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제안과 조언

진행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2) – 질문

물고기님과 얘기하면서 떠오른 내용입니다. 물고기님의 질문 내용이자 전에도 몇 분에게 들은 고민은 바로 언제 끼어들고 언제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죠. 그럴 때 참가자와 진행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플레이 중 막힐 때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잘 모르겠는 건 물어보면 됩니다. ‘지금 눈앞에 적이 있나요?’ 라든지, ‘주변에 사람이 많아요?’ 혹은 좀 더 추상적으로 ‘우리가 지금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인가요?’ 등등. 궁금한 게 한두 가지 사실이 아니라 그냥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는 ‘선택지를 제시해 주세요.’ 하는 요구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에는 무엇무엇이 있나요?’의 변형일 뿐이기도 하고요.

막혔을 때 진행자에게 질문하는 것은 진행자를 도와주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행자는 (불행히도) 독심술이 없습니다. 따라서 참가자는 헤매고, 진행은 안 나가고, 다들 막막한 게 역력한 상황에서 어떤 점이 잘 전달이 안 되고 있는지, 어떤 정보가 더 필요한지, 어떤 부분에서 행동 선택지를 더 명확하게 해야 할지 진행자가 스스로 알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진행자의 전달 사항은 진행자 자신이야 완벽하게 이해하죠. 중요한 건 ‘진행자가 말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참가자가 이해한다’는 소통 부분이므로 참가자는 이해가 안 될 때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질문이 너무 많으면 진행자의 전달 능력이나 참가자의 이해 능력, 혹은 양자의 소통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들 수 있습니다. 그건 맞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달이나 이해, 소통에 문제가 있는 부분을 드러낼 수 있고 해결도 할 수 있으니까요. 기침을 참는다고 병이 낫지 않듯, 질문이 생기는 원인은 질문을 안 한다고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 주의깊게 상대의 대사나 선언, 묘사를 해석하는 집중력은 필요합니다. 전혀 안 듣고 있다가 “마스터, 방금 뭐라고 그랬어요?” 소리를 연발하는 참가자라면 좀 문제가 있겠죠. 하지만 그럴 때라 하더라도 질문은 문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스터, 지금 다들 위치가 어떻게 돼요?” 하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면 진행자는 위치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는구나… 하는 자각을 하고 고칠 수도 있겠죠.

질문이 쓸데없는 것인 때도 있습니다. “공주를 죽인 건 누구에요?” 같은 질문에 “그게 지금 여러분이 알아낼 일이에요. ㅡㅡ;;” 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것 역시 중요한 질문입니다. 플레이 중 과제를 확실히 알았으니까요. 대답해줄 수 없는 질문조차 그 대답해줄 수 없다는 사실 자체에 충분한 가치가 있죠.

진행자가 참가자에게 던지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됩니다. 선언이 불명확할 때 (“사천왕 중 어느 쪽을 공격하죠?”), 행동의 결과가 참가자가 바라지 않는 것일 것 같은 때 (“함정 해체 안하고 들어가나요?”), 플레이가 잘 안 풀리고 있을 때 (“지금 지루한 건 저 혼자뿐?”) 등등. 그러나 진행 방식이 참가자와 상당 부분 정하고 들어가는 의논형이 아니라면, 왠만하면 선언에 불명확한 게 없는 이상 바로 그 행동에 효과를 주는 게 더 긴장감 있다고 보기는 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중 질문의 효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질문이 잘 안 나오는 건 비단 놀이문화뿐 아니라 문화 전반적 현상이기도 한데요, 플레이를 완전히 질문으로 도배할 필요는 없지만 막혔을 때, 막막할 때, 잘 모르겠을 때야말로 질문을 던져야 할 때가 아닐까요. 특히 글 첫머리에 언급한, 플레이 중 막막한 일이 잦은 참가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질문을 하는 데 어떤 심리적, 사회적 장벽이 있는지, 그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하는 논의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도쿠위키 설치와 설정

현재 각종 캠페인 위키로 사용하고 있는 도쿠위키를 제가 설치하고 설정한 방법입니다.

0. 필요한 것

– 웹 계정: 우선, 위키를 올릴 계정이 필요합니다. 도쿠위키는 PHP 기반이므로 아파치 (Apache) 등 PHP를 지원하는 웹서버여야 합니다.
– FTP 프로그램: 원격 서버 호스팅이라면 FTP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저는 파일질라 (FileZilla)를 사용하지만, 알FTP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지요. 최소한 업로드와 권한 설정이 되는 프로그램이어야 합니다.

1. 도쿠위키 받기

도쿠위키 홈페이지에서 도쿠위키 최신 버젼을 내려받아 압축을 풀어둡니다. 직접 올려서 압축을 푸는 방법이 시간이 덜 들지만, 그렇게 했을 때 파일이 누락되는 일을 겪어서 저는 다 풀어서 올리는 편을 선호합니다.

2. 계정에 도쿠위키 올리기

계정의 원하는 폴더에 도쿠위키 파일을 올립니다. 그림과 같이 컴퓨터 쪽에서는 도쿠위키 압축을 풀어둔 폴더로, 사이트 계정 쪽에서는 도쿠위키를 설치할 폴더로 이동한 다음 전부 선택해서 업로드하면 됩니다.

도쿠위키 업로드

파일질라로 도쿠위키를 업로드하는 예


3. 설치하기

업로드가 끝났으면 브라우저로 원격 사이트의 설치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예를 들어 http://lokasenna.pe.kr/testwiki/ 에 설치했다면 http://lokasenna.pe.kr/testwiki/install.php로 들어가면 됩니다.

처음 이 페이지에 들어가면 설치를 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알려올 것입니다. 주로 도쿠위키가 필요한 폴더나 파일을 변경할 수 없다는 메시지인데, 이것은 FTP 프로그램을 통해 권한 설정을 해주면 됩니다. 필요한 권한 설정은 755, 775, 777 등일 수 있습니다. 필요한 설정값을 호스팅에 문의해서 알아보는 방법도 있고, 권한을 바꾸고 설치 페이지를 다시고침하면서 메시지가 없어지나 확인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도쿠위키 설치 페이지

초기 설치 오류 메시지


권한 설정을 고치려면 파일질라에서는 해당 파일이나 폴더를 오른쪽 클릭하고 파일 속성을 고른 다음 원하는 숫자가 밑에 나타날 때까지 체크박스를 선택하거나 선택 해제하면 됩니다. (이 단순한 설명..(…))

오른쪽 클릭!

파일질라에서 권한 설정례 (1)

체크박스 대화상자

파일질라에서 권한 설정례 (2)


이렇게 설치 페이지에 뜬 모든 폴더에 권한을 잡아주고 페이지를 새로 고칩니다. 제대로 되었다면 다음과 같이 위키 관련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설치 화면이 나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까지 하면 첫 설치가 끝납니다. 이제부터는 설정을 해보도록 하죠.

4. 간단한 보안 절차

우선 설정의 시작점이자 꼭 필요한 보안 절차 두 가지를 실행합니다. 첫 번째는 bin 폴더 삭제입니다. 셸로 접속할 일이 없으면 (즉 bin이 왜 있는지 모르면) 작동에 아무 지장 없으므로 그냥 지워버리면 됩니다.

두 번째는 디버그 모드 해제입니다. 이것은 설정 변경 페이지에서 해제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위키 메인 페이지로 이동한 뒤 (예를 들어 http://lokasenna.pe.kr/testwiki/) 페이지 아래 있는 버튼을 누르고 로그인합니다. 로그인은 3번 단계에서 설치할 때 입력한 관리자 아이디와 암호로 하면 됩니다. 로그인하고 나면 페이지 밑에 Admin 버튼이 보입니다. 그 버튼을 누르고 Configuration Settings 링크로 들어가면 설정 페이지가 나옵니다. 여기서 디버그 모드 체크박스가 선택 해제되어있는지 확인합니다.

디버그 모드 체크박스

디버그 모드 해제하기


이것이 최소한의 보안 절차입니다. 추가 보안 조치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해당 페이지 (영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 각종 설정

각종 설정 방법입니다. 제가 한 설정사항대로 설명하겠습니다만, 다른 설정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각자 제일 잘 맞는 설정이 어떤 것인지는 시행착오를 통해 발견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설정 페이지 접속법은 위의 4번 단계를 참조하세요.

또 하나, 가끔은 설정 페이지가 아니라 파일 수정과 FTP 업로드로 해야 하는 설정도 있습니다. 이들 파일 수정은 반드시 UTF-8 모드로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글씨가 깨져 나옵니다. 또한, 파일을 수정할 때는 원본 파일을 백업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5.1. 언어 설정

위키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하려면 설정 페이지의 Language를 ko로 선택해줍니다. 한국어 번역은 inc/lang/ko/ 폴더의 lang.php 파일을 고쳐서 수정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편집창 위에 나오는 메시지 등 이것저것 ko 폴더에 있는 파일들을 수정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제가 몇 가지 고친 lang.php 파일이 있으니까 원하시면 원래 lang.php 파일을 덮어씌우셔도 좋습니다. (원본은 백업하는 게 좋겠죠.)

2008/04/16 업데이트: 도쿠위키 새 버전에 맞추어서 lang.php 파일에 ‘선택한 버전끼리 비교’를 추가했습니다.

1048150611.xxx


5.2. 위치 추적 링크 설정

도쿠위키는 위키 내에서 최근 방문한 페이지 링크를 상단에 표시하는 것이 기본 설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계층형 위치 추적을 선호합니다. 계층형 위치 추적이란 폴더 구조상 현재 페이지는 어느 위치에 있는지 링크로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계층형 위치 추적 링크

계층형 위치 추적 링크의 예


계층형 위치 추적을 하고 최근 방문 링크 목록을 없애려면 위치 추적 수는 0으로 해주고 계층형 위치 추적을 선택하면 됩니다.

