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와 도덕적 판단

20세기 말에 일어났던 르완다 대학살에서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 있다면 아마 르완다 주둔 UN 평화유지군 책임자였던 캐나다의 로메오 달레르 장군일 것입니다. 학살을 막기 위해 목청이 터지게 요구했던 병력지원과 보급지원, 심지어는 후투족의 무장해제 허가까지 거부당한 그는 결국 철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르완다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탄창조차 부족한 열악한 상황에서 5백여명의 적은 인원으로 어떻게든 2만명의 투치 민간인을 구해낼 수 있었죠. 그러고서도 죽어간 80만명에서 110만여명에 비하면 너무 적다고 자책한 사람. 한 나라에서 제일 높은 훈장을 받은 항명 군인이 몇명이나 될까요..(…)

그런 달레르가 휘하 장교들에게 어려운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이었죠.

학살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 들어갔다. 피투성이 시체들이 구덩이를 메우고 있는데, 시체 속에 파묻힌 몇 안되는 여자와 아이 생존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지역의 HIV 감염율은 30%에 달하는데 시체구덩이는 온통 유혈이 낭자하고, 보급 부족 때문에 장갑이고 뭐고 어떤 보호구도 없다. 시체구덩이에서 생존자들을 구하는가? 아니면 그냥 떠나는가?

평화유지군을 구성한 26개국 중 23개국 출신의 장교들이 외면하고 그냥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가나, 캐나다, 네덜란드 3개국의 장교들은 다행히도(?)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 상황에 마주했었고, 앗하는 사이 이미 부하 병사들이 시체구덩이에 뛰어들어 구조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극한상황은 그 상황에 처한 모든 인간에게 순간순간 도덕적 판단을 요구합니다. 너무나 많은 도덕률들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해도 잘못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인 거죠. 살인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부족 공동체에 복종해야 한다. 위험에 처한 민간인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부하들의 목숨을 내버릴 수는 없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나 선택해야 한다면 한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구하는 쪽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부당한 명령도 따라야 하는가.

이쯤 되면 르완다에서 귀국한 후 달레르 장군이 우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술에 취한채 공원 벤치 밑에서 잠든 모습으로 발견된 이유를 이해할만도 합니다. (제보를 받고 달려갔지만 구급차만 부르고 사진은 한장도 찍지 않은 사진사가 멋졌죠) 세상이 미쳐버렸을 때 모든 도덕적 판단은 결국 부도덕한 판단이 되어 버리고, 선택한 길만큼이나 선택하지 않은 길이 마음을 갈갈이 찢는 고통으로 다가올 테니까요. 달레르 장군은 무너져가던 삶을 가까스레 회복하고 현재는 캐나다 상원의원이자 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르완다에서 구하지 못했던 목숨들은 사무치는 회한으로 남아 있다고 회고합니다.

비단 달레르 장군 뿐만 아니라 학살과 같은 비극이 벌어진 지역에 있었던 평화유지군이나 자원봉사자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하는 비율은 상당히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각각 15~20%, 5~10%였던가 했던 걸로 기억..) 이타심과 인도주의마저 양날의 칼이 되어 자신을 찔러오는 잔인한 역설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붙들 수 있을까요.

물론 즐겁기 위해 하는 RPG에서 언제나 민족 청소 같은 무지막지한 상황을 설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정도로 무거운 이야기도 때로는 정신적 정화(淨化)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삶 속에서 크든 작든 마주하는 도덕적 판단의 극적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취향에 따라 넣을 수도 있고 넣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 삶을 어느정도라도 진실되게 표현하다 보면 도덕적 딜레마는 필연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해서…

도덕적 딜레마의 적극적 구현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도덕적 판단의 어려움을 즐기기로 하는 합의. 특히 위에 나오는 르완다의 예처럼 무거운 이야기일수록 도덕적 딜레마는 참가자에게마저 괴로운 일일 수 있고, 이러한 딜레마를 RPG의 일부로 즐기자는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 없이 참가자는 부당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매우 부당한 상황이지요. 사전합의 없이 이런 상황을 제시하는 것은 반칙에 가까우므로 가능하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진행자의 반칙은 아껴야 재밌거든요! (퍽)

두번째, 두가지 이상의 도덕률의 존재. 인간은 단수가 아니기 때문에 (드래곤 라자!) 누구든 수많은 역할을 맡고 있고, 그 역할에 따른 의무가 있습니다 (중학교 교과서!). 간단한 예로는 아들로서의 역할과 남편으로서의 역할. 어머니와 아내의 고부갈등 속에서 남편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규모를 키우면 양심적 인간으로서의 ‘역할’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있겠죠. 국가가 자기 양심에 충돌하는 행위를 할 때 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세번째, 도덕률 사이의 충돌. 정확히는 그 충돌의 정도입니다. 두가지를 조화할 여지가 있는가, 아니면 불가능한가. 아들로서의 역할과 남편으로서의 역할은 타협의 여지가 존재합니다. 반면 국가의 범죄에 동참하면서 양심을 따르기는 좀더 어렵겠죠. 충돌을 해소하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플레이 분위기는 무거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성인용이라는 말의 일반적인 내포 의미와는 달리 제 생각에는 도덕적 갈등을 유발하는 플레이야말로 성인다운 RPG가 아닌가 합니다. 오히려 외설이 나오긴 하는데 성인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가슴’ 소리만 나와도 낄낄거리는 꼬마애들 수준 플레이도 본지라..(먼산) 어쨌든 성인이라고 해서 반드시 심각무쌍한 RPG를 할 필요는 없지만, 세상의 어둠을 알게 될수록 비극을 통한 정화작용이 필요해질지도요. 책을 통해서든, 영화를 통해서든, 대화를 통해서든, RPG를 통해서든. 삶이라는, 도덕적 갈등의 거대한 연속을 견뎌내기 위해.

여담으로 위의 상황에서는 저도 시체구덩이를 외면하고 마을을 떠날 것을 명령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이라면 몰라도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부하들의 목숨을 그런 식으로 무릅쓸 수는 없으니까요.

2 thoughts on “RPG와 도덕적 판단

  1. Tealeaf

    D&D 시리즈의 팰러딘을 플레이 할때나,
    WOD 뱀파이어나 웨어울프를 볼 때 저런 선택을 기대했었는데,
    전자는 파티의 훼방꾼 밖에 안되고,
    후자의 리플레이에서는 ‘성인’이라는 딱지만 붙은 외설 혹은 고어만을 접해서 실망했고, 실망하고 있습니다.
    팀 운이나, 제가 미천했거나,
    접하게 된 리플레이들이 우연히 다 저런거였거나,
    혹은 원래 그렇게 하라고 만든 규칙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암튼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Reply
    1. 로키

      D&D도 WoD도 많은 도덕적 갈등의 소지를 품은 규칙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도덕적 갈등으로 인한 극적 상황을 유도하는 규칙은 없는 것 같더군요. 그러다 보니까 플레이도 그런 초점을 갖기는 어려운 느낌입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