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의 부담감

자신의 주인공만 책임지면 되는 참가자에 비해 진행자는 캠페인에 대해 좀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집니다. 때문에 종종 진행자는 참가자보다 큰 책임을 지며,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쓰게 되지요. 저에게 이 점은 진행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좀더 큰 시각으로 전체를 보고 캠페인에 보다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진행에 부담이라는 것을 가졌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단기 아니면 단편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겠지요. 따라서 이야기 규모도 비교적 작았고, 수많은 인물과 계획과 장소들을 장기에 걸쳐 끌고 가면서 앞뒤가 맞게 만들어야 했던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중장기로 잡고 있는 캠페인을 두가지나 시작한 후 거의 처음으로 진행의 부담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규모가 큰 사건들 속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많은 인물과 조직의 행동과 관계를 운용하면서 이 모든 것이 앞뒤가 맞는지, 말이 되는지, 충분히 재미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떨리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거의 항상 시작하기 전에 떨리더군요. 이전보다 준비는 많이 하는데도 말이죠.

물론 이 부담감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진행자의 부담감을 덜어줄만한 요인은 적어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양적 요소, 즉 하나의 세계를 머릿속에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대한 것입니다. 비록 하나의 세계는 광대할 수 있지만 (멀티버스, 은하계) 주인공들과 관련이 없는 부분은 딱히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즉 주인공들이 행동하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 그리고 주인공이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는 범위 외에는 진행자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영향 범위는 진행자의 관심 범위에 일종의 필터로 작용하며, 그만큼 진행자의 양적 부담감을 경감시켜줍니다.

두번째는 질적 요소, 즉 캠페인 세계의 작용이나 조연들의 행동이 앞뒤가 맞고 흥미로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요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캠페인 세계의 의미와 논리는 진행자 혼자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준비하거나 생각해낸 요소에 진정 의미와 경중을 부여하는 것은 참가자의 역할인 것입니다. 참가자가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이고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진행자가 준비한 내용, 혹은 그 중점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작업이 진행이니까요.

논리적 일관성 면에서도, 진행자는 준비하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했더라도 참가자들이 생각하기에 모순이라면 보완할 필요가 있으며,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허점이 있더라도 참가자들이 받아들인다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진행자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참가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 보여서 재빨리 땜질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나만? <-) 참가자들 앞에 내놓기 전까지는 어떤 사건의 의미나 논리성도 완성된 것은 없으며, 캠페인 속의 현실은 모두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을 덜 느껴도 될듯 합니다.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실 캠페인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모든 일이 딱딱 아귀가 맞는 법은 없으며, 너무 말이 안되는 모순이라든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논리적 허점 정도만 아니면 모르고 넘어가거나 용인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런 면에서 까다로운 편이라 괜히 마음고생하는 면이 있죠.) 게다가 솔직히 캠페인의 내용과 일관성에 제일 관심이 많은 건 진행자이지 참가자가 아니니까요. 참가자는 조연 이름도 잘 기억 못합니..(흑)

세번째로, 캠페인 요소의 양적·질적 부담 외에도 진행자는 세션이 재미없으면 자기 책임이라는 전반적인 부담도 강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건 뭐 진행의 원죄(?) 같은 것이고 페이스와 흐름을 상당부분 조절하는 진행자의 역할상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지만, 진행자가 세션의 모든 책임을 진다면 참가자는 바보인가요..(..) RPG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놀이이며, 함께 즐거울 권리와 책임은 모두가 가지는 것입니다.

플레이의 재미는 전부 진행자의 책임이라는 발상은 참가자를 바보나 어린애처럼 취급한다는 점 외에도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진행자의 부담이 지나친 나머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점. 어느정도의 부담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진행자 역시 재미있기 위해 놀이를 하는 입장이며, 다른 사람의 재미를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봉사자가 아닌 것입니다. 모두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해야겠지만 배려의 방향은 일방적일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진행자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진행에 참가자들이 재미있을리가 없죠.

또한 진행자에게 플레이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회적인 놀이인 RPG에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뭔가 재미없게 진행하고 있다면 그걸 진행자에게 알릴 권리이자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참가자들입니다. 진행자가 신이나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참가자에게 뭐가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100% 파악할 수는 없게 마련이며, 진행자 못지않게 참가자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팀 전체의 재미를 증가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참가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면 그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지, 플레이의 재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애매한 죄목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행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부담느낄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이고, 참가자들 역시 캠페인 사건의 양과 질에서부터 진행의 재미까지 함께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떨리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정도 부담감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행자로서의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 진행자로서의 ‘재미’ 앞에 진지한 저의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3 thoughts on “진행자의 부담감

  1. 천승민

    본문의 맥락과 얼마나 관련 있는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생각이 이어져서 제 일화를 이야기 해보죠 ^^;;

