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g Archives: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외전 – 폭풍의 전조

아사히라군과 함께 한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10년 후 에필로그 중 하나입니다. 또 다른 그림자가 비슷한 시기에 아우터 림에서 벌어지는 얘기라면 이쪽은 수도 코루선트가 배경이죠.

1118060570.html

요약

고향 행성 샤캄에서 공화국 대사로 지내는 마스터 모트가 회의차 코루선트로 오는 것을 마중나간 펠로스는 마스터 모트와 마스터 모트를 모셔온 그의 제자 티온과 재회합니다. 그리고 비행장으로 그를 미행해온 어린 파다완 레이안 시네란과 10년만에 조우하지요. (코루선트에 있을 때 종종 먼발치에서 지나가기는 했겠지만요.) 레이안은 당돌하게도 펠로스의 기량을 시험하려고 그랬다며 펠로스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합니다. 티온은 질투나서 기가 차서 말도 제대로 못하죠.

마스터 모트가 레이안을 맡은 동안 펠로스와 티온은 군사 전문가 회의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티온은 공화국 영역 밖의 아우터 림에서 만달로르인이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는 실태를 보고하고, 엄연히 공화국 영역 밖인데 대응을 해야 할지, 한다면 어떻게 할지 서로 의견이 갈립니다. 펠로스의 주장 끝에 일단 지켜보되, 만달로르인이 공화국 영내로 쳐들어온다면 대응책을 계획은 해야 한다는 보고를 공화국 의회에 올리기로 합니다. 나중에 펠로스와 티온은 공화국의 문제와 내부 분열, 10년 전의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스터 모트를 찾아간 펠로스는 레이안이 의자에 앉은 채 라이트세이버를 든 마스터 모트에게 덤비다가 번번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마스터 모트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면 공의회에 펠로스를 레이안 스승으로 임명하도록 권유하겠다는 말을 듣고 도전하고 있었던 것이죠. 펠로스는 세이버 기술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라이트세이버는 힘과 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레이안이 혼자 연습하는 동안 마스터 모트와 펠로스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스터 모트는 레이안이 처음 제다이가 됐을 때의 펠로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며 놀리고, 펠로스는 겉모습만 적응했을 뿐 아직 내적 의문과 공허는 가시지 않은 심경을 약간은 토로합니다. 그리고 공화국에 서서히 다가오는 혼란을 내다보며 마스터 모트는 한탄하고, 펠로스는 오히려 설렙니다. 자신의 허무를 채워줄 그 거대한 폭풍의 예감에.

감상

10년 후의 펠로스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면서 이 플레이 이전에 아군과 펠로스라는 인물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거기서 내린 결론은 펠로스는 가혹했던 삶 때문에 사람도 세상도 믿지 못하는 공허를 호승심과 싸움으로 채우는 인물이라는, 꽤 어두운 전망이었죠. 또 다른 의미에서 망가진 제다이랄까요.

자락스, 아를란, 펠로스, 티온 네 전직 시스는 하나같이 성장하며 느낀 결핍을 채우려고 몸부림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중에서 자락스가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했지만 그만큼 가혹한 선택을 해야 했고, 아를란은 감정적으로 부서지면서 비로소 평정을 찾았고, 티온은 공화국 외곽의 쉴새없는 위험 속에서 자신을 증명하며 의미를 찾는 것 같아요. 가장 멀쩡해 보이고 위치도 안정적인 펠로스가 사실 속으로는 가장 허무감에 몸서리치는 건 역설적인 일입니다. 과거를 극복하려면 그만큼 반대급부를 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잔인한 거래일 지도요.

그와 관련해서 전직 시스가 과연 정말 제다이로 인정은 받는 건지도 아군과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우터 림을 떠도는 자락스와 아를란이나 공화국 경계 외부 무법지대를 전전하는 티온을 보면, 제다이라는 이름 줄 테니 아우터 림에서 잘하는 싸움질 하고 여기서 우리 불안하게 하지 말라…는 느낌이랄까요. 가장 자기몸 사릴 줄 알고 정치력이 있는 펠로스가 그나마 코루선트에 붙어있죠. 마스터 아카마르가 사망한 이후 정치력 있는 제다이가 워낙 부재하기도 해서 가능한 일이었을지도요.

펠로스의 스승은 마스터 사두르이지만, 사두르는 그가 한 맹세의 무게 때문에 펠로스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다는 느낌입니다. (그저 아카마르가 원흉) 오히려 마스터 모트가 이전부터 펠로스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느낌이었죠. 사람을 못 믿는 펠로스가 답답한 속내를 마스터 모트에게 조금이나마 털어놓은 건 대단한 일이기도 하고요. 단 플레이에서는 마스터 모트가 많이 노쇠한 모습을 통해 한 시대가 끝나가는 암시도 했으니, 시간의 무자비한 흐름은 씁쓸한 법이죠. (그 양반 얼마 안 남았 (?))

그 외에 위험으로 다져지면서 더욱 날카롭고 치명적인 느낌이 된 티온, 미래의 시스로드 레반으로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는 당돌한 레이안, 제독으로 몇 년 내에 승진할 사울 카라스 대령, 그리고 서서히 커지는 만달로르의 위협 등도 즐거웠습니다. 여기서 한 10년 더 가면 지금 어렴풋이 다가오는 새로운 혼란이 거대한 물결이 되어 공화국을 덮쳐오겠지요. 그리고 구공화국의 기사단 게임 시대가 되면서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것입니다.

[공화국의 그림자] 신뢰

공화국의 그림자 종결 두 달쯤 후의 이야기입니다. 중간쯤 가서 좀 야합니다.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흑흑)
I.

따뜻한 밤공기 속에 도시의 야경이 별의 바다처럼 빛났다. 20층 높이에서 도시를 내다보는 방안에는 촛불이 밖의 영롱한 빛무리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따뜻한 빛을 흩뿌렸다. 은은한 그 빛은 은제 식기에, 와인잔에, 고급 도자기에 비치면서, 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젊은 남녀의 얼굴에 친밀한 온기가 되어 깃들었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의 나직한 목소리와 웃음소리마저 빛이 되어 금빛과 주황색으로 물든 저녁에, 부드럽고 너그러운 그늘에 녹아들었다.

