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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참가자 유형은?

Wishsong님 블로그글을 보고 참가자 유형 퀴즈를 해보았습니다. 전에 블로그에서 간략하게 다루기도 했던, 로빈 로스의 마스터링 법칙 (Robin’s Laws of Good Game Mastering) 중에 나오는 참가자 유형을 기반으로 했군요. 그 책 봤을 때도 저는 자신이 딱 이야기꾼 유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퀴즈를 해봐도 마찬가지 결과입니다. 2차적으로 배우 유형이라고 생각한 것도 맞는군요. 인물표현을 중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좋은 이야기에는 깊이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보조적인 의미이지만요.

제가 생각하기에 강한 성향의 이야기꾼 유형은 참가자보다는 진행자 역에 끌릴 것 같고, 참가자를 할 때도 자기 주인공에 대한 애착은 별로 없이 거시적인 시각을 유지하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제 기준으로 생각하는 걸지도..(..) 반면에 진행자 입장에서는 좀 귀찮을지도요. (흑흑)

You scored as Storyteller. The Storyteller is in it for the plot: the sense of mystery and the fun of participating in a narrative that has the satisfying arc of a good book or movie. He enjoys interacting with well-defined NPCs, even preferring antagonists who have genuine motivations and personality to mere monsters. To the Storyteller, the greatest reward of the game is participating in a compelling story with interesting and unpredictable plot threads, in which his actions and those of his fellow characters determine the resolution.

당신은 이야기꾼 성향이 강하다. 이야기꾼은 이야기 자체를 즐기기 위해 RPG를 한다. 즉 이야기 전개에 대한 기대감, 좋은 책이나 영화와 같이 만족스러운 구성을 원하는 것이다. 이야기꾼은 입체적인 NPC와 개입되는 것을 좋아하며, 단순히 팰 수 있는 괴물보다는 진정성 있는 동기와 성격을 갖춘 적수를 선호한다. 이야기꾼에게 최대의 보상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참가하여 예측불허의 줄거리를 직접 겪으면서, 자신과 다른 참가자들의 선택이 그 이야기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With apologies to Robin Laws.

로빈 로스씨의 책에 나온 개념입니다.

Storyteller

85%

Character Player

60%

Tactician

50%

Casual Gamer

35%

Weekend Warrior

30%

Specialist

20%

Power Gamer

15%

What RPG Player (Not Character) Type Ar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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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안 되는 판정의 역설

판정 규칙이란 성공의 가능성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때로 판정이 실패하면 절대적으로 곤란한 경우도 생기지요. 잠긴 문을 못 빠져나가면 더이상 진행이 안되는 상황에서의 자물쇠 따기 판정이라든지, 진짜로 이 판정에 실패하면 세계가 멸망하는 상황이라든지, 주인공의 목숨이 걸려있다든지.

판정에서 성공하지 않으면 못 빠져나갈 정도로 주인공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어도 곤란하지만, 진행자도 사람인지라 그런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세가지 정도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 판정 결과를 속인다

적이 주인공에게 실제 가한 피해가 32HP인데 한 20HP 정도로 속인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주인공을 살리거나 진행의 정체를 막기 위한 전통적인 해결책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의문도 많이 드는 방법입니다. 특히 진행중 주사위 결과를 자주 속여야 한다면 규칙 선택이 잘못됐거나 파워 레벨을 잘못 설정한 등, 뭔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판정 결과를 속이는 방식의 변형으로는 주사위 나온 것을 보고 적의 능력치나 판정 난이도를 낮춘다든지, 결과가 안좋게 나온 주사위를 적당히 무시하고 다시 굴리라고 한다든지, 판정 반복의 시간간격이나 벌점을 무시한채 재판정을 시킨다든지 하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편하고 유서깊은(..)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자주 사용해야 한다면 규칙 선택이나 진행상의 문제가 있지 않나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모든 판정에 초인적인 난이도를 요구하고 있거나 모든 적이 다 주인공을 훨씬 뛰어넘는 능력자라면 특히 더…

2. 판정을 하지 않는다

정 실패를 바라지 않는다면 판정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어서, 판정을 해야할만큼 성공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꾸 판정을 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규칙의 전부 혹은 일부가 유명무실해지기 쉽습니다.

대표적으로 전투능력에만 치중한 주인공 일행이 사회판정을 해야 할 경우, 사회판정은 판정 없이 연기로 지나가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차라리 모든 주인공이 전투능력에 치우쳐 있다면 사회판정 규칙은 그냥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사회능력에 투자한 주인공이 있다면 사회판정의 부재는 그 주인공의 투자를 쓸모없게 만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투를 판정 없이 지나가지는 않을테니 결과적으로 우리의 약골 주인공은 사회능력은 유명무실해졌고 전투능력은 떨어지니 다른 주인공보다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규칙책의 어떤 부분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을 사문화시킬지는 진행자와 참가자가 합의할 문제이지만, 그러한 합의가 뚜렷이 없는 한 판정규칙, 특히 주인공들이 투자한 능력의 판정규칙은 왠만해서는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1번과 2번 해결책은 또한 그 실행이 오직 진행자의 자비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진행자의 자의성 문제가 생기기 쉬우며, 심지어는 진행자가 참가자를 가지고 노는 결과도 될 수 있기 때문에 불완전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으로서는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적들이 주인공을 흠씬 두들겨패다가 다 죽을 지경이 되자 ‘그러면 다음에 다시…’ 하고 핫핫핫 웃으며 사라진다든지 말이죠. 이럴 경우 참가자들은 주인공들의 운명에 대한 제어력을 완전히 빼앗기며, 무력감과 소극성에 빠질 수 있습니다.

3. 갈등판정의 개념을 도입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완전한 해결책은 이것입니다. 대개의 기성 규칙책은 갈등판정보다는 행동판정을 전제로 하고 있긴 하고 있기는 하지만, 갈등판정은 어떤 규칙에든 쉽게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지요. 갈등판정과 행동판정의 개념은 예전에 쓴 글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패하면 안 되는 판정에서 갈등판정의 활용은 꽤나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판정에 무엇이 걸려있는지 미리 정해놓기 때문에 실패하면 안되는 부분은 아예 판정에 걸지조차 않음으로써 이 문제를 비껴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 속에서 우리에 갖힌 상태에서 자물쇠를 따고 탈출해야 한다면, 이 상황에 처하게 한 신을 (혹은 진행자를) 원망하기보다는 판정에 걸린 결과를 협상할 수 있습니다. 자물쇠따기 판정 실패 -> 주인공의 익사 혹은 진행자의 선심이라는 결과보다는, 판정에 걸린 결과를 자물쇠를 따느냐 마느냐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이죠. 판정에 실패한다고 자물쇠를 따기에 실패하는 대신 실패하면 따는 것이 늦어서 동료를 도와주지 못한다든지, 볼썽사납게 따서 비웃음을 산다든지, 신발에 숨긴 자물쇠 따는 도구를 들킨다든지. 역으로 말하면 성공할 경우 자물쇠를 재빨리 따고 탈출해서 동료가 잡혀가는 것을 막거나, 멋지게 따서 탄성을 자아내거나, 신발에 숨긴 도구를 들키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주사위운이나 진행자의 자비에 의존하지 않아도 실패하면 안되는 판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 성공 못지않게 실패 역시 재미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실패가 ‘도둑 A는 그렇게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꼬르륵.’으로 이어지는 것보다는 ‘이런, 물속에 갖혀있는 사이 전사 B가 잡혀갔습니다! 이젠 어쩌죠?’로 이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더 재밌으니까요.

