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생각과 망상

여자니까 마스터다?

이전 캠페인의 플레이어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는데, 나름 재미있어서 적어봅니다.

이방인님과 저는 둘다 생명력을 띈 인물의 내면과 의지에 따라 흘러가는 인물 중심적 플레이를 즐기는 편입니다. 이방인님은 인물에 많이 몰입하시고, 심지어 나중에 끝나면 자신이 그런 RP를 했다는 기억도 나지 않으신다고 하더군요.
저도 인물 중심 마스터링에 정리했듯 조연 (NPC) 초기 설정에서 시작해 인물 간의 상호작용에 진행의 상당 부분을 맡깁니다. 조연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는 일은 물론 많고, 그냥 ‘얘는 이렇게 할 것 같아서’ RP를 했다가 나중에서야 그 이유가 떠오르는 일도 있습니다.
이방인님과 저의 차이라면 이방인님은 하나의 인물을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참가 (플레이)를 선호하시고, 저는 여러 인물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진행 (마스터링)을 선호합니다. 그 차이가 성별 차이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일반화이지만, 도식화하자면 남성인 이방인님은 개체 중심적 사고가 발달한 예가 아닌가 합니다. 남자들의 로망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활약과 승리, 고뇌가 중심이고, 물론 사회와 주변 인물과 관계도 맺지만 그런 사회성은 주인공 개인의 존재에 비해서는 덜 중요합니다. 초보자님과 제가 이방인님 인물들을 가리켜 ‘마초’라고 하는 것은 그런 특징도 포함하고 있겠죠.
반면 저는 관계 중심적 사고가 더 발달한 것 같습니다. 여자들의 로망에는 물론 개인도 존재하지만, 개인 간의 관계와 감정이 그 개인의 활약만큼이나 중요합니다. 특히 감정이 가장 얽히고 섥히는 가족과 연애관계 (까놓고 말하면 피와 섹스)는 지대한 관심사이지요. 제 경험으로는 일반적으로 여성 참가자가 주인공의 가족이나 연애 설정에 적극적인 편입니다. 그리고 종종 진행자가 그런 설정을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설정이 묻혀지곤 하죠. (안습)
이러한 대조의 예를 들자면, 이방인님이 맡으셨던 주인공 자락스 토레이는 루바트 오르가나라는 조연이 대신 죽어줘서 목숨을 부지하고는 시스에서 제다이로 전향한 인물입니다. (죽은 이의 뒷모습) 흔한 듯하면서도 보편적인 당위성이 있는 설정이고, 강한 떡밥이기도 했죠. 다만, 죽은 루바트와의 ‘관계’라는 요소는 별로 없었습니다. 자락스라는 인물의 영웅 서사시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결국 자락스에게 루바트는 모르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의 불편함이 없는 편리한 추상이었죠. 희생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상징하는.
참가자 설정에 나온 이 떡밥을 활용하는 것은 진행자인 저였는데, 제가 루바트 오르가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 가족은 심정이 어땠을까’였습니다. 아들이자 형제가 죽어서 돌아오면 억장이 무너지는 건 너무 당연한데 루바트의 선택에 대한, 그리고 (가족 관점으로는) 루바트를 죽게 한 시스에 대한 마음은 어떨까 궁금했습니다. 자락스에게는 관계가 부재한 상징이었던 루바트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관계의 그물에 남은 커다란 구멍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마침 오르가나는 (이방인님이 무작위 제조기에서 뽑으신 이름이었지만) 스타워즈 영화 시대의 알데란 왕가기도 하겠다, 아주 정치물로 갈 수도 있겠더군요.
그래서 생긴 설정이 루바트의 동생 다룬이었습니다. 죽음으로 가는 선택을 한 형도, 그 죽음의 계기가 된 자락스도 용서할 수 없으며, 아끼고 존경한 형에 대한 열등감의 반작용으로 무서운 야심가가 된 모순투성이 어린아이. 자락스의 적수에서 시작해서 공의회의 적수로서 캠페인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한 다룬은 철저히 관계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었습니다. 제게 루바트는, 그리고 나아가서 자락스도 그 개체만으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던 거죠. 혈육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가족 간에 얽히게 마련인 감정과 그에 따르는 무수한 왜곡과 오해를 생각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게는 루바트도 자락스도 제대로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관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행자란 꽤나 편리한 위치입니다. 인물을 관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인물의 단위 자체가 ‘다수’가 되는 거나 다름없는데, 진행자는 여러 인물을 설정할 수 있으니까요. (참가자의 의견이나 설정을 받을 수는 있지만 조연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일반적으로 진행자에게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플레이 중 사건의 결과도 여러 인물에게 한꺼번에 적용할 수 있고요. 같은 원리로 개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인물만 맡으면 되는 참가자가 일반적으로 더 편할 것입니다.
위와 같이 생각해 보면 진행자는 여성에게 꽤 적합한 역할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정확히는 관계 중심적으로 인물과 설정을 생각하는 사람에게요. 마찬가지로 참가자는 남성, 정확히는 개체 중심성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에게 적합할 수 있겠지요.
당연하지만 이것은 좀 지나칠 정도의 단순화이고, 남녀로 구분하는 것은 주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경향에 대한 일반화한 표현일 뿐입니다. 실제로 개체 중심적 사고와 관계 중심적 사고는 서로 완전히 다른 부류라기보다는 중점의 차이 정도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라고 다 개체 중심적인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다 관계 중심적인 것도 아니죠. (즉 제목은 떡밥입니다 (?)) 그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특징이 RPG 진행을 맡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사람은 성별이 아니라 개체이며, RPG인의 개인적 특징 중에는 얼마든지 좋은 마스터링이나 플레이로 이어질 만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관심사가 한 영웅의 심리와 모험을 탐험하는 것이든, 얽히고 섥힌 인간관계의 탐구이든, 무술이든, 정치물이든, SF이든 궁극적으로는 우리들의 취향과 관심사, 그리고 개인적 스타일이야말로 RPG 생활을 풍요롭게 할 테니까요.

