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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에게 도움되는 것 (1) – 단편

진행자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가끔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배울 자세만 되어 있다면 사실상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진행 기술이기 때문에 ‘진행자에게 도움되는 것’이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넓은 범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용감히(?) 제 경험상 이러이러한 것들이 도움되더라 하는 얘기를 해보고 싶군요.

링월드로 유명한 공상과학 작가 래리 나이븐 (Larry Nive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는 단편을 쓰면서 배운다. 계속해서 단편을 써라. 돈이 되는 건 소설이지만, 단편을 계속 써야 글이 날렵하고 예리하게 유지된다.

진행과 문학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이 말의 기본 원리는 진행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 캠페인의 신화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대개 규칙이나 RPG인의 기대치는 장기 캠페인을 상정하고 있지만, 장기 캠페인을 기본으로 잡고 있다고 해도 단편을 진행함으로써 진행 기술을 다듬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단편은 시간과 완급의 감각을 길러줍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이야기를 완결지어야 한다는 단편의 특성상 진행이 늘어지지 않는지, 시간 활용이 비효율적이지 않은지 자신의 진행을 돌아볼 계기가 되죠. 시간적 제약 때문에 지루한 부분은 과감히 뛰어넘는다거나, 간단하게 요약한다거나, 장면을 적절히 끊는다거나, 참가자가 헤매고 있으면 바로잡아준다거나 하는 판단이 특히 중요해집니다.

이러한 완급 조절과 시간활용 기술은 당연히 장기 캠페인의 재미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긴박감과 같은 분위기 연출은 완급과 장면 맺고 끊는 기술에 많이 좌우되고, 아무리 잘 짜인 내용도 진행이 늘어지면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불행히도 이것은 이론적으로 시간이 무제한인, 혹은 최소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장기 캠페인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편의 제약 속에서 기르기 좋은 기술이기도 하지요.

또한, 단편은 구성력에도 도움이 됩니다. 전형적인 장기 캠페인의 재미가 웅장한 규모에 있다면 전형적인 단편의 재미는 긴장감 있고 기발한 구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은 일정한 시간 내에 모든 이야기의 요소를 매듭짓고 정리하는 연습을 하는데 아주 좋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장기 캠페인에서 이번 세션 내에 매듭짓지 못한 것은 다음 세션에 해도 된다면, 단편에서는 다음 세션이란 없으니까요.

장기 캠페인과 단편의 구성은 물론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장기 캠페인 역시 짧은 이야기 단위의 연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편 혹은 단기 캠페인의 연속과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그 이야기 단위들 사이의 연속성이겠지만, 단편에서 익힌 구성력은 장기 캠페인에도 그대로 적용할 여지가 많은 것입니다. 장기 캠페인을 위해 추가할 부분이라면 그 이야기를 딱 끊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의 여지를 열어 놓고, 몇 가지 줄기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정도겠죠.

이와 관련해서 단편을 진행하는 것은 규모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단편에서는 이야기 규모가 크면 정해진 시간 내에 완결을 볼 수 없으니 (배경은 규모가 크다 해도 플레이에서 다루는 건 그 작은 일부밖에는 될 수 없죠) 적절하게 플레이의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이 잘 발달하면 장기 캠페인을 할 때도 대책 없이 규모를 키우는 현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편은 또한 장기 캠페인보다 시작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장기 캠페인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행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저도 한동안 캠페인 없이 단편만 연속적으로 하던 때가 있었죠. 진행은 사실 하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인지라, 시작하는데 부담이 비교적 적은 단편은 진행 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학습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편은 현재 캠페인을 진행 중인 진행자에게도 기분전환이 되어 줍니다. 위에서 다룬 것과 같은 시간적 제약과 그로 말미암은 도전은 현재 진행 중인 캠페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권태와 지루함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단편의 가장 중요한 혜택이 아닌가 합니다. 진행자 자신이 지겨워서야 캠페인이 재미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진행자가 갑자기 이상한 단편 하자고 조르면 참가자들은 이해하고 협력해줘야 하는 겁니..(퍽)

단편은 분명히 장기 캠페인처럼 인물과 이야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그 변동을 지켜보는 재미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는 게 없는 단발적인 재미뿐이라고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좋은 단편은 좋은 장기 캠페인 못지않게 긴 여운을 남기며, 진행자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긴장감 있고 날카로운 진행, 번득이는 구성, 새로운 시도와 자극은 단편의 재미이기도 하고 어떤 캠페인에든 적용되는 진행자의 미덕이기도 하니까요.

비동시성 플레이의 가능성과 도전

최근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시험기간이 서로 달라서 근 한달간 플레이를 쉬게 된데다가, 진행자 사정으로 방학중 플레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한달 쉬는 것도 캠페인 존속이 불확실한데 ORPG에서 네 달을 쉰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캠페인을 그만둔다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제시한 방향은 플레이의 체제를 아예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가 아닌, 글로 쓰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말이죠.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안인중님의 PBS(Play by System)와 TRPG (외부 링크, 다이스&챗 로그인 필요) 시리즈, 蘭님과 나누었던 PBEM 얘기, 그리고 게시판 플레이용 규칙인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번역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얘기가 시작돼서 결국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캠페인을 수정주의 역사 규칙으로 전환해 위키상에서 플레이하기로 했습니다. 규칙 뿐만 아니라 캠페인의 시간축 자체가 달라져서, 본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 (제 생각에는 약 100년 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형식의 외전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설정 결과 세 주인공이 서로를 배신하고 후대까지 악명이 자자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죠. (…) 그리고 이 미래가 바로 외전의 시간대인 것입니다.

이렇게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에서 위키로 하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환한 것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은 캠페인 자체의 존속. 안인중님의 말씀마따나, RPG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지만 사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일주일에 3~4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채팅 플레이가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비동시성 플레이 체제로
전환하면 형태는 달라도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꾸준하게 유지될 때의 얘기지만요.

여기에 부수되는 것이 시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한번에 뭉텅이 시간을 내야 하는 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비동시성 플레이는 틈이 날 때 짬짬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또하나, 이건 비동시성 플레이 전반이라기보다는 수정주의 역사의 특징이지만 TRPG 규칙을 사용하는 비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계속해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습니다. (사실은 진행자도 없긴 합니..퍽)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도원의 개들을 잠시 게시판 플레이로 했을 때 느낀 점인데, 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규칙을 비동시성 플레이에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면 동시성 플레이의 열등한 대체물밖에 될 수가 없더군요. 제아무리 급하게 글을 올려도 채팅 기준으로는 속터지도록 느리니… 반면 수정주의 역사의 경우 일주일에 글이 3~4개만 올라와도 플레이가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므로 글로 하는 플레이에 보다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는 비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체계와 규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비동시성 플레이가 제공하는 또다른 가능성이라면 캠페인의 사건을 신선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수정주의 역사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동시성 플레이와 비동시성 플레이의 성격과도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 채팅이나 대면상황은 닥쳐오는 사건을 그때그때 ‘겪는’ 데에 적합하다면, 시간 간격을 두고 생각해 가며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사건의 의미와 진상을 ‘음미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정주의 역사라는 규칙 고유의 특성상,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캠페인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먼저 진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본 캠페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정한 방향성, 혹은 제약이 생겨 있을 테니까요. 어려움도 있겠지만 확실히 생각해볼 거리는 풍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이전부터 다소 침체되어 있었던 캠페인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점들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치일 뿐이고,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꾸준한 흥미유지가 가능할까 하는 점입니다. 동시성 플레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비동시성 플레이는 많은 경우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흥미를 잃으면 슬그머니 그만두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소재가 세 참가자분이 만든 인물인만큼 어느정도 흥미의 요소는 갖춰졌지만, 흐지부지되지 않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끌어 가는데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캠페인의 미래가 어느정도 결정된다는 어려움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새로운 자극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제약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팅 플레이로 돌아왔을 때 정해진 미래에 맞추기 위해 진행자가 치밀한 구성을 짜고 그 속에서 참가자들이 선택을 제약받을 위험도 있죠. 100년 후의 미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꼭 당대의 진상에 부합하라는 법은 없는만큼 옴쭉달싹도 못할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캠페인의 큰 줄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정도의 제약은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세번째는 선택한 매체 고유의 특징이지만, 위키라는 매체의 생소함이 있습니다. 전에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위키 편에서 다루었듯 위키는 아직 생소하고 사용편의가 떨어지는 매체에 속합니다. 그래서 게시판 플레이가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버젼 비교, RSS 내보내기, 백링크 기능, 풍부한 구문 지원 등 위키의 지나치게(..) 뛰어난 기능성 때문에 결국 위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성 부분은 자세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의 플레이에 어떻게 하면 위키라는 매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체제를 동시성 플레이인 ORPG 채팅에서 비동시성 플레이인 위키 플레이로 전환한데 대한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비동시성 플레이는 동시성 플레이의 대체물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플레이 경험만이 증명해 주겠죠. 방학이 끝난 다음에 이러한 기대와 문제의식이 얼마나 드러났는지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참가자의 선택에 대하여

CB마스터님의 이 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주거니 받거니.. 왠지 게시판 토론 삘이?) 특히 다음 부분이 인상에 남더군요.

