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스타일'에 해당하는 글 43건

  1. 2012/03/16 로키 함께하고 헤어진다는 의미: 패스파인더와 룬로드의 부흥 (8)
  2. 2011/12/18 로키 아이젠가르드 전기 3화 (6)
  3. 2011/11/26 로키 아이젠가르드 전기 1화 (2)
  4. 2011/07/26 로키 RPG와 최적 경험: 진실성 (2)
  5. 2011/04/28 로키 캠페인 종결자: 몸을 사리지 않는 당신이 아름답다 (3)
  6. 2011/03/30 로키 RPG와 최적 경험: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2)
  7. 2010/12/20 로키 RPG와 운전: 서술과 협의, 문제 플레이에 대한 생각
  8. 2010/08/05 로키 서술권 구분과 마스터링 (9)
  9. 2010/07/15 로키 묘사적 규칙과 서사적 규칙 도식
  10. 2009/05/31 로키 무의식적 판정에 대한 생각
  11. 2008/08/16 로키 RPG의 비효율성? (4)
  12. 2008/08/11 로키 플레이 내 합의의 범위에 대한 생각 (9)
  13. 2008/04/29 로키 우리들의 로망 (6)
  14. 2008/04/08 로키 의외성의 4요소 (6)
  15. 2008/04/01 로키 역할극에 대한 생각 (2)
  16. 2008/03/04 로키 자료 중심 배경과 분위기 중심 배경 (4)
  17. 2007/12/14 로키 내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 (2)
  18. 2007/11/24 로키 판정 -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6)
  19. 2007/11/14 로키 판정 스트레스와 참가자 서술권 (5)
  20. 2007/11/06 로키 관계도 - 효용과 한계
  21. 2007/11/01 로키 마스터링 - 준비와 진행, 관리
  22. 2007/10/26 로키 뻔해지자 (8)
  23. 2007/10/06 로키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7)
  24. 2007/08/03 로키 매력적인 인물이란? (8)
  25. 2007/07/19 로키 규칙 - 취향을 넘어 기능으로 (2)
  26. 2007/05/16 로키 인터넷 전화로 하는 RPG에 대한 생각 (10)
  27. 2007/04/18 로키 RPG, 혹은 역동적 긴장 (2)
  28. 2007/04/16 로키 비동시성 플레이의 가능성과 도전 (9)
  29. 2007/04/10 로키 로빈 로스 - 참가자 유형과 그 활용 (3)
  30. 2006/11/26 로키 적극적인 참가자의 문제 (2)
Rise of the Runelords 표지
어쩌다가 모두가 나답지 않다고 하는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어쩌면 '나답다'는 테두리 그 자체에 저항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변화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죠.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은 누구에게나 바람처럼 찾아오고는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그분들에게, 그 공기에 이끌렸던 것 같아요. 함께하는 시간과 공유하는 즐거움에 대한 그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 그리고 만남을 바라는 정중한 부탁의 말씀. 이분들이라면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어요.

지인들은 누구나 얼마나 가겠느냐고 했지요. 그 '나다움'이라는 기대치를 깨보려고 의욕적으로 시작했고, 또 그만큼 좋은 시간도 많았어요. 함께하는 시간의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분들의 재치와 실력에는 정말이지 감탄했고, 저를 칭찬해주시고 챙겨주실 때마다 뛸듯이 기뻤답니다.

언제부터 무리가 생긴 걸까요. 결국 나다움의 울타리는 너무나 견고한 것이었는지, 함께하는 시간들 속에 '나'와 '실제'의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주문이나 경험치, 물품처럼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가 저에게는 먼 일 같기만 했고, 저의 관심사는 그 시간 속에서는 현실이 되기 어려워 보였죠.

모두 걱정해 주시고, 대화와 노력과 고민이 따랐지만, 그 끝에 저는 결국 초심의 의욕을 잃어갔어요. 만나는 시간에도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지켜보는 시간이 늘면서 참으로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답니다. 좀 더 노력했더라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옳은 길이었을까요?

고민 끝에 어느 추웠던 날, 모니터 위에 외롭게 빛나는 채팅창에서 저는 결국 결별을 고하고 말았답니다. 누구도 바라는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거에요. 서운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또 미련이 남는다 해도 서로 더 좋은 인연을 만나 이어가기를 바라는 저의 마음은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지막 만남에서 여전히 저는 할말이 많지 않았지만, 헤어지기로 하자 처음에 저를 매혹시켰던 그분들의 열정은 더더욱 돋보였답니다. 이별을 물리고 다시 함께하고 싶을 정도로요. 하지만 다시 시작하더라도 같은 일의 반복임을 알고 있었기에 참았지요. 마치 당긴 고무줄처럼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의 습관일 뿐이었으니까요.

우리는 모든 일에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를 좋아하지요. 끝까지 함께하는 것만이 진리이고, 어떤 이유로든 마지막까지 가지 못한 만남은 실수였거나, 잘못이었거나, 시행착오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흘러간 인연의 빛깔과 눈부심을 바로 보지 않는다면, 그 역시 당신과 나의 일부라고 소중히 품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온 시간을 뭉텅이째 잘라내는 참혹한 처사가 아닐까요? 이별로 끝난 만남은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 그 역시 인연이라고 저는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그래서 우리 함께한 시간들은 다른 어떤 색깔보다 '고마움'의 고운 빛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함께해 주어서, 소중한 시간을 우리의 만남에 써주어서, 그 많은 배려와 웃음과 대화에 감사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 갈망의 모습이란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어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답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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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만에 나타나서 이상한 글 남깁니다 ㅋㅋ Big Stick Carrier 팀의 패스파인더 캠페인 '룬로드의 부흥 (Rise of the Runelords)'에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재밌는 세션도 많았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맵툴도 처음으로 제대로 써보았고, 다들 대단한 마스터와 플레이어셔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제가 헤맬 때에 참을성 있게 챙겨주시고, 작은 일에도 칭찬해주셔서 더욱 감사했고요. 스토리도 탄탄하고 방대해서 공식 시나리오의 힘을 느꼈달까요. 결국 저하고는 잘 안 맞았지만, 패스파인더를 통해 이어지는 D&D의 생명력과 재미는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늘 즐거운 RPG 라이프 되시길!
2012/03/16 10:54 2012/03/1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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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ws2 2012/03/17 2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간만에 올리신 글 잘 봤읍니다. 저는 D&D스러운 게임 정서를 Club&Coin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http://qws2.egloos.com/2651193).

    규칙이야 아물며 어떠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D&D스러운 게임의 정서는 Club(전투력), Coin(자원)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봅니다. D&D로 스토리텔링시스템처럼 할 수야 있겠지만, 결국 위 두 요소가 없으면 D&D로서 정체성이 흐려진다고 봅니다.

    그나마 딱 저것만 존재했던 시기라면 거기에 서사요소를 배합하기 쉬운데, 3.0 이후 시기로 와서 구축(Construct) 욕구가 D&D에 등장하면서 아마도 로키님스러운 사람들이 D&D에 더 적응하기 힘들어지지 않았는가하고 생각합니다. 가장 강하고(Club) 가장 효율적인 장비(Coin)를 통해 육성, 즉 구축(Construct)에 맛을 들이게 된 것 같습니다. 무슨 조건을 만족하면 무슨 특기(Feat)를 얻고, 무슨 재료와 돈을 얼만큼 써서 장비를 사는 걸로 시트를 채우는 거죠.

    저도 방금까진 제대로 못 했지만, 이번 로키님 글을 보고 위와 같은 생각이 정리가 됐습니다. 남한테는 그리 좋지 않은 일인데, 그걸로 요상한 깨달음을 나열하니 뭔가 죄송함이 앞서네요(위에 나온 구축을 새로 떠올리면서 FATE의 방계 중의 방계인 운명의 실타래에 혐오감을 가진게 설명이 되더랍니다--).

    이런 걸 타파해보려고 페이트나 히어로퀘스트, 인디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영 생각만큼 결과물(좋은 번역)이 안 나오네요--(그전에 플레이나 많이 해봐야하기도 하고-0-).

    • 로키 2012/03/19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Club & Coin, 그리고 3.0이후로 Construction이라, 정말 정확한 요약이네요 ㅋㅋ 스토리가 얼마나 깊이가 있든지간에 D&D라는 룰을 제대로 살릴려면 그렇게 가야 하는 것 같아요. 특히 그 육성 부분에서 '설정'과 '효율' 사이를 선택하게 되면서 (물론 잘하시는 분들은 둘다 살리겠지만) 로키스럽게 룰에 헤매는 사람은 우왕좌왕하기 쉬워진 것도 같고요.

      생각이 정리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덕분에 저도 정리가 되네요. 늘 활발한 번역활동 존경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번역 많이 하셨으니 이제 플레이도 많이 하셔야죠?^^

  2. 소년H 2012/03/17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목욜날 그런 이야기하시고 이런 글 올라와서 중간까진 깜짝 놀랐습니다.

    어차피 영원한 인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짧은 인연이라고 특별히 나쁜 인연인 것은 아니죠. 짧아서 아쉬운 인연은 있겠지만 (저랑 로키님 인연? (...))

    • 로키 2012/03/19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훗훗 낚시글(...) 하긴 모든 인연은 언젠가는 끝나는 법이죠. 우리는 오래 이어가요! (꽉)

  3. 머스터드젤리 2012/03/20 0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흑 로키님의 빈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마 D20류는 아니게 되겠지요 ㅋㅋ

    오늘 저녁에 레이디블랙버드 피날레도 기대합니다.

    • 로키 2012/03/20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나중 가서 완전 불성실했는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다니 감사..ㅠㅠ 오늘 (벌써 오늘!) 블랙버드 엔딩도 멋지구리하게 보고 다음 기회를 노려보죠 +_+

  4. say 2012/04/03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그냥 봤네요.
    같은 고민을 하고 비슷한 시기에 열심히 pathfinder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좀 아쉽네요.
    그렇지 않아도 사멸 직전인 RPG인 하나가 사라지는건 정말 아쉬운 일이죠. 이후에 같이 플레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려나요? ㅎㅎㅎ

    • 로키 2012/04/04 1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저 RPG 계속 해요!^^ 그저 패스파인더를 안할 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서사 중심의 경량 규칙이 맞더라고요. 패스파인더 즐겁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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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벨레판은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쓰고 처형을 면하려고 망자 군단의 일원이 되었지만, 시해자에 대한 증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망자 군단에서도 가혹행위를 당합니다. 그러다가 그는 '시합'을 제의받고 호기롭게 심연의 길 깊이 내려갔다가 동료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위기에 빠진 그를 어둠 속에 속삭이는 목소리의 마물이 구해줍니다. 마물이 잡아다준 동료를 벨레판은 잔인하게 살해해버립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뚤어질 테다 1

마물에게 폐허가 된 고향 스트롬가르드에서 광란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세칸은 역시 그 죄로 망자의 군단에 입단하고, 다른 망자들에게 패배주의에 빠졌다며 심연의 길로 혼자 정찰을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길을 잃고 라그나블레이드가 잠든 호수에 갔다가 검에 이끌리고, 그것을 잡는 순간 칼의 혼에 씌워서 이성을 잃습니다. 신참이 걱정되어 따라왔던 츤데레 벨레판을 공격하던 그를 보다못해 세칸의 죽은 연인 미크투의 혼이 라그나블레이드와 스스로 일체화되어 세칸을 진정시킵니다. 정신이 돌아온 세칸은 벨레판에게 물고문 타박을 들은 후 둘은 함께 귀환합니다.

한편 친위대의 말단 병사가 된 시베르트는 라그나블레이드를 찾는 명장 싱지드를 호위해 심연의 길로 내려오며 최근의 혼란한 정국을 함께 걱정합니다. 이때 이들은 올라오는 길이던 세칸과 벨레판과 마주치지요. 라그나블레이드를 알아보고 싱지드가 세칸과 이야기하는 동안 시베르트는 벨레판에게 왜 국왕 시해의 죄를 뒤집어썼느냐고, 지금이라도 진실을 증언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벨레판은 그렇게 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며, 시베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설득합니다. 결국 시베르트는 스스로 정권을 잡기로 하고, 독립적인 조직이었던 망자 군단이 시베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감상

혼탁한 세상에서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긋나고 꼬이는 모습이 잘 드러난 것 같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끝에 벨레판의 쿠데타 드립에 대해서는 호오가 교차하더군요. 민트님은 지나치게 빠른 진행이라고 생각하셨고, 크랑님은 그래서(?)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진도는 빨리 빼자는 쪽이라 재밌을 것 같은 거 기회가 보이자마자 해버리는 편입니다. 아끼다가 뭐 된다고, RPG에서는 어차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기에 속에만 품고 있으면 영영 못 꺼내기 쉽거든요. 그런 자유도 높은 서술 때문에  폴라리스 같은 규칙을 좋아하죠. 물론 그래서 산으로 가기 쉬운 점은 경계해야겠지만, 지금까지는 산으로 좋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망자 군단이 시베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대목도 서술 교섭의 일부로 나온 내용이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지만 그래서 더 의외성 넘치고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키-암흑: "우리가 하나처럼 뭉쳐 강하게 대응하지 않는 한 스트롬가르드의 오늘은 우리의 내일이 될 거다!"
로키-암흑: 그 말과 함께 시베르트는 벨레판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지 깨닫는다.
로키-암흑: 독재자의 길... 군사정권을 잡는 것.
애스디-바위: (쿠데타!)
로키-암흑: (음하하!)
로키-암흑: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강력한 아이젠가르드라는 비전에 시베르트는 마음이 사로잡힌다!
애스디-바위: 뿐만 아니라 망자의 군단은 시베르트에게 충성을 맹세해야 한다!
애스디-바위: 직위: 국왕 친위대의 기사 주제 소진 하겠습니다..
민트-모루: (약간 개연성이 부족하긴 한데.. 동의합니다)
크랑-화로: (음
애스디-바위: (아니면 반역에 연루된 자... 로 해서 진짜 반역자가 되거나; )
크랑-화로: 동의
로키-암흑: 뿐만 아니라 망자 군단이 공개적으로 충성을 맹세할 수는 없으니 비밀리에 해야 한다.
로키-암흑: 주제는.. 직위는 이미 했고..
애스디-바위: (암흑은 우리 안에... ㅎ)
로키-암흑: 암흑은 우리 안에 있으므로 비밀리에? ㅋㅋ
애스디-바위: 더는 말하지 않겠다! 
애스디-바위: (실패해도 좋으니 성장해보자!)
로키-암흑: 광맥인가 보석인가
애스디-바위: 광맥일 거 같네요.
애스디-바위: 1d
dice-kun: (notice) 애스디-바위님의 굴림은 1d6 (1) = 1 입니다.
애스디-바위: (헉; 성공했어;;; 아악; )
애스디-바위: (실패하길 바랐는데...)
로키-암흑: ㅋㅋㅋㅋㅋㅋㅋ
애스디-바위: (마지막 서술만 취소니까, 공개 충성 맹세인가요...)
로키-암흑: (응)

실제로는 이렇게 된 일이었죠 ㅎㅎ 판정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역동적인 것이 폴라리스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점점 급박하게 치닫는 아이젠가르드의 운명은?
2011/12/18 23:19 2011/12/18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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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11/12/20 2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흐흐. 꾸준히 리플레이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계속 손놓고 있네요. 허허허;;;
    아무튼 덕분에 여러가지로 재미있게 하고 있는 듯 합니다. ㅋㅋ

  2. 비밀방문자 2011/12/28 14: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11/12/30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 의외성이 재미죠. 칭찬 고맙습니다^^ 한 분의 중도하차로 예기치 못하게 끝났지만 끝까지 재밌었던 것 같아요 ㅎㅎ

  3. 비밀방문자 2012/01/02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12/01/03 00: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삭제했습니다. 최소한의 반스팸 방지책은 해두었는데 뚫을 방법이 있는 건지 수동 스팸인지 참 ㅎㅎ 제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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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년만의 포스팅입니다. 지난번 목요일에는 폴라리스를 드워프 지하왕국 설정에 적용한 아이젠가르드 전기 1화 플레이를 했습니다.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Dragon Age: Origins)을 재밌게 했는데 거기 나온 드워프 왕국 오자마 설정이 폴라리스 RPG 원작과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안한 캠페인입니다. 몰려오는 괴물 때문에 도시가 위기에 처했는데 정작 권력자들은 권력다툼에 여념이 없는 암울한 설정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아니 그건 혹시 현실세계였나

배경은 자유도를 위해 게임하고는 분리해서 아이젠가르드라는 지하 도시로 했고, 주인공들은 죽기를 맹세하고 심연의 길에서 괴물들과 싸우는 망자의 군단, 혹은 엘리트 부대인 국왕 친위대 소속으로 했습니다. 드워프 배경에 어울리도록 규칙 용어도 일부 바꾸었습니다. 마음-보름달-그믐달-후회 라는 참가자 역할은 바위-모루-화로-암흑 이 되었고, 서술 교섭을 위한 의식 언어도 '그러나 그러려면' 대신에 '네 뜻이 그렇다면'이라거나, '그러나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대신 '무익하다!' 하는 식으로 간결하고 단호하게 고쳤습니다. (의식 언어 순서도에 사용한 글씨체 이름도 무려 양재튼튼체. 게다가 제가 리브르오피스로 그릴 때 배율 86%로 작업해서 부담스럽게 크군요(...))

폴라리스가 원래 그렇지만, 이번 플레이의 재미도 바위와 암흑 (마음과 후회)끼리 밀고당기는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첫 테이프를 끊은 명문가 전사 시베르트 아이자른은 암흑의 따스한 배려로 초장부터 반역자로 몰리는 풍파를 겪게 되었지요. 원래는 약혼녀와 파혼시키려는 의도였는데, 교섭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전개가 되었습니다.

암흑: 정혼자를 기다리는 록산나의 마음은 그러나 편할 수 없었으니, 왕이 죽은 후 섭정을 맡고 있는 제르문트가 자신의 야심을 위하여 그녀와 시베르트의 정혼을 해제하였기 때문이다.
바위: 잠깐! 탐욕은 화를 부른다. '정혼녀 록산나 글리테렌' 면모가 있는 운명 주제를 소진한다.
-> 탐욕은 화를 부른다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나')는 방금 내놓은 것과 규모나 효과가 다른 서술을 내놓으라는 뜻이며, 요구하는 측에서는 인물의 주제 (직위, 운명, 축복, 능력) 중 하나를 소진해야 합니다. 각 주제는 초기화할 때까지 바위가 한 번, 암흑이 한 번씩 소진할 수 있습니다.
모루, 화로: 주제 소진을 인정한다.
-> 주제 소진이 적합한 지는 모루와 화로 (보름달과 그믐달) 둘이서 인정해야 합니다.
암흑: 쳇. 그렇다면... 섭정 제르문트는 아이자른 가문을 반역으로 몰았으며, 록산나를 겁박하여 미끼로 시베르트를 안심시키고 체포하려고 전사를 잠복시키고 있었다.
모루, 화로: 종전과 다른 서술이라고 인정한다.
바위: 그렇게 되었다.
-> 상대방의 서술을 받아들이고 서술 교섭을 끝내려면 '그렇게 되었다”로 마무리하면 됩니다. 이후에는 다시 자유 RP로 돌아가죠.

저 자비로운 암흑은 누굴까 이렇게 교섭을 마친 후에 RP를 통해서 시베르트는 잠복했던 전사들에게 포박당했고, 역시 서술 교섭을 통해 시베르트의 사건은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장면 커트.

4인 폴라리스의 묘미라면 마음과 후회 (여기서는 바위와 암흑)이 서로 복수전을 펼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후 사랑을 위해 국왕 시해의 누명을 쓴 벨레판 베라리트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암흑의 반격이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감싸느라 국왕 시해자가 되어버린 벨레판이 사형을 면하기 위해 망자 군단에 자원하고, 입단을 위하여 장례식을 치르는 대목이었죠.
바위: 그때 군중 사이에서 다시 돌이 날아오자 벨레판은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며 도끼를 돌이 날아온 방향으로 날린다!
암흑: 도끼는 벨레판의 아버지 토르벤에게 적중한다.
바위: (으악!)
화로: (얼쑤!)
모루: (으익)
바위: 탐욕은 화를 부른다! 살육의 도끼 면모가 있는 축복 주제 소진.
모루, 화로: 인정한다.
암흑: 벨레판은 무의식중에 도끼를 연인 에르타의 남편 미칼에게 날렸고,
암흑: 에르타가 미칼을 감싸고 대신 등에 도끼를 맞는다.
화로: (인정!)
화로: 에르타가 애처롭게 미칼을 잠시 쳐다본후, 떨리는 눈동자로 벨레판을 바라본다
-> 화로는 정서적인 관계에 있는 주변인물을 담당합니다.
바위: 뿐만 아니라 에르타는 심한 부상을 입되 죽지는 않아야 한다. '망자 군단의 전사' 면모를 근거로 직위 주제 소진.
-> '뿐만 아니라'는 (원래는 '그리고 또한') 교섭 상대의 서술을 받아들이고 여기에 추가를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네 뜻이 그렇다면' ('그러나 그러려면')과 같지만, 주제 소진을 요구하고 뒤에 올 수 있는 답변이 제한적입니다. (순서도 참조. '네 뜻이 그렇다면'에는 6개의 답변 가능, '뿐만 아니라' 뒤에는 4개의 답변이 가능합니다.) 여기서도 주제 적합성은 모루, 화로가 인증하는데 분량 관계로 생략하겠습니다.
암흑: 뿐만 아니라 에르타는 부상으로 반신 불수가 되어야 한다. '암흑은 우리 안에 있다' 면모가 있는 운명 주제 소진.
바위: 탐욕은 화를 부른다. 적합한 주제가 없으므로 남은 주제 2개 다 소진.
-> 적합한 주제가 없으면 주제를 2개 소진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바위는 주제를 모두 소진했으며, 주제를 초기화할 때까지 주제 소진을 요구하는 교섭어 ('탐욕은 화를 부른다'와 '뿐만 아니라')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고자가 되었어 엉엉 위에 에르타 안 죽는다는 부분을 암흑이 뒤집지 못하게 뿐만 아니라를 사용했는데, 제 꾀에 제가 넘어갔군요.
암흑: 에르타는 벨레판이 자신을 미워하게 되었다고 착각하게 된다.
바위: 일은 그렇게 되었다.
-> 더 망하기 전에 끝내야지... 시베르트 차례가 돌아오면 복수해줄 테다ㅠㅠㅠ
이렇듯 화기애애하게 원한을 불태우는(?) 구조는 바위와 암흑이 밀고 당기는 과정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전개와 변화를 가져오는 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망가지려나 얼마나 극적인 전개가 되고, 인물들과 그 인간관계가 어떻게 변해갈 지 기대됩니다. +_+

폴라리스의 서술 교섭 규칙이 의외성을 증진시키는 이유는 논의를 구조화하고 제한한 점이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탐욕은 화를 부른다' 같은 교섭어를 보면, 현재 한 서술을 바꾸라는 요구는 하지만 어떤 서술을 대신 해달라는 요구는 할 수 없습니다. 그저 이전 서술과 다른 것을 내놓으라는, 그리고 다른 서술이라는 인증을 받으라는 형식적이고 절차적인 요건만 있을 뿐이죠. 그래서 참가자의 마음에 쏙 드는 서술이 나올 확률은 적지만, 다르게 보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서술이 나오는 의외성은 더욱 증진됩니다. 결국 '원하는 내용이 나오는' 욕구충족성에 더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 나오는' 의외성에 무게를 둘 것인가 하는 플레이 스타일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비극을 지향하는 폴라리스에는 확실히 후자 쪽이 어울리는 것 같고요.

