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마스터링

부담 없는 RPG를 위하여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6:28~9

이전에 우리의 미래에 RPG는 있는지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이후 취직이나 진학 등의 이유로 RPG를 중지하거나 줄이는 분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봤습니다. 업무와 가족에 대한 책임 등이 무거워지면서 앞으로 그런 시간적 부담은 심해지기만 하겠죠. 그래서 RPG를 부담 없이, 그러면서도 알차게 즐기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1. 진행자의 부담을 줄인다

RPG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아마도 진행일 것입니다. 특히 진행자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진행자 중심성이 클수록 말이죠. 이러한 부담은 진행자 수와 플레이 기회가 적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난 진행할 실력이 안 돼’라는 생각으로 진행을 시작하지 않는 RPG인이 많고, 또 진행을 해봤더라도 충분히 준비하고 신경쓸 여유가 없을 때는 기피하게 됩니다.

1.1. 준비 작업

진행자의 부담을 더는 첫 번째 방법은 세계 설정, 시나리오와 인물 제작 등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작업을 참가자들이 분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준비량을 축소하는 것이겠죠. 전자는 설정이나 시나리오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션에 필요한 준비량 자체를 줄이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준비 작업을 분담하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고 방법론을 일반화하기 어려우므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시간적 부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의문입니다. 진행자의 부담이 줄기는 하지만 참가자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늘고, 또 방법에 따라서는 의논과 조율에 많은 노력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두 번째 방법, 즉 준비량 자체를 줄이는 방향이 근원적으로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고 봅니다. 이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시간을 잡아먹는 작업별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 부분에서는 시나리오가 필요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에서 진행자는 첫 장면의 시작 부분만 준비하면 되고 그다음부터는 참가자의 장면 신청을 통해 서로 의논하고 발상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쳐 장면을 구성합니다. 이건 규칙이라기보다는 어느 규칙에든 사용할 수 있는 기법에 가깝긴 하지만요.

역시 시나리오가 필요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규칙으로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죄의 진행’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오만, 불의, 죄 하는 식으로 한 마을이 잘못된 경위와 정도를 정한 후, 각 주요 조연이 주인공인 신의 파수견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파수견이 마을에 오지 않는다면 벌어질 귀결 등을 정해놓고 주인공을 그 마을에 진입시키는 것입니다.

이 죄의 진행은 극적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 주인공을 떨구어서 온갖 사건을 유도하면서도 사건의 경과를 미리 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적은 준비로 극적 재미와 시나리오 중심 진행보다 높은 자유도 등 고효율을 내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역시 규칙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어서, 승한님의 M&M 캠페인에서도 이 방법을 이용하는 걸로 압니다.[footnote]로키는 지금 포도원의 개들 캠페인 돌리긴 하지만 게을러서 죄의 진행표마저 안 하고 있긴 합니..(자랑이다)[/footnote]

기법보다는 규칙으로 시나리오 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예로는 폴라리스 (Polaris)가 있습니다. 폴라리스는 진행자 없이 주인공을 조종하고 편드는 ‘마음’과 주인공의 시련과 적수를 맡은 ‘후회’의 대립과 교섭을 통해 극을 끌어나갑니다. 따라서 시나리오가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폴라리스는 좀 있다 얘기할 진행자 없는 RPG의 예이기도 합니다.

인물 제작 부분에서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조연은 주인공처럼 완전히 만들지 않고 필요한 기능이나 눈에 띄는 부분만 대충 넣는 방법을 많은 진행자가 사용하지요. 포도원의 개들은 시트를 미리 무작위로 만들어 두었다가 조연이 판정에 참여하면 시트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조연을 제작하는 수고를 덜고 있습니다.[footnote]이 방법은 조연이 주연에 비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도 방지하지요. 그래도 부상을 입힐 만한 수치는 또 나온다는 게 묘미. (흐흐)[/footnote]

또 떼로 덤비는 건달이라든지 하는 덜 중요한 조연은 간단한 제작 규칙을 사용하는 7번째 바다 (7th Sea) 같은 예도 있습니다. 아예 조연은 규칙상 수치 자체가 없어서 이름과 설정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규칙도 있지요. 안방극장 대모험, 폴라리스, 트롤베이브 (Trollbabe) 등이 그 예이지요. 이렇게 하면 준비 시간을 덜 뿐만 아니라 규칙 처리도 간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설정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는 역시 대강의 설정만 만들어 놓거나 차용하고, 플레이해가면서 채워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합니다. 저는 대강의 분위기만 있는 상태에서 세부적인 것은 그때그때 채워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 외에 화륜전설 (The Burning Wheel)의 인맥 규칙 하는 식으로 규칙을 통해 참가자가 직접 배경에 영향을 주는 것도 참가자에게 주도권을 주는 동시에 진행자의 설정 부담을 덜어주겠죠.

1.2. 세션 진행

준비 다음으로 진행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면 세션 진행 그 자체겠죠. 세션 진행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크게 준비 작업과 진행 권한 분담이 있습니다. 준비에 대한 것은 위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권한 분담 쪽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권한 분담을 정형화하지 않아도 참가자의 제안과 의견을 활발하게 받는 의사소통을 통해 진행 권한을 분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진행과 플레이 전반에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권한 분담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행자 혼자 진행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도 진행에 대한 권리와 부담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의사소통만으로는 진행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덜기는 부족합니다. 무엇이든 의사소통으로 조정할
수는 있지만, 진행 중 의사소통의 필요성이란 해당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일차적인 문제 이후의 얘기니까요. 어떤 극적 요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는 한 그 요소에 대한 부담 내지는 책임 역시 진행자의 몫입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으로 권한을 분담하는 방법은 권한을 규칙으로써 나누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안방극장 대모험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장면 신청 규칙 때문에 진행자가 다음 장면에 무엇을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제안을 던지거나 발상을 교환하는 의사소통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규칙에서도 권장합니다만, 다음에 어떤 장면을 할까 생각해내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참가자의 권한이며 따라서 부담입니다.

진행 권한 분담의 다른 예로 폴라리스는 주인공, 주인공의 시련과 적, 정서적 관계에 있는 인물, 권위적 관계가 있는 인물 등으로 서술 권한을 분배하므로 진행자 없는 규칙으로 구분합니다. 진행자란 결국 특정 요소 (배경, 조연 등)에 대한 서술권을 분배받은 역할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니까요. 따라서 진행 권한을 분배하기에 따라서는 진행자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 없는 RPG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약간 더 다루겠습니다.

1.3. 팀 조직

진행자의 기본적 역할은 팀의 리더 역할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만, 진행자가 캠페인 기획자이자 리더가 되는 현상은 흔합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죠. 진행자가 보통 플레이에 가장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니까 결정권도 크다든가, 일반적으로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유형이 진행자를 많이 하므로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든가.

이런 부분에서 진행자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팀원들이 서로 의논해서 팀의 행정적 역할을 분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에 모두 모일 수 있나 전화로 확인하는 연락책이라든가, 캠페인 사이트 유지 담당이라든가, 각종 공고 담당이라든가. 어쨌든 진행자가 플레이 외에서까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은 흔하긴 하되 필연은 아니고, 다같이 하는 놀이니까요.

1.4. 진행자 없는 RPG

지금까지 길게 다루었듯 전통적 진행자 역할에는 준비, 진행, 팀 관리 등 플레이 내외적으로 따라붙는 부담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RPG에 필연적으로 진행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 (The Shab al-Hiri Roach), 폴라리스,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등 진행자 없는 RPG도 꽤 있지요. 이러한 놀이에서는 플레이 내적으로는 권한과 부담이 비등비등하며, 플레이 외적으로도 ‘진행자니까’ 어느 한 사람에게 책임이 몰리는 대신 좀 더 다양한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책임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2. 규칙에 대한 부담 줄이기

RPG에서 또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규칙에 대한 부분입니다. 규칙을 배우고, 적용하고, 해석하는 작업 역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 있으니까요. 이는 위에서 얘기한 준비나 진행의 어려움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규칙에 대한 특유한 내용도 있으므로 따로 떼어서 얘기하겠습니다.

