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대화 1-1: 관점 차이

RPG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인 상황이라 별별 문제가 다 생깁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죠.

캠페인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가자 중 P의 주인공 P’가 나머지 일행을 거들떠도 보지 않아서 일행이 섞이지 않고 자꾸 평행 진행이 됩니다. 따라서 진행자 M과 다른 참가자들은 다소 짜증이 나는 상태입니다.

예, 별로 명랑발랄한 상황은 아닙니다. 이런 식의 사건들 때문에 한이 맺혀서(..?) 곤란한 행동유형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고요.

이렇게 문제가 생겼을 때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따르는 대가가 있지요. 아예 팀에서 자를 수도 있지만, 이건 P와의 인간관계에는 거의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게 곤란하면 캠페인 중단한다고 하고 P만 따돌린 후 나머지 사람끼리 모이는 방법도 있지만, 얍씰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아무 말 없이 P와 P’는 무시하고 진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서로 계속 오해와 감정이 쌓이기에 딱 좋은 방법이기도 하죠.

역시 가장 정공법이며 생산적인 해결책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겠지만, 이게 또 쉽지만은 않습니다. 서로 예의 차리느라 어색하고 곤란한 침묵으로 빠져들거나 정말 캠페인 파토날 만한 감정싸움으로 가기 쉬우니까요. 예를 들어 이런 대화가 되기 십상입니다.

M: P’는 왜 다른 주인공들하고 동떨어지는 거죠? 일행이 안 모이고 있어서…
P: 걔는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할 수 없어요.
M: 하지만 그건 주인공 성격이잖아요. 그걸 핑계로 전체의 재미를 저해하면 안 되죠.
P: ……

그러면 이 짤막한 대화를 중심으로 이 대화 속에 숨은 다른 대화들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그것이 이 글과 다음번 글에서 다룰 세 가지 대화 중 첫 번째, 관점에 대한 대화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하는 대화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경위로 문제가 생겼는지 하는 내용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문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확신이 있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우리는 문제의 경위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위의 예에서 P가 주인공 P’의 성격을 핑계로 독불장군 노릇을 하는 게 문제인 건 명백한데. 따라서 P의 RP가 문제이고, 허구적 주인공의 성격으로 자기 행동을 변호하는 행동이 잘못이고, 따라서 문제의 원인은 P이며 P가 자기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데.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그건 M의 관점입니다. P의 관점에서 본 이 상황은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P가 정말로 주인공의 성격을 핑계대고 문제를 일으키는지 P의 속마음은 P밖에 모릅니다. 핑계라는 건 P의 행동에 대한 M의 평가일 뿐이죠. 마지막으로, P의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도 M의 생각입니다.

위의 문단에서 빠진 것은 바로 P의 관점입니다. M과 P의 이야기 중 우리는 M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셈이죠. M이 옳은데 그게 무슨 상관이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M이 하는 말이 구구절절 옳다고 해도 옳다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갈등상황 자체가 관점의 갈등이기에 (P의 RP에 대한 관점의 차이) P의 관점을 들어보지도 않고 설득하려는 것은 아무 설득력이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대화는 근본적으로 자기 주장을 투척하는 대화가 아닌 학습하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관점 차이 자체가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먼저 무슨 관점 차이가 있는지 알아야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데, 서로 관점을 이해하기 전에는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니까요.

이러한 관점 차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Difficult Conversations에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경위, 의도와 결과, 원인에 관한 관점 차이이지요.

1. 경위에 대한 관점 차이

우선,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경위에 대한 생각은 다들 다소간에 다릅니다. RPG를 할 때면 놀라운 재미와 놀라운 두통(..)의 근원이 되는 것이 바로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상황에 있어도 사람마다 기존 경험, 들어오는 정보, 세계관, 성격 등에 따라 상황을 전혀 다르게 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타인의 관점을 알고 있다고, 혹은 상대가 나의 관점을 안다고 생각하는 확신은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와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고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저쪽의 관점 따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위에 얘기한 대로입니다.

예시로 돌아가자면 같은 상황이라도 문제의 경위에 대한 P의 생각은 아마 M과 전혀 다를 것입니다. P가 보기에는 자신이 맡은 주인공인 P’의 성격을 충실히 살리는 RP를 하면서 일행을 합치는 계기를 진행자 M이 만들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의 행동이 문제라고 하니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겠죠.

또한, P는 주인공의 성격 RP를 훨씬 중시하는 팀 출신일 수도 있고, 일행을 뭉치게 하는 주도적인 역할은 진행자가 맡는 것에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팀에서는 주인공 성격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고 주의를 들은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랬는데 이번에는 주인공 성격을 살린다고 진행자가 뭐라고 한다면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 얘기하고 파악하지 않으면 이런 차이를 알 수조차 없다는 점입니다. 관점 차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환상적인(..) 생각, 혹은 상대의 관점은 중요하지 않다는 독선적인 생각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죠.

