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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링 – 준비와 진행, 관리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막막했던 것은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속하는지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고 나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형성된 제 스타일이랄까,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1) 기획과 모집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우선 어떤 규칙과 배경을 할지 생각해서, 그리고 동시성 플레이라면 시간대를 정해서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플레이를 이때 한다’는 기반을 정해두면 취향과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요. 물론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적으로 돌리려면 경험상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더군요.
이 시점까지 캠페인 내용이나 배경의 자세한 사항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나 전형적인 진행 같은 건 막연하게 있을 수
있지만요.

(2) 제작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인공을 만듭니다. 보통 모두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세션을 하나 합니다.
이게 제가 보기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배경과 성격 등 주인공에 대한 사항, 특히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려는 로망 파악에
중점을 둡니다. 인물의 동기와 성격,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해석이 일치하는지, 이 부분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참가자 생각은 어떤지 등등 질문을 통해 인물 해석을 다듬고 조율합니다. 캠페인중 어떤 걸 보고 싶은지 하는 제안도 이때 많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3) 구상

다음, 캠페인 주요 조연과 시작 상황을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을 끌어다가
이들의 목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을 재해석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캠페인에 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설정에 새로운 해석과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아주 즐거운 과정이죠. 또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목적, 극적 지향 등을 생각해 어떤 상황에 빠지면 재밌을까 궁리하면서 그
상황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들도 설정합니다. 그런 극적 상황에 등장할 만한 배경의 세부사항이 필요하면 설정해서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준비 과정입니다.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에서도
거치는 과정이지만, 캠페인보다는 짧게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겠죠. 주인공을 만드는 과정은 좀 몰아붙이면(..) 30분 내에도 할
수 있고, 많이 몰아붙이면 5분 10분도 됩니다. (다만 거의 제가 만드는 것에 가까워져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과 인물
설정은 빨리 하려고 하면 주인공 제작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단편이라면 주인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슥슥
스쳐가는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2. 진행

(1) 원칙

플레이 들어가면 일단 시작 상황을 내놓고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봅니다.
참가자들이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다시 변화가 생기고, 저는 그 변화를 심리적 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표현합니다. 그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플레이가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참가자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플레이가 정체되고 그 반응의 연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참가자 배경에 있는 NPC 중 노는 애들(…)이 있나, 참가자 하나 이상이 좋아할 만한 극적 상황이
있나, 필요한 정보가 있나, 아니면 그냥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나 (“갑자기 닌자들이 뛰어듭니다!” “문을 열자 백작의 시체가 품 안에
쓰러집니다!”) 생각해서 다시 상황을 내놓고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2) 문제 해결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매끄럽게
나갑니다만, 어떤 때는 영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극적 상황을 생각하고 배경 세계의 공백을 채우는 준비가 부족했는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긴 나는데 영 산만하고 재미가 없다거나. 그럴 때면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좋은 생각 없느냐고 말이죠. 이런 때 억지로 계속하면 꼭 후회할 일이 나서.. 물론
저는 재미없는데 참가자는 괜찮은 때도 있고, 저는 재미있는데 참가자는 지루한 때도 있으니까 이런 데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나오는
거겠죠.

3. 관리

세션이 끝나면 되도록 플레이에 대해 얘기해보고, 특히 플레이중 문제가 된 것이
있으면 꼭 논의합니다. 다음 세션 시작하기 전에도 첫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나간 플레이의 사건을 고려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있으면 생각해보거나 의논해보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끔 중간점검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극적 진행은 서로 만족스러운지 등등.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제 대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형은 있지만, 기본 틀은 이런 식입니다.

뻔해지자

RPG인을 위한 즉흥 기법을 다루는 블로그 글 시리즈에서 Being Obvious라는 글이 크게 와닿더군요. 직역하면 ‘뻔해지기’ 정도인데, 문맥을 보면 ‘무리하지 않기’ 혹은 ‘억지 쓰지 않기’에 가깝습니다. 한 마디로 드라마틱하게 하려고, 혹은 무섭게 하려고, 혹은 웃기려고 무리하면 보통 역효과가 나고, 스스로 보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하는 게 가장 효과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억지를 부리면 티가 나게 마련이고, 별로 감동이나 재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은 모두 생각하는 게 달라서 자신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신하고 놀라운 일이 많거든요.

뻔해지라는 것은 그렇다고 일부러 지루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예를 들어 서부극에서 정의의 보안관이 자기 친구를 죽인 범죄자와 마주쳤는데 총도 뽑지 않고, 자기 정체도 드러내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범죄자가 사라지는 걸 방관하는 건 지루하고, 앞뒤 사정을 생각하면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 (의외로 RPG 참가자에게는 꽤 볼 수 있긴 합니다만…) 반면 결사의 총격전을 벌인다거나 협박을 주고받는 건 훨씬 자연스럽고, 또 재밌습니다. 갑자기 UFO가 내려서 두 사람 다 납치해서 사라지는 걸로 끝~이라면 웬만큼 특이한 서부극이 아니면 재미없고 억지스럽습니다. (근데 왠지 해보고 싶..)