2.1. 규칙 학습

규칙을 읽고 익히는 수고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순한 경량 규칙을 익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은 수의 규칙을 익혀 폭넓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 접근은 다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경량 규칙은 일단 단일 규칙을 익히는 데 노력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 규칙이 없다면 일단 효율이 떨어집니다. 이건 다른 것보다 규칙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요. 예를 들어 고도의 전술적 전투나 낙상을 다루는 규칙이 필요한데 폴라리스나 안방극장 대모험을 선택하는 건 아무리 배울 때는 쉽다 해도 결국 비효율적이겠죠.

또한, 경량 규칙에 따라서는 다루는 극적 상황이 아주 좁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나 파멸로 끝나는 비극을 다루며,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는 허영과 권력의 부조리, 포도원의 개들은 심판과 그 심판에 대한 대가를 다룹니다. 따라서 다양한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더 많은 수의 규칙을 익혀야 할 수도 있으므로 복잡한 규칙책 하나를 익히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 수도 있습니다.

적은 수의, 예를 들어 하나의 규칙을 익혀 폭넓게 사용하는 것은 겁스 (GURPS)와 같은 범용 규칙이나 d20 혹은 유니시스템 (Unisystem)처럼 다양한 장르 규칙의 기틀이 되는 규칙을 익히는 것을 가리킵니다.(주:반대로는 플레이하는 장르와 배경을 제약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RPG에 질리는 지름길이라는 전제 하에 일단 배제합니다. 물론 반론은 환영입니다.) 이러한 범용 혹은 준범용 규칙은 하나를 익혀서 그대로, 혹은 약간씩 변형을 가해서 다양한 장르와 배경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입니다.

반면 범용성이란 종종 불완전한 약속이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습니다. 비록 모든 장르와 배경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의 범용성을 갖추었다 해도 플레이 스타일까지 범용적이기는 어렵습니다. 겁스와 새비지 월드 (Savage Worlds), 트라이스탯 (Tri-Stat)이 모두 범용성을 표방하지만 기본 플레이 스타일은 사뭇 다르듯이요. 플레이 분위기는 규칙에 큰 영향을 받으므로 결국 규칙을 취사선택하거나 고치게 되고, 그렇게 걸러내고 고치는 부분이 많을 수록 시간과 노력도 더 들겠지요.

2.2. 규칙 적용과 해석

규칙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부담은 크게 주인공 제작과 플레이중 규칙 해석과 판정 문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크게 단순한 규칙 사용, 예시와 템플릿 제공, 그리고 낮은 파워 레벨 제작 등이 부담을 더는 방법이 되리라고 봅니다.(주:낮은 파워 레벨에 대한 것은 아사히라군에게 힌트를 얻었습니다.) 해석과 판정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는 단순한 규칙 사용, 규칙의 선택적 사용, 규칙 적용상 역할 분배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할 분배의 예라면 우선권을 한 사람이 맡아서 관리한다든지, 계산을 보조한다든지 하는 예가 있겠죠. 이것은 진행자의 진행상 부담을 덜어주는 것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3. 단편과 단기 플레이

마지막으로, 장기 캠페인의 기본 가정을 (내지는 신화를) 버리고 단편과 단기 플레이 중심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도 바쁘고 변화가 잦은 생활에 적응하고 플레이 부담을 더는 한 방법입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꾸 끊어지는 장기 캠페인보다는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가 더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하고, 또 캠페인을 계속할 사정은 돼도 캠페인이 길어질 수록 특히 진행자의 부담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니까요.

이상과 같이 부담을 덜면서 재미있게 RPG를 할 수 있는 방법과 고려사항을 적어보았습니다. 어쩌면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당장 이 모든 방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당신은 더 이상 RPG를 계속할 수 없다!!!’ 같은 얼빠진 소리는 아니고, 자신에게 효용이 있어 보이는 방법을 골라서 실천해보면 한결 편한 플레이가 되지 않을까, 혹은 생활과 RPG를 조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해서 써본 글입니다. 폭넓게 도움이 되는 글이자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더 바랄 바가 없겠지요.

관계도 – 효용과 한계

월요일부터 플레이 시작하는 국가의 건설 플레이 바이 위키에 앞서서 이것저것 준비가 진행 중입니다. 이번에 준비한 것 중 하나는 연구 대상 사이 관계도였는데, 저번 글하고는 또 다르게 이런저런 쓰임이 보이더라고요. 반면 한계도 있었지만요. 다음은 글리피로 만들어본 국가의 건설 연구 대상 관계도입니다. (승한님이 좀 더 재밌게 설명까지 붙이신 관계도는 여기에.)

국가의 건설 관계도

국가의 건설 관계도


우선 인간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규칙상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작 연구 자금이 연구대상 사이 인간관계의 수에 의존하므로, 연구 대상이 무려 아홉이나 되는 대형 설정에서는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연구 자금 계산조차 어려웠습니다. 반면 관계도는 그려놓고 화살표만 세면 되니까요. (“검은 화살표 5개에 빨간 화살표 7개는 에…”)

그런 이유로 시작해서 만들고 고치다 보니까 인물 관계를 시각화하는 효용이 보이더군요. 무엇보다 화살표를 그리는 편의상 관계가 밀접한 인물들을 가까이 붙이고 화살표가 많은 인물일수록 중심에 놓다 보니 인물 사이 관계라는 추상이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관계도를 보면 관계도 중심에 가까운 인물일수록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주변부에 있을수록 관계나 이야기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인간관계의 구역이나 블록에 의미가 생기더군요. 돈울프-진 뤠이신-자비에르의 ‘건국 공신 클럽’이라든지 칼라인-마그누스-세렌의 우정 등.

한편으로는 시각화라는 목적상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단순화가 필요해져서, 관계도로는 인간관계의 모든 함의를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너무 복잡해지면 시각화의 의미 자체가 희석되니까요. (다닐과 이렌가르드의 관계에는 연심 외에 충성심과 우정도 있는 등.) 그래서 관계도는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그 대략을 단순하고 굵게 표현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관계도를 작성하면서 그 효용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것도 시각화의 효용성과 한계를 생각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관계도는 관계와 감정이라는 추상을 구체화하고 단순화해서 시각적, 공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효용은 있지만, 시각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복잡한 함의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들고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 말입..(퍽)

마스터링 – 준비와 진행, 관리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막막했던 것은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속하는지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고 나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형성된 제 스타일이랄까,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1) 기획과 모집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우선 어떤 규칙과 배경을 할지 생각해서, 그리고 동시성 플레이라면 시간대를 정해서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플레이를 이때 한다’는 기반을 정해두면 취향과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요. 물론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적으로 돌리려면 경험상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더군요.
이 시점까지 캠페인 내용이나 배경의 자세한 사항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나 전형적인 진행 같은 건 막연하게 있을 수
있지만요.

(2) 제작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인공을 만듭니다. 보통 모두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세션을 하나 합니다.
이게 제가 보기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배경과 성격 등 주인공에 대한 사항, 특히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려는 로망 파악에
중점을 둡니다. 인물의 동기와 성격,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해석이 일치하는지, 이 부분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참가자 생각은 어떤지 등등 질문을 통해 인물 해석을 다듬고 조율합니다. 캠페인중 어떤 걸 보고 싶은지 하는 제안도 이때 많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3) 구상

다음, 캠페인 주요 조연과 시작 상황을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을 끌어다가
이들의 목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을 재해석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캠페인에 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설정에 새로운 해석과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아주 즐거운 과정이죠. 또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목적, 극적 지향 등을 생각해 어떤 상황에 빠지면 재밌을까 궁리하면서 그
상황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들도 설정합니다. 그런 극적 상황에 등장할 만한 배경의 세부사항이 필요하면 설정해서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준비 과정입니다.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에서도
거치는 과정이지만, 캠페인보다는 짧게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겠죠. 주인공을 만드는 과정은 좀 몰아붙이면(..) 30분 내에도 할
수 있고, 많이 몰아붙이면 5분 10분도 됩니다. (다만 거의 제가 만드는 것에 가까워져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과 인물
설정은 빨리 하려고 하면 주인공 제작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단편이라면 주인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슥슥
스쳐가는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2. 진행

(1) 원칙

플레이 들어가면 일단 시작 상황을 내놓고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봅니다.
참가자들이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다시 변화가 생기고, 저는 그 변화를 심리적 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표현합니다. 그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플레이가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참가자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플레이가 정체되고 그 반응의 연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참가자 배경에 있는 NPC 중 노는 애들(…)이 있나, 참가자 하나 이상이 좋아할 만한 극적 상황이
있나, 필요한 정보가 있나, 아니면 그냥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나 (“갑자기 닌자들이 뛰어듭니다!” “문을 열자 백작의 시체가 품 안에
쓰러집니다!”) 생각해서 다시 상황을 내놓고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2) 문제 해결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매끄럽게
나갑니다만, 어떤 때는 영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극적 상황을 생각하고 배경 세계의 공백을 채우는 준비가 부족했는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긴 나는데 영 산만하고 재미가 없다거나. 그럴 때면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좋은 생각 없느냐고 말이죠. 이런 때 억지로 계속하면 꼭 후회할 일이 나서.. 물론
저는 재미없는데 참가자는 괜찮은 때도 있고, 저는 재미있는데 참가자는 지루한 때도 있으니까 이런 데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나오는
거겠죠.