마침내 반쯤 먹은 요리 접시를 밀어내며 다룬은 몸을 뒤로 기댔다. 긴 다리를 앞으로 뻗으면서 그는 미소를 지었다.
“더는 도저히 못 먹겠군요. 요리사에게는 최고였다고 전해주십시오.”
“다 먹지 않으면 파비오가 서운해할 거에요.”
쟈네이딘은 촛불 너머로 그에게 웃었다. 따스한 빛에 검은 눈이 부드럽게 빛났다.
“그렇잖아도 오르가나 공이 고초를 겪으시고 여윈 것 같다고 그가 특별히 준비한 요리랍니다.”
“마음은 있지만 무리로군요. 혹시 대신 드셔달라고 하면 실례가 되겠습니까?”
다룬은 마주 웃었다. 오른쪽 눈에는 장난스러운 빛이 어렸지만, 흘러내린 머리에 가린 왼쪽 눈은 어둠 속에 순간 부자연스러운 빛을 발했다. 쟈네이딘은 짐짓 작은 한숨을 쉬었다.
“파비오가 마음 상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죠.”
쟈네이딘 앞에 접시를 놓아주고 다룬은 그녀가 음식에 열중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의 빈 접시와 가득 찬 와인잔을 마치 먼 곳에서 보듯 지켜보았다.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자신의 빈 잔을 스스로 채우면서 다룬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15년 묵은 테레아산을 가져온 것입니다만. 왕녀님께서 늘 좋아하셨지요.”
쟈네이딘은 천천히 접시에서 눈을 들며 입을 닦았다. 그녀는 다룬과 시선을 마주쳤다.
“아닙니다… 그저 오늘밤에는 마음이 나지 않는군요. 미안합니다.”
“성의를 봐서 건배라도 하지요.”
다룬은 잔을 들었다.
“알데란의 미래를 위하여.”
쟈네이딘은 고개를 끄덕이고 작게 웃어보이며 그와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다룬이 잔을 거의 단숨에 비우는 동안 입술을 살짝 축이고 잔을 내려놓았다.
“알데란의 미래 정도로는 술 생각이 나지 않으시는 모양이군요.”
다룬의 눈빛과 미소에는 점점 날카로운 빛이 깃들었다.
“그렇다면 공화국은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제다이…”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면 나이트 자락스 토레이를 위하여?”
저녁의 따스하던 친밀감은 사라져 버렸다. 방안에 가라앉은 깊은 그늘 속에는 불명확한 형체들이 스멀거리며 떠돌았다. 쟈네이딘은 굳은 얼굴로 그를 마주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언제 말씀하실 생각이었습니까? 아니면 영영 숨기실 생각이셨는지요, 전하?”
빈정거리며 다룬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다시 자기 잔을 채웠다.
“그 숭고한 제다이 양반이 아버지가 될 예정이라는 걸 말입니다.”
쟈네이딘은 창백해지면서 손으로 상을 짚었다. 손에 나이프 하나가 밀려나면서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다룬도 쟈네이딘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마치 시선이 덫에 걸린 것처럼 서로 마주볼 뿐.
“어떻게… 내 주변에 사람을 심었나요? 혹시 내 주치의가?”
쟈네이딘의 목소리는 새되게 높아졌지만, 다룬은 피곤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중요합니까? 맙소사, 쟌느…”
왕녀를 보는 그의 눈빛에는 갑자기 연민과 절박감이 어렸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모할 수가 있습니까? 알고 있으면서…”
그의 시선은 쟌느의 가득 찬 와인잔으로 향했다.
“아직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는 상에 양손을 짚으며 쟈네이딘에게 가까이 몸을 숙였다.
“지금이라도 조용히 처리하면-“
“난 그럴 생각이 없어요.”
쟈네이딘은 무릎에 얹은 냅킨을 양손으로 쥐어짜면서도 흔들림 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그녀를 처음 보는 듯 얼굴을 살피다가 다룬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럴 생각이 없다…라.”
그는 장갑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실소를 흘렸다.
“그래서, 배가 남산만해져서 결혼식을 올리자는 겁니까?”
“곧 얘기하려고 했었어요. 결혼식도 앞당기자고 하려고…”
쟈네이딘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오늘 저녁은… 오늘만은 이렇게 둘이서 보내고 싶었어요.”
“날 침대로 끌어들이려고 말입니까? 내 아이라고 믿게 하기에는 어차피 너무 늦었을 텐데요.”
다룬의 차가운 대답에 쟈네이딘이 확 일어서자 식탁 위의 식기와 잔이 흔들리며 짤그랑거렸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맹세코 그런 생각은…”
그 눈빛에 담긴 안타까운 진심에서 눈을 돌리며 다룬은 잔을 들고 일어나 창가로 갔다. 야경을 등진 채 그는 방안의 빛과 어둠 너머로 쟈네이딘을 마주보았다.
“나와 결혼하려는 이유가 뭡니까?”
낮고 지친 목소리는 쉬어서 나왔다.
“왕가를 지키려고? 알데란의 평화를 위해서? 뱃속의 후레자식을 키워줄 얼간이가 필요해서?”
발끈하며 뭔가 대답하려다가 쟈네이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탁자 뒤에서 걸어나와 그의 앞에 와서 섰다.
“셋 다에요.”
다룬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왼눈을 가린 머리칼 뒤로 의안이 불안정하게 깜박거렸다. 쟈네이딘이 한 발짝 다가와 뺨에 부드럽게 손을 대자 그는 마치 얻어맞은 것처럼 움찔했다.
“그리고…”
쟈네이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그 세 가지가 이유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 얼간이가 맞아요.”
“…가봐야겠습니다.”
다룬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손을 떼어냈다.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그는 잔을 창틀 위에 내려놓고 문으로 걸어갔다.
“다룬…”
문이 열리면서 복도의 불빛이 방안으로 길게 비쳐들었다. 그가 돌아보지 않고 나가자 방은 다시 촛불로 얼룩진 어둠에 잠겨들었다. 쟈네이딘은 잠시 창가에 서서 도시의 차갑게 빛나는 야경을 내다보다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II.
“결혼식을 앞당겨야겠습니다.”
응접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오르가나 내외는 아들을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았다. 왕녀와 식사하러 도시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로 찾아간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아, 머리는 흐트러지고 눈빛은 형형한 채로 들이닥쳐서 인사 하나 없이 내뱉은 말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괜찮느냐.”
알레산드로스 오르가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상에서 회복하고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 아들을 도우러 부부가 테레아에서 본가로 올라온 이래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늘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의아해하면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기색은 역력했다.
“다룬?”
엘리리아 오르가나는 아들에게 걱정스럽게 다가갔다.
“무슨 일 있었니? 좀 앉으렴. 와인이라도-“
“아뇨. 아닙니다.”
다룬은 주춤주춤 물러났다. 코루선트 전투 이후로 생긴 접촉 기피는 시간이 흐르면서 나아졌지만,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질 수 있다는 것은 의사도 이미 경고했었다.
“결혼식 준비는 어머니가 책임지고 계시죠. 얼마나 앞당길 수 있으십니까? 두 달 후면 될까요? 한 달?”
“얘야…”
어쩔 줄을 모른 채 엘리리아는 문간에 서서 금방이라도 도망칠 듯한 아들을 바라보았다. 역시 다룬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알레산드로스가 등뒤에서 다가와 어깨를 붙들어주자 엘리리아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국가 행사인데 그렇게 급하게는 안 된다. 왕가와도 의논을 해야 하고-“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데요!”
다룬이 언성을 높이자 엘리리아는 흠칫했다. 알레산드로스는 얼굴이 굳었다.
“다룬! 지금 어머니에게 무슨…”
“전 지금이라도 아름다운 신부를 맞이하고 싶어서 돌아버릴 지경이란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당장 내일이라도 혼인 신고만 하고 끝내버리면 안 된다고 누가 그럽니까.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파산할 국왕이?”
경악해서 굳어버린 부모를 잠시 보다가 다룬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름답고… 정숙한 내 아내를 데려와야죠. 동화 속 공주님처럼…”
어느새 복도까지 물러나서 복도 벽에 기대어선 다룬은 허물어지듯 주저앉았다. 흐느낌 같은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엘리리아가 다룬을 달래서 일으키는 동안 알레산드로스는 하인 드로이드를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의사를 부르게.”
그리고 잠시 생각하다가 그는 덧붙였다.
“왕녀님께도 통신을 보내도록. 내가 직접 통화하겠네.”
III.
눈을 떴다가 다룬은 방안에 가득한 햇살에 눈이 부셔서 도로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명암 적응이 빠른 왼눈의 의안만 살짝 떴다. 누군가 있었다. 침대가에 앉은 사람의 모습이…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그게 누구인지 깨닫고 다룬은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룬! 괜찮아요?”
옷자락을 바스락거리며 쟈네이딘이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다룬은 눈을 뜨며 천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왕녀님. 이곳에는 어인 일로?”
“아픈데 약혼녀를 부르는 건 당연하잖아요. 기분은 좀 어때요?”
그의 시야 가장자리에 나타난 쟈네이딘을 쳐다보지 않고 그는 대답했다.
“멀쩡합니다. 홀몸도 아닌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거동하실 일은 아니었지요.”
쟈네이딘은 한숨을 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다룬. 날 좀 봐요. 어서.”
이를 악물고 천장을 노려보다가, 쟈네이딘이 꿈쩍도 하지 않자 마침내 다룬은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그마한 손이 멱살을 잡으면서 억지로 일으키자 세상이 순간 기울어졌다. 그 찰나 동안 그는 오랜 악몽에 빠져들었다. 멱살을 잡아 벽에 밀어붙이던 무자비한 손, 등뒤에 세게 부딪혀 오며 호흡을 몰아내던 충격, 그리고 벗어날 수도 무시할 수도 없이 머리에, 눈에 파고들던 고통-
찰싹. 고개가 돌아가면서 그는 다시 햇살 가득한 침실로 돌아왔다. 쟈네이딘이 멱살을 잡은 손을 놓자 도로 침대에 나자빠진 그는 팔꿈치를 짚어 몸을 반쯤 일으키며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를 보았다. 뺨이 가볍게 화끈거렸다.
“왕녀님…”
“이 구제불능의 바보.”
감정 없이 말하면서도 그녀는 거칠게 침대가 탁자에 있는 컵에 물을 따르고 약병 두 개에서 알약을 손에 덜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와서 한 손에는 알약을, 다른 손에는 물잔을 우악스럽게 쥐어주었다.
“안테르 선생님 처방이에요. 당장 먹어요.”
거부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겁이 난 그는 재빨리 약을 입에 털어넣고 물을 마셨다. 컵을 도로 받아든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그는 입을 열었다.
“저기… 구타도 의사의 처방입니까?”
“그건 내 처방이에요.”
다시 쟈네이딘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는 움찔했지만, 그녀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의 품에 가득 안겨오자 팔을 둘러주는 동작은 자동적이었다. 코루선트 상공에서 다쓰 세데스를 만난 이후로는 부모의 포옹마저 공포스러웠지만, 그녀만은 언제나 예외였다.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예외.
“결혼식을 앞당겨야겠다는 건 또 뭐에요?”
그의 어깨에 대고 말하는 쟈네이딘의 목소리는 불분명했다.
“결혼하기도 전에 아이가 태어나면 좀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쟈네이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검고 부드럽고 따뜻한.
쟈네이딘은 그의 가슴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흘러내린 머리칼 속에 두 사람만의 공간을 만들며.
“내가 그랬죠? 구제불능의 바보라고.”
그녀는 조그마한 주먹으로 다룬의 가슴을 내리쳤다.
“괴로우면 놓아버리고, 싫으면 헤어지면 되잖아요. 나 때문에 그렇게 아프면 파혼하고, 내전을 일으켜서 스스로 왕이 되어버려요. 그럴 수 있는데 왜…!”
그가 어깨를 붙잡아 확 끌어안자 쟈네이딘은 그의 위로 비틀 넘어졌다. 목을 끌어안으며 그녀는 고통스럽게 속삭였다.
“똑똑한 사람이 왜 그렇게 바보같아요?”
“왕녀님이야말로 어째서?”
쟈네이딘을 끌어안은 채 다룬은 햇살이 눈부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부부가 되든 되지 않든 우리는 정적입니다. 이렇게까지 큰 약점을 제게 쥐어주는 것이 상식적인 행동일까요?”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다룬은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주었다. 그녀의 온기를, 숨결을, 향기를 들이쉬며.
“그 사람이… 내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죠.”
쟈네이딘은 그에게 몸을 붙여오며 말했다. 작게 찔러오는 아픔은 감정의 습관일 뿐이라고 다룬은 자신에게 되뇌었다.
“등뒤를 맡기며 싸울 수 있는 친구란 정말이지 흔하지 않다고요.”
“자신에게 이미 등을 맡긴 친구라면 신뢰할 수밖에 없겠지요.”
대꾸하면서도 머리가 멍했다. 그녀의 체온이 이렇게도 가까운 동안에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어려웠다. 부상 이후 자신의 것 같지 않았던 몸이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정적이라 하더라도요.”
속삭이며 쟈네이딘은 입술로 그의 입을 덮쳐왔다. 더 이상 어떤 계산도, 주저도 없었다. (아래층에 부모님이 계신다는, 10대 소년 같은 걱정이 순간 스쳐가기는 했지만.) 몸과 영혼에 넘쳐흐르는 열기에 그는 기꺼이 항복했고, 시스 로드의 손에 죽었던 그는 그 기나긴 오후 동안 쟈네이딘의 품속에서 되살아났다.
IV.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저택 안쪽에서부터 울려나오자 다룬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함께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남자들 역시 다행스러운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우렁찬 울음이군요. 축하드립니다.”
만면에 웃음을 지은 나스 브레이텍에게 다룬은 정중히 마주 인사했다. 주변에서 어깨를 두드려주고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동안 누군가가 와인을 따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잔을 채웠지만, 아직 아무도 다룬에게는 권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한 가지 할 일이 있었으므로.
다룬이 문 맞은편에 서자 함께 기다리고 있던 친구와 친척들은 그와 문 사이에 공간을 비워주었다.간간히 나지막한 목소리만 들려오는 고요 속에 다룬은 복도에 신경을 집중했다. 잠시 후 서두르지 않는 발소리가 가끔 칭얼거리는 울음소리와 함께 들려왔고, 문이 칙- 열리면서 통통하고 쾌활한 여인이 강보를 안고 들어섰다.
“강축드립니다.”
산파는 방에 들어서기 전에 깊이 허리숙여 인사했다. 방안은 이제 조용했다. 고대와 같은 의미는 없었지만, 이것은 엄숙하고 역사가 오랜 의식이었다.
“부인께서는 순산 끝에 건강하시며, 순조롭게 회복하고 계십니다.”
다룬은 안도감으로 순간 몸이 풀렸다. 산파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소식이었고 뭔가 비상사태가 있었다면 연락이 왔겠지만, 그래도 말로 확인하자 새삼 안심이 되었다. 여기서 할 일만 끝나면 아내의 침대가로 달려가리라. 그리고 그녀가 잠든 동안 손을 붙들고 자신 곁에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확인하리라고 그는 다짐했다.
산파는 방을 가로질러 다룬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강보를 그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이불을 풀어헤치자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산파는 다시 일어나서 깊이 인사하더니 몇 발짝 물러났다.
이불 위에서 몸을 뒤틀며 우는 아기를 보고 방안은 기대감으로 술렁였다. 건강하고 튼튼한 사내아이, 오르가나의 이름을 이을 후계자를 보며. 그러다가 곧 방안은 다시 엄숙하게 가라앉았다. 아직 의식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쪼글쪼글한 아이를 내려다보며 다룬은 잠시 역사의 연속성에 전율을 느꼈다. 그도, 그리고 알데란 귀족가의 모든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나자마자 이렇게 아버지의 발치에 내려놓였다. 기록에 남아있는 역사 이래, 하나하나 모두가 차례대로.
개인적으로 그는 바보같은 전통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잘못 넘어져서 아이를 깔아뭉개기라도 하면 어쩌라는 말인가. 게다가 이제 이 의식에는 이전과 같은 의미는 없는데.
수천 년 전, 고대에는 이 의식에는 형식을 훨씬 넘어서는 의미가 있었다. 아버지가 발치의 갓난아이를 안아올리지 않으면 아이는 얼어죽거나 굶어죽도록 밖에 내쳐졌다. 혹은 죽여서 내버리기도 했다. 생사여탈권. 불구로 태어났거나, 약하거나, 여자로 태어난 수많은 아이가 그런 식으로 아버지에게 거부당해서 죽어갔다.
그 중에는 어머니의 정절을 의심받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다룬은 생각했다. 부성을 확신하지 못한 아비의 질투에, 혹은 아내를 벌하겠다는 복수심에 얼마나 많은 갓난아이가 죽어갔을지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문명 시대인 지금은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아이를 아버지 발치에 내려놓는 것은 그저 형식적인 관습일 뿐이었고, 아이가 불구이거나 약하다면 아버지는 아이를 서둘러 안아올려서 이름을 지어준 후에 의료 전문가들과 함께 치료 방안을 의논할 것이다. 이제는 아버지가 아이를 거부한다고 아이가 죽어야 하는 그런 야만적인 일은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룬은 문득, 자신이 아이를 안아들지 않고 나가버리면 저들의 표정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파가 아이를 도로 안고 하얗게 질려서 쟈네이딘에게 돌아갈까? 이 자리에 모인 친지들이 수근거릴까?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향하자, 아이는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눈을 뜨고 있었다. 보랏빛 도는 푸른색이 아닌 검은 눈. 그와 쟈네이딘과 같은… 아직 눈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다룬은 아이가 자신과 조용히 눈을 맞추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좀 더 잘 보려고 그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변에서 흥분해서 웅성거리는 소리는 무시했다. (형식일 뿐인데 뭐 그렇게 좋아할까.) 갓 태어났는데도 아기의 머리칼은 숱이 많고 검었다. 머뭇머뭇 손을 뻗어 만져보자 부드럽고 따뜻했다. 문득 아이가 춥겠다는 데 생각이 미친 그는 서둘러 강보를 여며주었다.
강보에 싸인 채 꼬물꼬물 손발을 움직이는 이 조그만 생명은 아내가 준 선물이 아닐까 그는 생각했다. 충돌하는 이해와 야심 속에서 그녀가 쥐어준 치명적인 약점, 그들이 서로 품을 수 있는 만큼의 신뢰.
그 신뢰의 제물이 된 아이에게는 자신을 스스로 희생 제물로 내어주고 그늘 속으로 사라져간 이들의 이름이 어울리겠지. 미리 상의한 것과는 좀 달랐지만, 아내는 이해할 것이다.
강보에 감싼 아이를 안고 다룬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이불 틈새로 조막만한 손을 내밀고 휘두르는 갓난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방 구석구석까지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루바트 자락스 오르가나. 환영한다, 아들아.”
마지막 장면에 나온 풍습은 고대 로마에 실제 있었던 풍속입니다. 알데란 문화는 제게는 왠지 로마 내지는 그리스식 이미지로 떠오르기도 하고, 또 상황에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고요. 뭐 결론은 자락스 지못미 (?)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외전 – 또 다른 그림자