다른 주인공인 대장장이 싱지드 마크스톤은 절망적인 상황을 타개할 병기를 만들고자 스승의 뜻을 어기고 심연의 길로 떠납니다. 심각한 갈등은 없이 서장에 가까운 장면이었지요. 그리고 다른 도시 스트롬가르드의 유일한 생존자 세칸은 구출하러 온 아이젠가르드 전사 중 하나를 광란 상태에서 살해하고, 그 죄로 망자의 군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시베르트는 반역의 죄를 벗을 수 있을까요? 망자 군단의 전사로서 벨레판과 세칸의 미래는? 싱지드는 심연의 길에서 무엇을 발견할까요? 아이젠가르드 전기 2화를 기대해 주세요~ 바위와 암흑으로서 저와 폭풍 디스를 주고받은 광열군, 차분한 RP를 보여주신 크랑님, 그리고 세칸으로서 열연하신 민트님 모두 수고하셨고요,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2011/11/26 13:18 2011/11/2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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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트 2011/11/27 1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로그도 카페에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ㅎㅎ

    • 로키 2011/11/27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올려놓았습니다. 네이버 카페가 첨부파일이 좀 잘 안 보여서...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인생관이라고도 하고 신념이라고도 하는 이 진실은 여러분이 실제 경험이나 책이나 생각 등 삶의 과정을 통해서 배워온 법칙 혹은 규칙성, 즉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면 보답을 받는다거나, 선인은 결국 상을 받고 악인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거나,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거나 등등.

아니면 여러분의 세계관은 냉소적이고 어두운 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운 있고 백 있는 사람의 편이라거나, 악인이 더 잘 된다거나, 가족이야말로 가장 못 믿을 사람들이라거나,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바로 악이거나 하는 식으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삶의 진실이란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고, 건전발랄한 생각과 짜게 식은 냉소가 공존할 수도 있지요.

여러분이 믿는 생의 진실이 무엇이든 그것을 표현하는 이야기야말로 여러분에게 가장 재미있고 깊이있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흔히 주제라고 하고, 다르게 말하면 책을 덮었을 때, 극장에서 나왔을 때, 텔레비전을 껐을 때 '남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진실이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으면 남는 게 없는 이야기가 되거나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가 나오기 쉽지요. 주제의식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것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제는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드러날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가장 단순화하자면 '~~를 하면 ~~하는 결과가 나온다'는 인과관계의 반복을 통한 것이라는 설명이 저는 가장 와닿았습니다. 이것은 Robert McKee의 Story: Substance, Structure, Styl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에 나온 설명을 참조한 것으로서, 이 책은 국내에서는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황금가지에서 2002년 출간하였습니다.

가난한 젊은이가 성공하려고 이를 악물고 사업을 하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가 아무것도 없이 발로 뛰어 투자자를 감동시키고, 밤낮으로 공사장에서 지내면서 공장을 짓고, 경쟁사의 치사한 수법에 맞서 품질과 정직성으로 승부하는 끝에 성공하는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는 '역경 앞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감동 성공신화일 것입니다. '노력 -> 성공'이라는 인과관계가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공장 건설, 경쟁사 음모 분쇄)와 전체 이야기 (사업 성공)에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위의 청년 실업가가 투자자를 모으려고 죽도록 노력했는데 경쟁사의 이간질로 투자를 못 받고, 결국 비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공장을 지으려고 했는데 공장은 경쟁사에서 보낸 깡패들이 불태워버리고, 허름한 창고를 빌려 밤을 새어가며 제품을 조립하여 출고하였는데 특허 소송에 휘말려 결국 제품은 사장되고 경쟁사 사장의 매수를 받은 검찰이 사기죄로 이유 없이 기소하여 결국 빚만 떠안고 감옥에 가는 이야기라면 이것은 살기 싫어지는 이야기 '돈과 권력 앞에 개인의 노력이나 성실성은 실패와 파멸로 이어질 뿐이다'라는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이야기이겠지요. 역시 이야기의 각 단계 (투자자 확보 실패, 공장 화재, 제품 사장, 억울한 옥살이)와 전체 이야기 (돈과 권력에 져서 파멸) 속에서 '권력의 방해 -> 실패'라는 인과관계가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이들 한쪽 극단이 아니라 그 사이를 오가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투자자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공장은 성공적으로 지어 제품을 출시했고, 특허 소송에 져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결국 경쟁사의 비리를 밝혀내고 어렵게라도 회사를 꾸려갈 수 있었다... 하는 식의 달콤씁쓸한, 양쪽 진실이 공존하는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될 수도 있지요. 인생은 다면적인 만큼 보통은 이러한 혼합적인 주제의식이 가장 현실적입니다.

이미 정해진 이야기인 소설이나 영화 등은 위와 같지만,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RPG는 이들 매체와는 주제의식 표현이 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소설이나 각본은 주제를 미리 정하고 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수정할 수 있는 반면, RPG에서는 시나리오를 정한다 하더라도 실제 진행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크게 달라지니까요. 이런 RPG의 성격상 주제를 설정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한다면 어떻게 할까요?

우선 짚고 넘어가자면, RPG든 다른 이야기든 주제를 미리 설정하고 모든 인물과 진행을 주제에 맞추는 방식은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선전 소설마냥 구호 모음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니까요. 그보다는 좋은 주제의식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실제 사람, RPG의 경우 참여자들이지요. 두 번째는 이야기 속의 가상적인 사람, 즉 허구 속의 인물들입니다. 여기서 시작하여 RPG에서 주제의식을 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논의는 나중에 이야기의 개별적 요소들 (배경세계, 인물, 구조 등)을 다루면서 더욱 확장해갈 것입니다.

일단 처음 기획하고 설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왜 이러한 캠페인을 원하는지, 왜 이런 성격의 배경세계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는 것이 주제의식 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벌써 주제를 정할 필요는 없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만 생각하면 충분합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 했던 중편 캠페인 도쿄의 달 제작시에는 '변혁기 인간의 모습'을 다루자는 합의 하에 이에 맞추어 배경세계를 정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질문은 주제의식이라기보다는 소재이지만, 나중에 주제의식의 중요한 실마리가 되었지요.

인물을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로 '왜'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합니다. 적의 희생 때문에 살아남은 후 개과천선한 인물을 하고 싶다면, 왜 그럴까요? 어떤 이야기 혹은 방향성을 바라는 것일까요? (현실 속 참여자의 동기) 그러한 인물의 동기,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허구 속 인물의 동기) 참여자가 원하는 것과 인물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야 좋은 이야기와 진실한 주제의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듯 주제의식이란 결국 인과관계인데, 이러한 인과관계가 나타나려면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는 동력원은 욕망이니까요. 위의 청년 실업가의 예에서는 그가 사업을 성공시키려고 하기에 투자자를 모으고 공장을 지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러한 욕망에 다른 인물들이 반응하면서 감동 성공 스토리도, 산업 느와르물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기회과 인물 제작 단계에서는 크고작은 의견차이가 생기는 것이 보통인데, 이러한 차이는 아주 중요합니다. 의견 차이야말로 진실성과 주제의식을 둘러싼 차이점의 실마리인 까닭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참가자가 하고 싶어하는 인물은 자신이 뭔가 동기가 있어서 움직인다기보다는 주변 인물이 괴롭히고, 좋아하고, 구출하는 사건의 연속인 공주형 내지 소녀형 인물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참가자나 인물이 여자는 아닙니다.) 즉 행동하기보다는 사랑이나 미움을 받는 대상으로서의 인물을 원할 수 있지요. 이럴 경우 그 플레이어가 생각하는 진실성이란 '사랑받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거나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행동하기보다는 착하게 가만히 있는 것이 좋은 일이다' 같은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견 차이가 드러날 때에는 위 문단에서 다루었듯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가 대화를 충분히 하고 차이점을 조정해 보거나, 정 간극을 좁히기 어려우면 같이 플레이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하면 이전 단계에서 암시되었던 주제의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진행자가 제시하는 상황, 참가자가 보이는 반응, 각 참여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그 합치 혹은 불합치 속에서 각자의 욕망의 방향을 엿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진행자가 권력의 비리를 반복적으로 등장시킨다면 진행자는 아마도 권력이 인간을 망친다는 주제의식에 관심이 깊을 것입니다. 또 참가자 A는 대개의 상황에 폭력적으로 반응하고 또 이로 인한 승리를 원한다면 그 참가자는 정의는 (혹은 나는) 승리한다는 진실에 끌리는 것이겠지요. 또 다른 참가자 B는 주변 인물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이런 참가자는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 참여자가 믿는 진실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서로 모순적인 진실을 믿을 수도 있으며,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주제의식, 혹은 각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대화가 아주 중요해집니다. 참여자들이 해당 세션에서 무엇을 원했으며 어떤 점이 충족되었고 어떤 점이 불만족스러웠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얘기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이야기와 주제의식을 끌어내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참가자 A는 전투로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는데 진행자가 너무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이 불만일 수 있습니다. 진행자는 이기기 어려운 권력의 불의를 보여주고 싶었기에 강한 적을 내보낸 것일 수 있지요. 이러한 욕망이 드러나면 이들의 각자 다른 진실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폭력과 권력은 결국 같은 현상이니까 참가자 A의 인물이 폭력을 휘두르면서 점점 강력한 권력이 되어가고, 그로 인해 새로운 억압자가 되는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혹은 참가자 A와 참가자 B의 욕구를 조화하여 혼자서는 이기기 어려운 상대이지만 원군을 부르면 이길 수 있는 적을 내보내서 정의의 승리와 사회관계의 중요성을 둘다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RPG에서의 주제의식은 모든 참여자가 생각하는 진실이 서로 대립하고 또 조화를 이루는 긴장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특히 긴 이야기일 수록 각자의 진실을 조화시키는 소통이 중요해집니다.

이상과 같이 주제의식이 무엇이며 RPG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주제의식 외에도 이야기의 진실성에는 개연성이나 진정성 같은 요소도 들어갑니다. 이야기의 진행과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얼마나 진실한가 하는 문제이지요. 이들 역시 참여자끼리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므로 의견 차이가 생기면 이때 왜 이런 사건이나 반응이 나왔는가,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 우리가 생각하는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이렇듯 좋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진실성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부터는 RPG 캠페인 기획과 진행의 각 단계를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가장 기본인 배경부터 시작하여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하여 캠페인 배경세계를 설정하고 선택하는 문제를 다루어 보겠습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2011/07/26 12:45 2011/07/26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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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8/12 08: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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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오픈아이디란?]

진행자 위시송군이 이미 글을 썼듯, 연초부터 한 마계인천 드레스덴 파일 RPG 캠페인이 얼마 전에 끝났습니다. 도시를 양분한 뱀파이어와 타락천사라는 두 초자연 세력 사이에서 어느쪽 편도 들지 못하고 '이놈도 저놈도 싫어!'를 외치며 어떻게든 도시를 구해보려고 달린 끝에 달콤씁쓸한 해피엔딩을 맞았지요.

위군도 얘기했듯 이번 캠페인의 참가자분들은 상당히 대담한 RP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담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진행자가 우리에게 쉽지 않은 도전을 제시해주어서 가능했던 일이지요. 가족을 선택할 것인가, 악의 세력과 싸울 것인가? 더 많은 사람을 살리려고 한 사람을 죽일 것인가? 신념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도시의 번영과 정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극명한 선택상황 앞에서 참가자들은 선택을 피하거나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정면돌파했습니다. 훈님의 캐릭터인 화염술사 제임스는 얼굴에 끔찍한 흉터를 입어가며 괴물과 싸워 이겼고, 나중에는 동료의 목숨을 구하려고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강해지는 힘의 유혹에 넘어가 결국 캠페인 종결 후 인천 대화재를 일으킨다는 뒷이야기가..;ㅁ; 전혀 거리낌 없이 인물을 망가뜨리는 훈님의 투혼(?)에는 참 감명을 받았었죠.

키님의 캐릭터인 사이코메트리 능력자 주연은 신비한 힘을 부여해주는 반지의 속삭임을 따르면서 마이 푸레셔스 점점 도덕적 회색지대로 빠져들고 결국 임무의 성공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지경에 이르릅니다. 키님 역시 인물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고 어둠에 빠져드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훌륭한 RP를 보여주셨습니다.

이전 겁스 캠페인 PC를 재활용한 제 인물 리이는 살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댄스클럽 조명을 햇빛으로 바꾸는 주문으로 인천의 뱀파이어를 대부분 몰살시켰고, 그 결과 뱀파이어 세력을 치명적으로 약화시키기는 했지만 대신 타락천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뱀파이어들 회사와 거래를 트고 있던 가족의 가세는 많이 기울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너 죽고 나 죽자의 묘미인가...) 무엇보다 그 보복으로 오빠가 뱀파이어들에게 감염당해 피를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러한 극명한 선택과 대가를 통해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마스터인 위시송군이 그러한 상황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선택도 녹록하지 않은 대가가 따르도록 하고, 선택의 극적 의미를 부각함으로써 '선택'이라는 RPG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진행이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런 성과에는 인물의 극적 키워드를 시트에 적어놓고 규칙상 효과를 부여한 드레스덴 RPG라는 규칙도 한 몫 했지요.

결국 이번 캠페인에서 배운 것은 RPG에서는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재지 말고, 빼지 말고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재밌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야 신중해야겠지만, 허구적인 인물은 이런거 저런거 따지지 말고 적극 망가뜨리는 것이 RPG의 묘미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더 큰 즐거움을 위하여...

2011/04/28 15:50 2011/04/28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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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11/04/29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쭐우쭐

  2. Wishsong 2011/04/29 15: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는 빈센트 베이커 씨의 가르침에 많은 감화를 받았어. 결과를 미리 생각하지 말고, 괴롭힐 수 있는 게 있으면 과감히 물어뜯고, 선택의 무게는 크고 가혹하게!

    • 로키 2011/05/02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응응, 수고했어 (철썩철썩) 역시 베이커씨의 마스터링 조언은 멋지군! 승한도 잘 활용했고.^^

[로그인][오픈아이디란?]

지난번 글에서는 백만 년 전에 RPG의 게임적 측면을 다루었습니다. 그 글에서 다루었듯 RPG에는 게임으로서의 측면이 있으며, 이는 역할극과 구분되는 RPG의 특성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규칙의 지향점을 파악하고, 숙독과 연습을 통하여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를 했었죠.

게임성 외에 또 다른 특징이라면 RPG라는 놀이는 반드시 서사적인 틀 속에서 진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보드게임이나 퍼즐게임 등은 서사 없는 놀이가 가능하지만, RPG는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려는 목적으로 플레이를 하든, 아니면 이야기는 괴물을 잡고 보물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일 뿐이든 뭔가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국 RPG는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놀이인 셈입니다.

서사성이 RPG의 또 다른 특징인 만큼 이야기가 훌륭하면 그만큼 RPG의 만족감도 높아지고, 좋은 이야기를 목표로 노력하면 그만큼 최적 경험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처음에 최적 경험, 혹은 플로우를 다루면서 말했듯 플로우란 정해진 목표를 향해 노력을 하면서 집중감과 몰입감, 그리고 행복감이 드는 경험입니다. 따라서 달성하려는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서는 플로우가 있을 수 없지요.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먼저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살펴보고 다음 글부터 각 요소를 달성하는 방법을 논하겠습니다.

주의할 것은 RPG가 이야기를 만드는 놀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둘 필요는 없으며, 또 그래야만 좋은 놀이인 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RPG의 이야기란 그저 신나는 놀이를 하면서 (게임성), 혹은 아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서 (사회성) 부차적으로 생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를 얼마나 강조할지, 그리고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쏟을지는 각 팀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이야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기로 한다면 더욱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은 분명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좋은 이야기란 워낙에 다양하므로 외적으로 보이는 특징, 예를 들어 장르나 배경을 가리켜 이것이 있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엘프와 마왕이 나오면 좋은 이야기인 것은 아니며, 영화 '가타카'가 좋은 이야기라고 해서 미래 디스토피아가 다 훌륭한 작품인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라면 공유하는 몇 가지 특징이 있기는 합니다. 겉가죽은 연애물이든 추리물이든 동화이든, 모든 좋은 이야기의 속살에는 다음과 같은 본질이 있습니다.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제가 그동안 보고 생각한 것을 나름 소화하고 정리한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진실성. 좋은 이야기란 무엇보다 진실한 허구, 즉 진실한 거짓말입니다. 비록 하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만 그 속에 있는 인물과 사건 등이 삶에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본질 중 으뜸입니다. 인물을 어떻게 하고 사건을 어떻게 할까 하는 고민도 결국에는 '진실한가?' 하는 단일한 질문에 답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있는가, 삶에 대한 어떤 진실을 보여주는가, 이것이 좋은 이야기의 최종적이며 또한 유일한 시금석입니다. 나머지는 좋은 이야기는 진실해야 한다는 이 원칙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두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풍부한 배경세계가 있습니다. SF나 가상역사, 판타지처럼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전혀 다르거나 역사물처럼 우리 세계의 과거를 다루는 이야기도 배경세계가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허구도 독자적인 배경과 문화가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의 고등학교나 중산층 가정, 혹은 21세기 한국 사회 전체도 이야기가 벌어지는 세계이며, 각자 법칙과 갈등, 문화가 있는 소우주를 이룹니다.

한편 배경세계가 풍부하다는 것은 설정자료가 많다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 의미있는 갈등의 실마리가 있으며, 인물 및 인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 세계 특유의 문화와 규범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배경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과 공통점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다양한 각도로 볼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역시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됩니다. 삶의 진실이 햇빛이라면 배경과 그 문화는 그 빛을 다양한 색채로 변주하는 프리즘입니다.

세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좋은 인물성, 특히 좋은 주인공이 있습니다. 좋은 인물이란 결국 이야기에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사람을 통해 표현하여 흥미와 공감을 끌어내는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주인공, RPG에서는 PC는 실현할 수 있는 욕구를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변하고 성장해가는 인물이지요. 이러한 인물과 그들 간의 관계는 좋은 이야기의 원동력이 되며, 깊은 감정적 경험을 이끌어냅니다.

네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이야기의 경험을 고조시키는 이야기 구조가 있습니다. 모든 의미있는 이야기의 핵심에는 일상 - 일상에서의 일탈 - 새로운 평형 달성이라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조셉 캠벨의 영웅의 여정을 따릅니다.) 그것을 기승전결, 발단-전개-절정-결말 하는 식으로 나누어볼 수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주인공들이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위험한 미지의 영역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렇게 성장하고 변함으로써 한층 층위가 높은 새로운 안정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러 모험을 떠나는 얘기이든, 학교를 옮기는 전학생 얘기이든,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든 좋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각자의 삶이라는 전투를 치르며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삶의 지혜, 그 진실의 일면이라는 전리품을 탈취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록 결말이 행복한 이야기이겠고, 의미 있는 배움을 얻지 못하거나 이를 위한 대가가 너무 크다면 비극적인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삶을 더 깊이 깨닫고, 더욱 의미있는 존재를 누리려는 투쟁은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이를 반영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좋은 이야기에는 의미있는 갈등과 선택이 있습니다. 내적 갈등이든 외적 갈등이든 인물은 의미가 있는 갈등에 마주해 뭔가 선택을 해야 하며, 이 선택에도 크든 작든 의미가 따라야 합니다. 갈등과 선택은 위의 모든 요소를 통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경세계와 인물은 다양한 갈등을 만들어내며, 갈등의 발생과 해결은 배경과 인물,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진실에 비추어 진정성이 있고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또한 갈등상황에서 인물이 하는 선택에 따라 인물성은 더욱 깊이가 생기고 변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상황과 선택은 미지의 상황에서 새로운 의미를, 새로운 평형을 만들어가려는 인물의 투쟁을 반영하며 이를 통해 삶의 어떤 진실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RPG의 좋은 이야기는 소설이나 연극과는 다른 RPG만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야기가 어떻게 되는지 정하는 규칙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함께 즉석에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따라서 RPG의 다른 두 요소인 게임성과 사회성과의 관계, 그리고 즉흥성과 계획성의 관계 등을 살펴보면서 RPG인의 서사적 능력 논의를 마칠 계획입니다.

이렇게 좋은 이야기의 요소를 논하는 여섯 편의 글을 열어봅니다. 아는 것이 짧아 쓰기까지 많은 고민과 변경을 거친 끝에 결국 생각보다 길어지게 되었군요. 어려운 얘기인 만큼 많이 부족할 텐데 격려와 질책, 지적과 질문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이 서론에서 잡고 있는 구성을 변경하려면 나머지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하는 것이 좋으니까 의구심이나 반론, 보충할 점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적극적으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RPG와 최적 경험 시리즈>
1. 최적 경험을 위하여
(1) 최적 경험과 플로우
(2) 플로우의 조건
(3) RPG와 플로우
2. RPG인의 능력
(1) 게임적 능력
(2) 서사적 능력
A.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B. 진실성
C. 배경세계
D. 인물성
E. 이야기 구조
F. 갈등과 의미있는 선택<
G. RPG 특유의 서사성
(3) 사회적 능력
(4) 팀의 능력
3. 도전을 수준에 맞추어가기
(1) 게임적 도전
(2) 서사적 도전
(3) 사회적 도전
4. RPG의 목적성과 피드백
(1) 팀 단위에서의 목적 설정
(2) 팀원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3) 등장인물 간 목적의 일치와 긴장
(4) 피드백으로 목적 합치성 평가하기
5. 집중과 몰입
(1) 집중을 위한 조건
(2) 집중을 위한 마음가짐
(3) 집중을 위한 환경
(4) 결어

2011/03/30 11:37 2011/03/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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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4/19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11/04/21 2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처리했어요. 이제 스팸 필터도 뚫는 모양이네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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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PG와 운전

1을 보다가 재미있는 비유가 나와서 RPG에도 적용해 보았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정신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의미를 논하면서 운전을 하는 비유를 드는데,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고 있으면 차를 제어한다고 할 수 없고, 차 뒷좌석에 탄 승객은 운전을 감시는 할 수 있고 운전자에게 제안도 할 수 있지만 운전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RPG에서 서술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눈감은 운전자는 일단 차치하고 (ㄷㄷ) 서술과 협의의 관계는 마치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와 뒷좌석에 앉은 승객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참가자는 자신의 주인공 (PC)의 행동을 서술하는 서술권이 있고, 진행자는 조연 (NPC)과 외부 세계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때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 내 주인공을 죽이려고 했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비가 왔으면 좋겠다 하고 제안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고요. 그런 식으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사실 바람직한 플레이기도 합니다. 승객이 운전자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거나, 지름길로 가자고 운전자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러나 뒷좌석의 승객이 운전자일 수 없듯, 서술권자가 아닌 사람은 서술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서술 영역이 아닌 영역에 대해서는 제안을 하고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참가자는 진행자에게 조연이나 외부세계에 대해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직접 조연이나 외부세계 요소를 빼앗아 서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진행자가 조연이나 자연현상 등을 참가자에게 넘기는 경우는 서술권이 넘어가는 것이므로 다른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도 참가자에게 주인공이 이런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떨까 얼마든지 제안은 할 수 있고 또 참가자도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진행자나 다른 참가자가 주인공에게 어떤 말이나 행동을 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뒷좌석 승객이 운전대를 빼앗으면 안 되는 것처럼요. 물론 운전을 교대하기로 하고 승객과 자리를 바꿔타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지만요.

