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아

배경: 보다체의 팔리쉬 섬(메디코 시)에서 활동중인 20세의 기녀. 본래 이름은 피아, 기녀명은 나탈리아. 반도의 아레네 칸디데 지방의 카시굴라 로사 외곽에서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후 빚에 허덕이는데다 몸도 안좋던 어머니는 15세의 루트와 10세의 피아 두 딸을 키워줄만한 곳을 찾아달라고 지역 유지에게 맡겼습니다. 친절한 어르신은 그래주마고 약속하고 두 아이를 팔리치 섬의 제니하우스에 팔아넘겼지요. 루트는 바로 일을 시작했지만 피아는 얼마 후 피오리 디 세타(비단 꽃송이)의 파드로나(여주인) 브루닐다 델오로의 눈에 띄어 제니 대신 기녀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피오리 디 세타는 메디코 시의 큰 까사 델레 파르팔레(‘나비의 집’), 즉 커티젼 하우스로, 기녀의 자질이 보이는 여자아이들을 키우며 교육시켜 주고 나중에 돈을 벌기 시작하면 수입을 전액 관리하는 곳이지요.

피아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수많은 기녀 후보생 중 하나였지만, 자기만의 특화랄까, 특징이랄 것은 몇가지 있습니다. 우선 소식이 끊겼던 언니를 후보생 시절에 다시 찾아내서 정기적으로 연락하며 지내고 있지요.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제니인 언니는 까스띠예 뱃사람과 결혼하기도 했고, 따라서 선원들이 체감하는 정도의 해상 상업의 흐름은 언니를 통해 곧 들을 수 있습니다. 물건을 기껏 가지고 도착하니 이미 벤델 상선이 더 싼 값으로 갖고 와서 장사 공친 얘기라든지, 영해에 침입했다면서 공격하는 벤델 상선들의 얘기를 전해듣고 점점 고조되는 벤델과 보다체의 긴장을 느낀 피아는 벤델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꽤 잘합니다.

또하나, 고객의 페이트 위치 처에게 괜히 나대다가 패가망신하는 몇몇 선배를 지켜본 피아는 페이트 위치에게는 어차피 대항할 수 없으니 우호정책으로 나가자고 결심하게 되었죠. 그래서 브루닐다에게 부탁해 세리네 섬으로 ‘공부’하러 가서 도서관에서 바느질하는 어린 페이트 위치들에게 책 읽어주는 일을 한 몇달 했습니다. 데우스가 도우셨는지 그때 친해진 스트레가 중 하나인 레베카 몬다비가 이번에 도넬로 팔리쉬의 사촌 라파엘로에게 시집온다는 소식이 들려서 동맹에 대한 조심스런 기대를 걸고 있지요.

16세때 ‘나탈리아’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피아는 돈과 권력을 갖춘 남자들과 교제하면서 괜찮은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보다체 전역과 몽테뉴에까지 유명한 팔리쉬가의 호화스러운 파티 때문에 업계는 늘 호황. 크게 빠지는 데 없는 기녀가 성공하기는 결코 어렵지 않았습니다.

1년여 전에는 현재 후원자인 에밀리오 비니콜라를 파티에서 만나 비교적 만족할만한 동반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팔리쉬 가와 서출 혈연이 있는데다 성공적인 와인 수출사업을 이어받은 그에게 기녀들이 은밀한 눈빛을 보냈지만 에밀리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죠.

나탈리아는 이 남자가 은근한 유혹의 게임에 식상했다는 것을 파악하고 대담하게 접근해 즉흥시의 대결을 제안합니다. 자신이 이기면 2층으로 함께 올라가지 않겠냐는, 모든 규칙을 깬 유혹으로 당시 그녀의 위치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후원자를 잡을 수 있었죠. 그리고 비니콜라를 통해 이전보다 소수정예(?)의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파티에 참석하고, 높은 분들께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지금은 할 수만 있다면 팔리치 가의 남자로 옮겨갈 수 없을까 기회를 엿보는 중입니다. ‘몽테뉴 여자’에 대한 도넬로 팔리쉬의 구애가 메디코의, 그리고 보다체의 정치계에 가져올 수 있는 파란을 주목하면서요.

어쨌든 현재로서는 비니콜라의 정부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페이트 위치 아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그의 집에서 지내는 대신 시내의 아파트를 달라고 해서 기거하고 있으며(물론 작지만 화려한 곳이지요), 그가 찾아오는 밤이면 와인 한잔을 사이에 두고 아무 이야기나 참을성 있게 들어준다거나, 파티에서 그의 위신을 세워주기도 잘합니다. 전반적으로 에밀리오가 그녀에게 쏟는 돈과 관심만큼 값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그 역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현재의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를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나탈리아의 미래 설계는 적당한 때에 은퇴해서 자기 가게를 차리는 것이지요. 누군가 계약서를 사주는 것은 또다른 구속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꿈을 위해 지금부터 영향력 있는 인맥을 많이 만들어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게임’의 틈바구니에서 조금의 안정과 보장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는 정직한 보다체 여자, 이것이 나탈리아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 말에 ‘보다체 여자가 얼마나 정직한데?’ 라고 파티에서 한 몽테뉴 귀족이 비웃자 나탈리아는 고혹적으로 웃으며 ‘몽테뉴 여자가 정숙한만큼 정직하지요.’라고 대답했었죠.)