    이전의 저한테 있어서 “부담감”의 정체는 잔뜩 준비해놓고,

    “준비한 걸 다 써먹을 수 있어야 할텐데” …
    “내가 이 배경세계와 시나리오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 로 요약됬습니다. 즉, 준비된 거에 묶였다는 거죠;;;; 많이 준비하면 확실히 어떤 디테일이랄까. 보여주기랄까, 면밀히 측정되거나 계산된 즐거움 속에서 논달까, 하여간 뭔가 준비한것에 비례해서 플레이어들이 만족을 표시하는 건 사실이었고, 그러다보니 양은 점점 늘어갔죠. 준비한 노트를 들여다본 플레이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앞사람 얼굴보단 빽빽하게 기록된 노트에 뭐 빼먹은게 없나 검토하면서 판정 계산하느라 정신없었고, 의사소통이란 측면은 피상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나리오도 준비한 것중에 빼먹은 로망은 없는지, 이 룰의 개성과 이 배경세계의 특색을 꼭 이 타이밍에 보여줘야 적재적소인데 말이야~ 이 타이밍에 이 NPC의 대사가 나와야 감정이입을 높일 수 있을텐데… 하면서 정신없었습니다. (즉, 영화감독 비스무레하게 “RPG 감독”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물론 음유시인이나 고속도로형 진행을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결국 플레이 사전 사후적으로 플레이어들의 욕구를 “분석”해서 그걸 채워주려 할뿐, 정작 플레이 중에는 그러기 힘들었습니다. 사람 얼굴을 못봤죠. 나중에 문득 자신의 플레이 방식을 돌아보니 이대로 가면 잘만든 인터렉티브 비디오 게임 같은게 되겠더군요. 플레이어들은 만족을 표시하는데, 저는 컴퓨터가 아니였던 거죠.

    그래서 그 쪽은 포기했습니다. 면밀하게 계산된 놀이마당을 내미는 것보단, 조금 엉성해도 상대 얼굴을 보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제가 가려운 곳을 내미는게 훨 낫더군요. 준비 부담에서든 공리적 욕구추구에서든…

    Reply
  2. 천승민

    두꺼운 노트가 이젠 없다는 걸 아는 플레이어들에게 전개에 마음대로 참여해도 좋다는 의사와 매번 플레이를 통해서 참여가 반영된다는 그러한 구조를 점점 납득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제 플레이어들은 (진행자에게는 납득이 가도) 스스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에선 테클(?)이 들어옵니다. ^^;; 거기서 잠시 멈추고 대안을 주고 받고 변증법적 결론을 냅니다. 두꺼운 노트를 없애버리니 플레이어들에게 “내가 뭔가 난 모르는 어떤 준비된 로망에 이르는 과정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하는 주저함도 없고, “계산된 준비”가 없으니 자기 의사가 어떤 식으로든 반영될 수 있다고 믿기도 쉽더군요.

    어느날 저한테 마지막 확인하듯 물어보더군요. “가장 최적의 루트 같은거 준비해온거 정말 없는거지?” “응” 그 후에는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결국 아무리 구조적 정책적으로 자유도를 열어놨다고 하더라도 면밀한 준비는 그 자체로 어떤 경향성을 유도하는 면이 있었던가 봅니다. (마스터뿐만이 아니라 결국 플레이어조차도 준비된 더 품질이 좋은 전개의 가능성이 높은 쪽을 경험적으로 감지하여 더듬어오는 식이었습니다.)

    면밀한 준비는 양날의 칼이었던 것 같습니다. 옛날 방식도 좋았는데… 하면서 아쉬움을 표시할떄도 있지만 (아무래도 참여라는 측면에서 플레이어들의 수고가 더 늘었으니) 그래도 지금 추구되는 방식도 긍정적이라고 평가들을 해주더군요.

    Reply
    1. 로키

      오.. 그런 어려운 (그러면서도 나름 로망이기도 한) 방법을… 준비와 참가자 자유도의 함수는 정말이지 흥미롭습니다. 저도 참가를 할 때면 종종 ‘진행자가 준비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하고 걱정부터 앞서게 되거든요. 그리고 말씀대로 진행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가는 작업이기도 하고요. 영화감독 입장에서야 이미 대본이 있으니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RPG에서는 진행자 머리속의 ‘대본’을 전달하기가 힘드니까요.

      컴퓨터 게임과의 비교도 흥미로운데, 어쩌면 인간인 진행자와 컴퓨터의 상대적 연산량보다 더 근본적인 차이는 입력범위의 제한 여부가 아닌가 합니다. 인간의 뇌에 비하면 연산이 빠를 뿐 형편없이 단순해 빠진 컴퓨터라는 기계가 인간 진행자를 그나마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건 입력의 범위가 아무리 넓다 해도 어느정도 제한돼 있기 때문이죠. 정말로 무한대의 입력가능 범위가 있다면 어떤 컴퓨터도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즉 ‘두꺼운 노트 시절’에 일어났던 현상은 제한된 입력범위를 ‘컴퓨터’가 따라갈 수 없었던 현상이 아니라, 원래는 무한한 입력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정보량을 완전히 준비된 인터랙티브 게임이 처리가능한 범위 내에 두려는 모두의 무의식적 노력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래서 두꺼운 노트를 치워버리자 인위적으로 입력 가능범위를 제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던듯 해요. 다시 말해 완벽하게 준비된 인터랙티브 게임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정보량을 감당 가능한 범위에 둬야 했고, 따라서 입력 범위를 준비된 범위로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아닐지… 진행자가 컴퓨터가 아닌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인터랙티브 게임은 애당초 무제한의 입력범위를 처리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글에서 언급한 방식처럼 조연과 그들의 목표, 그리고 배경이 될 수 있는 장소만 준비해 놓고 참가자에게 반응하라는 조언이 나온듯 합니다. 주인공의 행동과 참가자들의 반응 양자를 살피면서요. 물론 승민님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참가자가 나서지 않으면 진행자도 반응할 거리가 없으니 진행이 늘어진다는 면이 있지만, 승민님의 댓글에 나온 참여의 부담은 허점이 아니라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플레이의 모든 것을 진행자가 책임지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진행이 정 늘어진다 싶으면 참가자가 반응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사건을 하나 던져줄 수도 있고 말이죠.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