다만 이런 방식을 쓸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는 게, 예상하실 수 있듯이 캠페인의 주도권이 대부분 마스터에게 넘어갑니다. 마스터
머릿속에서 이미 캠페인 엔딩까지 결정이 다 돼 있고 PC는 거의 마스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식이 돼 버리기 쉽더라구요. 앞서 말했듯이 마스터가 먼저 마련한 배경은 오히려 높은 수준의 자유도를 보장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동을 해도 마스터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는 걸 아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은 곧잘 수동적인 대응만을 하게 됩니다.

RPG의 게임성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RPG의 재미는 의사결정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결과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참가자가 그렇게 느끼는 것이지만, 사실과 일치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 제일 쉽다는 면에서 두가지는 겹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CB마스터님의 글에서 알 수 있듯 선택의 여지, 혹은 그 인상을 확보하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인물 설정이나 지금까지의 사건에 비추어 선택이 뻔하고 어떻게 해도 진행자의 손안에서 놀 뿐이라고 생각되면 참가자는 자신의 선택에서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될 위험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2005년 말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 나온 케사르라는 주인공이 그 예였죠. 케사르는 설정상 연쇄살인(..) 전적이 있는 청년으로, 찾던 친부모를 마침내 만나지만 친부모가 갓난아이였던 자신을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키워준 요정족의 숲을 구하려면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극적인 상황이긴 했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라는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궁지를 넘어 주인공을 거의 함정으로 몰아넣은 셈이었으니까요. 좀더 운신의 폭이라든지 권력기반이 있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겠지만 7회짜리 단기 캠페인의 시간제한도 있었고, 케사르에게는 아버지에게 대항할 기반도 부족했죠. 결국 그는 아버지 앞에 무릎꿇고 손에 입을 맞추며 후계자가 되겠다고 맹세함으로써 숲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버립니다.

참가자분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지금 생각해도 멋진 장면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 저 상황에서 참가자분이 ‘에잇 선택의 여지 따위 없잖아! 알았수다. 후계자 합죠 뭐.’ 라고 반응했어도 진행자로서는 크게 할말은 없었던 상황이기도 합니..(..) 그만큼 저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혹은 극히 적은 상황설정은 최대한 아끼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인물 설정이라는 또다른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참가자의 이해와 협력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플레이 내에서의 선택이 제한되는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이와 같이 참가자의 선택의 여지가 줄어드는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원인에 대해서는 링크한 CB마스터님의 글과 얼마전에 천승민님이 다셨던 댓글이 실마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즉 진행자가 뭔가 ‘준비’했고, 어떤 결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가자의 선택권을 줄이는 게 아닌가 하는, 어떻게 보면 기운빠지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 때 제 경험이 그랬습니다. 특정한 결과를 예상하고 상황을 만들다 보니 참가자들을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요정숲을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겠지? 아직 이유가 부족해? 자, 여기 또다른 이유가 있다! ..)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도 눈치채고 진행자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줄여가는 게 아니었을지… 아마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 등 많은  인디 RPG들이 어떤 사건의 진행이나 귀결을 절대로 정하지 말라고 진행자에게 조언하고 있는 것이겠죠.

이러한 선택의 제한, 내지는 부정을 극복하는 법 역시 천승민님의 댓글 중 두번째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젠 아주 대놓고 남의 댓글을 우려먹고 있습..) 즉 모든 사건을 준비하는 대신 초기 상황설정 외의 부분은 개방형으로 해놓고 참가자의 선택에 따라 귀결을 실제로 ‘만들어’ 가는 것이 참가자의 선택을 최대한 확보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제 경험으로 예를 들면, 최근 진행하고 있는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첫 마을이었던 셀렌의 진행이 정말 아무 결과도 생각하지 않고 초기 세팅만 해둔 경우입니다.(주:다크포스 진행표는 포도원의 개들 원래 규칙에 나온 것을 찰스 페레즈씨가 스타워즈용으로 고친 것입니다. 페레즈씨의 글은 이곳에.) 포도원의 개들 같은 경우 저런 진행표를 통해 결과를 정하지 않은 개방형 진행을 지원합니다만, 사실은 어떤 규칙이나 캠페인에든 적용 가능한 것이기도 하죠.

이 진행표에서 정해진 것은 제다이들이 오기까지 마을에서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제다이들이 오지 않는다면 상황이 어떻게 귀결될지. 그리고 몇몇 조연과 이들이 제다이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정도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 제다이들이 들어와서 일으키는 변화에 저는 조연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 각자가 바라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반응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캠페인 내의 모든 사건은 제가 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선택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고, 그 차이는 상당히 크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이 방식의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자칫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뭔가 엄청난 상황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가 없으면 그건 선택의 폭이 너무 커서 결국 선택의 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버리죠. 따라서 참가자에게 이 상황을 이렇게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과제가 보이도록 실마리를 잡아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일만 보여주면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지는 참가자가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참가자가 적극적일수록 실마리는 조금만 주고 참가자가 창의적으로 방향을 창출할 수 있고, 참가자가 소극적일수록 실마리를 뚜렷하게, 많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장소, 인물, 초기 상황 설정만 하면 된다는 면에서 진행자의 부담감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시나리오식 진행보다 준비가 더 들어갈 수도 있다는 점도 유의사항입니다. 일단 시나리오가 짜지면 그로 인해 참가자가 접할 수 있는 장소와 인물이 어느정도 정해지는데 반해 참가자가 (이론적으로는)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준비해야 할 장소와 인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니까요.

여기에 유의미한 제한을 가하고 진행자 머리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서 상황이 중요해진다고 봅니다. 지금 상황이 살인사건의 해결이라면 실마리가 그쪽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갑자기 스트립바를 가진 않을 테니까요. (..가려나요?) 따라서 상황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적절히 던져서 이미 준비된 장소와 인물로 이끄는 진행의 일반 기법이 중요해지고, 이것은 위의 ‘참가자 막막하게 만들지 않기’와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 피해자하고 마지막으로 얘기한 사람이요? 그건 옆집 루시였죠, 아마.’ 하는 증언이 있으면 이미 설정이 된 인물인 옆집 루시를 찾아갈 테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진행자 손안에서 노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도 가능하겠지만, 저는 좀 다르다고 봅니다. 진행자는 특정한 상황을 주고 그 상황 속에서 운신할 수 있는 수단을 쥐어줄 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해서 어떤 결과를 낼지는 참가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정해진 것이 없이 참가자의 행동과 그에 대한 반응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참가자 선택은 사건의 귀결에 하나하나 충실하게 반영됩니다. 누구에게 어떤 투로 얘기했는지부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했는지까지. 그것이 바로 참가자가 선택의 여지를 갖는다는 말의 의미 아닐까요.

물론 이것은 저같은 경우 이렇게 하니까 참가자 선택 여지가 커지더라… 하는 경험담일 뿐이지 모든 경우에 이렇다거나 모든
캠페인이 이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완성도 높은 줄거리라든지 특색있는 세트와 같은 요소를 즐기는 데는 부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가자의 선택에 의해 유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야기는 미리 정해진 줄거리의 철저한 완전성은 부족할 테고, 완벽하게
준비된 세트는 참가자들이 있는지도 모른채 안 가거나 부숴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결국 진행 방법을 결정할 때는 RPG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미들을 서로 저울질할 수밖에 없고, 저같은 경우 그중 참가자
선택의 극대화를 택했을 뿐입니다. 현재까지는 참가자들이 만족을 표시하고 있으므로 유지할 생각이며, 이것은 어떤 진행 방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놀이인 RPG에서 ‘재미’보다 우선할 수 있는 가치는 어디에도 없고, 모두가 재미있다면 그것이 곧 좋은
방법이니까요.

신호 중심 진행의 간단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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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중심의 캠페인 제작이라는 글에 나온 신호 중심의 진행을 예로 들어 설명해 보려고 합니다. 전에 재밌게 봤던 CB마스터님의 세션 준비 글과도 관련이 있어 보여서 엮인글로 올립니다.

구체적으로 신호라는 뉘앙스를 캠페인으로 응결시키는 방법은 많은 직관적 비약과 주관성이 들어가는 과정인지라 설명하기가 좀 어렵지만, 비교적 간단한 1:1 단편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다 뻔한 얘기입니다만, 로빈 로스씨가 말했듯 뻔하거나 습관적인 것도 그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요.

사용할 예는 구네님과 재작년쯤에 진행한 즉석 단편, ‘영혼의 우물’입니다. 구네님의 주인공 칼은 사냥꾼인 아버지와 형과 숲에서 살다가 모험을 떠난 모험가로, 명성을 쫓아 여행하다가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해서 형과 사이가 틀어졌죠. 여기서 도출되는 구체적인 신호는 일단 형, 어쩌면 숲. 좀더 추상적인 신호는 모험, 모험 경험에서 형성된 능력과 성격, 형과의 갈등, 가족에 대한 의무 등.

여기에다가 진행자인 저의 목표를 첨가하자면 고전 동화의 환상적인 분위기, 이미 밤새 RPG를 한 대미(..?)를 장식하는 시점이었으므로 무겁지 않은 가볍고 재미있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얄팍하지 않은 내용 정도였죠. 이렇게 참가자가 원하는 것과 진행자가 원하는 것들이 정해졌고, 욕구들 사이에 특별한 충돌이 없었으므로 시작할 기반이 갖추어졌습니다.