갈등판정의 활용에는 판정과 결과의 시간적 분리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전에 진행한 바빌론 베이브 5화의 경우, 주인공 사사트는 도망노예들을 이끌고 사막을 건너기 위해 베두인들을 설득해야 했죠. 이 경우 판정에 걸린 것을 ‘베두인이 안내를 해주겠다고 동의할 것이냐’가 아닌 ‘베두인이 배신하지 않고 무사히 안내해줄 것이냐’로 바꿈으로써 일단 사막을 건너는 여정을 시작은 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판정의 결과설정에 따라서는 판정과 결과가 시간적으로 분리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판정과 결과가 시간상으로 따로 나타난다는 것은 또한 의외성이라는 흥미로운 극적 요소를 제시하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바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물론 판정의 결과가 참가자의 예상범위에서 너무 벗어나면 곤란하다는 일반원칙은 지켜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판정에 실패해서는 안되는 경우의 해결책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위에 제시한 것 외에도 규칙책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로는 극점수와 같은 추가 자원의 활용과 서술권의 활용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던전이나 트롤베이브 같은 몇몇 인디 규칙책은 ‘참가자가 판정에 성공하면 진행자가 그 결과를 서술하고, 참가자가 실패하면 진행자가 그 결과를 서술한다’는 서술권 분리 규칙을 사용하고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규칙이 있는 경우는 참가자가 판정에 실패한다 하더라도 서술을 통해 그 결과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으며, 판정에 성공하는 것은 서술적 제어력을 잃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서술권을 얻기 위해 실패를 바라는 경우마저 생각할 수 있죠. 간단한 규칙이면서도 성공과 실패의 일반적인 관계를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단편의 구성요소와 RPG

판타지 작가이며 잡지 편집장이었던 고 마리온 지머 브래들리 (1930-1999)가 1996년 쓴 글, 단편이란 무엇인가? (영문)를 보고 RPG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고 느꼈습니다. 브래들리는 이 글에서 돈이 되는 대중 단편소설이란 일정한 공식이 있게 마련이며, 이 공식을 충실하게 지키면 누구든 글을 팔아서 많든 적든 돈을 벌 수 있다고 단언합니다. 대개의 성공적인 장편소설 역시 비슷하지만 호흡이 더 길 뿐이라고 말이죠.

브래들리가 제시하는 단편소설의 공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감가는 주인공어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노력해서 의미있는 목표를 성취한다.

이쯤 되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고 느끼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것은 재미있는 RPG의 요소에 놀라울 정도로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공식에서 어긋나서 상업적 수준의 이야기가 안 나오는 이유들도 RPG를 재미없게 만들 수 있는 병리현상들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RPG에 적용할 때는 모두 조금씩 변형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매우 유사합니다.

1. 주인공에게 공감이 안 간다.

반드시 주인공이 완벽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너무 완벽한 주인공에게는공감하기 힘드니까요. 공감가는 인물을 보면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뭔가 빠지는 게 꼭 있죠.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모습의 주인공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모든 대중 매체의 공통점이라고 할만합니다.

RPG에서도 비슷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라면 참가자가 주인공을 연기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따라서 소설보다 주인공에 대한 몰입도가 높기 때문에 자기 주인공에 대해서는 왠만하면 공감을 느낀다는 점이 다릅니다.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 문제되는 건 오히려 진행자를 포함한 다른 참가자들입니다. 참가자 자신이야 자기 주인공이 좋아 죽겠다고 해도, 진행자와 참가자들에게 그 주인공이 너무 재수없다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행이 모은 보물을 훔치는 도둑이라든가, 다른 일행에게 삥뜯는 전사라든가, 자꾸 일행을 따돌리고 혼자 다니려는 기사라든가.) 진행자는 그 시나리오를 짤 때 그 주인공에게 신경을 안 써줄수도 있고, 참가자들은 자기 주인공들을 조종해서 그 주인공을 무시하거나 해코지할 수도 있죠. 협력적인 놀이인 RPG의 성격을 감안하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주의할 것은 이건 진행자와 참가자의 감정 문제이지 주인공들의 감정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등장 인물들끼리야 아무리 으르렁거려도 그게 실제 참가자들이 느끼는 감정이 아닌 이상 플레이는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으니까요. 다른 등장인물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일행간의 갈등도 극적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에 대한 공감 부재를 해결하려면 결국 모든 참가자가 (진행자 포함) 허심탄회하게 인물 설정과 주인공 행동 등 플레이에 대한 사항을 논의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문제는 취향으로 돌아가고, 어떤 문제는 일반적인 극적 재미의 원칙 (절대완벽한 인물은 심심하다거나), 또 어떤 문제는 참가자의 무배려 (다른 주인공 사기치기 등)에 해당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문제가 있을 때 서로 얘기하고 귀기울이지 않으면 플레이의 재미는 곤두박질칩니다. 플레이후 간담회 등 의사소통의 통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좋은 이유죠.

주인공에 대한 공감은 또한 주인공이 악당인 캠페인을 돌리는 어려움과도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흔히 말하는 악 성향 캠페인의 문제죠. 이건 취향 차이도 크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가능한 이유도 전혀 없이 남을 해치는 게 목적인 악당은 주인공으로서 최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라는 요소 때문이죠.

2. 극복해야 할 어려움이 없다.

저택으로 들어가서 지도를 훔쳐내야 하는데 앞문은 열려있고, 집안에는 사람 하나 없고, 지도는 책상 위에 보라는듯 펼쳐져 있어서 유유히 가지고 나오면 되는 시나리오가 있다면? 그리고  주인공들이 침입하는 모습을 몰래 녹화한 것도 아니고 지도가 가짜인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속임수도 없었다면? 좋은 시나리오라고 박수받기는 좀 힘들 것입니다. 뭔가 어려움이 있어야 성취 또한 값지기 때문이죠. 또한 어려움 없이는 주인공이 능력이나 기지를 발휘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짜 극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장애물을 준다면 그것 또한 문제죠. 이것은 주인공들을 괴롭힌다는 핑계로 참가자를 괴롭히는 행동입니다. 진행자라면 누구든 주인공을 괴롭히되 참가자를 괴롭히지는 말라는 원칙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복이 불가능한 장애물을 던져준다면 그 장애물을 피해갈 방법 또한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가자는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흥미를 잃을 테니까요.

극복이 불가능한데다가 피할 수조차 없는 장애물은 세번째 병리현상에도 연결됩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일행 몰살이나 막다른 골목 식으로 시나리오가 완전히 막혀버리므로 결국 진행자가 자비(…)를 베풀거나 해결사 조연(NPC)을 보내야 한다는 점에서도 3번과 연관되지요.

3. 주인공 스스로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분명히 악당도 잡았고 보물도 잔뜩 얻었는데도 참가자들이 불평하는 배은망덕한(!)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경우죠. 도저히 손도 못댈 정도로 강한 적에게 두들겨 맞고 있는데 주인공보다 훨씬 강한 조연이 나타나서 땀 한방울 안 흘리고 해치워줬다거나, 문이 안 열려서 동동거리고 있는데 좀전까지 이상하게도 안 보였던 열쇠가 바로 옆에 있다거나 한 경우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설득에 못이긴 조연이 와서 도와주는 것처럼 주인공의 행동에 의한 것일 때에는 해당 없지만, 주인공의 행동과 상관없이 진행자가 던져주는 행운에 의해 일이 해결되는 경우 참가자들은 고민과 모색 끝에 문제를 해결하는 재미를 박탈당한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이 못하는 일마다 나타나서 찬란한 활약 끝에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조연은 십중팔구 참가자들의 미움을 사게 마련이지요. 이 넓은 세상에 주인공들보다 더한 실력자가 있는 것은 물론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뛰어난 조연을 부를 경우 그것은 주인공 자신이어야지, 부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끼어들어서 일을 해결하는 조연은 주인공이 활약할 기회를 빼앗을 뿐입니다.