2. 운전석과 뒷좌석을 구분하는 세 가지 이유

어째서 로키는 이런 독재적인 발언을 하는 것일까요? 내 서술권은 내꺼고 니 서술권은 니꺼니까 침범하지 말라는 이런 반공동체적, 반민주적 발상이 어딨습니까! 혹시 진행자는 신에게 권한을 받는다는 구닥다리 진행권신수설 신봉자, 혹은 시대에 뒤처진 권위주의자인 것일까요?

뭐 제가 독재파쇼라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서술권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 외에도 (?) 크게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크게 구조적, 사회적, 감정적 이유입니다.

첫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구조적 이유는 우선 RPG는 어떤 식으로든 서술권을 구분해야 한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한 사람에게 모든 서술권이 있으면 그건 혼자 쓰는 소설이고, 아무런 서술권 구분이 없으면 서로 눈치만 보다가 놀이가 안 되거나 아니면 놀이 속 사건에 대해 서로 의견이 안 맞아 말다툼을 벌이기 쉽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이 너는 저 영역에 대해 결정을 내리고, 나는 이 영역에 대해 결정권이 있다는 서술권 구분이지요.2

중요한 것은 서술권을 어떻게 분배하든 그 분배에는 일정한 효과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참가자가 주인공을 맡고 진행자가 그 나머지를 맡는 전통적인 구조는 주인공 일행 대 세계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이루기 쉽습니다. 서술권을 전혀 다르게 분배하는 놀이, 예를 들어 얼음깨기 (Breaking the Ice)는 주인공과 외부 세계를 같은 사람이 서술하는 만큼 한결 주인공과 외부 세계가 협력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따라서 어떤 서술권 분배와 그에 따르는 효과를 선택했다면 그 분배를 어기는 것은 그 효과 또한 희석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두 번째, 서술권을 구분하는 사회적 이유는 서술권 구분이 뚜렷하지 않으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진행이 늘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진행자의 전통적 영역을 참가자 사이에 공동 분배하면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사진에서부터 5번째 문단 참조) 책임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논의와 의사소통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물론 논의가 활발한 것은 더없이 좋지만, 논의 없이는 장면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면 좀 피곤하지요. 마치 운전자 없이 '승객이 투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차'를 탄 것처럼 정신없는 경험이 되기 쉽습니다.

세 번째 감정적 이유는 서술권을 구분하고 그 구분을 지키지 않으면 감정이 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역할극을 다룬 글에서 역할극에 판정이 없어서 생기는 부작용을 적었었는데, 서술권 구분이 없거나 그 구분을 지키지 않는 것도 비슷한 부작용이 있습니다. 서술권 구분이 없다면 이 요소 (인물, 자연물 등)의 움직임을 내가 서술해도 괜찮은지 바로 확신할 수 없고, 그 요소를 움직였다가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서술을 해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요. 서술권 구분은 이러한 눈치보이는 상황에 대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해서 인간관계와 놀이 속 서술 사이에 어느 정도 방벽을 만들어줍니다.

서술권을 일단 구분한 상태에서 지키지 않았을 때 생기는 감정적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진행자가 주인공에 대해 조언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한 간섭을 하거나 아예 행동을 강제한다면 해당 참가자는 자기 서술권뿐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한 기분이 들 것이며, 서술권 구분이 그런 식으로 무시당하면 위에 얘기한 구조적, 사회적 문제도 발생할 것입니다.

3. 뒷좌석 운전의 실제 모습

물론 실제 RPG에서는 '나는 너의 서술권을 부정하고 이 이야기 요소를 내가 제어하겠어!' 라고 선언하고 서술권을 잡는 일은 없습니다. (혹시 있으려나요? 있으면 제보좀...) 그보다는 서술권 개념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침해하는 일이 많지요. RPG를 할 때 뒷좌석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씨름하는 행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선, 강제 진행. 거의 진행자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는 서술권 침해입니다. 고전적인 RPG 서술권 분배에서 진행자는 참가자에 비해 서술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그래서 세계와 조연을 움직여서, 혹은 장면 전환이나 편집을 해서 원하는 진행에 반하는 참가자 서술을 막아버리는 것을 강제 진행, 혹은 칙칙폭폭 진행이나 기찻길 진행 (Railroading)이라고도 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무시당했으므로 참가자는 기분이 나쁠 뿐만 아니라 (감정적 부작용), 세계와 주인공에 대한 서술권을 분리하는 이점을 취할 수 없어지는 (구조적 효과) 악효과가 있습니다. 의미있는 모든 서술권이 한 사람에게 모이므로 소설에 가까워지고, RPG를 하는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참가자와 협의를 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며, 진정한 협의만 되어 있다면 강제가 아니므로 서술권 침해가 아닙니다. 따라서 진행자가 특별히 바라는 전개가 있다면 참가자와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정 전개에 애착이 강하다면 그냥 소설을 쓰는 게 낫습니다.

또한, 강제 진행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서술 무시를 통해 상대의 서술권을 없는 것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진행자와 참가자 모두 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진행자가 하는 편이 효과가 강력합니다. 주인공이나 조연의 행동이나 대사를 무시해서 놀이 속 효과를 부정하는 것인데, 강제 진행만큼 전면적이지는 않지만 부작용은 강제 진행과 비슷합니다. 기분이 나쁠 뿐 아니라 놀이 속 현실이 무엇인지 혼란을 야기하므로 (선전포고를 한 거야, 안한 거야? 비가 왔어 안왔어?) 이런 일이 잦으면 놀이 자체를 망가뜨리기 쉽습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인물이' 다른 인물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입니다. 인물끼리 대립하는 거야 얼마든지 극적으로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인물끼리 갈등하는 것은 재미있지만, 참여자끼리 갈등하는 것은 지루하고 혼란스럽지요.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시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화로 푸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서술을 무시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한꺼번에 서술이 쏟아진다거나 (특히 주인공이 다수 등장하는 장면이 이러기 쉽습니다), 다른 세션이나 이전 장면 등 전에 나온 정보를 잊어버렸다거나 할 때 벌어지는 일이지요. 의도적 서술 무시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것도 잦아지면 헷갈리므로 선언을 차례대로 한다거나 리플레이를 정리한다거나 해서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은근슬쩍 서술을 해서 서술권을 침해하는 것은 보통 참가자가 합니다. 이건 논의와 구분하기가 조금 애매할 수도 있지만, 선을 확실히 넘었을 때는 보통 알 수 있죠. 예를 들어 조연이 자신의 주인공 미모를 보고 넋을 잃는다는 선언을 참가자가 한다거나, 중요한 조연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존 협의 없이 느닷없이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서술이 사소한 것일 때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소한 사항이라 해도 서술권 범위 외에 있는 것은 먼저 서술을 해버리기보다는 간단하게나마 제안이나 논의를 하는 것이 이러한 기습 서술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얘네들이 주인공을 보고 넋을 잃으면 어떻겠느냐, 이 조연하고 아는 사이이면 어떻겠느냐 하고 의논을 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규칙을 통해 이전받은 서술권을 행사하는 상황 역시 문제가 없지요. 서술권이 없는 요소를 갑자기 서술을 해버려서 서술권자를 당황시킬 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전 논의 없이 서술권자 (보통 진행자)가 전혀 준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가려고 한다거나, 판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판정을 건너뛰는 것은 서술권 구분을 교란하고 서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부작용이 따릅니다. 서술권자는 이 서술을 그대로 따를 것인가 다른 참여자에게 싫은 소리를 할 것인가 하는 곤란한 선택에 처하게 되어 더욱 감정이 상하기 쉽지요.

이러한 기습적 서술권 침해는 특히 정당한 논의 과정이나 판정을 우회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협의를 했는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이런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문제일 수도 있고 (RPG를 곤란하게 하는 행동유형 중 '예의바른 암살자' 참조) 때로는 팀내 의사소통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서술권자에 대해 감정적으로 벌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서술권을 장악하려는 행동도 있는데, 이것은 정당한 비판을 다소 격하게 하는 행동과 꼭 구분하기 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논의하는 형태를 취한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가 덜하고, 서술권 침해라기보다는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문제로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술권자를 위축시켜 서술권 행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문제 행동이기는 하다고 봅니다.

감정적으로 벌을 주는 행동은 보통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지요. 플레이를 향상시키려는 비판은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니까요. 정당한 비판에서 감정적 괴롭힘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요소는 크게 반복성, 적대적 감정 표출, 플레이 도중에 길어지는 잡담, 인신공격성 발언, 구체적 해결책 부재가 있습니다. 즉, 특정 서술권자에게 집중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며, 그 비판에 사용하는 단어나 말투가 감정적이며, 플레이 중 당장 필요한 것을 교정하는 최소한의 의사표시를 하거나 플레이 이후 지적을 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 도중에 길게 말을 해서 흐름을 끊어놓으며, 특정 서술이 아니라 서술권자 자신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며, 무엇보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지 제시하지 않아서 고치기조차 어려우면 문제가 됩니다.

이러한 감정적 괴롭힘은 처음 시작은 서술권 행사에 관한 의견 차이였을지 몰라도 (왜 저런 대사나 선언, 기타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정이 쌓이고 바람직한 해소를 하지 못하면서 쌓인 적대감을 부적절하게 표출하는 대인관계상 문제가 되어가기 쉽습니다. 그냥 애당초 성격과 취향이 맞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고요. 이럴 때에는 진짜 맺힌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대화로 해결하거나, 정 해결할 수 없고 서로 맞지 않으면 플레이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4. 운전은 운전자가

운전석과 뒷좌석이 다르듯이 서술권자의 역할과 지켜보고 조언을 하는 역할은 분명 다릅니다. 그 구분을 하는 것은 서술권자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구분을 하는 편이 다같이 재미있어서 그렇습니다. 그 점을 잊어버리고 뒷좌석에서, 혹은 조수대에서 운전대를 잡으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대신 서술과 협의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활발하게 대화를 하면서 서술을 분배하는 의미를 되도록 살리는 것이 안전운전, 아니 건전 RPG의 시작이 아닐까요?



주석
  1. Mindsight: The New Science and Personal Transformation (by Daniel J. Siegel, M.D.) [돌아가기]
  2. 또 다른 수단이라면  서술권 영역 사이를 매개하는 규칙과 협의입니다만, 서술권 글에서 그 역할을 적었던 만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돌아가기]
2010/12/20 23:58 2010/12/2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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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운전수 비유가 재밌어 보여서...설문

    Tracked from nefos in Her garden 2010/12/23 13:00  삭제

    심도 있는 글의 수준을 오히려 떨어뜨리는거 같지만... 생각이 난거니 적긴해야겠지. 4명이 차를 탔다. 신기하게도 4명 모두에게 핸들이 달려있었다. Q1. 여기서 발생한 문제 중 가장 별 문제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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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 경험 시리즈 쓰다가 옆으로 샌 또 다른 글입니다. (엉엉)

RPG에는 일반적으로 마스터와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흔히들 쓰는 말인데, 마스터 (진행자)라는 의미, 혹은 플레이어 (참가자)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들의 역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이러한 역할 구분에는 어떤 결과가 따르는지, 그리고 이 역할 구분을 토대로 하여 진행이란 어떤 활동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구분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고전적 구분, 두 번째는 협의형, 세 번째는 분산형 구분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가장 흔하고 이해하기 쉬우며, 세 번째는 일반적인 의미의 진행자가 없는 형태까지 포함해 가장 광범위하고 다양합니다만, 고전적인 형태와 대비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범주로 다룹니다.

1. 고전적 진행

진행자는 세계이며, 주인공은 세계와 맞서 싸운다

진행자와 참가자의 가장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는 각자 하나씩의 인물, 흔히 PC (주인공)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 최종적인 결정권 혹은 서술권이 있습니다. 진행자는 그 주인공 일행 외의 모든 극적 요소, 즉 PC 외의 모든 인물 (NPC, 혹은 조연)과 주변 환경에 대해 서술권이 있습니다. 이 서술권이 맞닿는 곳에서 중재하는 것이 합의와 판정이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은 이전에 서술권 구분의 영향에서 다루었듯 일행 대 외부세계라는 서사구조에 가장 적합합니다. 자신이 서술권이 없는 요소에 대해서는 정보나 영향력, 예측가능성이 제한적이므로 참가자는 일행 외적인 요소와 협동하기보다는 물리적, 사회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쉽습니다. 이러한 정보와 영향력 제한은 의외성과 박진감을 증진시키므로 대립은 더욱 흥미로워지지요.

이러한 고전적인 역할 구분 속의 진행자는 시나리오 제작자이며, 참가자의 적수이자 도전자입니다. 서술권 구분이 완전할 수록, 그리고 그 효과인 예측불허성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혼자 시나리오에 대한 사항을 정하며, 참가자가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상황과 도전을 제시합니다. 참가자와 그들이 움직이는 주인공은 진행자가 제시하는 외적 도전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치며 스릴을 느끼고, 주어진 고난을 뛰어넘는 판단력과 규칙 활용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생각도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는 의외성과 극적 재미를 느낍니다. 한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고전적 진행의 장점입니다.

유의할 점은 진행자와 참가자가 제어하는 요소들이 서로 대립하는 내용에 적합하다 해도 진행자와 참가자가 곧 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한 게임적, 극적 재미라는 목적을 위해 놀이 속에서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자고 합의했을 뿐이지요. 물론 놀이 속 요소와 실제 참여하는 사람 사이의 심적 구분을 지키지 못하면 정말 사람끼리 관계가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만, 이건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수많은 원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서로 정보와 서술권이 차단되어 적수를 맡는다 해도 그건 더 큰 재미를 위한 역할 구분인 것이지요.

이러한 창조적인 충돌의 장을 혼자 준비하는 고전적 진행자는 외로운 존재입니다. 의외성과 대립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다면 참가자의 선제지식이나 시나리오 협의는 줄이는 것이 좋겠지요. 따라서 서술권과 정보의 구분이 철저할 수록 진행자는 준비할 것이 많아지며, 상대적으로 책임감도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재미있는 상황들을 제시했는지, 플레이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진행자 잘못은 아닌지 고민이 느는 것이 고전적 진행자입니다. 소스북이나 시나리오집 등이 이렇듯 외로운, 그리고 바쁜 진행자를 도와주는 준비자료이기도 합니다. 덧붙이자면 이들 시나리오에 참가할 사람은 읽지 말라는 경고가 흔히 붙어있는 것도 고전적 서술권 분배에서 의외성의 극대화를 위한 정보 차단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렇게 판을 잘 짜야 하는 고전적 진행 형태에서 진행자의 덕목은 책임감, 치밀성, 임기응변, 성실성, 폭넓은 지식, 그리고 허를 찌르는 재치와 꾀일 것입니다. 참가자에게 제대로 된 도전을 제시하려면 규칙도 잘 파악하고 있어야겠고요. (사실 어떤 진행을 하든 미덕입니다만...) 어찌보면 웹툰 환상주사위에 나오는 TRPG부 부장이자 마스터 나현우가 그런 전형을 잘 나타내고 있지요. 고독하되 충분히 자기 책임을 수행할 수 있고, 속으로는 진행이 힘들더라도 겉으로는 내색 안하고 태연할 수 있는, 고전적 진행자는 어찌보면 영웅적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환상주사위 1화 중 나현우

네이놈 고등학생이 머리가 그게 뭐냐!


2. 협의형 진행

대화와 소통으로 서술권의 벽을 넘다

위의 고전적, 혹은 '영웅적' 진행자의 전형을 보고 진행자에 대한 부담이 지나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진행자가 무슨 초인도 아니고,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는 고독한 영웅이라니 이게 무슨 액션 영화란 말입니까. 실제로 환상주사위에 대한 RPG인의 비판 중에는 마스터의 모습이 왜곡된 RPG관을 심어주기 십상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사실 저 역시 진행자가 고독한 영웅이나 신비한 현자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얘기한 고전적 진행자의 모습 역시 순수한 형태로 현실에 존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존하는 형태라기보다는 일종의 이념형 (ideal type)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영웅적 진행자와 서술권의 철저한 구분이라는 그 이상은 현실 플레이에도 큰 규범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로는 완전히 순수한 형태의 고전적 진행자가 아니라 해도 그런 영웅적인, 혼자서 다 짊어질 수 있는 진행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저도 느껴 보았고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현실 속의 진행자는 (이상이야 어떻든지 간에) 모든 준비와 책임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그러한 플레이가 잘 되었을 때의 장점은 위에 고전적 진행 부분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그러나 부담을 느낀다면, 혹은 참가자가 진행에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협의해서 진행상의 사항을 정할 수 있지요.

이러한 협의의 내용은 워낙 다양해서, 사실 협의형 진행의 모습은 굉장히 여러 가지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순수한 이념형 고전적 진행 외에는 전부라고 할 정도로 폭넓지요. 간간이 참가자가 이런 조연을 내보내달라거나,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좋지 않겠느냐 하고 제안하는 정도일 수도 있고, 캠페인 준비 단계에서 시작해서 장면 하나하나까지 모두가 논의해 정하는 것이 보통인 플레이일 수도 있습니다.1

결국 협의형 역할구분, 그리고 그 속에서 하는 협의형 진행이란 논의와 의사소통을 통해 정한다는 대원칙을 둔 온갖 플레이의 총칭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협의는 각 팀이 '필요한 만큼' 하면 되니까 어디까지 어떻게 협력하는 게 좋다 하고 방법론적으로 정의하기도 좀 어렵겠죠. 협의로 정하는 부분이 적으면 고전적 진행에 더 가깝고, 협의의 형태나 결과가 정형화되면 아래 분산형 진행에 가까워질 수도 있는 등, 협의형 진행은 하나의 독자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정도 차이를 구획한 분류에 가깝습니다.

이렇듯 다양할 수 있는 협의형 역할구분을 굳이 정의하자면 서술권 구분은 위 고전적 구분과 원칙적으로 같되, 자신에게 서술권이 없는 영역에 대해 제안과 논의라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세계'라는 서술권의 차단을 협의라는 장치로 넘나드는 것이지요. 그 결과 진행자도 주인공의 행동에 대해 제안하고 논의할 수 있고, 참가자도 조연이나 주변 세계에 대해 얼마든지 토의할 수 있습니다.

협의형 진행의 장점이라면 고전적 진행에 비해 진행자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점이 있겠지요. 고전적 진행자가 마치 안전망 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곡예사와 같은 부담감이 있다면, 협의형 진행 속의 진행자는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튼튼한 안전망을 갖추게 됩니다. 공동 창작과 공동 책임, 공동 부담인 만큼 혼자 부담감을 끌어안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편 공동 창작과 공동 부담이라는 것은 혜택도 공동으로 누린다는 뜻입니다. 즉, 진행에 참가자 의사를 반영하는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진행에 벙어리 냉가슴 앓을 필요가 없고, 본인의 로망을 좀 더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위에 이미 말했듯 협의형 진행은 고전적 진행과 완전히 별개의 유형이 아닌, 협의의 정도 차이로 구분한 것인 만큼 고전적 진행의 형태를 상당 부분 유지하면서도 협의를 첨가해 이러한 장점을 향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협의는 역시 필요한 만큼 하는 거니까요.

또 한 가지 장점이라면, 고전형 역할분담에서 흔히 나타나는 개인 대 세계를 넘어 주인공이 외부 세계를 이용하기도 하고, 이끌기도 하는 등 한결 폭넓은 이야기를 하기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서술권과 정보의 차단을 넘나드는 협의라는 장치가 있는 만큼 참가자가 놀이 속 세계에 대해 대립 외의 행동을 취할 운신의 폭이 커지는 것이지요. 고전적 진행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소수의 협력자와 함께 외부의 위협에 맞서는 고독한 영웅 집단이라면, 협의형 진행에서는 세계나 조연에 대한 정보와 영향력이 훨씬 많은 만큼 지도자라든지 중간조정자 등의 역할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집니다.

물론 이러한 장점의 대가로 위에 고전적 진행을 다루며 이야기한 긴장감이나 의외성이 약해지는 점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협의를 얼마만큼, 어디까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만, 이미 얘기가 된 사건에 대한 반응은 아무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이 튀어나오는 충격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주인공이야 얼마든지 놀랄 수 있지만, 참가자가 느끼는 의외성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로망을 반영하였다든가, 플레이의 내용에 대해 불안할 필요가 없다든가 하는 다른 장점은 있으며, 의외성 약화 자체도 서술의 일관성이나 개연성 확보에는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 진행 형태가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목적과 취향에 비추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고르느냐에 따라 최선의 선택이 달라질 뿐이지요.

플레이에 협의의 역할이 강할 수록 진행자는 고전적 진행자가 맡는 독자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시나리오 제작 위원회의 일원이라든지, 참가자의 의논 상대로서 또 하나의 참가자가 됩니다. 물론 서술권 분배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인공 외의 세계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것은 변함없지만, 협의의 역할이 크고 협의가 정형화되어 있을 수록 그 결정은 전체의 의사에 제약을 받습니다. 이러한 제약이 강해지면 결국 서술권 분배 변경에 이르고, 그러한 변경은 곧 논할 분산형 역할분배로 이어집니다. 결국 정도의 차이인 것이지요. (최하단 도면 참고)

협의형 진행자는 위와 고전형 진행자의 덕목도 갖추면 좋지만, 그 이상으로 풍부하고 정확한 의사소통 능력과 다양한 의견의 조율 능력이 중요할 것입니다. 참가자와 협의한 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것도 중요하겠고, 감정적 안정성과 인간관계 관리 능력, 의논한 것을 정리해서 자료로 만드는 꼼꼼함과 기록 습관 등도 도움이 되겠지요. 결국은 워낙 다양한 형태의 플레이를 포괄하는 용어이기에 진행자의 능력도 일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협의형 진행을 할 때 진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분산형 진행

백짓장도, 진행자 권한도 맞들면 낫다?

위에서 다루었듯 고전형 진행에서는 진행자가 주인공 일행 외에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한 서술권이 있고, 협의형 진행도 원칙적으로 비슷하지만 협의를 통해 자기 서술권에 속하지 않은 요소에도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참가자는 주인공, 진행자는 그 외의 나머지라는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협의형 진행에서는 비록 협의의 범위에 따라서는 서술권의 정도나 행사 방식을 수정하기는 하지만,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자신의 서술 영역에 대한 재량은 다소간에 있습니다.