계층형 위치 추적 설정

계층형 위치 추적 설정 방법


5.3. 주소 설정

‘진보된 설정’ 란에 보면 URL 다시쓰기를 할지 설정할 수 있습니다. 다시쓰기와 슬래쉬 사용을 하면 위키 페이지 주소가 깔끔해지므로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설정입니다. 우선 설정 페이지 URL 다시쓰기에서 .htaccess를 선택하고 슬래쉬 문자 사용을 선택합니다.

URL Rewriting

URL rewriting 설정


다음, 위키 루트 폴더에 있는 .htaccess를 수정합니다. (원격 호스팅이라면 컴퓨터에서 편집해서 업로드합니다.) 16, 21, 23~30번째 줄 첫머리에 있는 # 표시를 제거해서 코멘트 상태를 해제하고, 21번째 줄의 폴더명은 자신이 도쿠위키를 실제 설치한 폴더 이름에 맞게 고치면 됩니다. (2007월 6월 26일판 기준. 이후 버젼은 파일이 달라질 수 있으니 파일 자체에 있는 설명을 참조하세요.)

.htaccess 파일 예시

대충 이런 모습이 되게 고쳐주면 됩니다.


5.4. 페이지 제목 설정

설정 페이지에서 ‘페이지 이름으로 첫 헤드라인 사용’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하면 페이지 주소로는 인코딩 문제가 없는 영문을 사용하면서 RSS 피드나 위키 링크에 표시되는 페이지 제목은 페이지 첫머리에 설정한 제목이 됩니다.

페이지 이름으로 첫 헤드라인 사용

설정한 모습


5.4. 가입 설정

설정 페이지에 보면 이메일이 유효한지 확인하려고 가입하면 자동 제조 암호를 이메일로 보내주는 설정이 있는데, 저는 귀찮을 것 같아서 이 선택은 해제했습니다. 스샷 찍기 귀찮으니까 찾아보시길. (불친절)

5.5. HTML 내장 허용 여부

제 위키는 비공개이므로 저는 편집창에 HTML을 포함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만, 이것은 보안 위험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할 문제입니다. 특히 공개 위키라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6. 플러그인

도쿠위키에는 이런저런 플러그인이 많은데, 그중 가장 유용한 것은 위키 페이지 밑에 댓글 상자를 달아주는 discussion 플러그인과 최근 댓글 피드를 제조하는 feed 플러그인입니다. 플러그인은 아니지만 위키 파일을 수정해서 버젼 비교 기능을 강화하는 multidiff 패치도 유용하며, (2008/04/16 업데이트: 이제는 코어에 들어있는 기능입니다) 다양한 색깔 상자를 만들 수 있는 boxes 플러그인도 쓸모가 많습니다. 먼저 플러그인 설치 방법을 얘기하고 여기서 소개한 플러그인 별로 간단한 사용법, 제가 수정한 사항 등 특이점이 있으면 얘기한 후 multidiff 패치 방법을 다루겠습니다.

6.1. 플러그인 설치 방법

도쿠위키 플러그인 소개 페이지에 각종 도쿠위키용 플러그인이 나옵니다. 설치하려면 플러그인을 받아서 lib/plugins 폴더에 하위 폴더로 업로드한 후, 관리에서 플러그인 관리 페이지로 들어가 플러그인을 활성화하면 됩니다. 참 쉽죠? (..)

6.1.1. Discussion 플러그인

이 플러그인은 설치하면 위키 페이지에 ~~DISCUSSION~~ 문구를 넣어서 댓글 상자를 달 수 있는데, 자동으로 모든 페이지에 댓글 기능을 달려면 설정 페이지로 들어가서 (방법은 위의 4번 단계 참고) ‘discussion section on every page by default’를 선택해주면 됩니다. 그 외에 저는 coComment 트래킹을 비활성화하고 댓글에 위키 구문 허용, 닉에 링크할 URL 입력 허용, 그리고 스팸 방지용으로 로그인한 사용자에게만 댓글 허용 등을 설정했습니다. 그 외에도 할 수 있는 설정은 많습니다.

6.1.2. Feed 플러그인

이 플러그인은 댓글 외에 몇 가지 다른 플러그인용 피드 역시 제조하지만, 저는 discussion 플러그인만 설치했으므로 댓글 플러그인 피드 주소를 얻는 법만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위키의 category라는 분류에 올라오는 댓글 피드 주소를 얻고 싶다면 위키 페이지에

{{commentsfeed>category}}

라는 문구를 넣은 다음에 저장하면 링크가 생깁니다. 이 링크 주소가 category 분류에 올라오는 댓글의 피드 주소입니다. 그 외에 피드 형식이나 제목 등도 설정할 수 있으니 자세한 것은 해당 플러그인 페이지를 참조하세요.

6.1.3. Boxes 플러그인

이 플러그인을 설치했을 때 구문을 어떻게 하는지는 제가 만든 구문 페이지를 참조하세요. 그 외에 이 플러그인 스타일을 고쳐서 보라색과 흰색 상자를 추가했는데, 이 부분을 하시려면 다음 파일을 lib/plugins/box/style.css에 덮어씌우세요. (위에서 말했듯 백업을 하시는 편이 좋겠죠.)

1274256055.css


6.2. Multidiff 패치
(2008/04/16 업데이트: 2008-03-31 발표 후보 이후 이제는 선택 버전 비교 기능이 도쿠위키 코어에 있으므로 이 패치는 필요없습니다)

도쿠위키 버전 비교 기능은 현재 버전과 비교하는 기능만 있지만, 이 패치를 사용하면 같은 페이지에 있는 어떤 버전이라도 서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위키 루트 폴더에 있는 doku.php 파일, inc/html.php 파일, 그리고 inc/lang/ko/lang.php 파일을 수정하면 됩니다.

6.2.1. doku.php 파일 수정

위키 루트 폴더에 있는 doku.php 폴더에 가하는 수정은 간단합니다.

$REV = $_REQUEST[‘rev’];

라고 되어 있는 줄 아랫줄에

$REV2  = $_REQUEST[‘rev2’];

이 한 줄을 추가하면 됩니다

6.2.2. html.php 파일 수정

inc/html.php 파일은 수정 사항이 좀 복잡하므로 다 적지는 않고, 아래 파일을 덮어씌우시면 됩니다. 역시 백업은 하시고요.

1086320312.xxx


6.2.3. lang.php 파일 수정

inc/lang/ko 폴더에 있는 lang.php 파일에는 다음 한 줄을 추가하면 됩니다. (제가 위에 옮겨붙인 lang.php 파일을 사용하셨다면 이미 추가되어 있으니 안 하셔도 됩니다.)

$lang[‘compareselected’] = ‘선택한 버전끼리 비교’;

7. 스타일 변경

도쿠위키 디폴트 스타일 글씨는 영문에는 적당한 크기인데 한글에는 약간 작다 싶어서 제가 고친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줄 간격도 좀 키웠고요. 특히 익스플로러 6에서는 줄 간격을 그대로 두면 댓글 출력이 이상해지는 현상이 있어서 줄 간격 키우는 건 나름 강추입니다 (?). 버튼에 입체 효과 없애고 그냥 평범한 하얀 버튼으로 바꾸기도 했고요. 이런 방향으로 변화를 주고 싶으시다면 다음 파일로 lib/tpl/default/design.css 를 덮어씌우시길.

2008/04/16 업데이트: 2008-03-31 발표 후보 이후로 design.css도 조금 달라져서 새로 올립니다.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어쨌든 위에 적은 수정 사항은 여전합니다.

1307380780.css


8. 접근 권한 관리

2008/04/16 업데이트: 2008-03-31 발표 후보 이후 ACL 인터페이스가 많이 달라져서 설명을 다시 합니다.

설치와 설정에 대해 설명했으니 접근 제어 목록 (ACL, Access Control List)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관리자 권한으로 로그인한 ‘관리’ 버튼 -> ‘접근 제어 목록 관리’ 링크로 들어가면 접근 제어 페이지가 나옵니다.

설정해줄 수 있는 권한에는 읽기, 수정, 생성, 업로드, 삭제가 있습니다. (None이면 해당 페이지나 해당 분류에 속한 페이지를 읽을 수
없습니다.) 읽기와 수정 권한은 페이지와 분류별로 적용할 수 있으며, 나머지 셋은 분류별로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생성은 그
분류에서 새로운 페이지를 만들 권한, 업로드는 그 분류에 파일을 올릴 권한, 삭제는 그 분류에 업로드한 파일을 지울 권한을
말하니까요. 수정 권한은 읽기 권한을 포함하고, 생성 권한은 수정 권한을 포함하는 식으로 이 다섯 가지 권한은 순서대로 더 높은
권한입니다. 따라서 읽기만 하고 수정을 못할 수는 있지만 수정만 하고 읽지 못할 수는 없죠.

분류의 접근 권한은 원칙적으로 상위 분류를 따라가며, 페이지의 접근 권한은 원칙적으로 소속 분류를 따라갑니다. 따라서 *
(전체) 분류 하위의 planescape_pbw 분류는 따로 설정하지 않는 한 * 분류와 같은 접근 권한이며,
planescape_pbw 분류에 속한 페이지는 따로 접근 권한을 설정하지 않으면 planescape_pbw 분류와 권한 설정이
같습니다.

8.1. 새로운 접근 권한 설정

페이지나 분류에 새로운 접근 권한을 설정하려면 페이지 위쪽에 있는 메뉴를 사용합니다. 왼편에는 위키에 있는 모든 분류가 나오며, + 표시를 클릭하면 그 분류의 페이지가 나옵니다.