4. 목표에 의미나 가치가 없다.

너무 작고 별볼일없는 목적은 고생해서 이룰 가치가 없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수단과 목적의 균형도 생각해야 하는데, 전화번호를 적을 연필을 찾기 위해 책상서랍을 뒤지고 소파 밑을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연필 한자루를 구하러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사하라 사막을 건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산업사회 기준, 궁극의 세계파괴 마법의 연필 제외)

반대로 참가자들이 공감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목표 역시 의미없게 느껴지기 쉽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나 우주를 구하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확실히 객관적으로 가치가 있는 목적이기는 하지만 참가자들의 기대치와 따로 놀 때는 연필 찾아 세계일주만큼이나 싱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캠페인의 성격, 참가자들의 희망, 주인공 설정 등에서 세계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만한 개연성이 보이지 않으면 세계를 구하는 것은 그저 캠페인 규모를 키우기 위한 억지일 수도 있습니다.

참가자가 원하는 플레이의 성격은 종종 주인공 설정을 통해 드러나는만큼 주인공들의 설정은 의미있는 캠페인 목표를 설정하는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또한 이러한 설정들은 플레이 전 진행자와 참가자가 한 합의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아니라면 좀 문제가…) 상상 속의 인물일 뿐인 주인공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주인공 설정은 이와 같이 참가자의 기대와 캠페인에 대한 합의의 표현이기 때문에 꼭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개별 주인공의 설정과 목표를 참고는 하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소설과 달리 RPG에서는 반드시 성취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노력으로 성취할 정당한 기회가 주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어쩌면 그 과정에서 얻는 것이 실제 성취보다 많을지도 모르고, 인물의 생각과 관점이 변해가면서 목표도 달라질지도 모르고, 막상 목표를 달성해도 생각보다는 허무할지도 모릅니다. 모두 극적 재미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요.

이와 같이 브래들리 여사의 글에 비추어 RPG를 재미있게 하는 요소, 그리고 RPG를 재미없게 하는 문제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뭐, 결국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재밌는 게 중요한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그 재미라는 것도 때로 만만치 않다는 것이 RPG의 어려움, 또한 묘미인 것 같습니다.

플레이중 총기 사용에 대한 조언

빈센트 베이커의 RPG ‘사탄을 위해 강아지를 죽여라 (Kill Puppies for Satan)’ 중 총기에 대한 공개 발췌문을 많이 순화하고 생략해 가며 번역했습니다. 총기 사용의 사실성을 반영하는지 여부는 취향 나름이겠지만, 염두에 둘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RPG 규칙에 나오는 총기 사용과 그 결과는 현실이 아닌 그 변형이라는 것을 말이죠.

RPG에는 제대로 된 총기 규칙이 없다. 제대로 하려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맞는다고 해도 총알이란 회전하고 구르고 튀고, 갈빗대 사이에서 돌다가 반대쪽으로 나오거나, 버섯처럼 부풀거나 산산이 부서지거나 하게 마련이다. 그런 관계로 조언이나 몇마디 할테니까 총기 규칙 같은 건 기대도 하지 말길.

– 총기의 목적은 살상이다. 한방에 사람을 못 죽이는 총이라면 어린애들한테 팔아넘길 가치가 없겠지 않겠는가. 따라서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 당신, 생판 모르는 사람, 아래층 이웃, 누구든지 죽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참가자들에게도 주지시키도록.

– 반면에 확실한 살상이란 것도 없다. 예외적인 건 알지만 존 F. 케네디는 뇌가 차 트렁크에 묻어있을 지경이었는데 몇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망판정을 받았다. 머리에 총맞고 숨 못쉬고 있었다가 멀쩡하게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늘 그런 것도 아니고 자주 그런 것도 아니고 실은 아주 드물지만 어쨌든 있긴 있다. 주인공이 100%의 확률을 원하면 총알을 무진장 많이 쓰게 해라.

– 총격전중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고, 정확성이라는 건 완전히 미친 소리다. 디알로 사건을 보면 경찰이 41발을 쐈고 희생자는 바로 문간에 서있었는데도 1. 맞은 건 19발밖에 안되고, 2. 경찰은 그가 응사하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일단 총알이 날아다니면 누구든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어디에 총이 맞았는지도 모르고, 적이 쓰러졌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술적 정보 따위 주지 말라. 보고 들리는 것을 알려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해라.

– 총알은 모두 어디론가 가게 돼있다. 명중시키든 못하든 뭔가 일이 벌어지지만, 그 총알이 어디 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돌벽에 박혀있나? 창문으로 나가서 왠 할머니네 오븐에 가 박혔나? 개 산책시키던 놈 갈빗대에 박혔나? 쏘려고 하는 표적 너머에 뭐가 있는지 참가자가 물어보게 하라.

– 총알은 마법을 부려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몸에 엄청난 구멍을 내면서 죽이는 것이다. 일단 총에 맞으면 피가 튀고, 손가락이 날아가고, 턱뼈와 팔꿈치가 나가고, 입과 코로 찢어진 내장 조각을 토해내게 된다. 사람을 깨끗하게 죽인다는 건 없다.

– 죽는다는 건 거지같은 일이다. 정신을 잃고 못 일어날 수도 있고, 한시간동안 비명을 지르다 죽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다음날까지 고통에 시달리며 배설기관에 대한 제어력을 잃을 수도 있다. 머리 측면으로 총알이 들어오면 때로는 뇌가 부어서 순환이 안 되는채로 뇌간은 멀쩡히 살아있을 수도 있다. 심장도 뛰고 숨도 쉬고, 장기기증에는 딱이지만 완벽하게 죽은 뇌사상태인 것이다. 일단 다치면 제일 확률이 높은 방법은 무조건 병원에 가는 거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사람을 쏘는데는 상황에 따라 좋은 총이 있다. 글록 19는 사람을 쏘기에 아주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에 좋다. 4년 동안 끝없이 왕따당하다가 더이상은 도저히 못 참겠다든가. 또 정확성도 아주 좋다. 펌프 샷건은 사람을 확 반으로 갈라버리기 직전에 그 특유의 소리를 낸다. 콜트 9mm 자동소총은 방안에 있는 사람은 다 죽이고 싶지만 옆집 사람들은 죽이고 싶지는 않을때 좋다. M16은 누굴 죽이든 상관도 안할 때 최고다. 대체로 용도에 맞는 총을 쓰게 하되, 참가자들이 총기 매니아이기를 기대하지는 말도록.

RPG 속의 일행

일행 개념은 진행자/참가자의 역할 구분, 주사위, 규칙책과 함께 RPG의 가장 오래된 전통에 속합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저는 일행 단위의 진행에 대해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1 플레이의 허와 실에서 다루었듯 일행에는 많은 장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꿔주는 분업이라든지, 여러 사람의 이야기와 인간관계, 발상이 엮여서 나오는 상승 효과라든지요. 또 현실적으로 참가자가 한 명을 넘어갈 때부터는 일행이 가장 편리한 단위이기도 합니다.

반면 RPG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다양해지면서 일행 개념에 무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주인공들이 함께 몰려다니며 전투하는 미궁 탐사형 모험이라든지, 모두 같은 조직에 속해서 임무를 함께 하는 임무형 모험 등에는 일행 개념이 변함없이 유효합니다. 하지만 주인공들 사이에 그런 접점이 없이 각자의 삶이 있을 때 일행을 유지하기란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각자의 목적이 일치할 때는 함께 행동하기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각 주인공의 동기와 이해에 따라 일행이 흩어지기 쉬운 것이지요.