3. 관리

세션이 끝나면 되도록 플레이에 대해 얘기해보고, 특히 플레이중 문제가 된 것이
있으면 꼭 논의합니다. 다음 세션 시작하기 전에도 첫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나간 플레이의 사건을 고려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있으면 생각해보거나 의논해보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끔 중간점검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극적 진행은 서로 만족스러운지 등등.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제 대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형은 있지만, 기본 틀은 이런 식입니다.

뻔해지자

RPG인을 위한 즉흥 기법을 다루는 블로그 글 시리즈에서 Being Obvious라는 글이 크게 와닿더군요. 직역하면 ‘뻔해지기’ 정도인데, 문맥을 보면 ‘무리하지 않기’ 혹은 ‘억지 쓰지 않기’에 가깝습니다. 한 마디로 드라마틱하게 하려고, 혹은 무섭게 하려고, 혹은 웃기려고 무리하면 보통 역효과가 나고, 스스로 보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하는 게 가장 효과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억지를 부리면 티가 나게 마련이고, 별로 감동이나 재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은 모두 생각하는 게 달라서 자신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신하고 놀라운 일이 많거든요.

뻔해지라는 것은 그렇다고 일부러 지루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예를 들어 서부극에서 정의의 보안관이 자기 친구를 죽인 범죄자와 마주쳤는데 총도 뽑지 않고, 자기 정체도 드러내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범죄자가 사라지는 걸 방관하는 건 지루하고, 앞뒤 사정을 생각하면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 (의외로 RPG 참가자에게는 꽤 볼 수 있긴 합니다만…) 반면 결사의 총격전을 벌인다거나 협박을 주고받는 건 훨씬 자연스럽고, 또 재밌습니다. 갑자기 UFO가 내려서 두 사람 다 납치해서 사라지는 걸로 끝~이라면 웬만큼 특이한 서부극이 아니면 재미없고 억지스럽습니다. (근데 왠지 해보고 싶..)

글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던 게, 저는 예전에는 극적으로 꾸미려고 너무 무리를 하는 일이 많아서 애를 먹었거든요. 요즘은 그런 경향은 많이 줄었지만 저 글을 보니 그때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더욱 와닿았습니다. 요새도 가끔 빠지는 함정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뭔가 참신하고 놀라운 걸 해보자는 건 특히 진행을 할 때면 강한 유혹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보통 참가를 진행보다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참가자는 자기 인물을 생각해서 뻔한 것만 하면 되는 반면 진행자는 뭔가 대단한 걸 꾸며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행자도 그냥 뻔하고 자연스럽게 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시작해 이를 뒷받침하는 방법론과 기법을 쌓으면 진행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되고, 자유도와 극적 감동을 둘 다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는 뻔해도 남에게는 꼭 그렇지 않으니까 굳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다는 것, 뻔하고 자연스러운 전개에는 무리하게 꾸민 것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감동과 진실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편하고 재미있는 플레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7/10/27 추가 부분 (승민님 답글을 보고 보충했습니다)

뻔해지자는 것은 ‘뻔하고 전형적인 이야기를 유지하자’는 뜻은 아니며 (제 첫 답글에서 그런 인상이 들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진행자 혼자 판단으로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유지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는 ‘모든 참여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뻔하고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집단 서술의 역동성에 힘입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 친구를 죽인 남자와 술집에서 마주친 정의의 보안관이라면, 참가자가 생각하기에 그 보안관의 뻔한 반응 중에는 바로 총을 꺼내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 옆에 자리잡고 협박하는 것도 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살인자의 반응 중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뻔한 것도 마주 총을 꺼내는 것, 비웃음, 줄행랑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연스러운 진행을 하면 그게 상대에게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비교적 전형적인 이야기가 된다 하더라도 그 속에 직접 참여하는 재미는 변함없죠.

중요한 건 뻔해지는 걸 두려워하면 무리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진행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도 그런 얘긴데, 예를 들어 보안관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악당이 갑자기 ‘날 못 알아보겠어, 빌리? 내가 바로 네 친구라고!’ 하면서 악당을 죽인 다음에 스스로 죽은 척하고 서로 정체를 바꿨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뭐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다른 감동이나 개연성을 못 느끼면서 억지로 꾸미려고 하면 실패할 위험이 높습니다. 악당하고 싸우는 게 너무 뻔한 진행이라는 이유로 보안관이 갑자기 바에 뛰어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악당하고 어깨동무하고 술을 마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결국 극적 재미는 억지로 재미있게 꾸미려는 노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라면 결론입니다. ‘재미있게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나온다기보다는 관심과 공감이 가는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수 있죠. 진행자 혼자 참신해보려고 기를 쓴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전형성이나 예측성을 거부한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꾸미기보다는 인물과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상황마다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해서 뻔해져보면 어떨까요. 

사랑한다면 죽여버려라

본격 비정 에로 추리 음모 활극 로맨스 RPG…일 리는 없고 (퍽), 그저 캠페인을 진행하다가 느낀 것입니다. 제목은 제임스 패트릭 켈리의 Murder Your Darlings를 번역해본 것입니다.

진행자는 캠페인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자기만의 ‘최상 시나리오’를 꾸미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이 커지다 보면 자칫 집착에 빠져서 스스로 생각하는 최상 전개에 반하는 참가자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하는 등 독불장군식 진행에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피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캠페인에 대해 품은 자신의 상상과 최상 전개, 즉 로망을 참가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서로 얘기해서 조정하는 것입니다. 각 참가자 역시 자신이 바라는 로망이 있을 테니까 대화를 통해 서로 욕구를 조화하는 거죠. 세션 등지에서 얘기가 나오는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이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방법이 바로 ‘사랑한다면 죽여버리기’입니다.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런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대신, 모든 것을 플레이의 역동적 긴장 과정에 맡겨두고 그 결과에 놀라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방향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서로 정면 대치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는 공통 요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합의 플레이를 논하면서 성일님은 의외성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얘기하고 계시죠. 또 저는 미리 합의한 계획보다는 밀고 당기는 플레이 과정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를 중시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과정의 초기 조건 (인물의 동기, 판정 승패의 결과 등)에 대한 합의는 열심히 합니다. 욕구를 서로 터놓고 얘기해서 조화하는 것과 욕구대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당겨서 전혀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중점의 차이일 뿐.

그래서 뭐, 현재 제 생각은 이런 식입니다. 어떤 장면이나 전개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욕구가 캠페인에 대한 상상력을 지배할 정도로 커진다면 미련없이 죽여버리자. 어차피 참가자들의 욕구와 충돌해서 서로 깨지고 다듬어지면서 지금 상상하는 어떤 전개보다 훨씬 멋진 결과가 나올 테니.

만약 정 죽이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참가자들에게 이러이러한 전개를 하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해서 자신의 욕구가 실현되도록 협조를 구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참가자가 진행자의 마음을 읽기를 기대하거나, 참가 기능의 핵심인 선택권을 제한당해 가면서 진행자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닥치고 따라오는 걸 즐기라고 강요하는 진행은 재미없어지기 쉽다고 봅니다.

