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의원의 전언(傳言)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외전 소설입니다. 어째 ‘리뎀션 출항하다’는 온갖 다른 외전에 밀리는 걸로 봐서 쓸 운명이 아닌 모양입..(..) 시간상 첫 장면은 49화 전에 있었고 (다룬이 라이튼 기지로 출발하기 전), 두 번째 장면은 52화 시작 직전쯤 됩니다. 그 외에 관련 내용이라면 또 다른 외전 소설 코루선트의 밤, 니아 산레스와 라이나 리소넬 두 나이트의 억류가 있었던 45화가 있습니다.

외설이라고 할 만한 건 없습니다만, 많이 보수적인 분은 안 보시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이 블로그 방문하시는 분들은 다 괜찮으리라고 봅니다만…

– 공의회 폭격 다음날, 오후 3시 27분 –

“의회 건물에서 나가시면 나이트 리소넬이 기다리고 계실 것입니다.”

문가에 선 젊은이는 문을 마주보는 의자에 앉은 여자에게 정중히 허리숙여 인사한다.

“잠시라도 자유를 빼앗은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조그만 몸집에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는 그런 그를 고요한 눈빛으로 마주본다. 가느다란 두 손을 모은 다소곳한 자세는 최근에 익힌 습관인 듯, 입을 열자 말투는 군대식으로 다소 딱딱하다.

“공의회 마스터들께는 어떻게 보고드리면 되겠습니까.”

청년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치 그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고통스러운 듯 눈을 피한다. 검은 머리와 암청색 알데란 전통 군복에 비해 얼굴은 창백하지만, 검은 눈은 지나칠 정도로 형형하다.

“있는 그대로 보고하시면 되겠지요, 나이트 산레스. 제가 덧붙일 말씀은 없습니다.”

“제가… 왕녀님 대신 의회 표결에도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만.”

청년은 잘라내듯 대답한다.

“저는 아무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이트는 그를 꿰뚫듯 보다가 마침내 뭔가 납득한 듯 작게 끄덕인다.

“저는 다시 왕녀님을 찾겠습니다. 호위 임무는 끝나지 않았으니.”

“쟌ㄴ.. 쟈네이딘 왕녀를 만나면…”

어떤 간절함을 담아 말하다가 청년은 신경질적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선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섞여 나이트 산레스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전할 말씀이라도?”

열린 문간에 잠시 멈추어섰다가 청년은 천천히 돌아본다. 형형한 검은 눈빛이 뭔가 익숙한 것을 찾듯 의자에 앉은 여자의 얼굴을 살핀다. 넓은 이마와 가느스름한 검은 눈, 끝이 살짝 치켜올라간 작은 코, 뺨과 턱의 갸름한 선을. 그는 마침내 입을 연다.

“예. 하나 전해주시겠습니까.”

그가 방안으로 다시 들어서자 문은 그의 등뒤로 치익- 닫힌다. 여자는 그를 가만히 보며 기다린다.

– 같은 날, 오후 7시 12분 –

“나이트 니아! 나이트 니아!”

공의회의 안뜰이 있었던 곳, 지금은 그을린 나무와 쌓인 건물 잔해가 흩어진 공터는 오가는 사람들로 혼잡했다. 막 치유 천막에서 나오다가 부르는 목소리를 찾아 돌아본 순간 나이트 산레스는 소용돌이치는 검은 머리와 따스한 포옹에 휩싸였다.

“왕녀님.”

순간 넘어질 뻔하다가 나이트 산레스는 균형을 잡고는 팔을 들어 어색하게 왕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쟈네이딘 왕녀는 팔을 조금 풀고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쌍둥이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자매라고는 할 정도로 닮은 얼굴을 걱정스럽게 들여다보았다.

“나이트 니아… 공의회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어요! 괜찮으세요? 나이트 라이나는요?”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나이트 리소넬은 도시 내에서 구호 업무를…”

말하다가 니아가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리자 쟈네이딘은 바로 팔을 풀었다.

“미안해요, 부상당했는데…”

감정이 치밀어오르면서 쟈네이딘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미안해요…!”

이제 방금 전의 부주의 얘기만이 아닌, 그리고 어쩌면 눈앞의 나이트만을 향한 것이 아닌 사과의 말을 하면서 왕녀의 검은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아닙니다.”

니아 산레스는 따스하게 말하며 작게 미소지었고, 쟈네이딘도 마주 웃으려고 애썼다. 공주를 그림자처럼 따라온 얀과 작은 목례를 주고받은 니아는 쟈네이딘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어디 계셨나요?”

왕녀는 마치 알기가 두려운 듯 머뭇머뭇 질문을 던졌다.