일행이 깨졌을 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등장하지 않고 있는 주인공을 조종하는 참가자는 할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특정 장면에서 등장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될지는 몰라도 더 중요한 것은 참가자가 심심하다는 사실이겠죠. RPG는 뭔가를 하는 놀이이지 구경하는 놀이는 아니니까요. 이 ‘구경’ 부분이 너무 많아질 수 있다는 점이 일행이 갈라졌을 때의 문제점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일행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선은 어떻게 하면 일행을 유지시키느냐, 두번째는 혹시 일행이 갈라지더라도 어떻게 하면 참가자가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가. 각 논점은 다시 규칙 내적인 해결 방법과 규칙 외적인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 일행 유지시키기

1.1. 규칙으로 일행 유지시키기

규칙 내적으로 일행을 무조건 유지시키는 규칙책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얼음깨기 같은 경우  데이트를 다루는 규칙이므로 두 주인공이 함께 있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지만, 2인용이므로 일행 유지가 문제되는 인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행을 유지시키는 규칙상의 수단이라면 강제하기보다도 유도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궁 탐사라고 봅니다. 일행 전체의 분업을 통해서 보물을 획득하고 괴물을 잡는다든지요. 물론 시나리오의 구성에 따라서도 분업은 확보할 수 있는 등, 전반적으로 규칙 자체가 일행을 유지시키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1.2. 규칙 외의 수단으로 일행 유지시키기

규칙 외적 수단을 통한 일행 유지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 함께 행동할 수밖에 없는 설정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에 아사히라님의 아루스 캠페인처럼 모두 같은 수사대 소속이라서 함께 임무를 해결한다든가, 제노시아님의 언더월드 캠페인 외전 중 제가 진행하는 ‘브루하 폭주전대’처럼  같은 특수부대 소속이라든가. 이 경우 주인공끼리 어느정도 갈등이 생겨도 왠만하면 일행이 유지된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아루스 캠페인 당시의 이단심문관 아론과 사제 레테, 아니면 폭주전대의 단순과격한 요한과 왕자병 환자 프란츠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라도 일행이 바로 깨지지는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행을 유지하면서도 주인공간의 관계를 심도있게 탐색할 수 있습니다. 반면 다룰 수 있는 이야기의 소재는 다소 한정되겠지요.

의무적으로 함께 일행으로 묶인 경우가 아니라도 각자의 이해관계나 목적이 일치해서, 혹은 휘말려서 함께 행동하게 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전에 진행했던 라이테이아 캠페인이나 현재 참가하고 있는 제노님의 언더월드 3기가 그 예입니다. 각자 다른 생활이 있는 사람들이 공동의 적 때문에, 혹은 우연같은 농간같은(…) 상황 때문에 일행을 이루는 경우이지요. 이러한 방법을 쓸 때면 임무의 속박이 없기 때문에 주인공간의 감정적 갈등의 범위는 제한되는 느낌입니다. 어쨌든 싫어지면 (생존 같은 중대한 이유가 걸려있지 않은 이상) 헤어지면 그만이니까요.

또한 각자의 삶이 따로 있기 때문에 일행을 유지하는데 때로 논리적인 무리가 가기도 합니다. 라이테이아 때는 예언까지 동원해 가면서 좀 억지로 일행을 만든 감이 있고, 나중에는 그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엄청난 우연을 동원시키기도 했죠. (참가자들이 저 진행자 미쳤나 하고 쳐다보면 당당히 예언을 가리키는 것입..) 이 접근의 장점이라면 다양한 설정과 성격의 사람들이 서로 엮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 대개의 플레이에는 왠만하면 일행을 유지하자는 게임 외적인 합의가 깔려있습니다. 어쨌든 일행 개념을 전제로 한 캠페인에서 자꾸 주인공들이 따로 논다면 파토는 이미 성큼 다가와 있다고 봐도..(…) 결국 이 부분은상호존중과 상호합의라는 일반론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2. 일행 없는 진행

일행 단위로 진행하는 모험에서도 일행이 어쩔 수 없이 갈라지는 때가 있습니다. 또 처음부터 일행 개념이 어울리지 않는 성격의 이야기도 있을 법 합니다. 역시 규칙 내외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1. 일행 없이 진행하는 규칙

제가 접한 RPG 중에서 일행 개념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주인님과 함께’가 처음입니다. 이 경우 주인공들은 돌아가면서 하나씩 장면을 진행합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해서 조력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며, 기본적으로 진행 방식은 순차적입니다. 개개인의 인간성과 자기혐오 사이의 갈등이 중점인만큼 일행 단위 진행이 필요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위에서 말한 참가자가 구경꾼이 되는 현상은 해결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주인님과 함께의 전신격인 니코틴 걸즈도 일행 개념은 없지만, 대신 같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을 통해 다른 주인공의 이야기와 성공률에 어느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반드시 모든 주인공을 참가시키는 것도 아니고 또 주변 인물과 피울 수도 있기 때문에 참가자의 참여가 규칙 자체적으로 확보되지는 않습니다.

트롤베이브 같은 경우 지도 중심 모험으로, 지도의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지정하면서 모험을 시작합니다. (바빌론 베이브 캠페인 같은 경우 기원전 4세기경 중동 지도[503KB 그림 파일 직링크]를 사용하고 있지요.) 그리고 주인공들이 지도상에서 서로 다른 지점을 선택했을 경우 때로는 전혀 만나지 않은채 각각의 이야기로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행동이 서로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하라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발상이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지침이 없고, 참가자들이 다른 주인공들의 얘기에 제안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고 해도 자기 주인공이 나오지 않고 있을 때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폴라리스 같은 규칙이 일행 없는 플레이를 진행하는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 참가자의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에서 나머지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나눠가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기 주인공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모든 참가자는 규칙 자체적으로 주어진 역할을 가지게 됩니다. 진행자는 보통 참가자보다 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 진행자 역할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하는 것은 오히려 논리적이기도 합니다.

이는 한번에 한 주인공의 감정적, 극적 변화에 집중하면서도 다른 참가자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해결책으로 보이긴 합니다. 다만 얼음깨기와 비슷하게 인원 제한이 있고 (3명이나 5명으로도 돌릴 수 있긴 하지만 4인이 이상적), 죽음과 타락이라는 매우 개인적이고 우울한 소재를 벗어나면 얼마나 효과적일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캠페인 전체에 거치는 계획이나 구성을 짜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르스 마기카 같은 경우 트루프 플레이라는 기법을 통해 일행이 갈라지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정확히는 일행이 깨지는 대신구성이 변하는 것이지요. 이 규칙에서는 마법사가 가장 강하고 비중도 높습니다. 반면 마법사만 나온다면 단조로워지기 쉽죠. 따라서모든 참가자가 각각 셋 이상의 등장 인물 (마법사, 전문가,일꾼 3종)을 제작하고 상황에 따라 바꿔가면서 연기합니다. 예를 들어마법사의 집회 때는 참가자 전원이 자기 마법사를 연기하면 되지만, 한명의 마법사만 여행을 떠난다면? 이때는 다른 참가자들의전문가와 일꾼이 따라가면 됩니다.

