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18화 – 단투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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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페인 제목을 ‘포도원의 제다이’에서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로 바꾼 수상한 제다이 캠페인이 4주간의 외도 외전을 마치고 본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요약

아우터 림으로 출발한 일행은 만달로리안 접경지대에서 만달로리안의 대대적인 침략이 있어서 여러 행성에 난민이 대거 발생했다는 보고를 듣고 난민이 많이 유입된 행성 중심으로 여정을 재편성합니다. 만달로리안 침입 지역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혹시 만달로리안이 움직이는 이유도 파악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겠지요.

너무 오랜만에 원래 인물과 캠페인을 잡아서 이번 화는 다들 적응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특히 도입 부분은 천천히 시작했죠. 이때 시사적인 대목이 두어 군데 있었는데, 첫 번째는 쟈네이딘의 장난스러운 웃음에 로어틸리아가 보인 반응, 두 번째는 포스가 두 개냐고 물은 아를란의 질문과 이에 대한 자락스의 대답입니다. 둘 다 생각 없이 조연을 연기했을 뿐이었는데 참가자 반응이 전혀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 경우죠. 이 맛에 RPG합니..(..)

단투인에 도착한 제다이들은 심각한 난민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넬반에 있는 신토넥스 지사에서 난민들을 받아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는 정보도 듣게 됩니다. 자락스는 정세가 불안정한 넬반에 난민들을 보내는 것을 당장 반대하지만, 센과 로어틸리아는 넬반으로 난민을 이주시키는 틈을 타면 넬반 잠입이 쉬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합니다. 의논 끝에 제다이들은 일단 넬반에는 밀수꾼의 도움을 받아 잠입하고 넬반에서 난민을 받아준다는 제안은 거절하도록 단투인 회합에 권유하기로 합니다.

넬반에서 난민들을 받아주는 데 대한 제다이들의, 특히 자락스와 센의 의견 대립이 흥미로웠습니다. 나중에 캐스 하운드 전투에서도 나오겠지만, 자락스의 관심사는 항상 공동체와 그 수호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죠. 성취 플레이부터가 시스에게서 한 마을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러다가 죽을 뻔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넬반의 상황은 참가자들이 정치 게임을 통해 직접 만들어간 것이라 참가자 지식이 너무(..) 풍부해서 주인공 지식과 참가자 지식 분리에 애를 좀 먹었습니다. 폭넓은 상황 형성권과 개별 인물에 대한 몰입은 그런 면에서 긴장 관계인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회합장에서 방을 안내받는 장면에서는 위에서 얘기한 로어틸리아의 반응에 착안해서 쟈네이딘의 동생 얘기를 급조한 결과가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 과거를 활용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죠. 마스터 티로칸 언급도 그랬고…

쟈네이딘의 제안으로 난민 캠프로 출발한 일행은 캠프를 캐스 하운드가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가 하운드 떼와 전투를 벌입니다. 그러면서 센은 다시 카론에서 겪었던 무아지경 상태에 빠지고, 하운드를 모두 죽이고서는 뜻밖에도 하운드떼와 맞서 싸우던 정착민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로어틸리아가 우두머리를 베자 나머지 하운드떼는 도망가지만, 이제 두 제다이는 동료인 센과 대치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도 정착민들을 지휘하는 자락스의 모습에서 그의 관심이 공동체에 있다는 점이 잘 드러나죠. 반면 우두머리를 혼자 공략하는 로어틸리아는 혼자 행동에 뛰어드는 나름 정통파(..) 제다이의 모습, 그리고 외계 식생에 대한 지식이 드러났고요. 센은 수많은 캐스 하운드에 혼자 맞서서 인도자의 힘을 빌려서 이겨내긴 했지…만, 문제는 인도자가 그 시점에서 물러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하고 있다는 점.

캐스 하운드 전투 부분은 판정을 하지는 않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이전 토론에서 얘기했던 ‘참가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는 플레이’의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따로 외적인 합의는 없었지만 참가자의 선택, 즉 참가를 의미있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진행이었다는 점에서요.(주:물론 성일님이 말씀하시는 합의에 따른 플레이에서도 모든 것을 시시콜콜하게 합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각자의 영역이 인정되니까, 합의에 따른 플레이에도 참가의 의의가 사는 플레이가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플레이에서 결코 합의를 배제하지 않듯이요. 참가의 의의를 살리는 플레이라는 표현은 저 부분을 RPG의 3 기능론에 기반을 두고 강조한 것일 뿐이지요.) 세 분이 모두 합리적, 혹은 극적인 면에서 좋은 선택을 해서 (정착민 대열을 정비한다, 우두머리를 바로 공략한다, 인도자의 힘을 빌린다) 각자의 성격과 특징을 드러내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재미있는 전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니 전에 승한님이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기록을 보시고 미리 구성을 짠 ‘전통적인’ RPG 세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생각이 나는군요. 저는 미리 짜둔 구성은 전혀 없었고, 준비라면 참가자들에게 제시할 상황과 조연뿐이었거든요.(주:이번 화 잡담 부분을 보면 들통나지만 사실은 조연 준비조차 잘 안 했습…)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난민 문제가 심각하다’거나 ‘캐스 하운드떼가 난민 캠프를 습격한다’는 상황만 생각했을 뿐 그 귀결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정하지 않았습니다. 참가자가 그 상황에 반응하면 저는 다시 반응하고, 거기 또 참가자가 반응하다가 그 연쇄반응이 끊어지면 다시 새로운 상황을 제시하면 되니까요.

