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54화 – 코루선트 전투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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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그림자 함대의 도착으로 숨통이 트이는 와중에도 공화국 함대의 피해는 큽니다. 한편, 마치 매드니스의 전투기 편대는 메이 코니의 희생으로 얻은 비행 데이터를 이용해 시스들의 그림자 편대 중 몇 대를 격추하는 쾌거를 올립니다.

같은 시간 침투조를 이끌고 시스 그림자 함선에 오르는 데 성공한 케드릭은 모함으로 귀환한 키르탄과 전투 중에 조우합니다. 케드릭이 시스에 포로로 잡혔을 때 고문했었던 키르탄은 고문 끝에 다크포스에 빠졌던 케드릭의 과거를 헤집습니다. 다쓰 쟈르넥은 자신이 통신으로 직접 방어전을 지휘해서 침투조를 함정에 빠뜨립니다.

한편 다쓰 루-한은 센을 포로로 잡거나 살해하려고 그림자 비행정을 타고 코루선트에 잠입합니다.그러나 마침 실험실에 와있던 마스터 아카마르가 막아서고, 치명상을 입은 아카마르는 죽어가면서 모든 포스를 센이 만든 미완의 그림자 탐지기에 쏟아부어 탐지기를 작동시킵니다.(주:아카마르 위키 페이지 최근 추가 부분 참조)

르베리에 제독의 귀환 소식을 알리자 함대는 일거에 사기를 회복합니다. 공화국군이 센이 완성한 그림자 탐지기로 시스 그림자 함선들을 침몰시키면서 전세는 돌아서고, 다쓰 타르카누스는 왜 숨통을 끊어놓지 않느냐는 다쓰 쟈르넥의 추궁에 주력 함대는 자신의 함대이며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키겠다는 것은 헛된 생각이라고 일축합니다.

한편, 타르카누스가 그림자 함선에 의존하지 않는 침착한 대응으로 공화국 함대를 소모시키기 시작하자 제다이들은 센타레스 전투에서처럼 적의 기함을 직접 점거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감상

이번 플레이는 최종 결말을 향한 초석을 놓는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이야기의 규모에
짓눌려서 산만해졌다고 할 수도 있고요. 군담류와 같은 군상극의 재미이자 어려움이기도 한데, 다양한
인물들에게서 나오는 규모감과 입체감을 살리면서도 초점과 완급을 유지하려면 두 가지 방향 사이에 긴장이 좀 생기죠. 개인적으로는 그 긴장을 좋아하기는
합니다. 이쪽으로 이끄는 힘도 있고, 저쪽으로 이끄는 힘도 있어야 역동적 균형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대체로 우주전의 박진감과 규모를 살리는 전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도 말했던 것 같지만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엮이면서 개인뿐 아니라 집단의 이야기가 되는 느낌도 좋아하고요. 반면 주인공 중심의 영웅담을 즐길 수록 이런 전개는 재미없어지기 쉽겠죠. 그래도 이제 슬슬 끝을 바라볼 때인지라, 본편과 콘체르토 주인공들 중심으로 다음 주에 마지막 마무리를 하고 다다음 주에 각종 에필로그를 하는 정도를 일단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이 시점까지 온 느낌이어서 좋네요.

이번 화는 1인 2역을 피하려고 인물을 바꿔잡는 일도 눈에 띄었습니다. 케드릭은 오체스님이 잡으셔서 제가 할 때보다 차분하고 비폭력적인(..) 느낌이 재밌었습니다. 또 늘 아카스트님이 맡으셨던 로하네프를 이방인님이 맡으시기도 했고요. 결국 아카마르의 죽음 때는 아카마르와 다쓰 루-한의 1인 2역이 되기는 했습니다만… 키르탄도 그렇고, 시스가 사람 괴롭히는 건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 가장 아픈 데를 쿡쿡 찌르는 그 쾌감이란!

그러고 보면 사람마다 인물에 대한 감정적 접근이 다른 것도 재밌습니다. 이전에 케드릭 죽는 얘기로 별로 재미도 없는 농담 따먹기를 오래 끈 끝에 오체스님이 약간 볼쾌해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느꼈던 거였지만 인물의 죽음이나 아픔에 대한 생각은 다들 다르더군요. 저는 인물에 공감한다기보다는 관조하는 편이고, 그래서 인물의 죽음이나 고통은 극적으로 적합하고 개연성이 있는 한 지켜보면서 즐기는 편입니다. 그래서 참가보다는 진행을 재밌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에 마스터 아카마르의 죽음은 꽤 좋았습니다. 캠페인의 가장 중요한 조연 중 하나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림자 프로젝트의 창시자이자 공화국의 분열의 한 축으로서 말이죠. 그가 내린 결정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고 제자의 제자의 제자(..)이기도 한 센을 지키다가 죽은 것은 꽤 적절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린라노아와의 대화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그의 또 다른 일면을 마지막 장면에 드러낼 수 있어서 나름 감동이었고요.

그림자 프로젝트를 만든 아카마르의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는 각자 판단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공화국에 대한 헌신적인 의도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의도만으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 삶의 씁쓸한 점이기도 하지만요. 책임감도 지나치면 집착과 두려움이 되고, 그 시점에서 이미 평정은 멀어지는 것이 헌신의 잔혹한 역설이기에 다쓰 루-한의 말에 아카마르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겠죠.(주:루-한이 아카마르더러 두려움에 먹혀버렸다고 비웃은 내용은 이전에 동환님이 하신 말씀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캠페인에서 느낀 한 가지 대립의 축이라면 희망과 비관의 갈등, 내지는 이상과 현실의 갈등입니다. 자락스나 린라노아, 센 등이 기본적으로 공화국에 대한 희망의 관점에서 지금의 혼탁한 상황에 접근한다면 아카마르나 다룬은 최악의 경우를 예상해서 대비했다는 것이 이들 인물의 근본적인 차이 아닌가 합니다. 지극히 ‘현실적’으로 현실의 어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결과 더 혼탁해진 상황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인물들이 바로잡으려고 뛰고 있다는 사실도 꽤 시사적이고요.

‘공화국의 그림자’는 물론 그림자 프로젝트를 염두에 둔 제목이었고, 또 쉽게 짐작할 수 있겠지만 공화국의 어두운 현실과 도덕적 모호함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비관과 희망 사이의 대조를 생각하면 또 다른 의미도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림자란 빛이 있어서 존재하니까요. 그림자는 완전한 어둠 속에는 드리우지 않으며, 아무리 희미해도 어딘가에 빛이 있어야 그림자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자의 또 다른 의미는 ‘희망’인 것 같습니다. 지금의 어둠이 전부가 아니라는 신념의 빛이 있는 한 어둠은 칠흑이 아닌 그림자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결국 공화국의 그림자에서 벌어지는 가장 근본적인 싸움은 현실을 만들어가는 갈등인 것 같습니다. 누가 하는 이야기가, 누가 믿는 것이 현실이 될 것인지 말이죠. 눈앞에 보이는 혼탁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대응할 것인지, 아니면 아무리 상처받고 깨져도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믿고 움직일 것인지… 그것은 이 캠페인이 끝나도 끝나지 않을 싸움이며, 또 머나먼 우주의 머나먼 옛날 이야기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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