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중 총기 사용에 대한 조언

빈센트 베이커의 RPG ‘사탄을 위해 강아지를 죽여라 (Kill Puppies for Satan)’ 중 총기에 대한 공개 발췌문을 많이 순화하고 생략해 가며 번역했습니다. 총기 사용의 사실성을 반영하는지 여부는 취향 나름이겠지만, 염두에 둘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RPG 규칙에 나오는 총기 사용과 그 결과는 현실이 아닌 그 변형이라는 것을 말이죠.

RPG에는 제대로 된 총기 규칙이 없다. 제대로 하려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그 다음은 아무도 모른다. 맞는다고 해도 총알이란 회전하고 구르고 튀고, 갈빗대 사이에서 돌다가 반대쪽으로 나오거나, 버섯처럼 부풀거나 산산이 부서지거나 하게 마련이다. 그런 관계로 조언이나 몇마디 할테니까 총기 규칙 같은 건 기대도 하지 말길.

– 총기의 목적은 살상이다. 한방에 사람을 못 죽이는 총이라면 어린애들한테 팔아넘길 가치가 없겠지 않겠는가. 따라서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누군가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 당신, 생판 모르는 사람, 아래층 이웃, 누구든지 죽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참가자들에게도 주지시키도록.

– 반면에 확실한 살상이란 것도 없다. 예외적인 건 알지만 존 F. 케네디는 뇌가 차 트렁크에 묻어있을 지경이었는데 몇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망판정을 받았다. 머리에 총맞고 숨 못쉬고 있었다가 멀쩡하게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늘 그런 것도 아니고 자주 그런 것도 아니고 실은 아주 드물지만 어쨌든 있긴 있다. 주인공이 100%의 확률을 원하면 총알을 무진장 많이 쓰게 해라.

– 총격전중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르고, 정확성이라는 건 완전히 미친 소리다. 디알로 사건을 보면 경찰이 41발을 쐈고 희생자는 바로 문간에 서있었는데도 1. 맞은 건 19발밖에 안되고, 2. 경찰은 그가 응사하고 있는 줄로 착각했다. 일단 총알이 날아다니면 누구든 바보가 되기 마련이다. 어디에 총이 맞았는지도 모르고, 적이 쓰러졌다는 것밖에는 모른다. 어디서 총알이 날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술적 정보 따위 주지 말라. 보고 들리는 것을 알려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해라.

– 총알은 모두 어디론가 가게 돼있다. 명중시키든 못하든 뭔가 일이 벌어지지만, 그 총알이 어디 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돌벽에 박혀있나? 창문으로 나가서 왠 할머니네 오븐에 가 박혔나? 개 산책시키던 놈 갈빗대에 박혔나? 쏘려고 하는 표적 너머에 뭐가 있는지 참가자가 물어보게 하라.

– 총알은 마법을 부려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몸에 엄청난 구멍을 내면서 죽이는 것이다. 일단 총에 맞으면 피가 튀고, 손가락이 날아가고, 턱뼈와 팔꿈치가 나가고, 입과 코로 찢어진 내장 조각을 토해내게 된다. 사람을 깨끗하게 죽인다는 건 없다.

– 죽는다는 건 거지같은 일이다. 정신을 잃고 못 일어날 수도 있고, 한시간동안 비명을 지르다 죽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다음날까지 고통에 시달리며 배설기관에 대한 제어력을 잃을 수도 있다. 머리 측면으로 총알이 들어오면 때로는 뇌가 부어서 순환이 안 되는채로 뇌간은 멀쩡히 살아있을 수도 있다. 심장도 뛰고 숨도 쉬고, 장기기증에는 딱이지만 완벽하게 죽은 뇌사상태인 것이다. 일단 다치면 제일 확률이 높은 방법은 무조건 병원에 가는 거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 사람을 쏘는데는 상황에 따라 좋은 총이 있다. 글록 19는 사람을 쏘기에 아주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상황에 좋다. 4년 동안 끝없이 왕따당하다가 더이상은 도저히 못 참겠다든가. 또 정확성도 아주 좋다. 펌프 샷건은 사람을 확 반으로 갈라버리기 직전에 그 특유의 소리를 낸다. 콜트 9mm 자동소총은 방안에 있는 사람은 다 죽이고 싶지만 옆집 사람들은 죽이고 싶지는 않을때 좋다. M16은 누굴 죽이든 상관도 안할 때 최고다. 대체로 용도에 맞는 총을 쓰게 하되, 참가자들이 총기 매니아이기를 기대하지는 말도록.

3 thoughts on “플레이중 총기 사용에 대한 조언

  1. 물고기군

    많이 순화된 글이군요(…)
    겁스의 총기 룰을 익히는 중인데, 이 글에 비하면 겁스의 총기 전투는 대단히 깔끔하네요. 먼산( ”)
    어찌보면 총기의 사실성이라기 보단 총기 전투의 사실성을 강조하는 듯 한데(…)

    하지만 rpg에도 사실적인… 으음…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총기 전투 규칙을 지닌 rpg가 있긴 하죠. 예를 들어 겁스라든가, 컨스피러시라든가…

    Reply
  2. 천승민

    안녕하세요. 전부터 눈팅은 하고 있었지만 댓글은 처음이니 인사드립니다.

    글에 관해서는 전부터 공감하는 바가 있는 부분이군요. 그래도 굳이 총기에 국한할 필요는 없는 문제인듯.

    전통적인 근접 병기 전투로 치더라도 갈비뼈가 내리쳐진 칼날을 막아낸다던가, 피를 보면 사람이 흥분한다던가 하는 낭만적이지 못한(?)상황이 많을것 같네요. 보기싫은 흉터도 많이 남을꺼고. 얼굴 같은데 칼날이 스치거나 하면 안면신경도 절단되어 표정도 부자연스러워지고. 팔다리도 마찬가지고…

    확실히 시스템은 리얼리티가 아니라 원하는 리얼리티를 위한 장치겠네요.

    Reply
  3. 로키

    물고기// 예, 많이 순화한 겁니..(..)

    사실성이 반드시 미덕인 것도 아니지요. 중요한 것은 재미있는 것이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반영 여부는 각자가 결정할 문제지, ‘사실성’이라는 성배를 내세워 강요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천승민// 예, 결국에는 사람 몸도 부상이 쌓이면 골병이 들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의 전투는 사람 사정을 봐주지 않으니까요.

    현실적인 규칙이란 없다 ( http://blog.storygames.kr/loki/2127681 )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규칙은 원하는 현실을 만들어가는 도구이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 취사선택한다 하더라도 그 취사선택 자체가 이미 가상현실을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죠.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