이것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 규칙책에서 조언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참가자의 선택을 극대화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죠. 승한님과 승민님의 진행도 제 이해가 옳다면 같은 원리인 듯합니다. 어쨌든 이렇게 구성을 전혀 정하지 않은 진행의 결과물이 구성을 미리 정한 진행과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점은 매우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플레이가 끝날 때쯤에는 인도자의 의지 내지는 인도자의 본질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어서 토론이 길어졌습니다. 이건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에 고민하는 인물인 센의 인물 해석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고, 넬반을 비롯한 나머지 캠페인에도 상당히 중요한지라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었죠. 이에 대한 제 의견을 정리하자면…

1. 인도자는 인간의 이성이나 도덕과는 별 상관없는 이질적 지성, 혹은 우주적 원리이다
-> 즉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이며, 센의 뜻만 행하고 물러나는 애완견(..)이 아님
2. 인도자는 따라서 센이라는 인물을 이루는 축 중 이성과 대립축을 이룬다
3. 센이 이성과 신비주의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는 열쇠는 늑대 부족의 전통에 있다
-> 인도자라는 존재를 믿으면서도 유한자의 여과를 거쳐서 이성적 사회로 기능을 해온 늑대 부족의 전통과 분리된 채 인도자만 곁에 있었던 점이 성장기에 센의 혼란을 불러왔다


플레이 후 토론과 아카스트님과 개별적으로 나눈 대화를 종합해서 제 나름대로 정립한 아카스트님의 의견이라면… (제 의견하고 다른 부분만 정리했습니다)

1. 인도자의 의지와 목적은 우주적 규모이기는 하지만, 인간이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이다
2. 따라서 인도자는 이성의 대립축이 아니다
3. 늑대 부족을 비롯한 넬바니안 부족들은 이성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인도자의 뜻과 오랜 전통과 경험이 원동력이 되는, 예를 들면 꿀벌 군집에 더 가깝다


둘 다 센의 내적 모순이 조화할 수 있는 성격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같지만, 제가 그 대립을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 조화의 지점을 늑대 부족으로 잡았다면 아카스트님은 그 대립을 실질적인 것이 아닌 표면적인 것으로 보고, 인도자와 늑대 부족을 별개의 축으로 보지 않으시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게 좀 애매한 문제인 게, 좀처럼 합의가 되지 않으면서도 기능적 분립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없다는 점이죠. 센이라는 인물의 개별 설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캠페인 자체가 워낙 주인공 중심으로 짠 것이다 보니 동시에 중요한 캠페인 설정이기도 해서요. 다음 주에 할 갈등 판정에서 센은 아카스트님이 조종하시되, 나머지 참여자들이 거부권을 활발하게 행사하는 방향으로 이 의견 차이를 해소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정 안 된다면 어느 한 쪽의 뜻을 따르거나, 어느 쪽도 승복할 수 없다면 합의에 따라 캠페인을 종결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감정적 대립으로 흐르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합의하는 것보다는 캠페인을 하지 않는 것이 나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이번 플레이는 역동적 긴장의 세 단계가 모두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넬반 잠입 수단에 대한 논의가 수단에 대한 긴장이었다면 인도자의 본질에 대한 의견 차이는 극적 긴장, 그리고 인도자에 대한 의견 차이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의 문제는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 긴장이 어떤 식으로 해소되거나 해소되지 않을지는 플레이를 통해 드러나겠지요. 다음 주가 기대됩니다. ^^

3 thoughts on “공화국의 그림자 18화 – 단투인 (1부)

  1. 아카스트

    자러 가기 전에 잠깐 덧붙입니다.

    아까 대화 후에 저도 나름대로 다시 한번 설정에 관련하여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버릇대로 무언가를 알려면 그것의 반대되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법칙대로 그러려고 생각해 보았죠. 그런데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더군요. 보통 사람들에게 이성의 반대말이 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답은 셋 중에 하나가 나옵니다. 본능, 감성, 혹은 불합리. 여기에서 본능은 인도자를 설명하기엔 부족하고, 불합리는 신비주의와 동하는 면이 있으나 항상 그렇진 않으니 넘어갔었죠.

