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팀 구성하기

지난번에 RPG 팀 구하기라는 글을 썼었는데, 이번에는 RPG 팀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제 경험과 시행착오 중심으로 적어볼까 합니다. 저 자신의 경험이 기반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우 공개구인은 진행자가 주체가 되어 참가자를 뽑는 식이고 제 경험도 거의 그쪽이었지만, 참가자들이 먼저 뭉친 다음에 진행자를 뽑는다든지 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겠죠.

1. 인맥 중심 구인

아는 사람들끼리 팀을 구성하는 방식입니다. 무난하고 편하며, 지속적이고 안정된 플레이의 확률이 높습니다. 또한 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변수에 대응하는 불안이 없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RPG를 통해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는 장점도 있죠. 전에 캠페인을 함께 해본 사이라면 이전 캠페인의 후속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연속성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방법은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얘기가 돼서 팀이 짜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방법론을 딱히 자세히 다룰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이런 캠페인을 하자!’라고 생각해서 아는 사람들한테 관심있나 연락을 해본다든지, 친구들끼리 얘기하다가 ‘캠페인을 해볼까?’ 하면서 팀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기기도 하고… 위에서 얘기한 진행자가 주축이 되어 참가자를 뽑는 전형에서 가장 벗어나기 쉬운 방식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을 해볼까?’ 얘기하다가 ‘너 마스터 해.’ 하는 식으로 얘기가 되곤 하니까요.

인맥 중심 구인은 가장 흔한 팀 구성 방법이라고 생각되지만, 몇가지 한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취향이나 시간대가 맞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캠페인 내용, 규칙, 시간대 등이 아닌 인맥을 중심으로 뭉친 팀이기 때문에 캠페인 방향이나 규칙에 대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서로 시간대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비슷한 맥락으로 인맥 중심의 팀 구성은 수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캠페인에 대한 사항에 맞는 사람을 아는 사람 중에 발견할 수 없는 경우도 꽤 됩니다. 나는 핵앤슬래쉬를 하고 싶은데 상대는 정치물을 하고 싶다든지, 나는 토요일 오후밖에 안되는데 아는 사람들은 일요일 오전밖에 안된다든지 말이죠.

그리고 좀 다른 얘기지만,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다 잘 지낸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A와 B, B와 C는 친한데 A와 C는 앙숙이라거나. 인간관계란 복잡다단한지라, 서로 아는 사이라는 점은 RPG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짐이 되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인맥 중심 구인은 캠페인에 대한 사항에 합의가 잘 되면 (특히 아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사교적인 의미를 강조한다면 더욱) 안정적인 플레이에 강하겠지만, 내용이나 시간대 등 캠페인에 대한 특정 욕구를 모두 조율하고 충족시키는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인맥 구인에 보조적으로, 혹은 인맥 구인 대신으로 공개 구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의 나머지에서 다루는 방법들은 모두 인터넷을 통한 공개 구인 방법들입니다.

2. 선착순 구인

구인글을 올린 후 그 글에 답한 사람 중 선착순으로 몇명을 끊는 방식입니다.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했을 때 사용한 방법으로, 개인적으로 별로 권장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선착순 구인은 공개 구인의 약점, 즉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른다는 불확실성을 극대화하기 때문입니다. 구인글에 답만 달았지 플레이 약속은 전혀 안 지킬 수도 있고, 취향이나 스타일이 하나도 안 맞을 수도 있고, 인성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등 선착순 구인은 참가자의 실력이나 참여자간 상성 같은 요소를 확보할 장치가 전혀 없습니다.

물론 선착순 구인에서도 지원자를 걸러내는 최소한의 수단은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구인글 그 자체입니다. 구인글에 캠페인이 어떤 내용인지, 어떤 규칙을 사용하고 어떤 시간대에 하는지, 어떤 참가자를 찾고 있는지 하는 내용을 적을 수 있고, 그 글에 답하는 사람들은 구인하는 측이 바라는 참가자의 조건을 충족할 것이다…는 이론이 되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현실적으로 큰 효과가 없습니다. 자신이 보는 자기 자신과 실제로 드러나는 자기 자신은 다르기 때문이지요.