새로운 권한을 설정하려는 분류나 페이지를 선택한 후 오른쪽에서 그룹 혹은 사용자별로 권한을 설정합니다. 현존하는 그룹과 그룹에
속한 사용자는 선택 메뉴에 나오며, 아니면 ‘사용자:’ 혹은 ‘그룹:’을 설정해서 수동으로 사용자 아이디나 그룹명을 입력할 수도 있습니다.

접근 제어 목록 관리 스크린샷

새로운 접근 권한 설정하기


분류 혹은 페이지와 그룹 혹은 사용자를 선택했으면 권한을 지정해줍니다.  예를 들어 planescape_pbw 분류에 대해 plane_research 그룹에 ‘생성’ 권한을 주면 그 그룹에 속한 사용자는 planescape_pbw에 있는 페이지를 읽고 수정하고 새로 만들 수 있지만, 첨부 파일을 올리거나 삭제하지는 못합니다.

8.2. 기존 접근 권한 수정

이미 설정한 접근 권한을 변경하려면 접근 제어 목록 관리 페이지에 나온 목록에서 수정하면 됩니다. 해당 분류 혹은 페이지의 권한 설정을 찾아 바꾼 후, 아래로 내려가서 ‘변경’을 누릅니다. 권한 설정을 없애려면 맨 오른쪽의 체크박스를 선택하고 ‘변경’을 누릅니다.

접근 제어 목록 관리 스크린샷 2

기존 권한 설정 변경하기


이 목록을 보면 beasthunters 분류에 대해 hunters 그룹은 읽기, 수정, 생성, 업로드, 그리고 삭제 권한이 있습니다. beasthunters 하위의 rules 페이지에 대해서 hunters 그룹은 읽기와 수정 권한이 있고, hunters 그룹을 제외한 비관리자 사용자 (ALL)는 rules 페이지를 읽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상위 분류에서 계승하므로 rules 외에 beasthunters의 다른 페이지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 분류에 대한 ALL의 권한 참조.)

위에서 hunters 그룹이 beasthunters:rules 페이지를 읽을 수는 있되 수정할 수는 없게 바꿀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두 가지가 뭔지 알 수 있으면 권한 설정과 계승 개념은 이해가 됐다고 보면 될 겁니다.

[#M_해답 보기|해답 닫기|
1. beasthunters:rules의 @hunters 권한을 ‘읽기’로 바꿉니다.
2. beasthunters:rules의 @hunters 권한을 지웁니다.
_M#]
8.3. 사용자 그룹에 대하여

권한 설정은 개별 사용자에게도 할 수 있고, 사용자를 그룹으로 묶어서 그룹별로 권한을 줄 수도 있습니다.

기본 설정 사용자 그룹은 ALL, user, admin이 있습니다. ALL은 관리자만 제외한 등록, 미등록 사용자 모두를 가리키며, user는 등록한 사용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ALL이 특정 분류의 글을 읽을 수 없다면 그 분류의 글은 관리자만 읽을 수 있다는 뜻이며, ALL은 읽을 수 없고 user만 읽을 수 있다면 등록한 사용자와 관리자만 읽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관리자는 user 그룹 내에 새로운 그룹을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jedi 그룹을 정의해서 공화국의 그림자 분류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jedi 그룹만 수정할 수 있게 하는 식이죠. 사용자 그룹을 정의하려면 ‘관리’ -> ‘사용자 관리’로 들어가서 그 그룹에 추가하려는 사용자 이름 왼쪽에 있는 정보 수정 아이콘을 클릭합니다.

사용자 수정 아이콘

사용자 수정 화면 들어가기


다음 화면 오른편에 있는 ‘사용자 정보 수정’에서 그룹들 란에, user 그룹과 쉼표로 구분해서 추가하려는 그룹명을 입력합니다. (아마 그룹명은 영어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한글로 해본 적은 없지만,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인코딩 문제를 피하려면 말이죠.)

사용자 정보 수정

사용자 정보에 사용자 그룹 추가


이렇게 하면 jedi 그룹을 설정한 것이 되며, 같은 방법으로 이 그룹에 다른 사용자를 추가하고 분류나 페이지별로 권한 설정을 해줄 수 있습니다. 특히 캠페인 참여자를 이런 식으로 관리하면 편합니다. 스타워즈 캠페인 참가자는 jedi, 별이 지다 참가자는 starfall 그룹 하는 식으로 말이죠. 마찬가지로 개별 사용자별로 접근 제어 목록을 관리할 수도 있으므로 특정 사용자만 읽을 수 있는 분류나 페이지도 만들 수 있습니다.

9. 추가 정보

이상과 같이 도쿠위키 설치와 설정, 관리에 대한 기본적 사항을 적어보았습니다. 정확히는 ‘도쿠위키, 난 이렇게 했다’에 가깝습니다만… 여기서부터 조사와 시행착오를 통해 더 알고 활용해가는 건 각자의 몫이겠지요. 도쿠위키 위키에 물론 가장 많은 정보가 모이고, 제가 한글로 만든 간단한 사용설명서와 편집 구문 설명서도 있습니다. (구문 설명 중에 색깔 글상자와 미디어 삽입은 플러그인에 의존하므로 주의하시길.) 도쿠위키를 편하게, 재밌게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담 없는 RPG를 위하여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6:28~9

이전에 우리의 미래에 RPG는 있는지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이후 취직이나 진학 등의 이유로 RPG를 중지하거나 줄이는 분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봤습니다. 업무와 가족에 대한 책임 등이 무거워지면서 앞으로 그런 시간적 부담은 심해지기만 하겠죠. 그래서 RPG를 부담 없이, 그러면서도 알차게 즐기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1. 진행자의 부담을 줄인다

RPG에서 가장 부담이 되는 부분은 아마도 진행일 것입니다. 특히 진행자가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진행자 중심성이 클수록 말이죠. 이러한 부담은 진행자 수와 플레이 기회가 적은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난 진행할 실력이 안 돼’라는 생각으로 진행을 시작하지 않는 RPG인이 많고, 또 진행을 해봤더라도 충분히 준비하고 신경쓸 여유가 없을 때는 기피하게 됩니다.

1.1. 준비 작업

진행자의 부담을 더는 첫 번째 방법은 세계 설정, 시나리오와 인물 제작 등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작업을 참가자들이 분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준비량을 축소하는 것이겠죠. 전자는 설정이나 시나리오 작업을 공동으로 하는 방법이고, 후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션에 필요한 준비량 자체를 줄이는 것입니다.

참가자들이 준비 작업을 분담하는 것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고 방법론을 일반화하기 어려우므로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시간적 부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인지는 의문입니다. 진행자의 부담이 줄기는 하지만 참가자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늘고, 또 방법에 따라서는 의논과 조율에 많은 노력이 들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두 번째 방법, 즉 준비량 자체를 줄이는 방향이 근원적으로 준비의 부담을 줄이는 길이라고 봅니다. 이것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시간을 잡아먹는 작업별로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나리오 부분에서는 시나리오가 필요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규칙에서 진행자는 첫 장면의 시작 부분만 준비하면 되고 그다음부터는 참가자의 장면 신청을 통해 서로 의논하고 발상을 주고받는 과정을 거쳐 장면을 구성합니다. 이건 규칙이라기보다는 어느 규칙에든 사용할 수 있는 기법에 가깝긴 하지만요.

역시 시나리오가 필요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규칙으로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죄의 진행’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오만, 불의, 죄 하는 식으로 한 마을이 잘못된 경위와 정도를 정한 후, 각 주요 조연이 주인공인 신의 파수견들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파수견이 마을에 오지 않는다면 벌어질 귀결 등을 정해놓고 주인공을 그 마을에 진입시키는 것입니다.

이 죄의 진행은 극적 긴장이 팽팽한 상황에 주인공을 떨구어서 온갖 사건을 유도하면서도 사건의 경과를 미리 정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서 적은 준비로 극적 재미와 시나리오 중심 진행보다 높은 자유도 등 고효율을 내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역시 규칙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는 기법이어서, 승한님의 M&M 캠페인에서도 이 방법을 이용하는 걸로 압니다.[footnote]로키는 지금 포도원의 개들 캠페인 돌리긴 하지만 게을러서 죄의 진행표마저 안 하고 있긴 합니..(자랑이다)[/footnote]

기법보다는 규칙으로 시나리오 없는 진행을 지원하는 예로는 폴라리스 (Polaris)가 있습니다. 폴라리스는 진행자 없이 주인공을 조종하고 편드는 ‘마음’과 주인공의 시련과 적수를 맡은 ‘후회’의 대립과 교섭을 통해 극을 끌어나갑니다. 따라서 시나리오가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만들 수도 없습니다. 폴라리스는 좀 있다 얘기할 진행자 없는 RPG의 예이기도 합니다.

인물 제작 부분에서도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을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조연은 주인공처럼 완전히 만들지 않고 필요한 기능이나 눈에 띄는 부분만 대충 넣는 방법을 많은 진행자가 사용하지요. 포도원의 개들은 시트를 미리 무작위로 만들어 두었다가 조연이 판정에 참여하면 시트를 배정하는 방식으로 조연을 제작하는 수고를 덜고 있습니다.[footnote]이 방법은 조연이 주연에 비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도 방지하지요. 그래도 부상을 입힐 만한 수치는 또 나온다는 게 묘미. (흐흐)[/footnote]

또 떼로 덤비는 건달이라든지 하는 덜 중요한 조연은 간단한 제작 규칙을 사용하는 7번째 바다 (7th Sea) 같은 예도 있습니다. 아예 조연은 규칙상 수치 자체가 없어서 이름과 설정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규칙도 있지요. 안방극장 대모험, 폴라리스, 트롤베이브 (Trollbabe) 등이 그 예이지요. 이렇게 하면 준비 시간을 덜 뿐만 아니라 규칙 처리도 간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설정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는 역시 대강의 설정만 만들어 놓거나 차용하고, 플레이해가면서 채워가는 것이 가장 좋지 않나 합니다. 저는 대강의 분위기만 있는 상태에서 세부적인 것은 그때그때 채워가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그 외에 화륜전설 (The Burning Wheel)의 인맥 규칙 하는 식으로 규칙을 통해 참가자가 직접 배경에 영향을 주는 것도 참가자에게 주도권을 주는 동시에 진행자의 설정 부담을 덜어주겠죠.