이방인님과 동환님과 2화에 이어서 한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즉플입니다. 본 캠페인보다 10년 후 이야기로, 끝과 시작으로부터 몇 달이 흐른 시점입니다. 로그는 집에 가면 보충하지요.

요약

아우터 림의 프랄락시아 항성계에 있는 데오르 행성에 도착한 아를란과 멜리나는 얼마 전에 데오르에서 시스를 대거 몰아낸 정체불명의 포스능력자를 찾아다닙니다. 그러다가 멜리나는 묘한 포스 기척을 느끼고, 그들은 그 기척을 미행해서 가면을 쓰고 의수를 사용하는 포스 능력자와 대면합니다. 파다완 제쉬 로드레스 역시 마스터 자락스 토레이의 명으로 데오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가 멜리나의 포스 기척을 따라와서 가면 쓴 검객과 대치합니다.

시체를 끝내 발견하지 못했던 전 나이트 로어틸리아 혹은 피나틸리아와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인 가면 검객의 포스 기척과 목소리에 아를란과 멜리나는 심하게 동요합니다. 그러나 가면 검객은 로어틸리아나 피나틸리아 이야기에 대해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며 부인하고, 홀로크론 데이터카드를 제쉬에게 던져서 블래스터 조준을 어긋나게 하고 탈출합니다.

가면 검객이 제쉬에게 던진 홀로크론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항성계 외곽에 있는 버려진 소행성 채굴 기지의 위치와 접근 암호 등이 나타납니다. 아를란과 멜리나는 그 연구소로 바로 가기로 하고, 제쉬는 자락스에게 연락을 취합니다. 아를란이 이미 기지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자락스는 전투선 두 척만을 이끌고 급히 쫓아갑니다.

우주선 ‘시커’를 타고 홀로크론에 나온 좌표에 도착한 아를란과 멜리나는 좌표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우주선 하나가 그 허공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지요. 10년 전 공화국을 파괴할 뻔했던 그림자 프로젝트가 이곳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들은 멜리나의 포스 능력으로 방어 시스템을 돌파하고 기지에 들어갑니다.

기지에 들어간 두 사제는 연구소 인원이 학살당한 것을 목격하고, 그 중 상당수가 대피한 통제실 앞에서 가면 검객을 막아섭니다. 과거의 망령을 청산하고 있다는 가면 검객의 말에 멜리나는 10년 전 로어틸리아가 저지른 학살에 대해 추궁하지만, 가면 검객은 역시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합니다. 그리고 쓰러졌던 경비 하나가 블래스터를 쏘자 멜리나를 포스로 밀어내서 구해주고 출구로 도망치지요.

기지에 도착한 자락스는 10년 전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그가 이끌고 온 전투선은 연구소에서 아무도 탈출하지 못하게 막을 것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멜리나가 외벽에 뚫은 구멍을 통해 기지로 들어가지요. 기지에 들어온 그는 막 도망쳐 나오는 가면 검객과 마주칩니다.

가면 검객이 자락스와 아를란과 멜리나에게 앞뒤로 포위당한 동안, 밖에서는 시스 전투선이 자락스가 이끌고 온 제다이들과 우주 전투를 벌이고, 신토넥스 경비대장이었던 시스 제이 톨란이 이끄는 돌격부대가 자락스에 뒤이어 기지에 들이닥칩니다. 그들이 세 제다이와 전투를 벌이는 동안 가면 검객은 다시 통제실로 향하고, 톨란 역시 뒤따릅니다. 자락스는 아를란과 멜리나에게 전투를 맡기고 이들을 뒤쫓지요.