음, 위키의 새 시작인가요(…)

가끔 가다 자료 한 번쯤 날려먹는 건 거의 애교 수준이군요. 정말 치맨가. (크흑) 위키를 업데이트하면서 사용자 자료를 전부 날렸습니다. 어떻게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사용자 목록 파일명을 바꿔서 분명 백업을 했는데 (사용자 목록이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새 버전 설치 자체가 안 됐을 테니), 다시 열어보니 백업파일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판에는 정말 미칠 지경이죠. 백업한 파일을 따로 다운로드받아서 확인을 기했어야 하는 건데, 그 점은 확실히 제 잘못입니다.

어쨌든 백업 파일이 날아가 버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어차피 위키의 특성상 일시적인 사용자가 많아서 한 번 정리는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위키 기능이 필요하신 분은 재가입해주시면 됩니다. 접근 관리 파일은 제대로 백업이 됐으니까 (그건 또 왜 그런지 신비한 일..) 이전과 같은 아이디로 가입하시면 아마 이전 권한은 그대로 남아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연락 주시면 이전 권한으로 회복시켜드릴게요~

당신의 가상세계: 쇼크는 무엇인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규칙책 뒤편에 보면 다양한 공상과학 작품의 쇼크 (현실세계와의 차이)와 사안을 추출해 놓은 부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각기동대의 쇼크가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면 그에 따르는 사안은 정체성이나 인간성의 문제 하는 식이지요.

생각해 보면 반드시 공상과학이 아니어도, 그리고 꼭 쇼크가 아니어도 RPG에는 종종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합니다. 항성 사이를 항해하며 교역하는 가상의 미래, 마법이 난무하는 환상적인 이세계, 고려가 멸망하지 않은 대체역사 등.

이런 가상세계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창의적 자유, 많은 조사가 필요없는 노력 절약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 세계에는 없는 것을 겪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해준다는 점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가상세계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듯 우리 세계에는 없고 가상세계에는 있는 것, 현실과 환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쇼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조건, 가상세계를 사용할 근본적 이유. 그 차이점에 어떤 극적 의미가 있는지, 플레이 내에서 그 차이점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하면 그 가상세계를 사용할 (혹은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뚜렷해집니다.