구인글에 답하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캠페인 때 필요한 시간을 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생활습관이나 다른 사정으로 실제로는 여의치 않을 수도 있고, 또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남과 협력도 잘하고 규칙도 숙지한 것 같지만 남이 보기에는 전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인글을 보고 생각한 캠페인 기대치가 구인자가 생각한 것과는 달라서 서로 실망하는 수도 있죠.

물론 선착순 구인으로도 팀이 무난하게 돌아갈 수는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도 문제있는 경우보다는 좋은 참가자를 구할 수 있는 경우가 더 많았죠. 하지만 그 결과가 순전히 운에 달려있다는 점, 그리고 잘못되는 경우에 제어장치가 없다는 점 때문에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냥 빠르게 사람 모집해서 1회 플레이나 단기 캠페인을 하는데 편한 방법일 수는 있지만, 혹시 문제있는 사람이 지원했을 경우 나중에 축출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안정되게 오래 팀을 돌리는데는 도움이 안됩니다.

여기에서 좀더 발전한 방법으로는 일단 지원을 받아놓은 다음 면접 같은 방법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시도해본 적이 없는 방법입니다. 순수 선착순보다는 훨씬 효과적으로 지원자를 선별할 수 있겠지만, 지원자를 떨어뜨린다는 심적 부담이 단점으로 보입니다.

3. 설정 공모하기

위와 같은 선착순 공개 구인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 끝에, 세번째로 해본 캠페인인 라이테이아 전기에서는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참가 지원자가 이 캠페인에서 하고 싶은 주인공 설정을 정해진 날짜까지 올리라고 한 후 그중 몇개를 선택하는 방법이었죠.

참가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로망을 처음부터 보여주고 그것으로 판단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또 구인자인 제 입장에서는 참가자의 실력이나 문제점은 주인공 설정에서 상당부분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서로 취향이 어느정도 부합하는지, 진행자가 생각하는 캠페인 방향에 맞는지 등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문제없이 함께 플레이할수 있고 어느정도 취향도 맞는 참가자를 뽑을수 있었고, 주인공 설정들이 좋았기 때문에 그에 기반한 캠페인 내용도  비교적 수월하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전반적으로 라이테이아 전기는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느낀 한계도 있습니다. 어느정도 엮을 거리가 있는 설정들을 골라내기는 했지만, 애당초 따로따로 만들어온 개성있는 인물들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이들을 하나의 일행으로 만드는데는 진행자 입장에서는 많은 노력이 들었고,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해와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주인공들을 일행으로 엮기 위해 예언과 출생의 비밀, 기막힌 우연(..) 등을 동원한 것이 극적으로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니었고 또 라이테이아는 그런 것들이 나올만한 성격의 캠페인이기는 했지만, 좀더 자연스럽게 같이 다니게 되었다면 참가자들에게 보다 폭넓은 자유로 직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설정의 연계가 다소 들쑥날쑥해서 주인공 중 한명이 나머지 둘에 비해 소외되었던 점도 아쉬웠죠. 팀을 구성하는 방법이 캠페인의 진행 및 내용과도 직결되는 사례연구로 흥미롭기는 했지만요.

결국 설정 공모는 여러가지 장점도 있는 접근이지만 완전한 방법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또한 지원자를 떨어뜨린다기보다는 뽑는 방식이긴 했지만, 그래도 구인자 (이 경우 진행자) 혼자의 판단으로 지원자를 탈락시킨다는 심적 부담은 여전하더군요. 이 방법은 라이테이아 전기 한번을 끝으로 다시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4. 지원자간 투표 방식

최근에 시작한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서 공개모집에 사용한 방법이며, 지금까지 써본 공개구인법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좀있다 다루듯 한계도 있긴 하지만요.

이 방법은 처음 시작은 위에서 얘기한 선착순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인글을 올린 다음에 처음 몇 명을 끊는 것이지요. 다만 실제로 뽑으려는 인원보다는 1.5~2배 정도의 수를 뽑은 다음에, 그들끼리 서바이버를 촬영합니다..? (퍼벅)

이렇게 선착순으로 끊은 인원과 함께 본 캠페인 세션을 진행하는 요일과 시간대에 시범 플레이를 운영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단순히 말로만 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사항들에 대해 구체적인 판단자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플레이 시간을 지킬 사정이 되는지, 플레이중 남과 유기적으로 잘 협력하는지, 서로 성격이 잘 맞는지 등등. 뿐만 아니라 참가자들 입장에서도 이 캠페인의 방향성이나 진행자의 스타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판단할 수 있겠죠.