1.2. 세션 진행

준비 다음으로 진행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라면 세션 진행 그 자체겠죠. 세션 진행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는 크게 준비 작업과 진행 권한 분담이 있습니다. 준비에 대한 것은 위에서 다루었으니 여기서는 권한 분담 쪽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권한 분담을 정형화하지 않아도 참가자의 제안과 의견을 활발하게 받는 의사소통을 통해 진행 권한을 분담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는 진행과 플레이 전반에 언제나 필요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잘 활용하면 권한 분담에도 도움이 됩니다. 진행자 혼자 진행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도 진행에 대한 권리와 부담을 나눌 수 있으니까요.

다만, 의사소통만으로는 진행에 대한 부담을 완전히 덜기는 부족합니다. 무엇이든 의사소통으로 조정할
수는 있지만, 진행 중 의사소통의 필요성이란 해당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일차적인 문제 이후의 얘기니까요. 어떤 극적 요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이 있는 한 그 요소에 대한 부담 내지는 책임 역시 진행자의 몫입니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으로 권한을 분담하는 방법은 권한을 규칙으로써 나누는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안방극장 대모험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장면 신청 규칙 때문에 진행자가 다음 장면에 무엇을 할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제안을 던지거나 발상을 교환하는 의사소통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규칙에서도 권장합니다만, 다음에 어떤 장면을 할까 생각해내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참가자의 권한이며 따라서 부담입니다.

진행 권한 분담의 다른 예로 폴라리스는 주인공, 주인공의 시련과 적, 정서적 관계에 있는 인물, 권위적 관계가 있는 인물 등으로 서술 권한을 분배하므로 진행자 없는 규칙으로 구분합니다. 진행자란 결국 특정 요소 (배경, 조연 등)에 대한 서술권을 분배받은 역할을 가리키는 말일 뿐이니까요. 따라서 진행 권한을 분배하기에 따라서는 진행자가 아예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 없는 RPG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약간 더 다루겠습니다.

1.3. 팀 조직

진행자의 기본적 역할은 팀의 리더 역할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만, 진행자가 캠페인 기획자이자 리더가 되는 현상은 흔합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죠. 진행자가 보통 플레이에 가장 시간과 노력을 많이 들이니까 결정권도 크다든가, 일반적으로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유형이 진행자를 많이 하므로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든가.

이런 부분에서 진행자가 부담을 느끼고 있다면 팀원들이 서로 의논해서 팀의 행정적 역할을 분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에 모두 모일 수 있나 전화로 확인하는 연락책이라든가, 캠페인 사이트 유지 담당이라든가, 각종 공고 담당이라든가. 어쨌든 진행자가 플레이 외에서까지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은 흔하긴 하되 필연은 아니고, 다같이 하는 놀이니까요.

1.4. 진행자 없는 RPG

지금까지 길게 다루었듯 전통적 진행자 역할에는 준비, 진행, 팀 관리 등 플레이 내외적으로 따라붙는 부담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RPG에 필연적으로 진행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 (The Shab al-Hiri Roach), 폴라리스,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등 진행자 없는 RPG도 꽤 있지요. 이러한 놀이에서는 플레이 내적으로는 권한과 부담이 비등비등하며, 플레이 외적으로도 ‘진행자니까’ 어느 한 사람에게 책임이 몰리는 대신 좀 더 다양한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책임을 분담할 수 있습니다.

2. 규칙에 대한 부담 줄이기

RPG에서 또 부담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규칙에 대한 부분입니다. 규칙을 배우고, 적용하고, 해석하는 작업 역시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 있으니까요. 이는 위에서 얘기한 준비나 진행의 어려움과도 무관하지 않지만, 규칙에 대한 특유한 내용도 있으므로 따로 떼어서 얘기하겠습니다.

2.1. 규칙 학습

규칙을 읽고 익히는 수고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순한 경량 규칙을 익히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적은 수의 규칙을 익혀 폭넓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두 접근은 다 장단점이 있다고 봅니다.

경량 규칙은 일단 단일 규칙을 익히는 데 노력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만큼 규칙이 없다면 일단 효율이 떨어집니다. 이건 다른 것보다 규칙 선택의 문제이긴 하지만요. 예를 들어 고도의 전술적 전투나 낙상을 다루는 규칙이 필요한데 폴라리스나 안방극장 대모험을 선택하는 건 아무리 배울 때는 쉽다 해도 결국 비효율적이겠죠.

또한, 경량 규칙에 따라서는 다루는 극적 상황이 아주 좁은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는 필연적으로 죽음이나 파멸로 끝나는 비극을 다루며, 샤브 알-히리 바퀴벌레는 허영과 권력의 부조리, 포도원의 개들은 심판과 그 심판에 대한 대가를 다룹니다. 따라서 다양한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더 많은 수의 규칙을 익혀야 할 수도 있으므로 복잡한 규칙책 하나를 익히는 것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들 수도 있습니다.

적은 수의, 예를 들어 하나의 규칙을 익혀 폭넓게 사용하는 것은 겁스 (GURPS)와 같은 범용 규칙이나 d20 혹은 유니시스템 (Unisystem)처럼 다양한 장르 규칙의 기틀이 되는 규칙을 익히는 것을 가리킵니다.(주:반대로는 플레이하는 장르와 배경을 제약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건 RPG에 질리는 지름길이라는 전제 하에 일단 배제합니다. 물론 반론은 환영입니다.) 이러한 범용 혹은 준범용 규칙은 하나를 익혀서 그대로, 혹은 약간씩 변형을 가해서 다양한 장르와 배경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입니다.

반면 범용성이란 종종 불완전한 약속이라는 것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습니다. 비록 모든 장르와 배경에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의 범용성을 갖추었다 해도 플레이 스타일까지 범용적이기는 어렵습니다. 겁스와 새비지 월드 (Savage Worlds), 트라이스탯 (Tri-Stat)이 모두 범용성을 표방하지만 기본 플레이 스타일은 사뭇 다르듯이요. 플레이 분위기는 규칙에 큰 영향을 받으므로 결국 규칙을 취사선택하거나 고치게 되고, 그렇게 걸러내고 고치는 부분이 많을 수록 시간과 노력도 더 들겠지요.

2.2. 규칙 적용과 해석

규칙의 적용과 해석에 대한 부담은 크게 주인공 제작과 플레이중 규칙 해석과 판정 문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크게 단순한 규칙 사용, 예시와 템플릿 제공, 그리고 낮은 파워 레벨 제작 등이 부담을 더는 방법이 되리라고 봅니다.(주:낮은 파워 레벨에 대한 것은 아사히라군에게 힌트를 얻었습니다.) 해석과 판정 부담을 더는 방법으로는 단순한 규칙 사용, 규칙의 선택적 사용, 규칙 적용상 역할 분배 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할 분배의 예라면 우선권을 한 사람이 맡아서 관리한다든지, 계산을 보조한다든지 하는 예가 있겠죠. 이것은 진행자의 진행상 부담을 덜어주는 것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3. 단편과 단기 플레이

마지막으로, 장기 캠페인의 기본 가정을 (내지는 신화를) 버리고 단편과 단기 플레이 중심적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도 바쁘고 변화가 잦은 생활에 적응하고 플레이 부담을 더는 한 방법입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자꾸 끊어지는 장기 캠페인보다는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가 더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하고, 또 캠페인을 계속할 사정은 돼도 캠페인이 길어질 수록 특히 진행자의 부담은 무거워지게 마련이니까요.

이상과 같이 부담을 덜면서 재미있게 RPG를 할 수 있는 방법과 고려사항을 적어보았습니다. 어쩌면 후자보다는 전자에 더 중점을 둔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당장 이 모든 방법을 실천하지 않으면 당신은 더 이상 RPG를 계속할 수 없다!!!’ 같은 얼빠진 소리는 아니고, 자신에게 효용이 있어 보이는 방법을 골라서 실천해보면 한결 편한 플레이가 되지 않을까, 혹은 생활과 RPG를 조화시키는 방법에 대한 생각의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해서 써본 글입니다. 폭넓게 도움이 되는 글이자 논의의 시작이 되었으면 더 바랄 바가 없겠지요.

관계도 – 효용과 한계

월요일부터 플레이 시작하는 국가의 건설 플레이 바이 위키에 앞서서 이것저것 준비가 진행 중입니다. 이번에 준비한 것 중 하나는 연구 대상 사이 관계도였는데, 저번 글하고는 또 다르게 이런저런 쓰임이 보이더라고요. 반면 한계도 있었지만요. 다음은 글리피로 만들어본 국가의 건설 연구 대상 관계도입니다. (승한님이 좀 더 재밌게 설명까지 붙이신 관계도는 여기에.)