글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던 게, 저는 예전에는 극적으로 꾸미려고 너무 무리를 하는 일이 많아서 애를 먹었거든요. 요즘은 그런 경향은 많이 줄었지만 저 글을 보니 그때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더욱 와닿았습니다. 요새도 가끔 빠지는 함정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뭔가 참신하고 놀라운 걸 해보자는 건 특히 진행을 할 때면 강한 유혹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보통 참가를 진행보다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참가자는 자기 인물을 생각해서 뻔한 것만 하면 되는 반면 진행자는 뭔가 대단한 걸 꾸며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행자도 그냥 뻔하고 자연스럽게 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시작해 이를 뒷받침하는 방법론과 기법을 쌓으면 진행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되고, 자유도와 극적 감동을 둘 다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는 뻔해도 남에게는 꼭 그렇지 않으니까 굳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다는 것, 뻔하고 자연스러운 전개에는 무리하게 꾸민 것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감동과 진실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편하고 재미있는 플레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7/10/27 추가 부분 (승민님 답글을 보고 보충했습니다)

뻔해지자는 것은 ‘뻔하고 전형적인 이야기를 유지하자’는 뜻은 아니며 (제 첫 답글에서 그런 인상이 들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진행자 혼자 판단으로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유지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는 ‘모든 참여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뻔하고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집단 서술의 역동성에 힘입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 친구를 죽인 남자와 술집에서 마주친 정의의 보안관이라면, 참가자가 생각하기에 그 보안관의 뻔한 반응 중에는 바로 총을 꺼내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 옆에 자리잡고 협박하는 것도 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살인자의 반응 중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뻔한 것도 마주 총을 꺼내는 것, 비웃음, 줄행랑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연스러운 진행을 하면 그게 상대에게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비교적 전형적인 이야기가 된다 하더라도 그 속에 직접 참여하는 재미는 변함없죠.

중요한 건 뻔해지는 걸 두려워하면 무리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진행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도 그런 얘긴데, 예를 들어 보안관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악당이 갑자기 ‘날 못 알아보겠어, 빌리? 내가 바로 네 친구라고!’ 하면서 악당을 죽인 다음에 스스로 죽은 척하고 서로 정체를 바꿨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뭐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다른 감동이나 개연성을 못 느끼면서 억지로 꾸미려고 하면 실패할 위험이 높습니다. 악당하고 싸우는 게 너무 뻔한 진행이라는 이유로 보안관이 갑자기 바에 뛰어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악당하고 어깨동무하고 술을 마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결국 극적 재미는 억지로 재미있게 꾸미려는 노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라면 결론입니다. ‘재미있게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나온다기보다는 관심과 공감이 가는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수 있죠. 진행자 혼자 참신해보려고 기를 쓴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전형성이나 예측성을 거부한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꾸미기보다는 인물과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상황마다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해서 뻔해져보면 어떨까요.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RPG를 하다 보면 실제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규칙도, 시나리오도, 인물 표현도 아니고 바로 실제 플레이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사회적인 놀이라는 RPG의 본질적 성격은 재미의 근원이지만, 의사소통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행동은 RPG의 재미를 망치기 쉽죠. 어떤 행동 혹은 성격 유형이 곤란한지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경험에 기반을 두지만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보고 찔리는 분은 개인적으로 문의하십..),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등 어떤 한 사람을 완전히 한 유형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문제 행동 유형은 제가 느끼기에 곤란한 순서로 나열해 보았고, 마지막은 나머지로 설명할 수 없는 포괄적인 유형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의 바른 암살자

아마 수동적 공격성이라는 성격 유형과 꽤 잘 들어맞을 것입니다. 예의 바른 암살자 유형의 특징은 우선 말 그대로 예의 바르고 조용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2번부터 나올 유형들과는 달리 일찍 진단하고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가 바르고 얌전하다 보니까 시비가 붙어서 파토나는 일도 좀처럼 없죠. 그래서 제가 곤란하게 꼽는 유형 1위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예의 바른 암살자의 문제는 바로 이 조용하고 얌전하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조용한 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반대와 비판, 거절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조용하고 얌전해진 사람들이거든요. 때문에 예의 바른 암살자는 의견을 교환하는 데 상당히 인색합니다. 의견을 내라고 해도 잘 내지 않고 (님들의 침묵 참조), 상대가 뭔가 제안하면 마지못해 대충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예의 바른 암살자는 6번 투명인간과는 달리 플레이 내용에 아예 관심을 끄거나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정당한 토의 과정에서 남과 부딪히고 제안이 거절당하는 게 싫을 뿐이죠. 같은 이유로 다른 참여자의 제안에도 별 저항 없이 동의하지만, 그건 진정한 합의가 아니라 무원칙한 회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공개적인 토의가 아닌 다른 형태로 표출할 뿐.

예의 바른 암살자는 모두가 의견을 교환하는 토의 자리가 아닌, 남이 반대하기 곤란한 순간에 기습 작전을 펼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 도중에 제안이 아닌 단정의 형태로 뭔가를 서술해버린다든가, 원하는 설정을 토론 없이 최종 결정의 형태로 끼워넣으려고 한다든가. 제안해서 거절당하기는 두렵고 그렇다고 플레이상 욕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결국 토론을 차단하는 기습적인 형태로 ‘의견’이 아닌 ‘결정’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이 예의 바른 암살자의 특징입니다. 자기 의견을 ‘나의 의견’이 아닌 ‘당연히 그래야 할 것’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것도 의견 제시를 두려워하는 예의 바른 암살자에게 볼 수 있는 행동이죠.