공화국의 그림자 18화 – 단투인 (1부)

1253055925.html

캠페인 제목을 ‘포도원의 제다이’에서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로 바꾼 수상한 제다이 캠페인이 4주간의 외도 외전을 마치고 본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약

아우터 림으로 출발한 일행은 만달로리안 접경지대에서 만달로리안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어서 여러 행성에 난민이 대거 발생했다는 보고를 듣고 난민이 많이 유입된 행성 중심으로 여정을 재편성합니다. 만달로리안 침입 지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혹시 만달로리안이 움직이는 이유도 파악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겠지요.

너무 오랜만에 원래 인물과 캠페인을 잡아서 이번 화는 다들 적응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특히 도입 부분은 천천히 시작했죠. 이때 시사적인 대목이 두어 군데 있었는데, 첫 번째는 쟈네이딘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로어틸리아가 보인 반응, 두 번째는 포스가 두 개냐고 물은 아를란의 질문과 이에 대한 자락스의 대답입니다. 둘 다 생각 없이 조연을 연기했을 뿐이었는데 참가자 반응이 전혀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 경우죠. 이 맛에 RPG합니..(..)

단투인에 도착한 제다이들은 심각한 난민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넬반에 있는 신토넥스 지사에서 난민들을 받아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는 정보도 듣게 됩니다. 자락스는 정세가 불안정한 넬반에 난민들을 보내는 것을 당장 반대하지만, 센과 로어틸리아는 넬반으로 난민을 이주시키는 틈을 타면 넬반 잠입이 쉬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의논 끝에 제다이들은 일단 넬반에는 밀수꾼의 도움을 받아 잠입하고 넬반에서 난민을 받아준다는 제안은 거절하도록 단투인 회합에 권유하기로 합니다.

넬반에서 난민들을 받아주는 데 대한 제다이들의, 특히 자락스와 센의 의견 대립이 흥미로웠습니다. 나중에 캐스 하운드 전투에서도 나오겠지만, 자락스의 관심사는 항상 공동체와 그 수호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죠. 성취 플레이부터가 시스에게서 한 마을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러다가 죽을 뻔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넬반의 상황은 참가자들이 정치 게임을 통해 직접 만들어간 것이라 참가자 지식이 너무(..) 풍부해서 주인공 지식과 참가자 지식 분리에 애를 좀 먹었습니다. 폭넓은 상황 형성권과 개별 인물에 대한 몰입은 그런 면에서 긴장 관계인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합장에서 방을 안내받는 장면에서는 위에서 얘기한 로어틸리아의 반응에 착안해서 쟈네이딘의 동생 얘기를 급조한 결과가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과거를 활용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마스터 티로칸 언급도 그랬고…

쟈네이딘의 제안으로 난민 캠프로 출발한 일행은 캠프를 캐스 하운드가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하운드 떼와 전투를 벌입니다. 그러면서 센은 다시 카론에서 겪었던 무아지경 상태에 빠지고, 하운드를 모두 죽이고서는 뜻밖에도 하운드떼와 맞서 싸우던 정착민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로어틸리아가 우두머리를 베자 나머지 하운드떼는 도망가지만, 이제 두 제다이는 동료인 센과 대치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도 정착민들을 지휘하는 자락스의 모습에서 그의 관심이 공동체에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죠. 반면 우두머리를 혼자 공략하는 로어틸리아는 혼자 행동에 뛰어드는 나름 정통파(..) 제다이의 모습, 그리고 외계 식생에 대한 지식이 드러났고요. 센은 수많은 캐스 하운드에 혼자 맞서서 인도자의 힘을 빌려서 이겨내긴 했지…만, 문제는 인도자가 그 시점에서 물러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고 있다는 점.

캐스 하운드 전투 부분은 판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이전 토론에서 얘기했던 ‘참가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플레이’의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따로 외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참가자의 선택, 즉 참가를 의미있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진행이었다는 점에서요.(주:물론 성일님이 말씀하시는 합의에 따른 플레이에서도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합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각자의 영역이 인정되니까, 합의에 따른 플레이에도 참가의 의의가 사는 플레이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플레이에서 결코 합의를 배제하지 않듯이요.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플레이라는 표현은 저 부분을 RPG의 3 기능론에 기반을 두고 강조한 것일 뿐이지요.) 세 분이 모두 합리적, 혹은 극적인 면에서 좋은 선택을 해서 (정착민 대열을 정비한다, 우두머리를 바로 공략한다, 인도자의 힘을 빌린다) 각자의 성격과 특징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재미있는 전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니 전에 승한님이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기록을 보시고 미리 구성을 짠 ‘전통적인’ RPG 세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미리 짜둔 구성은 전혀 없었고, 준비라면 참가자들에게 제시할 상황과 조연뿐이었거든요.(주:이번 화 잡담 부분을 보면 들통나지만 사실은 조연 준비조차 잘 안 했습…)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난민 문제가 심각하다’거나 ‘캐스 하운드떼가 난민 캠프를 습격한다’는 상황만 생각했을 뿐 그 귀결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정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가 그 상황에 반응하면 저는 다시 반응하고, 거기 또 참가자가 반응하다가 그 연쇄반응이 끊어지면 다시 새로운 상황을 제시하면 되니까요.

이것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규칙책에서 조언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참가자의 선택을 극대화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죠. 승한님과 승민님의 진행도 제 이해가 옳다면 같은 원리인 듯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구성을 전혀 정하지 않은 진행의 결과물이 구성을 미리 정한 진행과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매우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플레이가 끝날 때쯤에는 인도자의 의지 내지는 인도자의 본질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어서 토론이 길어졌습니다. 이건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에 고민하는 인물인 센의 인물 해석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넬반을 비롯한 나머지 캠페인에도 상당히 중요한지라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었죠. 이에 대한 제 의견을 정리하자면…

1. 인도자는 인간의 이성이나 도덕과는 별 상관없는 이질적 지성, 혹은 우주적 원리이다
-> 즉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며, 센의 뜻만 행하고 물러나는 애완견(..)이 아님
2. 인도자는 따라서 센이라는 인물을 이루는 축 중 이성과 대립축을 이룬다
3. 센이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열쇠는 늑대 부족의 전통에 있다
-> 인도자라는 존재를 믿으면서도 유한자의 여과를 거쳐서 이성적 사회로 기능을 해온 늑대 부족의 전통과 분리된 채 인도자만 곁에 있었던 점이 성장기에 센의 혼란을 불러왔다


플레이 후 토론과 아카스트님과 개별적으로 나눈 대화를 종합해서 제 나름대로 정립한 아카스트님의 의견이라면… (제 의견하고 다른 부분만 정리했습니다)

1. 인도자의 의지와 목적은 우주적 규모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이다
2. 따라서 인도자는 이성의 대립축이 아니다
3. 늑대 부족을 비롯한 넬바니안 부족들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인도자의 뜻과 오랜 전통과 경험이 원동력이 되는, 예를 들면 꿀벌 군집에 더 가깝다


둘 다 센의 내적 모순이 조화할 수 있는 성격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지만, 제가 그 대립을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 조화의 지점을 늑대 부족으로 잡았다면 아카스트님은 그 대립을 실질적인 것이 아닌 표면적인 것으로 보고, 인도자와 늑대 부족을 별개의 축으로 보지 않으시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좀 애매한 문제인 게,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능적 분립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이죠. 센이라는 인물의 개별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캠페인 자체가 워낙 주인공 중심으로 짠 것이다 보니 동시에 중요한 캠페인 설정이기도 해서요. 다음 주에 할 갈등 판정에서 센은 아카스트님이 조종하시되, 나머지 참여자들이 거부권을 활발하게 행사하는 방향으로 이 의견 차이를 해소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안 된다면 어느 한 쪽의 뜻을 따르거나, 어느 쪽도 승복할 수 없다면 합의에 따라 캠페인을 종결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감정적 대립으로 흐르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합의하는 것보다는 캠페인을 하지 않는 것이 나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번 플레이는 역동적 긴장의 세 단계가 모두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넬반 잠입 수단에 대한 논의가 수단에 대한 긴장이었다면 인도자의 본질에 대한 의견 차이는 극적 긴장, 그리고 인도자에 대한 의견 차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 긴장이 어떤 식으로 해소되거나 해소되지 않을지는 플레이를 통해 드러나겠지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

님들의 침묵 (?)