쇼크의 극적 의미와 역할을 뚜렷하게 해주는 것은 그 쇼크를 통해 드러나는 사안입니다. 성별이 없는 외계인 사회를 통해 (쇼크) 전쟁과 정치, 성역할을 탐구한다거나 (사안), 마법이 있는 사회를 탐색하며 (쇼크) 힘의 대가와 이성의 한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사안) 그 예입니다.

이렇게 1) 가상세계의 쇼크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2) 쇼크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사안을 생각하면 플레이의 극적 구심점인 주제의식이 확실해지고, 가상세계는 그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매개가 됩니다. 가상세계의 쇼크가 사안과 맞물린 주제는 바로 그 가상세계를 통해서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겠지요.

가상세계의 쇼크, 이 세계와 다르기에 이 세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보여주는 차이점이야말로 가상세계를 사용하는 극적 의미이며, 다른 어떤 장르와도 다른 공상과학의–혹은 판타지의, 호러의, 대체역사의–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상세계의 쇼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세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차이점을 통해 우리 세계와 인간에 대해 어떤 진실을 드러내어주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상세계를 만들 때도, 활용할 때도 그 극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의문이 아닐까요.

잠시 사이트 다운

호스팅 기간이 완료되고 신용카드 결제 플러그인 문제로 결제가 안 되고 있어서 며칠 사이트 전체가 접속이 안 될 예정입니다. 돈 내는 걸 이렇게 어렵게 만들다니, 대체 돈을 받고는 싶다는 걸까요. (투덜) 문제가 해소되면 다시 뵙겠습니다.

네덜란드는 왠지 멋지다

네이버 TRPG 카페 일일 플레이 인물을 짜던 와중에 네덜란드인 이름을 설정하느라 관련 위키피디아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네덜란드인은 멋지다는 걸 느껴버렸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1811년 프랑스에 정복당할 때까지 네덜란드에서 성씨는 의무사항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때 성씨를 등록하라고 지시받았는데, 이건 임시적일 거라고 생각한 많은 네덜란드인이 장난으로 등록한 일도 많다네요. 예를 들어:
De Keizer (더 케이제어): 황제. “이름은?” “나는 (나폴레옹) 황제다!” “나 서기 안할래..ㅠ_ㅠ”
Rotmensen (로트멘센): 썩은 인간들
Poepjes (푸폐스): X. 음 그러니까, 대변.
Piest (피스트): 소변본다. (…)
Naaktgeboren (나크트허보렌): 알몸으로 태어났다
Zeldenthuis (젤덴터이스): 집에 잘 없다
발음은 더 잘 아는 분이 고쳐주시고… 플레이 배경은 17세기인지라 인물 이름 뒤에는 성 대신 아버지 이름을 땄습니다만, 위의 장난스러운 성씨 등록은 정복자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기도 했겠죠. 그러면서도 해학과 재치를 잊지 않았던 면모가 엿보여서 재밌습니다. 오늘날까지 저 성씨들이 남아있다면 물론 후손들을 위해 묵념을.

참가자 스펙 얘기를 하다가..

이번에 시작하는 어스돈 (Earthdawn) +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얘기를 제노님과 하다가 얘기가 왠지 삼천포로 샜군요. 이것이 바로 두 청년 인생 망치기의 현장 중요한 건 전 분명 참가자들을 칭찬하고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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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와 참가자 서술권 구분의 영향

최초의 RPG는 괴물을 죽이고 보물을 획득하는 던젼 탐사물이었습니다. 지금은 훨씬 다루는 내용이 다양해졌지만, 요즘은 과연 RPG가
던젼에서 벗어난 일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대개의 RPG는 던젼 탐사보다는 복잡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외관이 던젼이 아니라고 해도 가장 기본적이고 손쉬운 구도는 일행이 외부
세계와 맞서 싸우는 것이니까요.

그 원인을 저는 전통적인 진행자/참가자 구분에서 찾습니다. 진행자는 ‘세계’를, 참가자는 ‘주인공 일행’을 맡아서 서술
영역을 분배하는 구조에서 참가자는 외부 세계에 대한 직접 서술권이 없습니다. 따라서 제안과 합의와 같은 보완적 수단으로 서술권자에게 의견을 알릴 수는 있지만 그렇다 해도 최종적인 결정권과 구체적인 표현은 서술권자의 권한입니다.