인물 제작을 마치고 바로 모험을 시작하면서 모험의 초점은 일단 주인공의 형과 숲으로 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의 형이 숲에서 실종된 정도는 어떨까 하고 생각했죠. 가족에 대한 의무는 주인공의 신호에도 속하기 때문에 사라진 형의 실마리를 쫓아 주인공이 여행해온 것으로 했습니다. 주점에서 주인장과의 대화를 통해 형이 이곳의 저주받은 숲에서 실종된 것이 확실하며, 아직 형이 칼에게 앙금이 남아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서 주요 신호를 강조하며 시작했죠.

숲에서 형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은 숲에서 돌아온 유일한 사람인 푸줏간집 딸을 만나러 가지요.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렸으니 소용없을 거라는 얘기 또한 듣지만요.

푸줏간집 딸 아이렌을 만나는 장면은 또다른 신호를 등장시킬 기회가 되었습니다. 모험이라는 소재와 갈등되면서 가족에 대한 의무와 연관되고, 동시에 인간의 모든 이야기에 무난하게 연관시킬 수 있는 소재… 바로 결혼! 그래서 푸줏간집 주인 아저씨는 미쳐버린 딸의 혼처를 심히 걱정하고 있으며, 거의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딸이 낯선 남자와 함께 숲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는 대신 주인공에게 딸을 책임지겠다고 약속시키는 반강제적 약혼을 시켰습니다.

아이렌과 숲에 들어온 주인공은 말하는 토끼를 붙잡아 취조(..?)한 끝에 (이 과정에서 사냥꾼으로서의 능력과 모험자의 기지를 활용하면서 제가 원하는 동화적이이면서 무겁지 않은 분위기 연출) 아이렌의 안내와 토끼의 도움으로 사람들을 실종시키는 장본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는 숲의 주인이라는 수호정령으로, 사람들이 숲을 파괴하는데 분노해서 숲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영혼을 영혼의 우물에 가둬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실종자들은 자기 영혼이 갇힌 영혼의 우물을 떠날 수가 없었고, 숲을 헤매다 구출되었던 아이렌은 말 그대로 혼이 나간채 계속 영혼의 우물로 돌아오려고 애쓴 것이죠.

이런 식으로 숲을 떠난 주인공과 숲에 남았던 형, 그리고 형제간의 갈등이라는 신호를 건드려둔 후 절정 부분에서는 구네님의 멋진 문제해결을 지켜보면 그만이었습니다. 스스로 숲을 지키고 숲과 더불어 살아가겠다고 약속한 주인공의 진심은 숲의 주인의 분노를 잠재우고, 영혼의 우물에 갇혀있던 영혼들이 풀려나면서 주인공의 형을 비롯한 실종자들, 그리고 아이렌은 모두 제정신을 되찾습니다. 칼의 결정은 가족에 대한 의무와 그에 부수되면서 모험과 대비되는 ‘정착’이라는 문제, 그리고 숲이라는 신호를 살리는 것이기도 했죠.

그리고 실종자들의 귀환 (당면한 문제 해결), 주인공과 형의 화해 (형이라는 신호 해소), 그리고 주인공과 푸줏간집 아가씨와의 썸씽(..?)으로 (로맨스라는 보편적인 소재, 숲에 정착하기로 한 주인공의 결정과 연결, 가족에 대한 의무와 모험 사이의 갈등 해소) 영혼의 우물 단편은 끝을 맺습니다.

여러모로 이 단편은 실종 문제라는 과제의 해결 뿐만 아니라 주인공 자신도 약속의 책임을 지고 형과 화해하는 등 내적으로 성장을 이룬 꽤 깔끔한 단편으로 기억합니다. 설명한 바대로 주인공 설정을 통해 드러난 신호를 적절히 활용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고요.  당연히 참가자의 좋은 의사결정이 아니었으면 나오지도 못할 내용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구네님도 저도 저걸 다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말한대로 직관적 비약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참가자와 별개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걸 참가자에게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부드럽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신호의 해석과 구현 과정에서 참가자와 진행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둘다 들어가니 서로 즐거울 수 있는 거죠.

주인공이 여럿인 플레이라면 신호를 엮어가는 방식을 사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시기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전기에서는 세 주인공을 초창기에 엮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주인공 중 하나인 니콜라이는 뉘우친 도둑으로서 양녀를 위해 큰 돈을 벌려고 하고 있었고, 또 하나인 아리에는 여사제였다가 포로로 잡혀서 노예가 되었고, 세번째인 케사르는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죠. 그래서 이 세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아리에가 팔려가는 밤에 니콜라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고용되었고, 케사르는 아리에와 함께 여행하면 친부모를 찾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상태에서 우연히 그 장소를 지나게 했습니다.

물론 신호 중심의 진행에 대한 글에서 밝혔듯 이러한 방식은 어떤 식으로든 참가자의 능동성을 요구합니다. 영혼의 우물에서 칼이 ‘음… 별로 형을 찾고 싶지 않아. 술이나 마시면서 뭔가 다른 일이 생기길 기다리자.’라고 한다든지 라이테이아 전기에서 니콜라이가 ‘위험해 보이니까 돈은 포기해야지’라고 한다면 진행자는 난감해집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신호를 주는 것이겠지만, 다른 신호에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난감함은 더욱 깊어집니다. 신호 중심 진행에서 진행자가 준비한 이야기는 주인공의 목적과 욕구를 통해 표출된 참가자의 흥미에서 나오는 것이고, 참가자가 이 흥미를 잘못 표시했거나 흥미가 없으면서 진행자에게 거짓말을 했다면 더이상 진행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신호 중심 진행에서 이야기는 참가자 혹은 주인공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상황을 주기를 기대하기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며 사건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뭐 언제든 막힐 수는 있고, 그럴 때면 주인공이 반응할 수밖에 없게 진행자가 위기상황을 던져주는 것도 늘어지는 진행을 활성화시키는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참가자가 반응하다 보면 진행자가 또 그 반응에 반응할 빌미가 생기고, 그런 식으로 플레이가 이어지니까요.

참가자가 진행자가 주는 모든 신호를 거부하면서 위기상황에 빠뜨리면 불평한다면 그건  결국 플레이하기가 싫다는 얘기니까 맞아야 됩 플레이의 기본적인 사회계약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참여자간 대화로 풀어가야 할 문제이지 더이상 진행 방식과 같은 플레이 내적 문제는 아닌 것이죠.

신호 중심 진행의 예만 들려고 했는데 결국 원래 글의 2부에 가깝게 됐군요. 어쨌든 제가 진행하는 방식, 내지는 지향하는 이상은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방법도 많이 있겠고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저와 방식이 다른 CB마스터님의 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듯 다른 분들도 생각해볼 거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바가 없죠.

진행자의 부담감

자신의 주인공만 책임지면 되는 참가자에 비해 진행자는 캠페인에 대해 좀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집니다. 때문에 종종 진행자는 참가자보다 큰 책임을 지며,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쓰게 되지요. 저에게 이 점은 진행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좀더 큰 시각으로 전체를 보고 캠페인에 보다 능동적으로 관여할 수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진행에 부담이라는 것을 가졌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단기 아니면 단편을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겠지요. 따라서 이야기 규모도 비교적 작았고, 수많은 인물과 계획과 장소들을 장기에 걸쳐 끌고 가면서 앞뒤가 맞게 만들어야 했던 적도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중장기로 잡고 있는 캠페인을 두가지나 시작한 후 거의 처음으로 진행의 부담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규모가 큰 사건들 속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많은 인물과 조직의 행동과 관계를 운용하면서 이 모든 것이 앞뒤가 맞는지, 말이 되는지, 충분히 재미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그래서 예전에는 플레이를 시작하기 전에 떨리는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거의 항상 시작하기 전에 떨리더군요. 이전보다 준비는 많이 하는데도 말이죠.

물론 이 부담감은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진행자의 부담감을 덜어줄만한 요인은 적어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양적 요소, 즉 하나의 세계를 머릿속에서 이끌어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대한 것입니다. 비록 하나의 세계는 광대할 수 있지만 (멀티버스, 은하계) 주인공들과 관련이 없는 부분은 딱히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즉 주인공들이 행동하고 영향을 미치는 범위, 그리고 주인공이 관심을 가지고 영향을 받는 범위 외에는 진행자가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인공들의 행동과 영향 범위는 진행자의 관심 범위에 일종의 필터로 작용하며, 그만큼 진행자의 양적 부담감을 경감시켜줍니다.

두번째는 질적 요소, 즉 캠페인 세계의 작용이나 조연들의 행동이 앞뒤가 맞고 흥미로워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요인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캠페인 세계의 의미와 논리는 진행자 혼자 창조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준비하거나 생각해낸 요소에 진정 의미와 경중을 부여하는 것은 참가자의 역할인 것입니다. 참가자가 어떤 부분에 관심을 보이고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진행자가 준비한 내용, 혹은 그 중점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는 작업이 진행이니까요.

