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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상세계: 쇼크는 무엇인가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규칙책 뒤편에 보면 다양한 공상과학 작품의 쇼크 (현실세계와의 차이)와 사안을 추출해 놓은 부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각기동대의 쇼크가 정신과 육체의 분리라면 그에 따르는 사안은 정체성이나 인간성의 문제 하는 식이지요.

생각해 보면 반드시 공상과학이 아니어도, 그리고 꼭 쇼크가 아니어도 RPG에는 종종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사용합니다. 항성 사이를 항해하며 교역하는 가상의 미래, 마법이 난무하는 환상적인 이세계, 고려가 멸망하지 않은 대체역사 등.

이런 가상세계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뜻대로 만들어갈 수 있는 창의적 자유, 많은 조사가 필요없는 노력 절약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 세계에는 없는 것을 겪고 싶다는 욕망을 충족해준다는 점이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가상세계는 필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렇듯 우리 세계에는 없고 가상세계에는 있는 것, 현실과 환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이 쇼크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조건, 가상세계를 사용할 근본적 이유. 그 차이점에 어떤 극적 의미가 있는지, 플레이 내에서 그 차이점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하면 그 가상세계를 사용할 (혹은 사용하지 않을) 이유도 뚜렷해집니다.

쇼크의 극적 의미와 역할을 뚜렷하게 해주는 것은 그 쇼크를 통해 드러나는 사안입니다. 성별이 없는 외계인 사회를 통해 (쇼크) 전쟁과 정치, 성역할을 탐구한다거나 (사안), 마법이 있는 사회를 탐색하며 (쇼크) 힘의 대가와 이성의 한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사안) 그 예입니다.

이렇게 1) 가상세계의 쇼크가 무엇인지 규정하고 2) 쇼크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사안을 생각하면 플레이의 극적 구심점인 주제의식이 확실해지고, 가상세계는 그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매개가 됩니다. 가상세계의 쇼크가 사안과 맞물린 주제는 바로 그 가상세계를 통해서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모습이겠지요.

가상세계의 쇼크, 이 세계와 다르기에 이 세계에 대한 중요한 진실을 보여주는 차이점이야말로 가상세계를 사용하는 극적 의미이며, 다른 어떤 장르와도 다른 공상과학의–혹은 판타지의, 호러의, 대체역사의–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상세계의 쇼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세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 차이점을 통해 우리 세계와 인간에 대해 어떤 진실을 드러내어주는가. 이것이야말로 가상세계를 만들 때도, 활용할 때도 그 극적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의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