이러한 서술권 구분은 긴장감과 의외성의 원천이기도 하며, 따라서 대립에는 딱 적절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행자가 제어하는 몬스터와 던젼에 참가자가 제어하는 주인공 일행이 맞서는 내용에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RPG가 던젼에서 나온 지금도 진행자의 서술 영역인 ‘세계’와 참가자의 서술 영역인 ‘주인공’의 대립은 계속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서술권 구분이 외부 세계와의 대립에 얼마나 적합하게 되어 있는지는 참가자가 세계와 대립 외의 상호작용을 하려고 할 때 나타납니다. 외부 세계의 요소를 예를 들어 이용하거나 조종하려고 하면 정보가 일단 부족합니다. 따라서 서술권자인 진행자에게 묻거나 진행자와 협의해서 설정으로 정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진행자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는 등, 참가자가 직접 서술할 수 있는 영역인 주인공의 행동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진행자와 참가자 구분 속에서는 대립이 가장 편해집니다. 참가자는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세계를 움직이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서술 영역인 주인공을 독자적으로 움직여 그 의지를 관철하려고 하고, 반대가 있으면 그 반대를 극복하는 형태가 대체로 가장 빠르고 쉽습니다. 그리고 정보와 제어권의 분리 때문에 이러한 대립은 더욱 긴장감이 넘치고 재미있어지지요.

그런 대립적 소재가 오랫동안 이어져온 것은 역으로 그러한 구도의 생명력과 재미를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고 해도 그
속에는 정치, 추리 등 굉장히 다양한 소재를 담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진행자와 참가자 구도, 그리고 거기에서 가장 쉽게 나오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의 대립 구도에는 상당한 생명력과 유연성, 범용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RPG의 소재가 다양해지면서 그만큼 나올 수 있는 이야기도 폭이 넓어졌는데, 일행의 모험을 벗어나 개별 주인공의 내밀한 이야기를 다룰 때는 종종 다른 참가자들은 구경을 해야 하고 (물론 관객 시점도 재밌을
수 있지만 적어도 직접 참가는 하지 못하죠), 주인공이 세계와 맞서 싸우는 대신 정보와 권력으로 세계를 이용할 때는 종종
위에 말한 정보와 서술권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래서 RPG로 좀 더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려면 서술권 분배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간단한 예로는 이번 공화국의 그림자에서 참가자가 주인공 (PC) 외에 조연 (NPC)도 맡은 것만 하더라도 이야기의 폭을 확 넓히고 일행의 제약을 줄이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세션 쪽 글 중에서도 그런 플레이 기록이 눈에 띄었고, 길드타운도 그런 예죠.) 마찬가지로 장면 연출권이라든지 세계 설정, 인물 등장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한 서술권의 분배 형태가 이야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결국 서술권 분배는 플레이를 위한 도구이고, 도구란 원하는 목적에 맞게 고르고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구도를 벗어나 좀 더 폭넓은 소재의 플레이를 편하게 하려면 서술권의 분배, 명시적·암묵적 규칙 등 놀이에 사용하는 도구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책에 있는 명시적 규칙으로 분배한다면 어떤 형태가 원하는 놀이의 모습에 어울리는가, 제안과 논의로 서술권 외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면 합의가 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가 등등. 그런 사고의 유희와 구조 분석이 제게는 RPG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공유 배경세계에 대한 생각

RPG에 드는 시간과 노력 비용 관련 글에 대한 세션 토론에서 나온 MMORPG 얘기를 보고 떠올랐는데, 팀 내에서 혹은 여러 팀이 하나의 배경세계를 공유해서 함께 변화시키고 살을 붙여가는 것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시간에 시간을 내기보다는 1:1이라든지 그때그때 모인 사람끼리 의기투합해서 노는 것이 편한 법이고, 플레이마다 변화시키고 심화한 설정을 다음 플레이에서 또 사용할 수 있다면 역동적인 느낌의 세계와 사건을 겪으면서도 시간대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A, B, C, D, E라는 5명의 참여자가 같은 도시를 배경으로 캠페인을 하고 싶은데 전원이 맞는 시간이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A-B가 모였을 때든 A-B-C가 모였을 때든 시간 되는 사람끼리 플레이하고 플레이한 내용을 도시 설정에 반영한다면 이후에 D와 E라든지, B와 D라든지 누구든 같은 배경을 플레이할 때 지난번 플레이와는 또 달라진 도시를 배경으로 플레이하겠죠. 마찬가지로 거기서부터 또 플레이는 도시를 변화시킬 테고요.