진행자의 전형적인 악몽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진행자: 자, 우리 무슨 캠페인 할까?
참가자:
진행자: 뭐 할래? 모험물? 활극? 로맨스? 정치물? 공포물?
참가자:
진행자: 응? 말 좀 해봐.
참가자: 진행자 네 맘대로 해. 우린 아무거나 다 좋아.
진행자: 에, 그래도… 어, 알았어.
(며칠 후)
진행자: 자 얘들아! 정치물 캠페인을 준비했어! 재미있게 해보자.
참가자:
참가자: 그런데 있잖아…
진행자: 응?
참가자: 정치물만 빼고 다 좋아.
진행자: @#$%!

이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더라도 팀 내 의사결정은 종종 한 사람 (보통 진행자)의 부담이 됩니다. 사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이것저것 생각을 해야 하는 등 귀찮으니까요. 나 외에 다른 사람이 결정의 부담과 책임을 전부 짊어진 채, 그 결정이 좋으면 혜택을 누리고, 나쁘면 모든 책임을 부정하고 욕만 하는 건 편한 위치이죠.

하지만, 막상 결정의 부담을 진 사람에게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침묵하는 다수’ 대신 결정을 내리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니까 말이죠. 침묵하는 다수는 좀 더 좋은 결정이 나오도록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도 그 결정이 잘못된 것은 결정권자의 개인적인 실패가 되고, 결국 결정권자는 지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다른 해악도 큽니다. 우선 침묵하는 다수는 플레이에서 뭔가 마음이 안 드는 점이 있어도 침묵하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결정 단계에서 참여하지 않았으니 그만큼 발언권이 적은 거죠. 이러한 침묵은 그만큼 재미없는 플레이를 만듭니다. 속으로는 ‘재미없는데…’ 하고 생각하면서도 발언력은 적으니 웬만하면 참는 거죠.

또 하나, 침묵하는 다수는 진행자를 쉽게 독재자로 만듭니다. 혼자 결정의 부담을 짊어진 사람에게는 결정 권한도 그만큼 돌아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참가자의 줄어든 발언권만큼 진행자의 발언권은 커집니다. 그래서 참가자의 침묵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결정권을 짊어진 진행자도 있지만, 오히려 참가자의 언로를 차단하거나 참가자 의견을 묵살하는 진행자도 많습니다. 어느 쪽이든 플레이는 재미없어지는 결과가 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넘어가면, 제가 진행을 하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 참가자의 침묵입니다. 저는 세상 무엇보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데, 동의도 거절도 제3의 길도 아닌 저 침묵 속에 숨은 것은 하나의 사회적 폭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참가자가 우물쭈물하며 아무 대답 안 하는 순간이야말로 진행을 때려치우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확답을 줄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정보가 부족하다든지, 말해도 안 들어줄 것 같다든지) 얘기해야지. 마냥
침묵하면서 시간을 끄는 태도는 상대를 무시하거나 결정의 부담을 상대에게 전부 떠넘긴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불쾌합니다.

물론 이런 침묵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참가자로서 저는 꽤 지적이 많은 편이었고, 이러한 지적은 종종 진행자와 충돌로 이어지곤 했거든요. 그런 피곤한 일은 피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이긴 하죠. 하지만, 그렇다 해도 반대를 숨긴 침묵보다는 차라리 정직한 충돌이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침묵한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있는 갈등을 숨길 뿐이죠.

침묵을 깨는 것이 곧 캠페인을 깨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침묵의 유혹은 더욱 큽니다. 얼마 전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 분위기가 영 가라앉고 PbW (플레이 바이 위키) 외전도 별로 쇄신에 도움이 안 돼서 참가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본 결과, 생각보다 참가자들이 플레인스케이프 (Planescape) 배경에 지식이나 흥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굳이 플레인스케이프처럼 어려운 배경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그렇다고 플레인스케이프 자료를 통째로 번역하기에는 배경에 대한 열의에 비해 제 부담이 너무 컸고, 배경을 바꿔서 다른 형태로라도 캠페인을 유지한다 해도 참가자들에게 그다지 의지나 여유가 있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망할 수 있는 미래는 삽질, 오로지 삽질뿐이었기에 결국 캠페인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침묵을 깨서 캠페인이 깨진다면 결국 침묵이 가장 현명하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서로 솔직하게 의논해서 드러난 문제들은 전부터 있었던 것이지 의논에서 말미암아 생긴 것들은 아니었으니까요. 바쁜 시간을 내서 재미없는 캠페인을 계속하느니 캠페인을 과감하게 끝내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것이 훨씬 즐겁습니다. 어느 쪽이든 열린 논의를 두려워할 이유는 되지 못하죠.

RPG는 사회적인 놀이이며, 사회성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의사소통입니다. 의사소통에 무엇보다 치명적인 독은 침묵입니다. 침묵 속에 숨은 것은 반드시 동의나 만족이 아니며, 불만과 반대도 얼마든지 해소되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묻혀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인지 저것인지 알 수 없는 ‘침묵’이라는 안개를 헤매면서 서로 눈치 보는 플레이는 문제를 키우게 됩니다.  할 말이 있는데 참는 침묵은 배려와 양보가 아닌 수동적 폭력이며 책임전가, 침묵의 강요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권력을 붙들려는 유치한 공작일 뿐입니다. 침묵의 장막을 걷으면 플레이도, 인간관계도 훨씬 건강해진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존재는 반대자가 아니라, 반대하되 말이 없는 겁쟁이들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추신: 쓰다 보니 가끔 RPG 얘기를 하는 건지 정치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좀 섬뜩… 어쨌든 정치 얘기가 아니라 RPG 얘기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대체로 비슷한 이치가 작용하니까 유사점이 느껴질 수도 있을 뿐이죠.

진행자 유형론

Georgios님이 쓴 진행자 유형을 허락을 받고 한글로 번역했습니다. 원문은 독일어였고 원작자가 영어로 옮긴 걸 제가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으니 벌써 3개 국어..(..) RPG는 국제적인 취미인 겁…

로빈 로스의 참가자 유형은 RPG 조언의 고전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진행자는 참가자에게 재미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아무 흥미도 없다는 가정을 깔고 있어서이다. 물론 책은 참가자가 아닌 진행자가 대상이기는 했지만, 참가자 유형을 알아보는 것은 절반일 뿐이고 정말 재미있는 플레이를 하려면 진행자의 흥미와 욕구도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진행자 유형을 정립하는 시도를 했다. 많은 의견과 활용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주의사항: 로스의 참가자 유형과 마찬가지로 진행자 유형도 당연히 배타적이지 않다.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진행자는 둘 이상의 유형에 속한다. 또한, 같은 유형에 속하는 진행자라고 반드시 진행 방식이 비슷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진행자 기대치를 파악하는 시작점으로는 제기능을 하리라 본다.)

세계 창조자는 깊이 있는 배경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의 세계는 얼굴없는 인물이 단조로운 건물 사이를 배회하는 무미건조한 장소가 아니다. 역사가 있는 세계, 다양하고 흥미로운 풍경, 살아 숨쉬며 무궁무진한 세부사항을 자랑하는 세계와 그 일부로서 살아가는 인물 군상이 있는 곳이다. 세계 창조자는 RPG 자료집, 참고 서적과 다큐멘터리, 장르 문학 등에서 엄청난 양의 자료를 가져다가 배경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배경은 그의 작품이며 참가자는 그의 관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타일: 세계 창조자와 플레이한다면 배경에 관심을 두고 그 세밀함을 즐기는 것이 좋다. 특히 진행자가 기존 배경을 사용한다면 많은 참조와 의도적인 모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투가는 참가자와 경쟁하는 진행자이다. 그는 주인공 일행의 적수가 되는 것을 즐긴다. 그에게 플레이는 일행이 무엇인가를 걸고 싸울 때에야 비로소 시작한다. 그렇다고 결투가가 전투에만 가치를 두는 것은 아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참가자에게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는 어렵게 얻은 승리, 참가자들이 아슬아슬하게 패배를 피하는 상황을 좋아한다. 하지만, 참가자가 좋은 전술과 전략을 보이면 그들이 쟁취한 승리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규칙 판정을 엄격하게, 하지만 공평하게 하는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며, 그렇지 않으면 승리는 무의미하다.