국가의 건설 관계도

국가의 건설 관계도


우선 인간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규칙상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작 연구 자금이 연구대상 사이 인간관계의 수에 의존하므로, 연구 대상이 무려 아홉이나 되는 대형 설정에서는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연구 자금 계산조차 어려웠습니다. 반면 관계도는 그려놓고 화살표만 세면 되니까요. (“검은 화살표 5개에 빨간 화살표 7개는 에…”)

그런 이유로 시작해서 만들고 고치다 보니까 인물 관계를 시각화하는 효용이 보이더군요. 무엇보다 화살표를 그리는 편의상 관계가 밀접한 인물들을 가까이 붙이고 화살표가 많은 인물일수록 중심에 놓다 보니 인물 사이 관계라는 추상이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관계도를 보면 관계도 중심에 가까운 인물일수록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주변부에 있을수록 관계나 이야기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인간관계의 구역이나 블록에 의미가 생기더군요. 돈울프-진 뤠이신-자비에르의 ‘건국 공신 클럽’이라든지 칼라인-마그누스-세렌의 우정 등.

한편으로는 시각화라는 목적상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단순화가 필요해져서, 관계도로는 인간관계의 모든 함의를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너무 복잡해지면 시각화의 의미 자체가 희석되니까요. (다닐과 이렌가르드의 관계에는 연심 외에 충성심과 우정도 있는 등.) 그래서 관계도는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그 대략을 단순하고 굵게 표현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관계도를 작성하면서 그 효용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것도 시각화의 효용성과 한계를 생각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관계도는 관계와 감정이라는 추상을 구체화하고 단순화해서 시각적, 공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효용은 있지만, 시각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복잡한 함의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들고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 말입..(퍽)

마스터링 – 준비와 진행, 관리

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막막했던 것은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속하는지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고 나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형성된 제 스타일이랄까,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1) 기획과 모집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우선 어떤 규칙과 배경을 할지 생각해서, 그리고 동시성 플레이라면 시간대를 정해서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플레이를 이때 한다’는 기반을 정해두면 취향과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요. 물론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적으로 돌리려면 경험상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더군요.
이 시점까지 캠페인 내용이나 배경의 자세한 사항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나 전형적인 진행 같은 건 막연하게 있을 수
있지만요.

(2) 제작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인공을 만듭니다. 보통 모두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세션을 하나 합니다.
이게 제가 보기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배경과 성격 등 주인공에 대한 사항, 특히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려는 로망 파악에
중점을 둡니다. 인물의 동기와 성격,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해석이 일치하는지, 이 부분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참가자 생각은 어떤지 등등 질문을 통해 인물 해석을 다듬고 조율합니다. 캠페인중 어떤 걸 보고 싶은지 하는 제안도 이때 많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3) 구상

다음, 캠페인 주요 조연과 시작 상황을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을 끌어다가
이들의 목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을 재해석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캠페인에 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설정에 새로운 해석과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아주 즐거운 과정이죠. 또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목적, 극적 지향 등을 생각해 어떤 상황에 빠지면 재밌을까 궁리하면서 그
상황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들도 설정합니다. 그런 극적 상황에 등장할 만한 배경의 세부사항이 필요하면 설정해서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준비 과정입니다.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에서도
거치는 과정이지만, 캠페인보다는 짧게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겠죠. 주인공을 만드는 과정은 좀 몰아붙이면(..) 30분 내에도 할
수 있고, 많이 몰아붙이면 5분 10분도 됩니다. (다만 거의 제가 만드는 것에 가까워져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과 인물
설정은 빨리 하려고 하면 주인공 제작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단편이라면 주인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슥슥
스쳐가는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2. 진행

(1) 원칙

플레이 들어가면 일단 시작 상황을 내놓고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봅니다.
참가자들이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다시 변화가 생기고, 저는 그 변화를 심리적 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표현합니다. 그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플레이가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참가자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플레이가 정체되고 그 반응의 연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참가자 배경에 있는 NPC 중 노는 애들(…)이 있나, 참가자 하나 이상이 좋아할 만한 극적 상황이
있나, 필요한 정보가 있나, 아니면 그냥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나 (“갑자기 닌자들이 뛰어듭니다!” “문을 열자 백작의 시체가 품 안에
쓰러집니다!”) 생각해서 다시 상황을 내놓고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2) 문제 해결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매끄럽게
나갑니다만, 어떤 때는 영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극적 상황을 생각하고 배경 세계의 공백을 채우는 준비가 부족했는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긴 나는데 영 산만하고 재미가 없다거나. 그럴 때면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좋은 생각 없느냐고 말이죠. 이런 때 억지로 계속하면 꼭 후회할 일이 나서.. 물론
저는 재미없는데 참가자는 괜찮은 때도 있고, 저는 재미있는데 참가자는 지루한 때도 있으니까 이런 데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나오는
거겠죠.

3. 관리

세션이 끝나면 되도록 플레이에 대해 얘기해보고, 특히 플레이중 문제가 된 것이
있으면 꼭 논의합니다. 다음 세션 시작하기 전에도 첫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나간 플레이의 사건을 고려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있으면 생각해보거나 의논해보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끔 중간점검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극적 진행은 서로 만족스러운지 등등.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제 대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형은 있지만, 기본 틀은 이런 식입니다.

뻔해지자

RPG인을 위한 즉흥 기법을 다루는 블로그 글 시리즈에서 Being Obvious라는 글이 크게 와닿더군요. 직역하면 ‘뻔해지기’ 정도인데, 문맥을 보면 ‘무리하지 않기’ 혹은 ‘억지 쓰지 않기’에 가깝습니다. 한 마디로 드라마틱하게 하려고, 혹은 무섭게 하려고, 혹은 웃기려고 무리하면 보통 역효과가 나고, 스스로 보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하는 게 가장 효과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억지를 부리면 티가 나게 마련이고, 별로 감동이나 재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은 모두 생각하는 게 달라서 자신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신하고 놀라운 일이 많거든요.

뻔해지라는 것은 그렇다고 일부러 지루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예를 들어 서부극에서 정의의 보안관이 자기 친구를 죽인 범죄자와 마주쳤는데 총도 뽑지 않고, 자기 정체도 드러내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범죄자가 사라지는 걸 방관하는 건 지루하고, 앞뒤 사정을 생각하면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 (의외로 RPG 참가자에게는 꽤 볼 수 있긴 합니다만…) 반면 결사의 총격전을 벌인다거나 협박을 주고받는 건 훨씬 자연스럽고, 또 재밌습니다. 갑자기 UFO가 내려서 두 사람 다 납치해서 사라지는 걸로 끝~이라면 웬만큼 특이한 서부극이 아니면 재미없고 억지스럽습니다. (근데 왠지 해보고 싶..)

글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던 게, 저는 예전에는 극적으로 꾸미려고 너무 무리를 하는 일이 많아서 애를 먹었거든요. 요즘은 그런 경향은 많이 줄었지만 저 글을 보니 그때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더욱 와닿았습니다. 요새도 가끔 빠지는 함정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뭔가 참신하고 놀라운 걸 해보자는 건 특히 진행을 할 때면 강한 유혹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보통 참가를 진행보다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참가자는 자기 인물을 생각해서 뻔한 것만 하면 되는 반면 진행자는 뭔가 대단한 걸 꾸며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행자도 그냥 뻔하고 자연스럽게 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시작해 이를 뒷받침하는 방법론과 기법을 쌓으면 진행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되고, 자유도와 극적 감동을 둘 다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는 뻔해도 남에게는 꼭 그렇지 않으니까 굳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다는 것, 뻔하고 자연스러운 전개에는 무리하게 꾸민 것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감동과 진실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편하고 재미있는 플레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7/10/27 추가 부분 (승민님 답글을 보고 보충했습니다)

뻔해지자는 것은 ‘뻔하고 전형적인 이야기를 유지하자’는 뜻은 아니며 (제 첫 답글에서 그런 인상이 들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진행자 혼자 판단으로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유지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는 ‘모든 참여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뻔하고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집단 서술의 역동성에 힘입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 친구를 죽인 남자와 술집에서 마주친 정의의 보안관이라면, 참가자가 생각하기에 그 보안관의 뻔한 반응 중에는 바로 총을 꺼내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 옆에 자리잡고 협박하는 것도 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살인자의 반응 중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뻔한 것도 마주 총을 꺼내는 것, 비웃음, 줄행랑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연스러운 진행을 하면 그게 상대에게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비교적 전형적인 이야기가 된다 하더라도 그 속에 직접 참여하는 재미는 변함없죠.

중요한 건 뻔해지는 걸 두려워하면 무리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진행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도 그런 얘긴데, 예를 들어 보안관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악당이 갑자기 ‘날 못 알아보겠어, 빌리? 내가 바로 네 친구라고!’ 하면서 악당을 죽인 다음에 스스로 죽은 척하고 서로 정체를 바꿨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뭐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다른 감동이나 개연성을 못 느끼면서 억지로 꾸미려고 하면 실패할 위험이 높습니다. 악당하고 싸우는 게 너무 뻔한 진행이라는 이유로 보안관이 갑자기 바에 뛰어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악당하고 어깨동무하고 술을 마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결국 극적 재미는 억지로 재미있게 꾸미려는 노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라면 결론입니다. ‘재미있게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나온다기보다는 관심과 공감이 가는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수 있죠. 진행자 혼자 참신해보려고 기를 쓴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전형성이나 예측성을 거부한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꾸미기보다는 인물과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상황마다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해서 뻔해져보면 어떨까요. 

사랑한다면 죽여버려라

본격 비정 에로 추리 음모 활극 로맨스 RPG…일 리는 없고 (퍽), 그저 캠페인을 진행하다가 느낀 것입니다. 제목은 제임스 패트릭 켈리의 Murder Your Darlings를 번역해본 것입니다.