이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일행이 갈라졌을 때의 지루함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봅니다. 반면 참가자가 한명의 주인공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을 경우 인물을 바꿔가며 연기하는 것은 그다지 즐겁지 않을 수도 있으며, 바꿔치기하다 보면 진행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2.2. 일행이 갈라졌을 때의 규칙 외적 해결 방법

이제 일행이 갈라져도 (혹은 처음부터 없어도) 지루하지 않을만한 방법 중 규칙과 상관없이 사용할만한 것들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아르스 마기카 (Ars Magica)식으로 한명의 참가자가 여러 명의 주인공을 제작하는 것은 규칙이라기보다는 기법이므로 아르스 마기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입니다. 이는 인물의 힘이나 비중 등의 ‘급’이 다른 인물들을 모두 플레이할 수 있는 접근법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지금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참가자에게 주변 인물(NPC)을 주어서 연기하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실제로 위에서 얘기한 아르스 마기카 트루프 플레이의 경우 가장 약하고 비중도 적은 일꾼은 진행자도 주변인물로 돌릴 수 있고 다른 참가자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인공과 주변인물의 경계가 흐릿한 유형입니다.

물론 참가자의 주변인물 연기는 인물의 성격이 갑자기 변한다든지 정보의 차이가 많이 난다든지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시나리오에 기반한 진행일 경우에는 시나리오의 내용이나 주변 인물의 뒷이야기를 어느정도 참가자에게 알려줘야 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일행은 비록 RPG의 전통적인 요소이지만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며, 일행이 있더라도 다루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째 상당히 길어지긴 했지만..) RPG의 소재가 다양해진만큼 일행 개념도 좀더 다양하게 변해가고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지겠지요.

장기 캠페인의 신화

대개의 규칙은 보면 긴 캠페인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캠페인이 장기로 갈 것을 전제로 하고 시작하지요. 하지만 저같은 경우는 한번도 몇년에 걸친 장기 캠페인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긴 캠페인의 얘기는 먼나라 이야기로만 느껴지게 되더군요. 아주 긴 캠페인을 해보지 못한데는 몇가지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1. ORPG만 해봤다

에바님에 따르면 TRPG는 일단 사람이 물리적으로 모여야 하므로 일단 시작하면 지속성이 길고, 따라서 한번 캠페인을 시작하면 길게 가기가 좀더 쉽다고 합니다. 반면 ORPG는 쉽게 시작하지만 그만큼 쉽게 끝나지요.

2. ORPG는 느리다

시하야님의 추산으로 ORPG는 TRPG 속도의 1/4쯤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따라서 TRPG보다 두배의 시간을 들였어도 ORPG는 TRPG의 반 정도의 내용밖에 진행이 안된 것이죠. 이러한 시간 비효율성 때문에 ORPG는 더 빨리 질리고, 긴박감이 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3. 바쁘고 자꾸 변하는 생활

요즘에는 다들 시간이 없고 시간 맞춰 모이기가 참 힘들죠. 게다가 수험, 진학, 입대, 취직, 유학, 결혼, 출산, 이사 등등의 이유로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맞는 시간대는 더더욱 없어집니다. 참가자 한두명이 이런 식으로 캠페인에서 빠져도 내용의 연속성이라든지 팀내 역학에 무리가 생기게 되고, 참가자 다수나 진행자를 잃을 경우 계속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은 OR에도 TR에도 있을 수 있는 문제지만 (오히려 TR에 더 심각할 수도 있죠), OR은 쉽게 깨지고 느리다는 점 때문에 장기 캠페인의 지속성 면에서 심각한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TR에서 주인공들 조우하고 공주 구하고 드래곤 죽일 시간에 OR은 주인공들끼리 주점에서 떠들다가 끝날 수도 있다는 얘기죠. 지속 시간 자체는 비슷해도 어느쪽이 더 장기 캠페인으로 느껴질까요?

4. 싫증, 말다툼, 기타등등

현실적인 이유 외에도 다양한 게임 내외적 요인으로 캠페인은 끝날 수 있습니다. 캠페인이 싫증난 경우도 그중 하나이죠. 제 경험상으로는 대체로 진행자가 캠페인에 싫증을 잘 냅니다. 진행자는 어떤 참가자보다도 캠페인과 규칙을 잘 알고 있으므로 금방 질리기 쉽고, 또 평균적으로 진행자가 다양한 규칙과 발상을 모색하지요. 하지만 재미없는 플레이, 문제있는 진행과 같은 이유로 참가자들도 캠페인에 싫증을 낼 수 있습니다. 팀원들끼리 다투다가 공중분해되기도 하고요.

5. 파토, 파토, 파토.

원인이 무엇이든 그 결과는 파토이고 캠페인의 끝입니다. 따라서 장기 캠페인으로 의도했는데도 금방 끝나버리게 되지요.

6. 그래서?

위와 같은 파토의 요인들을 최한 피하는 것이 장기 캠페인을 하는 비결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장기 캠페인의 신화를 버릴 때도 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장기 캠페인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이나 (3권, 약 1,200쪽) 얼음과 불의 노래 (현재 4권, 3,000쪽 이상)를 읽는 것처럼 많은 시간과 사건을 거치면서 주인공들이 변해가고 그들 주변의 세계 역시 변해가는 것은 상당한 희열입니다. 운이 좋다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을 웃도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겠죠.

하지만 장기 캠페인을 유지하기 힘든 것이 뻔히 보이는데 괜히 야심차게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는 것보다는 적은 시간과 노력의 투자로 그에 상응하는 재미를 느끼는 것이 더 효율이 높다고 봅니다. 그리고 짧은 캠페인이 반드시 장기 캠페인만한 재미가 없다고 단정하기도 힘듭니다. 적어도 분명한 단기 캠페인이 흐지부지 끝나는 장기 캠페인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7. 재미는 처음부터

장기 캠페인이든 단기 캠페인이든 무조건 기억해야 할 문제 같은데, 초보자님과의 대담에서 나왔듯 하고 싶은 것은 처음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자! 30레벨 되면 드래곤을 잡을테니 1레벨부터 시작해!” 라고 외치는 것은… 뭐, 30레벨까지 가면 좋지만 1레벨에서 끝나면 참으로 허무한 일인 것입니다. 차라리 30레벨부터 시작해 드래곤부터 잡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물론 처음부터 강한 힘 (전투력, 사회적 지위, 경험 등)이 공짜로 주어지면 재미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것은 장기 캠페인의 묘미 중 하나이지요. 주인공을 너무 강하게 시작시키지 않으려면 그들이 마주하는 장애물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벌써 3개월째 죽어가고 있는 드래곤의 경련 때문에 일대에 지진이 일어나자 모험가들은 드래곤이 누워있는 미궁 깊숙히 들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드래곤의 숨을 끊어준다든지.

재미를 뒤로 미루는 것은 캠페인이 예상보다 빨리 끝났을 때 허탈감을 불러오기 쉽습니다. 재미는 처음부터! 처음부터 좋은 발상을 다 써버린다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차피 더 재미있는 상황들이 마구마구 벌어질테니까요. 캠페인이 갑자기 끝나버렸다고 해도 나중에 회상할때 ‘오크한테 밟히다 끝났어!’보다는 ‘에헴, 그래도 우리가 드래곤은 잡았었지 (비록 드래곤이 죽여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이 좀더 좋은 기억일 테니까요.

8. 단편 혹은 단기 캠페인

단편 혹은 단기 캠페인은 장기 캠페인을 하기 힘들 때 좋은 대안입니다. 장기 캠페인의 웅장한 서사성은 적은 대신 보다 긴장되고 짜임새 있는 모험이 가능하지요. 그리고 진행에 따라서는 서사성 또한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결말을 보기가 더 쉽다는 점에서 중간에 끊어진 장기 캠페인의 불완전성이 없지요.