예의 바른 암살자 유형은 허심탄회한 의사소통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RPG의 재미를 저해하는 유형입니다. 게다가 이런 행동은 딱히 지적할 잘못은 없으면서도 (그것이야말로 예의 바른 암살자가 피하려는 바이니) 짜증과 적개심을 은근히 쌓이게 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위에 얘기한 대로 예의 바른 암살자는 기본적으로 대립을 회피하는 얌전한 성향이라 자칫하면 감정적 학대를 유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짜증이 나니까 주변에서 화풀이를 하면 예의 바른 암살자는 그런 취급에 대해 항의하지는 못하고 더욱 움츠러드는 거죠.

이런 수동적 공격성은 유달리 심한 사람도 있지만 누구든지 가끔은 보일 수 있으며, 다른 문제 행동을 보강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추가(주:동환님과 얘기한 부분입니다.): 물론 반드시 플레이 외적 토의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참여자 사이 역할 분담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역할 내에 있는 부분을 뜻대로 하는 것을 기습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보다는 일단 다른 참여자의 영역, 혹은 공동 영역이라고 인정한 부분인데 제안이나 의논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강요, 그것도 은근슬쩍 강요하려는 행동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2. 제왕 (황소고집)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해야 하는 게 이 행동 유형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의사소통과 협조를 아예 거부해버리죠. 때로는 예의 바른 암살자의 수법을 일부 사용해 의논을 슬슬 피하기도 하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벽을 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아래 4번 황야의 레인저와 마찬가지로 남하고 놀기 싫다는 뜻이니까 소원대로 해주면 됩니다. (..)

추가(주:역시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 문제 유형이란 뭐든지 정도의 문제라서, 자기 목소리가 확실하고 주장이 분명한 분은 오히려 환영입니다. 바로 자기 뜻을 꺾어버리면 밀고 당기는 재미가 없죠. 문제는 자기 의견을 절대로 꺾지 않거나 의견이 꺾이면 삐져서 뒤끝이 안 좋은 분입니다.

3. 프리마돈나 (질투쟁이)

이 유형은 뭐든지 자기가 제일이어야 합니다. 인물 능력치든 주목도든 뭐든 자신이 우선이어야 하고 다른 참여자는 그런 자신을 우러러봐야 합니다. GMPC를 굴리는 진행자일 수도 있고, 진행자를 끼고 일행 최강 PC를 만든 참가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론은 ‘너 혼자 놀아’인 겁니다.

추가: 이것 역시 억지스럽고 짜증나는 정도가 아니면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자기 인물이 돋보이는 걸 원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고, 서로 멋져 보이려고 하는 플레이야말로 활발하고 즐겁죠. 문제는 그 기준이 ‘내가 멋진 것’이 아니라 ‘남보다 멋진 것’일 때, 더 큰 문제는 ‘남을 깎아내리기’가 일상이 될 때입니다.

4. 황야의 레인저 (천상천하 유아독존)

제 경험으로는 참가자에게만 나타나는 유형인데, 이 유형은 다른 참가자하고 협력하는 데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1:1 플레이가 아닌데도 1:1 플레이를 하고 싶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주인공은 비사회적인 성격이라서 다른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든가, 습관적으로 일행에서 이탈하면서 진행자가 자기만 따라오기 기대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이죠.

3번 프리마돈나 기질도 보인다면 혼자 잘나고 싶어서 하는 짓이고 (반사회적이고 고독한 주인공을 하고 싶은 ‘개폼’이 많죠), 6번 투명인간 기질이라면 혼자 떨어져서 그냥 구경만 하고 싶어서 그러기도 합니다. 어쨌든 혼자 놀고 싶으면 혼자 놀게 해주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추가(주:역시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 역시 가끔씩 주인공이 혼자 돋보이거나 일행하고 떨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사회적인 성격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되는 건 일관되게 일행하고 따로 놀려고 할 때,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인물의 성격을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아니라 주인공을 극적으로도 분리시키는 핑계로 삼을 때입니다. 즉, ‘얘는 반사회적인 놈이라 일행하고 아예 안 놀아요’하고 ‘얘는 반사회적인 놈이라 일행이랑 갈등이 생겨요’의 차이인 거죠. 특히 반사회적인 인물은 일행하고 함께 다닐 이유가 확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5. 세기의 석학(주:승한님이 해주신 얘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도움 주신 승한님께 감사드립니다.)

지식으로 남을 누르려고 드는 유형입니다. 지식을 논의의 근거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지식으로 논의를 차단하려고 드니까 문제가 되는 유형이죠. 토의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려는 예의 바른 암살자나 제왕일 수도 있고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프리마돈나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가능성이라면 특정 배경 세계나 규칙에 집착한 나머지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그게 모두에게 더 재밌다고 해도) 견딜 수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조하지만 아는 게 많고 그 지식을 활용한다고 해서 문제 유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판정의 공평성이나 일관성에 문제가 보여서 지적할 수도 있고 (이것도 절대 자기 뜻을 안 굽히면 제왕 쪽으로 가지만요), 진행에 고려 사항으로 배경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시할 수도 있죠. 다만 ‘이러이러한 게 있으니까 저러저러한 방향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이러이러한 게 있으니까 꼭 저러저러하게 해야 해!’의 차이 정도입니다.

이는 반드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실제로 세기의 석학 중에서는 초보자에게 도움을 많이 주거나 판정이 애매할 때 중재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으므로 이 유형의 곤란도는 대체로 낮습니다. 대신 제왕 등 다른 유형 쪽으로 기울면 비약적으로 곤란해지죠.

