘네는 맨날 티격태격 싸울 것 같다, 이런 능력을 넣으면 서로 보완이 되겠구나, 어떤 식으로 만났을까, 하는 논의를 거치면서 각 인물은 따로 노는 대신 유기적인 연관이 생깁니다.

이렇게 인물 사이 연관성을 만드는 과정은 주인공 (PC)뿐만 아니라 조연 (NPC)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인물 주도적인 캠페인을 하려면 조연도 진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어야 합니다. 진행자가 이미 어느 정도 생각해둔 이야기 틀이 있고 등장시키고 싶은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주인공과 연관성을 만드는 편이 참가자 흥미를 확보하기도 좋고, 또 인물이 끌어가는 극을 만들어가기에도 좋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하나가 어렸을 때 마을이 몰살당했다면 누가 몰살시켰는지, 왜 그랬는지 생각해 두고, 그 장본인이나 관련 이야기를 나중에 등장시키면 주인공의 이야기에 완결성을 부여하기 좋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디까지 참가자와 논의를 할지는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어떤 형태인지 참가자에게 명확한 생각이 있다면 자세한 논의와 조정을 거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그 생각이 너무 확고하고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RPG보다는 소설을 쓰는 편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반면 참가자가 마을 몰살이라는 실마리를 던졌을 뿐 자세히 생각한 것이 아니라면 진행자가 재량껏 설정해서 참가자를 놀라게 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추가적으로 최소한의 논의를 통해 참가자가 싫은 내용이 나오지 않게 조정할 수도 있고요. (“친족이 그랬다는 건 너무 흔한 전개이려나?”) 저는 자세한 논의와 혼자 한 설정, 양쪽 접근 모두 상황에 따라 좋은 효과를 보았습니다.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인물의 이야기와 설정을 캠페인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반드시 과거의 인연으로 얽혀있지 않아도 조연은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연관성을 만들기 좋습니다. 내 편이 되어달라거나, 뭔가 해달라거나, 사랑을 받아달라거나, 방해하지 말라거나, 인정해달라거나, 죽어달라거나(..) 하는 것이 그 예겠죠. 아주 단순한 것이라도 조연들이 주인공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야 연관성이 생기므로 조연이 주인공에게 원하는, 혹은 상황에 따라 원할 만한 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그 조연은 빼는 게 나을지도요.

이렇게 주인공과 조연 설정을 마쳤으면 진행자는 추가로 약간 준비를 합니다. 주요 조연의 동기와 자원, 한계에 대해 생각해본 다음에 그들이 각자의 욕구와 계획에 따라 어떤 행동을 취했을지 적어보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돌리는 주인공과 달리 진행자가 돌리는 조연은 늘 등장하지는 않으므로 그들이 ‘화면 밖’ 혹은 막후에서 취하는 행동들을 생각해보는 과정으로서, 조연 RP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입니다.

마왕

동기: 북방의 영토를 두고 왕국과 하는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거한다. 어디가나 차별받고 살해당하기도 하는 마물들을 위한 평화로운 왕국을 세우려고 한다.

자원: 수많은 병력, 국민의 충성, 북방의 일부 영주들이 마왕과 내통하고 있다

한계: 자신의 영토 외에서는 자유롭게 운신할 수 없고, 눈에 띄는 수하 대신 동맹이나 고용인을 통해 행동해야 한다.

행동: 북방에 시찰을 나온 공주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았다

주인공 관련성: 주인공인 용사와 아는 사이로, 용사는 마왕과 몇 번이나 싸우고도 마왕의 이상과 사람됨을 봐서 살려준 적이 있다

공주

동기: 전쟁을 빨리 끝내서 왕국을 구하고, 가능하다면 영웅도 된다

자원: 뛰어난 전사이지만 내숭도 뛰어나다. 왕국 내에서 꽤 인기가 좋다

한계: 무모한 성격이며, 왕국을 떠난 이상 혈혈단신이다

행동: 마왕을 암살하려고 일부러 납치당했다

주인공 관련성: 어려서 시골 영지에서 지내던 당시 용사와 함께 검을 배운 동문이다. 주인공이 마왕의 성에 온다면 함께 마왕을 죽이자고 할 것이다



동기: 전쟁을 빨리 끝내고, 경쟁을 물리치고 왕권을 공고히 한다

자원: 자신의 군대, 영주들의 충성, 왕으로서의 통치권

한계: 왕권을 확고하게 세우지는 못하고 있어서 대영주들과 누나 등 경쟁자를 의식해야 한다.