물론 이건 그다지 새로운 생각은 아닙니다. 특히 공통 배경으로 소설을 쓰는 플레이는 온라인상에 상당히 흔하고, 저도 그런 소설 사이트에서 아사히라군의 소개로 RPG로 옮겨오기도 했었죠. 역시 다수의 사용자가 같은 배경에서 노는 MMORPG도 있고, RPG계에서도 이전에 동환님의 Timeline of Fairytales도 있었고, 당장 저만 해도 정기 캠페인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와 외전격 비정기 플레이인 스타워즈: 콘체르토가 같은 배경을 공유했었고요.

다만, 온라인 소설이든 MMORPG든 RPG계의 예이든 한계는 있었다고 봅니다. 소설 쪽은 제가 참여해본 곳에서는 정말로 역동적인 세계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어느 한 사람이 배경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데는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따르고 그런 것을 규율할 규칙도 없다 보니 각 소설은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의 로망 속에 따로 논다는 인상이었습니다.  MMORPG 역시 공존하며 놀 수 있었지만 역시 사용자가 하는 행동이 세계에 의미있는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고, 그 속에 정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려면 왠만한 시간이나 노력으로는 어렵겠더군요.

RPG계 쪽에서 제가 본 공유 세계관의 어려움이라면 역시 진행자에게 부담이 크다는 점입니다.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서술 범위가 배경 세계이다 보니 그런 세계의 변화를 결정하고 표현하는 것은 진행자의 몫이 되었고, ToF도 두 스타워즈 캠페인도 진행자가 붙어있어야 하니 시간대의 유연성이라는 장점에도 한계가 있었죠. 한편으로는 진행자가 궁극적으로 세계의 관리자이며 통제자라는 점은 진행자에게 창의적 권한이면서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공유 배경세계는 훨씬 권한이 분산된 형태로서, 위에서 예를 들었듯 한 사람의 진행자가 플레이에 늘 참여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참여자 중 누구나 플레이 내용에 따라 배경을 변화시킬 권한이 있는 체계입니다. 플레이 때마다 진행자가 같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플레이마다 규칙이 같은 필요도 없습니다. 또 플레이 때마다 같은 인물을 잡을 필요도 없고, 심지어는 좀 고난이도로 간다면 같은 시간대일 필요도 없겠죠.

물론 중앙 통제를 포기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움도 따릅니다. 참여자가 모두 함께 모이는 것이 아니니 뭔가 새로운 변화를 추가하기 전에 합의를 한다는 안전망도 없어지고요. 저는 성질이 나빠서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변화가 세계에 일어나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좀 자신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요.

그런 면에서는 거부권이라든지 하는 간단한 규칙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 세계에서의 개연성의 범위 같은 것을 원칙으로 만들어 놓고 그때그때 의논해서 추가할 수도 있을 테고요. 결국 무엇이든 감각이 맞고 협조가 잘 되는 사람끼리 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기본 원칙은 변함없을 테지만요.

어쨌든 이런 식으로 참여자 구성에 상관없이 플레이가 세계를 변화시키고, 또 그 변화한 세계는 새로운 플레이의 틀이 되면 세계의 역동성과 플레이의 유연성을 함께 느끼는 놀이를 하면 RPG의 비용을 줄이고 효용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경의 변화를 규율하는 규칙이나 원칙, 그리고 변화를 기록하는 체계를 잘 잡으면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변해가는 세계, 언제든 사람이 둘 이상만 모이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겠지요.

플레이 내 합의의 범위에 대한 생각

오늘 길드타운 플레이를 한 후 플레이 내 전개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깡패들과 전투에서 져서 회장님을 만나러 가자는 식으로 의논을 한 후 약간 빡빡한 전투가 있었는데, 전투의 결과까지 정해놓고 하는 건 참가자의 선택을 의미없게 해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아사히라군의 이의가 있었죠.