스타일: 결투가와 플레이한다면 도전을 회피하거나 전술·전략 외의 이유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결투가형 진행자에게서 뭔가 얻어내려면 반드시 노력이 들어가며, 계속해서 실력을 보여야 한다. 결투가의 말은 곧 법이지만, 명예의식 또한 강하므로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자신에게도 편파적인 이득을 주지 않는다.

구성의 대가는 자신을 모든 실을 조작하는 인형술사로 여긴다. 그는 참가자들이 풀어내야 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구성을 만들어 낸다. 그에게 배경 세계는 장소라기보다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인과의 그물이다. 따라서 때로는 지극히 단순하고 평범한 발단이 놀라운 반전과 복합적인 줄거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구성의 대가는 참가자들을 계속해서 교란하고 놀라게 하되, 돌아보면 일관적이고 말이 되는 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스타일: 진행자가 구성의 대가 유형이라면 플레이 내 사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고, 아무리 작은 세부 사항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퍼즐 조각을 모두 참가자에게 쥐여주는 것을 즐기지만, 맞추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참가자들은 지속적으로 기록을 남기고 서로 가설을 주고받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가정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플레이 내에서 시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식전(式典) 책임자는 분위기와 몰입감이 넘치는 플레이를 중시한다. 그는 참가자들이 전혀 새로운 세계로 뛰어들 수 있는 독특한 플레이를 진행하고 싶어한다. 현장감을 생생히 살리는 온갖 장치를 사용하는 것도 이 유형의 특징이다. 조명, 배경 음악, 소품, 전단 등. 각 조연의 대사와 행동에 진정성이 있는 것도 식전 책임자 유형에게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에게 RPG는 무엇보다 하나의 경험이자 현실 도피이다.

스타일: 식전 책임자와 잘 지내려면 최대한 몰입하고 농담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엉뚱한 순간에 잡담을 하거나 분위기를 깨는 행동을 하는 것은 미움을 사는 지름길. 이 유형은 특히 주인공 입장에서 벗어나 순수히 참가자로서만 하는 플레이를 싫어한다. (순수한 전술적 플레이도 여기 들어갈 수 있다.)

배우 유형 진행자는 모든 노력을 조연에 쏟아붓는다. 그는 참가자에게 개성 넘치고 특이한 조연을 선보이고 싶어한다. 배우 유형에게 배경 세계는 인물들의 호오(好惡)와 장단점이 중심이 된다. 그에게 RPG는 곧 인물간 상호작용이다. 그러려면 물론 각 조연에게 규칙이나 제약에 제한받지 않는 일관된 성격이 있어야 한다. 배우 유형은 각 인물이, 그리고 그들과 참가자의 관계가 기억에 남기를 바란다.

스타일: 배우 유형 진행자와 잘 지내려면 주인공에게도 개성이 있어야 한다. 참가자가 조연과 그들의 행동 동기를 알게 되듯 배우 유형은 참가자 인물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어한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지. 인물 행동에 모순이 있다면 그 이유는 어떤 내적 갈등이나 충돌이어야 한다. 인물 행동의 일관성에 참가자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이유여서는 안 된다.

감독 유형은 RPG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매체로 여긴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꾸며가려고 그는 모험 구조, 도전, 극적 갈등 등 RPG 내적 수단뿐 아니라 그가 아는 모든 서사 예술에서 장치를 끌어온다. (3막 구조, 장르 법칙, 영화 언어 등.) 감독형 진행자는 중요한 대목을 플레이하는 데만 관심을 보인다. 줄거리를 진행하거나 인물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지 못하는 장면이라면 피하거나 잘라버리기 십상이다.

스타일: 감독 유형은 참가자들도 창의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를 기대한다. 즉, 이야기를 만들어갈 기회를 찾아서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행자는 참가자가 상황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어가서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긴다.

제공자는 플레이에 자신만의 욕구가 없는 유형이다. 그의 재미는 곧 참가자가 느끼는 재미이다. 많은 제공자는 모두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즐기며, 종종 진행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진행을 잡곤 한다. 모험은 종종 참가자 선호도를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또한, 참가자 권한이 많은 편이 참가자에게 재미있다면 제공자형 진행자는 언제든지 참가자에게 권한을 넘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늘 참가자와 기대치를 타협할 의무를 느낀다.

스타일: 제공자 유형과 잘 지내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참가자가 이 유형을 가장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제공자도 두 가지 경우에는 마음이 멀어질 수 있다. 우선, 참가자는 대충이라도 자신이 RPG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제공자형 진행자에게 무엇보다 참기 어려운 것은 말하는 것과 실제 선호가 다른 참가자이다. 또한, 제공자는 다른 어떤 진행자보다 플레이가 재미있었다는 확인을 바란다. 진행을 잘했으며 플레이가 즐거웠다는 말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는 것은 제공자를 소진으로 내모는 것이나 다름없다.

각 유형 설명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유형에도 부정적인 변형이 많다. 결투가는 참가자들이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으면 킬러 진행자가 될 수 있으며, 구성의 대가 중에는 대가는커녕 준비조차 제대로 안 해서 모험 내용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진행자도 보인다. 세계 창조자는 자기 창조물에 넋을 잃고 끝없는 장광설이나 쓸데없는 묘사로 참가자들을 지루하게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부작용은 이들 진행자 유형의 잘못된 모습이며, 이를 이유로 진행자의 다양한 욕구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이 진행자 유형론을 번역해보았습니다. 의구심이 든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진행자도 자신만의 욕구와 필요가 있는 참여자라는 생각의 시작점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고, 또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옮겼습니다.

보면서 그동안 제가 겪은 진행자 유형을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더군요. 예를 들어 아루스 캠페인 진행자 아사히라군은 결투가 성향이 강한 것 같았고, 7번째 바다 플레이를 함께했던 란님은 구성의 대가, 언더월드 진행자였던 제노시아님은 세계 창조자 유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떤 진행자도 유형만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진행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대응하면 서로 재미있는지, 나에게 맞는 진행자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면 더욱 풍요로운 RPG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주인공과 조연

참가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PC (Player Character), 진행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NPC (Non-Player Character)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과 ‘조연’이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영어로는 PC는 Protagonist Character, NPC는 Non-Protagonist Character라고 치환해서 생각하고요. 뭐 의미는 좀 중첩됩니다만…

어쨌든 용어를 한글화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PC와 NPC를 주인공과 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PC는 주인공, NPC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가 큽니다. 진행자야 배경 세계 자체를 운용하고 인물도 많이 있지만, 참가자는 보통 하나씩의 인물밖에 없고 그들이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길은 그 인물을 통하는 방법뿐입니다. 따라서 참가자 인물이 플레이의 초점이 아니라면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심각하게 줄어듭니다. 심하면 참가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진행자의 실책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것이 바로 ‘GMPC’인 것 같습니다. GMPC란 진행자 인물인데 주인공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행자는 이 인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든 이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참가자 인물을 들러리로 전락시키죠. 종종 플레이를 정해진 길로 이끌려는 용도도 있으며, 이때는 또 다른 악명높은 진행자 실책인 ‘일방통행식 진행’까지 겹칩니다. 오직 진행자의 자기만족만을 위하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사용하는 것은 RPG의 사회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실책일 뿐 아니라 굉장한 실례라는 것은 길게 얘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물론 GMPC는 극단적인 예일 뿐, 참가자 인물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진정한 주인공으로 유지하려면 ‘GMPC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당연한 지침 외에도 주의할 것이 많습니다. 어쨌든 진행자 인물은 꼭 필요하고, 개중에는 주인공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권력이 강한 인물도 있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또 조연의 도움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일행에 따라붙기도 합니다. 진행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물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러한 요소에 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1.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

능력이나 권력, 정보력 등이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은 일단 주인공 일행하고는 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런 인물은 자기 일로 바쁘니 주인공 일행 일에 시시콜콜 참견할 시간이 있을 리 없죠. 따라서 주인공 일행과 만나는 것은 그쪽에서 불렀을 때, 혹은 주인공 일행이 찾아갔을 때뿐이고, 이렇게 하면 일단 등장 빈도 면에서 그들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눈에 띄게 뛰어난 조연은 주인공의 적, 혹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협력자 정도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주인공이 그들에게 의지하거나 아니면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자가 그들을 동원할 유혹이 커지니까요.