제이 톨란 앞에서 피나틸리아의 말투와 성격을 보이며 가면 검객은 그와 대치하고, 자락스도 합류하면서 이들은 서로 다른 목적을 확인합니다. 가면 검객은 연구소를 몰살시켜서 그림자 프로젝트를 영원히 끝내는 것, 톨란은 그림자 기술을 손에 넣는 것, 자락스는 그림자 프로젝트를 없애되 인명 피해 없이 하는 것.

그러나 정작 통제실은 이제 비어있고, 자락스는 연구소에서 빠져나오는 탈출정을 시스 함선이 포획했다는 부하의 보고를 듣습니다. 제이 톨란은 연구원이 빠져나올 시간을 확보하고 우주에서 그들을 손에 넣으려고 부하들을 이끌고 들이닥치고, 가면 검객과 자락스의 주의를 끌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좋아하는 것도 잠시, 가면 검객이 스위치를 하나 꺼내서 누르자 자락스의 부하들은 시스 함선이 사라진 방향에서 폭발이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멜리나 역시 수많은 생명이 우주공간에서 꺼져가는 것을 느끼며 충격에 빠지지요. 자락스는 가면 검객의 무자비한 방식을 탓하지만 그녀는 다시 탈출하고, 제다이들은 제이 톨란을 끌고 귀환합니다.

데오르로 돌아가는 길에 자락스와 아를란은 제다이인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를 나눕니다. 생명의 무게를 말하는 자락스에 이어 생명을 구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는 멜리나에게, 아를란은 제다이가 되든 되지 않든 스스로 하는 자유로운 선택이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감상

이렇게 10년 후의 재회를 해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특히 가면 검객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았지만, 그래서 그만큼 여운도 남은 플레이였던 것 같습니다. 가면 검객은 죽은 쌍둥이 곁에서 깨어난 로어틸리아 혹은 피나틸리아며, 자신도 어느 쪽인지 모른다는 게 다수설이지만요.

10년 전의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새로운 인물인 제쉬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름 있는 인물은 전부 본편 캠페인이어서 더더욱 동창회(?) 느낌이 났죠. 활극 중심인 내용 와중에도 본편 캠페인의 중심을 이루었던 철학적, 도덕적 대립이 핵심을 이루고 있는 점이 즐거웠습니다.

세 제다이는 연구원을 학살하는 가면 검객을 막아서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의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는 점은 잔인한 진실이기도 합니다. 그림자 프로젝트만큼 위험한 기술의 존재마저 지워버리려면 시설과 데이터뿐 아니라 사람까지 사라져야 하는 게 사실이니까요. 관련 인원은 전부 죽었고 기지는 뒤따라온 자락스 부하들이 폭파했을 테니 아마 공화국에 대한 그림자 프로젝트의 위협은 여기에서 끝난 듯합니다. 과거의 망령을 청산하는 과거의 망령의 결단으로 말이죠. (그러나 만달로리안과 시스와 스타포지는 건재 (묵념))

제목인 ‘또 다른 그림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림자 프로젝트의 부활을 뜻하고 있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 그림자와 같았던 베오나드 코티에르의 후계자격 가면 검객이 나타났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빛이 밝으면 그림자도 짙다고 하던가요. 다수의 평화 뒤에는 언제나 자신의 영혼을 내놓을 준비가 된 그늘 속의 공로자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선택관계를 부인하고 원칙을 타협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락스 같은 사람도 분명 있고, 또 있어야 하지만요.

캠페인 시간상 10년이 지나서 많은 것이 달라졌는데도 여전한 것도 많았습니다. 자락스는 이 양반이 나이를 먹긴 먹었나 싶을 정도로 하는 짓이 똑같고, 아를란은 여전히 삽질하고, 제이 톨란은 여전히 안습이고요. 자락스나 아를란처럼 개과천선하는 인물도 재미있지만, 톨란처럼 변함없는 시스도 어찌 보면 오히려 유쾌합니다. 탐욕스럽고 기회주의적인 인물이지만 크게 악인이라는 생각은 안 든달까요. 앞으로도 뉘우침 없이 이기적인 길을 걸어주기를 왠지 응원하고 있는 저였습니다.(…)

본편 캠페인 때는 활약할 나이가 아니었던 신진 파다완 멜리나의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출중한 재능, 대담한 판단력과 행동력 (벌써부터 고생길이 훤한 아를란에게 묵념을), 그리고 어려서 받은 가혹한 충격에도 흔들림 없는 원칙을 보면 분명 뛰어난 제다이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10년이 안 돼서 다시 닥쳐올 전란을 생각하면 훌륭한 제다이는 하나라도 더 있어야겠죠.
즐거운 플레이 함께해주신 동환님과 이방인님께 감사드립니다. 비록 캠페인은 끝났지만, 함께한 세계의 생명력은 변함없이 지속하겠죠. 머나먼 옛날의 머나먼 우주에서, 언제까지나.

[공화국의 그림자] 끝과 시작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종결 약 10년 후의 이야기입니다. 이걸 기반으로 캠페인 주인공들의 10년 후를 그리는 공화국의 그림자 에필로그 프로젝트 (1:1 단편 플레이)를 해볼 수도 있겠군요.


방안은 조용했다. 둥근 창밖으로는 멀리서 말소리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창밖에 드리운 나뭇가지를 통해 햇빛이 비쳐드는 명상실에는 깊은 고요가 감돌았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는 사내는 그 침묵에 조금도 동요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존재로 방은 더 조용해지는 느낌이었다. 머리에 쓴 로브 두건에서 발끝까지 드리운 로브자락까지 미동도 없이, 어쩌면 정신마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는 침묵 속에 그저 존재했다. 침묵의 일부가 되어.

밖의 복도에서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어깨와 손을 늘어뜨리고 무릎을 조금 굽히며 문을 비스듬히 향했다. 짐짓 편안하면서도 어느 방향으로든 움직일 수 있는 준비자세를 숙련된 전투원이라면 알아보았으리라. 그에게 이것은 지금 필요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라는 것도.

발소리가 문앞에서 멎더니 미닫이문이 거의 소리없이 열렸다. 이윽고 인사를 하며 들어선 열네댓쯤 되어보이는 소녀는 긴 금발머리를 파다완의 갈색 로브 위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서면서 햇살이 순간적으로 눈에 비치자 소녀는 손을 들어 햇빛을 가리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랜만이다, 멜리나.”

창가에 선 제다이는 두건을 내리며 문을 똑바로 향했다. 짧게 깎은 검은 머리에는 살짝씩 잿빛이 엿보였고, 갈색 얼굴에는 눈가와 입가에 미세한 주름이 지고 있었지만 눈빛과 목소리는 서글서글했다.

“당신이?”

멜리나의 표정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너로서는 ‘나이트 아를란’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구나.”

사내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담담했다.

“‘스승님’도 좋겠다. 공의회에서 명령받았으니.”

“난 스승을 정해달라고 한 적 없어요.”

여전히 문가에 선 채 멜리나는 팔짱을 꼈다.

“당연히 그렇겠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아를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허를 찔린 듯 멜리나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들어오겠느냐?”

천천히 멜리나는 문을 닫고 방에 들어와서 섰다. 아를란이 바닥에 정좌하고 앉자 그녀는 경계하는 기색으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둘 사이로는 창문으로 비쳐드는 햇빛이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쳤다.

침묵 속에서 나이트 아를란은 편안하게 멜리나를 마주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깨달음 깊은 제다이로 보고 지나갔지만,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면 공허할 정도로 평온한 시선과 기쁨 없이 잔잔한 미소에서 폐허의 평화를 알아보았다. 아직 서른 남짓이었지만 거의 열 살 연배의 스승과 동년배로 보이는 그에게는 부서진 돌틈에 자라는 풀포기, 무너진 지붕으로 비쳐드는 햇살의 고즈넉함이 있었다.

드로이드가 하나 들어와 두 사람 앞에 차 한 잔씩을 놓고 나간 후에 아를란은 입을 열었다.

“잘 지냈느냐?”

멜리나는 뻣뻣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럭저럭요.”

“그래, 내가 스승이 되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

순간 멈칫했다가 멜리나는 그를 도전적으로 마주보았다.

“잘 아시네요. 솔직히…”

“솔직히?”

“도대체 내가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돼요?”

멜리나는 다짜고짜 따져물었다.

“포스력은 나보다도 약한 시스 출신 스승을 붙여준다는 걸 말이에요. 당신.. 나이트 아를란이 우리집 응접실에서 엄마 목을 조르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왜…”

소녀의 목소리는 고통스럽게 잦아들었다.

“왜 그 모든 일의 한가운데에 있던 당신이…”

“뭐 굳이 내 변명을 하자면, 현직 제다이 나이트 중 너보다 포스 재능이 강한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

아를란은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은퇴하신 나이트 미셸이 비슷했을지 모르지. 감지력 면에서는 단투인의 나이트 드리엘이 훨씬 강하겠고, 오히예사 그 친구는 능력이 엉뚱해서 비교하기 어렵고… 내 포스 능력이 좀 떨어지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무례했다면 죄송했습니다.”

멜리나의 볼멘 사과에 아를란은 손을 저었다.

“죄송할 거라면 말하지도 않았겠지. 괜찮다.”

그 말에 멜리나가 헷갈린 표정이 되는 동안 아를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태평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시스 출신인 것도 사실이고, 너희 어머니를 공격했던 것도 사실이지. 지금와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아니로구나.”

