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혹은 역동적 긴장

Wishsong님의 글과 그에 대한 성일님의 댓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트랙백 주거니 받거니, 그 두번째! (..)

RPG의 게임성을 다룰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규칙을 매개로 해서 밀고 당기는 활동에서 나오는 역동적 긴장은 RPG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동적 긴장의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진행 방식에 대한 긴장

링크한 Wishsong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예입니다. 목적의 실행에 어떤 수단을 취할 것인가, 어떤 수단이 합리적인가를 가지고 밀고 당기는 것이지요. 진행자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사이에 선택시키고 싶은데 참가자가 그 선택 상황을 벗어난다면? 참가자와 진행자 사이의 두뇌싸움이 되기 쉬우며, 가장 지적, 논리적 도전이 되는 내용의 긴장인 것 같습니다. 세션 글에서 성일님이 지적하셨듯 플레이의 병리현상이 나타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2. 극적 방향에 대한 긴장

1번이 수단에 대한 긴장이라면 이것은 목표에 대한 긴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Asdee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에서 제시한 것으로, 선택의 방향에 대해 참여자간에 밀고 당기는 것을 극적 방향에 관련한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기업을 고발해야 하는가? 도시의 경제가 무너져도? 이것은 극적이고 도덕적인 도전이며, 역동적인 긴장 중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칫하면 비생산적인 의견대립으로 흐를 수도 있고 참여자의 심리나 신념의 영역을 건드릴 위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3.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

마지막으로 대립과 상생 자체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언제 양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죠. 핏대올리고 싸우느라고 플레이가 깨져버리는 것, 서로 눈치보고 사양하느라고 아무도 즐겁지 못한 것, 이 양 극단을 피하면서 여럿이서 함께 즐거운 것 자체가 하나의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때로는 권력적인 성격의 긴장이며, 1번과 2번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개념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역동적 긴장을 이렇게 분류해 본다면 모든 것이 합의로 정해지는, 명문규칙 없는 RP (소위 ‘소꿉놀이’)와 명문규칙이 있는 RPG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절하의 의미 없이 편의상 소꿉놀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저도 소꿉놀이 좋아라 하니까요), 소꿉놀이에서는 명문으로 정해진 규칙의 매개가 없이 상생과 합의에 좀더 중점을 두고 RPG에서는 명문규칙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지해 밀고 당기는 데에 좀더 중점을 둘 뿐일지도요.

중요한 건 소꿉놀이든 RPG이든 위 세가지 역동적 긴장의 모습은 모두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합의로 정한다 해도 바로 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역동적 긴장은 계속해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귀기울이고 언제 의견을 내세우며, 언제 누가 진행을 주도해나갈 것인가. 명문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을 뿐이죠.

결국 역동적 긴장은 다층적으로 작용하며, RPG 뿐만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반에 작용하는 원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과정에서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지 못했을 방향과 생각들이 나오고, 그러면서 놀이는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진다는 것이 제 경험이죠. 그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RPG를 그렇게도 재미있는 놀이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3 thoughts on “RPG, 혹은 역동적 긴장

  1. Pingback: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1. 로키

      인용은 출처만 밝히시면 자유죠~ 일반적으로 그렇고, 이 블로그 저작권 자체가 CC(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이기도 하고요. ^^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