논리적 일관성 면에서도, 진행자는 준비하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했더라도 참가자들이 생각하기에 모순이라면 보완할 필요가 있으며,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허점이 있더라도 참가자들이 받아들인다면 넘어갈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진행자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참가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기색이 보여서 재빨리 땜질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혹시 나만? <-) 참가자들 앞에 내놓기 전까지는 어떤 사건의 의미나 논리성도 완성된 것은 없으며, 캠페인 속의 현실은 모두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부담을 덜 느껴도 될듯 합니다.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실 캠페인 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모든 일이 딱딱 아귀가 맞는 법은 없으며, 너무 말이 안되는 모순이라든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논리적 허점 정도만 아니면 모르고 넘어가거나 용인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이런 면에서 까다로운 편이라 괜히 마음고생하는 면이 있죠.) 게다가 솔직히 캠페인의 내용과 일관성에 제일 관심이 많은 건 진행자이지 참가자가 아니니까요. 참가자는 조연 이름도 잘 기억 못합니..(흑)

세번째로, 캠페인 요소의 양적·질적 부담 외에도 진행자는 세션이 재미없으면 자기 책임이라는 전반적인 부담도 강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건 뭐 진행의 원죄(?) 같은 것이고 페이스와 흐름을 상당부분 조절하는 진행자의 역할상 아주 틀린 생각도 아니지만, 진행자가 세션의 모든 책임을 진다면 참가자는 바보인가요..(..) RPG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놀이이며, 함께 즐거울 권리와 책임은 모두가 가지는 것입니다.

플레이의 재미는 전부 진행자의 책임이라는 발상은 참가자를 바보나 어린애처럼 취급한다는 점 외에도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진행자의 부담이 지나친 나머지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점. 어느정도의 부담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진행자 역시 재미있기 위해 놀이를 하는 입장이며, 다른 사람의 재미를 위해 자기희생을 하는 봉사자가 아닌 것입니다. 모두 서로에 대한 배려는 해야겠지만 배려의 방향은 일방적일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진행자 스스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진행에 참가자들이 재미있을리가 없죠.

또한 진행자에게 플레이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사회적인 놀이인 RPG에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진행자가 뭔가 재미없게 진행하고 있다면 그걸 진행자에게 알릴 권리이자 책임이 있는 것은 바로 참가자들입니다. 진행자가 신이나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참가자에게 뭐가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 100% 파악할 수는 없게 마련이며, 진행자 못지않게 참가자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팀 전체의 재미를 증가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진행자가 참가자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아서 재미가 없다면 그건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지, 플레이의 재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수행하지 못한 애매한 죄목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행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부담느낄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이고, 참가자들 역시 캠페인 사건의 양과 질에서부터 진행의 재미까지 함께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저는 세션을 시작하기 전에 떨리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이정도 부담감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이 진행자로서의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 진행자로서의 ‘재미’ 앞에 진지한 저의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정 중심의 캠페인 제작

다음 내용은 기본적으로는 반쿠에이씨의 Flag Framing 기법과 Conflict Web을 접목시킨 것입니다. (블로그가 사라져서 archive.org 저장본 링크 겁니다. 위에서 7번째, 8번째 글입니다.)

1. 개괄

캠페인 제작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 설정에서부터 쌓아올리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실은 주인공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가자의 관심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요.

참가자의 관심방향에 대한 신호는 크게 두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첫번째는 대상 그 자체, 두번째는 일정한 주제의식 혹은 감정선. 첫번째 부류의 예로는 주인공과 관련이 있는 조연이나 장소가 대표적일 것입니다. 주인공의 고향 플레인이라든지, 지금은 적이 되어버린 쌍둥이 언니라든지. 이러한 신호는 캠페인에 넣기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언제나 등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 한계입니다. 캠페인 세계의 개연성이나 각 인물의 활동에 따라서는 지금 당장 등장시키기 힘들 때가 많으니까요.

여기에서 두번째 부류의 신호가 중요해집니다. 주제의식과 감정선은 보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캠페인 내에서 계속 끌고갈 수 있으며, 적당히 엮고 대립시키면 주인공들의 협력과 갈등관계를 보다 공고히 묶는 수단이 되니까요. 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주인공이 있다고 하면 정확히 어떤 어린아이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고, 어린아이를 위해주고 도와주는 상황을 계속 던져주면 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상을 등장시키는 것보다 한결 유연한 진행이 가능합니다. 여기에다가 다른 주인공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계속 넣는다든지, 또다른 주인공의 호기심이 동할 소지를 넣는다든지 해서 주인공들의 신호를 서로 엮어볼 수 있겠죠.

주인공끼리 신호를 엮는 방법을 사용하면 구체적인 대상 신호, 즉 첫번째 부류의 신호를 사용할 때도 그 신호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주인공들 역시 개입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다른 주인공의 정체성 갈등과 연관된다든지 말이죠.

2. 신호 파악

참가자가 보내는 신호를 파악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일단 인물 제작 과정에서 어떤 얘기들이 나오는지, 어떤 설정에 참가자가 흥미를 보내는지 귀기울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가족 얘기를 많이 한다면 그 주인공의 이야기에는 가족을 개입시키면 참가자의 흥미를 끌 공산이 큽니다.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와 게임 세계 사이의 일종의 인터페이스이며, 참가자에게 무엇이 흥미로운지 하는 하나의 필터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인물 제작 과정에서부터 진행자가, 그리고 가급적이면 팀 전원이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발상을 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신호 중심 캠페인에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많은 RPG 규칙에서는 캐릭터 시트 자체도 신호를 표시해 주고 있습니다.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에서 성취 플레이는 참가자의 주요 관심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능력치와 인간관계 역시 이를 보조하는 신호로 기능하지요.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은 특히 열쇠가 신호 표시의 용도가 강하고, 캠페인 중 신호를 발동할 때마다 경험치가 쌓인다는 점에서 전술적 판단과 신호 활용을 강하게 엮고 있습니다. 페이트 (FATE) 혹은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은 면모에 그대로 신호가 드러나며, 참가자가 극점수라는 자원을 소모해서 능동적으로 신호를 발동할 수 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합니다. 겁스 (GURPS)의 장단점 역시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수가 비교적 많아서 그중 어느 것이 중요한지 가려내려면 참가자에게 더욱 열심히 귀기울여야 하겠지만요.

물론 인물과 별개로 참가자 자신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흥미로워하는지,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는지. 주인공의 설정은 참가자의 관심거리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이지만, 참가자가 원하는 것은 주인공 설정에 전부 포괄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 이 사람은 적당히 코믹한 소년물 성향이구나. 이 사람은 극적이고 깊이있는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등등.

주의할 것은, 참가자의 관심사에 중점을 둔다고 해서 진행자가 참가자 입안의 혀처럼 굴면서 진행자 자신의 관심사나 로망을
희생한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차피 진행자는 거시적인 시각에서 캠페인을 만들어가는 입장이기 때문에 캠페인에 진행자의 관심사가 반영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참가자의 신호에 신경쓴다는 것은 여기에 더해 참가자도 정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도록 캠페인을 만들어간다는 얘기일
뿐이죠. 신호는 참가자에게서 나오되 이 신호를 캠페인상에 해석하고 구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역할이니까요. 인물 제작 단계에서부터 진행자의 적극적인 개입과 참여가 중요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3. 캠페인 준비와 진행

이렇게 신호를 추출해 내면 (‘가족’ ‘고향 플레인’ ‘쌍둥이 언니’ ‘어린아이를 좋아한다’ 등등) 그 신호에서는 다시 캠페인에 활용할 수 있는 인물과 장소, 이미지, 주제의식 등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호에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 외에도 주제의식이나 감정선에서도 또다시 인물과 배경을 추출할 수 있지요. 조연들에게는 각각 주인공에게 바라는 바, 목표와 자원, 한계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주인공의 신호와 관계되는지 재확인합니다. 장소 역시 비슷하죠. 신호 관련성, 특색, 모험에 활용할 수 있는 요소, 이 장소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조연 등을 준비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인물들이 준비되면 진행자는 주인공 한명 혹은 그 이상의 신호가 개입된 상황을 던져주고, 참가자들은 자기 관심사가 직접 개입돼 있으니 그 신호를 쫓아 반응할 것입니다. 조연들은 그들 각각의 목표와 주인공에게 바라는 바에 따라 주인공들의 행동에 다시 반응합니다. 이 조연들은 주인공의 신호에서 추출한 것이니 이들의 행동은 다시 신호를 발동하게 될테고 (그러지 않는다면 진행자는 다시 신호가 발동될만한 상황을 던지면 되죠), 또 주인공들이 행동하면 조연들은 반응… 하는 식으로 캠페인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더이상 진행자는 시나리오나 이야기를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인물의 역할을 맡아 상황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면 되니까요. 다만 그 인물이 한명의 주인공이 아닌 여러명의 조연일 뿐.

4. 한계

이와 같이 신호 활용은 캠페인 제작과 운용의 강력한 도구이지만 한계도 있습니다. 바로 참가자들이 신호를 쫓으며 적극적으로 뭔가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진행자로서의 저는 능동적인 참가자에게 기대는 면이 있으며, 참가자가 수동적이면 속수무책이 된채 쩔쩔매게 됩니다. 인물 제작 단계라든지 캠페인에 대한 토론 단계에서 분명히 이게 신호다! 라고 확신하고 진행하는데 정작 참가자는 신호를 쫓아오지도, 활용하지도 않으면 난감해지지요.

예를 들어 지금 진행하는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에서는 주인공들을 엮을만한 꺼리가 나름 풍부하게 마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 못해서 당황중입니다. 주인공 중 한명은 자기 고향 플레인을 찾으려고 하고 있고 이 동기를 열쇠로도 택했기 때문에 경험 많은 플레인워커인 다른 주인공과 쉽게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고향 플레인에 대한 것은 일언반구 나오지조차 않아서 당황.