2. 의도와 결과의 차이

사람은 보통 어떤 의도를 품고 행동을 합니다. 사회적인 상황에서 그 행동은 상대에게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일이 많습니다. 위의 예에서 P’의 무덤덤하고 비사교적인 성격에 충실하려고 했던 P의 행동은 M과 다른 참가자들을 짜증나게 하는 결과를 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 역시 얘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신경 써서 파악은 할 수 있겠습니다만 (속칭 ‘알아서 눈치 깔기’), 결국 M이 확실히 아는 것은 M 자신의 의도, 그리고 P의 행동이 M에게 일으킨 결과뿐입니다. 마찬가지로 P 역시 자신의 의도와 M의 행동이 P에게 미친 영향밖에는 확실히 알지 못하지요.

사람은 다 보는 관점이 다른데도, 그리고 한 사람이 보유한 정보는 이렇듯 제한적인데도 사람은 상대의 의도를 훤히 안다고 확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우리에게 유발한 결과를 기준으로 상대의 의도를 단정짓죠. P의 행동은 나를 불쾌하게 했다는 결과에서 P는 이기적인 의도로 행동했다는 의도를 유추하고, M의 지적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는 결과에서 M은 나를 제멋대로 조종하려고 한다는 의도를 유추하는 등.

이게 얼마나 비생산적인지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정보가 부정확하니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문제를 모르니 해결하기도 어렵죠. 뿐만 아니라 상대에게 최악의 의도를 부여해 버리면 상대는 더 이상 상종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결국 생산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이 못된 사람을 찍어누르는 방향으로 가기 쉽습니다. (결국 길게 얘기했다..(…))

여기에서도 역시 확신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도와 상대 행동의 결과. 상대가 알고 있는 것은 상대의 의도와 우리 행동의 결과뿐. 결과에서 의도를 유추하는 것은 섣부릅니다. 대화를 통해 이 정보의 차이를 줄여가야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원인 제공

문제가 내 탓인지 남 탓인지 얘기하라고 하면 후자를 고르는 일이 아마 대개의 사람은 압도적으로 많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정당화에 강하니까요. 그리고 바로 그래서 잘못을 따지는 것은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우선 사람은 방어적으로 되고, 변화에 저항하게 됩니다. (이건 나중에 다룰 정체성 대화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물론 자기가 잘못했다고 깨끗이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하는, 정말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완전한 해결책은 되지 못합니다. 상대 역시 문제에 원인을 제공한 일이 많으니까요. 이것이 바로 잘잘못과 별개의 개념으로서의 원인 제공입니다.

위의 예로 돌아가 보면, P의 RP가 문제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지만 M 역시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습니다. 그건 둘 다 잘못이라거나 서로 사과하라거나 하는 시시비비 얘기가 아니라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상호 행동 교정의 문제이죠.

예를 들어 주인공 P’가 좀 비사교적인 성격이라도 일행과 융화할 수 있도록 M이 좀 더 적극적으로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었는데 P가 자기 인물의 성격을 희생해 가면서 스스로 융화하기를 기대하는 것 역시 일행이 합치지 못하는 문제에 원인이 될 수 있었겠죠. 물론 P’의 성격이 비사교적이라 일행을 무시할 것이라는 P의 태도 역시 원인 제공을 했겠고요.

둘  다 원인 제공을 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M이 P가 잘못이라고 몰아붙인다고 하는 것은 따라서 크게 두 가지 부작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P가 심리적 방어성이 발동해서 행동을 교정하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둘째, P의 탓이 크고 P가 이를 인정해도 M의 원인 제공은 그냥 지나가므로 같은 문제가 재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떠나 문제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문제에 기여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플레이 중, 그리고 어떤 사회적 상황에서든 문제가 발생할 때면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게 마련이고, 그 관점 차이 자체가 갈등을 유발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을 알 수 있을 뿐, 상대의 관점은 알기 어렵습니다. 상대의 관점을 모르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요.

그래서 문제의 경위에 대한 상대방의 관점, 상대의 의도와 자신이 한 행동이 상대에게 유발한 결과, 그리고 문제의 원인에 기여한 점을 서로 이야기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확신을 상대에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상대가 아는 정보를 수집하려는 학습하는 대화가 문제를 해결하는 생산적 대화의 기본이 됩니다.

7 thoughts on “놀이와 대화 1-1: 관점 차이

  1. Asdee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상대방을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차근차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그리고 의혹가는 점은 덮어두지 말고 이야기해가며 확실히 밝히고요. 사실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해결의 첫걸음인 듯도.(종종 쉽지 않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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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예, 그리고 결국 상대를 이해해가는 건 (독심술이 없는 한) 대화를 통할 수밖에 없고요. 1부에서는 그런 대화 자체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를 분석하고 2부부터는 대화를 시작하는 법을 다룹니다. 나름 감명깊게 본 책인데 잘 전달해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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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Asdee

      헤헤. 로키 님 덕분에 평소라면 못 봤을 책, 에센스만 편하게 받아먹을 수 있겠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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