“저기… 제가 한 말은 잊어주셔도-”

“내가 나이트 로어틸리아가 아니라는 점도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그건 다른 어떤 스승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너무나 태연하게,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 말의 의미를 멜리나가 이해하는 데에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이해한 순간 파란 눈이 커지면서 얼굴은 창백하게 얼어붙었다.

“지금 뭐라고…”

“네가 인정할 수 있는 스승은 하나밖에 없겠지만, 그건 동시에 네가 용서할 수 없는 단 한 사람이지. 네가 자신을 몰아붙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제다이로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 역시.”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죠!”

멜리나는 주먹을 꽉 쥔 채 반쯤 일어나 앉았다.

“나이트… 전 나이트 로어틸리아는 제 친구들을 학살한 살인자에요. 그런 사람을 생각하다니 제가 왜…!”

“그리고 시스에게 납치당한 너를 구출한 분이기도 하지. 너희 어머니 부탁으로 로크린에서 코루선트까지 너를 보호한 후견인이며,(주:http://wiki.storygames.kr/jedi/pc/til/secret 참조) 차갑도록 이성적이고 적에게는 치명적이었던… 이상적인 나이트.”

“차갑지 않았어요.”

멜리나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억지로 짜내는 듯 힘겨웠다.

“속내가 깊은 분이었고… 내게는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분이었어요.”

아를란이 무표정하게 찻잔을 내려다보는 동안 멜리나는 고통스럽게 물었다.

“그런 분이… 왜…”

그 의문이 방안에 무겁게 가라앉는 동안 아를란은 잠시 눈을 감았다. 고통이라기보다는 오랜 고통의 메아리가 얼굴에 스쳐갔다.

“그렇게 완벽해 보였던 제다이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전 제다이가 되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아를란은 천천히 눈을 뜨고 멜리나를 마주보았다. 멜리나는 오랫동안 생각한 말을 해서 그런지 차라리 후련한 표정이었다.

“나는 네가 의문을 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멜리나는 눈을 동그렇게 떴다.

“나는 너와 자란 환경이 좀 달랐고… 그래서 내게 제다이가 되는 것은 선택이었다. 어려운 선택이었지만, 평생 처음으로 한 선택이기도 했지.”

햇빛이 흐려지면서 창밖의 하늘은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를란이 찻잔을 집어들고 목을 축이는 동안 빗방울이 지붕과 밖의 나무를 톡, 톡, 톡 두드렸다. 역시 찻잔을 집어들고 홀짝거리면서도 멜리나는 시선을 아를란에게 고정했다.

“그래서 공의회에서 자라나는 너희들이 제다이가 되는 것이 정말로 너희의 선택인지 나는 의문이 있다. 물론 훈련이나 교육의 질은 월등하다만… 제다이의 길은 환경과 기대에 휩쓸려서 걷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본다.”

“그렇다면…”

멜리나는 찻잔을 두 손 사이에 돌리면서 출렁이는 찻물을 지켜보았다.

“저더러 제다이가 되지 말라는 말씀인가요?”

“조금 더 세상을 보고 결심해도 늦지 않다는 말이다.”

창밖에서 빗방울이 나뭇잎을 때리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아를란은 입을 열었다.

“로크린에 가보고 싶은 생각은 없느냐?”

“로크린…이요?”

멜리나의 표정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찼다.

“셀렌, 카론, 단투인… 그래, 넬반도. 그 모든 곳들을.”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는 투명한 눈빛으로 멜리나를 마주보았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오래 전에 했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네 어머니, 내 스승이신 마스터 토레이, 나이트 네루나, 레이디 미셸, 오히예사… 네가 그들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

“나이트 틸리아…가 했던 여행인가요?”

멜리나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려왔다.

“그 여행이 재난이었는지 행운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구나.”

아를란은 작게 한숨을 지었다.

“모든 것이 변한 것은 확실하지. 공화국, 공의회, 우리들… 그래, 나이트 로어틸리아와 그녀의 언니도.”

그가 조용히 일어서자 멜리나도 따라서 일어섰다.

“그 둘의 이야기도 해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네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아를란은 멜리나의 머리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 모든 이야기 속에서 너의 길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포스 안에서 너에게 주어진 길이 무엇인지… 그 속에서 네가 평온을 찾기를.”

충만한 침묵 속에 잠시 빗소리만이 울렸다.

“함께 가겠느냐?”

멜리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 번 끄덕였다. 아를란은 미소지으며 손을 떨구었다.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 같구나. 잘 부탁한다, 파다완.”

방에서 나온 두 사람은 각자의 숙소로 갈 채비를 했다.

“내일 또 이야기하자꾸나, 멜리나.”

빗물이 흘러내리는 출구 앞에서 아를란은 로브 두건을 덮어썼다.

“되도록 빨리 떠날 터이니 채비를 해두거라.”

그가 몸을 돌려서 가려는 순간 멜리나가 불렀다.

“아, 저… 스승님?”

“왜 그러느냐?”

아를란은 돌아보았다.

“스승…님은 평온을 찾으셨나요?”

비를 등진 채 잠시 멜리나를 마주보다가 아를란은 천천히 말했다.

“어려운 질문이구나. 어쩌면 평온을 찾는 것을 포기한 것이 나의 평온일지도 모르겠다.”

뭔가 대답할 말을 찾는 멜리나에게 아를란은 시리도록 공허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일 보자, 파다완.”

비를 뚫고 달려가는 나이트의 등뒤로는 로브자락이 긴 그림자처럼 따랐다. 멜리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어둑한 복도를 따라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잿빛 고요 속에 빗소리만이 시간의 조그마한 발걸음처럼 끝없이 톡, 톡, 톡 들려왔다.

[공화국의 그림자] Hero

공화국의 그림자 마무리 외전 중 하나입니다. 최종화에서 쟈네이딘이 우주선에 탄 자락스에게 작별을 고하는 대목 전후입니다. 이런 건 꼭 할일 많을 때 떠오르지..(…)

“영웅 좋은 게 뭔지 알아? 놈들이 일찍 죽어줘서 여자가 남는다는 거지.”
– ‘까마귀 연회’ 中 (주:George R. R. Martin의 A Feast for Crows 중 제이미 래니스터의 사촌 데이븐 래니스터 경의 대사입니다.)

아침 햇살 속에 코루선트의 첨탑들이 눈부셨다. 비록 아직 건물이 무너진 곳이 여기저기 상처처럼 남아 있어도, 다시 평화를 되찾은 도시의 모습은 긴 폭풍을 헤쳐나온 배처럼 당당하고 평온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건물 꼭대기에 선 남녀는 그런 도시 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함선들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안전과 풍족에 등을 돌리고 막막한 미지로 뛰어드는 그 여행의 시작을 시선으로 따르며.

“만족하나요?”

쟈네이딘은 다룬 오르가나를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이마 위에는 가느다란 왕관이 반짝이고 바람에 긴 옷자락이 날리는 모습은 마치 성대한 행사에라도 나온 것 같았지만, 주변에 기자나 관중은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히 푸르른 하늘 아래 둘뿐.

“제 의도와 부합하는 결과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녀 두 발짝 뒤에 선 다룬은 환한 햇살에 한 조각 그늘처럼 짙푸른 알데란 제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불량한 자세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길어서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에 덮인 왼눈이 가끔 부자연스러운 안광을 발했다.

“이제 적어도 우리 생전에 다시 제다이가 중앙에서 의회에 도전할 정치적 영향력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는 마스터도 남아있지 않고요.”

쟈네이딘은 어깨 너머로 그에게 읽기 어려운 눈빛을 던지다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지나치게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작게 긴장한 어깨선에는 부서질 것 같은 불안정함이 있었다.

“…그렇겠지요. 저 많은 제다이들의 죽음에 그런 효용이라도 있다니 다행이군요.”

가시돋힌 말에 다룬은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공화국의 수호자들 아닙니까. 원해서 가는 것인데, 그 숭고함에는 감탄할 뿐입니다.”

쟈네이딘은 한쪽 손을 작게 주먹쥐며 이를 악물었다. 다룬은 그런 뒷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그들 위로 그림자가 지나가며 햇살을 가렸다. 코루선트의 하늘을 가르고 대기권을 향해 거침없이 올라가는 그 위풍당당하고 거대한 윤곽에 두 남녀는 잠시 침묵했다.

건물 위로 지나가는 함선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이윽고 쟈네이딘은 조용히 한쪽 손을 들었다. 축복하듯, 작별을 고하듯,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듯. 다룬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한손을 빼고 자세를 고쳤다.

함선이 시선에서 사라져간 후 쟈네이딘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꼭 맞잡았다. 작게 떨리는 어깨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한 것을 다룬은 아프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쟌느.”

부드러운 목소리에 쟈네이딘은 마치 얻어맞은 듯 움찔했지만, 다룬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러게 가고 싶으면 같이 가라고 했잖아.”

쟈네이딘은 고개를 세게 내저으면서 자기 팔을 멍들도록 세게 붙들었다. 마치 마음을 붙들듯…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놈 행선지는 내가 아니까, 호위를 따돌리고 배를 구하면…”

“가족하고 알데란을 버리고 떠나라고?”

쟈네이딘은 그에게 돌아섰다.

“영원히 당당할 수 없는 관계를 위해서, 남자 하나 바라보고?”

그 말에 주춤하면서도 다룬은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외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잖아. 오히려 중앙과 아우터 림을 잇는-“

“외양이 무슨 상관이야? 실속은 남자한테 미쳐서 뛰쳐나간 걸 내가, 그가, 모두들 아는데!”

순간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이윽고 다룬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한결 조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날더러 당신을 두고 가라고?”