진행자는 캠페인을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런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자기만의 ‘최상 시나리오’를 꾸미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상이 커지다 보면 자칫 집착에 빠져서 스스로 생각하는 최상 전개에 반하는 참가자의 선택을 무의미하게 하는 등 독불장군식 진행에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피하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캠페인에 대해 품은 자신의 상상과 최상 전개, 즉 로망을 참가자들에게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서로 얘기해서 조정하는 것입니다. 각 참가자 역시 자신이 바라는 로망이 있을 테니까 대화를 통해 서로 욕구를 조화하는 거죠. 세션 등지에서 얘기가 나오는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이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방법이 바로 ‘사랑한다면 죽여버리기’입니다.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좋겠다. 저런 전개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대신, 모든 것을 플레이의 역동적 긴장 과정에 맡겨두고 그 결과에 놀라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방향입니다.

이 두 가지 방식이 서로 정면 대치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는 공통 요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합의 플레이를 논하면서 성일님은 의외성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얘기하고 계시죠. 또 저는 미리 합의한 계획보다는 밀고 당기는 플레이 과정에서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를 중시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과정의 초기 조건 (인물의 동기, 판정 승패의 결과 등)에 대한 합의는 열심히 합니다. 욕구를 서로 터놓고 얘기해서 조화하는 것과 욕구대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당겨서 전혀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중점의 차이일 뿐.

그래서 뭐, 현재 제 생각은 이런 식입니다. 어떤 장면이나 전개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 욕구가 캠페인에 대한 상상력을 지배할 정도로 커진다면 미련없이 죽여버리자. 어차피 참가자들의 욕구와 충돌해서 서로 깨지고 다듬어지면서 지금 상상하는 어떤 전개보다 훨씬 멋진 결과가 나올 테니.

만약 정 죽이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참가자들에게 이러이러한 전개를 하고 싶다고 솔직히 얘기해서 자신의 욕구가 실현되도록 협조를 구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든 참가자가 진행자의 마음을 읽기를 기대하거나, 참가 기능의 핵심인 선택권을 제한당해 가면서 진행자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 닥치고 따라오는 걸 즐기라고 강요하는 진행은 재미없어지기 쉽다고 봅니다.

주인공과 조연

참가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PC (Player Character), 진행자가 제어하는 인물은 NPC (Non-Player Character)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용법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주인공’과 ‘조연’이라는 용어를 선호합니다. 영어로는 PC는 Protagonist Character, NPC는 Non-Protagonist Character라고 치환해서 생각하고요. 뭐 의미는 좀 중첩됩니다만…

어쨌든 용어를 한글화하는 의미도 있지만, 제가 PC와 NPC를 주인공과 조연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제로 PC는 주인공, NPC는 조연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적 의미가 큽니다. 진행자야 배경 세계 자체를 운용하고 인물도 많이 있지만, 참가자는 보통 하나씩의 인물밖에 없고 그들이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길은 그 인물을 통하는 방법뿐입니다. 따라서 참가자 인물이 플레이의 초점이 아니라면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심각하게 줄어듭니다. 심하면 참가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진행자의 실책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것이 바로 ‘GMPC’인 것 같습니다. GMPC란 진행자 인물인데 주인공인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행자는 이 인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든 이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참가자 인물을 들러리로 전락시키죠. 종종 플레이를 정해진 길로 이끌려는 용도도 있으며, 이때는 또 다른 악명높은 진행자 실책인 ‘일방통행식 진행’까지 겹칩니다. 오직 진행자의 자기만족만을 위하기 때문에 이런 인물을 사용하는 것은 RPG의 사회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며, 실책일 뿐 아니라 굉장한 실례라는 것은 길게 얘기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물론 GMPC는 극단적인 예일 뿐, 참가자 인물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진정한 주인공으로 유지하려면 ‘GMPC를 만들지 않는다’ 같은 당연한 지침 외에도 주의할 것이 많습니다. 어쨌든 진행자 인물은 꼭 필요하고, 개중에는 주인공보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권력이 강한 인물도 있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또 조연의 도움이 필요해지기도 하고, 때로는 일행에 따라붙기도 합니다. 진행자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물도 있을 수 있고요. 이러한 요소에 저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대응합니다.

1.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

능력이나 권력, 정보력 등이 주인공보다 뛰어난 조연은 일단 주인공 일행하고는 좀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이런 인물은 자기 일로 바쁘니 주인공 일행 일에 시시콜콜 참견할 시간이 있을 리 없죠. 따라서 주인공 일행과 만나는 것은 그쪽에서 불렀을 때, 혹은 주인공 일행이 찾아갔을 때뿐이고, 이렇게 하면 일단 등장 빈도 면에서 그들이 주도권을 잡을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심리적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눈에 띄게 뛰어난 조연은 주인공의 적, 혹은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협력자 정도가 적합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믿을 수 있다면 주인공이 그들에게 의지하거나 아니면 모든 문제 해결을 위해 진행자가 그들을 동원할 유혹이 커지니까요.

적이라면 이길 방법이 없는 적이어서는 안 되고, 그 과정이 어렵더라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무시해도 상관없는 적이어야겠죠. 신뢰가 안 가는 협력자는 제가 특히 좋아하는 유형인데, 어디까지 믿고 어디까지 이용할 수 있을지 판단의 근거가 있되 그 판단이 쉽지 않다면 그 자체가 상당한 게임적 재미일 수 있죠. 우리 편이긴 우리 편이되 감정적으로 사이가 나빠서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변형도 극적 재미를 더해줍니다.

이렇듯 자신보다 뛰어난 존재이되, 의존하는 대신 주시하면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조연은 극적, 게임적 긴장감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인공은 뛰어난 조연의 그림자에 묻히는 대신 그 조연들과 극적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위치가 되지요.

때로는 주인공보다 뛰어나고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조연도 있습니다. 후원자가 그 대표적인 예이겠지요. 이럴 경우는 그가 주인공에게 줄 수 있는 도움에 뭔가 제한을 걸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얘기했듯 바쁜 사람이라든가 (못 만나게 막는 비서를 막무가내로 돌파해서 들어가자 그 어른이 오히려 반가워하면서 비서를 질책하더라… 같은 고전적인 진행도 한 번쯤 해볼 만 하죠), 도움에 뭔가 대가가 따른다든가, 후원자도 사람인 만큼 속수무책인 영역이 있다든가, 오히려 이 일에서는 후원자가 주인공의 도움이 필요해서 의뢰를 했다든가, 등등.

즉 믿을 수 있는 뛰어난 조연은 의존도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그 능력과 영향력에 제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뭐 사람인 이상, 심지어는 신이라 해도 뭔가 제한이 있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신의 속성이나 영역, 그리고 무엇보다 바쁜 일정!)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2.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

주인공에게 조연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확고한 원칙이 있습니다. 아쉬운 놈이 우물 판다. 아쉬운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조연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괜히 나타나서 ‘너네 내가 필요하지? 음하하하 여기 왔도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연의 조력을 조연 자신이 주도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건 차치하고라도, 주인공에게 그만큼 주도권을 빼앗는 행위입니다. 주인공이 주도해서 조연을 불러들인다면 조연은 참가자가 판단해서 활용하는 게임적 자원일 뿐이지만, 조연이 스스로 나선다면 문제 해결의 능동성이 조연에게 넘어가니까요.

자기 판단 하에 주인공이 조연에게 도움을 청하려면 물론 주인공이 필요할 때 주인공이 조연에게 연락할 방법이 있어야 하고, 이것은 플레이 내에서 참가자에게 어느 정도 판단과 운신의 여지가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으로 돌아갑니다. 또 연락 가능 여부가 진행자 멋대로 달라지지 않고, 이런 때는 연락이 되고 이런 때는 안 되겠다고 참가자가 판단하거나 최소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또 RPG의 게임성과도 연관이 깊겠죠.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얘기한 뛰어난 조연도 같은 맥락입니다. 바쁘다거나, 완전히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이유로 조연의 능력에 대한 활용에 뭔가 제한이 붙으면 참가자는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고자 의사 결정을 해야 하고, 그만큼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넘어갑니다. 참가자의 판단, 주인공의 행동이 필요 없이 도움이 무조건적이라면 주도권은 반대로 진행자와 조연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부르지도 않았는데 조연이 멋대로 따라와서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럴 때도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는 일반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목마른 쪽이 주인공보다는 조연일 뿐이죠. 즉, 부르지도 않았는데 와서 도움을 준다면 그건 조연 자신의 목적이나 주인공에게 받을 수 있는 대가를 위한 것이지 순수하게 주인공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동은 아닐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조연으로는 주인공 일행을 따라가서 모험을 해보려는 열혈 소년이라든지, 주인공 중 하나에게 접근해 보려고 수작을 거는 아저씨라든지, 정보를 캐내려는 첩자, 보물을 가로채려는 도둑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연의 목적은 참가자가 의사 판단을 해서 이용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원, 혹은 장애가 되고, 그만큼 플레이의 내용은 풍부해집니다. (‘좋아, 넌 오늘부터 짐꾼이다!’ ‘저 귀찮은 인간을 어떻게 떼어놓지?’ ‘그때 마주친 게 정말 우연이었을까?’ ‘도와주겠다는 말을 믿어도 될까?’) 그러려면 그러한 의도나 목적을 알려주거나 알아낼 여지를 줘야 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인공은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서 좋건 싫건 도와주는 조연에게 치여서 플레이의 주도권을 잃을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조연이 도움을 준다 하더라도 그건 도움일 뿐 조연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결해도 좋은 문제라면 주인공이 다른 활약을 하는 동안 무대 뒤에서 처리하고 (“의뢰하신 총은 다 만들었으니까 와서 찾아가세요.”), 플레이상 직접 드러나는 활약은 주인공이 하면서 조연이 보조하는 정도여야 하죠.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든가, 혹은 주인공이 개입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게 좋습니다.