세 번째로 다룰 분산형 역할구분은 바로 그 전통적인 서술권 분배를 해체합니다. 참가자도 조연을 맡기도 하고, 진행자도 주인공 제작에 참여하고, 진행자가 여럿인 경우도 있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하지요. 일단 진행자는 세계, 참가자는 주인공이라는 전통적 구분을 벗어나면 정말 무수한 조합이 있는지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래서 결국 서술권을 전통적인 형태와 다르게 분산했다, 내지는 진행자의 전통적인 역할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가졌다는 의미에서 분산형 역할구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위의 협의형 역할구분에서는 남의 서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비정형적인 의사소통이라면, 분산형 진행은 서술권 분담을 규칙으로 확실히 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칙이란 RPG 책에 나온 것일 수도 있고, 팀에서 함께 정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서술권 분담 구조를 벗어나는 만큼 명시화하고 명문화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폴라리스 (Polaris)에서는 '마음' 참가자는 주인공, '달' 참가자는 우호적인 조연, '후회' 참가자는 적대적 조연과 배경세계 하는 식으로 나누고 있지요. 달과 후회가 전통적인 진행자 역할을 나눠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예로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에서는 진행자 없이 두 '구애자'와 한 명의 '님'으로 나누어서 하는 삼각관계 얘기인데, 자신의 주인공인 구애자나 님뿐 아니라 기타 조연에 대한 서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참가자 전원이 진행자의 역할을 나누어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협의로 타인의 서술권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규칙 자체로 서술권을 나누는 차이는 결국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입니다. 협의형 역할구분 속의 참가자는 조연의 행동에 대해서 제안은 할 수 있지만, 일단 제안을 하는 것이 부담이 될 수 있고, 또 제안을 실제로 구현하는 것은 서술권자인 진행자이므로 제안을 받아들일지, 그리고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진행자의 몫입니다. 반면 스스로 서술권이 있으면 자신의 의도를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 때문에, 서술권 분배를 다르게 하는 것은 협의와는 또 다르게 플레이의 모습을 변화시킵니다.

서술권을 분배하는 규칙은 협의 과정과 그 내용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똑같이 협의를 하더라도 위에 논했듯 일반적으로 자신이 서술권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발언권이 강하기 십상이지요. 또한,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에서 인물을 공통으로 제작하는 것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참가자가 장면을 신청하는 규칙이 그 예입니다. 이렇게 동등한 발언권을 보장해서 만든 협의의 구조 속에서 그 발언권 행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네 캐릭터랑 내 캐릭터가 아까 일로 말다툼하는 장면은 어때?" "내가 생각하는 장면은 네가 말한 장면 다음에 나오는 게 좋은 것 같으니까 네가 먼저 신청할래?" 등등)

달을 쏘다나 폴라리스처럼 전면적으로 서술권을 분산하는 규칙도 있지만, 서술권 분산은 고전적 역할분담 속에 부분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극점수 서술이 좋은 예이지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계열 규칙의 면모 발동이나 페이트 점수 소모가 좋은 예입니다. '항구마다 여자가 있다' 면모를 발동해서 이 장면에서 옛 여자가 나타나는 서술을 한다거나, 페이트 점수를 1점 써서 옆에 무기가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물론 협의로도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위에 얘기한 부담과 확실성의 차이로 돌아오지요. 다르게 보면 극점수를 사용하는 것은 극점수를 소모한 사람의 발언력을 크게 강화한다고 보아 협의를 구조화하는 규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2

분산형 역할분담의 장점은 협의형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고전적 역할분담에서 진행자에게 속했던 서술권을 참가자에게 분배하므로 진행자 부담이 거의 없고, 아예 진행자 자체가 없는 형태도 있습니다. (달을 쏘다, 폴라리스, Grey Ranks 등) 이러한 역할분담 때문에 참가자의 욕구를 플레이에 직접 반영할 수 있으며, 세계와 주인공 서술권의 이분법이 없으므로 주인공 대 세계라는 이야기 원형보다 폭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비슷합니다. 주인공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이 있는 사람이 세계에 대한 정보와 서술권도 있다면, 그 점을 활용해 주인공이 세계를 이용하는 서술도 할 수 있으니까요.

분산형 역할분담의 한 가지 추가적인 특징이라면 일반적으로 의외성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술권과 협의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술권의 영역에 있는 것은 서술권자가 독자적으로 끄집어낼 수 있고, 협의를 통해 정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미리 얘기가 되어 있어야 하지요.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는 진행자뿐 아니라 어느 참가자라도, 주인공뿐 아니라 세계에 대해서도 그런 의외의 서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협의나 판정을 통해 조절할 수는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여러 방향에서 다양하게 나온다는 차이입니다. 물론 그만큼 서술의 일관성이나 체계성 유지는 어려워질 수도 있으므로 긴밀한 의사소통과 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3

단점이라면 협의보다 규칙에 기댈 수록 특정 방향의 서술을 유도하는 제약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예를 든 폴라리스는 비극으로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설계한 규칙이므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부적합합니다. 달을 쏘다 역시 인물의 변화와 희생을 유도하는 만큼 극단적으로 흐르기 쉬운 규칙이지요. 따라서 규칙이 지향하는 유형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좋지만, 범용성은 떨어집니다. 범용성과 자유도가 강한 분산형 서술분담 규칙은 안방극장 대모험처럼 규칙의 정형성이 덜하고, 대신 협의를 구조화하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산형 역할분담 속에서 진행자의 역할은 보통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고, 아예 진행자가 없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전통적인 진행자의 권한을 다들 나눠가지고 있으므로 전원이 진행자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분산형 '진행자'의 미덕은 서술권을 분배하고 행사하는 규칙을 잘 알고, 그것을 기반으로 다른 참가자들과 의사소통을 활발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규칙으로 부여받은 서술권과 참여자끼리의 논의를 둘다 이용해 자신과 상대의 로망과 반응에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재미있게 노는 방법입니다.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역할분담 유형은 이미 말했듯이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도 차이입니다. 그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상과 같이 RPG 속에서 서술권 분담의 차이와 그에 따른 진행자의 역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이라면 서술권 분담 유형은 각각의 장단점이 있고, 또 RPG의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목적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RPG라는 하나의 취미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는 진행자의 역할 (혹은 유무)만 해도 차이가 나고 또 같은 유형 속에도 굉장히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가 있습니다. 그런 다양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RPG는 더욱 풍요로운 취미가 아닐까요?


주석
  1. 후자는 X의에 의한 플레이라고도 합니다만, 이걸 글로 정리하신 분이 제가 쓰는 글에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신 적이 있으므로 따로 다루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협의형 진행은 그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므로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기]
  2. 극점수 논의는 위시송군의 제안으로 추가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위씨 탓[?] [돌아가기]
  3. 이 일관성과 체계성 논의는 제노시아님 지적에 추가한 것입니다. 글 봐달라고 완전 온 동네를 불러냈구만[..] [돌아가기]
2010/08/05 22:48 2010/08/05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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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10/08/06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션 쪽에 글을 소개하려다가 주석을 보고(...)

    • 로키 2010/08/06 1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별로 안 좋아하실 텐데(..) 그쪽 분들에게는 이미 너무 폐를 많이 끼친 것 같아서 말이지.

  2. 실버 2010/08/07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어 선택이 그럴 수 밖엔 없는걸 알고 있지만, 요즘 종종 고전적<->협의형의 구도를 자주 보게 되는것 같아서 '협의형'플레이라는 단어 자체가 달갑지 않을 정도입니다. 고전적 플레이는 협의를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주고,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더군요. 애초에 협의가 없는 플레이가 가능이나 한지 잘 모르겠지만요.
    딴말이 좀 길었습니다. 위 구도 대로라면 분산형인 플레이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쪽으로 유도를 해보려고 한적이 있었는데 잘 안되더라구요. 시건방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제가 느낀건, 마스터의 능력 보다는 플레이어 개개인의 능력과 참여 유무가 플레이 방식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는거였습니다. 진행자를 하기 싫은 사람도 진행자를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요.
    이것 저것 시도나 고민을 해봤는데, 결국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스터링 방식은 요즘 비디오 게임계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오픈월드형 RPG식의 진행이 되더군요. 고전적 마스터링을 하는 사람들은 RPG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해서 현대에 거의 완성을 보고 있는 오픈월드 게임들을 한번쯤 즐겨 보는것도 많은 도움이 될 듯 합니다.

    • 로키 2010/08/08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사실 비슷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고전적 진행을 현실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이념형이라고 한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현실적이지는 않다고 해도 '협의 없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내놓는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는 규범성 내지 강박은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이 글의 분류 기준은 서술권 집중과 분산이니 협의형이 현실적으로 집중형과 분산형 사이의 중간 형태라는 생각입니다.

      분산형 플레이는 확실히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죠.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것이었던 권한을 참가자가 나누어 가질 용의가 있는지, 참가자가 자신의 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는지, 그리고 물론 참가자에게 참여 의욕과 실력이 있는지 등을 고려해야 하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분산형 플레이를 할 때면 진행자와 참가자의 권한을 명문화한 규칙, 소위 인디 RPG를 선호합니다. 누구에게 이만큼의 권한이 있다고 못박아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가 참가자인 입장에서도 마음놓고 '진행자 영역'을 '침범'하기는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책에 있는 규칙이든 참여자끼리의 합의이든, 권한은 명문으로 분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할 일이라고 생각해야 참여 욕구뿐만 아니라 주인 의식과 책임 의식도 생기거든요. 내가 안하면 마스터가 하겠지, 내지는 내가 하면 마스터 마음에 안 들 거야 하고 생각하는 환경에서는 분산형 플레이를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내가 안하면 아무도 안한다, 그리고 내가 해도 된다고 생각해야 움직이게 되죠.

      오픈월드도 꽤 재밌는 생각이네요. 이번에 시작하려는 캠페인에도 오픈월드 개념을 일부 도입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RPG와 CRPG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참 재밌는 현상인 것 같아요 ㅎㅎ

  3. 케찰코아틀 2010/08/07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확실히 고전적인 마스터에 속하는군요. 경험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협의에 의한 게임의 진행은 뭔가 소꿉장난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긴장감이 없더라구요. 이야기를 꾸며나가는 것보다는 제시된 장애물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마초스러운 방식을 더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모든 플레이어가 과연 참여를 원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는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지만, 제가 경험했던 플레이어의 상당수는 이야기에 참여한다는 면에서는 좀 소극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룰의 선택에 따른 부분이나 플레이어 자신의 숙련도에 의한 문제도 있겠지만 대체로 DM이 규칙이나 하우스 룰을 통해서 개입의 여지를 만들어도 활용하는데 그다지 의욕이 없는 경우가 많았지요. 자료가 부족한 편견에 가깝겠지만 남자 분들의 경우 이야기의 꾸밈이나 캐릭터의 갈등 관계 등에는 큰 관심이 없는 인원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분산형의 경우에는 제가 이런 쪽으로는 게임을 전혀 해본적이 없는 것 같군요. 떠오르는 건 원스 어폰 어 타임 정도의 보드게임 뿐이네요. 그렇지만 참여자의 역량에 따라 게임의 질이 크게 달라질 것 같군요. 단지 룰에 대한 숙련 뿐 아니라, 플레이어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의 정도에 따라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 로키님의 리플레이들을 재미있게 읽었지만 실제로 내가 저렇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보면 그렇게는 못할 거 같다고 생각되었던 것처럼, 누구나 좋은 게임을 할 있는 놀이방식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아직 낯선 방식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일수도 있겠지만요.

    • 로키 2010/08/08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시한 장애물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플레이 방식이지요. 이런 취향에는 이런 방식이 잘 어울린다는 명제는 (말씀하신 예로, 제시된 장애물을 극복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좋아하는 취향에는 고전형 플레이가 어울린다) 이론 정립이나 토론의 대상이 되지만, 어떤 방식이 객관적으로 낫다 (예를 들어, 분산형 플레이는 고전형보다 우월하다)는 건 이론도 토론도 뭐도 아닌 억지일 뿐이지요. 말씀대로 모든 사람이 폭넓은 참여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취향이 있죠. 그런 수많은 취향과 욕구를 채워줄 다양한 규칙과 플레이 방식이 있어서 RPG는 더욱 멋진 취미인 것 같습니다.^^

      참가자 실력 하시니까 마침 생각나는 게, 제가 어저께 바로 그런 분산형 규칙인 안방극장 대모험 플레이를 했는데 참가자 분들은 RPG 초보셨어요. 그런데 후기에도 썼듯 굉장히 재미있는 플레이가 나와서 케찰님이 하신 말씀과 겹치네요. RPG처럼 사람이 중심이 되는 놀이에는 실력과 상관없이 누구나 재밌는 룰이란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참여자가 성장해가고 실력을 키워가야 재밌는 것이 RPG의 어려움이자 묘미이죠. 어제 플레이도 참가자분들이 방송의 구성이라든지 장르 문학에 조예가 깊으셨고, 극적 전개와 완급 감각이 뛰어나셨던 그 실력 때문에 어제 플레이는 재밌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분산형 플레이는 실력이 필요하다는 케찰님 말씀에는 공감합니다. 어떤 플레이든 마찬가지이지만, 참가자 각각이 기존 고전형보다 권한이 큰 분산형 플레이는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동시에, 좋은 규칙과 좋은 놀이 방식은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성을 끌어내며, 참여자 사이에 상승작용을 일으켜 강점을 빛내주고 결점을 보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즉,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담을 덜 느껴도 되지 않을까요? 나한테 생각이 안 떠오르면 옆사람에게 아이디어가 있을 지도 모르고, 막히면 누군가가 돌아갈 기발한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니까요. 길게 썼지만 결국 결론이라면 "실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능력을 끌어내는 규칙과 방법론에 관심이 큰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이 블로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고요.

  4. Xenosia 2010/08/07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버/ 그렇죠. 합의 없는 플레이가 어딨겠습니까[..]
    케찰코아틀/ 저도 긴박감이 없는 합의형 플레이는 영 취향에 안맞더군요.
    다 짜고 하면 의외성이 떨어지는데 무슨 재미로 하냐는 플레이어도 있었고 말이죠.

    그 플레이는 분명 플레이 전에 당일에 신청하고 싶은 장면을,
    또는 플레이 후에 다음 플레이 때 신청하고 싶은 장면을
    팀원들의 합의에 의해서 선택한 플레이였습니다.
    요즘 세션에서 자주 이야기 되는 그런 형식의 초기단계였죠.

    합의 자체는 필수불가결입니만,
    언제 합의할 것인가,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와 같은 요소를
    획일화된 방법론을 대세로 밀면서 제한하는 것처럼
    보이는게 좀 씁쓸하더군요.
    적어도 세션에서는 아무도 그에 대한 지적을 안하는 것 같았거든요.

    외부인[이라 쓰고 로키님이라 읽음]의 지적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만
    뭐 이건 제 기분탓일 수도 있겠죠.

    덧. RPG 동네 투어[..]

  5. Xenosia 2010/08/07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만 더 이야기해보자면,
    플레이하기 전에 장면을 합의하고
    캐릭터의 배경을 설정하면서 세계관과 융화시키고
    플레이 끝나면 '다음에 뭘 할까?' 이야기하고...

    이게 정말로 고전형/분산형/협의형과 같은 진행방식의 구분과
    반드시 묶어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지를 먼저 고려해봤으면 합니다.

    객체지향적으로 한 번 생각해봅시다. (...?)

    사과라는 객체는 과일이라는 좀더 넓고 추상적인 개념의 객체에 포함됩니다.
    좀 간단하게 줄이자면 부모자식관계죠.
    먹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사과와 귤이라는 두 객체를 놓고 봅시다.
    둘은 과일이라는 같은 부모객체를 가졌지만 서로 다른 형태입니다.
    둘은 부모객체를 통해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그 외에는 별다른 연관성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운송이라는 주제에서, 기차라는 객체와 레일이라는 객체의 관계는 어떨까요?
    기차는 운송수단이라는 부모 객체에 포함되지만, 레일은 아닙니다.
    레일은 기차가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기차와 레일을 합칠 수 있는 객체 '철도'의 부분 요소입니다.
    레일은 철도를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그 자신이 기차와 같은 운송수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레일은 철도에 포함된 부분요소로서 기차가 움직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전기기로서 TV와 리모컨의 관계를 봅시다.
    TV는 방송을 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TV를 보는데 리모컨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TV도 리모컨도 가전기기라는 부모객체를 가질 수 있지만 리모컨은 TV의 필수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TV를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TV의 내부구조와는 별도로
    외부로 노출된 인터페이스일 뿐이고 TV 또한 리모컨으로부터 독립적입니다.

    ..여기까지 지루한 이야기 보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겁스, D20, 페이트와 같은 룰은 사과나 귤과 같은 것입니다.
    무슨 규칙을 사용하든지 그건 팀의 기호에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합의라는 것은 RPG를 구성하는 추상적인 객체중에 하나입니다.
    큰 의미에서의 합의는 레일처럼 뺄래야 뺄 수 없는 RPG의 구성요소입니다.

    하지만 도식화되고 '합의에 의한 플레이'를 규정하는 것은
    리모컨과 같은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편의성을 위해서 만드는것이죠.

    합의에 의한 플레이와 같은 방법론 없이도, 오래된 팀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팀들은 이미 그것과 유사한 다른 방법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 실버님이 모유저분의 댓글에 화를 내셨던 것 처럼,
    모두가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의도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전 현재도 진행중인 합의에 의한 플레이의 정리가 여러 유저들을 위해서
    방법론을 정립해 널리 알리자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처럼 오로지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대세인 것마냥 이야기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는 리모컨과 TV의 관계를 기차와 레일의 관계인듯 이야기하는
    풍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을 암묵적으로 터부시하는 듯해 보이는 분위기는
    그 주제가 뭐가 되든 바람직하지는 않겠지요.

    • 로키 2010/08/09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각해볼 만한 점이긴 한데, 서술권의 집중과 분산을 다룬 글이니만큼 고전형과 분산형 사이에 현실적인 중간 형태로 협의형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협의와 서술권은 다른 범주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놀이 속의 요소 (인물, 배경 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에서는 유사한 기능을 한다고 보거든요. 합의에 의한 플레이는 물론 많은 방법론 중 하나이죠. 전혀 절대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데는 저도 동의하고, 그걸 정립한 분조차도 남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아니실 거에요. 특정 방법론을 사용하든 하지 않든, 플레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발전해가는 데 의의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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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와 최적경험 2편 (아직 미완성, 비공개) 쓰다가 갈라져나온 내용입니다. 도식을 만들기는 했는데 그 글에는 딱히 들어갈 곳이 없어서 일단 여기에 올려놓죠. 이전에 썼던 가상현실과 극적 요소 논의를 시각화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도면은 OpenOffice Draw로 제작했습니다.

묘사적 규칙: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은 서사 내에 존재합니다. 이야기의 구조나 진행과 같은 서사적 요소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판정을 통해 전체 서사 내의 일부 사건을 확정합니다. 보통 전투규칙이 제일 정교하고 양도 많지만, 사회적이거나 정신적인 사건 역시 판정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요소를 되도록 정교하게 규정하려고 할 수록 규칙이 복잡해집니다. 겁스, D&D 3.5 등. 7번째 바다 (7th Sea)나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처럼 기본적으로 묘사적인 규칙에 서사적 요소를 추가한 절충형도 있습니다.

서사적 규칙: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사가 곧 게임입니다.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는 서사가 끝나는 조건이나 결말의 향방도 규칙으로 결정합니다. 규칙으로 다루는 요소도 대개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호감도나 타락 등 극적인 것입니다. 서사를 규칙의 논리로 완전히 규정할 수는 없는 만큼 규칙은 보통 간결하고 해석의 폭이 큽니다. 결국 서사를 만들어가는 작용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에 구조를 부여하는 것이 규칙의 역할입니다. 폴라리스 (Polaris), 달을 쏘다 (Shooting the Moon),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등.
2010/07/15 11:13 2010/07/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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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행동 중에는 의도적으로 하는 것도 많지만, 무의식적으로나 습관적으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원하지 않을 때도 말이죠. 때로는 행동이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를 내기도 합니다. 친구나 선후배로만 생각했던 상대에게 고백을 받는다든지, 인상이 무서워서 상대가 쉽게 겁을 먹는다든지, 좀 심각한 예로는 아무 생각 없이 물건을 훔치는 도벽이 있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겠지요.

위와 같은 상황을 표현하는 한 방법으로는 무의식 혹은 강제 판정이 있습니다. 위의 예를 순서대로 판정 규칙으로 설명하면 섹스어필 성공, 위협 판정 성공, 절도 성공 등이겠지요. 특히 그 인물의 특징을 표현하는 장단점이나 면모, 예를 들어 아름다운 외모, 도화살, 무서운 인상, 습관적 도벽 등과 연계해서 이들 장단점이나 면모를 발동할 때 판정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겁스에도 해당 규칙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제가 아는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인물의 면모에 나타난 특징, 배경, 장단점 등을 표현할 만한 상황에 직면합니다. '내가 관심 없는 상대에게만 인기가 있다' 면모가 있는 인물이 동아리방에 선배와 같이 있다든지, '험상궂은 인상' 면모가 있는 인물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다거가, '자신도 모르게 물건을 슬쩍한다'는 도벽 면모가 있는 인물이 백화점 진열대를 지난다든가 하는 것이 그 예이겠지요.

이런 상황이 되면 참가자나 진행자가 면모 강제 발동을 제안합니다. 강제 발동이란 면모를 인물에게 곤란하거나 불리한 (그리고 보는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방향으로 발동하는 것으로서, 면모를 강제발동하면 해당 참가자는 극점수를 1점 받습니다. 강제발동을 피하려면 극점수를 진행자에게 1점 내지요. 여기서는 선배가 반해버린다거나, 말을 건 상대가 겁을 먹고 피한다거나, 진열대에서 물건을 슬쩍하는 방향으로 강제 발동을 제안하고 극점수를 참가자가 지급받으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강제발동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강제 판정을 합니다. 판정의 결과가 생각과 다른다든지 (동아리 활동에 대해 선배를 설득하려고 친화력 판정을 했는데 엉뚱하게 선배를 반하게 하는 친화력 판정으로 둔갑), 사용하려던 것과 다른 기능을 자신도 모르게 사용한다든지 (친화력 판정을 하려고 했는데 위협을 굴렸다!), 전혀 판정을 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강제발동의 결과로 하게 된다든지 (진열대를 무심히 지나다가 손놀림 기능으로 목걸이를 슬쩍) 하는 식으로 의도와는 다른 효과가 나겠지요.

그 외에 생각할 수 있는 예로는 습관적 거짓말 (기만 판정), 상습적 폭력 (주먹질 판정), 관심을 끊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 (지각력 혹은 수사), 상습적 도박 (도박 판정),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명령하는 습관 (지도력) 등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판정까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될까?') 판정 없이 강제발동만으로 충분하겠지요.

이와 같이 판정 규칙은 의도적으로 하려는 행동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 혹은 내는 결과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인물의 장단점, 배경과 같은 특징과 연계해서 사용하면 판정과 그 결과가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지지 않을까 싶군요.
2009/05/31 16:15 2009/05/3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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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RPG는 꽤나 노력이 드는 취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시작만 하려고 해도 최소한 규칙을 익히고 인물을 만들어야 하고, 일단 시작하면 실제로 플레이에 나가고 참가 혹은 진행 (특히 진행)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말이지요. 물론 잘 되면 그만큼 돌아오는 것도 많지만, 좋은 결과를 내려면 추가로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노력도 듭니다.

RPG가 소수 취미인 것도 이전에 종종 지적이 있었듯 이러한 비용 투자가 작용하겠지요. 그런 시간과 노력 비용을 정당화할 만큼 결과물의 효용을 높게 느끼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이니까요.

느끼는 결과물의 효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RPG와 다른 놀이의 상대적 효율성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전투의 게임적 재미가 가장 크다면 그쪽은 대개 컴퓨터 (콘솔 포함) 게임이 더 효율적입니다. 이것저것 계산할 것 없이 컴퓨터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처리해 주고, 점점 휘황해지는 그래픽과 음악도 있으니까요.

