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역할놀이의 허와 실

진행자 한명, 참가자 한명으로 진행하는 1:1 역할놀이도 꽤 많이 해본 것 같습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형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시 여럿이서 하는 편이 더 재밌다고 느껴집니다. 아예 2인용 놀이인 연애 시뮬레이션 얼음깨기(Breaking the Ice) 같은 경우를 제외한다면요.

1:1 놀이가 좋은 점이라면 역시 한 사람의 주인공에게 서사를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서술의 균형이라든지 초점의 분산 같은 걸 생각할 필요 없이 한 사람에게 모든 관심을 몰아줄 수 있고, 그 때문에 좀더 편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가 지도자이자 시간조정자의 위치와 부담을 어느정도 내려놓을 수 있는 기회랄까요.

또다른 강점이라면 시간이 덜 걸린다는 점입니다. OR에서는 더더욱 차이가 클 것입니다. 같은 시간에도 더 많은 내용을 진행할 수 있고, 이것도 진행이 좀더 편해지는 요인이죠. 같은 맥락에서 OR의 어려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대사 시차와 혼선 문제도 훨씬 덜합니다.

주인공에게 충분한 깊이가 있고 참가자가 연기 감각이 있다면 상당히 흥미로운 극적 서술을 만들 수 있기도 합니다. 이런 때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다른 주인공에게 신경쓸 필요 없이 한 주인공에게 파고드는 것은 1:1 놀이의 묘미 중 하나죠.

시간을 맞추기가 쉽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입니다. 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네 사람이나 다섯 사람이 동시에 모이는 것보다는 월등히 쉬우니까요. 시간관계 때문에 수많은 OR 팀이 깨지는 모습을 보면 더욱 중요한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갈수록 1:1은 감정적으로 단조로워지기 쉽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주인공 사이의 인간관계와 상호작용에서 나오는 화학작용이랄까, 불씨랄까, 그런 게 없어서 점점 발상은 줄어들고 재미는 떨어진달까요.

또 진행자가 뭔가를 치고 있지 않으면 놀이가 아예 없다는 것도 이 놀이형태의 단점입니다. 참가자가 여럿일 때는 진행자가 잠시 쉬고 있어도 주인공끼리 놀 수 있지만, 1:1에서는 그런 게 없죠. 결국 진행자가 치는 타자의 상대량은 많아지고, 때문에 진행자로서 다소 지루한 면이 있더라고요.

저같은 경우 처음 진행을 시작할 때는 구시대 모험물의 유산이거나 귀찮은 장치 정도로 생각했던 일행 구조가 얼마나 서술에 도움이 되는지 1:1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끔 1:1로도 짧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만, 어쨌든 전통적인 일행 구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까부터 예외로 얼음깨기를 들었는데, 이 규칙 같은 경우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 없이 둘이 돌아가면서 진행을 맡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인물을 주인공으로서 연기하고, 또 진행을 맡고 있지 않은 쪽의 역할도 확실히 보장하고 있죠. 주사위를 굴리는 것은 진행을 맡고 있는 쪽이지만 진행, 묘사, 연기 등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주사위를 주는 것은 상대방이거든요. 그 때문에 두 참가자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긴장감 있는 놀이가 된다는 느낌입니다. 어쩌면 1:1에는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보다 이런 식의 모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얼음깨기 역시 장기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진 않지만요.)

4 thoughts on “1:1 역할놀이의 허와 실

  1. KorR

    <蘭> 흐음. 얼음깨기의 경우는 역시 적극적 참여자라던지 관전자(라고 말해야 하는건진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요) 등으로 바꾸어가면서 플레이하기 때문에 조금 산만한 기분도 들었지만 몰입하는 데엔 참으로 좋은 시스템인 것 같더군요. 아아 한번 해보고 싶은데 말이지요. (관중으로 밖에 참여할 수 없다니! 저도 어디서 참한 색시감이나 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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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로키

    예, 재밌는 규칙이죠 얼음깨기… 뭐, 이건 현실 성별은 따지지 않으니 (오히려 원래 반대로 하는 게 정석이니) 아무나 붙잡고 해보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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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희미

    초보마스터에게는 1:1진행이 좀더 쉽지 않으려나요?
    같은 세계관 안에서 플레이어를 약간 모아 1:1진행으로만 따로 진행시켜보는 것도 쉽고 재밌을 것 같기도 하네요..(물론 마스터링을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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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로키

    그럼요~^^ 진행 부담이 줄어든다는 건 1:1의 큰 장점이기도 하니까요. 또 단기, 외전이나 분기 등 활용할만한 점이 많죠. 독자적 장기 캠페인으로서의 가치에 회의적일 뿐이지, 여러모로 쓸만한 수단이라는 점은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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