6. 투명인간(주:동환님에게 들은 내용이 일부 들어갔습니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사람입니다. 특히 ORPG를 할 때는 이 사람이 장을 보러 갔나, 딴 짓 하나, 자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기도 하죠. (실제로 컴퓨터 앞에서 조는 일시 투명인간 증세도 있고..(…)) 때로는 정말로 플레이 내용에 관심이 없이 딴 짓 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행자는 못하지만,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는 참가자로서는 그냥 무난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로 조용한 것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테고, 정말로 구경이 재밌으면 그냥 내버려둬도 상관없을 유형이죠. 참가자 전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플레이에서 지나치게 조용하다면 참가자 대신 관객으로 은퇴(?)시키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7.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RPG는 사회적인 놀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긋날 길은 수도 없이 많으므로 한정된 유형에 그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유형은 다 집어치우고라도 정말 같이 지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극도로 무책임하다든가, 자제를 못 한다든가, 폭력적이라든가, 아니면 그냥 뭔가 파장이 안 맞는다든가. 이런 사람은 보통 나뿐만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도 다 싫어하는데 참는 일이 많죠.

문제가 누구에게 있든 RPG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이며, 소중한 시간이 들어가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재미가 없고 감정만 상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의지가 없다면 내가 나오든, 그쪽이 나오든 끝내는 게 백 배 낫습니다.

이상과 같이 RPG에서 제가 본 문제 행동 유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노우맨, 언어의 홍수 등 RPG를 통해 만난 분들에게 본 유형도 있지만, RPG하고 직접 상관은 없으므로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RPG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의 진단과 해결에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력적인 인물이란?

로키: “서로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서 밤늦게까지 얘기하면서 놀곤 했어요.”
로키: 쟈네이딘은 그립다는듯 미소짓는군요.
로키: “나이트 로어틸리아도 그런 친구가 있으셨나요?”
로어틸리아: “…아뇨.”
– 공화국의 그림자 18화

가공의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근사한 외모, 뛰어난 능력, 흥미로운 과거… 모두 매력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저런 것만으로는 그 인물에게 확 몰입하기는 좀 부족하더군요. 그냥 뭐, ‘멋지네’ 하고 끝.

제가 정말로 어떤 인물에게 마구 끌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인물이 ‘인간’으로 와닿는 순간입니다. 불완전하고, 잘못도 하고, 고민하는 인간적 틈새를 엿보는 순간 허구 속의 인물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춘 하나의 개체로 다가오죠.

이러한 인간적 허점은 제가 RPG에서 ‘성인형 인물’과 ‘소년형 인물’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성인형 인물 (성인용 인물 아님)은 능력은 뛰어나다 해도 실수도 하고 고민도 하는 등 인간적 모습을 보이므로 쉽게 극적 상황의 중심이 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인간 관계와 서사도 풍부해집니다. 참가자가 이런 인물을 하면 진행자로서는 신명이 나죠.

반면 소년형 인물은 언제나 옳아야 하며, 잘못 생각하거나, 패배하거나, 인간적 허점을 보이는 데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정확히는 그 인물을 다루는 사람이 방어적으로 되지만요.) ‘나의 완벽함에 모두 감탄해줘! (제발!)’이라는 기반에서 그다지 깊이 있는 극적 내용이 나오기는 어려운 일인지라, 소년형 인물을 극적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력도 덜하고요.

성인형 인물과 소년형 인물은 다루는 사람의 연령이라기보다는 태도의 차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짐작하실 수 있듯 대체적인 연령 분포를 보이기는 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큰 부분이라 섣부른 일반화는 금물이지만요. 또한, 극적인 플레이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소년형 인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인형 인물이 품은 고뇌와 인간적 허점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어떤 플레이를 원하느냐 하는 지향에 크게 좌우되겠죠.

또한, 인간적 고뇌가 인물의 매력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매력은커녕 짜증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소년형 인물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곤란한 ‘소녀형’ 인물이죠.(주:소녀형 인물 논의는 대화 중에 동환님이 얘기하신 부분에 많이 의존합니다.) 이 역시 성별이나 나이와 필연적인 연관성은 없는데, 고민과 감정에 빠져든 나머지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성인형 인물의 매력은 인간적 고민과 허점에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심금을 울리는 점은 성공적이든 그렇지 못하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삶에 문제는 있고, 그러한 잘못된 것을 어떻게든, 설령 방향이 잘못되었다 해도 바로잡으려는 몸부림은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니까요.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성인형 인물은 극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소녀형 인물은 그 심적 고통과 복잡한 문제들이 곧 인물의 우주가 되며, 빠져나오기는커녕 그 괴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교자 컴플렉스는 이 유형을 매력적이라기보다는 공포스럽게 만듭니다. 인물의 주관적인 감정을 절대시한 나머지 다른 참여자의 재미를 해치는 선택을 하는 것도 소녀형 인물을 잡은 참여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특징입니다.

‘인물’이라고 했지만 사실 성인형, 소년형, 소녀형 인물은 인물 자체의 유형이라기보다는 그 인물을 조종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성숙한 극적 감각을 갖춘 참여자라면 일견 소년형 혹은 소녀형인 인물을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독불장군’이라든지 ‘자기 감정 속에서만 허우적거리는 어린애’ 하는 멋진 성인형 인물로 얼마든지 탈바꿈시킬 수 있죠. 반면 그런 성숙함이 부족한 참여자는 인물의 그러한 단점을 단점으로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납니다.