단순히 친구끼리 같이 웃고 떠드는 재미가 가장 크다면 이 목적에도 훨씬 효율적인 활동은 많이 있습니다. 수다를 떨고 논다든지, 보드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한다든지. 역시 노력은 덜 들면서 사교적 즐거움이라는 효용은 제공하지요. 보드게임과 카드게임은 사교의 즐거움과 함께 머리를 쓰는 재미도 제공하고요.

잘 만든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 RPG에서 느끼는 최대의 재미라고 한다면 이 분야에서도 RPG는 반드시 가장 효율적인 활동은 아닙니다. 일단 비용 면에서는 위에 얘기한 다양한 노력이 들어가고, 또 효용 면에서도 RPG인은 대개 전문 작가가 아닌 만큼 책, 컴퓨터 게임, 영화만큼 개연성이 있고 이야기가 재미있지는 않은 일이 많습니다.

개인적 창의성을 발산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RPG에서 느끼는 최고의 재미라고 한다면 소설을 쓰는 것이 RPG보다 효율적이겠지요. 규칙을 익히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조율하고,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에 플레이를 하는 노력이 들지 않으니까요.

결국 위의 재미 중 어느 한 가지, 혹은 한두 가지만에 효용을 느끼는 사람은 RPG라는 활동이 비효율적이라고 느끼고 RPG에서 빠져나가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RPG의 비용이 효용에 비해 너무 크다고 느끼지 않고 RPG를 하는 인구는 어떤 효용을 찾는 것일까요? 즉, RPG라는 활동이 다른 활동에 비해 우위가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일까요?

그것은 아무래도 위에서 열거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인물을 통해 함께 만들어가면서 게임적 재미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겠지요. 노력이나 역량에 따라서는 상당히 수준이 있는 결과물도 낼 수 있을 테고요.

이 모든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가 따로 없기에 RPG는 그 외견적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효용을 모두 즐기려면 다른 놀이에 비해 노력이 들어가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작자가 이미 만들어놓은 시나리오나 그래픽은 컴퓨터 게임을 편하게 하지만 그만큼 제약 또한 되니까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재미를 한꺼번에 즐길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RPG는 소수 취미라는 생각도 듭니다. RPG가 제공할 수 있는 재미 중 어느 한두 가지만 즐기려면 다른 활동을 즐기는 게 더 효율적인 만큼, 굳이 이런 '비효율적인' 활동을 계속하는 것은 여러 가지 재미를 한꺼번에 즐기려는 소수뿐이겠지요.

그래서 RPG는 그 속성상 노력이 안 들기도, 그리고 그다지 대중적인 취미가 되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가장 종합적인 놀이라는 바로 그 강점 때문에.
2008/08/16 08:52 2008/08/16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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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사히라 2008/08/17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PG는 Unique하죠

  2. 무스카 2008/08/17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가지 덧붙이고 싶습니다. '전체는 그 부속물들의 합 이상이다' 던가요. 모든 게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대상을 단순한 구성물들의 합집합으로 보면 뭔가를 빠뜨리는 거라고 봅니다. 구성요소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특성 또한 고려해야겠지요.

    전 종합적이라서 RPG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RPG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느낌때문에 아직까지도 이 게임을 붙잡고 있습니다. WoW가 주는 전투적 재미때문에 WoW를 하기도 하지만, RPG에서의 전투는 또 사뭇 다릅니다. 그래선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서플리먼트를 파고, 사소한 내용 하나때문에 싸우고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 전 소설을 쓰고, 읽기도 즐기지만, 줄거리가 개연성이 없고 때로는 완전히 맛이 가 있을지라도, RPG를 할 때, 그리고 끝난 후 리플레이를 읽을 때는 재밌다고 느낍니다. 저와 플레이했던 사람들 또한 각자의 기호성에 조금씩 차이가 있었으나, RPG는 RPG대로 따로 좋아했습니다.

    요약하자면, RPG는 분명 종합적인 게임이고, 그에 따른 다양한 기호의 사람을 만족시켜줄 수 있으나, RPG 자체가 가지는 매력 또한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교향곡을 듣는 사람이 각각의 악기 소리 모두가 마음에 들어서 듣는 게 아니듯이, 이들 요소가 만들어내는 화음에 끌리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만 더 발전시키자면, 굳이 많은 취미를 즐기는 습성이 없더라도, 즉 저 중 하나나 두 개에 대해서만 기호성을 즐기는 사람도, 충분히 RPG에 매혹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본문 중에서 간접적이나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지기는 했으나, 할 일도 없고(군인입니다), 언젠가는 로키님과 생각을 나눠보고도 싶어서 이렇게 좋은 글에 첨언해봅니다. 얹짢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 로키 2008/08/18 0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짢다뇨..+_+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그 전체가 이루어내는 상승작용도 포함하니까요, 무스카님처럼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요. 다만, 그 전체적 어우러짐에서 나오는 더 큰 재미 역시 효용과 비용 계산 (무의식적이라 해도)의 대상이기는 하겠죠. 그래서 RPG의 그 종합적 재미라는 효용을 꽤 크게 느끼지 않으면 RPG는 여전히 비효율적인 활동이고, 그래서 RPG는 소수 취미가 아닌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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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길드타운 플레이를 한 후 플레이 내 전개에 대한 합의는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깡패들과 전투에서 져서 회장님을 만나러 가자는 식으로 의논을 한 후 약간 빡빡한 전투가 있었는데, 전투의 결과까지 정해놓고 하는 건 참가자의 선택을 의미없게 해서 좋지 않은 것 같다는 아사히라군의 이의가 있었죠.

그에 대한 논의 끝에 제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참가자가 주인공(PC)을 통해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범위는 합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RP를 통해 하는 게 괜찮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에 글을 썼던 서술권 문제와도 일맥상통합니다. 명시적 합의는 서술권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대해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이며, 전통적 RPG 규칙에서 참가자의 서술권 범위는 주인공의 행동에 그치니까요.

예를 들어 불량배들이 골목에서 몰려나와 주인공 일행을 둘러싼다는 것은 겁스에서 참가자가 자기 직접 서술권 범위 내에서 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이 아닌 조연 (NPC)의 행동이나 위치 등은 진행자의 서술권 내에 있으니까요. 따라서, 불량배가 습격하는 장면 같은 것은 제안, 논의 등 명시적 합의 과정이 없이 참가자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므로 합의로 정하기에 적합합니다. 참가자의 로망을 살릴 만한 상황을 만들기에도 진행자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좋고요.

반면, 불량배들과 전투를 시작한 후 그 전투의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참가자가 규칙에 따라 주인공을 움직여 결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주인공의 행동, 전술적 선택 등에 따라 전투 결과는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 내에서는 합의의 중요성이 덜하고,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서는 오히려 재미를 해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를 정하지 않고 RP와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편이 긴장감과 의외성도 더 있을 테고요.

초기 상황까지만 같이 생각하고 그 이후는 RP로 하는 것은 여러 취향의 RPG인이 함께 어울리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이전에 역할극에 대한 글에서 다루었듯 전개를 정해놓고 그에 맞춰서 RP하는 것을 선호하는 취향도 있고, 아사히라군처럼 진행자가 무엇을 내놓을지 모르고 시작해서 서로 맞부딪치며 나오는 우연과 의외성을 좋아하는 취향도 있지요. 전자쪽 취향일 수록 합의가 중요해지고, 후자에 가까울 수록 합의 없이 RP로 말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면서도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서술권 분배 없는 규칙에서 극적 욕구를 조화하면서도 참가자의 선택과 상황의 의외성을 살리는 하나의 타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8/08/11 05:26 2008/08/11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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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8/11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도 합의는 초기 설정까지만 생각하고 그 다음은 주사위운과 RP와 분위기에 맞춰 가야 한다고 믿고 있어. 미리 만들어진 결과에 맞춰 나가는 건 분명히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RPG에 있어서 '규칙'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어져버린다고 생각돼. 룰의 존재의의 중 하나가 "불확실한 상황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거기에서 불확실성이라는 걸 제거하면 룰에 의거한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지 않는가... 하는 게 내 주장.

    • 로키 2008/08/13 2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 차라리 결과를 합의한 후 규칙을 배제하고 역할극처럼 한다면 몰라도, 결과를 합의했는데도 규칙을 사용하는 건 좀 눈가리고 아웅인 듯. 결과는 잠정적이고 그렇게 안 돼도 상관없다고 합의하고 규칙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길드타운 플레이 때 우리가 그랬듯 그 결과에서 벗어나는 데는 부담이 있을 것 같아.

  2. Asdee 2008/08/12 16: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통적인 마스터/플레이어 구도에서는, "참가자가 주인공을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가 늘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는게 문제인 것 같아요.

    마스터는 얼마든지 "도저히 이기지 못할 승부"나 "쉽게 이길 승부"를 꾸밀 수 있으니까요. 사실 전투의 결과는.. 플레이어가 어떻게 전술을 쓰느냐 보다, 얼마만큼의 적이 나오느냐에 좌우되는게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극점수 같은 규칙이 없다면, 플레이어의 전술로 승패를 가름하는 건 쉽지 않은 듯도... 아마 승부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만 의미가 있겠죠.

    이렇게 보면, 아예 "전투를 하느냐 마느냐"라는 선택이 차라리 의미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그 선택 역시도 상황에 많이 좌우되고요. 도저히 저항불가능한 상황을 내놓아버릴 수도 있으니...

    여하튼, 참가자의 의미있는 선택이 보장되어야 한다는게 대전제일 듯 싶네요. 마스터의 독단을 막기 위한 '합의'라고 해도, 그 '합의' 때문에 플레이 내에서 선택이 무의미해지면 곤란하니까요.

    • 로키 2008/08/13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칙적으로 참가자가 영향을 줄 수 있는 서술권 범위인데 진행자의 무리한 진행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면 (대체로 진행자가 이리저리 길을 막는 게 보이는 정도) 그것은 참가자 선택의 의미라는, 말씀하신 대전제를 침해한 것이겠지요. 그건 더 이상 규칙이나 플레이 내 합의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진행자가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게 진행자 규율 내지는 서술 분산형 규칙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플레이에 대한 기대와 욕구의 조화 문제로 넘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합의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합의가 반드시 진짜 합의는 아니라는 점 같아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몰라서, 혹은 반대하기 미안해서 남들 의견에 그냥 따라가는 일도 많고요. 그걸 좀 더 끌어내는 방식으로 서술권 규율 규칙을 선호하기는 합니다만, 근본적으로는 역시 욕구와 기대 문제겠지요. 그게 RPG의 진짜 어려움인 것 같기도 하고요.

  3. 불타는도넛 2008/08/12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차피 결과가 지는것으로로 합의되어 있었다면 전투행위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싸웠고 졌습니다. 안타깝네요, 데헷.' 하는 식으로 서술하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실제로 저 그대로의 서술을 권장하는건 아닙니다.)

  4. Asdee 2008/08/13 1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각해보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도 어떤 식으로 싸움이 진행되어 어떻게 패배에 이르는가...를 그려내기 위해 진행해볼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그 과정에서 취하는 행동과 그로 말미암은 결과가 반영된다면 더욱 의미있겠죠.

  5. 카나사 2008/08/21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흥미로운 주제가 나와서 갑자기 튀어나와 보았습니다; 현재 저희 팀도 합의형 플레이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저희 팀에서는 내용을 진행하는 씬과 전투씬이 상당히 나뉘어져 있다는 느낌입니다. 각 씬별로 주역이 되는 캐릭터가 있고 그 캐릭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씬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 전투는 거의 개입되지 않아요. 내용적으로 전투가 들어간다고 해도 플레이어의 서술연출로 지나가는 경우도 꽤 있고요. 대신 다른 씬들이 도는 것 처럼 전투를 위한 씬이 할당되어 있다는 느낌이지요. 따라서 합의는 위의 장면형 씬들에만 적용되고 전투에는 거의 적용되지 않더군요. 이건 저희 팀의 스타일이라기 보다도 일본쪽의 룰들이 씬별로 내용을 진행할 것을 보조해 주고 있는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만. 도쿄노바 같은 경우는 씬 플레이어가 지정되면 그 플레이어가 어떤 씬을 연출할것인지를 정하기도 하고요...합의는 룰외의 영역에서 진행된다고 생각했기 떄문에 의외로 룰의 영향을 심하게 받아서 놀란 부분이기도 합니다.(쓰다 보니 본제와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 듯 싶군요; 죄송;)

    • 로키 2008/08/22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반갑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규칙의 영향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연출이나 서술 같은 부분에 닿아 있는 규칙이라면 더욱 그럴 것 같고요. 합의하고 규칙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는 더 생각해 보고 싶은 흥미로운 문제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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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건 딱히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만,
혼자 있을 때 하고 끝나면 손을 씻도록.
-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Heinlein)

RPG를 하면서 느끼는 재미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큰 것은 개별적 로망이랄까, 환상이랄까, 마음을 끌어당기는 어떤 원형이나 유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특히 참가 (플레이)를 할 때 만드는 주인공 (PC)은 이 로망의 지배를 많이 받습니다. 전담해서 계속 맡는 이상 그 로망에서 벗어나면 제대로 표현하기도 어렵고요.

그런 의미에서 위 하인라인의 인용구는 RPG에도 적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집필과 달리 독자적인 활동도 아니고 사회적인 놀이인 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꿈과 백일몽을 맡겨야 한다는 점에서 더 용기와 신뢰가 필요하지 않나 해요. RPG 팀이 종종 폐쇄적인 성격을 띠는 것도, 또 플레이가 잘 안 되면 그걸로 끝나지 않고 감정이 상하기 쉬운 것도 그만큼 깊은 신뢰를 전제하고 자신의 많은 것을 드러내서일지 모릅니다.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펼치었으니
내 꿈을 딛은 그대, 조심해서 딛어주오.
- W.B. 예이츠 (William Butler Yeats)

로망이 재미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RPG를 더 재밌게 하려면 자신의, 그리고 타인의 로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같이 플레이하고 얘기 나누다 보면 감이 올 수 있고, 또 플레이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또 어떤 것은 싫은지 파악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규칙 역시 자유로운 개별적 표현과 전체적 조화를 지원한다면 더욱 도움이 되겠지요.

개개인의 극적 욕구와 전체적인 조화와 맥락은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습니다. 플레이의 전체적인 모습이 놀이의 결과물이라면 개별 참여자의 극적 욕구는 그 동력이니까요.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이어주는 것이 참여자 사이의 의사소통, 서로 상대의 꿈을 딛고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겠지요. 각자의 로망, 그리고 모두의 놀이를 위해.

보라, 우리는 꿈의 재료일지니
작은 삶은 잠과 함께 끝나는도다.
- 셰익스피어의 '폭풍' 4막 1장 中
2008/04/29 04:54 2008/04/29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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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orches 2008/04/29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옳은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 최근 들어서 시트를 작성하는.. 하다못해 간략하게라도 적어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적어놓은 것을 떠나서 '플레이어의 성향은 어떠한가, 캐릭터를 만드는 데 영향을 준 요소는 무엇인가' 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같거든요. (덧붙여서, 제 캐릭들은 천사형이 아닙니둥 ;ㅅ;)

    • 로키 2008/04/30 0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대로 진행자가 그런 로망 파악을 하게 도와주는 게 중요하죠. (알려줘도 신경 안 쓰는 진행자는 하루빨리 버려야(..)) 자신도 자기 로망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면에서 컨셉이라든지, 부각하고 싶은 부분이라든지 적어두면 좋고요.

      그리고 천사형이 아니긴 뭘 아녜요! 과학이든 초자연이든 치유의 힘, 상황의 피해자 (타인의 부당한 비난, 오해 등), 동물 친화력, 자기희생 모티프 좋아하시는 거 다 아는데. 오체스님 순정적 취향은 이미 파악했습니다! (처억)

  2. lhovamp 2008/04/30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로망은 키보다 더 큰 칼을 휘두르는 무인인 것입니다! (응?) 구체적으로는 담요맨 퇴치의 용사라던가 (...)

    확실히 "플레이가 잘 안되면 그걸로 끝나지 않고 감정이 상하기 쉽다" 라는 부분이 공감이 되네요. 그런 점에서 테스트 플레이를 해 보고 투표를 한다던가 하는 방식은 좋을 것 같고, 또 제 경우 제가 주도적으로 팀을 짤 때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에 한정해서 모으고 있지요.

    위의 "취향"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로키님은 왠지 어느 정도 관록이 있는 인물로서, 속이 깊고,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는 능구렁이형 인물을 좋아하시는 것 같이 보입니다.

    • 로키 2008/04/30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뱀프님은 같이 많이 플레이 안해봐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적인 책사형 인물이 로망이 아니신가 해요. 그리고 컨셉상으로는 종종 동양적인 분위기나 배경을 살리는 쪽 같고요. 뱀프님은 머리가 나쁜 캐릭터를 잡기가 좀 어려우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능구렁이형 인물은 특히 진행자로서 조연으로 돌릴 때 꽤 하지만, 제 진짜 노ㅁ.. 아니 로망은 자기 감정과 욕구를 주체 못하고 그 결과를 주변과 세계에 강렬하게 표출하는 인물 같아요. 강한 내적 동기로 움직이기에 선이나 악으로 쉽게 나눌 수 없고, 장점과 단점 모두 극명한... 그리고 인간적 허점이 많은 만큼 실수도 저지르고 잘못도 하지만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은 아주 인간적인 인물을 좋아하죠.

      그 기본 줄기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표현은 비교적 다양해서, 도쿄의 달 때 우메하처럼 내면의 고민과 열정을 감춘 능구렁이형 인물도 있고,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는 불량아도 있고, 살짝 맛이 간 외관 아래 나름 충실한 정의관과 진지한 고민을 감춘 양아치 무당(..)도 있었죠. 공통점이라면 말씀대로 표현하는 것보다 속사정이 많고, 또 하나같이 대가 세다는 점 정도인 듯하네요.

  3. Wishsong 2008/04/30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쁜 악당들을 물고문하고, 전기고문하고, 장작불에 집어넣는 정의로운 히어로가 되고 싶어요!
    (반 정도는 사실!)

    • 로키 2008/05/0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승한님은 전에 얘기한 것처럼 어떤 이상에 매진한 나머지 도덕적으로 잿빛 지대에 들어서는 인물이 로망인 것 같더군요. 말하자면 인간성과 일상성을 넘어서는 초월성의 표현? 그런 인물에게는 '별로 악하지 않고 입장이 다를 뿐인 적'이라든지 '충성의 대상에게 드러나는 어두운 일면' 같은 걸 던져줘서 갈등을 유발하면 재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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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를 하다 보면 종종 예상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이 재미이자 때로는 스트레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외성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전에 역할극에 대한 글에 썼던 것을 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외성의 첫 번째 원인으로는 정보 차단이 있습니다. 진행자가 다음에 무슨 적이나 상황을 내보낼지, 참가자가 진행자의 설정에 무슨 반응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겠지요. 같이 노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태에서 서로 서술권의 영역이 다른 점이 여럿이서 하는 놀이에서 의외성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상이한 극적 욕구가 있습니다. 위의 정보 차단과도 관련이 있는데, 사람이 원하는 것이 다 같지 않은 만큼 각자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긴장이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를 냅니다. 폴라리스 (Polaris)의 교섭 규칙처럼 아예 이것을 판정 규칙으로 활용하는 예도 볼 수 있고, 규칙상 위치는 없이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균형과 긴장이 있을 때 의외성이 가장 커지겠지요.

세 번째는 인물과 상황의 극적 상호작용입니다. 글을 쓸 때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인물과 상황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A와 맺어주려고 했는데 자꾸 B하고 가까워진다든지, 치고받고 싸우게 하려고 했는데 친구가 된다든지. 이렇듯 인물이 독자적 생명력을 띠기도 한다는 점이 보드게임과 다른 RPG의 재미이겠지요. 심지어는 사전 논의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극적 욕구를 서로 조화했을 때도 실제 상호작용의 결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판정의 의외성입니다. 주사위나 카드 등 무작위의 요소가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데, 계속 펌블이 떠서 형편없는 적에게 주인공 일행이 몰살당한다든지 비교적 강한 적을 한 방의 크리로 단칼척살해버린다든지 하는 때가 가장 의외이겠죠. 무작위수가 아니라 하더라도 판정 과정 자체에서 정보 차단, 상이한 극적 욕구, 극적 상호작용 등 다른 의외성의 요소를 판정 규칙이 종종 끌어냅니다.

이렇게 의외성의 요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급했듯 의외성은 재미를 증진할 수도 있고, 재미를 저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외성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당한 수위로 조정할 수 있는가, 어느 요소를 살리고 어느 요소를 제한하고 싶은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2008/04/08 02:53 2008/04/08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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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8/04/08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음 왠지 언더월드의 국정원 국장님 여성화 사건이 생각나는군요 [..]

    • 로키 2008/04/09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의외성이라기보다는 오해..(먼산) 하긴 그것도 의외성의 한 요소일 수는 있겠네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니까..

  2. orches 2008/04/08 16: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님이 포스팅하신 것처럼 플레이를 겪다보면 (의도적이던 의도치않던)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불쑥 나오는 경우가 많은 듯 해요.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물날 때는, 주사위의 자비로운 의지가 불러오는.. ;ㅅ;

    추신. 언더월드.. 전 국장님이 여성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노시아 님께서 '남자잖아요' 라고 말씀해주실 때 '나 혼자 여성이라고 생각한 거야아!!' 하고 충격받았었습니둥 ;ㅍ;

    • 로키 2008/04/09 0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외성은 결국 무조건 다다익선은 아니고, 조정하고 이용하는 게 중요하겠죠. 아저씨 말투를 쓰는 국장이 대체 왜 여성이라고 생각하셨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

  3. lhovamp 2008/04/08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예전에 승한님과 무한경비대 플레이를 할 때, 4번의 경우가 특히 두드러졌던 기억이 납니다. 제 캐릭터는, 첫 화에선 그야말로 "조무래기" 에게 칼을 맞고 쓰러졌고, 두번째 화에선 해당 화의 보스를 한 턴에 무력화시켰지요. (...)

    이래서 다이스신을 믿어야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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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규칙 없는 RP (소위 역할극, 역극, 혹은 소꿉놀이)를 함께 하는 오체스님과 얼마 전에 한 얘기인데, 오체스님은 개인적으로 규칙 없는 놀이가 가장 좋다고 하시더군요. (주사위만 나오면 불안해하시는 모습에 짐작은 했습니다만..(..)) 반면 저는 규칙이 있는 편을 선호하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역할극이 RPG와 다른 점은 크게 다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역할극은 놀이와 인간관계 사이에 분리가 없습니다. 진행 방향, 예를 들어 주인공이 괴물에게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문제는 모두 명시적, 혹은 묵시적 합의로 결정하고, 결정을 내릴 객관적이고 외부적인 기준이 없으므로 결국은 놀이 속 인물의 문제가 아닌 그 놀이를 하는 사람의 의사소통이 됩니다.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이러한 의사결정을 인간관계와 분리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요.