행동: 전쟁에 시달리는 북방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인망이 높은 누나를 북방에 보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이 위험한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러 호위를 부실하게 했다. 인질이 잡힌 이상 공개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우므로 용사에게 잠입 구출을 의뢰할 것이다. 물론 상당히 많은 보수를 약속하고! 하지만 실제로 공주의 구출이 성공하게 내버려둘 의도는 없어서, 용사가 공주를 구해온다면 배신할 생각.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물쩍 누나를 마왕과 결혼시켜 정적 제거 + 종전 효과를 보려고 한다.

주인공 관련성: 용사의 실패를 바라고 있고, 성공한다면 제거하고 공주는 다시 마왕에게 귀환시킬 생각이다.

물론 이건 단순화한 예시이고, 실제로는 주인공이 여러 명인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때에는 둘 이상의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조연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 사이에 연관성이 많을 수록 처음부터 공통적으로 연관이 있는 조연도 많을 테고요.

이렇게 주요 조연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개별적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그로부터 생기는 결과를 포함해 상황을 전체적으로 정리해보고, 주인공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 시작할지 생각합니다.

상황: 공주가 마왕에게 납치당해서 민심이 술렁이고 있다. 떠도는 소문에 귀를 기울이면 왕이 누나인 공주를 포함한 정치적 경쟁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한다. 북방의 전황은 교착 상태. 왕은 어서 평화협정을 맺고 싶어하지만 그러려면 상당한 양의 영토를 내주어야 하며, 때문에 북방 영주들의 반발이 강하다. (등등)

시작: 공주 구출 의뢰를 하려는 왕에게 용사가 불려가는 상황에서 시작한다.


그 외에 플레이하면서 또 새로운 조연이 생길 수 있으므로 조연 이름 목록을 미리 뽑아 준비해놓으면 좋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하면 이름을 붙여서 조연 기록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면 되니까요.


3. 진행: 나비 효과

일단 시작 상황을 던져주면 주인공은 뭔가 RP를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조연의 동기와 이미 한 행동, 자원과 한계 등을 고려해서 반응하는 RP를 하면 됩니다. 왕이 용사에게 공주의 구출을 의뢰하는데 용사가 좀 건방지게 굴면 왕은 불쾌한 표시를 미묘하게 드러낼 테고, 이 점은 나중에 용사에 대한 왕의 태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요. 반면 용사가 아주 정중한 태도를 보였다면 그를 배신하려던 생각이 좀 흔들릴 수도 있고요.

한 세션이 끝나면 조연, 특히 주요 조연의 정보를 수정해서 그 세션의 결과, 그 세션 동안에 무대 위에서 혹은 막후에서 한 행동과 벌어진 사건 등을 정리합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중략)

행동: 전쟁에 시달리는 북방 영지들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인망이 높은 누나를 북방에 보냈지만, 동시에 그 지역이 위험한 것도 잘 알고 있었으며 일부러 호위를 부실하게 했다. (중략)

1 세션: 용사에게 의뢰해 누나를 구출해달라고 보낸 후 북방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영주 크라이스데일 남작에게 전령을 보내 용사의 인상착의를 알리고, 그를 환대하면서도 철저히 감시할 것을 명령했다.

주인공 관련성: 용사의 실패를 바라고 있고, 성공한다면 제거하고 공주는 다시 마왕에게 귀환시킬 생각이다.

1세션: 그러나 알현 이후 용사의 정중함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 생각이 다소 흔들리고 있다.

1세션에 왕이 막후에서 한 행동의 결과로 크라이스데일 남작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생겼으니 이번에는 그 설정을 하면 됩니다.

남작

동기: 입신양명! 영지를 확장하고 이기는 쪽에 줄을 선다. 일단은 좋은 혼처부터.

자원: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영지, 뛰어난 검술, 잘생긴 외모

한계: 영지 외에서는 영향력이 별로 없고, 주변에 강한 영주가 많다.

행동: 반란이나 독립을 모의하는 북방 영주들과 왕 중 어느 쪽에 붙을까 고민하고 있다. 양쪽 사이에 위치한 영지 때문에 어느 쪽이든 최전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지금으로서는 양쪽 모두에게 고분고분하게 굴면서 정세를 엿보고 있다.

1세션: 왕에게서 공주 구출 작전에 대한 전령이 오자 역시 양쪽 모두에게 잘 보일 기회를 포착하고 북방의 영주 중 가장 강한 레오딘 공작에게 비밀리에 알렸다.