이렇게 두번의 플레이가 끝난 후 시범 플레이에 참가한 지원자들끼리의 투표를 시켰습니다. 구인자인 저에게만 얘기하는 비밀 투표 형식으로, 예를 들어 지원자 A, B, C, D 중 A는 B, C와 함께하고 싶고 B는 C, D와 함께하고 싶고 하는 식으로 자신이 함께 참가하고 싶은 지원자를 각자 지명하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들 표는 단순합산으로 해서 지원자들의 순위를 매겨 높은 순서대로 잘랐습니다.

참가자들을 최종적으로 뽑은 다음에는 각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새로 주인공을 만들거나 시범 플레이의 주인공을 그대로 이어가거나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차피 캐릭터를 보고 뽑은 게 아니라 사람을 보고 뽑은 것이었으니 좀더 유기적으로 서로 이어지는 인물들을 새로 만들어도 큰 무리가 없었으니까요.

이 방법의 이점이라면 우선 단순히 개별 참가자를 뽑는 것이 아니라 팀을 뽑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한 팀으로서 얼마나 잘 기능할 수 있는지, 얼마나 상성이 좋고 어울리는지 보는 것이니까요.

같은 맥락으로 이 방법은 대체로 납득할만한 결과가 나온다고 봅니다. 잘 기능하는 팀을 뽑는다는 것은 말이 거창하지, 대충 팀이 이러이러하게 짜일 것이라는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더군요. 그리고 시범 플레이 참가 외에는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원자들도 알고 시작했기 때문에, 소위 ‘낚였다’는 느낌도 덜할 것입니다.

또 구인자의 심적 부담을 줄여준다는 것도 매력입니다. 판단의 부담을 지원자들에게 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비밀 투표 방식에 많은 꽁수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권한은 그다지 포기하지 않고 부담만 분산하는 사악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

이 방법의 한계라면 판단의 자료를 위한 시범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애당초 그다지 많은 지원자를 가지고 시작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두의 플레이에 대해서 판단이 가능한 정도로 플레이 진행을 하려면 ORPG에서는 아마 8명이 상한선이라고 보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여지는 다소 제한되는 것이지요.

비밀 투표 방식이라는 것은 한편 장점이고 불가피한 필요이면서 단점으로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납득할 수 있는 결과’라는 장점을 희석시킬 위험도 있지요. 애당초 공개 투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염두에는 둬야 할 점입니다.

이 투표 방식과 공통점이 많은 방법이자 직접적인 영향이기도 했던 것이라면 이미르니아 같은 팀에서 새로운 참가자를 받기 전에 몇주간의 관전을 요구하는 방법이라든지, 단막극을 진행하고 거기서 참가자를 뽑는 방법이라든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대를 지키는지, 플레이를 어떻게 하는지와 같은 중요한 점들을 실제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 이러한 방식들의 공통점이라고 봅니다. 그만큼 판단에 시간과 노력이 들기는 하지만요.

어쨌든 투표식은 꽤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다음에 공개구인을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사용해보고 싶습니다. 비록 시범 플레이 때는 점잖았던 참가자들이 본 플레이에서 트윌렉 모에를 부르짖는 것을 보며 ‘내숭이었구나!’ 하고 깨닫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

5. 정리하며

지금까지 제가 사용해본 구인 방식을 중심으로 RPG 팀의 구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완전한 목록은 아니지만, 팀 구성에 들어가는 판단의 요소를 생각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내거나 개발하는 시작점으로 기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군요.

6 thoughts on “RPG 팀 구성하기

  1. ddowan

    팀 구성이라기에 전투맵 담당자, 우선권(3.5였습니다.) 담달자, 리플레이어, 간식제공자 등으로 분류하려는 줄 알았습니다..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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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nefos

    왜 전 먼저 글감에 대한 생각이 없고, 남의 포스팅을 보고나서 관련해 주욱 쓸만한 글감이 떠오를까요. 언젠가 트랙백을 남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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