엮을 거리가 부족한가 염려되어서 약간 논리적으로 무리를 해가면서 두 주인공에게 공통으로 임무를 주기도 했습니다. 이 임무는 주인공 중 하나에게는 자기 고향 플레인을 찾는데, 다른 하나에게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접근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암시도 주었습니다…만, 역시 입질이 없더군요. 결국 주인공들끼리 별다른 접점이 없이 서로 겉도는 동안 진행자는 고민이 늘어가는 상황입니다. 세번째 주인공을 추가하면서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는 설정이니 어디든 쉽게 엮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보기 드물 정도로 호기심 없는 인물인 것으로 밝혀져서 또다시 좌절..(…)

이와 같이 캠페인에 대한 신호 중심 접근은 신호에 대한 진행자와 참가자의 기대치가 어긋났을 경우 캠페인이 심각하게 표류할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물론 참가자를 막막하게 만드는 것은 진행자의 실책이고, 참가자가 막막해하고 있으면 강력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진행자의 책임일 것입니다. 문제는 참가자가 적극적으로 신호를 쫓아가고 거기에 다시 반응하는 방식에 익숙한 저로서는 참가자들과 나란히 막막해진다는 것이죠. ㅠ_ㅠ 참가자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진행자로서 잘 기능을 못한달까요. 그래서 요즘은 신호 중심 접근이 실패했을 때 보완할만한 방법을 모색중이기도 합니다. 어떤 진행 수단도 완전한 것은 없으니까요.

진행 도구 – 관계도와 연상도

Story Games 등지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캠페인에 나오는 인물과 집단간의 관계도를 제작해서 활용하는 진행자들이 꽤 있더라고요. Sons of Kryos 포드캐스트에서도 관계도를 다룬 적이 있고, 이런 예나 이런 예를 보고서는 ‘나도 만들어볼거야!(화르륵)’ 하고 로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순서도 제작용 플레쉬 도구인 Gliffy를 찾아서 지금 진행중인 캠페인의 관계도를 만들어보았지요. 어차피 멋지게 만들 재주는 없고 깔끔하게나 만들어보자고 생각하며 낑낑댄 결과… 저에게 관계도는 큰 도움이 안되는 도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포도원의 제다이 관계도면

'포도원의 제다이' 인물과 집단간의 관계도


뭐 개발새발인 건 둘째치고라도, 결정적으로 시각적 형상화를 통해 새로 떠오르거나 만들어지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글로 쓰거나 생각하면 아주 부드럽게 정리가 되고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는데 반해 제게 시각자료는 오히려 창의성을 억제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아, 이런 것도 있었지. 근데 도면에 넣을 자리가 없는데? 전부 재배치하면… 아, 귀찮아.”)

한마디로 사람마다 정보를 창출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은 다르고, 저같은 경우는 시각보다는 언어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숭어가 뛴다고 망둥이도 뛰면 안됩 남이 한다고 무턱대고 따라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진행 도구를 찾는 것이 중요한듯 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도 필요하겠죠.

아, 그리고 도면이나 관계도 만들 도구가 필요하신 분은 글리피 한번 써보시길. 예시가 좀 안좋긴 하지만 쓰기 간단하면서도 색깔이나 선 모양 등 이것저것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SVG나 PNG, JPEG 파일로 저장할 수도 있고… 다만 그림파일로 만들면 한글은 글씨체가 조금 이상해지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위의 것은 그냥 75% 배율 상태에서 스크린샷을 찍은 것입니다.

간단한 연상도는 또다른 온라인 플래쉬 도구인 bubbl.us도 유용해 보입니다. 객체간에 다양한 관계설정이 안되기 때문에 복잡한 표현에는 부적합하지만, 그만큼 쉽고 빠르기 때문에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의 색채연상이라든지 하는 용도에는 문제없이 쓸 수 있겠더라고요. 아래는 얼음깨기의 색채연상도를 ‘은빛’에서 시작해 만들어본 예입니다.

※ 3/14: 갑자기 버블에서 한글이 안되는군요. 원래는 잘 되더니만 느닷없이 한글 입력을 안 받고, 저장해두었던 도면을 부르니까 한글 글씨가 사라진채 나옵니다. 사이트에 알려두긴 했지만 시정될지는 두고볼 일.

※ 3/15: 문의한 결과 글씨체 충돌 문제인듯 합니다. Ctrl+Shift+Space를 치면 해결되는군요. 문제는 이미 저장해두었던 시트의 버블들이 글씨보다 작게 나온다는 건데, 이 부분은 Unpin all을 누르고 버블들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Undo를 누르는 것밖에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차후에 시정된다고 하고, 시정되면 이메일까지 보내주겠다는 친절한 태도를 자랑하는…

bubbl.us에서 만들어본 연상도

얼음깨기 색채연상의 예

4인의 스승 설정후기

포도원의 제다이에 나오는 세 주인공의 네 스승 상세설정을 마스터 티로칸을 끝으로 모두 썼습니다. (로어틸리아 같은 경우는 정식 스승인 티로칸과 정신적 지주(?) 아카마르가 따로 있었으므로 총 4명이었죠.)

전반적으로 꽤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처음 쓸 때는 가장 어려워보이는 로크락부터 썼는데…

1. 로크락 설정을 쓰면서

‘에구구… 쉽진 않군. 역시 비인간 종족은 어려워. 그래도 마음먹고 쓰니 깔끔하게 끝났네?’

2. 모트 클라인 설정을 쓰면서

‘인간이니까 곧 되겠… 아니 근데 외교관 유형으로 하면 아카마르하고 너무 많이 겹치잖아? 그럼 전사로 할까? 복잡한 건 아카마르한테 떠넘기고 영웅 전사로 가자. 근데 어떻게 엮어넣지? 살려줘!’

3. 아카마르 설정을 쓰면서

‘음, 이번에도 인간이니까… 아악 너무 밋밋해! 이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얘기는 뭐야! 왜 질서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됐지? 아 그래, 모트하고 대조시키게 고아 출신으로 하자! 근데 이 할아버지 왜 이딴 식으로 사는 거지! 뭔가 정당화가 필요해! 이대로 가면 시스보다 나쁜놈이잖아! 지금까지 중에 최고로 어려워!!!’ ;ㅁ;

4. 티로칸 설정을 쓰면서

‘간단한 인물이니까 금방 될거야. 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전혀 간단하지 않잖아! 로어틸리아 부모 죽은 걸 어떻게 처리하지? 그래서… 일이 파국으로 치달았는데… 성 바르톨로뮤 학살 얘기도 참조하고… 에… 에… 에라 모르겠다, 팽개쳐 두자. (며칠 후) 어디, 다시 작업해 볼까. 그래서 걷잡을 수 없게 됐고 제자까지 죽여먹었고, 그로 인한 심리적 효과는… 역마살하고 엮으려면… 흑. 티로칸이 제일 어려워..ㅠㅠㅠㅠㅠㅠ’

…이런 생쇼를 하면서 썼다죠.

또 문득 떠오르는 망상이라면 ‘로크락의 불만.’

로크락: 음… 모트는 어려서 모히야트였고… 아카마르는 아캄… 티로칸은 로까… 이거 뭐 이래?
로키: 음?
로크락: 왜 나만 이름이 한개야! 이건 차별이다! 나도 애칭이나 별칭을 줘!
로키: 에… 잠시만… (뒤적뒤적) 아, 그래! 딱 좋은 게 떠올랐어!
로크락: 오, 뭔데뭔데?
로키: ‘로키’ 어때?
로크락: ……
(잔인한 장면 모자이크처리)

티로칸의 설정에서 잠시잠깐씩 나온 불쌍한 스승 제나’니에이의 성격은 제가 아는 분과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언더월드 3기 참가자인, 엘리사의 플레이어분 말이죠. 정말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제가 느낀 이미지하고 닮았어요..^^ 아마 무의식적으로 참고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다이계는 의외로 좁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다! …라기보단 자꾸 새 인물 만들기 귀찮아서 기존 인물을 재활용했지만요. 이로 인해 만들어진 몇가지 묘한 인연들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센의 스승(로크락)의 스승(칼레나)은 자락스의 시스 스승인 다쓰 세데스에게 죽었다
(사실 자락스 자신에게 죽었다고 할까도 했는데, 스승이 죽은 거라면 몰라도 스승의 스승은 별거 아니니까(?))
– 센의 스승(로크락)의 스승(칼레나)의 스승은 마스터 아카마르
– 포도원의 제다이 외전 주인공인 펠로스의 스승(사두르)의 스승 역시 마스터 아카마르
(자락스가 성취 플레이중에 펠로스에게 죽을 뻔한 역사도 있죠)

조연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쏟은 건 처음이라 나름 애착이 가기도 하네요. 설정을 쓰면서 던져넣은 행성이나 인물 명칭도 캠페인에 활용할 수 있겠고, 무엇보다 글로 쓴 설정은 머릿속에만 있는 설정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앞뒤가 맞기 때문에 앞으로의 캠페인에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려워서 두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짓이기도..(..)

RPG 팀 구성하기

지난번에 RPG 팀 구하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이번에는 RPG 팀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제 경험과 시행착오 중심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저 자신의 경험이 기반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 공개구인은 진행자가 주체가 되어 참가자를 뽑는 식이고 제 경험도 거의 그쪽이었지만, 참가자들이 먼저 뭉친 다음에 진행자를 뽑는다든지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겠죠.