세션을 거듭하면서 진행자가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RPG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재미있는 부분, 즉 인물 설정과 인물성 살리기입니다. 이렇듯 인물 단위로 생각하면 그들의 행동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게 되어 있고, 이야기를 딱히 미리 정해둘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쌓인 것을 기반으로 해서 주인공들의 행동에 반응하다 보면 이야기가 생길 뿐이죠. 각 주인공과 조연이 상황에 반응해 행동하며 미래를 알지 못하듯, 진행자도 캠페인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릅니다. 따라서 참가자도 진행자의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물을 얼마나 자세히 설정할지, 혹은 인물 외의 다른 것 (장소 등)을 얼마나 설정할지는 그때그때 판단할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성격이란 인물을 RP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하므로 설정 한두 마디로 제약하기보다는 그냥 그의 동기와 이익에 맞게 RP하는 편을 선호하지만, 다른 분은 성격을 설정해놓으면 한결 RP하기가 편할 수도 있습니다. 조연의 말투와 성격을 한 번에 알 수 있는 대사 예시 같은 것을 적어놓을 수도 있을 테고요. 마찬가지로 캠페인 성격에 따라서는 자원과 한계 같은 항목보다는 인연과 감정 등이 중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장소 등은 특히 맵을 사용하는 전투가 있는 규칙이라면 자세한 설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각적 상상력이 형편없는지라 장소 설정은 잘 못하지만, 그런 부분을 잘 설정하는 분은 장소를 통해 한결 입체적인 표현을 할 수도 있겠죠.

인물과 전혀 상관없는 사건–갑작스러운 폭풍이라든지 지진 등–역시 이야기를 더욱 다채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은 지역과 세계 설정에서 여기는 폭풍이 잦은 지역, 여기는 가끔 가다 지진이 있는 곳 하는 식으로 생각한 다음에 그 지역에 갔을 때 무조건 폭풍이 온다거나, 아니면 확률을 정해 놓고 (1d6에서 2 이하이면 폭풍이 몰아닥친다는 식) 폭풍을 등장시킬 수도 있습니다. 뭐 결국 비는 진행자가 내리고 싶으면 내린다는 게 지론입니다만..(..)

또한, 이런 우연한 사건에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행동에 반응하면서 조연 설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용사가 온다는 전갈을 받았던 남작이 수색대를 보낸다든지, 용사는 생존 판정에 성공해서 동굴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나이든 은둔자와 마주친다든지. 여기서 또 생겨나거나 떠오르는 설정이 있으면 조연 설정에 추가하거나 새로운 조연을 만들면 됩니다.

4. 결론이 있다면…

이상과 같이 인물 중심, 혹은 인물 주도형 진행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1년 반짜리 스타워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사용했던 방법이기도 하며, 저에게는 제법 잘 맞았습니다. 그 캠페인을 하면서 저조차도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어서 굉장히 즐거웠던 생각이 납니다. 한편 참가자들도 미래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는 것을 아니까 자유도에 제약이 적었던 것 같고요.

인물 중심 진행을 요약하자면 준비된 임기응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물을 준비한 다음에 준비한 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상황에 반응하는 RP의 연속이지요. 그런 면에서 참가와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인물을 한 사람씩만 다루면 되는 참가에 비해서 인물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모든 방법론이 그렇듯 이것도 만인에게 좋은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를 잘 쓰고 필요에 따라 쉽게 변형할 수 있는 분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용하는 규칙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꽤 복잡한 스탯의 적을 준비해야 한다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진행 방식보다는 시나리오 진행이 안정적일 것입니다. 또한, 여러 인물을 가지고 한꺼번에 임기응변을 펼치기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인물 중심 진행을 사용하기 좋은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만들고 참가자 선택에 따라 바꾸는 작업이 어렵거나 재미없는 분, 조연을 비교적 간단하게 즉석에서 만들 수 있는 분, 그리고 여러 인물 RP를 한꺼번에 즉석에서 하는 게 괜찮은 분. 이런 분이라면 인물 중심 진행이 꽤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사용하고 있으실 수도 있고요.