그에 대한 논의 끝에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참가자가 주인공(PC)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범위는 합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RP를 통해 하는 게 괜찮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에 글을 썼던 서술권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명시적 합의는 서술권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며, 전통적 RPG 규칙에서 참가자의 서술권 범위는 주인공의 행동에 그치니까요.

예를 들어 불량배들이 골목에서 몰려나와 주인공 일행을 둘러싼다는 것은 겁스에서 참가자가 자기 직접 서술권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 (NPC)의 행동이나 위치 등은 진행자의 서술권 내에 있으니까요. 따라서, 불량배가 습격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제안, 논의 등 명시적 합의 과정이 없이 참가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합의로 정하기에 적합합니다. 참가자의 로망을 살릴 만한 상황을 만들기에도 진행자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좋고요.

반면, 불량배들과 전투를 시작한 후 그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주인공을 움직여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행동, 전술적 선택 등에 따라 전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 내에서는 합의의 중요성이 덜하고,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는 오히려 재미를 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를 정하지 않고 RP와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편이 긴장감과 의외성도 더 있을 테고요.

초기 상황까지만 같이 생각하고 그 이후는 RP로 하는 것은 여러 취향의 RPG인이 함께 어울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역할극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전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RP하는 것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고, 아사히라군처럼 진행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고 시작해서 서로 맞부딪치며 나오는 우연과 의외성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지요. 전자쪽 취향일 수록 합의가 중요해지고,
후자에 가까울 수록 합의 없이 RP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면서도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서술권 분배 없는 규칙에서 극적 욕구를 조화하면서도 참가자의 선택과 상황의 의외성을 살리는 하나의 타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RPG와 소설

저는 RPG, 특히 ORPG를 하다 보면 소설 쓸 때와 비슷하게 머리를 굴리게 되곤 합니다. 묘사, 상황 연출, 인물 표현 같은 면에서 말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글 하나를 다 쓰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에 반응해서 약간씩, 그리고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만 쓴다는 점이 다르지만요. (그래서 진행에 비해 서술권 범위가 좁은 참가를 답답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RPG를 할 때면 실시간 협동 소설 쓰기 같다는 느낌도 꽤 받습니다.

RPG를 소설처럼 생각해서인지 실제 소설도 RPG, 특히 캠페인에 많이 사용하는 편입니다. 특히 스타워즈: 공화국의 그림자 캠페인을 하면서는 세션 중에 시간 잡아먹지 않게 조연들만의 사정이나 행동은 소설로 많이 빼냈죠. 그렇게 하면 세션이 조연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참가자가 원하면 조연에 대해 더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 전체 이야기도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고요.

비동시성 플레이에 관심이 가는 것도 어쩌면 제 진정한 취미는 RPG라기보다는 소설이라는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RPG 역시 알게모르게 소설로 인식하고 있으니) 동시성 플레이를 할 때 나오는 ‘퇴고 안 된 실시간 소설’보다는 좀 더 잘 다듬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고, 한편으로는 규칙 없이 쓰는 공동 창작 소설보다는 서술권 규율이 잘 되어 있어서 따로 놀지 않고 공동 참작물답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보입니다. 반면 동시성 플레이의 생동감과 사회성은 덜해서 쉽게 질리고, 따로 규칙을 관리하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겠지요.

소설이 나름 취미이기는 하지만 사실 혼자 생각해서 쓰는 소설보다는 RPG, 팬픽 하는 식으로 타인과 공유하는 로망에 대해 상상을 펼치는 편을 좋아합니다. 스스로 생각해낸 인물들과 상황을 쓴 결과물은 너무 자기도취적으로 흘러서 썩 좋아하지 않죠. 그보다는 타인의 로망에 다시 제 로망을 반영하는 편이 저 자신만의 좁은 로망을 벗어나는 의외성이 있어서 재밌어하는 편입니다.

요즘엔 RPG도 한동안 안해서 좀 시들하기는 하지만, 타인의 극적 욕구에 제가 바라는 것을 투영시킨,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에서 나오는 창의성은 어떤 형태로든 쭉 제 취미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RPG이든, 게시판이나 위키 플레이이든, 팬픽이든. 그래서 제게 언제나 창작이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