주인공이 조연의 도움을 받은 최근 예로는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었습니다. 주인공 제다이 일행이 도시에서 잠적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젊은 시스 하나를 어찌어찌 주워서 데리고 있었는데, 도시의 뒷골목에 익숙한 이 청년에게 주인공 하나가 주도적으로 얘기해서 숨을 곳을 마련하게 했죠.

자락스 토레이: “아를란. 이 주위에 이만한 인원이 조용하게 숨을곳 없나?”
로키: “이..이 주위에? 없진 않지만 좀 동네가..”
로키: 아를란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는군요.
자락스 토레이: “이 주위에서 활동했으면 당연히 숨을곳 정도야 여기저기 스승 모르게 마련해뒀을 거 아냐. 내놔봐. 지금 난리가 났다고.”
로키: “알았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그는 주소를 하나 말합니다.

캔티나 지하실인 은신처를 이용하려면 캔티나 주인과 교섭해야 했고, 이 사람은 아를란이 아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아를란의 주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아를란의 역할은 캔티나를 찾아내고 주인과 연결하는 정도로 끝내고 싶어서 교섭 장면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습니다.

로키: 아를란은 이곳에 있는 은닉처에서 지내고 싶다는 눈치를 주지만
로키: 신문을 봤는지 로디안은 꺼리는 낌새군요.
로키: 아를란은 설득하다가 슬슬 참을성이 떨어져 가고..
로키: 자칫하다 싸움이라도 벌이면 큰 소동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센 테즈나: @아를란의 어깨를 잡고 진정시킨 다음 입을 엽니다.
센 테즈나: “충분히 사례는 하겠습니다. 반대로 그쪽이 비밀을 지켜 주신다면 그게 더 좋은 일일 거라 봅니다만.”
센 테즈나: “이미 이곳으로 저희가 들어오는 걸 본 사람이 있을 테니 그게 알려지면 이쪽의 행적을 알기 위해 누군가 추적을 해올지 모르는 일이죠.”
로키: “그건 협박이오?” 로디안은 툭 튀어나온 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군요.
센 테즈나: “아니요, 조언입니다.”

주목도도 낮추고 시간도 절약할 겸 조연끼리의 대화는 요약하고, 아를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해서 센의 개입이 필요하게 했습니다. 물론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더라면 실제로 싸움이 나서 문제는 더 커졌겠죠. 센의 개입 시점부터는 다시 직접 화법으로 전환해서 주목도를 높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연의 도움은 주인공이 스스로 활용하는 자원이 되고, 조연의 활약이 있어도 주도권은 주인공에게 두는 것이 제 방침이라면 방침입니다.

3. 일행에 따라붙는 조연

가장 위험한 경우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얘기한 아를란과 관련해 고민과 토론이 들어간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행자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자기가 관심 있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고 싶고, 그건 자칫하면 참가자와 이해 충돌 상황이 되기 쉬우니까요. 이 인물이 플레이의 중심인 일행에 상주하면 이해 충돌은 한결 심해집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위에 말한 GMPC겠죠.

하지만, 이럴 때도 주도권은 참가자와 주인공에게 있어야 한다는 일반 원칙만 기억한다면 의외로 해결은 간단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일행에 합류 여부를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가 결정하게만 두어도 문제는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참가자끼리 의견이 갈릴 때일 테니, 참가자가 몇 명이나 찬성해야 하는지, 미온적인 사람은 어느 정도 찬성해야 할지 등 의사결정 과정상의 문제도 있지만요.

일단 일행에 합류하면 역시 조연에게 도움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조연의 활약은 원칙적으로 주인공 주도로, 활약 정도는 무대 위에서 주인공을 보조하거나 무대 뒤에서 귀찮은 일을 처리하는 정도, 조연 자신이 능동적으로 활약할 때는 조연 자신의 이유로… 같은 사항을 기억하면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일행과 행동을 같이하는 특수 상황 때문에 조연이 행동하는 이유가 일행의 목적과 부합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이고, 그런 식으로 쌓이는 신뢰와 감정적 유대는 플레이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주인공을 더욱 주인공답게 하는 조연인가, 아니면 주인공에게서 주도권을 빼앗는 조연인가 하는 문제일 뿐, 일행 상주 조연도 전자라면 잘 운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행자로서는 진행자의 재미뿐 아니라 참가자의 재미까지 일부 누린다는 점에서 색다른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일행 상주 조연은 분위기를 띄우는 용도라든가 자잘하게 써먹을 데도 있고요.

로키: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자..
로키: 순간적으로 쿵쾅거리는 음악과 함께 마치 물흐르듯 움직이는 색색의 트윌렉 댄서들의 홀로 이미지가 방안에 가득하군요.
로키: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고 아를란은 황급히 동영상을 끕니..

4. 진행자의 마음에 드는 조연

다른 항목과 겹치는 때도 많지만 개념적으로는 별개로 진행자 자신이 어떤 조연에게 굉장히 흥미가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플레이에 자꾸만 끌어넣고 싶고, 이 인물의 갈등이나 고뇌를 보여주고 싶고 말이죠. 이러한 사항을 참가자가 대응 가능하고 플레이 맥락에 어울리는 형태로 잘 엮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참가자들이 별 관심도 없고 플레이 내용을 깎아먹는데도 자꾸 이 인물에게 주목하고 싶어진다면 문제가 큽니다.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대화 맥락과 상관없이 자기 옛날 캠페인이나 인물 얘기를 늘어놓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행동이지요.

참가자 개입이나 플레이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그 인물 자체에 가는 관심이라는 면에서 이런 식의 흥미는 진행자로서 게임 요소에 갖는 흥미라기보다는 소설가가 소설 속의 인물에게 갖는 흥미에 더 가깝습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그냥 소설 씁니다. (…) 얼마 전에 썼던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 배경 소설들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하면 진행자의 순전히 개인적 흥미에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소모하지도 않고,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라면 미리 공개해서 플레이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알 수 없는 내용일 때는 참가자와 주인공 지식 분리가 필요할 것입니다만, 그건 제 경험상으로는 대체로들 잘 하니까요.

진행은 세계 만들기, 문학 등 다른 창의적인 활동과도 관계가 깊으니, 플레이 진행을 벗어나 창의성을 다른 방향으로 배출하는 것도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세션 진행을 하는 시간에는 진행자로서 행동해야겠죠. 진행자의 역할이란 자신의 개인적 창의성을 일방적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닌, 그 창의성을 기반으로 참가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놀이의 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가자가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을 통하는 것이므로 그 주인공의 주도성을 보존하는 것이 참가자의 참여를 확보하는 것이며, 이것은 참가자의 당연한 요구인 동시에 진행자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가 빠진 세션

RPG는 여럿이서 하는 놀이이기 때문에 참가자가 한 사람이라도 빠지는 것은 큰 차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유로 예고 후, 혹은 예고 없이 참가자가 결석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이럴 때 크게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대응책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빠진 이유를 갖다 붙이고 속행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각 세션을 될 수 있으면 하나의 단위 (예를 들어 캠페인 시간상 하루)로 진행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게 잘 안 되면 최소한 세션을 맺을 때 하나의 장면을 완전히 끝낸다거나요. 이렇게 하면 다음 세션에 참가자가 하나 빠져도 그 주인공이 없는 이유를 급조한 후 세션에 나온 참가자들과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포도원의 제다이 8화, 그리고 9화부터 12화였는데, 3인 참가자 중에서 8화에는 이방인님, 9화에는 소년H님이 빠진 연속타를 먹었었죠. (흑흑.. 아카스트님을 붙잡고 웁니(?)) 그래서 8화에서는 ‘일행이 흩어져서 정보를 찾고 있다’라는 식으로 둘러대고 아카스트님과 소년H님 쪽을 진행했습니다. 그다음 9화 첫머리에서 이방인님의 주인공이 별 성과 없이 숙소로 돌아오는 연결부를 짧게 했죠.

9화에서는 소년H님의 주인공인 로어틸리아가 없으니까 ‘정보를 알아보고 돌아오는 길에 바람쐬러(..) 나갔다’라고 한 후 아카스트님과 이방인님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8화 말에 이미 9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밤은 폭풍이 있을 것 같다고 묘사한 후였으니까, 바람 쐬겠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사실은 뭔가 일이 있다는 암시를 연결하기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참가자 결석이 몇 회에 걸쳐 계속되면 주인공이 빠진 이유도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소년H님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정으로 9, 10, 11, 12화를 빠지면서 로어틸리아가 일행에서 일탈한 시간도 24시간이 넘었고, 그래서 귀환 후 상의해서 ‘바람 쐬러’ 나간 로어틸리아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바람 쐬러 나갔다가 바람났다…?) 정했습니다. 여기서 나온 로어틸리아 24라는 글은 저와 소년H님만 볼 수 있게 권한 설정을 해서 위키의 장점 또한 십분 활용할 수 있었죠.

이 방법의 또 다른 장점은 참가자의 결석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활용해 캠페인의 내용에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로어틸리아의 일탈은 졸지에 어미 닭 없는 병아리 나이트 없는 파다완 일행이 된 자락스와 센이 공의회로 귀환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코루선트의 상황으로 내용이 이어질 이유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소년H님의 귀환 후 재회 장면을 연출하는 재미도 있었죠.

로키: 넓은 문이 양옆으로 열리고, 시야가 순간 환해지는군요.
로키: 눈이 적응되자 둥근 방안에 둘러앉은 열두 제다이 마스터의 모습이 보이고
로키: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로어틸리아,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작은 아이가 있습니다.
자락스 토레이: “……!….” -나이트 로어틸리아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는 이내 다시 표정을 되돌립니다.
로어틸리아: @미묘한 미소를 띄고 인사합니다.
센 테즈나: @로어틸리아를 잠깐 놀란 듯 바라보다 다가가 서서 목례를 합니다.