결국 진행자의 스타일이나 욕구가 다양한 만큼 진행 방법도 다양하겠지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보이면 기존에 진행을 하지 않던 분도 진행을 잡게 될 수도 있고, 기존에 진행을 하던 분도 더욱 편하고 재미있게 진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더욱 다양한 진행 방법론이 정리되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4 thoughts on “플레이하듯 마스터링하기: 인물 주도형 RPG

  1. 이방인

    진행자가 ‘사람’을 만들어 연기하고 그들이 변해가는 과정과 그 ‘사람’ 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좋아할 경우 매우 재밌게 플레이할수 있는 방법이고… 상대적으로 ‘시나리오 준비식’ 의 진행보다 진행자가 참가자와 ‘더불어서’ 즐길 여지가 많은 마스터링방법 같아요.
    실제로 저번 ‘공화국의 그림자’ 켐페인에서도 진행자야 로키님이셨지만 사실상 인물들에 살(NPC:군살(?!))이 잔뜩 붙고 난 중반 이후부터는 진행자 참가자 구분이 거의 없다시피하게 서로 부대끼며( ? )이야기를 ‘같이’ 만들어간 느낌이군요.
    반면. 세상에는 ‘자기가 만들어놓은 시나리오의 흐름’ 대로 이야기를 다 짜놓고서 조금씩 조금씩 임기응변으로 시나리오를 고쳐가며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걸 선호하는 진짜 ‘진행자’형 스타일의 마스터도 많은지라. 그분들께는 별로 맞지 않을수도 있을꺼 같습니다.
    실제로 저번 켐페인의 경우에 로키님이 생각하지도 못했던(Ex:아를란(…)) NPC가 부각된다거나. 중간에 PC가 떨어져 나가버린다던가 하는식으로 끊임없이 변수가 발생했으니까요.
    그 중간에 발생하는 변수들이 ‘즐겁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뭔가 생각대로 안흘러가는군’ 하고 조금 불편하게 생각되는가가 이런식의 진행을 할수 있는가 없는가를 나누는 기준이라고 봐도 될듯하네요.

    그나저나 오랫만이군요(….) 회사가 죽도록 바빠지는 시기와 켐페인 끝날시기가 겹쳐 켐페인 종결글에도 리플한번 못달았네요(먼산)
    뭐 나름대로 에필로그도 써놓고(날려먹었지만(…)) 했었는데 말이죠 ;ㅅ;
    그래도 생각보다 포스팅이 많이 늘지는 않았는데 나름 바쁘게 살고 계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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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와 반갑습니다~ 오랜만이군요. 어째 안 보이신다 했더니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 저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졸업하고 취직해서 정신없이 지냈죠.

      말씀대로 공화국의 그림자 때 저는 거의 또 하나의 참가자에 가까웠었죠. (NPC에 붙은 살이라니, 동글동글한 쟈 공주를 연상해 버렸 (?)) 말씀대로 인물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이야기를 제어하려는 욕구가 없었으니 가능한 플레이였겠죠. (그러니 아를란이(..)) 한편으로는 그만큼 능동적인 참가자들 덕분에 가능하기도 했고요. 말씀대로 이야기의 흐름을 제어하려는 욕구가 있는 작가형 진행자, 혹은 소극적인 참가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겠죠.

      에필로그를 날리다니 너무 아깝습니다!! 저도 쓰고 있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못 마치고 있죠. 그래도 천천히 올려봐야 할.. 공화국의 그림자는 영원합니다 훗훗(?)

      Reply
  2. Asdee

    와. 멋진 글입니다. 인물 위주 마스터링은 참 매력적인 도전인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 NPC 설정을 세세하게 해둔 플레이는 시도했는데, 그땐 잘 안 됐었어요. 저 혼자 일방적으로 NPC 설정을 짜고, 플레이어들이 거기에 공감을 가지지 못한 면이 컸던 듯… 예전 ‘자기 도취형 마스터링의 폐해’에서도 언뜻 얘기했지만요.

    이 방식이 성공하려면, PC는 정말 주인공답게, 조연은 조연답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아요. 플레이어들이 [포도원의 제다이]처럼 다른 NPC들에게 깊이 관심갖고 상호작용해야 할테고요.

    다음에 좀더 생각해보고 또 정리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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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고마우이~ 말한 것 같은 문제 때문에 준비와 논의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 조연이 주인공과 함께 플레이의 축을 담당하는 만큼 참가자들이 조연에 흥미와 공감이 가야 즐거우니까. 공화국의 그림자 주요 조연들은 거의 다 주인공 설정에서 나왔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더 몰입했던 것 같아. 자기 주인공의 스승, 가족, 연인, 친구, 적 등은 주인공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하니까.

      한편으로 네이버 TRPG 카페에서 어떤 분이 지적했듯 인물 위주 마스터링은 인물끼리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가 굉장히 다양하게 뻗쳐갈 수 있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간다고 느끼기도 쉬운 것 같아. 그래서 이야기에 대한 제어권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거의 또 다른 참가자가 되는 느낌을 즐길 게 아니면 순수한 인물 주도형 진행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 네이버에서 댓글 다신 다른 분의 방법처럼 시나리오와 혼합형으로 사용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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