적이라면 이길 방법이 없는 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 과정이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무시해도 상관없는 적이어야겠죠. 신뢰가 안 가는 협력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유형인데,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 판단의 근거가 있되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면 그 자체가 상당한 게임적 재미일 수 있죠. 우리 편이긴 우리 편이되 감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서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변형도 극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렇듯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이되, 의존하는 대신 주시하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조연은 극적, 게임적 긴장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은 뛰어난 조연의 그림자에 묻히는 대신 그 조연들과 극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지요.

때로는 주인공보다 뛰어나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조연도 있습니다. 후원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이럴 경우는 그가 주인공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뭔가 제한을 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바쁜 사람이라든가 (못 만나게 막는 비서를 막무가내로 돌파해서 들어가자 그 어른이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비서를 질책하더라… 같은 고전적인 진행도 한 번쯤 해볼 만 하죠), 도움에 뭔가 대가가 따른다든가, 후원자도 사람인 만큼 속수무책인 영역이 있다든가, 오히려 이 일에서는 후원자가 주인공의 도움이 필요해서 의뢰를 했다든가, 등등.

즉 믿을 수 있는 뛰어난 조연은 의존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그 능력과 영향력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뭐 사람인 이상, 심지어는 신이라 해도 뭔가 제한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신의 속성이나 영역,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일정!)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2.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인공에게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확고한 원칙이 있습니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 아쉬운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조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타나서 ‘너네 내가 필요하지? 음하하하 여기 왔도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연의 조력을 조연 자신이 주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주인공에게 그만큼 주도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주인공이 주도해서 조연을 불러들인다면 조연은 참가자가 판단해서 활용하는 게임적 자원일 뿐이지만, 조연이 스스로 나선다면 문제 해결의 능동성이 조연에게 넘어가니까요.

자기 판단 하에 주인공이 조연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물론 주인공이 필요할 때 주인공이 조연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플레이 내에서 참가자에게 어느 정도 판단과 운신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또 연락 가능 여부가 진행자 멋대로 달라지지 않고, 이런 때는 연락이 되고 이런 때는 안 되겠다고 참가자가 판단하거나 최소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또 RPG의 게임성과도 연관이 깊겠죠.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얘기한 뛰어난 조연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쁘다거나, 완전히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조연의 능력에 대한 활용에 뭔가 제한이 붙으면 참가자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자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그만큼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넘어갑니다. 참가자의 판단, 주인공의 행동이 필요 없이 도움이 무조건적이라면 주도권은 반대로 진행자와 조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연이 멋대로 따라와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럴 때도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일반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쪽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일 뿐이죠. 즉,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도움을 준다면 그건 조연 자신의 목적이나 주인공에게 받을 수 있는 대가를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주인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조연으로는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서 모험을 해보려는 열혈 소년이라든지, 주인공 중 하나에게 접근해 보려고 수작을 거는 아저씨라든지, 정보를 캐내려는 첩자, 보물을 가로채려는 도둑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연의 목적은 참가자가 의사 판단을 해서 이용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원, 혹은 장애가 되고, 그만큼 플레이의 내용은 풍부해집니다. (‘좋아, 넌 오늘부터 짐꾼이다!’ ‘저 귀찮은 인간을 어떻게 떼어놓지?’ ‘그때 마주친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러려면 그러한 의도나 목적을 알려주거나 알아낼 여지를 줘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은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좋건 싫건 도와주는 조연에게 치여서 플레이의 주도권을 잃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조연이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그건 도움일 뿐 조연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도 좋은 문제라면 주인공이 다른 활약을 하는 동안 무대 뒤에서 처리하고 (“의뢰하신 총은 다 만들었으니까 와서 찾아가세요.”), 플레이상 직접 드러나는 활약은 주인공이 하면서 조연이 보조하는 정도여야 하죠.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든가, 혹은 주인공이 개입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게 좋습니다.

주인공이 조연의 도움을 받은 최근 예로는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제다이 일행이 도시에서 잠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스 하나를 어찌어찌 주워서 데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뒷골목에 익숙한 이 청년에게 주인공 하나가 주도적으로 얘기해서 숨을 곳을 마련하게 했죠.

자락스 토레이: “아를란. 이 주위에 이만한 인원이 조용하게 숨을곳 없나?”
로키: “이..이 주위에? 없진 않지만 좀 동네가..”
로키: 아를란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군요.
자락스 토레이: “이 주위에서 활동했으면 당연히 숨을곳 정도야 여기저기 스승 모르게 마련해뒀을 거 아냐. 내놔봐. 지금 난리가 났다고.”
로키: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주소를 하나 말합니다.

캔티나 지하실인 은신처를 이용하려면 캔티나 주인과 교섭해야 했고, 이 사람은 아를란이 아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아를란의 주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를란의 역할은 캔티나를 찾아내고 주인과 연결하는 정도로 끝내고 싶어서 교섭 장면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로키: 아를란은 이곳에 있는 은닉처에서 지내고 싶다는 눈치를 주지만
로키: 신문을 봤는지 로디안은 꺼리는 낌새군요.
로키: 아를란은 설득하다가 슬슬 참을성이 떨어져 가고..
로키: 자칫하다 싸움이라도 벌이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센 테즈나: @아를란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엽니다.
센 테즈나: “충분히 사례는 하겠습니다. 반대로 그쪽이 비밀을 지켜 주신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일 거라 봅니다만.”
센 테즈나: “이미 이곳으로 저희가 들어오는 걸 본 사람이 있을 테니 그게 알려지면 이쪽의 행적을 알기 위해 누군가 추적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죠.”
로키: “그건 협박이오?” 로디안은 툭 튀어나온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군요.
센 테즈나: “아니요, 조언입니다.”

주목도도 낮추고 시간도 절약할 겸 조연끼리의 대화는 요약하고, 아를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해서 센의 개입이 필요하게 했습니다. 물론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실제로 싸움이 나서 문제는 더 커졌겠죠. 센의 개입 시점부터는 다시 직접 화법으로 전환해서 주목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연의 도움은 주인공이 스스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고, 조연의 활약이 있어도 주도권은 주인공에게 두는 것이 제 방침이라면 방침입니다.

3. 일행에 따라붙는 조연

가장 위험한 경우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얘기한 아를란과 관련해 고민과 토론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행자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기가 관심 있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싶고, 그건 자칫하면 참가자와 이해 충돌 상황이 되기 쉬우니까요. 이 인물이 플레이의 중심인 일행에 상주하면 이해 충돌은 한결 심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위에 말한 GMPC겠죠.

하지만, 이럴 때도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만 기억한다면 의외로 해결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일행에 합류 여부를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가 결정하게만 두어도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참가자끼리 의견이 갈릴 때일 테니, 참가자가 몇 명이나 찬성해야 하는지, 미온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찬성해야 할지 등 의사결정 과정상의 문제도 있지만요.

일단 일행에 합류하면 역시 조연에게 도움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연의 활약은 원칙적으로 주인공 주도로, 활약 정도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보조하거나 무대 뒤에서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정도, 조연 자신이 능동적으로 활약할 때는 조연 자신의 이유로… 같은 사항을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행과 행동을 같이하는 특수 상황 때문에 조연이 행동하는 이유가 일행의 목적과 부합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그런 식으로 쌓이는 신뢰와 감정적 유대는 플레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주인공을 더욱 주인공답게 하는 조연인가, 아니면 주인공에게서 주도권을 빼앗는 조연인가 하는 문제일 뿐, 일행 상주 조연도 전자라면 잘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재미뿐 아니라 참가자의 재미까지 일부 누린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일행 상주 조연은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라든가 자잘하게 써먹을 데도 있고요.

로키: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자..
로키: 순간적으로 쿵쾅거리는 음악과 함께 마치 물흐르듯 움직이는 색색의 트윌렉 댄서들의 홀로 이미지가 방안에 가득하군요.
로키: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아를란은 황급히 동영상을 끕니..

4. 진행자의 마음에 드는 조연

다른 항목과 겹치는 때도 많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로 진행자 자신이 어떤 조연에게 굉장히 흥미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플레이에 자꾸만 끌어넣고 싶고, 이 인물의 갈등이나 고뇌를 보여주고 싶고 말이죠. 이러한 사항을 참가자가 대응 가능하고 플레이 맥락에 어울리는 형태로 잘 엮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참가자들이 별 관심도 없고 플레이 내용을 깎아먹는데도 자꾸 이 인물에게 주목하고 싶어진다면 문제가 큽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대화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옛날 캠페인이나 인물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행동이지요.

