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하고 대화하는 RPG 2: 옳고 그름은 무의미하다

대화를 할 때면 대화의 목적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평소에 편하게 하는 대화야 그냥 재미로 하지만, 얘기를 꺼내는 것조차 꺼려지는 곤란한 상황이거나 대화를 통해 뭔가를 결정하는 뚜렷한 기능이 있을 때에는 그 대화에 임하는 자신의 목표의식에 따라 대화가 크게 달라집니다.

이때 대화의 목적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라면 아예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즉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고 납득시키는 것이 대화의 진짜 목적이라면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하거나 매우 비효율적인 목표이므로 침묵만 못합니다. 기껏 대화를 시작했다가 대판 싸움이 나고 후회하는 것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렇습니다.
옳고 그름이란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상대적입니다. 이것은 언쟁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지요. 보통 어느쪽도 자신이 옳았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면 대개의 사람에게 그것은  ‘내가 옳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그 속에서는 옳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이기에 상대의 마음 속에서는 그가 옳고 내가 틀렸지요.
그래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대화는 스스로 옳다는 자신의 확신을 강화할 뿐, 상대를 납득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설사 설득한다고 하더라도 감정이 상하기 쉬우며, 관계를 손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 토론에 결론이 안 나는 이유이며, 우리말에서 ‘시비’라는 말의 어감이 부정적인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옳고 그른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시비가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 하는 문제는 사람의 자아 정체감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더더욱 지기 어려운 문제이고, 결론을 내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서 내가 그르면 나는 바보이거나 나쁜 사람이 된다면, 누구든지 절대로 그르다는 인정을 하지 않겠지요. 혹은 한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균형을 잃고 감정이 상할 것입니다. 내가 똑똑하거나 좋은 사람이라는 증명을 하려고 타인에게 그런 굴욕을 안겨주는 것도 다르게 보면 참 못할 짓입니다. (정체감에 대해서는 나중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을 가리는 대화는 결론을 내기도 어렵고, 낸다 하더라도 대가가 큰 비효율적인 활동입니다.
이렇듯 효용이 적은 시시비비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대화의 목적이라면 한결 현실성이 있습니다만, 이때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문제가 남습니다.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르다고 상대를 설복시키는 것’이나 ‘내 해결책대로 상대가 따라오는 것’이 문제 해결의 수단이라면 역시 위의 결론이 안 나고 소모적인 시시비비로 돌아갑니다.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선 필요한 것은 정보입니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해결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특히 감정이 얽힌 문제일 수록 사람은 이미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참가자가 플레이에 매번 늦는다면 그 참가자는 무책임한 사람이고 일찍 와야 하며, 진행자가 일방통행식으로 진행한다면 그 진행자는 독재자이고 참가자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는 이미 문제와 해결책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대화에 임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 진단과 해결의 옳고 그름을 두고 역시 소모적인 대화를 하기 쉽지요.
그러나 우리가 정말로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을까요? 실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모르는 것은 굉장히 많습니다. 자신의 관점은 알지만 타인의 관점은 모르고, 자신의 의도는 알지만 타인의 의도는 모르고, 타인이 한 행동이 자신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는 알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는 모르며, 타인이 문제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는 알지만 자신이 한 기여는 잘 모릅니다.
이렇듯 모르는 것이 많다면, 먼저 모르는 정보를 알아야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를 알아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대화이지요. 따라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적어도 처음에는 그 목적은 정보를 알아내고, 상대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다음 글에는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들을 다루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의 초기 목적은 정보의 획득과 공유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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