물론 규칙이 있는 RPG에도 규칙 없이 합의로 결정하는 영역은 광범위합니다. 캠페인 설정이라든지, 인물 설정, 때에 따라서는 놀이의 진행 방향 등. 그러나 서로 진행 방향에 대해 의견이 다를 때, 혹은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아도 과정의 난이도나 따르는 대가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이를 해소할 기준은 있습니다. (그 기준이 어떤 성격이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규칙도 달라지겠지요.)

역할극에 그러한 기준이 없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은 보통 둘 중 하나입니다. 하나는 진행 방향에 대한 비생산적인 신경전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관계를 생각해 서로 조심하고 눈치보면서 자신의 욕구와 극적 재미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배려가 나쁜 건 아니지만, 인간관계의 논리인 배려가 놀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면 어느쪽도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역할극도 감이 맞는 사람끼리 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어렵기는 합니다.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합의해야 하고, 플레이와 좋은 감정을 유지하려면 서로 더 조심해야 하니까요. 적어도 놀이와 인간관계 사이에 규칙이라는 기준의 방벽이 없는 만큼 마음껏 밀고 당길 여유는 훨씬 적어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의견이 강하고 성격이 괄괄한 편이라 역할극을 할 때는 더 조심하게 됩니다. 특히 상대가 순응적인 성격일 때면 자칫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 흘러갈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그런 성격인 만큼 상대 역시 강한 의견으로 반대해 오든, 아니면 규칙을 매개로 스스로 원하는 방향을 밀든 활발하게 반대하고 논의하고 부딪치는 편을 선호합니다.

반면 성격과 취향에 따라서는 그런 전투적(..)인 의사결정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화합을 더 중시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자기 의견을 존중해주고 감각이 잘 맞는 상대가 있다면 상대에게 떠밀리거나 플레이가 재미없을 우려는 많이 줄겠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상황, 그리고 놀이와 인간관계를 얼마나 분리하는 것이 본인에게 재밌느냐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 RPG에 비해 역할극은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습니다. 긴장감과 의외성의 원인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같이 플레이하는 다른 참여자의 생각과 결정을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 둘째는 참여자가 각자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긴장, 셋째는 인물과 상황의 상호 반응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의외성, 넷째는 주사위나 카드 등 규칙에서 나오는 우연의 요소입니다.

역할극에서는 의외성의 네 번째 요소인 규칙은 일단 배제하고 있고, 두 번째인 역동적 균형 역시 위에서 얘기한 조심성과 상호 배려 때문에 약해질 여지가 큽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의견 충돌에 휘말릴 가능성은 커지고, 해소할 객관적 기준이 없는 만큼 이러한 충돌은 기피의 대상이 되니까요.

의외성의 첫 번째 요소인 정보 차단은 경과를 미리 얘기하고 정하는 것이 많을 수록 약해질 텐데, 역할극에는 위에 얘기한 이유로 의견 충돌의 완충지대를 둘 동기가 있으므로 제 경험상으로는 미리 정해두는 게 꽤 많아지더라고요. 남는 것은 의외성의 세 번째 요소인 상호 반응 정도인데, 이것도 경과를 이미 정해둔 정도에 비례해 약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물론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다는 점 역시 취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장점일 수 있습니다. 긴장감과 의외성이 적다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안정적이고 안전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니까요. 플레이의 방향에 따라 인물이 죽거나 인간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거나, 원치 않는 극적 방향으로 흐르거나 하는 결과를 미리 차단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특히 놀이 속의 인물과 특정 극적 결과에 애착이 크면 클 수록 이러한 안정성은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이상과 같이 역할극과 RPG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개인적인 선호도야 있지만, 저에게 좋은 것이 다른 분에게도 좋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각자 원하는 게 다르니까요. 또한, 역할극을 하지 않는다 해도 놀이와 인간관계 분리의 정도라든지 의외성의 정도도 취향에 따라 조정할 수 있을 테고요. (다 규칙대로 하되, 참가자 동의 없이 주인공이 죽는 일은 없다든지.) 그런 점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역할극은 흥미로운 소재인 것 같습니다.
2008/04/01 14:20 2008/04/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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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4/01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님, 큰일 났습니다.

    자세한 건 제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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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Story Games 게시판에서 보았던 개념인데, 이번에 승한님의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번역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나서 제가 이해한 대로 적어봅니다.

자료 중심 배경은 바로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같은 것으로, 대개의 전통적 RPG 규칙에 사용하는 설정은 자료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세계의 모습은 다소간에 이미 잡혀 있으며, 구체적인 자료와 지명, 인물 설정 등이 추가 설정과 전개의 실마리가 됩니다. 자료 중심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꽤 많은 설정 자료를 (특히 진행자가) 읽고 익히는 것이 보통입니다.

분위기 중심 배경은 반면 자료가 비교적 적습니다. 책에 나오는 자료만으로는 완전한 캠페인 배경을 채워넣을 수 없을 정도이지요. 대신 창작과 즉흥의 기반이 될 만한 함의와 암시를 통해 설정에 대한 이해와 기대치를 조율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많은 인디 RPG에서 볼 수 있으며, 설정 분량 자체가 적고 구체적인 지명과 집단보다는 광범위의 상황 설정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설정란 앞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습니다. (번역은 로키가 대충대충)

다른 RPG를 많이 진행해 봤다면 진행자이든, 제작자이든 한 사람의 상상에 맞추어 일관성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는 데 익숙할 것입니다. 개들은 그런 식으로 플레이하게 만든 게임이 아닙니다. 개들을 플레이할 때면 각 참가자의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모아서 공통 현실로 만듦으로써 일관된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이게 어떻게 보면 분위기 중심 설정의 기본 철학입니다. 이 세계는 대충 이런 곳이니 구체적인 부분은 스스로 채워가라. 거기서부터 생기는 해석 차이는 문제나 병리가 아니며, 오히려 공동 상상 공간을 짓는 재료라고 말이죠. 인디 RPG에 분위기 중심 설정이 많이 보이는 건 한편으로는 예산과 시간이 별로 없는 개인 제작자라는 배경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들 규칙 자체의 즉흥적이고 협동적인 성격도 작용하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 취향으로는 자료 분량은 적은 편을 선호하기는 합니다. 구체적인 자료가 많으면 일단 읽고 소화하는 시간이 들고, 저는 기억력이 별로인 데다 준비 많이 하는 걸 싫어하고 스타일에 즉흥성이 강해서 좀 하다 보면 어느새 원래 설정과는 딴세상이 돼버리거든요.

그래서 자료가 많은 설정이라도 즉흥의 발판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필요한데, 저는 또 자료가 많으면 얽매이는지라 대범하게 무시해버리는 걸 또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자..잠깐. 이 집단이 어디로 도망쳤었지? 지금 여기 나타나면 안 되는 거 아냐?!" (뒤적뒤적)) 그런 이유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즉흥을 뒷받침하는 게 목적인 분위기 중심 설정이 마음이 편하더군요.

제 취향 얘기에서 벗어나서 남의 취향 얘기도 하자면(?) 이런 쪽의 선호도는 또 놀이를 하는 목적, 즉 놀이를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부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량의 구체적인 자료를 제일 선호할 듯한 취향은 아무래도 모사주의 (Simulationism) 쪽? 가상 세계의 탐험에서 재미를 느낀다면 세계의 자세한 내적 논리와 일관성이라는 기반이 필요할 테니까요.

물론 자료 중심 배경과 분위기 중심 배경은 본질적으로 다르거나 서로 배척하는 개념은 아닙니다. 접근 차이는 있지만 자료 중심 배경이 제공하는 자료는 이미지를 형성하고 창작을 자극하는 역할을 하며, 분위기 중심 배경도 창작과 즉흥의 방향을 제공하고 이미지를 만들 정도의 자료는 제공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 설정이 어느 분류에 속하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설정 자료를 제공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이겠죠. 목적이 플레이를 손쉽게 시작하게 돕는 것이든, 치밀한 배경을 구성해 그 세계를 탐색하는 것이든, 창작의 기반과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든, 서로 기대치와 이미지를 조율하는 것이든 그 목적에 이 정보가 꼭 필요한지 생각해가면서 하면 더욱 효과적인 설정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2008/03/04 12:51 2008/03/04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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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3/04 19: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관대해서 자료 중심도 분위기 중심도 모두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어서 트랜스휴먼 스페이스 마스터링 하세요!

  2. 시수리 2008/03/04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가튼렐름이나 스타워즈 같이 자료가 방대한 경우는 오히려
    자료에 끼어서 손대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더군요.

    저도 자료에 묶여 있는 사람중에 하나인지라,
    스타워즈 에피3와 에피4 사이를 제다이로 플레이 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 같은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 밖에는 안 들던데요 :P

    • 로키 2008/03/05 0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정 자료를 완전히 소화하고 준비를 제대로 하는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방대한 자료에 얽매이는 대신 자료를 발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료를 완전히 알고 활용하면 자유도와 치밀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어가는 노력에 비해 효용이 그렇게 큰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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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뱀프님과 엔님과 한 얘기입니다만, 제게 RPG의 재미란 근본적으로 '나의 로망이 남에게 재해석받고 남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멋진 것, 혼자 했던 몽상을 나만의 백일몽에 그치지 않고 남에게 보이고, 남이 거기에 새로운 의미와 색채를 부여해 '우리의' 공동 상상 공간을 만드는 과정. 자신의 상상을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표현의 욕구와 타인의 상상을 음미하고 싶은 감상의 욕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 되어 순환하는 그 계속적인 의사소통에서 저는 RPG의 재미를 느낍니다.

저에게 RPG 재미는 위와 같이 극적 욕구와 소통이 초점인 만큼 좋아하는 RPG 규칙도 모두의 로망을 끌어내고, 극적 발언권을 보장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함께 끌어가는 구조에 중점을 둔 규칙들입니다. 전투의 전술이나 가상공간의 물리 규칙은 대체로 훨씬 뒷전이지요. 전술이나 물리 규칙의 일관성 쪽은 CRPG에서 훨씬 잘 되어 있는데 RPG에서는 별로 따지고 싶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는 진행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진행을 할 때 저는 주인공 (PC) 배경과 관련 인물을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배경 설명에 나와 있든, 해석하고 유추한 것이든, 참가자와 토의한 것이든 남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인물과 배경에서 새로운 사연과 이야기를 발견해 제 것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재미거든요. (이 할아버지는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이 넘칠 것 같아. 저런, 이 녀석은 헤어진 여자에 대해 무서운 고뇌에 시달리는 불쌍한 인생이었군. 이쪽은 꾸밈없이 혈기왕성한 젊음의 표상?)

다른 모든 RPG인에게도 RPG를 하는 동기, 자신이 생각하는 RPG의 재미가 한 가지이든 여러 가지이든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 재미가 어떤 것인지, 그 재미에 자신의 플레이 방식이나 사용하는 규칙이 어떻게 도움되는지 하는 생각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론의 실마리이겠지요.
2007/12/14 09:51 2007/12/1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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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사히라 2007/12/14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주사위를 굴리기 전의 두근두근함!
    실패의 존재로 더 빛을 발하는 성공의 짜릿함!
    이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캐릭터들로 이끌어나가는 게임!

    이 정도?

    • 로키 2007/12/15 0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군! 확실히 서로 원하는 게 다르네. 팀의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온라인 환경에서는 특히 이렇게 플레이에서 원하는 걸 서로 비교해서 팀원 선택에 참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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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RPG 규칙을 접하다 보니 RPG 규칙에는 가상현실을 다루는 것과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승민님의 글 묘사 중심룰과 서사 중심룰과 같은 맥락이군요, 다 써놓고 나니..(..) 그 논지를 좀 더 상세하게 제 나름 발전시켰다고 생각해 주세요 (?).

가상현실 중심 규칙은 가상공간의 물리법칙과 논리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예를 들어 힘센 사람이 무거운 바위를 성공적으로 들어올릴 확률은 힘이 약한 사람이 같은 일을 해낼 확률보다 높다든지 하는 식이죠. 가상현실에서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과 성공할 만한 것은 참여자의 공감보다는 그 물리법칙을 표현하는 규칙으로 판단합니다. 장기 캠페인을 받쳐줄 만한 규칙의 분량과 범위에 대한 논의라든지, 다양한 상황을 표현하려면 규칙은 많은 게 좋다는 주장의 전제에는 규칙의 가상현실 표현 기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중심 규칙은 D&D, 겁스 (GURPS), 7번째 바다 (7th Sea), WoD (World of Darkness) 등 제가 아는 모든 상용 규칙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퍼지 (FUDGE), 세기의 혼 (Spirit of the Century), 미딕 (Mythic Roleplaying), 과거의 그늘 (The Shadow of Yesterday) 등 많은 인디 RPG도 마찬가지죠. 판정은 기본적으로 실력과 상황 수정치에 따른 확률을 이용하는 굴림이며, 낙상이나 익사, 폭발 등 다양한 상황을 처리하는 규칙이 있기도 합니다.

반면 위에서 예를 든 규칙책에도 가상현실의 논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규칙도 있습니다. D20 계열이나 변형에서 볼 수 있는 액션 포인트라든지 겁스에서 추가 규칙으로 할 수 있는 CP 소모, 7번째 바다의 극주사위나 배경 규칙, WoD의 의지력 규칙, 미딕의 무작위 사건 생성 규칙, 과거의 그늘에서 특정 조건에 맞는 RP를 하면 성장하는 열쇠 규칙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 규칙은 가상현실 속에 있는 등장인물의 실력이나 의지보다는 참여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하며, 가상현실 법칙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가상현실의 법칙에 저항하거나 서술을 조작합니다. 즉,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룬다는 면에서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규칙과는 기능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상현실 법칙이 아닌 플레이의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규칙을 판정의 근간으로 삼는 규칙도 더러 있습니다.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의 도전-응대식 판정, 폴라리스 (Polaris)의 서술 교섭,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의 반박 경매 규칙,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의 장면 판정 등이 그 예이지요. 서술권의 대부분은 전통적으로 진행자의 역할인 만큼 참가자에게 서술권을 많이 주는 규칙일 수록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분배도 분산적 성격을 보입니다.

이들 규칙책에서는 물리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는 참여자 간 공감으로 해결하며, 정말로 판정이 필요한 때는 극적 방향에 대해 의견이 갈릴 때입니다. (참가자: '경비를 다 죽여요!' 진행자: '경비는 다 죽습니다!' 참가자: '마왕도 죽여요!' 진행자: '음... 그건 판정을 해볼까요?') 포도원의 개들에서는 아무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달을 쏘아서 적의 머리에 떨어뜨려요' 같은 선언도 통과합니다. 수정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로 아무도 반박하지 않는다면 '장군은 한 달음에 산을 넘어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였다' 같은 글도 역사적 진실이 됩니다. (신화적인 분위기라면 오히려 환영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규칙의 가상현실 표현 기능을 중시한다면 포도원의 개들이나 안방극장 대모험 같은 규칙은 장기 캠페인을 하기에는 빈약하다거나, 상황 표현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속의 법칙을 표현하는 데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니까요. 반면 저는 가상현실 표현보다는 극적 욕구 연출이 훨씬 우선이라 가상현실 표현 때문에 극적 욕구가 좌절되는 것은 잘 참지 못해서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규칙 쪽을 선호합니다. 결국 어느 쪽이 우선이느냐, 혹은 극적 욕구를 어떤 방식으로 충족하는 것을 선호하느냐 하는 문제겠죠.

참고로 극적 욕구나 연출 얘기는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 마음대로 가야 성이 찬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나리오 중심 진행은 거의 가상현실 중심 규칙의 특권에 가깝습니다. 극적 요소를 직접 조작하는 규칙은 시나리오에 나올 만한 요소들을 바로 움직일 수 있으므로 누구 한 사람이 앞으로 이야기를 예상하거나 준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따라서 이러한 규칙을 할 때는 다른 참여자와 의견이 충돌하고 그 충돌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극적 의외성과 역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준비하는 부담이 적거나 없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매력적이고요.

대비해 놓기는 했지만 물론 가상현실 표현과 극적 요소의 조작은 서로 조화할 수 없는 개념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보완하죠. 예를 들어, 제가 얘기한 극적 욕구와 가상현실의 충돌 부분을 많은 가상현실 중심 규칙에서는 극적 요소를 직접 다루는 규칙으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번 판정은 극적 욕구상 꼭 성공했으면 좋겠는데 가상현실 법칙상 확률이 낮아서 극점수를 소모한다든지요. 그런 규칙은 자원 관리 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전술적 재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의 효용은 무엇일까요? 심심해서 제가 보기에는 어떤 규칙의 목적이 무엇이고 그 목적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규칙이 RPG의 재미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기능적으로 분석하는 기준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상현실 표현이 자신의 재미에 얼마나 중요한지, 극적 요소를 직접 조작하는 것이 몰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등. 이러한 판단은 전에 적었듯 규칙의 선택, 수정, 제작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07/11/24 04:01 2007/11/24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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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생수 2007/11/24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때의 그 이야기군요.

    말씀하신 맥락에서 덧붙이자면... 가상현실표현을 중심으로 한 룰에서 극적 욕구를 다룰 때의 그 '논의 과정을 개념화'하는 것이 전에 한참 이야기하던 '합의에 의한 플레이' 이야기로 연결되는 거겠군요. 상용룰의 대세(?)인 가상현실 중심룰의 바탕에서 참가자 전원의 극적욕구를 다루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인 셈이겠네요.

    보통은 가상현실룰은 극적 역할 룰에 비해서 다루는 양도 많고 복잡한 편이기에 '룰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양적으로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한명한명의 극적 욕구를 섞고 종합하고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참가자들의 동의를 받아야하는데...그 동의를 위한 필요조건이 가상현실 룰의 이해와 준수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겠네요. 가상현실은 참가자 전원이 엇비슷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그 시스템이 그리는 세계의 '내적법칙'을 다루고 있으니까요.

    즉 가상현실룰을 중심으로 하는 모델에서는 극적 욕구에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개연성'을 가상현실룰을 통해서 갖추면, 더 그럴듯해보여서 극적욕구를 인정받고 관철되기가 더 용이해지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쉬워진다는 의미가 됩니다.

    • 로키 2007/11/25 0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합의에 의한 플레이 말씀은 좋은 정리 같네요. 극을 형성하는 과정을 순수하게 팀내 의사결정 구조에만 (진행자가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구조이든 전원 합의하는 구조이든) 맡겨두지 않고 규칙이 개입하는 데 따른 효과는 이전에도 했던 토의였고 앞으로도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 되겠죠.

      가상현실 중심 규칙에서 극적 욕구의 반영에 규칙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극적 욕구의 반영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가상현실 중심 규칙이 닿지 않는 영역 아닐까요?

      예를 들어 주인공 중 하나가 배경상 왕의 서자여서 왕과 대면하는 장면을 하고 싶다면, 극을 다루는 규칙이 없는 상황에서는 참가자가 진행자에게 제안하거나 진행자가 알아서 긁어주는 (?) 방법을 취할 것입니다. 극을 직접 다루는 규칙이 있다면 참가자가 직접 서술한다거나 장면을 신청하는 방법 등을 택할 수 있겠죠.

      일단 왕을 만난 후에 자신을 인정하라고 설득할 수 있을지 같은 건 판정에 달렸겠지만, 이때 판정에 대한 지식은 왕을 설득하는 확률을 높이는 전술적인 의미 외에는 극적 욕구 충족과 특별히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극적 욕구의 반영에 가상현실 규칙에 대한 지식이 어떤 식으로 중요한지는 약간 이해를 못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생각하시는 예는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것 같아서, 괜찮으시다면 부연설명 부탁드립니다.

  2. 기생수 2007/11/25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으흠... 아마도 제가 생각하기엔, 극적욕구를 지원해주는 룰은 그러한 욕구를 내는 형식의 틀과 결정권, 의사결정과정을 규정해주고 있지만, 가상규칙룰은 그러한 욕구가 '말이 되어' 보이는 걸 돕는 역할을 하기에 분류하신 두가지 범주의 룰이 욕구의 충족과 타인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 접근 방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


    본문의 예를 빈다면 가상규칙룰은 맨주먹으로 장군이 3만대군을 죽이는 그 '과정과 내적 법칙'을 물리적/장르적 룰의 작동으로서 설명해줘서, 다른 사람이 '그런 억지가 어디있냐'라는 말에 미리 대답을 해주는 셈이겠네요. 그렇게 개연성을 줌으로서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이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게 하여 죽이고 싶다는 극적 욕구를 타인이 좀더 쉽게 동의하게 해주고, 또한 그 수준에서 장군의 플레이어가 3만 대군을 죽일수는 있지만 100만 대군은 죽이는 건 말이 안된다는 것도 가르쳐 주는 것이겠죠. (그외에 논의의 맥락과는 좀 다르지만, 3만대군을 죽이는 '그림'을 룰의 반자동적 작동으로서 플레이어가 좀 덜 신경써도 묘사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네요)


    가상규칙룰이 극적요소를 지원하는 룰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거라면, 그 3만 대군을 죽이는 물리적/장르적 법칙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법칙을 알수록 자신의 더 '다양한' 욕구를 타인에게 더욱 설득력있고 개연성있게 보여줘서 동의를 얻기 쉽다는 의미에서 '양적인 지식'을 언급했습니다. (물론 이건 가상규칙 중심의 모델에서의 이야기 입니다. 의사 결정과정을 다루는 극적욕구쪽의 룰과는 다른 위상의 이야기죠.)


    가상규칙룰에서는 참가자 모두가 이미 그 시스템의 규칙을 읽어둠으로서 상대적으로 더 엇비슷하게 그 세계관의 물리법칙이나 장르법칙을 이해하게 됩니다. ("겁스는 리얼해") 때문에 그 시시콜콜한 규칙들 속에서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 범위에 대한 '이해의 교집합'을 조금이라도 "더" 넓힌 상태에서 그 속에서 극적 욕구를 반영한 선언을 하면 합의를 하기 쉬워진다는 의미겠네요.


    이 역시 잡음이 종종 나오는 걸로 봐선 더 쉽게한다는 것뿐이지 완벽한건 아니죠. 그렇기에 룰의 작동 바깥의 이야기를 중요시하는 합의에 의한 플레이가 그걸 보충하는 것이구요. ('니 캐릭터 장군은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일 수는 있지만, 그거 별로 전체 스토리에는 좋지 않은 것 같아', '그런가?' 가상규칙을 준수해온 과정이 3만 대군을 죽일 정당성은 어느정도선에서 부여했기에 굳이 원한다면 자신의 의견을 좀더 설득력있게 밀려고 시도할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자신의 욕구만을 경쟁적이고 일방적으로 관철시키는게 플레이의 목적은 아니니까요. 이런 면에서 지원과 견제를 동반하는 ... 본문에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두가지 성질의 룰은 상호보완적 관계겠죠.)

  3. 기생수 2007/11/25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정리하면, '가상규칙의 양적인 지식 이야기' 는 가상 현실룰들의 작동이 욕구의 동의와 합의의 '설득력'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꺼낸 이야기 입니다. 물론 그 설득력을 마치 절대적 권한처럼 오해하는 건 잘못된 플레이겠죠. 상황과 장면의 종류는 많고 그 면면에 사용되는 가상현실룰들은 각자 그상황 그 장면 그캐릭터의 설득력이 되니까 다양한 상황을 위해서는 다양한 룰이 필요해집니다.


    뭐 가상현실룰이 고작 이 용도 밖에 없다면야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룰 자체가 가진 상황 묘사력이라는 또다른 큰 '장기'가 있기에 그 많은 분량을 참아줄만하고... 더 나아가 익히는 것자체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쪽을 더 선호하겠죠.