    그리고 감성이 남습니다. 코티에르의 외전에 나왔었던 말대로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죠. 인도자를 감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은 아직 가질 않습니다만, 좀 생각해보고 이쪽이 아귀가 맞게 된다면 오히려 처음 합의했던 사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넬반 부족에 대해서도 이성론에 반박되는 요소로 경험론과 감각론을 채워 넣으면 오히려 이쪽이 더 말이 되는 듯 하군요. 확신은 서지 않습니다만, 일단 좀 더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제가 인도자가 이성의 대립축이 아니라고 말했던 것은 신비주의로서 해석한 결과였습니다. 다만…인도자를 반대로 이성에 대립되는 – 감성의 – 축에 끼워 맞추었을 경우 어째 원점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요. 로키님의 의견과도 부합하는 면이 있고…

    어쨌거나 자고 일어나 마저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리플 정리 수고하셨습? (안 날리셨군요? 라고 덧붙이며 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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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소년H

    두 가지 부분을 쓰자면..

    1. 사실 플레이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마스터 혼자 준비해오건, 아니면 레디 메이드 시나리오로 플레이를 하건, 혹은 전원 의논해서 다 정하는 플레이건 간에
    좋은 플레이 (즉 재미있는 플레이(..))라면 공통 요소가 존재(특히 극적 재미가 높아지기 위해서 저런 점이)한다는 건 당연하겠죠. 물론 캠페인 종류에 따라 그 양상은 달라지겠지만..

    2. 이성의 반댓말이 감성이란 거야 용어 정의에선 맞지만, 실제상에선 ‘또 다른 이성’이라 해야겠죠. 현재 로키님 설정을 보면 그런 느낌이고.. (즉 인간의 이성과 다른 종족의 이성이란..)

    (다만 이렇게 되면 문득 드는 느낌은 넬반=크툴후 섬기는 종족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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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로키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퍽퍽)

    인도자의 본질을 감정으로 이해하는 것도 한 실마리일 수는 있지만, 역시 유한한 이성의 대등한 (그리고 어쩌면 우월한?) 대립항으로 인도자를 제시하려는 제 의견하고는 차이가 보이는 것 같네요. 인도자라는 존재가, 그리고 제가 생각했던 바로는 센이라는 인물 자체에서 드러나는 주제 중 하나가 이성의 한계이고, 그걸 형상화하는 방법이 이성을 초월한 존재인 인도자라고 저는 해석했으니까요. 넬반의 악몽과 같은 상황이나 코티에르가 그의 정의를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도구적 이성을 강하게 비판하는 의미도 있다는 건 대화 중에도 얘기했고요.

    이런 이성 비판적인 면은 소년H님 말씀대로 확실히 크툴루적인 데가 있을지도요..(…) 다만, ‘그분’과 달리 우리의 래시.. 아니 인도자는 인간에 대해 절대적 악의로 뭉친 존재는 아니죠. 유한자가 상상하거나 논증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한 무언가가 있다는 증거일 뿐.

    그렇다고 제가 해석하는 인도자가 오직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존재인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우스개로 애완견이라고 불렀듯 (아니, 진담이었던가요?) 의지가 되는 친구나 조력자이기도 하고, 느긋하고 능글맞은 성격도 분명 인도자의 진면목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신인 로키의 예를 들면 로키는 우습고 음탕한 재간꾼이자 재담꾼이지만, 라그나로크의 주역 중 하나로서 세계를 파괴하는 두려운 힘과 위엄도 분명 그의 또 다른 일면이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그의 본질은 변화와 파괴라는 우주적 원리이고요. (사실 캠페인 인물 중 로키와 가장 본질이 통하는 인물은 **틸리아 양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인도자란 그렇습니다. 인간의 도덕과 이성을 초월한 원리의 형상화, 유한자가 제어할 수 없는 크나큰 위험,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뻐기는 유한자에게 무한을 보여주며 겸손을 가르치는 존재, 그 무한에 마음을 연 사람에게는 영원한 동반자. 바람이 나를 시원하게 해준다고 나를 위해 부는 것은 아니고 광풍이 불어 내 집과 밭을 망친다고 내게 악의를 품은 것은 아니듯이 우주는 어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나는 우주의 일부이며 이해할 수도, 제어할 수도 없는 그 무한과 인격적 관계를 느낄 수도 있죠. 그리고 그 접점에서는 때로 놀라운 기적이, 때로는 두려운 사건이, 때로는 있을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그건 모두 인간적 관점일 뿐이죠. 무한의 관점에서는 모두 당연한 흐름의 일부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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