많은 인디 RPG 같은 경우 짧은 플레이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바로바로 시작하고 빨리 끝낼 수 있는 라이서스, 우슈, 캣, 주인님과 함께 등. 이들 규칙은 장기 캠페인을 지원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 있지만, 반면 단기 캠페인에는 더 강하죠. 특히 주인님과 함께 같은 규칙은 처음부터 단기 캠페인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장기 플레이를 예정하고 있는 주류 규칙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며, 이러한 규칙들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9. 주기적인 재계약

마치 텔레비전 프로의 시즌처럼 단기 플레이의 연속으로 가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일단 일정한 길이의 단기 플레이를 끝내고 시청률(?)이라든지 배우와 감독 스케쥴 (…) 등을 봐서 또 한 시즌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종영을 하든지 하는 방법이지요. 어느 쪽이든 이야기가 중간에 뚝 끊어지는 허무함은 없지요.

제가 아는 규칙 중에서는 안방극장 대모험이 이런 방식을 지원합니다. 한 시즌은 5 세션 혹은 9 세션으로 이루어지며, 한 시즌 내에서는 주인공들이 모두 고르게 화면 존재감의 안배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물론 5/9 세션이란 TRPG 기준이므로 시하야님의 계산법을 따른다면 OR로는 20/36세션 정도가 된다는 얘기인지라, 저는 세번쯤 시도했지만 한번도 시즌의 끝까지 도달한 적이 없습니..(…)

포도원의 개들 같은 경우 신의 파수견들이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것이 줄거리이므로, 마을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옴니버스식 플레이를 지원합니다. 계속하면 장기 플레이가 되고, 끊으면 단편 내지는 단기 캠페인이 되지요.

제가 아는 캠페인 중에서는 제노님의 언더월드가 시즌 형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비록 주인공은 기와 기 사이 달라져도 공통된 배경 세계와 분위기, 그리고 사건들을 유지하고 있다는 면에서 장기 캠페인의 현실적 어려움을 피하면서도 그 장점을 취하고 있는 성공 사례로 보입니다. (제노님, 경험치는 아직입니…? (퍽))

10. 그래서…

뭐,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제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장기 캠페인의 신화를 버리자는 것이지요. 물론 장기 캠페인을 할 수 있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모든 플레이의 시작이 장기 캠페인을 예정할 필요는 없으며, 모든 규칙의 선택 기준이 장기 캠페인의 지원 여부일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중간에 끝나서 이도저도 아니게 되는 장기 캠페인은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니까요.

뭐, 장기 캠페인의 신화를 비판하는 글 치고는 좀 깁니다만…

전투, 무엇이 문제인가

며칠 전에는 하룻저녁에 세분이나 RPG 전투가 싫다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분은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두분은 새로 소개받은 분이어서 기분이 묘하더군요. 전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분들의 취향이나 경험상으로는 전투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RPG 속의 전투,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 소지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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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진행자가 참가자들 물먹이기가 상당히 쉽다는 점. 대개의 규칙에서는 적의 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진행자가 적을 말도 안되게 강하게 만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원성을 좀 들을 각오가 돼있다면야…) 그리고 실제로 일부 진행자들이 줄거리를 자기 뜻대로 진행시키기 위해, 혹은 적으로 나오는 등장인물에 대한 애착, 혹은 지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주인공들에 비해 심하게 강한 적들을 내보내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줄거리상 적이 강한 게 말이 되는 경우도 많겠지요. 방금 수련을 시작한 햇병아리가 무림의 최고 고수에게 물정 모르고 덤빈다든가, 위험하다고 수없이 경고받고서도 드래곤과 싸운다든가. 하지만 참가자들이 선택하지 않은 전투인데 너무 적이 강해서 형편없이 진다거나, 혹은 전투면 전투마다 깨진다면 아무래도 참가자들은 재미없어질 것입니다. 이럴 경우 전투가 싫어지는 건 고사하고 RPG 자체가 싫어지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또 한가지 전투가 싫어질만한 이유라면 주인공에 대한 참가자의 애착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주인공이 다치거나 지는 것이 싫을 수 있겠지요. 특히 전투는 주인공이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는 갈등이기 때문에 그 위험을 무릅쓰기 싫은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행자가 습관적으로 너무 강한 적을 내보낸다면 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집니다.

전투 규칙은 또한 다른 규칙보다 복잡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 판정은 비교적 단순해도 전투 판정에는 종종 수많은 선택 사항과 변형이 붙어서 복잡해지지요. 전투 판정이 기본 판정과 전혀 다른 하위 체계를 이루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결과 첫째, 전투 규칙은 더 배우기가 어려워지고 둘째, 전투가 느려집니다.

전투 규칙을 배우기 어렵다는 것은 가뜩이나 RPG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인 규칙 학습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전투 규칙을 제대로 모르면 활약의 기회를 빼앗기거나 자기 주인공이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을 수 있습니다.

전투 규칙의 복잡성 때문에 전투가 느려지는 것은 ORPG에서 더욱 심각해지는 문제로, 전투 하나로 한 세션이 다 지나가는 경우도 흔히 보입니다. 전투가 좋은 참가자에게는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전투가 별로 취향이 아닌 참가자에게는 지루하겠지요. 게다가 전투를 좋아하는 참가자조차도 그 느린 진행 속도에는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전투가 느리면 느려질수록 전투의 긴박감이란 증발해 버리기 쉬우니까요.

전투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 전투가 많아지면 생길 수 있는 문제라면 극중 문제 해결 수단의 획일화입니다. 모든 종류의 갈등에 ‘머리통을 깨부숩니다’로 대응한다면 (그리고 그런 대응이 늘 허용된다면) RPG의 미덕 중 하나인 다양한 해결책과 발상의 모색은 사라져 버릴 겁니다.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 오크 머리통 깨부수기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그런 건 개인적으로 CRPG에서 훨씬 하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피해를 감수하며 오크와 직접 싸우는 것보다는 적대 오크 클랜간의 대립을 부채질해 서로 피튀기며 싸우게 한 다음에 약화된 승자 쪽을 간단하게 쓸어버린다… 하는 쪽이 좀더 RPG 특유의 묘미가 느껴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전투 중심의 RPG는 종종 진정성이랄까,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예전에 힘의 종류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보통 가장 중요한 힘은 정치적, 금전적, 종교적 힘, 그리고 개인이 속한 집단의 힘이지 개인의 팔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팔뚝 힘 센 것을 가장 으뜸으로 치는 많은 게임의 논리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투가 RPG에서 가장 인기있는 활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역시 전투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고 적을 쓸어넘기는 것만한 재미가 없지요. 또 전투력은 실제 사회에서 더 중요한 사회적 힘과는 달리 가장 개인적인 능력이라는 점에서 가장 단순명쾌합니다. 이런저런 사회적인 압박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스트레스 해소랄까요.

두번째는 대개의 RPG 규칙이 전투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D&D, 7번째 바다, 겁스… 아마도 첫번째 이유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대개의 규칙책에서는 전투 규칙이 가장 복잡하고, 전투야말로 가장 전술적인 재미가 있는 게임 내 활동이기 쉽습니다. 바바 히데카즈의 글 파워 플레이에 나왔듯 말이지요. 규칙에서 어떤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어떤 부분을 다루지 않느냐에 따라 플레이중 강조점이 크게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대개의 기성 규칙은 전투 중심적이며, 그 때문에 플레이 역시 전투 중심으로 흐르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위에서 말한 폐해들이 상당 부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 RPG가 모의전쟁 게임에서 시작했다는 점, RPG 인구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 등 여러가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룰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전투가 취향에 맞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전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전투 과다로 인한 폐해 때문에 전투, 심지어는 RPG 자체가 싫어지는 사람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해결책은 불행히도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참가자들이 원하는 것을 서로 자유롭게 의논해서 파악하며, 늘 참가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들이 지루하지 않게 배려하라… 같은 원론적이고 당연한 소리로 해결될 건 별로 없으니까요. RPG는 곧 의사소통입니다. 그걸 모르는 RPG인은 없죠. 하지만 블로그에서 누가 떠든다고 갑자기 실천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실험적인 인디 규칙책 같은 경우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늘, 안방극장 대모험, 트롤베이브, 포도원의 개들, 라이서스, 페이트 등등 많은 인디 규칙이 전투와 비전투 판정을 동일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놀이가 전투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바 있습니다. 또 판정 자체도 간단해서 전투라고 특별히 느리지도 않았죠.

