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가이각스의 세계

스티브 잭슨씨가 게리 가이각스에 대한 최고의 추모문이라고 했다는 글을 승한님의 제보로 번역해 봅니다. 원문은 Geek Love (영문, 회원 등록 요구). 글에서 하는 주장이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미롭기는 하더군요.

기크 (geek)란 대체로 과학과 컴퓨터에 관심이 많고 SF와 판타지, 만화책 등에 열성적인, 내성적이고 별로 인기 없는 (보통은) 남자… 정도의 의미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는 오타쿠 정도? 오타쿠에 똑똑하다는 뜻은 보통 안 들어가는 것 같지만요.

어쨌든 높은 학업 성취도와 장르 문학, 컴퓨터 게임과 애니 등 흔히 기크의 특징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태도가 우리는 미국과 좀 달라서 원문에 비해 기크란 말의 사용은 줄였습니다.

게리 가이각스가 지난 주에 사망했는데도 우주는 무너지지 않았다. 창조주인 그가 갔는데도 멀쩡하다니 조금은 놀라운 일이다.

빅 뱅으로 생긴 우주 얘기를 하는 건 아니다. 그거야 비행 스파게티 괴물의 소행인 건 누구나 아니까. 하지만 가이각스씨는 던젼스 & 드래곤스 게임을 공동 제작한 장본인이며, 역할놀이와 정다면체 주사위의 기반 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사회적, 지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D&D는 워게임과 하워드의 코난, 판타지 작가 잭 밴스의 마법 주문 한둘, 불핀치의 신화론 살짝, 성경 약간과 톨킨을 잔뜩 섞은 놀라운 합성물이었다.

가이각스씨의 진정한 천재성은 보드게임과는 달리 플레이어가 게임 내의 인물과 동화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주사위를 굴리면 사용자는 힘이나 지능 같은 개인적 능력을 갖춘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한 ‘질서 선’이나 ‘혼돈 악’ 등 도덕적 성향도 고를 수 있었고, 칼도 살 수 있었고, 용과 싸울 수도 있었다.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필자도 D&D를 좀 했었다. 중학교 때, 그리고 나중에도. 질서 선 성향의 팔라딘이었고, 불타는 검을 들고 다녔다. 그걸 한다고 여자에게, 아니 누구에게도 인기인이 되지는 않았다. 기하학을 좋아하는 점이나 스타워즈 대사를 다 외우고 다닌 것도 인기에는 도움이 안 됐고.

그러나 그러한 류의 능력 때문에 필자는 결국 성공할 수 있었다. 재산이나 권력, 특별한 인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세상의 주류에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아는 허구와 기술에 대한 지식은 이제 누구든 알아야 할 것이 되었으니까.

우리는 게리 가이각스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책들은 마법사와 마법 검을 다룬 판타지 책이다. 가장 많이 보는 영화는 수퍼히어로 만화책이 나오는 것. 가장 인기있는 TV 프로는 정교한 RPG처럼 복잡하고 복선이 가득한 SF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친 수학적 게임과 연관이 깊다. 그리고 여러분 시청자도 여기 끼려면 아이폰에 오디오 파일을 내려받고 고래의 음성 주파를 이용해 거꾸로 처리한 후 그 결과를 야후 그룹에 방송할 수 있을 만한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다.

책이 수백만 부씩 팔리고 학부모는 D&D와 사탄 숭배의 연관성을 걱정하던 전성기에도 가이각스씨의 창조물은 주류는 아니었다. 애들이 또래와 어울리는 대신 지하실에 틀어박혀서 하는 놀이라는 인상이 강했으니까. (물론 하려면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했으니까–모험가 둘과 던젼 마스터 하나–사회적인 놀이이긴 했다. 한심할지는 몰라도 사회적이었다.) 그러나 D&D는 머리 좋고 내성적인 많은 아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을 주었다.