다룬은 천천히 다시 쟈네이딘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을 휩쓸어버릴 듯 바람이 지붕 위로 세차게 지나갔다.

“당신을 두고 내가 어떻게 마음 놓고 떠나는데…”

다룬이 굳어서 보는 동안 쟈네이딘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책상에 앉아서 마시는 브랜디를 식사로 알고, 일에 열중하면 밤새 퇴근도 안하고.”

그녀는 손을 들어 다룬의 왼눈에서 머리카락을 쓸어내고, 그가 시선을 피하려 하자 얼굴에 손을 대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잠시 떠나 있으니까 시스 로드에게 싸움이나 걸고…!”

목이 메이면서 그녀는 그에게 기대왔다. 다룬은 그녀에게 팔을 두르고 머리카락에 입맞추었다.

“잠시가 아니었어. 나한테는 끝도 없었다고.”

“바보…”

쟈네이딘은 작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두어 번 쳤다가 이내 흐느낌으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 돼. 이제 눈도, 팔도 전부 내거니까… 함부로 잃어버리면 다쓰 세데스가 한 짓은 애교로 보이게 해줄 줄 알아.”

“예, 전하.”

아침이 낮으로 바뀌어가고 머리 위로 더 많은 함선들이 제다이를 씨앗처럼 외우주로 흩으러 지나가는 동안 쟈네이딘은 그의 팔에 안겨 오래 흐느꼈다. 상실의 아픔과 새로움의 불안 속에 몸부림치는 왕녀를 안은 다룬은 귓가에 속삭이고, 눈물을 닦아주고, 때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마침내 흐느낌이 어느 정도 진정된 쟈네이딘은 개운하면서도 지친 모습이었다. 그녀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조금 물러났다가, 뺨에 다정한 손이 와닿자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았다.

“난 떠나지 않아, 쟌느.”

의회를 장악하던 현란한 말솜씨는 잊기라도 한 듯 다룬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머뭇머뭇 이어서 말했다.

“난 영웅이 아니니까. 이상에 모든 걸 바치는 그런… 그냥 남자고, 인간이야. 정말 그 정도로 되겠어?”

잠시 그를 올려다보던 쟈네이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냥 당신이면 돼.”

그리고는 뺨에 닿은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돌려 의수 위에 장갑 낀 손바닥에 입맞추었다.

“그걸로 충분해…”

한낮의 햇살 속에 지붕 위에 드리운 두 그림자는 하나로 포개어졌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얽혀 코루선트 위로 부는 바람에 함께 휩쓸리고 흔들렸다. 상처투성이의 불완전한 도시만큼이나 덧없이 빛나는 마음의 짤막한 영원 속에.

의외로 닭살인 다룬과 쟈 공주 커플이었습니다. 제목은 스파이더맨 주제곡이기도 했던 니클백 (Nickleback)의 Hero에서 따왔습니다.

공화국의 그림자 종결

공화국의 그림자가 56화를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당분간 리플레이를 제대로 정리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일단 간단하게 적어놓겠습니다.

결말

마스터 아카마르의 죽음이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가운데 센과 로크락은 그림자 함선을 한곳에 모아놓고 의회가 중계 위성으로 지켜보는 동안 폭파시켜서 그림자 프로젝트를 끝냅니다. (결자해지!) 자락스는 그림자 프로젝트의 공백 대신 제다이의 피로 아우터 림을 안정시키기로 결심하고 다룬 오르가나에게 제다이를 외곽으로 내모는 데 도움을 요청합니다. 쟈네이딘과 함께 가고 싶으면서도 끝내 말은 꺼내지 못하고, 그와 쟈네이딘은 이별의 아쉬움을 나눕니다.

한편, 펠로스는 어린 레이안 (미래의 레반)의 포스 재능에 흥미를 느끼고 가르침을 주어서 깊은 인상을 심습니다. 임신한 미셸은 케드릭과 함께 공의회를 떠나 둘이 난민들을 이끌고 그들을 정착시킬 행성을 찾아나서고, 자락스의 계획대로 제다이가 대거 아우터 림으로 떠나는 날 펠로스와 자락스는 심상찮은 대화를 통해 서로 첨예하게 다른 세계관을 확인합니다. 미래의 대립을 암시하며… 단투인에서 린라노아와 이스니르는 스승들의 묘를 참배하다가 난민들이 탄 우주선이 상공을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파판 8 표절!)

감상 감회!

예, 끝났습니다..ㅠㅠ 본편 횟수로는 56화이지만 외전까지 치면 70화에 더 가까울지도요. 본편보다 역사가 더 긴 콘체르토까지 치면 뭐…(먼산) 포도원의 제다이 첫 플레이가 2007년 1월 28일이었으니까 본편만 해도 거의 딱 1년 반을 했군요. 이렇게 긴 캠페인을 끝내본 것은 처음이라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끝을 본 건 5화 (Virginia Dreams, 도쿄의 달)나 7화 (라이테이아 전기), 10화 (Babylon Babes) 하는 식이었고 기간도 길어야 몇 달이었는데, 이번에는 횟수와 기간만큼이나 규모도 크게 다르군요.

초기에는 제목도 달랐듯 기획한 내용도 행성에서 행성으로 옮겨다니며 도덕적 딜레마에 직면하는 제다이들 얘기를 다룬 옴니버스물이었는데, 첫 행성을 끝내면서 플레이한 내용과 인물들의 인연이 어떻게 얽히고 또 얽혀서 결국 공화국의 운명과 미래를 건 싸움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수의 인물 군상의, 그리고 공화국 자체의 도덕적, 내적 갈등을 재미있게 지켜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공화국의 그림자의 진짜 이야기는 그 인물 군상 간의 갈등, 그리고 인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죽은 형에 대한 다룬 오르가나의 애증과 열등감이 공화국 군국화들 부채질했듯 마스터 아카마르의 위기감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 그림자 프로젝트를 만들어냈고, 피나와 틸 자매의 과거에 있는 비극은 결국 시스의 코루선트 침공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이 충돌하고 또 같이 흐르면서 벌어지는 인물 중심의 극은 어떻게 보면 서로 반대인 두 가지 장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각 조연 (NPC)을 잘 아는 만큼 그들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캠페인상 사건을 예측하고 계획할 수 있었다는 점. 이야기를 미리 짠다기보다는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그에 대해 또 다른 인물은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두 번째 장점은 일단 주인공들을 그 속에 떨구어서 상황이 확 달라져도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었습니다. 미리 짜놓은 이야기가 틀어진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반응할 상황이 달라진 것뿐이었으므로 인물들에 대한 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황에 반응해서 행동하는 것을 서술하기만 하면 됐죠. 그렇게 계속 일어나는 연쇄 반응이 결국 인물 중심의 극을 이끌어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뻔해지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요 조연은 대부분 주인공 배경에서 나왔거나 주인공과 인연이 깊었던지라 조연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참가자들의 관심도도 높았던 것 같고, 그만큼 더 주인공을 캠페인 중심에 놓을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인간관계의 촘촘한 그물망과 걸리는 게 많은 사회구조 속에서 개별 인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사회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플레이 운용상으로는 개인적으로 참가자들의 성실한 참여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이렇게 긴 기간 동안 거의 100%에 가깝게 전원이 출석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비록 수술이니 군대니 하는 같잖은 이유도 빠지긴 해도 (??)) 수험, 취직, 귀국 등 계속 변화를 겪으면서도 전원이 시간대와 참여를 꾸준히 유지해온 것이 캠페인 종결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설정과 플레이 중 참가자분들이 보여주신 창의력 못지않게, 그 창의력을 펼칠 수 있도록 매주 꾸준히 모여주신 부지런함과 약속을 끝까지 지킨 성실성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1년 반 동안 매주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동환님, 아카스트님, 이방인님, 그리고 마지막 몇 화의 관전/참여에 나와서 마지막을 함께 장식해주신 콘체르토 참가자분들 아군과 오체스님에게 모두. 가상의 인물 간의 인연이 공화국의 그림자의 이야기였다면 우리들이 때로 부대끼고 때로 함께 웃으며 서로 알게 된 이야기가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의 이야기겠죠.

쓰다보니 또 길어지네요. 더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참가자분들과 그동안 공화국의 그림자를 지켜봐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m(__)m 모두 포스가 함께하시길!

1240714499.mp3

공화국의 그림자 55화 – 코루선트 전투 (4부)

1203351184.rtf
코루선트 우주전 마무리입니다. 두 번째 파일은 타리지안 갬빗 격납고에서 창고로 가며 미셸이 제자 탈리아와 나눈 대화 외전.

요약

펠로스와 미셸은 다쓰 타르카누스가 있는 타리지안 갬빗, 자락스와 린라노아는 다쓰 쟈르넥의 맨티스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이상할 정도로 방어가 없는 타리지안 갬빗에서 키르탄은 포로로 잡은 케드릭을 인질로 이용해 미셸과 펠로스를 떼어놓고, 자락스와 린라노아는 쟈르넥의 치열한 선내 방어를 뚫고 전진합니다.

타리지안 갬빗의 함교에서 타르카누스는 펠로스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얘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타르카누스는 펠로스에게 공화국 자체가 오히려 혼란의 근원이라며 공화국과 제다이, 그리고 시스도 멸망시키려는 자기 목표를 얘기하고 펠로스의 도움을 청합니다. 펠로스는 재밌어하면서 타르카누스를 공격해가고, 타르카누스는 그런 그를 그레이워커라고 칭하지요.