매력적인 인물의 구체적인 성격, 특징, 과거 등등은 무한히 다양합니다만, 그 다양성 속에서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이들이 이렇듯 인간적 허점과 고민, 그리고 정체되지 않는 역동성을 갖추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성인형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성숙한 극적 재미에 입체적인 인물은 필수죠. RPG의 인물들은 좀 더 많이 실수하고, 고민하고, 허점을 보여도 좋지 않을까요. 극적 깊이가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규칙 – 취향을 넘어 기능으로

전에도 다루었듯 RPG계에서 규칙에 대한 논의는 민감한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분적으로는 인터넷 토론의 성격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규칙에 대한 논의는 흔히 기능이나 효용이 아닌 취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취향은 근거 제시와 반론이 들어가는 생산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감하거나, 존중하거나, 반대하거나, 싸움이 나거나 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게 아니므로 토론의 효과를 볼 수는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규칙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요? 우리가 어떤 규칙이 좋거나 나쁘다고 할 때, 그것이 개인적 취향을 넘어 객관적인 토론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려면 무엇을 다루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규칙의 목적, 혹은 기능이 아닐까 합니다. 즉 막연히 ‘좋다’ 혹은 ‘싫다’는, 처음부터 취향 얘기이거나 취향 얘기로 흐르기 쉬운 얘기가 아닌, ‘A 규칙책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스타일의 놀이에 적합하다’라거나 ‘B 규칙은 놀이 속에서 이러이러한 기능을 한다’는 식이죠.

예를 들면, ‘나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이 좋아’라든지 ‘나는 장면 신청 규칙이 싫어’는 공감이나 반감을 넘은 의미있는 찬성이나 반론을 할 수 없는 취향 표현입니다. 하지만, ‘포도원의 개들은 갈등에 새로운 수단을 도입할 때마다 추가로 주사위를 받으므로 상황이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극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데에 적합하다’라거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장면 신청 규칙은 참가자가 돌아가며 장면의 초점, 배경, 목적을 정하므로 진행자의 전통적인 장면 설정권을 상당 부분 참가자에게 이양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토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점점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되므로 오히려 새로운 주사위를 끌어들이지 못하게 위축시킨다’거나 ‘진행자도 토론과 제안을 통해 얼마든지 장면 설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의 반론도 가능해지죠.

즉, 어떤 규칙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가치 판단은 ‘어떤 목적에 좋은가? 어떤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가?’ 하는 고려가 먼저 들어가지 않으면 개인 취향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포도원의 개들은 쓸모없는 규칙이다’라고 하면 포도원의 개들을 좋아하는 사람하고 싸움나기 딱 좋지만, ‘포도원의 개들은 주사위의 내용이 “절름발이 2d10″이든 “명사수 2d10″이든 서술에 넣는 상황이 달라질 뿐 규칙상 동일한 가치를 가지므로 치밀한 전술적 시뮬레이션에는 쓸모없는 규칙이다’라고 한다면 수긍하든, 반론하든 소모적인 언쟁을 넘어선 토론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왜 규칙과 그 목적, 혹은 기능에 대해 생산적 토론이 필요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몇 가지 효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가 하려는 플레이에 적합한 규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규칙을 사용하는지는 취향이나 친숙도, 시간 사정, 경제성 등 여러 가지 고려가 들어가므로 순수히 기능성만으로 규칙을 고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자신이 하려는 플레이를 원활하게 하는 규칙을 선택할 사정이 된다면 규칙에 대한 활발한 토론은 규칙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겠지요.

두 번째,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규칙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규칙 중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혹은 더 좋게 고칠 방향이 있다면 기능 중심적 생각과 토론은 플레이에 적합한 경향성을 만들도록 규칙을 수정하는 지침이 될 수 있죠.

세 번째, 규칙을 새로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특히 규칙에 대한 토론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내가 지금 만드는 규칙이 플레이중 어떤 기능을 할 것인지, 다른 규칙과 어떤 식으로 맞물린 것일지 생각하는 것과 안 하는 건 차이가 크죠. 특히 ‘HP 규칙은 다들 쓰니까’ 하는 식의 타성에서 벗어나 HP가 실제로 플레이중 어떤 기능을 하는지, HP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지원하는지 하는 고려가 막연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효용이 클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적 취향을 넘어 (비교적) 객관적인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규칙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과 효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규칙에 대해 보다 평화적인(?) 토론을 하는 데 일조하면 좋겠습니다.

인터넷 전화로 하는 RPG에 대한 생각

RPG는 TRPG에서 시작했다지만 저는 ORPG로 시작해서 쭉 ORPG만 했기 때문에 RPG에서 ‘말’을 한다는 게 생소합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RPG.net 게시판 글 (영문)에서 인터넷 전화인 스카이피로 하는 음성 RPG 얘기를 보고 호기심이 동하더군요. (주사위는 여기서 굴리는 모양입니다.) 말로 하면 확실히 글로 쓰는 ORPG보다는 훨씬 빠를 테고, 채팅에서처럼 말이 마구 엉키고 순서가 바뀌는 일도 없겠죠. 말투나 음성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도 많을 테고요.

하지만, 솔직히 그 외에는 별다른 이점은 없어 보입니다. 표정과 손짓이 보이는 대면상황이라면 몰라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무슨 라디오 드라마 녹음하는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일단 ‘연기’로 들어가면 아무리 얼굴에 철판 깐 사람도 쑥스럽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채팅으로는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대사도 말로는 못할 게 많을 것 같고, 진행자가 자세하거나 극적인 서술을 하기도 어색~할 것 같네요. 또 혼자 있으면 상관없어도 옆에 누가 있으면 참..(..)