    사실은 후자가 이미 예전부터 알려져있던 장기이고... 전자가 참가자 전원(마스터포함)의 욕구반영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발견된 용도겠네요.

    • 로키 2007/11/26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호.. 그런 효용도 있군요. 가상현실 역시 극의 요소라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확실히 가상현실 표현 규칙이 없는 룰북은 양이 적고 배우기 쉬운 점은 좋지만 가상현실의 법칙이나 논리에 대해 심각한 의견 차이가 생긴다면 해소할 원칙이 '합의'나 '최종결정권자의 결정' 외에는 없긴 해요. 마치 극적 요소를 직접 조작하는 규칙이 없을 때 극적 방향에 대한 의견 차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합의나 진행자의 결정인 것과 비슷하게요. 저는 지금까지는 가상현실 법칙에 대해서 심각한 의견 차이를 겪은 적은 없지만, 캠페인이 길고 참여자 사이에 공감이 적을 수록 많이 발생할 수 있는 문제겠죠.

      아주 자세한 가상현실 규칙과 그런 규칙의 부재 사이에 있는 방법으로 '장르적 현실' 규정이라든지 '우리 플레이에 어울리는 현실' 규정 같은 게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활극 플레이에는 온갖 곡예와 공중 돌기와 스턴트가 어울리지만, 역사 배경의 2차대전 플레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식으로요. 3만 대군을 맨주먹으로 죽이는 게 어울리는 플레이는 거의 익절티드 정도고.. 그런 식으로 장르 혹은 분위기에 맞게 물리 법칙의 범위를 정하는 규정을 만들어 둔다면 나중에 합의하는 시간을 절약하고 공감대를 확보해 두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4. 기생수 2007/11/26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르적 현실' 규칙은... 사실 이미 있기는 있거나 대부분의 상용룰 규칙은 이미 '장르적 현실' 규칙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 경향상... 겁스같은 범용성 지향과정에서 사실성을 갖춰버린 케이스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의 시스템은 이미 각자가 시스템이 지향하는 특정 로망을 지원하고, 특정 현실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이미 장르룰일 겁니다. 때문에... D&D로 드래곤은 때려잡아도 히틀러를 때려잡는건 뭔가 이상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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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승한님과 진행자의 필요성과 서술권 분배에 대해 나눈 대화에서 떠오른 생각인데, 많은 참가자가 주사위 결과에 집착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원인이 서술권 분배 방식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적인 RPG 역할 분배에서 진행자는 주변 세계와 조연에 대한 것을 서술하고, 참가자는 그 참가자가 맡은 주인공이 하는 언행을 서술합니다. 주인공이 하는 판정은 참가자의 서술 영역과 진행자의 서술 영역 사이에서 일어나므로 판정 규칙은 성공 여부에 따라 참가자의 서술권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살로 오크의 눈을 꿰뚫습니다." 하는 참가자 선언과 그에 따른 판정을 생각해 보죠. 성공했을 때는 참가자의 서술이 진행자의 서술 없이도 진행자의 서술 영역인 주인공 외부에 작용하며, 참가자가 서술하는 목적인 극적, 게임적 목적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실패했을 때는 주인공의 이미지와 같은 극적 목적이나 오크를 쓰러뜨리는 게임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주인공의 행동이라는 제한적인 서술 영역에서마저 참가자의 서술을 관철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결국 성공보다 실패가 재미없어지고 주사위 결과에 집착하게 됩니다.

물론 판정 실패가 판정 성공보다 불리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합니다. 또한, 게임적 관점에서 보면 캐릭터 성장이나 전술적 판단을 통해 판정 성공률을 높이려는 노력 자체도 게임의 재미이지요. 그러나 그 점을 보존하면서도 판정 실패에도 극적 재미나 게임적 도전을 부여하면 참가자의 재미가 주사위 굴림에 의존하는 현상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갈등 판정 개념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판정에 무엇을 걸지 결정해서 성공과 실패가 둘 다 재미있도록 조절하는 것이죠. 판정에 성공하면 화살로 오크 눈을 맞추고 실패하면 헛손질로 끝이 아니라, 성공하면 휘황한 궁술을 본 오크들이 겁을 먹고 못 쫓아오고 실패하면 성난 오크들이 일제히 추적해 온다든가.

갈등 판정에서는 무엇을 걸지 않는지 하는 문제가 무엇을 거는지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놀라운 궁술을 선보이는 건 같게 해서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충족하되, 성공하면 오크 수장을 일격에 쓰러뜨려서 오크가 조직적인 저항을 못하게 하지만 실패하면 졸개를 쓰러뜨려서 괜히 이쪽이 숨은 위치만 들키고 오크들이 조직적으로 반격해 온다든지요.

갈등 판정의 승패에 거는 결과 결정에는 참가자가 참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참가자의 극적 욕구가 진행에 직접 반영되며, 실패도 참가자에게 재미있을 가능성이 더 커지니까요. 이것은 참가자의 서술권이 전통적인 참가자의 서술 영역보다 넓어지는 결과가 되므로 가상현실의 환상은 깨지기 쉽습니다. 참가자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는 외부 가상현실이 있다면 활을 쏘는 행동의 극적 결과를 참가자가 정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요.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재미가 중요하다면 갈등 판정의 결과는 진행자가 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면 진행자의 권한이 강하고 가상현실 경험을 중시하는 RPG에서 참가자의 극적 욕구를 실현하기 어려운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을 통해 뭔가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는데 그 실현이 판정 성공에 달렸다면 재미가 확률에 의존하는 데다, 진행자에게 극적 권한이 대부분 있으니 참가자가 원하는 상황이 나오는 것도 안정적이지 않죠.

그래도 팀내 의사소통이 활발하고 참가자의 욕구를 진행자가 활발하게 반영한다면 많이 보완할 수 있는 점이니까, 게임성과 가상현실 경험을 보존이 중요하다면 진행자 중심 체제를 유지하면서 의사 소통의 활성화로 참가자의 극적 욕구 충족을 최대한 도모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가자에게 폭넓은 서술 권한을 주는 편이 참가자의 극적 욕구 실현에 더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가상현실 경험보다는 극적이고 역동적인 공통 서사와 극적 욕구 실현을 중시하는 제 취향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방식이 좋은지는 목적을 전제하지 않고는 논할 수 없는 문제라, 목적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객관적으로 좋은 방법이란 없으니까요.

물론 특정 목적을 실현하는 데 어떤 방식이 적합한지는 생산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등 판정 개념 도입은 실패가 성공보다 재미없는 현상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목적에는 참가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가상현실의 환상 유지라는 또 다른 목적이 중요하다면 진행자가 그 결정의 주체가 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2007/11/14 11:40 2007/11/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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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dowan 2007/11/15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PG의 시뮬레이션성 때문에 작은 좌절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습니다. 어차피 이길 거 플레이 시간만 길어진다면서 맘속으로 투덜거렸었지요. (나중에 마스터에게 물어보니 졌을 때의 분기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규칙과 확률과 도전이 중요하다면 보드게임이나 워게임을 하면 되지 왜 dnd를 할까라는 기분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꿔서, 주사위의 스릴에 마음을 맡기니 즐거워지더군요. 이겨야 한다는 압박이나 시나리오를 진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거 같습니다.
    확실히 실패도 성공만큼 재미있으면 즐거울 거 같습니다.

    • 로키 2007/11/16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대로 부담 없이 전술 자체를 즐길 수 있으면 전술적 전투가 많이 즐거워지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RPG에 대한 기대가 무엇이냐, 그리고 현재 플레이 스타일이나 규칙이 그 기대를 얼마나 충족하느냐 하는 부분이겠죠. 저는 극적 선택과 그에서 나오는 상황을 다루는 경량 규칙을 좋아하므로 D&D나 겁스는 잘 안 맞고, 마찬가지로 치밀한 전술적 전투와 미리 준비한 시나리오를 좋아하는 취향에는 포도원의 개들이나 안방극장 대모험은 전혀 안 맞겠죠.

    • ddowan 2007/11/16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패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상황을 즐기는 룰은 재미있어보여요. 역시 택틱물은 실수나 실패를 즐기기에는 압박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는 거 같습니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라는 말이 갑자기 와닿는 군요. 간단한 이야기 지어내면서 맞춰가기 보다, 케릭터 스탯을 짜는 일이 더 부담없을 때도 있으니 어렵습니다.

      확실히 자신이 바라는 바와 맞는 룰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네요. 뭐라 해도 룰은 가지고 노는 것이니까요. 스토리텔링 쪽도 굉장히 재미있어 보입니다^^ 여유가 생기면 꼭 겪어보고 싶군요.

  2. 바보왕 2009/10/25 0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늦깎이 오알러입니다.

    로키 님의 블로그를 보고 여러 가지로 배우는 중인데요, 갈등판정 관련 개념을 보고 "이거다" 싶어서 카페에 소개하는 중에 로키 님의 포스팅 주소도 퍼갔습니다.

    자비를 베푸사 늦게나마 허락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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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플레이 시작하는 국가의 건설 플레이 바이 위키에 앞서서 이것저것 준비가 진행 중입니다. 이번에 준비한 것 중 하나는 연구 대상 사이 관계도였는데, 저번 글하고는 또 다르게 이런저런 쓰임이 보이더라고요. 반면 한계도 있었지만요. 다음은 글리피로 만들어본 국가의 건설 연구 대상 관계도입니다. (승한님이 좀 더 재밌게 설명까지 붙이신 관계도는 여기에.)

국가의 건설 관계도

국가의 건설 관계도


우선 인간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자체가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규칙상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작 연구 자금이 연구대상 사이 인간관계의 수에 의존하므로, 연구 대상이 무려 아홉이나 되는 대형 설정에서는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연구 자금 계산조차 어려웠습니다. 반면 관계도는 그려놓고 화살표만 세면 되니까요. ("검은 화살표 5개에 빨간 화살표 7개는 에...")

그런 이유로 시작해서 만들고 고치다 보니까 인물 관계를 시각화하는 효용이 보이더군요. 무엇보다 화살표를 그리는 편의상 관계가 밀접한 인물들을 가까이 붙이고 화살표가 많은 인물일수록 중심에 놓다 보니 인물 사이 관계라는 추상이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위의 관계도를 보면 관계도 중심에 가까운 인물일수록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주변부에 있을수록 관계나 이야기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인간관계의 구역이나 블록에 의미가 생기더군요. 돈울프-진 뤠이신-자비에르의 '건국 공신 클럽'이라든지 칼라인-마그누스-세렌의 우정 등.

한편으로는 시각화라는 목적상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단순화가 필요해져서, 관계도로는 인간관계의 모든 함의를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너무 복잡해지면 시각화의 의미 자체가 희석되니까요. (다닐과 이렌가르드의 관계에는 연심 외에 충성심과 우정도 있는 등.) 그래서 관계도는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그 대략을 단순하고 굵게 표현하는 시각 자료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관계도를 작성하면서 그 효용을 그다지 느끼지 못한 것도 시각화의 효용성과 한계를 생각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관계도는 관계와 감정이라는 추상을 구체화하고 단순화해서 시각적, 공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효용은 있지만, 시각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복잡한 함의는 표현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들고 감상하는 재미도 있고 말입..(퍽)
2007/11/06 21:53 2007/11/06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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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진행을 시작하면서 제일 막막했던 것은 어떻게 캠페인을 시작하고 지속하는지 하는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시작한 이래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고 나름 시행착오를 거친 결과 형성된 제 스타일이랄까,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비

(1) 기획과 모집

캠페인을 준비할 때면 우선 어떤 규칙과 배경을 할지 생각해서, 그리고 동시성 플레이라면 시간대를 정해서 모집하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플레이를 이때 한다'는 기반을 정해두면 취향과 시간대가 맞는 사람을 구하기가 한결 쉬워지니까요. 물론 언제나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만, 본격적으로 돌리려면 경험상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하더군요. 이 시점까지 캠페인 내용이나 배경의 자세한 사항은 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분위기나 전형적인 진행 같은 건 막연하게 있을 수 있지만요.

(2) 제작

일단 사람이 모이면 주인공을 만듭니다. 보통 모두 함께 모여서 캐릭터를 만드는 세션을 하나 합니다. 이게 제가 보기에 준비 중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배경과 성격 등 주인공에 대한 사항, 특히 이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려는 로망 파악에 중점을 둡니다. 인물의 동기와 성격, 주변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해석이 일치하는지, 이 부분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참가자 생각은 어떤지 등등 질문을 통해 인물 해석을 다듬고 조율합니다. 캠페인중 어떤 걸 보고 싶은지 하는 제안도 이때 많이 주고받을 수 있지요.

(3) 구상

다음, 캠페인 주요 조연과 시작 상황을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관련된 인물들을 끌어다가 이들의 목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해 이들이 어떤 상황을 만들지 생각해 봅니다. 주인공 주변 인물을 재해석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캠페인에 저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고, 동시에 참가자들에게는 자신이 만든 설정에 새로운 해석과 의외성을 부여한다는 면에서 아주 즐거운 과정이죠. 또한, 주인공들의 과거와 목적, 극적 지향 등을 생각해 어떤 상황에 빠지면 재밌을까 궁리하면서 그 상황을 창출할 수 있는 인물들도 설정합니다. 그런 극적 상황에 등장할 만한 배경의 세부사항이 필요하면 설정해서 채웁니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들과 폭넓게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상이 준비 과정입니다. 단편이나 단기 플레이에서도 거치는 과정이지만, 캠페인보다는 짧게 지나간다는 차이가 있겠죠. 주인공을 만드는 과정은 좀 몰아붙이면(..) 30분 내에도 할 수 있고, 많이 몰아붙이면 5분 10분도 됩니다. (다만 거의 제가 만드는 것에 가까워져서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과 인물 설정은 빨리 하려고 하면 주인공 제작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서, 단편이라면 주인공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슥슥 스쳐가는 것들을 가져다 씁니다.

2. 진행

(1) 원칙

플레이 들어가면 일단 시작 상황을 내놓고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나 봅니다. 참가자들이 반응하면 거기에 따라서 다시 변화가 생기고, 저는 그 변화를 심리적 반응이든 물리적 반응이든 표현합니다. 그렇게 연쇄반응이 일어나면서 플레이가 굴러갑니다. 그러다가 참가자가 어떻게 할지 몰라서 플레이가 정체되고 그 반응의 연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시 참가자 배경에 있는 NPC 중 노는 애들(...)이 있나, 참가자 하나 이상이 좋아할 만한 극적 상황이 있나, 필요한 정보가 있나, 아니면 그냥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있나 ("갑자기 닌자들이 뛰어듭니다!" "문을 열자 백작의 시체가 품 안에 쓰러집니다!") 생각해서 다시 상황을 내놓고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2) 문제 해결

이상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매끄럽게 나갑니다만, 어떤 때는 영 잘 안 풀릴 때가 있습니다. 극적 상황을 생각하고 배경 세계의 공백을 채우는 준비가 부족했는데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 안 되거나, 아니면 연쇄반응이 일어나긴 나는데 영 산만하고 재미가 없다거나. 그럴 때면 참가자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데 좋은 생각 없느냐고 말이죠. 이런 때 억지로 계속하면 꼭 후회할 일이 나서.. 물론 저는 재미없는데 참가자는 괜찮은 때도 있고, 저는 재미있는데 참가자는 지루한 때도 있으니까 이런 데서 의사소통의 중요성이 나오는 거겠죠.

3. 관리

세션이 끝나면 되도록 플레이에 대해 얘기해보고, 특히 플레이중 문제가 된 것이 있으면 꼭 논의합니다. 다음 세션 시작하기 전에도 첫 세션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나간 플레이의 사건을 고려한다는 점이 다르겠죠. 앞뒤가 안 맞는 데가 있으면 생각해보거나 의논해보고요. 특히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끔 중간점검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극적 진행은 서로 만족스러운지 등등.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제 대체적인 스타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변형은 있지만, 기본 틀은 이런 식입니다.
2007/11/01 03:32 2007/11/01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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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인을 위한 즉흥 기법을 다루는 블로그 글 시리즈에서 Being Obvious라는 글이 크게 와닿더군요. 직역하면 '뻔해지기' 정도인데, 문맥을 보면 '무리하지 않기' 혹은 '억지 쓰지 않기'에 가깝습니다. 한 마디로 드라마틱하게 하려고, 혹은 무섭게 하려고, 혹은 웃기려고 무리하면 보통 역효과가 나고, 스스로 보기에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하는 게 가장 효과가 크다는 얘기입니다. 우선 억지를 부리면 티가 나게 마련이고, 별로 감동이나 재미가 없습니다. 게다가 사람은 모두 생각하는 게 달라서 자신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참신하고 놀라운 일이 많거든요.

뻔해지라는 것은 그렇다고 일부러 지루해지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예를 들어 서부극에서 정의의 보안관이 자기 친구를 죽인 범죄자와 마주쳤는데 총도 뽑지 않고, 자기 정체도 드러내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범죄자가 사라지는 걸 방관하는 건 지루하고, 앞뒤 사정을 생각하면 자연스럽지도 않습니다. (의외로 RPG 참가자에게는 꽤 볼 수 있긴 합니다만...) 반면 결사의 총격전을 벌인다거나 협박을 주고받는 건 훨씬 자연스럽고, 또 재밌습니다. 갑자기 UFO가 내려서 두 사람 다 납치해서 사라지는 걸로 끝~이라면 웬만큼 특이한 서부극이 아니면 재미없고 억지스럽습니다. (근데 왠지 해보고 싶..)

글을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던 게, 저는 예전에는 극적으로 꾸미려고 너무 무리를 하는 일이 많아서 애를 먹었거든요. 요즘은 그런 경향은 많이 줄었지만 저 글을 보니 그때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더욱 와닿았습니다. 요새도 가끔 빠지는 함정이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뭔가 참신하고 놀라운 걸 해보자는 건 특히 진행을 할 때면 강한 유혹이니까요.

어떻게 보면 보통 참가를 진행보다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참가자는 자기 인물을 생각해서 뻔한 것만 하면 되는 반면 진행자는 뭔가 대단한 걸 꾸며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행자도 그냥 뻔하고 자연스럽게 해도 된다는 인식에서 시작해 이를 뒷받침하는 방법론과 기법을 쌓으면 진행도 훨씬 편하게 할 수 있는 작업이 되고, 자유도와 극적 감동을 둘 다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는 뻔해도 남에게는 꼭 그렇지 않으니까 굳이 억지로 꾸밀 필요는 없다는 것, 뻔하고 자연스러운 전개에는 무리하게 꾸민 것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감동과 진실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훨씬 편하고 재미있는 플레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2007/10/27 추가 부분 (승민님 답글을 보고 보충했습니다)

뻔해지자는 것은 '뻔하고 전형적인 이야기를 유지하자'는 뜻은 아니며 (제 첫 답글에서 그런 인상이 들었을 수는 있겠습니다만), 진행자 혼자 판단으로 이야기를 전형적으로 유지하자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보다는 '모든 참여자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뻔하고 자연스럽게 하다 보면 집단 서술의 역동성에 힘입어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거죠.

예를 들어 친구를 죽인 남자와 술집에서 마주친 정의의 보안관이라면, 참가자가 생각하기에 그 보안관의 뻔한 반응 중에는 바로 총을 꺼내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주먹을 휘두르는 것, 옆에 자리잡고 협박하는 것도 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살인자의 반응 중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뻔한 것도 마주 총을 꺼내는 것, 비웃음, 줄행랑 등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이런 식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연스러운 진행을 하면 그게 상대에게는 종종 예상치 못한 반응이기도 하고, 결과적으로는 비교적 전형적인 이야기가 된다 하더라도 그 속에 직접 참여하는 재미는 변함없죠.

중요한 건 뻔해지는 걸 두려워하면 무리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진행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라는 것도 그런 얘긴데, 예를 들어 보안관이 총을 겨누고 있는데 악당이 갑자기 '날 못 알아보겠어, 빌리? 내가 바로 네 친구라고!' 하면서 악당을 죽인 다음에 스스로 죽은 척하고 서로 정체를 바꿨다거나 하는 소리를 하면... 뭐 하기에 따라서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별다른 감동이나 개연성을 못 느끼면서 억지로 꾸미려고 하면 실패할 위험이 높습니다. 악당하고 싸우는 게 너무 뻔한 진행이라는 이유로 보안관이 갑자기 바에 뛰어올라 노래를 부르거나 악당하고 어깨동무하고 술을 마신다고 해도 마찬가지죠.

결국 극적 재미는 억지로 재미있게 꾸미려는 노력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라면 결론입니다. '재미있게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나온다기보다는 관심과 공감이 가는 인물과 상황을 설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을 수 있죠. 진행자 혼자 참신해보려고 기를 쓴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전형성이나 예측성을 거부한다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억지로 꾸미기보다는 인물과 상황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 상황마다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전개를 해서 뻔해져보면 어떨까요. 
2007/10/26 01:59 2007/10/26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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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eed 2007/10/27 0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이함보다는 당위성있는 전형적인 이야기로... 기본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되니까요 'ㅅ';

    • 로키 2007/10/27 1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형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이유가 있죠. 말씀대로 말이 되고 공감이 가는 '재미있는' 이야기니까요. 정말로 참신한 재미는 재해석과 재창조에서 나오지, 사실 뜯어보면 정말 재밌는 얘기 중에 근본부터 완전히 참신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요.

  2. 기생수 2007/10/27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균형의 문제일 것 같아요. 저만해도 드라마틱을 추구할때랑, 전형성을 추구할 때랑 둘다 각각 따로 애써본 적이 있는데, 안뻔할땐 상대가 상황 적응이 힘들고, 뻔해지면 본인이 재미없어져서 의욕이 떨어져서 ('내가 지금 뭐하는 건지...') 캠패인 펑크가 나더군요. 게다가... 시나리오가 뻔해지면 리액션도 '기대했던 대로'만 나오는 경향이 더 강해지더군요 -_-;;;


    결국, 제가 내린 결론은 혼자서 눈금조절하며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입니다. 내가 뻔해지든 안뻔해지든 다른 사람들이 뻔해봤자 재미없고, 내가 뻔해도 다른 사람이 안뻔하면 재미있기도 하더군요. 각자 본인들도 자기가 뻔해지면 스스로 금방 질리고, 남이 신선하면 재미있고... 뻔하게해서 같이 앉아 있는 날 재미없게 하지 말라~며 서로 간섭을 막 해야할 것 같더군요.

  3. 기생수 2007/10/27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설이 길었는데... 제 생각에는 공감 안되는 참신함 만큼이나 공감되는 진부함은 좋지 않습니다. 마스터라는 단일 개체가 혼자 꾸미고 뭔가 조절하며 결과 예측까지 하는 건 한계가 있는듯.

    • 로키 2007/10/28 0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을 보고 원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 같아 좀 더 보충했습니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제가 생각하기에 뻔해지기와 극적 전개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극적 감동을 추구하려고 뻔해지자는 주장이죠. 기대한 대로 반응이 나오는 의미에서 뻔한 게 아니라, '참가자가 생각하기에' 뻔한 것은 '진행자가 생각하기에' 뻔한 것과는 다른 일이 많고 (그래서 참가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다는 진행의 제1 원칙이 나오는 거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시는 상호 간섭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극대화하자는 뜻입니다.