1. 인맥 중심 구인

아는 사람들끼리 팀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무난하고 편하며, 지속적이고 안정된 플레이의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변수에 대응하는 불안이 없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RPG를 통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장점도 있죠. 전에 캠페인을 함께 해본 사이라면 이전 캠페인의 후속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속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얘기가 돼서 팀이 짜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법론을 딱히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캠페인을 하자!’라고 생각해서 아는 사람들한테 관심있나 연락을 해본다든지, 친구들끼리 얘기하다가 ‘캠페인을 해볼까?’ 하면서 팀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위에서 얘기한 진행자가 주축이 되어 참가자를 뽑는 전형에서 가장 벗어나기 쉬운 방식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을 해볼까?’ 얘기하다가 ‘너 마스터 해.’ 하는 식으로 얘기가 되곤 하니까요.

인맥 중심 구인은 가장 흔한 팀 구성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몇가지 한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취향이나 시간대가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캠페인 내용, 규칙, 시간대 등이 아닌 인맥을 중심으로 뭉친 팀이기 때문에 캠페인 방향이나 규칙에 대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인맥 중심의 팀 구성은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캠페인에 대한 사항에 맞는 사람을 아는 사람 중에 발견할 수 없는 경우도 꽤 됩니다. 나는 핵앤슬래쉬를 하고 싶은데 상대는 정치물을 하고 싶다든지, 나는 토요일 오후밖에 안되는데 아는 사람들은 일요일 오전밖에 안된다든지 말이죠.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잘 지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 B와 C는 친한데 A와 C는 앙숙이라거나. 인간관계란 복잡다단한지라,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은 RPG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인맥 중심 구인은 캠페인에 대한 사항에 합의가 잘 되면 (특히 아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교적인 의미를 강조한다면 더욱) 안정적인 플레이에 강하겠지만, 내용이나 시간대 등 캠페인에 대한 특정 욕구를 모두 조율하고 충족시키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인맥 구인에 보조적으로, 혹은 인맥 구인 대신으로 공개 구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의 나머지에서 다루는 방법들은 모두 인터넷을 통한 공개 구인 방법들입니다.

2. 선착순 구인

구인글을 올린 후 그 글에 답한 사람 중 선착순으로 몇명을 끊는 방식입니다.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했을 때 사용한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별로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선착순 구인은 공개 구인의 약점, 즉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구인글에 답만 달았지 플레이 약속은 전혀 안 지킬 수도 있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하나도 안 맞을 수도 있고, 인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등 선착순 구인은 참가자의 실력이나 참여자간 상성 같은 요소를 확보할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선착순 구인에서도 지원자를 걸러내는 최소한의 수단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구인글 그 자체입니다. 구인글에 캠페인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규칙을 사용하고 어떤 시간대에 하는지, 어떤 참가자를 찾고 있는지 하는 내용을 적을 수 있고, 그 글에 답하는 사람들은 구인하는 측이 바라는 참가자의 조건을 충족할 것이다…는 이론이 되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습니다. 자신이 보는 자기 자신과 실제로 드러나는 자기 자신은 다르기 때문이지요.

구인글에 답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캠페인 때 필요한 시간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생활습관이나 다른 사정으로 실제로는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남과 협력도 잘하고 규칙도 숙지한 것 같지만 남이 보기에는 전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인글을 보고 생각한 캠페인 기대치가 구인자가 생각한 것과는 달라서 서로 실망하는 수도 있죠.

물론 선착순 구인으로도 팀이 무난하게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문제있는 경우보다는 좋은 참가자를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죠. 하지만 그 결과가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는 점, 그리고 잘못되는 경우에 제어장치가 없다는 점 때문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냥 빠르게 사람 모집해서 1회 플레이나 단기 캠페인을 하는데 편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혹시 문제있는 사람이 지원했을 경우 나중에 축출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안정되게 오래 팀을 돌리는데는 도움이 안됩니다.

여기에서 좀더 발전한 방법으로는 일단 지원을 받아놓은 다음 면접 같은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시도해본 적이 없는 방법입니다. 순수 선착순보다는 훨씬 효과적으로 지원자를 선별할 수 있겠지만, 지원자를 떨어뜨린다는 심적 부담이 단점으로 보입니다.

3. 설정 공모하기

위와 같은 선착순 공개 구인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 끝에, 세번째로 해본 캠페인인 라이테이아 전기에서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참가 지원자가 이 캠페인에서 하고 싶은 주인공 설정을 정해진 날짜까지 올리라고 한 후 그중 몇개를 선택하는 방법이었죠.

참가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로망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그것으로 판단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또 구인자인 제 입장에서는 참가자의 실력이나 문제점은 주인공 설정에서 상당부분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로 취향이 어느정도 부합하는지, 진행자가 생각하는 캠페인 방향에 맞는지 등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문제없이 함께 플레이할수 있고 어느정도 취향도 맞는 참가자를 뽑을수 있었고, 주인공 설정들이 좋았기 때문에 그에 기반한 캠페인 내용도  비교적 수월하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는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느낀 한계도 있습니다. 어느정도 엮을 거리가 있는 설정들을 골라내기는 했지만, 애당초 따로따로 만들어온 개성있는 인물들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일행으로 만드는데는 진행자 입장에서는 많은 노력이 들었고,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해와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주인공들을 일행으로 엮기 위해 예언과 출생의 비밀, 기막힌 우연(..) 등을 동원한 것이 극적으로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니었고 또 라이테이아는 그런 것들이 나올만한 성격의 캠페인이기는 했지만, 좀더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되었다면 참가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자유로 직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설정의 연계가 다소 들쑥날쑥해서 주인공 중 한명이 나머지 둘에 비해 소외되었던 점도 아쉬웠죠. 팀을 구성하는 방법이 캠페인의 진행 및 내용과도 직결되는 사례연구로 흥미롭기는 했지만요.

결국 설정 공모는 여러가지 장점도 있는 접근이지만 완전한 방법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한 지원자를 떨어뜨린다기보다는 뽑는 방식이긴 했지만, 그래도 구인자 (이 경우 진행자) 혼자의 판단으로 지원자를 탈락시킨다는 심적 부담은 여전하더군요. 이 방법은 라이테이아 전기 한번을 끝으로 다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4. 지원자간 투표 방식

최근에 시작한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공개모집에 사용한 방법이며, 지금까지 써본 공개구인법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좀있다 다루듯 한계도 있긴 하지만요.

이 방법은 처음 시작은 위에서 얘기한 선착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인글을 올린 다음에 처음 몇 명을 끊는 것이지요. 다만 실제로 뽑으려는 인원보다는 1.5~2배 정도의 수를 뽑은 다음에, 그들끼리 서바이버를 촬영합니다..? (퍼벅)

이렇게 선착순으로 끊은 인원과 함께 본 캠페인 세션을 진행하는 요일과 시간대에 시범 플레이를 운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사항들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자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플레이 시간을 지킬 사정이 되는지, 플레이중 남과 유기적으로 잘 협력하는지, 서로 성격이 잘 맞는지 등등.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입장에서도 이 캠페인의 방향성이나 진행자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할 수 있겠죠.

이렇게 두번의 플레이가 끝난 후 시범 플레이에 참가한 지원자들끼리의 투표를 시켰습니다. 구인자인 저에게만 얘기하는 비밀 투표 형식으로, 예를 들어 지원자 A, B, C, D 중 A는 B, C와 함께하고 싶고 B는 C, D와 함께하고 싶고 하는 식으로 자신이 함께 참가하고 싶은 지원자를 각자 지명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들 표는 단순합산으로 해서 지원자들의 순위를 매겨 높은 순서대로 잘랐습니다.

참가자들을 최종적으로 뽑은 다음에는 각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새로 주인공을 만들거나 시범 플레이의 주인공을 그대로 이어가거나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차피 캐릭터를 보고 뽑은 게 아니라 사람을 보고 뽑은 것이었으니 좀더 유기적으로 서로 이어지는 인물들을 새로 만들어도 큰 무리가 없었으니까요.

이 방법의 이점이라면 우선 단순히 개별 참가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팀을 뽑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 팀으로서 얼마나 잘 기능할 수 있는지, 얼마나 상성이 좋고 어울리는지 보는 것이니까요.

같은 맥락으로 이 방법은 대체로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온다고 봅니다. 잘 기능하는 팀을 뽑는다는 것은 말이 거창하지, 대충 팀이 이러이러하게 짜일 것이라는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시범 플레이 참가 외에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원자들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소위 ‘낚였다’는 느낌도 덜할 것입니다.

또 구인자의 심적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판단의 부담을 지원자들에게 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비밀 투표 방식에 많은 꽁수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권한은 그다지 포기하지 않고 부담만 분산하는 사악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

이 방법의 한계라면 판단의 자료를 위한 시범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애당초 그다지 많은 지원자를 가지고 시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두의 플레이에 대해서 판단이 가능한 정도로 플레이 진행을 하려면 ORPG에서는 아마 8명이 상한선이라고 보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는 다소 제한되는 것이지요.

비밀 투표 방식이라는 것은 한편 장점이고 불가피한 필요이면서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납득할 수 있는 결과’라는 장점을 희석시킬 위험도 있지요. 애당초 공개 투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염두에는 둬야 할 점입니다.