어쨌든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사실이고, 특히 속도가 유혹적입니다. 실제 해보면 미친 듯 웃다가 끝날 것 같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한 번쯤 해보고 싶네요. 실패한 시도라 해도 새로운 시도에서는 늘 배울 게 있으니까요.

RPG, 혹은 역동적 긴장

Wishsong님의 글과 그에 대한 성일님의 댓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트랙백 주거니 받거니, 그 두번째! (..)

RPG의 게임성을 다룰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규칙을 매개로 해서 밀고 당기는 활동에서 나오는 역동적 긴장은 RPG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동적 긴장의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진행 방식에 대한 긴장

링크한 Wishsong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예입니다. 목적의 실행에 어떤 수단을 취할 것인가, 어떤 수단이 합리적인가를 가지고 밀고 당기는 것이지요. 진행자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사이에 선택시키고 싶은데 참가자가 그 선택 상황을 벗어난다면? 참가자와 진행자 사이의 두뇌싸움이 되기 쉬우며, 가장 지적, 논리적 도전이 되는 내용의 긴장인 것 같습니다. 세션 글에서 성일님이 지적하셨듯 플레이의 병리현상이 나타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2. 극적 방향에 대한 긴장

1번이 수단에 대한 긴장이라면 이것은 목표에 대한 긴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Asdee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에서 제시한 것으로, 선택의 방향에 대해 참여자간에 밀고 당기는 것을 극적 방향에 관련한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기업을 고발해야 하는가? 도시의 경제가 무너져도? 이것은 극적이고 도덕적인 도전이며, 역동적인 긴장 중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칫하면 비생산적인 의견대립으로 흐를 수도 있고 참여자의 심리나 신념의 영역을 건드릴 위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3.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

마지막으로 대립과 상생 자체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언제 양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죠. 핏대올리고 싸우느라고 플레이가 깨져버리는 것, 서로 눈치보고 사양하느라고 아무도 즐겁지 못한 것, 이 양 극단을 피하면서 여럿이서 함께 즐거운 것 자체가 하나의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때로는 권력적인 성격의 긴장이며, 1번과 2번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개념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역동적 긴장을 이렇게 분류해 본다면 모든 것이 합의로 정해지는, 명문규칙 없는 RP (소위 ‘소꿉놀이’)와 명문규칙이 있는 RPG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절하의 의미 없이 편의상 소꿉놀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저도 소꿉놀이 좋아라 하니까요), 소꿉놀이에서는 명문으로 정해진 규칙의 매개가 없이 상생과 합의에 좀더 중점을 두고 RPG에서는 명문규칙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지해 밀고 당기는 데에 좀더 중점을 둘 뿐일지도요.

중요한 건 소꿉놀이든 RPG이든 위 세가지 역동적 긴장의 모습은 모두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합의로 정한다 해도 바로 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역동적 긴장은 계속해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귀기울이고 언제 의견을 내세우며, 언제 누가 진행을 주도해나갈 것인가. 명문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을 뿐이죠.

결국 역동적 긴장은 다층적으로 작용하며, RPG 뿐만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반에 작용하는 원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과정에서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지 못했을 방향과 생각들이 나오고, 그러면서 놀이는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진다는 것이 제 경험이죠. 그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RPG를 그렇게도 재미있는 놀이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비동시성 플레이의 가능성과 도전

최근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시험기간이 서로 달라서 근 한달간 플레이를 쉬게 된데다가, 진행자 사정으로 방학중 플레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한달 쉬는 것도 캠페인 존속이 불확실한데 ORPG에서 네 달을 쉰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캠페인을 그만둔다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제시한 방향은 플레이의 체제를 아예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가 아닌, 글로 쓰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말이죠.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안인중님의 PBS(Play by System)와 TRPG (외부 링크, 다이스&챗 로그인 필요) 시리즈, 蘭님과 나누었던 PBEM 얘기, 그리고 게시판 플레이용 규칙인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번역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얘기가 시작돼서 결국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캠페인을 수정주의 역사 규칙으로 전환해 위키상에서 플레이하기로 했습니다. 규칙 뿐만 아니라 캠페인의 시간축 자체가 달라져서, 본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 (제 생각에는 약 100년 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형식의 외전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설정 결과 세 주인공이 서로를 배신하고 후대까지 악명이 자자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죠. (…) 그리고 이 미래가 바로 외전의 시간대인 것입니다.

이렇게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에서 위키로 하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환한 것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은 캠페인 자체의 존속. 안인중님의 말씀마따나, RPG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지만 사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일주일에 3~4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채팅 플레이가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비동시성 플레이 체제로
전환하면 형태는 달라도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꾸준하게 유지될 때의 얘기지만요.