참가자 개입이나 플레이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그 인물 자체에 가는 관심이라는 면에서 이런 식의 흥미는 진행자로서 게임 요소에 갖는 흥미라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인물에게 갖는 흥미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냥 소설 씁니다. (…) 얼마 전에 썼던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 배경 소설들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하면 진행자의 순전히 개인적 흥미에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소모하지도 않고,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미리 공개해서 플레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알 수 없는 내용일 때는 참가자와 주인공 지식 분리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그건 제 경험상으로는 대체로들 잘 하니까요.

진행은 세계 만들기, 문학 등 다른 창의적인 활동과도 관계가 깊으니, 플레이 진행을 벗어나 창의성을 다른 방향으로 배출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세션 진행을 하는 시간에는 진행자로서 행동해야겠죠. 진행자의 역할이란 자신의 개인적 창의성을 일방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그 창의성을 기반으로 참가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놀이의 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을 통하는 것이므로 그 주인공의 주도성을 보존하는 것이 참가자의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것은 참가자의 당연한 요구인 동시에 진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가 빠진 세션

RPG는 여럿이서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참가자가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것은 큰 차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예고 후, 혹은 예고 없이 참가자가 결석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럴 때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대응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빠진 이유를 갖다 붙이고 속행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각 세션을 될 수 있으면 하나의 단위 (예를 들어 캠페인 시간상 하루)로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최소한 세션을 맺을 때 하나의 장면을 완전히 끝낸다거나요. 이렇게 하면 다음 세션에 참가자가 하나 빠져도 그 주인공이 없는 이유를 급조한 후 세션에 나온 참가자들과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포도원의 제다이 8화, 그리고 9화부터 12화였는데, 3인 참가자 중에서 8화에는 이방인님, 9화에는 소년H님이 빠진 연속타를 먹었었죠. (흑흑.. 아카스트님을 붙잡고 웁니(?)) 그래서 8화에서는 ‘일행이 흩어져서 정보를 찾고 있다’라는 식으로 둘러대고 아카스트님과 소년H님 쪽을 진행했습니다. 그다음 9화 첫머리에서 이방인님의 주인공이 별 성과 없이 숙소로 돌아오는 연결부를 짧게 했죠.

9화에서는 소년H님의 주인공인 로어틸리아가 없으니까 ‘정보를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쐬러(..) 나갔다’라고 한 후 아카스트님과 이방인님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8화 말에 이미 9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밤은 폭풍이 있을 것 같다고 묘사한 후였으니까, 바람 쐬겠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뭔가 일이 있다는 암시를 연결하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결석이 몇 회에 걸쳐 계속되면 주인공이 빠진 이유도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소년H님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정으로 9, 10, 11, 12화를 빠지면서 로어틸리아가 일행에서 일탈한 시간도 24시간이 넘었고, 그래서 귀환 후 상의해서 ‘바람 쐬러’ 나간 로어틸리아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바람 쐬러 나갔다가 바람났다…?) 정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로어틸리아 24라는 글은 저와 소년H님만 볼 수 있게 권한 설정을 해서 위키의 장점 또한 십분 활용할 수 있었죠.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참가자의 결석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해 캠페인의 내용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로어틸리아의 일탈은 졸지에 어미 닭 없는 병아리 나이트 없는 파다완 일행이 된 자락스와 센이 공의회로 귀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코루선트의 상황으로 내용이 이어질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소년H님의 귀환 후 재회 장면을 연출하는 재미도 있었죠.

로키: 넓은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시야가 순간 환해지는군요.
로키: 눈이 적응되자 둥근 방안에 둘러앉은 열두 제다이 마스터의 모습이 보이고
로키: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로어틸리아,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자락스 토레이: “……!….” -나이트 로어틸리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는 이내 다시 표정을 되돌립니다.
로어틸리아: @미묘한 미소를 띄고 인사합니다.
센 테즈나: @로어틸리아를 잠깐 놀란 듯 바라보다 다가가 서서 목례를 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무사했구나……’ -보일듯 말듯 살짝 미소

이렇듯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참가자가 빠진 것은 캠페인의 위기에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제약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원칙은 참가자의 부재도 예외가 아니니까요.

2. 외전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본 캠페인 진행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세션에 악당이 ‘훗훗훗 드디어들 나타나셨나’ 하면서 등장하는 걸로 끝났다든지 해서, 갑자기 땅이 갈라져서 주인공 하나를 삼켰다는 식이 아니면 부재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이럴 때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캠페인 본편을 벗어나 외전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알데마르 캠페인 때 주인공 셋 중 하나가 빠져서 나머지 둘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진행한 것이 그 예입니다. 아예 두 명이 없었을 때는 남은 한 명의 과거 설정을 RP로 재현한 일도 있습니다.

외전 역시 캠페인에 깊이를 더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야기, 인물 간의 관계 등을 통해 본편 캠페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인물과 사건을 조명한다는 점이 재미있죠.

외전의 또 다른 효용은 참가자의 결석보다 한결 난감한 경우, 즉 진행자가 빠졌을 때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참가자 중 하나가 부진행자 역할을 맡아서 진행자가 나올 수 없을 때 외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더월드 3기의 경우 진행자 제노시아님이 사정이 있을 때 제가 외전인 브루하 폭주전대를 진행한 경우가 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 진행이 어려울 때 본편의 진행자인 제노시아님이 제가 진행하는 외전에서 참가자가 되기도 했었죠.

브루하 폭주전대의 경우 비슷한 시간대일 뿐 전혀 다른 캠페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뉴 세인트 헬렌이 나중에 본편에 합류한 유르겐의 배경에 나오는 등 연계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본편의 주인공 하나와 조연 하나가 데이트하는 내용을 연애물 규칙인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로 오체스님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똑같이 외전이라고 해도 본편과 연계 정도, 규칙 등에서 여러 가지 변형이 있기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캠페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주인공을 다른 참여자가 제어한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대응으로는 다른 참여자, 보통은 진행자가 해당 주인공을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부재를 설명할 필요 없이 본편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본편을 속행하거나 외전을 하는 방법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로어틸리아의 예에서 로어틸리아가 바람 쐰다며 나갔다고 진행자인 제가 서술한 대목이라든지, 로어틸리아가 다른 일행에게 보낸 홀로크론 메시지를 제가 간접 인용으로 전한 부분 등이 그 예입니다.

주인공을 타인이 제어하는 방법에는 소극적인 방법도 있고,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소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이 그 자리에 있다는 정도만 알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적극적으로는 진행자 혹은 다른 참가자가 그 주인공의 모든 연기를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죠. 전투 정도가 아니면 드문 경우겠지만요.

4. 세션을 쉰다

개인적으로는 참가자 한 명이 예고 없이 빠져서 세션을 쉰 적은 없으며, 이는 가장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에 말했듯 참가자가 빠지면 차질이 생기지만, 플레이를 자꾸 쉬면 캠페인의 맥이 끊어지는데다, 성실하게 참여한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석한 사람이 있는 김에 팀원들끼리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가끔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놀이를 한다든가, 캠페인의 제반 사항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든가. 진행자나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을 진행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전혀 다른 캠페인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이런 방법은 위에서 얘기한 외전의 변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캠페인의 세션은 쉬지만 플레이는 하니까요.

어쨌든 다른 준비를 한 게 아니면 참가자가 빠져서 세션을 쉬는 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예외인 것이 바람직한 듯합니다. 참가자가 빠지는 것 자체가 예외인 게 바람직하듯 말이죠.

이상과 같이 참가자 (혹은 진행자)가 빠졌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대응책들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도 있을 것이고, 각 팀과 캠페인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약속은 소중하지만 때로 깨지기도 합니다. (저도 최근에 그런 경우가 있었죠..ㅠㅠ)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캠페인에 대한 의욕, 나아가서는 캠페인의 존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참가자 부재에 대한 대응은 진행자에게, 그리고 팀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재가 잦다면 참가자가 계속해서 참가할 수 있는지, 시간대가 적당한지 하는 의논이 필요하겠지요. RPG에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그건 팀원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