이 투표 방식과 공통점이 많은 방법이자 직접적인 영향이기도 했던 것이라면 이미르니아 같은 팀에서 새로운 참가자를 받기 전에 몇주간의 관전을 요구하는 방법이라든지, 단막극을 진행하고 거기서 참가자를 뽑는 방법이라든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대를 지키는지, 플레이를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점들을 실제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방식들의 공통점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판단에 시간과 노력이 들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투표식은 꽤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다음에 공개구인을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사용해보고 싶습니다. 비록 시범 플레이 때는 점잖았던 참가자들이 본 플레이에서 트윌렉 모에를 부르짖는 것을 보며 ‘내숭이었구나!’ 하고 깨닫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

5. 정리하며

지금까지 제가 사용해본 구인 방식을 중심으로 RPG 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완전한 목록은 아니지만, 팀 구성에 들어가는 판단의 요소를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개발하는 시작점으로 기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군요.

아사히라님과의 대담

제가 RPG를 시작하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한 아사히라님과의 대담입니다. 아사히라님에게 (여러모로) 감사를… 더불어 존댓말 쓰느라 어색해 죽는줄 알았습..(..)

로키: 이제 와서는 판에 박힌 질문이긴 하지만..

로키: 아사히라님은 어떻게 RPG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생긋)

아사히라: 아..

아사히라: 어색해…..

로키: (나도..)

아사히라: 저는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누가 D&D 클래식 팀을 만들길래

아사히라: 낼름 껴들어가서 시작하게 되었지요

아사히라: 첫캐릭터부터 조잡한 추가 클래스인 몽크 변환버전 미스틱 이었다는게

아사히라: 3.5의 몽크를 변환시켜서 짜맞추기 추가한 ‘미스틱’ 이란 클래스였지요

로키: 플레이는 어땠나요?

아사히라: 음, 아무것도 모르고 재미있게 했지요

아사히라: 동료들 중엔 힘 16 매력 18인데 민첩이 6인 전사라거나

아사히라: 매력 4의 로그라거나

로키: 주사위로 굴린 거였나요, 다?

아사히라: 그렇죠

아사히라: 원래 매력이 7인가 떠서

아사히라: 리롤 기회를 줘서 굴린게 4가 나와서

아사히라: 마스터가 좀 하드코어했는지 4로 가더군요

아사히라: ‘오크수준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슴니다’

로키: 그랬겠네요, 정말

로키: 아사히라님의 캐릭터 취향을 보면 민첩형을 중시하는데 그건 이때부터 드러난 거였을지도..

아사히라: 원래 스탯도

아사히라: 힘 15 민첩 17이 나왔는데

아사히라: 그걸 또 굳이 깎아서

아사히라: 힘13 민첩 18로 달렸지요

아사히라: 그래야 아크로바틱이 좀 잘되었…

로키: 그래서 그때부터 RPG를 계속 하게 된 건가요?

아사히라: 음, 하다가

아사히라: 금방 팀이 쫑나게 되었는데..팀원들 사정으로

아사히라: 그후 1년쯤 안하다가

아사히라: 놀거리를 찾던 중에 RPG가 다시 하고 싶어서

아사히라: 다이스 챗을 찾게 되었죠

아사히라: 이게 2004년말..

로키: 아, 그랬군요

로키: 나도 가입이 2004년 말이었는데

로키: (아사히라님 소개로)

아사히라: 그렇죠

아사히라: 우린 전부터 알던사이

아사히라: ///

로키: (오호홋)

로키: 언제부터였더라.. 그 루벨라 커뮤니티였던가요

로키: 나름 추억입..(..)

아사히라: 흐흐

로키: 다챗에 들어가서 플레이하게 된 팀이 이미르니아인가요?

아사히라: 넵

아사히라: 그때

아사히라: 구회를 막 하고 있었는데

아사히라: 이미르니아의 구인조건은 4주관전이었거든요

아사히라: ‘아 빡세다…’ 라고 생각하고

아사히라: 다른팀을 찾고 있는데 구인하는 팀이 영 없어서

아사히라: 결국 이미르니아에 관전하러 갔는데

아사히라: 마침 플레이어들이 없다고 단막극을 하더라구요?

아사히라: 관전없이 단막극만 2주 하고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로키: 그만큼 맘에 들었나보죠

아사히라: 설마요

로키: 하긴, 설마요..(?!)

아사히라: 헐

아사히라: 이러시기셈

로키: (음하하)

로키: 이미르니아가 AD&D 팀이고.. 그 후 3.5, 겁스 등 다양한 룰을 경험해 보기도 했었죠

로키: 이런저런 경험이 많지만.. 제가 알기로 아사히라님은 단연 전투와 전술성을 재미있어하는 것 같은데

로키: 어떤 재미가 있나요, RPG 전투는?

아사히라: ‘전술성’ 자체는 저는 별로 없는것같고

아사히라: 뭐랄까 ‘성공할 확률’을 많이 따지다 보니

아사히라: 전술적인 선택이 되는거 같네요

로키: 전술이랄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잖아요?

로키: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하면 전술성이지..

아사히라: 무엇보다 전투는 가장 원초적인 ‘승리의 즐거움’ 이 있는것 같아요

아사히라: 그리고 스릴?

아사히라: 전투는 위험부담이 크잖아요

로키: 위험 때문에 더 재밌는 건가요 (놀라워라)

아사히라: 그렇죠

아사히라: 많은 공격이 들어올때

아사히라: 맞으면 위험하지만 방어해낼때의 그 짜릿함?

로키: 그렇겠네요.. 그런데 실제로 캐릭터들이 위험에 처한 경우도 많았죠

아사히라: 예

로키: 불에 탄다든가, 석화된다든가..

아사히라: 그건 제가 요즘 깡이 늘어서

아사히라: 별로 안높은 확률도

아사히라: 도박을 하다 보니

로키: 그럴 때의 기분은 어떤가요? RPG에서 실패의 가능성은 상존하는데..

아사히라: 그럴때 뭐 기분이야 안좋긴 한데

아사히라: 제가 특히 안좋아하는 건

아사히라: 저게 그나마 제 선언이 이루어진 결과로써 나타난 거라면

아사히라: 납득이 잘 되지만

아사히라: 대응할수 없는 장애물 식으로 제 캐릭터에 닥친다면

아사히라: 마스터랑 엄청 싸우겠죠

로키: 위험이 있는 건 좋되, 그건 플레이어가 스스로 판단해서 선택한 위험이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아사히라: 음

아사히라: 제가 선택하지 않은 위험이 다가오는 것도

아사히라: 상관은 없지만

아사히라: 그게 쓰나미 정도 수준으로 오면 곤란하다는 거죠

로키: 그렇다면 위험의 가능성에서 나오는 흥분과 부당한 위험의 지양

로키: 이 두가지를 조화시키는 방법으로는 어떤 걸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사히라: 조화라고 하신다면..

아사히라: 음..알았다

아사히라: 마스터가 강력한 위험이 있다는걸

아사히라: 미리 경고해주면 돼요

아사히라: 예를들어

아사히라: ‘이 싸움에서 지면 아주 안좋은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아사히라: 라고 하면 명제인 이 싸움에서 제가 도박을 잘 하지 않게 되겠죠

아사히라: 안전하게

아사히라: 이러면 이 싸움에서 지더라도

아사히라: 그 위험은 부당한게 아니죠

아사히라: 뭐 길가다가 오크 셋이랑 싸우는데 진다고 부당한 위험이 일어날 것 같진 않고요

로키: 하지만 캐릭터는 그 사실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을듯 한데요

로키: 그렇다면 경고는 플레이어에 대한 경고인가요, 캐릭터에 대한 경고인가요?

아사히라: 아마 아주 중요한 상황에서

아사히라: 플레이어에게 던져주는 팁 정도가 되겠죠

로키: 그렇다면 부당한 위험을 지양하기 위해

로키: 플레이어 지식을 활용하는 것도 괜찮다는 말씀인가요?

아사히라: 흐음

아사히라: 예

아사히라: 저는 제 캐릭터가

아사히라: 뒤로 한걸음 걸었는데 거기 깊이 150m짜리 함정이 있다거나

아사히라: 하는건 좀 피하고 싶군요

로키: 저도 그런 건 좀 아니라고 보지만.. 이런 건 어떨까요

로키: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통해서 그 위험을 알아낼 수 있는 정당한 기회를 제공하고

로키: 그걸 알아내지 않았거나 실패해서 자기도 모르는 엄청난 위험으로 걸어들어간 경우라면요

아사히라: 그거야 충분히 가능성있고

아사히라: 또 부당하지도 않은데

아사히라: 중요한건 거기서

아사히라: 그런 판정이 있다는 걸 플레이어가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사히라: 아니면 플레이어가 ‘그때 그런 판정이 있었는지 내가 알게뭐야?’