“코루선트에 도착한 이후 계속 의회에 있었습니다. 약 3시간 30분 전에 나이트 리소넬과 의회를 떠나 공의회에 도착했고…”

니아는 공의회 건물의 잔해와 주변의 혼란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치유 천막에서 부상을 검진받은 후 치유에 조력하고 있었습니다. 왕녀님을 먼저 찾지 못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아녜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왕녀는 고개를 저었다.

“경호 임무는 얀이 잘 맡아주고 있었답니다. 저, 그런데 의회에 계셨다면…”

쟈네이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혹시 다룬… 오르가나 의원이 두 분을 억류한…?”

니아가 멈춰서며 쟈네이딘을 마주보자 쟈네이딘도 걸음을 멈추었다. 주변의 분주함에서는 조금 떨어진 이곳 안뜰 구석에는 공의회의 건물 외벽 모서리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그늘 속에 폭격을 피한 어린 나무 하나가 바람에 흔들렸다.

“오르가나 의원님께서는 의사를 불러 제 부상을 치료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니아는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쟈네이딘의 말뿐만 아니라 하는 생각마저 끊듯.

“나이트 리소넬은 알사피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한 참고인 자격으로 질문을 받았고, 제가 회복한 후 함께 나왔습니다.”

쟈네이딘은 아직 다소 석연찮은 표정이었지만, 그 말에 얼굴에 조금은 안도감이 깃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은 가끔 비행정이 선회하는 저녁 하늘로 향했다.

“그 사람은 지금…”

“가기 전에 제게 전해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니아의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쟈네이딘은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어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습니까?”

니아가 얀에게 말하자 얀은 다소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저도 가까이 있는 것이…”

“조금만 거리를 두면 돼요, 얀.”

얀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쟈네이딘은 기대와 두려움에 찬 눈길로 니아를 보고 있었다. 얀은 정중히 인사하고 벽의 잔해를 따라 20m 떨어져서 주위를 경계하며 멈춰섰다.

“그럼…”

니아가 한 발짝 다가서며 쟈네이딘의 어깨를 잡자 쟈네이딘은 순간 놀라서 물러서려 했지만,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긴장한 얀이 미처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이미 니아는 몸을 앞으로 숙여 쟈네이딘의 입에 입술을 포개고 있었다.

순간 눈을 크게 떴던 쟈네이딘은 이내 눈이 파르르 감기더니 니아의 양팔을 반사적으로 꽉 잡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입술을 벌려 입맞춤의 격한 열기를, 그 한없이 부드러운 열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이윽고 니아는 쟈네이딘의 아랫입술을 잠시 부드럽게 빨다가 놓았고, 살짝 비틀거리는 왕녀를 지탱하듯 어깨를 잡은 채 몸을 뗐다. 그리고 한손을 쟈네이딘의 뺨에 대고 눈을 다정하게 들여다보았다.

“네 탓이 아냐, 쟌느.”

왕녀가 균형을 찾았는지 확인한 니아는 그녀를 놓으면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정확히 전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쟈네이딘은 귀끝까지 빨개진 채 입술에 손끝을 대고 옆의 어린 나무에 몸을 기댔다. 강한 바람에  나무가 떨리면서 푸른 잎이 파스스 흔들렸다.

“아마… 아마도 정확한 것 같아요.”

손을 내리면서 왕녀에게서 터져나온 소리는 반쯤 웃음, 반쯤 흐느낌이었다.

“그 바보… 바보같은 사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 발짝 다가서다가 니아는 문득 멈춰서며 눈으로 하늘을 살폈다. 다른 제다이들도 그러는 모습을 보고 쟈네이딘은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혹시 그림자 함선인가요! 어디죠?”

“왕녀님, 다시 폭격일지도 모릅니다. 몸을 피하시지 않으면-“

“어디에요!”

쟈네이딘의 절박한 외침에 순간 놀란 니아는 대답했다.

“아, 저, 공의회 앞…”

쟈네이딘은 그대로 몸을 돌려 공의회의 잔해를 돌아 건물 앞을 향해 달려갔고, 니아와 얼굴이 벌개진 얀이 그 뒤를 따랐다. 코루선트 위로 내리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향해.

당연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막스 데미안이 에밀에게 에바 부인의 키스를  전하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은 글입니다. 감정선은 사뭇 다르지만요. 이전에 얘기했던 쟈공주-니아 백합 발상이 이런 식으로 됐네요. 뭐 다룬이야 다시는 쟈네이딘 못볼 걸로 알고 대신 니아에게 키스했다고 쳐도, 우직하게 키스까지 그대로 전한 니아는 음흉한 건지 순진한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 안습의 얀군은 헬렐레 쳐다보며 왕녀 대신 셀린이 니아와 키스하는 걸 상상하다가 불순한 생각을 하는 자신을 자책하다가 다시 헬렐레를 반복했을 것 같은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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