여기에 부수되는 것이 시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한번에 뭉텅이 시간을 내야 하는 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비동시성 플레이는 틈이 날 때 짬짬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또하나, 이건 비동시성 플레이 전반이라기보다는 수정주의 역사의 특징이지만 TRPG 규칙을 사용하는 비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계속해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습니다. (사실은 진행자도 없긴 합니..퍽)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도원의 개들을 잠시 게시판 플레이로 했을 때 느낀 점인데, 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규칙을 비동시성 플레이에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면 동시성 플레이의 열등한 대체물밖에 될 수가 없더군요. 제아무리 급하게 글을 올려도 채팅 기준으로는 속터지도록 느리니… 반면 수정주의 역사의 경우 일주일에 글이 3~4개만 올라와도 플레이가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므로 글로 하는 플레이에 보다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는 비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체계와 규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비동시성 플레이가 제공하는 또다른 가능성이라면 캠페인의 사건을 신선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수정주의 역사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동시성 플레이와 비동시성 플레이의 성격과도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 채팅이나 대면상황은 닥쳐오는 사건을 그때그때 ‘겪는’ 데에 적합하다면, 시간 간격을 두고 생각해 가며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사건의 의미와 진상을 ‘음미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정주의 역사라는 규칙 고유의 특성상,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캠페인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먼저 진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본 캠페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정한 방향성, 혹은 제약이 생겨 있을 테니까요. 어려움도 있겠지만 확실히 생각해볼 거리는 풍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이전부터 다소 침체되어 있었던 캠페인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점들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치일 뿐이고,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꾸준한 흥미유지가 가능할까 하는 점입니다. 동시성 플레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비동시성 플레이는 많은 경우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흥미를 잃으면 슬그머니 그만두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소재가 세 참가자분이 만든 인물인만큼 어느정도 흥미의 요소는 갖춰졌지만, 흐지부지되지 않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끌어 가는데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캠페인의 미래가 어느정도 결정된다는 어려움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새로운 자극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제약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팅 플레이로 돌아왔을 때 정해진 미래에 맞추기 위해 진행자가 치밀한 구성을 짜고 그 속에서 참가자들이 선택을 제약받을 위험도 있죠. 100년 후의 미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꼭 당대의 진상에 부합하라는 법은 없는만큼 옴쭉달싹도 못할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캠페인의 큰 줄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정도의 제약은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세번째는 선택한 매체 고유의 특징이지만, 위키라는 매체의 생소함이 있습니다. 전에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위키 편에서 다루었듯 위키는 아직 생소하고 사용편의가 떨어지는 매체에 속합니다. 그래서 게시판 플레이가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버젼 비교, RSS 내보내기, 백링크 기능, 풍부한 구문 지원 등 위키의 지나치게(..) 뛰어난 기능성 때문에 결국 위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성 부분은 자세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의 플레이에 어떻게 하면 위키라는 매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체제를 동시성 플레이인 ORPG 채팅에서 비동시성 플레이인 위키 플레이로 전환한데 대한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비동시성 플레이는 동시성 플레이의 대체물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플레이 경험만이 증명해 주겠죠. 방학이 끝난 다음에 이러한 기대와 문제의식이 얼마나 드러났는지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로빈 로스 – 참가자 유형과 그 활용

얼마 전에 로빈의 마스터링 법칙 (Robin’s Laws of Good Game Mastering)을 굉장히 재밌게 보았는데, 특히 참가자를 유형별로 구분해서 보다 재미있는 모험을 제공하는 내용이 아주 유용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유형에 경직되어 얽매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역효과일 테고, ‘이 참가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하고 생각하는 하나의 시작점으로서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책에서 구분하는 참가자 유형, 그리고 그 활용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 유형

파워 플레이어 – 경험치, 부, 마법물품, 능력 등의 보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형입니다. 주인공을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투중시형 – 신나는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유형. 파워 플레이어와 겹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지만, 전투 자체를 좋아하는 것과 인물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동기라는 점에서 구분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두가지 유형에 다 속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니까요)

전술가 – 합리적 수단과 계획을 통한 문제해결을 가장 좋아하는 유형.

전문가 – 특정 인물 유형을 아주 좋아해서 캠페인이나 배경에 무관하게 그 범주에 속하는 인물만 하려고 하는 유형. (예를 들어 닌자) 누구든지 좋아하는 인물 유형은 있지만, 전문가 성격이 강할수록 자기 선호 인물을 하는 것이 역할놀이를 하는 목적이라, 선호 인물을 할 수 없다면 캠페인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자기 선호 유형에 가까운 인물을 만들려고 합니다.

배우 – 인물 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유형. 자기 주인공답게 행동하는 것,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야기꾼 – 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데서 가장 재미를 느끼는 유형. 극적 재미를 위해 놀이의 다른 많은 요소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확연히 속하는 유형.

무심한 참가자 – RPG에 큰 관심없이 친구따라 강남온 유형. 자신이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모두와 함께 뭔가를 하고 있다는데 중점을 둡니다. 소극적인 참가자를 모두 이 유형에 넣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극적 참가자의 동기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듯. 어쨌든 책의 조언은 이런 유형에게는 연기나 주인공 자리를 강요해서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것인데, 그점이 꽤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RPG의 현실상 보기 어려운 유형이기는 합니다.

물론 이들 유형은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생각의 시작점일 뿐이고, 많은 참가자들은 두가지 이상의 유형에 속하거나 여기 나열되지 않는 유형에 속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탐험가 등)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유형 구분이 아니라 각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참가자 유형의 활용

참가자 유형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 모험에서 참가자의 동기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가자 유형보다는 오히려 참가자 동기라든지 참가자 욕구라는 말이 어울릴지도요.