아사히라: 라는 생각이 들수 있죠

로키: 예, 정당한 기회에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아사히라: 네 사실 저런방법이 더 좋죠

로키: 뒤집어서 말하면 저 조사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서

로키: 사전에 위험을 줄일 수도 있겠군요, 생각해 보면

아사히라: 그렇죠

아사히라: 하지만 아무래도

아사히라: 마스터가 생각하는 만큼 정보 전달이 플레이어들에게 잘 안되다 보니

아사히라: 뭔가 능동적으로 찾아서 조사해내고 이러기가 좀 어려워요

로키: 예, 좀 그렇죠

아사히라: 키워드를 적당히 주는 마스터라면 문제없죠

로키: 그럴 경우에 보조적으로 위에 말한 플레이어 지식 활용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아 보여요

아사히라: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서라면야

로키: 예.. 사실 중요한 건 플레이가 재밌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거지 플레이어 지식 활용 자체는 아니니까요

아사히라: 하지만 저도 평소에는

아사히라: 플레이어 지식을 캐릭터 지식에 대입하는걸 싫어하는 편이죠

아사히라: 편법을 사용해서 얻어낸 성공은

아사히라: 성취감이 적거든요[?]

로키: 그렇다면 이제 마스터가 지나친 위험을 제시한 경우 외에 또다른 위험..

로키: 즉 ‘주사위눈의 위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키: 말했듯 RPG에서 실패의 가능성은 상존하니까..

아사히라: 겁스에서 17 다음에 18뜨는거 말인가요

로키: 예 그렇죠 (..)

아사히라: 어쩔수없죠

아사히라: 저는 모든 주사위 굴림에 납득합니다

아사히라: 비록 어이없을지라도

로키: 스포츠맨쉽이군요 (..)

아사히라: 그런거죠

아사히라: [?]

로키: 전투에 대해서 또다른 질문이라면

아사히라: 예

로키: 생각해 보면 긴박감과 박진감 같은 건 RPG보다 CRPG가 더 낫지 않을까도 싶은데

로키: 사운드도 있고, 그래픽도 있고, 진행도 더 빠르고..

로키: 그럼에도 RPG 전투에서 재미를 느끼는 건 어째서인가요?

아사히라: 저는 캐릭터의 행동이 몇개의 텍스쳐 팩. 즉 움직이는 모습까지도 제한된

아사히라: 그런 게임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거든요

아사히라: 때리는 모션 1 2 3정도로는 너무 적죠

로키: 하지만 요즘에는 게임 기술이 상당히 발전해서

로키: 그런 부분도 많이 풍부해진 것 같은데요

아사히라: 아 물론CRPG 많이 해요

아사히라: 거기 전투도 재미있고

아사히라: 그쪽의 장점은 아무래도 자동 계산에

아사히라: ‘전투 라운드’ 라는 시간과

아사히라: 실제 시간의 괴리감이 별로 없단거?

로키: 그렇다면 각기 다른 성격의 재미가 있는 거군요?

아사히라: 그렇죠

로키: 정리하자면 CRPG와 구분되는 RPG 전투의 재미는.. 우선 무한한 가능성일까요?

아사히라: 예

로키: 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아사히라: 저만의 캐릭터죠

아사히라: 그 비주얼까지도 모든게 제 자유니까요

아사히라: 제 상상 속에서 무한하죠

로키: 오히려 눈앞에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에요?

아사히라: 예

아사히라: CRPG에선 아무리 자유로운 메이킹이라 해도

아사히라: 제가 캐릭터의 외형을 그려넣는것까지야 드물죠

로키: 그렇죠

로키: 전투 외에 또 RPG에서는 어떤 것에 재미를 느끼나요?

아사히라: 음 일단 대체로

아사히라: 제시된 장애물을 해결해 내는것

아사히라: ‘스스로’ 가 붙으면 더 좋고요

로키: 스스로.. 즉 아사히라님의 PC가?

아사히라: 예 정확히는 완전히 혼자서라는 얘기는 아니고

아사히라: 보통 ‘NPC의 도움없이’ 쯤이 되겠네요

로키: 그 NPC의 도움도 PC가 설득하거나 해서 끌어들인 것인 경우는요?

아사히라: 그경우엔 PC의 능력이니 상관없죠

아사히라: 어색한 도움을 말합니다

로키: 섬광과 같이 나타나서 슥삭? ㅋㅋ

아사히라: 뭐 대충 그런? ㅋㅋ

아사히라: 그리고 저는 또 좋아하는게..음

아사히라: 한순간 제 캐릭터에 조명이 확 터지는거?

아사히라: 항상 주목받는거야 있을수가 없지만

아사히라: 그 빈도가 적더라도 확 조명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을 좋아하죠

로키: 그렇다면 다른 PC에게 조명이 확 가는 동안에는 어느정도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얘긴데

로키: 그런 쪽도 재미있나요?

아사히라: 예

아사히라: 가상이지만 ‘누군가를 돕는다’ 는 쪽도 꽤 성취감이 큰 것 같아요

아사히라: 특히나

아사히라: 도움을 받기 어려운 하층민, 민간인

아사히라: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

아사히라: 이런 사람들을 도울때 더 성취감이 높은 듯

로키: 그렇다면 협력과 사회성 역시 RPG의 또다른 재미라는 거겠네요

아사히라: 예, 혼자만 놀려면 그냥 CRPG 하셔야겠죠?

로키: MMORPG도 있긴 하잖아요?

아사히라: 요즘엔 MMORPG도 협력을 필요로 하는게 많아서

아사히라: 물론 솔플만 즐기실 거라면 그쪽도

로키: 참가 경험 외에 진행자 경험도 있는 걸로 아는데

로키: 진행자로서의 재미와 참가자로서의 재미는 어떻게 다른가요?

아사히라: 제가 진행자는 별로 안해봤긴한데..

아사히라: 진행자 쪽에선 적절한 난관을 제시하고

아사히라: 플레이어들이 그걸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단서를 던져주면서

아사히라: 퍼즐을 어떤식으로 맞춰나가는가 구경하는게 꽤 재미있던데요

로키: NPC 연기 같은 건요?

아사히라: NPC연기는 좀 정신없는 편이죠

아사히라: 저는 한캐릭을 오래쓰는거에 익숙해서

아사히라: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로키: 하긴, 참가를 주로 했으니 그렇겠네요

아사히라: 예

아사히라: 역시 참가의 재미는

아사히라: 저만의 캐릭터가

아사히라: 성장해 나가는걸 볼때?

로키: 장기 캠페인을 통해서요?

아사히라: 장기 캠페인에선 그런 재미가 있고

아사히라: 단기 캠페인에선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재미도 있지요

아사히라: 근데 뭐 굳이 이렇게 세세하게 나눌것도 없이

아사히라: 참가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로키: 하하..

아사히라: 다른사람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아사히라: 살아간다는 느낌?

아사히라: 일관성 없는 세계는 싫지만요

로키: 스스로 만든 세계에서 다른 사람이 노는 걸 보는 느낌보다는

로키: 다른 사람의 세계 속에서 노는 것이 더?

아사히라: 네

아사히라: 특히나 제가 선호하는 타입의 캐릭터만 다룰 수 있다는게

아사히라: 가장 매력입니다

아사히라: 진행자는 별걸 다해야해서

로키: 조금 다른 얘기로는 비교적 다양한 룰을 참가자로서 경험해 보았는데

로키: 혹시 가장 선호하는 룰이 있나요?

아사히라: 가장..이라긴 좀 그렇네요

아사히라: 저는 대체로 어떤 룰에도 잘 적응하는 편이라

아사히라: 선호하지 않는 룰 정도는 있지요

로키: 어떤?

아사히라: 너무 내용이 없는건 별로더군요

로키: 내용이라 함은?

아사히라: 룰에서 제시하고 있는 규칙 같은것 말이죠

아사히라: 음..선호하는건 가볍게 뽑으면 AD&D, Gurps, M&M, 포도원의 개들 쯤이 되겠군요

아사히라: 사실 FATE도 좋긴한데

아사히라: 어쨌든

아사히라: ..

아사히라: 예 뭐 그렇습니다

로키: 보면 매우 전술적인 유형의 플레이어라는 생각이 드는데

로키: 역시 가장 선호하는 것은 전술적 판단을 할 철저한 기반을 제공하는 룰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맞나요?

아사히라: 음

아사히라: 기반을 제공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긴 하지만

아사히라: 아무래도

아사히라: 제공해줘야 행동을 결정하기가 더 쉬운것 같아요

로키: 즉 예측가능성이라든지 행동의 장단점 비교를 할 근거 같은 것 말이죠

아사히라: 예 그렇죠

아사히라: 가능성이 다는 아니지만 지침을 결정할때 편해져요

아사히라: 뭐 전술적인 성향이 있긴 하지만 저는 캐릭터 가지고 캐릭터 연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로키: 그리고 보니 캐릭터 연기 역시 룰의 도움을 받나요, 아니면 두가지는 거의 별개라고 생각하나요?

아사히라: 룰에서 캐릭터 연기를 제한하고 있다면 그런식으로 따라가고

아사히라: 그런게 딱히 없는 룰이라면 제 멋대로 하지요

로키: 캐릭터 연기를 제한하는 룰이 있나요?

아사히라: 예를 들어 겁스에선 수줍음 단점을 택했다면 수줍은 행동을 할필요가 있지요

아사히라: 이런식

로키: 그럼 질문에 답해주신데 감사드리고

아사히라: 예

로키: 마지막으로 광고 사항이라든지, 할 말이라든지 있다면?

아사히라: 오늘도 달립니다 간지캐릭터를 위하여

아사히라: 랄까

아사히라: (?!)

로키: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아사히라: 예 저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