자락스와 린라노아는 자락스가 린라노아의 스승을 죽인 응어리진 과거를 해소하면서 절대적인 신뢰 속에 함께 싸우고, 타리지안 갬빗의 창고에서 케드릭은 다쓰 세데스의 혼이 씌운 채 미셸을 공격합니다.(주:검은 오벨리스크를 이용한 실험의 성과물) 미셸의 호소에 잠시 정신이 깨인 케드릭은 자신을 죽이라고 애원하지만 미셸은 거부하고, 케드릭은 자기 다리를 스스로 찔러 움직이지 못하게 합니다. 그 보복으로 키르탄이 이식한 신경자극기의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지만요. 분노한 미셸은 키르탄과 전투를 벌입니다. 키르탄은 미셸에게 시스에 넘어오라고 유혹하지만, 케드릭의 세이버 던지기로 비명횡사.

자락스와 린라노아는 함교에 도착해 쟈르넥과 빈정거리면서 세이버 결투를 벌입니다. 결국 진 쟈르넥은 낙심한 척하면서 맨티스에 자폭 명령을 입력하고, 자락스가 알아채고 세이버로 꿴 순간에는 이미 자폭 카운트다운 시작. 자락스와 린라노아는 혼란에 빠진 시스 병사들을 탈출시키고 탈출정이 부족해서 자신들은 남은 시스 병사들과 함께 우주복을 입고 에어록으로 탈출합니다. 그리고 전장 한가운데서 추진제도, 포스도 떨어진 시점에 마탄의 사수에게 구조받습니다.

같은 시간, 다쓰 쟈르넥을 잃은 함대가 와해하는 와중에 쟈네이딘 공주가 공화국 전역에서 모아온 함대가 도착하면서 전투는 마무리로 접어듭니다.

감상

코루선트 전투가 이렇게 끝났군요. 시간에 쫓겨서 좀 급하게 진행한 감이 있었지만 (특히 미셸 쪽은 좀 심하게 휘몰아친 느낌이..), 대체로 인물들의 이야기에 좋은 마무리가 된 것 같아서 기쁩니다. 다음주 에필로그까지 하면 정말로 캠페인 끝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다쓰 타르카누스는 콘체르토 내내 주요 적수였지만 사실 직접 등장은 코루선트 우주전이 처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위협으로서 등장 없이도 꽤 무게감이 있었는데, 등장 직전에야 아사히라군과 얘기해서 세부설정을 정해서 흥미로운 인물이 나왔죠. 급하게 하느라고 그때 얘기한 걸 다 살리지 못해서 아쉽지만, 카리스마는 나름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아사히라군의 나중 지적대로 키르탄은 미셸이 극복하는 편이 더 재밌었겠지만, 제가 마음이 급해서 차분히 기다리기가 어렵더라고요. 20일에 에필로그까지 해야 완전한 결말이 될 것 같아서 우주전을 그 화에 끝내느라 두두두두(…) 이후 탈리아와의 대화 외전은 조금 더 느긋하게 하면서 미셸의 심정을 좀 더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확실히 오체스님과 할 때는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

자락스하고 린라노아 사이에 맺힌 것을 해소하는 과정은 제 개입은 없었는데 참가자끼리 낸 멋진 결론이었습니다. 마침내 둘 사이에 생긴 완전한 신뢰는 꽤나 감동적이었어요. 구출받을 수 있는 좌표까지 가려고 합선 폭발을 일으킨 자락스의 발상도 참신했고요.

그 외에도 공의회와 공화국에 대한 펠로스의 의문이라든지 다크 포스를 억누르는 케드릭의 모습 등 인물들의 다양한 내적 갈등을 폭발시키고 해소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좋습니다. 확실히 그런 인물 군상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공화국의 그림자의 진짜 얘기죠.

긴 캠페인 동안 모두 수고해주셨고요, 다음주 최종화까지 잘 마무리해봅시다! 에필로그에 대한 희망사항이라든지 원하는 장면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요.

[공화국의 그림자] 의원의 전언(傳言)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외전 소설입니다. 어째 ‘리뎀션 출항하다’는 온갖 다른 외전에 밀리는 걸로 봐서 쓸 운명이 아닌 모양입..(..) 시간상 첫 장면은 49화 전에 있었고 (다룬이 라이튼 기지로 출발하기 전), 두 번째 장면은 52화 시작 직전쯤 됩니다. 그 외에 관련 내용이라면 또 다른 외전 소설 코루선트의 밤, 니아 산레스와 라이나 리소넬 두 나이트의 억류가 있었던 45화가 있습니다.

외설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만, 많이 보수적인 분은 안 보시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이 블로그 방문하시는 분들은 다 괜찮으리라고 봅니다만…

– 공의회 폭격 다음날, 오후 3시 27분 –

“의회 건물에서 나가시면 나이트 리소넬이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문가에 선 젊은이는 문을 마주보는 의자에 앉은 여자에게 정중히 허리숙여 인사한다.

“잠시라도 자유를 빼앗은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조그만 몸집에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는 그런 그를 고요한 눈빛으로 마주본다. 가느다란 두 손을 모은 다소곳한 자세는 최근에 익힌 습관인 듯, 입을 열자 말투는 군대식으로 다소 딱딱하다.

“공의회 마스터들께는 어떻게 보고드리면 되겠습니까.”

청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치 그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고통스러운 듯 눈을 피한다. 검은 머리와 암청색 알데란 전통 군복에 비해 얼굴은 창백하지만, 검은 눈은 지나칠 정도로 형형하다.

“있는 그대로 보고하시면 되겠지요, 나이트 산레스. 제가 덧붙일 말씀은 없습니다.”

“제가… 왕녀님 대신 의회 표결에도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만.”

청년은 잘라내듯 대답한다.

“저는 아무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이트는 그를 꿰뚫듯 보다가 마침내 뭔가 납득한 듯 작게 끄덕인다.

“저는 다시 왕녀님을 찾겠습니다. 호위 임무는 끝나지 않았으니.”

“쟌ㄴ.. 쟈네이딘 왕녀를 만나면…”

어떤 간절함을 담아 말하다가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선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섞여 나이트 산레스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전할 말씀이라도?”

열린 문간에 잠시 멈추어섰다가 청년은 천천히 돌아본다. 형형한 검은 눈빛이 뭔가 익숙한 것을 찾듯 의자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살핀다. 넓은 이마와 가느스름한 검은 눈, 끝이 살짝 치켜올라간 작은 코, 뺨과 턱의 갸름한 선을. 그는 마침내 입을 연다.

“예. 하나 전해주시겠습니까.”

그가 방안으로 다시 들어서자 문은 그의 등뒤로 치익- 닫힌다. 여자는 그를 가만히 보며 기다린다.

– 같은 날, 오후 7시 12분 –

“나이트 니아! 나이트 니아!”

공의회의 안뜰이 있었던 곳, 지금은 그을린 나무와 쌓인 건물 잔해가 흩어진 공터는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막 치유 천막에서 나오다가 부르는 목소리를 찾아 돌아본 순간 나이트 산레스는 소용돌이치는 검은 머리와 따스한 포옹에 휩싸였다.

“왕녀님.”

순간 넘어질 뻔하다가 나이트 산레스는 균형을 잡고는 팔을 들어 어색하게 왕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쟈네이딘 왕녀는 팔을 조금 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쌍둥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자매라고는 할 정도로 닮은 얼굴을 걱정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나이트 니아… 공의회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어요! 괜찮으세요? 나이트 라이나는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나이트 리소넬은 도시 내에서 구호 업무를…”

말하다가 니아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자 쟈네이딘은 바로 팔을 풀었다.

“미안해요, 부상당했는데…”

감정이 치밀어오르면서 쟈네이딘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미안해요…!”

이제 방금 전의 부주의 얘기만이 아닌, 그리고 어쩌면 눈앞의 나이트만을 향한 것이 아닌 사과의 말을 하면서 왕녀의 검은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닙니다.”

니아 산레스는 따스하게 말하며 작게 미소지었고, 쟈네이딘도 마주 웃으려고 애썼다. 공주를 그림자처럼 따라온 얀과 작은 목례를 주고받은 니아는 쟈네이딘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어디 계셨나요?”

왕녀는 마치 알기가 두려운 듯 머뭇머뭇 질문을 던졌다.

“코루선트에 도착한 이후 계속 의회에 있었습니다. 약 3시간 30분 전에 나이트 리소넬과 의회를 떠나 공의회에 도착했고…”

니아는 공의회 건물의 잔해와 주변의 혼란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치유 천막에서 부상을 검진받은 후 치유에 조력하고 있었습니다. 왕녀님을 먼저 찾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아녜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왕녀는 고개를 저었다.

“경호 임무는 얀이 잘 맡아주고 있었답니다. 저, 그런데 의회에 계셨다면…”

쟈네이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다룬… 오르가나 의원이 두 분을 억류한…?”

니아가 멈춰서며 쟈네이딘을 마주보자 쟈네이딘도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의 분주함에서는 조금 떨어진 이곳 안뜰 구석에는 공의회의 건물 외벽 모서리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그늘 속에 폭격을 피한 어린 나무 하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오르가나 의원님께서는 의사를 불러 제 부상을 치료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니아는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쟈네이딘의 말뿐만 아니라 하는 생각마저 끊듯.

“나이트 리소넬은 알사피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참고인 자격으로 질문을 받았고, 제가 회복한 후 함께 나왔습니다.”

쟈네이딘은 아직 다소 석연찮은 표정이었지만, 그 말에 얼굴에 조금은 안도감이 깃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은 가끔 비행정이 선회하는 저녁 하늘로 향했다.

“그 사람은 지금…”

“가기 전에 제게 전해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니아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쟈네이딘은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니아가 얀에게 말하자 얀은 다소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저도 가까이 있는 것이…”

“조금만 거리를 두면 돼요, 얀.”