예를 들어 파워 플레이어는 경험치나 보물, 새로운 힘 등을 얻을 수 있는 모험이 재밌을 것이며, 전투중시형은 흥분되는 전투 기회가 없으면 지루할지도 모릅니다. 전술가는 제 아무리 극적인 얘기라도 합리적 문제해결과 계획수립 기회가 없었다면 허무할 것이며, 전문가는 자기 선호유형의 특징이 살아날 기회가 없었다면 별 재미가 없겠죠. 배우는 자기 인물의 갈등과 성격이 충분히 드러났는지, 이야기꾼은 전체 서술의 흐름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볼 것입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모험을 만든 후에는 항상 각 참가자별로 그 참가자의 동기가 충족될 요소가 있었는지 확인해볼 것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주를 구출하는 모험이라면 팀의 파워 플레이어를 위한 마법물품은 충분히 있는지, 전술가를 위한 문제해결의 기회는 있는지 등등. 이렇게 하면 기존 시나리오를 사용해도 참가자들에 맞게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가자 욕구에 맞는 모험을 만들어라…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얘기이면서도 상당히 좋은 조언입니다. 특히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작점으로서의 유형은 꽤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극적인 참가자의 문제

RPG는 무엇인가를 ‘하는’ 놀이인만큼 참가자가 적극적인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오늘 한 언더월드 3기 21화 플레이에서 시하야님의 관전 후 지적을 듣고, 때로는 적극적인 태도의 참가자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적극성에 편중이 생겼을 때나 과도할 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요.

적극성의 편중과 과도함이 유발할 수 있는 문제는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일부 참가자만 적극적일 경우 소극적 참가자를 더 소극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지나치게 대사량이 많을 경우 특히 ORPG에서는 진행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소극적인 참가자의 소극화 가중. 이것은 적극성의 편중에 의해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사실 모든 참가자가 똑같이 적극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서 재미를 느낄테고, 어떤 사람은 지켜보면서 간간히만 얘기해도 재미를 느낄지 모르니까요. 예전에 참가자 유형에 대한 글에서 언급했듯, 참가자의 욕구에 따라서는 적극성을 지나치게 유도하는 것은 오히려 그 참가자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문제삼는 이유는, 한두명의 참가자가 너무 적극적이면 나머지 참가자들 (특히 원래 소극적이었다면)은 자신들이 행동할 이유나 기회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가 뭔가 상황을 제시해도 ‘저 참가자가 반응하겠지, 뭐’라고 생각하고 가만 있는다거나, 다른 참가자가 열심히 말하는 통에 개입할 틈이 없다거나요.

게다가 이러한 과정은 악순환이 되기 쉽습니다. 적극적 참가자는 좀 가만 있으려 해도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이 없으면 ‘앗, 큰일났다!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하고 나서게 되고, 그러면 또 소극적 참가자들은 ‘음…이번에도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상황이 심해지면 결국 플레이는 적극적 참가자들만 계속 반응하고 행동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고 말지요. 이 현상이 심해지면 예전에 다루었던 편애와도 맞닿을 수 있다고 봅니다.

두번째로, TRPG에서도 어느정도 그렇겠지만 특히 ORPG에서는 진행자의 ‘버퍼링’ 문제가 있습니다. 타자로 치다 보면 정보량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고, 치는 동안에도 참가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이미 상황이 변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이나 선언이 많으면 진행자가 처리해야 할 분량은 더 늘어나고, 그 결과 진행은 느려집니다. 이것은 적극성이 지나치거나 시간적으로 집중되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활발한 선언과 질문 자체를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RPG는 참가자의 선택과 판단 위에 성립하며, 이들 요소를 부정하는 것은 취미로서의 RPG를 부정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참가자로부터 들어오는 정보가 한꺼번에 몰리면 진행자로서는 처리에 지연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참가자의 입력을 어느정도 분산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때로 적극적인 참가자는 그 사실을 잊고 진행자에게 너무 빨리, 많은 대응거리를 주어서 본의아니게 진행을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 보았지만, 특정한 상황 (편중됨, 혹은 과도함)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적극적 참가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적극적 참가는 전개를 예상 외의 방향으로 이끌고, 게임내의 결과를 통해 진행자와 다른 참가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으니까요. 이러한 이점을 취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적극적 참가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참가의 적극성을 다른 참가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한가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인공에게 주목을 끄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일행에게도 주목이 돌아가도록 신경쓰는 것이죠. 다른 주인공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사건을 다른 주인공과 연관짓거나 (‘그리고 보니 그 용의자 갑돌씨하고 동향 사람이네?’), 다른 주인공의 대사나 행등에 적극 대응하는 식으로 말이죠. 가장 능동적인 참가자들은 진행자 경력 또한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이러한 역할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둘째, 진행자가 할 수 있는 일로는 무대 조명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하야님이 얘기하신 건데, ORPG에서는 ‘이번 장면은 을순이 처리해 주세요’ 하는 식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지정도 좋아 보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종의 대화권 설정 의미도 있기 때문에 대사의 양과 흐름 또한 제어할 수 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같은 경우는 화면 존재감과 장면 신청 규칙을 통해 무대 조명 분배를 규칙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셋째, 역시 적극적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일로 가장 쉬우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조금 기다리는 것입니다. 진행자가 한참 장면 첫머리 묘사를 치고 있을 때 아무리 떠오르는 질문이 많아도 다 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 어떤 대사에 다른 참가자들이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진행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다른 참가자들의 적극성을 유도하는 것 외에도, 조금 기다리는 것을 습관화하면 훨씬 다듬어진 대사와 선언이 나온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참가자의 적극성이 편중되거나 과도할 때 유발할 수 있는 문제와 그 대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참가자의 적극성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RPG는 뭔가를 ‘하는’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RPG는 동시에 뭔가를 ‘같이 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보다 대사량이 월등히 많은 참가자라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RPG를 모두와 함께 하고 있는가, 아니면 혼자서만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