결국 제목 그대로 대안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문제점만 잔뜩 늘어놓은 느낌이군요. 어쨌든 취향이 아니든, 과거에 경험이 안 좋았든 전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RPG인도 즐길 수 있는 RPG계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다양성이라면 또 굉장한 게 RPG의 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_M#]

역할놀이 속의 가족, 혹은 그 부재에 대하여

많은 역할놀이에서 빠진 것 중 한가지를 들라면 바로 ‘가족’이 아닐까 합니다. 많은 경우 주인공들에게는 부모형제와 친척이 없거나 그 설정이 애매하며, 그들과의 관계가 놀이 속에 소재로 등장하는 일도 거의 없죠. 배우자나 자녀가 있는 경우는 더더욱 드뭅니다. 가족이 있고 설정이 자세한 경우는 많은 경우 어째서 그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는지, 혹은 왜 가족과 반목하는지 설명하기 위한 설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가족의 부재 경향을 꽤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족에 대한 감정은 종종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입체적이기 때문에 역할놀이에 좋은 감정적, 극적 기회를 제공하니까요. 으르렁거리며 싸우다가도 어려울 때면 달려오기도 하고, 열심히 서로 돕다가도 돌아서면 경쟁하기도 하는 등 복합적인 것이 가족관계입니다. 지겹고 지긋지긋해도 쉽게 놓을 수 없는 끈이기도 하지요. 한마디로 ‘인간의 굴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달까요. 사랑과 미움이, 원망과 미안함이 서로 상극만이 아닌 것이 친족관계입니다.

또한 한 인물의 성장배경을 보는 것은 그 인물을 완성하고 더욱 입체적으로 만듭니다. 거북이나 뱀도 아니고, 인간의 갓난아이는 절대로 혼자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보호와 양육을 받아야 하며, 그 과정은 그의 신체와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은 절대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그의 존재가 사회와 만나는 지점에는 언제나 그를 키워준 가족, 혹은 다른 양육자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이 아닌 동물의 손에 자라난 ‘정글북’의 모글리에게도 그를 거두어준 늑대 가족과 곰, 흑표범과의 가족관계는 그의 중요한 일부분입니다.

또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가족은 종종 사회적 권력의 기반이기도 합니다. 절대적인 이해공동체인 친족집단은 강력한 정치적 동맹이자 경제단위로서 기능해 왔지요. (메디치 가문의 거대한 자본력도, 그들이 배출한 교황과 왕비도 어디까지나 개인만의 능력이 아닌 ‘가문’의 전폭적인 협력과 지원이 뒷받침된 성과였죠.) 전통적인 사회일수록 이끌어주고 뒷받침해줄 가족과 친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사회적 성공률은 비교하기조차 힘듭니다. 이것은 사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실질적으로 많은 이득이 있는 가족이 역할놀에서 실종된 이유는 무엇일가요? 제가 보기에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역할놀이 자체가 어느정도 현실도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구질구질하게 가족관계에 치이는데 가상세계에서까지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역할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점. 예외가 많은 도식화이긴 하지만 대체로 여자의 환상이 가족적이라면 남자의 환상은 탈가족적입니다. 여성이 즐기는 허구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가족과 가족관계, 혹은 그 기반을 이루는 연애와 성이라면 남성이 즐기는 허구에서는 다 죽이든 대판 싸우든 다른 차원으로 가든 하여튼 어떻게든 가족에서 이탈해 자신의 능력을 보이는 게 중심이랄까요.

셋째, 나쁜 경험. 과거에 진행자가 참가자와 상의 없이 주인공 가족을 대학살했다거나 하는 나쁜 기억이 차후 캠페인에서 가족없는 고아를 양산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가상 인물의 가상의 가족이라고 해도 다 고문당하고 죽는다든지 하는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으니까요. (현실에서 아버지를 잃고 얼마 안돼 뱀파이어 LARP에서 사이어가 눈앞에서 살해당하자 크게 충격을 받은 사람도 있었죠.) 온갖 복잡한 감정이 얽힌 가족이라는 존재를 허구라고 해서 진행자들이 함부로 대하는 폐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가족을 역할놀이 속에서 활용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들이 있습니다.

첫째, 과연 가족이 필요한가 생각해 보기. 캠페인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주인공에게 가족이 있는 것이 좋은지도 달라질 것입니다. 지하감옥에 쳐들어가 괴물을 쓸어버리고 보물을 약탈하는 것이 놀이의 주요 내용이라면 딱히 주인공의 가족 설정이 그다지 자세할 필요도, 가족과의 관계가 등장할 이유도 없습니다. 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산을 차기하기 위한 싸움이 주요 내용이라면 가족관계는 꽤 중요해질 것입니다.

둘째, 명확한 선긋기. 진행자가 어디까지 주인공의 가족을 건드릴(?) 수 있고 어디서부터는 불가침인지 합의가 필요합니다. ‘위기에 빠지는 건 좋지만 생명의 위협은 안된다’라거나, ‘전혀 아무 위험도 닥치지 않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어떻게 돼도 괜찮지만 어머니는 안된다’ 등등 다양한 합의사항이 존재할 수 있겠지요. 일단 선이 명확하게 정해지면 참가자와 진행자 모두 편한 마음으로 가족을 극적 광맥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자유영역의 확보. 주인공에게 가족에게서 자유로운 삶의 영역을 확보해 두면 가족을 활용하되 얽매이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이점이 많은 극적 장치라도 주인공의 생활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지긋지긋해질 테니까요. 예를 들어 10대 수퍼영웅 이야기라면 성적과 장래, 아버지와의 갈등 등은 물론 가족과 긴밀하게 연관되겠지만, 수퍼영웅으로서의 활동이나 연애는 가족과 상관없게 하자고 합의한다든지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 자유영역은 넓게 잡을 수도, 좁게 잡을 수도 있겠죠.

넷째, 규칙의 활용. 겁스나 7번째 바다, 거의 모든 실험규칙 등 인맥과 배경에 규칙상 효과를 주는 경우 규칙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가족과 가족관계를 놀이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피난처나 숙박의 제공 등 위기시에도 이점이 되도록 하면 더욱 좋겠죠.