이 모든 건전한(?) 인생계획에 초를 치는 존재가 최근 나타나서 나탈리아를 매우 신경쓰이게 하고 있는데, 그는 루카 베투리노라는 잘생긴 곤돌라 사공. 어느날 저녁, 에밀리오가 다른 기녀들과 추근덕거리는 걸 본 나탈리아는 걱정이라도 좀 시킬까 해서 언니에게 하룻저녁 다녀오려고 곤돌라를 잡아탔지요. 사공은 왜 기녀가 혼자 곤돌라를 타고 가냐며, 되게 인기없는 모양이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 그녀를 짜증나게 했고, 볼 사람도 없겠다 오랜만에 교양은 저만치 벗어던지고 말다툼을 하는 도중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뭐 어떻게 얘기해도 유치해져 버리니 결론만 말하자면, 그때 이후 나탈리아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곤돌라 사공을 만나왔습니다. 루카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그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만나면 두 사람은 부드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도 아니고, 거의 말한마디 없이 서로의 욕망에 거칠게 탐닉하는 낯선 사람일 뿐.

그뿐인데 왜 그게 다른 남자이면, 예를 들어 에밀리오이면 안되는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루카가 필요한지 나탈리아로서는 미치겠는 일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무덤을 파는 짓일 수도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후원하는 기녀가 자신을 두고 미천한 사공 따위와 놀아났다는 걸 비니콜라가 아는 날에는 그와의 관계는 바로 끝날 것이고, 팔리치가의 남자를 꼬셔보겠다는 야망도, 편안한 노후에 대한 꿈도 물건너간 일.

하지만 몇번이나 헤어지려고 해도 얼마 가지도 못해 그가 그녀의 아파트로 찾아와 미친듯 문을 두드리거나 그녀가 수로변에서 몇시간이나 기다리다가 그의 곤돌라로 뛰어드는 짓을 반복한 끝에 지쳐서라도 그와 헤어지려는 시도는 당분간 포기했습니다. 혹시 페이트 위치의 도움을 받으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먼 희망일 따름입니다. 이 지독한, 아니 지겨운 집착 때문에 그녀에게 이전보다 말할 수 없이 위험해진 위대한 게임은 오늘도 그 그물을 한올 한올 짜갑니다.

외모: 중키에 약간 통통한 체격. 웃을 때 보조개가 패이는 볼과 풍만한 몸매가 매력적입니다. 보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머리와 황갈색 톤의 피부, 검은 눈에 또렷한 이목구비이죠. 아름답다기보다는 그저 적당히 예쁜 바탕 위에 필사적으로 꾸민 것이지만, 왠지 남자를 한번쯤 돌아보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그건 음탕한 약속과 반짝이는 기지를 오가는 눈빛 때문일 수도 있고, 토라져서 삐죽이는가 싶은 순간 은근한 경멸에 웃음짓는 새빨간 입술 때문일지도요. 큰 편인 몸집도 화려하고 노출이 심한 기녀의 옷 때문에 오히려 당당하게 돋보입니다.

어차피 24시간 대기상태이고 기녀가 보통 여자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지만, 기녀의 치장과 태도를 치워놓을 수 있는 얼마 안되는 시간에는 그저 여느 젊은 여자로 보입니다. 그런 때는 표정도 훨씬 편안하고 누그러지고, 쉽게 웃고 떠드는 소박한 처녀일 뿐. 피오리 데 세타의 선생들이 가르쳤듯 기녀가 쓰는 가면은 한가지가 아닌 법.

성격: 나탈리아는 어려서부터 가족을 잃으면서 믿을만한 것은 자신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신을 잡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어린 피아에게 위대한 게임은 시작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자기를 위해줄 사람은 (언니 정도 빼고는) 아무도 없으니, 자신도 남을 신경쓸 새 따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도 모두 자신을 이용할 테니 자기도 최대한 이용해 주면 그만이고요.

문제가 있다면 이 여자 본래 성격이 그다지 모질지를 못하다는 점이겠지만요. 적을 만들기를 꺼려하고, 남에게 모욕주거나 충돌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얼마든지 하지만, 뒷맛이 개운한 일은 아닙니다. 적을 만들기 싫다는 건 단순한 실용주의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합리화하지만, 자신이 기본적으로 별로 독하지 못하다는 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고민인 것이지요. 언젠가 이런 점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루카를 만난 이후로 그 두려움은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오고 있고요.

재능과 취미: 나탈리아의 최대의 무기는 ‘말’입니다. 언어의 흐름과 기교 속에서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끼며, 교묘하거나 탐미적인 문구를 사랑하지요.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풍부한 쇼맨쉽 때문에 문학적 재능은 더욱 돋보이곤 합니다. 딜레탄테 학교 근교의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때는 소설이나 시를 읽으면 어린 페이트 위치들이 바느질하던 시늉마저 멈추고 귀기울이는 바람에 선생에게 주의를 듣곤 했죠.

만돌린 연주도 어느 정도 해서, 긴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온 에밀리오는 종종 소파에 누운채 연주를 들으며 긴장을 풀곤 합니다. 외국어로는 몽테뉴어와 벤델어를 하는데, 몽테뉴 귀족이 많은 팔리치 섬에서 기녀에게 몽테뉴는 필수에 가깝고 벤델어는 나중에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브루닐다에게 배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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