얀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쟈네이딘은 기대와 두려움에 찬 눈길로 니아를 보고 있었다. 얀은 정중히 인사하고 벽의 잔해를 따라 20m 떨어져서 주위를 경계하며 멈춰섰다.

“그럼…”

니아가 한 발짝 다가서며 쟈네이딘의 어깨를 잡자 쟈네이딘은 순간 놀라서 물러서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긴장한 얀이 미처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이미 니아는 몸을 앞으로 숙여 쟈네이딘의 입에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순간 눈을 크게 떴던 쟈네이딘은 이내 눈이 파르르 감기더니 니아의 양팔을 반사적으로 꽉 잡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술을 벌려 입맞춤의 격한 열기를, 그 한없이 부드러운 열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윽고 니아는 쟈네이딘의 아랫입술을 잠시 부드럽게 빨다가 놓았고, 살짝 비틀거리는 왕녀를 지탱하듯 어깨를 잡은 채 몸을 뗐다. 그리고 한손을 쟈네이딘의 뺨에 대고 눈을 다정하게 들여다보았다.

“네 탓이 아냐, 쟌느.”

왕녀가 균형을 찾았는지 확인한 니아는 그녀를 놓으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 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쟈네이딘은 귀끝까지 빨개진 채 입술에 손끝을 대고 옆의 어린 나무에 몸을 기댔다. 강한 바람에  나무가 떨리면서 푸른 잎이 파스스 흔들렸다.

“아마… 아마도 정확한 것 같아요.”

손을 내리면서 왕녀에게서 터져나온 소리는 반쯤 웃음, 반쯤 흐느낌이었다.

“그 바보… 바보같은 사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 발짝 다가서다가 니아는 문득 멈춰서며 눈으로 하늘을 살폈다. 다른 제다이들도 그러는 모습을 보고 쟈네이딘은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혹시 그림자 함선인가요! 어디죠?”

“왕녀님, 다시 폭격일지도 모릅니다. 몸을 피하시지 않으면-“

“어디에요!”

쟈네이딘의 절박한 외침에 순간 놀란 니아는 대답했다.

“아, 저, 공의회 앞…”

쟈네이딘은 그대로 몸을 돌려 공의회의 잔해를 돌아 건물 앞을 향해 달려갔고, 니아와 얼굴이 벌개진 얀이 그 뒤를 따랐다. 코루선트 위로 내리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향해.

당연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막스 데미안이 에밀에게 에바 부인의 키스를  전하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글입니다. 감정선은 사뭇 다르지만요. 이전에 얘기했던 쟈공주-니아 백합 발상이 이런 식으로 됐네요. 뭐 다룬이야 다시는 쟈네이딘 못볼 걸로 알고 대신 니아에게 키스했다고 쳐도, 우직하게 키스까지 그대로 전한 니아는 음흉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 안습의 얀군은 헬렐레 쳐다보며 왕녀 대신 셀린이 니아와 키스하는 걸 상상하다가 불순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자책하다가 다시 헬렐레를 반복했을 것 같은 생각이..(…)

공화국의 그림자 54화 – 코루선트 전투 (3부)

1031308157.rtf


요약

그림자 함대의 도착으로 숨통이 트이는 와중에도 공화국 함대의 피해는 큽니다. 한편, 마치 매드니스의 전투기 편대는 메이 코니의 희생으로 얻은 비행 데이터를 이용해 시스들의 그림자 편대 중 몇 대를 격추하는 쾌거를 올립니다.

같은 시간 침투조를 이끌고 시스 그림자 함선에 오르는 데 성공한 케드릭은 모함으로 귀환한 키르탄과 전투 중에 조우합니다. 케드릭이 시스에 포로로 잡혔을 때 고문했었던 키르탄은 고문 끝에 다크포스에 빠졌던 케드릭의 과거를 헤집습니다. 다쓰 쟈르넥은 자신이 통신으로 직접 방어전을 지휘해서 침투조를 함정에 빠뜨립니다.

한편 다쓰 루-한은 센을 포로로 잡거나 살해하려고 그림자 비행정을 타고 코루선트에 잠입합니다.그러나 마침 실험실에 와있던 마스터 아카마르가 막아서고, 치명상을 입은 아카마르는 죽어가면서 모든 포스를 센이 만든 미완의 그림자 탐지기에 쏟아부어 탐지기를 작동시킵니다.(주:아카마르 위키 페이지 최근 추가 부분 참조)

르베리에 제독의 귀환 소식을 알리자 함대는 일거에 사기를 회복합니다. 공화국군이 센이 완성한 그림자 탐지기로 시스 그림자 함선들을 침몰시키면서 전세는 돌아서고, 다쓰 타르카누스는 왜 숨통을 끊어놓지 않느냐는 다쓰 쟈르넥의 추궁에 주력 함대는 자신의 함대이며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키겠다는 것은 헛된 생각이라고 일축합니다.

한편, 타르카누스가 그림자 함선에 의존하지 않는 침착한 대응으로 공화국 함대를 소모시키기 시작하자 제다이들은 센타레스 전투에서처럼 적의 기함을 직접 점거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감상

이번 플레이는 최종 결말을 향한 초석을 놓는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이야기의 규모에
짓눌려서 산만해졌다고 할 수도 있고요. 군담류와 같은 군상극의 재미이자 어려움이기도 한데, 다양한
인물들에게서 나오는 규모감과 입체감을 살리면서도 초점과 완급을 유지하려면 두 가지 방향 사이에 긴장이 좀 생기죠. 개인적으로는 그 긴장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이쪽으로 이끄는 힘도 있고, 저쪽으로 이끄는 힘도 있어야 역동적 균형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대체로 우주전의 박진감과 규모를 살리는 전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엮이면서 개인뿐 아니라 집단의 이야기가 되는 느낌도 좋아하고요. 반면 주인공 중심의 영웅담을 즐길 수록 이런 전개는 재미없어지기 쉽겠죠. 그래도 이제 슬슬 끝을 바라볼 때인지라, 본편과 콘체르토 주인공들 중심으로 다음 주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다다음 주에 각종 에필로그를 하는 정도를 일단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이 시점까지 온 느낌이어서 좋네요.

이번 화는 1인 2역을 피하려고 인물을 바꿔잡는 일도 눈에 띄었습니다. 케드릭은 오체스님이 잡으셔서 제가 할 때보다 차분하고 비폭력적인(..) 느낌이 재밌었습니다. 또 늘 아카스트님이 맡으셨던 로하네프를 이방인님이 맡으시기도 했고요. 결국 아카마르의 죽음 때는 아카마르와 다쓰 루-한의 1인 2역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키르탄도 그렇고, 시스가 사람 괴롭히는 건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 가장 아픈 데를 쿡쿡 찌르는 그 쾌감이란!

그러고 보면 사람마다 인물에 대한 감정적 접근이 다른 것도 재밌습니다. 이전에 케드릭 죽는 얘기로 별로 재미도 없는 농담 따먹기를 오래 끈 끝에 오체스님이 약간 볼쾌해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느꼈던 거였지만 인물의 죽음이나 아픔에 대한 생각은 다들 다르더군요. 저는 인물에 공감한다기보다는 관조하는 편이고, 그래서 인물의 죽음이나 고통은 극적으로 적합하고 개연성이 있는 한 지켜보면서 즐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참가보다는 진행을 재밌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 마스터 아카마르의 죽음은 꽤 좋았습니다.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조연 중 하나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림자 프로젝트의 창시자이자 공화국의 분열의 한 축으로서 말이죠. 그가 내린 결정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고 제자의 제자의 제자(..)이기도 한 센을 지키다가 죽은 것은 꽤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린라노아와의 대화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그의 또 다른 일면을 마지막 장면에 드러낼 수 있어서 나름 감동이었고요.

그림자 프로젝트를 만든 아카마르의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공화국에 대한 헌신적인 의도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도만으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씁쓸한 점이기도 하지만요. 책임감도 지나치면 집착과 두려움이 되고, 그 시점에서 이미 평정은 멀어지는 것이 헌신의 잔혹한 역설이기에 다쓰 루-한의 말에 아카마르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겠죠.(주:루-한이 아카마르더러 두려움에 먹혀버렸다고 비웃은 내용은 이전에 동환님이 하신 말씀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캠페인에서 느낀 한 가지 대립의 축이라면 희망과 비관의 갈등, 내지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입니다. 자락스나 린라노아, 센 등이 기본적으로 공화국에 대한 희망의 관점에서 지금의 혼탁한 상황에 접근한다면 아카마르나 다룬은 최악의 경우를 예상해서 대비했다는 것이 이들 인물의 근본적인 차이 아닌가 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현실의 어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결과 더 혼탁해진 상황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인물들이 바로잡으려고 뛰고 있다는 사실도 꽤 시사적이고요.

‘공화국의 그림자’는 물론 그림자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제목이었고, 또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공화국의 어두운 현실과 도덕적 모호함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비관과 희망 사이의 대조를 생각하면 또 다른 의미도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림자란 빛이 있어서 존재하니까요. 그림자는 완전한 어둠 속에는 드리우지 않으며, 아무리 희미해도 어딘가에 빛이 있어야 그림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의 또 다른 의미는 ‘희망’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는 신념의 빛이 있는 한 어둠은 칠흑이 아닌 그림자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결국 공화국의 그림자에서 벌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싸움은 현실을 만들어가는 갈등인 것 같습니다. 누가 하는 이야기가, 누가 믿는 것이 현실이 될 것인지 말이죠. 눈앞에 보이는 혼탁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상처받고 깨져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믿고 움직일 것인지… 그것은 이 캠페인이 끝나도 끝나지 않을 싸움이며, 또 머나먼 우주의 머나먼 옛날 이야기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