결론적으로, 주인공의 가족이란 보다 진정성 있는 인물연기와 세계설정을 위해 훌륭하게 활용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극적이고 사실적인 놀이에서는 더욱이요. 앞으로 좀더 많은 활약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페이를 다녀오다 – 현실세계 배경 역할놀이에 대한 단상

조금 전에는 페이를 다녀왔습니다. 뭔 소리냐고요? 페이(Paix, 평화) 시는 7번째 바다 배경세계인 테아의 최강대국, 몽테뉴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들이 거주하며 일하는 곳입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지구 최강대국인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대사관 거리입니..(퍽)

그쪽 길은 주로 제 3세계 대사관 구역인지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터키, 라트비아, 룩셈부르그, 멕시코, 이집트, 그리스, 에스토니아 대사관 등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오래된 집들을 개조해서 쓰는 것처럼 보였고, 각 대사관 앞에는 작은 정원도 있더군요. 개중에는 꽤 잘 꾸민 정원도 있었고, 이집트 대사관 앞에는 흐드러지게 핀 노란 장미가 인상깊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 국기를 같이 건 곳도 보였고, 더러는 UN기를 같이 걸어놓은 곳도 있었습니다. 한국 대사관은 뒤퐁 서클에서 Q 가 쪽을 향해 매사츄세츠 가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셰리단 서클에 있었습니다. 정원이랄 게 거의 없더군요. 좀 잘해놓지 그게 뭡니…(퍽)

대사관 외에 그 근방에서 재밌게 구경한 것이라면 체코슬로바키아 첫 대통령 토마스 마사릭의 동상, 또 건너편 거리에는 마하트마 간디 동상이… 셰리단 서클에는 무슨 기마상이 있었는데, 내일 다시 갈 때 자세히 봐야겠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봐도 별거 없군요. 그냥 말탄 콧수염 아저씨 동상이고, 받침대에는 ‘셰 리 단’ 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씌여있을 뿐…)

또 대사관 거리의 뒤퐁 서클 쪽 초입에는 ‘위스틴 대사관로 (Westin Embassy Row)’라는 호텔이 있더군요. 정문 옆쪽에는 ‘무도회장’이라고 된 입구가 있던데, 아마 주말이나 무슨 일이 있을 때면 저곳으로 대사들과 대사관 직원들이 화려하게 빼입고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그런 화려하면서도 긴장되는 파티를 RPG로 해도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뒤퐁 지하철역의 코네티컷가 출구쪽은 가는 길이 어찌나 가파르고 긴지, 한 500m는 넘을 것 같은 에스컬레이터가 저 위에 조그맣게 보이는 하늘을 향해 까마득하게 올라갑니다. (이대 지하철도 많이 들락날락했지만 상대가 안됩니…) 아예 계단이 없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둘, 내려가는 게 하나. 저 에스컬레이터 작동 안되면 아마 올라가는데 체력판정 몇번은 들어갈 것 같더군요.

코네티컷가 출구에서 나와보니 신체 멀쩡한 어린 놈들(아마 16~17)이 행인에게 돈을 청하고, 주변에는 스타벅스, 벤&제리, 뒤퐁 공원 등이 있고…

뒤퐁 공원은 가운데에 조각상 분수대가 있는 원형 공원으로, 수많은 새들이 풀밭에서 뭔가 열심히 주워 먹고 사람이 바로 근처까지 와도 신경을 안 쓰더군요.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원이라는 한계 때문에 썩 한가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꾸며놓은…

뒤퐁 공원을 원형으로 감싼 도로인 뒤퐁 서클은 뉴 햄프셔, 매사츄세츠, 코네티컷 3개의 가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DC 교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죠. (갑자기 관광가이드 모드?) 아마 말로만 듣던 로터리 방식의 도로인 것 같습니다. 신호등 없이 원형 도로에 진입하는 차량 쪽에게 양보하는…

뭐 대충 저런 동네입니다. 이것저것 모험의 여지가 무지 많아보이는 곳. 지하철 입구에서 모금하는 녀석을 적당히 달래고 을러서 정보 얻어내고, 대사관 앞 장미를 손질하는 정원사와 얘기를 나누고, 간디 동상 뒤에 암살자가 숨어있어도 재밌을 것 같은 곳. (마지막 부분은 단순한 악취미일지도…<-) 뒤퐁 공원의 비둘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게 중요한 단서가 된다거나, 지하철 출구로 도망치는 악당들을 잡기 위해 급히 에스컬레이터를 작동시킨다거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죠.

따지고 보면 현실세계만한 발상의 보물창고도 없습니다만 (게다가 모든 자료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 RPG로 정작 하려고 하면 가장 답답한 게 ‘잘 모르는데’ 하고 겁부터 지레 먹게 된다는 점일까요. 매사추세츠 가에 쭉 이웃하고 있는 대사관들만 해도, 재밌는 발상은 수십가지쯤 떠올라도 일단 주인공들이 그리스 대사관으로 들이닥치면 진행자가 그 내부 구조를 알 리가 없죠. 가상세계가 배경이라면 청산유수처럼 만들어낼 내용들을 배경이 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창작욕이 위축되는 면이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한 역할놀이의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아무리 흥미로운 곳이라도 속속들이 알기는 불가능하고,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할 수 있는만큼 자료를 모은 뒤 나머지는 현실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요. 뒤퐁 서클 주변이나 대사관 동네 같은 경우 관광이나 홍보 책자에서도 자료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여러모로, 부담이 아닌 재미로 다가오는 현실 배경 역할놀이는 제게 큰 과제이자 도전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매사츄세츠가 2000번지에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현실 속의 페이 시에서부터 말이죠.

1:1 역할놀이의 허와 실

진행자 한명, 참가자 한명으로 진행하는 1:1 역할놀이도 꽤 많이 해본 것 같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형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여럿이서 하는 편이 더 재밌다고 느껴집니다. 아예 2인용 놀이인 연애 시뮬레이션 얼음깨기(Breaking the Ice)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요.

1:1 놀이가 좋은 점이라면 역시 한 사람의 주인공에게 서사를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서술의 균형이라든지 초점의 분산 같은 걸 생각할 필요 없이 한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몰아줄 수 있고, 그 때문에 좀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가 지도자이자 시간조정자의 위치와 부담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랄까요.

또다른 강점이라면 시간이 덜 걸린다는 점입니다. OR에서는 더더욱 차이가 클 것입니다. 같은 시간에도 더 많은 내용을 진행할 수 있고, 이것도 진행이 좀더 편해지는 요인이죠. 같은 맥락에서 OR의 어려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대사 시차와 혼선 문제도 훨씬 덜합니다.

주인공에게 충분한 깊이가 있고 참가자가 연기 감각이 있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극적 서술을 만들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때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다른 주인공에게 신경쓸 필요 없이 한 주인공에게 파고드는 것은 1:1 놀이의 묘미 중 하나죠.

시간을 맞추기가 쉽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네 사람이나 다섯 사람이 동시에 모이는 것보다는 월등히 쉬우니까요. 시간관계 때문에 수많은 OR 팀이 깨지는 모습을 보면 더욱 중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1:1은 감정적으로 단조로워지기 쉽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주인공 사이의 인간관계와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화학작용이랄까, 불씨랄까, 그런 게 없어서 점점 발상은 줄어들고 재미는 떨어진달까요.

또 진행자가 뭔가를 치고 있지 않으면 놀이가 아예 없다는 것도 이 놀이형태의 단점입니다. 참가자가 여럿일 때는 진행자가 잠시 쉬고 있어도 주인공끼리 놀 수 있지만, 1:1에서는 그런 게 없죠. 결국 진행자가 치는 타자의 상대량은 많아지고, 때문에 진행자로서 다소 지루한 면이 있더라고요.

저같은 경우 처음 진행을 시작할 때는 구시대 모험물의 유산이거나 귀찮은 장치 정도로 생각했던 일행 구조가 얼마나 서술에 도움이 되는지 1:1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 1:1로도 짧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어쨌든 전통적인 일행 구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부터 예외로 얼음깨기를 들었는데, 이 규칙 같은 경우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 없이 둘이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인물을 주인공으로서 연기하고, 또 진행을 맡고 있지 않은 쪽의 역할도 확실히 보장하고 있죠. 주사위를 굴리는 것은 진행을 맡고 있는 쪽이지만 진행, 묘사, 연기 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주사위를 주는 것은 상대방이거든요. 그 때문에 두 참가자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긴장감 있는 놀이가 된다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1:1에는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보다 이런 식의 모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얼음깨기 역시 장기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진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