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Hero

공화국의 그림자 마무리 외전 중 하나입니다. 최종화에서 쟈네이딘이 우주선에 탄 자락스에게 작별을 고하는 대목 전후입니다. 이런 건 꼭 할일 많을 때 떠오르지..(…)

“영웅 좋은 게 뭔지 알아? 놈들이 일찍 죽어줘서 여자가 남는다는 거지.”
– ‘까마귀 연회’ 中 (주:George R. R. Martin의 A Feast for Crows 중 제이미 래니스터의 사촌 데이븐 래니스터 경의 대사입니다.)

아침 햇살 속에 코루선트의 첨탑들이 눈부셨다. 비록 아직 건물이 무너진 곳이 여기저기 상처처럼 남아 있어도, 다시 평화를 되찾은 도시의 모습은 긴 폭풍을 헤쳐나온 배처럼 당당하고 평온했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건물 꼭대기에 선 남녀는 그런 도시 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함선들을 함께 올려다보았다. 안전과 풍족에 등을 돌리고 막막한 미지로 뛰어드는 그 여행의 시작을 시선으로 따르며.

“만족하나요?”

쟈네이딘은 다룬 오르가나를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질문을 던졌다. 이마 위에는 가느다란 왕관이 반짝이고 바람에 긴 옷자락이 날리는 모습은 마치 성대한 행사에라도 나온 것 같았지만, 주변에 기자나 관중은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히 푸르른 하늘 아래 둘뿐.

“제 의도와 부합하는 결과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녀 두 발짝 뒤에 선 다룬은 환한 햇살에 한 조각 그늘처럼 짙푸른 알데란 제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불량한 자세로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길어서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에 덮인 왼눈이 가끔 부자연스러운 안광을 발했다.

“이제 적어도 우리 생전에 다시 제다이가 중앙에서 의회에 도전할 정치적 영향력을 휘두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는 마스터도 남아있지 않고요.”

쟈네이딘은 어깨 너머로 그에게 읽기 어려운 눈빛을 던지다가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지나치게 흔들림 없는 목소리와 작게 긴장한 어깨선에는 부서질 것 같은 불안정함이 있었다.

“…그렇겠지요. 저 많은 제다이들의 죽음에 그런 효용이라도 있다니 다행이군요.”

가시돋힌 말에 다룬은 심드렁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공화국의 수호자들 아닙니까. 원해서 가는 것인데, 그 숭고함에는 감탄할 뿐입니다.”

쟈네이딘은 한쪽 손을 작게 주먹쥐며 이를 악물었다. 다룬은 그런 뒷모습을 착잡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그들 위로 그림자가 지나가며 햇살을 가렸다. 코루선트의 하늘을 가르고 대기권을 향해 거침없이 올라가는 그 위풍당당하고 거대한 윤곽에 두 남녀는 잠시 침묵했다.

건물 위로 지나가는 함선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이윽고 쟈네이딘은 조용히 한쪽 손을 들었다. 축복하듯, 작별을 고하듯,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듯. 다룬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한손을 빼고 자세를 고쳤다.

함선이 시선에서 사라져간 후 쟈네이딘은 고개를 숙이며 손을 꼭 맞잡았다. 작게 떨리는 어깨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기색이 역력한 것을 다룬은 아프게 보다가 입을 열었다.

“쟌느.”

부드러운 목소리에 쟈네이딘은 마치 얻어맞은 듯 움찔했지만, 다룬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러게 가고 싶으면 같이 가라고 했잖아.”

쟈네이딘은 고개를 세게 내저으면서 자기 팔을 멍들도록 세게 붙들었다. 마치 마음을 붙들듯…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놈 행선지는 내가 아니까, 호위를 따돌리고 배를 구하면…”

“가족하고 알데란을 버리고 떠나라고?”

쟈네이딘은 그에게 돌아섰다.

“영원히 당당할 수 없는 관계를 위해서, 남자 하나 바라보고?”

그 말에 주춤하면서도 다룬은 고집스럽게 대답했다.

“외양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잖아. 오히려 중앙과 아우터 림을 잇는-“

“외양이 무슨 상관이야? 실속은 남자한테 미쳐서 뛰쳐나간 걸 내가, 그가, 모두들 아는데!”

순간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이윽고 다룬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한결 조용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날더러 당신을 두고 가라고?”

다룬은 천천히 다시 쟈네이딘을 마주보았다. 두 사람을 휩쓸어버릴 듯 바람이 지붕 위로 세차게 지나갔다.

“당신을 두고 내가 어떻게 마음 놓고 떠나는데…”

다룬이 굳어서 보는 동안 쟈네이딘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책상에 앉아서 마시는 브랜디를 식사로 알고, 일에 열중하면 밤새 퇴근도 안하고.”

그녀는 손을 들어 다룬의 왼눈에서 머리카락을 쓸어내고, 그가 시선을 피하려 하자 얼굴에 손을 대서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잠시 떠나 있으니까 시스 로드에게 싸움이나 걸고…!”

목이 메이면서 그녀는 그에게 기대왔다. 다룬은 그녀에게 팔을 두르고 머리카락에 입맞추었다.

“잠시가 아니었어. 나한테는 끝도 없었다고.”

“바보…”

쟈네이딘은 작은 주먹으로 그의 가슴을 두어 번 쳤다가 이내 흐느낌으로 몸을 떨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 돼. 이제 눈도, 팔도 전부 내거니까… 함부로 잃어버리면 다쓰 세데스가 한 짓은 애교로 보이게 해줄 줄 알아.”

“예, 전하.”

아침이 낮으로 바뀌어가고 머리 위로 더 많은 함선들이 제다이를 씨앗처럼 외우주로 흩으러 지나가는 동안 쟈네이딘은 그의 팔에 안겨 오래 흐느꼈다. 상실의 아픔과 새로움의 불안 속에 몸부림치는 왕녀를 안은 다룬은 귓가에 속삭이고, 눈물을 닦아주고, 때로 붉어진 눈시울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마침내 흐느낌이 어느 정도 진정된 쟈네이딘은 개운하면서도 지친 모습이었다. 그녀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조금 물러났다가, 뺨에 다정한 손이 와닿자 눈이 동그래져서 쳐다보았다.

“난 떠나지 않아, 쟌느.”

의회를 장악하던 현란한 말솜씨는 잊기라도 한 듯 다룬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머뭇머뭇 이어서 말했다.

“난 영웅이 아니니까. 이상에 모든 걸 바치는 그런… 그냥 남자고, 인간이야. 정말 그 정도로 되겠어?”

잠시 그를 올려다보던 쟈네이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냥 당신이면 돼.”

그리고는 뺨에 닿은 손을 꼭 잡고 고개를 돌려 의수 위에 장갑 낀 손바닥에 입맞추었다.

“그걸로 충분해…”

한낮의 햇살 속에 지붕 위에 드리운 두 그림자는 하나로 포개어졌고,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얽혀 코루선트 위로 부는 바람에 함께 휩쓸리고 흔들렸다. 상처투성이의 불완전한 도시만큼이나 덧없이 빛나는 마음의 짤막한 영원 속에.

의외로 닭살인 다룬과 쟈 공주 커플이었습니다. 제목은 스파이더맨 주제곡이기도 했던 니클백 (Nickleback)의 Hero에서 따왔습니다.

3 thoughts on “[공화국의 그림자] Hero

    1. 로키

      둘이서 저렇게 막 달라붙고 어쩌고 하는 모습을 봤더라면 분노해서 라이트세이버 꼬나들고 우주선에서 뛰어내렸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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