기크 (geek)는 규칙성을 좋아한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법칙을 찾아내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정상인은 그런 규칙에서 늘 벗어나서 행동한다. 사람이란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렵다. D&D 캐릭터 시트 같은 것을 만들어보기 전까지는. 가상의 인물을 주사위, 연필과 종이로 제조한 수로 분석해내면 이것을 실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에게 캐릭터 시트와 가상 세계에서 하는 모험을 위한 규칙은 사람에 대한 안내서와 같았다. 삶은 거대하고 끝나지 않는 RPG 캠페인처럼 생각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보지 말아주길. 필자가 팰러딘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매트릭스 속에 사는 게 아닌 것도 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언제나 역할놀이를 하고 있다는 깨달음은 세계에 규칙과 질서를 부여했다.

우리들은 얼굴 표정이나 무심한 한 마디의 숨은 의미를 직관으로 알아내는 건 잘 못하지만, 행동의 규칙성을 알아내면 인간관계란 분석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주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처리해낼 수 있다. 신체 언어와 어색한 침묵을 관찰해서 우리는 터미네이터 TV 프로에 나오는 시간 여행을 원형 양자 중력(주:Loop quantum gravity의 번역. 우리말로 loop을 이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제 맘대로..)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분석에 주변 사람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낼 수 있다. 어디서 들은 얘기지 경험담은 아니다. 정말로.

가이각스씨의 게임은 기크들이 햇빛에 눈을 깜박이며 던젼에서 나와 전자기기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게 해주었다.

D&D는 초창기의 컴퓨터 게임, 마법과 검을 사용하는 던젼 탐험물인 ‘어드벤쳐’의 모태가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D&D와 어드벤쳐를 기반으로 첫 다중 사용자 온라인 판타지 세계가 탄생했다. 당시에는 MUD (multi-user dungeon)이라고 한 이 구조물은 주로 MIT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가이각스씨가 소개한 가상 정체성의 제작을 요구한 점은 마찬가지였다.

오늘날에는 수백만이 게리 가이각스의 노예가 되었다. 에버퀘스트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컨드 라이프 등을 통해. (이들 서버의 대규모 다중 접속은 오늘날 구글 등의 원동력인 거대한 서버 군집의 개발을 촉진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게임 문화 얘기다. 1974년 D&D가 생겼을 때보다는 더 폭이 넓어졌고 산업으로서는 훨씬 더 수익성이 있지만–1년에 약 4백억 달러–여전히 좀 샌님 같긴 하지. 하지만 드래곤 잡는 부분을 빼면 훨씬 주류 문화에 가까운 것이 보인다. 가상 아바타의 거대한 우주, 페이스북 (Facebook)이.

페이스북과 다른 사회적 네트워크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 것을 요구한다. 실제 사용자가 기반이기는 하지만 별개의 개체인 건 변함없다. 사용자의 인물은 다른 인물과 관계를 쌓아간다. D&D와 마찬가지로 경쟁적인 게임은 아니다. 이길 방법은 없다. 그저 플레이할 뿐.

가이각스씨의 1970년대 던젼에서 시작한 진화는 이보다도 훨씬 폭이 넓다. 모든 이메일 로그인, 모든 채팅 아이디, 플리커 (Flickr)의 모든 공개 사진집, 모든 블로그 댓글 가명은 새롭게 만든 정체성, 실생활 속에 노는 가상의 인물이다.

게리 가이각스에게 우리는 작별을 고하지 않아도 된다. 그는 우리의 오늘을 만들었기에. 내가 전술적 선택을 할 때마다 (아내에게 이번 여름에는 ‘다크 나이트’ 대신 ‘아이언 맨’을 보자고 제안할 때처럼) 난 경험치를 세고, 민첩성이 충분하기를 바라며 주사위를 굴린다. 그때마다 가이각스씨는 내 곁에 있다. 지금보다 문명화된 시대의 세련된 무기였던 단순한 게임을 든 채, 푸르게 빛나는 신비한 환영이 되어.

참고로 방금 그건 스타워즈 얘기였다.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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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그런 의미에서 음성 편집 프로그램으로 자르고 페이드 아웃 효과를 적용한 스타워즈 엔딩곡으로 끝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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