자락스 토레이: ‘….무사했구나……’ -보일듯 말듯 살짝 미소

이렇듯 어느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참가자가 빠진 것은 캠페인의 위기에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절한 제약이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원칙은 참가자의 부재도 예외가 아니니까요.

2. 외전을 한다

상황에 따라서는 참가자가 한 명이라도 빠지면 본 캠페인 진행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지난번 세션에 악당이 ‘훗훗훗 드디어들 나타나셨나’ 하면서 등장하는 걸로 끝났다든지 해서, 갑자기 땅이 갈라져서 주인공 하나를 삼켰다는 식이 아니면 부재를 설명하기 어려울 때도 있죠.

이럴 때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캠페인 본편을 벗어나 외전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 알데마르 캠페인 때 주인공 셋 중 하나가 빠져서 나머지 둘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진행한 것이 그 예입니다. 아예 두 명이 없었을 때는 남은 한 명의 과거 설정을 RP로 재현한 일도 있습니다.

외전 역시 캠페인에 깊이를 더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이야기, 인물 간의 관계 등을 통해 본편 캠페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인물과 사건을 조명한다는 점이 재미있죠.

외전의 또 다른 효용은 참가자의 결석보다 한결 난감한 경우, 즉 진행자가 빠졌을 때 대응책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경우 참가자 중 하나가 부진행자 역할을 맡아서 진행자가 나올 수 없을 때 외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더월드 3기의 경우 진행자 제노시아님이 사정이 있을 때 제가 외전인 브루하 폭주전대를 진행한 경우가 그 예입니다. 그 외에도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 진행이 어려울 때 본편의 진행자인 제노시아님이 제가 진행하는 외전에서 참가자가 되기도 했었죠.

브루하 폭주전대의 경우 비슷한 시간대일 뿐 전혀 다른 캠페인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 배경이 된 가상의 도시 뉴 세인트 헬렌이 나중에 본편에 합류한 유르겐의 배경에 나오는 등 연계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 본편의 주인공 하나와 조연 하나가 데이트하는 내용을 연애물 규칙인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로 오체스님과 함께 진행하기도 했고요. 이렇듯 똑같이 외전이라고 해도 본편과 연계 정도, 규칙 등에서 여러 가지 변형이 있기 때문에 더욱 다채로운 캠페인이 될 수 있습니다.

3. 주인공을 다른 참여자가 제어한다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대응으로는 다른 참여자, 보통은 진행자가 해당 주인공을 제어하는 방법입니다. 저는 별로 선호하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부재를 설명할 필요 없이 본편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본편을 속행하거나 외전을 하는 방법에서도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로어틸리아의 예에서 로어틸리아가 바람 쐰다며 나갔다고 진행자인 제가 서술한 대목이라든지, 로어틸리아가 다른 일행에게 보낸 홀로크론 메시지를 제가 간접 인용으로 전한 부분 등이 그 예입니다.

주인공을 타인이 제어하는 방법에는 소극적인 방법도 있고, 적극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소극적인 방법은 주인공이 그 자리에 있다는 정도만 알리고, 필요한 최소한의 행동만을 하는 것입니다. 반면 가장 적극적으로는 진행자 혹은 다른 참가자가 그 주인공의 모든 연기를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겠죠. 전투 정도가 아니면 드문 경우겠지만요.

4. 세션을 쉰다

개인적으로는 참가자 한 명이 예고 없이 빠져서 세션을 쉰 적은 없으며, 이는 가장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위에 말했듯 참가자가 빠지면 차질이 생기지만, 플레이를 자꾸 쉬면 캠페인의 맥이 끊어지는데다, 성실하게 참여한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석한 사람이 있는 김에 팀원들끼리 다른 활동을 하는 것도 가끔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놀이를 한다든가, 캠페인의 제반 사항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든가. 진행자나 참가자가 빠져서 본편을 진행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전혀 다른 캠페인을 준비해서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이런 방법은 위에서 얘기한 외전의 변형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캠페인의 세션은 쉬지만 플레이는 하니까요.

어쨌든 다른 준비를 한 게 아니면 참가자가 빠져서 세션을 쉬는 것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예외인 것이 바람직한 듯합니다. 참가자가 빠지는 것 자체가 예외인 게 바람직하듯 말이죠.

이상과 같이 참가자 (혹은 진행자)가 빠졌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대응책들을 나열해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도 있을 것이고, 각 팀과 캠페인 사정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약속은 소중하지만 때로 깨지기도 합니다. (저도 최근에 그런 경우가 있었죠..ㅠㅠ) 이에 대한 대응에 따라 캠페인에 대한 의욕, 나아가서는 캠페인의 존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참가자 부재에 대한 대응은 진행자에게, 그리고 팀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재가 잦다면 참가자가 계속해서 참가할 수 있는지, 시간대가 적당한지 하는 의논이 필요하겠지요. RPG에 만병통치약이 있다면 그건 팀원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뿐이니까요.

진행자에게 도움되는 것 (1) – 단편

진행자가 발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가끔 글을 올려보려고 합니다. 배울 자세만 되어 있다면 사실상 어디서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 진행 기술이기 때문에 ‘진행자에게 도움되는 것’이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넓은 범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용감히(?) 제 경험상 이러이러한 것들이 도움되더라 하는 얘기를 해보고 싶군요.

링월드로 유명한 공상과학 작가 래리 나이븐 (Larry Niven)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가는 단편을 쓰면서 배운다. 계속해서 단편을 써라. 돈이 되는 건 소설이지만, 단편을 계속 써야 글이 날렵하고 예리하게 유지된다.

진행과 문학 사이에 중대한 차이가 있다는 점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이 말의 기본 원리는 진행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장기 캠페인의 신화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대개 규칙이나 RPG인의 기대치는 장기 캠페인을 상정하고 있지만, 장기 캠페인을 기본으로 잡고 있다고 해도 단편을 진행함으로써 진행 기술을 다듬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단편은 시간과 완급의 감각을 길러줍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이야기를 완결지어야 한다는 단편의 특성상 진행이 늘어지지 않는지, 시간 활용이 비효율적이지 않은지 자신의 진행을 돌아볼 계기가 되죠. 시간적 제약 때문에 지루한 부분은 과감히 뛰어넘는다거나, 간단하게 요약한다거나, 장면을 적절히 끊는다거나, 참가자가 헤매고 있으면 바로잡아준다거나 하는 판단이 특히 중요해집니다.

이러한 완급 조절과 시간활용 기술은 당연히 장기 캠페인의 재미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긴박감과 같은 분위기 연출은 완급과 장면 맺고 끊는 기술에 많이 좌우되고, 아무리 잘 짜인 내용도 진행이 늘어지면 재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불행히도 이것은 이론적으로 시간이 무제한인, 혹은 최소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장기 캠페인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단편의 제약 속에서 기르기 좋은 기술이기도 하지요.

또한, 단편은 구성력에도 도움이 됩니다. 전형적인 장기 캠페인의 재미가 웅장한 규모에 있다면 전형적인 단편의 재미는 긴장감 있고 기발한 구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은 일정한 시간 내에 모든 이야기의 요소를 매듭짓고 정리하는 연습을 하는데 아주 좋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장기 캠페인에서 이번 세션 내에 매듭짓지 못한 것은 다음 세션에 해도 된다면, 단편에서는 다음 세션이란 없으니까요.

장기 캠페인과 단편의 구성은 물론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장기 캠페인 역시 짧은 이야기 단위의 연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단편 혹은 단기 캠페인의 연속과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그 이야기 단위들 사이의 연속성이겠지만, 단편에서 익힌 구성력은 장기 캠페인에도 그대로 적용할 여지가 많은 것입니다. 장기 캠페인을 위해 추가할 부분이라면 그 이야기를 딱 끊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의 여지를 열어 놓고, 몇 가지 줄기를 계속해서 끌고 가는 정도겠죠.

이와 관련해서 단편을 진행하는 것은 규모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단편에서는 이야기 규모가 크면 정해진 시간 내에 완결을 볼 수 없으니 (배경은 규모가 크다 해도 플레이에서 다루는 건 그 작은 일부밖에는 될 수 없죠) 적절하게 플레이의 규모를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이 잘 발달하면 장기 캠페인을 할 때도 대책 없이 규모를 키우는 현상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편은 또한 장기 캠페인보다 시작하기가 쉽다는 점에서 장기 캠페인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진행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저도 한동안 캠페인 없이 단편만 연속적으로 하던 때가 있었죠. 진행은 사실 하면서 배울 수밖에 없는 것인지라, 시작하는데 부담이 비교적 적은 단편은 진행 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중요한 학습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편은 현재 캠페인을 진행 중인 진행자에게도 기분전환이 되어 줍니다. 위에서 다룬 것과 같은 시간적 제약과 그로 말미암은 도전은 현재 진행 중인 캠페인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권태와 지루함을 피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단편의 가장 중요한 혜택이 아닌가 합니다. 진행자 자신이 지겨워서야 캠페인이 재미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진행자가 갑자기 이상한 단편 하자고 조르면 참가자들은 이해하고 협력해줘야 하는 겁니..(퍽)

단편은 분명히 장기 캠페인처럼 인물과 이야기를 오랫동안 유지하면서 그 변동을 지켜보는 재미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는 게 없는 단발적인 재미뿐이라고 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좋은 단편은 좋은 장기 캠페인 못지않게 긴 여운을 남기며, 진행자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긴장감 있고 날카로운 진행, 번득이는 구성, 새로운 시도와 자극은 단편의 재미이기도 하고 어떤 캠페인에든 적용되는 진행자의 미덕이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