  4. Rrr... 2007/10/28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뻔해지기' 보다는 '억지부리지 말기'가 더 적절한 단어 같네요.

  5. ddowan 2007/10/29 17: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의 인식의 차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로군요.(뭔가 거창합니다.)
    저는 전에 참신함이나 신기함, 기괴함을 위해서는 진부함을 미리 깔아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상식의 일치를 중심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쉽게 진행하자고 만들어놓은 진부한 문제가 문제를 일으키면 진행자도 힘들거 같습니다. 안풀려서 속상한 것은 참가자도 마찬가지 일거 같습니다. 적어도 퍼즐 부분에서는 공통된 진부함 만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상대방의 진부함에 익숙해지는 것도 문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6. 로키 2007/10/29 2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rr...// 예, 그렇게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ddowan// 서로 생각과 취향이 다르다는 점은 말씀대로 집단 서술의 장애물이 아닌 도전이자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요. 퍼즐에서도 진행자에게 뻔한 것만 정답이 되지 않고 다양한 해결책, 즉 참가자에게 뻔한 것도 상식 내에서 인정한다면 훨씬 재밌어지지 않을까요?

    말씀대로 각자의 상식이랄까, 진부함이랄까 하는 게 적어도 서로 용인할 수 있는 범위 내에는 있어야 같이 플레이하기가 좋은 것 같아요. 그게 참여자끼리 서로 맞는다는 진짜 의미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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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를 하다 보면 실제로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규칙도, 시나리오도, 인물 표현도 아니고 바로 실제 플레이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사회적인 놀이라는 RPG의 본질적 성격은 재미의 근원이지만, 의사소통과 협력을 어렵게 하는 행동은 RPG의 재미를 망치기 쉽죠. 어떤 행동 혹은 성격 유형이 곤란한지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제 경험에 기반을 두지만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보고 찔리는 분은 개인적으로 문의하십..),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문제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등 어떤 한 사람을 완전히 한 유형에 집어넣을 수 없는 게 보통일 것입니다.

문제 행동 유형은 제가 느끼기에 곤란한 순서로 나열해 보았고, 마지막은 나머지로 설명할 수 없는 포괄적인 유형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예의 바른 암살자

아마 수동적 공격성이라는 성격 유형과 꽤 잘 들어맞을 것입니다. 예의 바른 암살자 유형의 특징은 우선 말 그대로 예의 바르고 조용하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2번부터 나올 유형들과는 달리 일찍 진단하고 가려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게다가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예의가 바르고 얌전하다 보니까 시비가 붙어서 파토나는 일도 좀처럼 없죠. 그래서 제가 곤란하게 꼽는 유형 1위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예의 바른 암살자의 문제는 바로 이 조용하고 얌전하다는 점에서 나옵니다. 조용한 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반대와 비판, 거절을 극도로 두려워해서 조용하고 얌전해진 사람들이거든요. 때문에 예의 바른 암살자는 의견을 교환하는 데 상당히 인색합니다. 의견을 내라고 해도 잘 내지 않고 (님들의 침묵 참조), 상대가 뭔가 제안하면 마지못해 대충 동의합니다.

그렇다고 예의 바른 암살자는 6번 투명인간과는 달리 플레이 내용에 아예 관심을 끄거나 포기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정당한 토의 과정에서 남과 부딪히고 제안이 거절당하는 게 싫을 뿐이죠. 같은 이유로 다른 참여자의 제안에도 별 저항 없이 동의하지만, 그건 진정한 합의가 아니라 무원칙한 회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죠. 공개적인 토의가 아닌 다른 형태로 표출할 뿐.

예의 바른 암살자는 모두가 의견을 교환하는 토의 자리가 아닌, 남이 반대하기 곤란한 순간에 기습 작전을 펼칩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 도중에 제안이 아닌 단정의 형태로 뭔가를 서술해버린다든가, 원하는 설정을 토론 없이 최종 결정의 형태로 끼워넣으려고 한다든가. 제안해서 거절당하기는 두렵고 그렇다고 플레이상 욕구는 사라지지 않으니까 결국 토론을 차단하는 기습적인 형태로 '의견'이 아닌 '결정'을 은근히 강요하는 것이 예의 바른 암살자의 특징입니다. 자기 의견을 '나의 의견'이 아닌 '당연히 그래야 할 것'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것도 의견 제시를 두려워하는 예의 바른 암살자에게 볼 수 있는 행동이죠.

예의 바른 암살자 유형은 허심탄회한 의사소통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RPG의 재미를 저해하는 유형입니다. 게다가 이런 행동은 딱히 지적할 잘못은 없으면서도 (그것이야말로 예의 바른 암살자가 피하려는 바이니) 짜증과 적개심을 은근히 쌓이게 한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위에 얘기한 대로 예의 바른 암살자는 기본적으로 대립을 회피하는 얌전한 성향이라 자칫하면 감정적 학대를 유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왠지 짜증이 나니까 주변에서 화풀이를 하면 예의 바른 암살자는 그런 취급에 대해 항의하지는 못하고 더욱 움츠러드는 거죠.

이런 수동적 공격성은 유달리 심한 사람도 있지만 누구든지 가끔은 보일 수 있으며, 다른 문제 행동을 보강하는 보조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추가1: 물론 반드시 플레이 외적 토의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며, 참여자 사이 역할 분담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역할 내에 있는 부분을 뜻대로 하는 것을 기습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보다는 일단 다른 참여자의 영역, 혹은 공동 영역이라고 인정한 부분인데 제안이나 의논 없이 자신의 의견을 강요, 그것도 은근슬쩍 강요하려는 행동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2. 제왕 (황소고집)

뭐든지 자기 식대로 해야 하는 게 이 행동 유형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의사소통과 협조를 아예 거부해버리죠. 때로는 예의 바른 암살자의 수법을 일부 사용해 의논을 슬슬 피하기도 하고,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벽을 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아래 4번 황야의 레인저와 마찬가지로 남하고 놀기 싫다는 뜻이니까 소원대로 해주면 됩니다. (..)

추가2: 사실 이 문제 유형이란 뭐든지 정도의 문제라서, 자기 목소리가 확실하고 주장이 분명한 분은 오히려 환영입니다. 바로 자기 뜻을 꺾어버리면 밀고 당기는 재미가 없죠. 문제는 자기 의견을 절대로 꺾지 않거나 의견이 꺾이면 삐져서 뒤끝이 안 좋은 분입니다.

3. 프리마돈나 (질투쟁이)

이 유형은 뭐든지 자기가 제일이어야 합니다. 인물 능력치든 주목도든 뭐든 자신이 우선이어야 하고 다른 참여자는 그런 자신을 우러러봐야 합니다. GMPC를 굴리는 진행자일 수도 있고, 진행자를 끼고 일행 최강 PC를 만든 참가자일 수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결론은 '너 혼자 놀아'인 겁니다.

추가: 이것 역시 억지스럽고 짜증나는 정도가 아니면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자기 인물이 돋보이는 걸 원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고, 서로 멋져 보이려고 하는 플레이야말로 활발하고 즐겁죠. 문제는 그 기준이 '내가 멋진 것'이 아니라 '남보다 멋진 것'일 때, 더 큰 문제는 '남을 깎아내리기'가 일상이 될 때입니다.

4. 황야의 레인저 (천상천하 유아독존)

제 경험으로는 참가자에게만 나타나는 유형인데, 이 유형은 다른 참가자하고 협력하는 데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1:1 플레이가 아닌데도 1:1 플레이를 하고 싶은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주인공은 비사회적인 성격이라서 다른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든가, 습관적으로 일행에서 이탈하면서 진행자가 자기만 따라오기 기대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이죠.

3번 프리마돈나 기질도 보인다면 혼자 잘나고 싶어서 하는 짓이고 (반사회적이고 고독한 주인공을 하고 싶은 '개폼'이 많죠), 6번 투명인간 기질이라면 혼자 떨어져서 그냥 구경만 하고 싶어서 그러기도 합니다. 어쨌든 혼자 놀고 싶으면 혼자 놀게 해주자는 게 제 지론입니다.

추가3: 역시 가끔씩 주인공이 혼자 돋보이거나 일행하고 떨어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사회적인 성격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되는 건 일관되게 일행하고 따로 놀려고 할 때, 그리고 더 짜증나는 건 인물의 성격을 모두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아니라 주인공을 극적으로도 분리시키는 핑계로 삼을 때입니다. 즉, '얘는 반사회적인 놈이라 일행하고 아예 안 놀아요'하고 '얘는 반사회적인 놈이라 일행이랑 갈등이 생겨요'의 차이인 거죠. 특히 반사회적인 인물은 일행하고 함께 다닐 이유가 확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5. 세기의 석학4

지식으로 남을 누르려고 드는 유형입니다. 지식을 논의의 근거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지식으로 논의를 차단하려고 드니까 문제가 되는 유형이죠. 토의의 가능성을 막아버리려는 예의 바른 암살자나 제왕일 수도 있고 남보다 돋보이고 싶은 프리마돈나일 수도 있습니다. 다른 가능성이라면 특정 배경 세계나 규칙에 집착한 나머지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그게 모두에게 더 재밌다고 해도) 견딜 수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강조하지만 아는 게 많고 그 지식을 활용한다고 해서 문제 유형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판정의 공평성이나 일관성에 문제가 보여서 지적할 수도 있고 (이것도 절대 자기 뜻을 안 굽히면 제왕 쪽으로 가지만요), 진행에 고려 사항으로 배경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제시할 수도 있죠. 다만 '이러이러한 게 있으니까 저러저러한 방향으로 하면 어떨까?' 하고 '이러이러한 게 있으니까 꼭 저러저러하게 해야 해!'의 차이 정도입니다.

이는 반드시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실제로 세기의 석학 중에서는 초보자에게 도움을 많이 주거나 판정이 애매할 때 중재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많으므로 이 유형의 곤란도는 대체로 낮습니다. 대신 제왕 등 다른 유형 쪽으로 기울면 비약적으로 곤란해지죠.

6. 투명인간5

있는지 없는지 모를 사람입니다. 특히 ORPG를 할 때는 이 사람이 장을 보러 갔나, 딴 짓 하나, 자나 싶을 정도로 심각하기도 하죠. (실제로 컴퓨터 앞에서 조는 일시 투명인간 증세도 있고..(...)) 때로는 정말로 플레이 내용에 관심이 없이 딴 짓 중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구경만으로도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행자는 못하지만, 플레이 방식에 따라서는 참가자로서는 그냥 무난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이유로 조용한 것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테고, 정말로 구경이 재밌으면 그냥 내버려둬도 상관없을 유형이죠. 참가자 전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플레이에서 지나치게 조용하다면 참가자 대신 관객으로 은퇴(?)시키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7.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RPG는 사회적인 놀이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어긋날 길은 수도 없이 많으므로 한정된 유형에 그 모든 것을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유형은 다 집어치우고라도 정말 같이 지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극도로 무책임하다든가, 자제를 못 한다든가, 폭력적이라든가, 아니면 그냥 뭔가 파장이 안 맞는다든가. 이런 사람은 보통 나뿐만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도 다 싫어하는데 참는 일이 많죠.

문제가 누구에게 있든 RPG는 재미있으려고 하는 놀이이며, 소중한 시간이 들어가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유로든 재미가 없고 감정만 상하며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나 의지가 없다면 내가 나오든, 그쪽이 나오든 끝내는 게 백 배 낫습니다.


이상과 같이 RPG에서 제가 본 문제 행동 유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그 외에도 노우맨, 언어의 홍수 등 RPG를 통해 만난 분들에게 본 유형도 있지만, RPG하고 직접 상관은 없으므로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RPG를 곤란하게 하는 문제의 진단과 해결에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석
  1.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입니다. [돌아가기]
  2. 역시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입니다. [돌아가기]
  3. 역시 동환님과 얘기한 부분. [돌아가기]
  4. 승한님이 해주신 얘기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도움 주신 승한님께 감사드립니다. [돌아가기]
  5. 동환님에게 들은 내용이 일부 들어갔습니다. [돌아가기]
2007/10/06 23:19 2007/10/0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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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카스트 2007/10/06 23: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흑 로키님 제게 불만이 있으셨으면 직접 말로 하셔도 괜찮았을 텐데 (?!)

  2. 이방인 2007/10/07 02: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쁜 말이라는거는 진짜 아예 대판 싸우고 다시는 안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한 한국사회에서는 사람앞에서 대놓고 할수가 없는것이라. 자기를 욕하는( ? ) 소리를 들을 기회가 한국사회에선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제 앞에서 저에 대해서 대놓고 비판을 해주는 사람을 믿는 편입니다. 내 앞에서 당당하게 나를 욕하고 비판해 줄수 있는 사람이라면 뒤에서 욕을 하고 다녀도 '걔는 원래 날 싫어하는 놈이다' 라고 별충격 없이 넘어갈수 있으며, 앞에선 욕해주고 내가 없을때 남들 앞에선 날 칭찬해준다면 그거야말로 더 이상 바랄게 없는 경우기 때문이죠.
    이런 '피하고 싶은 RPG참가자 유형' 에 대해서 여기와서 글을 볼때마다 과연 나는 어떤 유형에 속하며 다른 참가자들은 혹시 나를 싫어하거나 별로 안좋아하면서도 그냥 그냥 참고 가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심히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면 RPG입문때 이상한놈(...) 에게 걸려 된통 혼이 난 이후에는 그냥 맘맞는 사람들끼리 계속해서 수년간 거의 매일 하다시피 해서 RPG를 즐겨왔고... 다챗에서 구인광고를 보고 처음으로 여기 플레이에 합류해 '패거리' 이외의 사람들과 처음 접했으니 실제로 다른 플레이어들과 손발을 맞춰본 경험이라고 해봐야 제로에 가깝군요.
    혼자서 장연설을 늘어놓는걸 즐기는거 말고 저의 다른 문제점은 뭘까요(...) 혹시라도 다른사람들이 싫어하면서도 참고 있는 또다른 문제점 같은건 없는걸까요(...)
    몹시도 궁금해지는것입니다(.......)

    • 로키 2007/10/07 0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욕할 것 있으면 면전에서 하는 편이죠. 지적 안 들으셨으면 (적어도 제 관점에서는)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셔도 돼요. 이방인님은 가장 실력 있다고 생각하는 참가자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적극적인 거야 원칙적으로 RPG에서는 미덕이고, 분명하고 중심적인 갈등을 제시하니까 진행자로서는 편하죠.

      자락스 설정 초기에는 앞뒤가 안 맞는 설정도 있었지만 그거야 지적을 잘 받아들이시니까 문제 없고, 또 굳이 아쉬운 점이라면 어떤 인물이든 비슷하게 열혈스럽게 표현하시고 여성 캐릭터를 하시는 걸 본 일이 없다는 정도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저하고 잘 맞는 참가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3. Rrr... 2007/10/07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들켰네요.

  4. mattathias 2008/05/17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아래 주소(개인 이글루)로 링크해 두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얘기해 주세요 (트랙백 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http://mattathi11.egloos.com/1756755

    • 로키 2008/05/17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트랙백을 쓰시려면 글을 작성하실 때 트랙백 칸에 트랙백 URL을 입력하시면 됩니다. (뭔가 도움이 안 되는 설명인데..(..)) 블로그마다 다른데, 제가 이글루스 하던 당시에는 글 입력 상자 밑부분에 트랙백 입력 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요. 저도 처음 블로깅할 때 많이 헷갈린 부분이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다 보면 자연 알게 되실 거에요.^^

[로그인][오픈아이디란?]

로키: "서로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서 밤늦게까지 얘기하면서 놀곤 했어요."
로키: 쟈네이딘은 그립다는듯 미소짓는군요.
로키: "나이트 로어틸리아도 그런 친구가 있으셨나요?"
로어틸리아: "...아뇨."
- 공화국의 그림자 18화

가공의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요? 근사한 외모, 뛰어난 능력, 흥미로운 과거... 모두 매력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만, 저는 저런 것만으로는 그 인물에게 확 몰입하기는 좀 부족하더군요. 그냥 뭐, '멋지네' 하고 끝.

제가 정말로 어떤 인물에게 마구 끌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인물이 '인간'으로 와닿는 순간입니다. 불완전하고, 잘못도 하고, 고민하는 인간적 틈새를 엿보는 순간 허구 속의 인물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갖춘 하나의 개체로 다가오죠.

이러한 인간적 허점은 제가 RPG에서 '성인형 인물'과 '소년형 인물'을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성인형 인물 (성인용 인물 아님)은 능력은 뛰어나다 해도 실수도 하고 고민도 하는 등 인간적 모습을 보이므로 쉽게 극적 상황의 중심이 되고, 그를 중심으로 한 인간 관계와 서사도 풍부해집니다. 참가자가 이런 인물을 하면 진행자로서는 신명이 나죠.

반면 소년형 인물은 언제나 옳아야 하며, 잘못 생각하거나, 패배하거나, 인간적 허점을 보이는 데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정확히는 그 인물을 다루는 사람이 방어적으로 되지만요.) '나의 완벽함에 모두 감탄해줘! (제발!)'이라는 기반에서 그다지 깊이 있는 극적 내용이 나오기는 어려운 일인지라, 소년형 인물을 극적 서사의 중심으로 끌어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매력도 덜하고요.

성인형 인물과 소년형 인물은 다루는 사람의 연령이라기보다는 태도의 차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짐작하실 수 있듯 대체적인 연령 분포를 보이기는 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큰 부분이라 섣부른 일반화는 금물이지만요. 또한, 극적인 플레이를 지향하지 않는다면 소년형 인물은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성인형 인물이 품은 고뇌와 인간적 허점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어떤 플레이를 원하느냐 하는 지향에 크게 좌우되겠죠.

또한, 인간적 고뇌가 인물의 매력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지나치면 매력은커녕 짜증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소년형 인물과는 또 다른 이유에서 곤란한 '소녀형' 인물이죠.1 이 역시 성별이나 나이와 필연적인 연관성은 없는데, 고민과 감정에 빠져든 나머지 헤어나오지 못하는 인물을 말합니다.

성인형 인물의 매력은 인간적 고민과 허점에 있다고 했습니다만, 그 이상으로 심금을 울리는 점은 성공적이든 그렇지 못하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삶에 문제는 있고, 그러한 잘못된 것을 어떻게든, 설령 방향이 잘못되었다 해도 바로잡으려는 몸부림은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이니까요. 그러한 노력을 통해 성인형 인물은 극적인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소녀형 인물은 그 심적 고통과 복잡한 문제들이 곧 인물의 우주가 되며, 빠져나오기는커녕 그 괴로움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교자 컴플렉스는 이 유형을 매력적이라기보다는 공포스럽게 만듭니다. 인물의 주관적인 감정을 절대시한 나머지 다른 참여자의 재미를 해치는 선택을 하는 것도 소녀형 인물을 잡은 참여자에게 나타날 수 있는 특징입니다.

'인물'이라고 했지만 사실 성인형, 소년형, 소녀형 인물은 인물 자체의 유형이라기보다는 그 인물을 조종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성숙한 극적 감각을 갖춘 참여자라면 일견 소년형 혹은 소녀형인 인물을 '혼자 잘났다고 떠드는 독불장군'이라든지 '자기 감정 속에서만 허우적거리는 어린애' 하는 멋진 성인형 인물로 얼마든지 탈바꿈시킬 수 있죠. 반면 그런 성숙함이 부족한 참여자는 인물의 그러한 단점을 단점으로 알아보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납니다.

매력적인 인물의 구체적인 성격, 특징, 과거 등등은 무한히 다양합니다만, 그 다양성 속에서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이들이 이렇듯 인간적 허점과 고민, 그리고 정체되지 않는 역동성을 갖추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특징을 성인형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성숙한 극적 재미에 입체적인 인물은 필수죠. RPG의 인물들은 좀 더 많이 실수하고, 고민하고, 허점을 보여도 좋지 않을까요. 극적 깊이가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주석
  1. 소녀형 인물 논의는 대화 중에 동환님이 얘기하신 부분에 많이 의존합니다. [돌아가기]
2007/08/03 00:14 2007/08/03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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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년H 2007/08/03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성인용, 아니 성인형 인물을 다루는 플레이어는 허점을 내보내지 않는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인물의 허점이란 것 역시 '자신이 가지고 놀 것'으로 보냐 안 보냐의 문제랄까요. (그러니 성인형이겠지만 (..))

    • 로키 2007/08/03 1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결국은 인물을 얼마나 폭넓게 파악하고 표현하느냐의 문제죠. 인물의 깊이하고 직결된달까요.

  2. 이방인 2007/08/04 1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같은경우 양념반 후라이드반 식으로 소년형 반 성인형 반... 이라고 해야 할까요(...) 생각해둔 캐릭터 이미지에서 '망가지거나 고민하거나 실패해도 되는' 부분이 있고, '적어도 이 부분만은 양보할수 없다!' 라고 미리 혼자 못을 박아둔 이미지같은게 있기도 하죠(...)
    전자의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해 어떤 바보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걸 즐기며 재미있게 플레이를 하는 한편, 절대로 무너지지 말아야할 이미지가 무너졌다거나, 절대로 죽지 말아야 할 관련 NPC가 진짜 납득할수 없는 방법으로 허망하게 죽어 자빠지거나 한다면 더이상 의욕을 못 느끼고 그냥 ㅈㅈ 치고 손털고 일어나는 그런 멍청한짓을 하기도 합니다(...)
    자기 PC에 부분 감정이입 한다고 할수 있을려나요(...)
    이거 쓰고보니 바보같군요(...)

    • 로키 2007/08/04 1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인간적 허점을 보인다'는 것과 '무능하고 찌질하다'는 서로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인물의 능력이 뛰어난 것 자체는 멋지죠. 거기에 옥의 티 식으로 인간적 고민과 허점이 있으면 정말 열광하게 된다는 얘기일 뿐. 아를란처럼 가끔 뭘 잘하면 티의 옥이 되어버리는 수준은 주인공에게는 곤란한 일이죠.

      주인공의 그 '옥'이 살아나는 꼴을 절대 못 보고 막 무능하게 만들면서 즐기는 진행자도 분명히 있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할 악성 소년형 진행자라고 봅니다. 글에서 진행자와 참가자를 포괄한 '참여자'라는 용어를 쓴 것도 그래서이죠. 주인공의 능력과 색채가 살아나는 데 대해 묘하게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경쟁감이랄까 느끼면서 견제하는 유형이 제가 생각하는 소년형 진행자입니다. (진행자와 참가자를 가리지 않고 소년형 참여자는 전반적으로 샘이 많고 경쟁적인 특징을 보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사람들 보면 아끼는 조연은 확연히 소년형..(..)

      어쨌든 당연히 성인형 인물에게도 중심 이미지랄까,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은 있지요. 직접 얘기하신 적은 없지만 배경이나 시트에서 보인 신호로 추정하자면 자락스의 '옥'은 강한 전투력과 포스력, '티'는 다크포스와 루바트 오르가나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판정에서 져도 잘 살려줄 수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4화에서 자락스와 센의 대련이겠죠. 전투력이 중심인 자락스가 기술자인 센에게 라이트세이버로 지는 상황이었지만 그걸 '다크포스를 쓰면 이길 수 있었다' 하는 식으로 끌어가서 자락스가 무능해지는 대신 그가 중요한 내적 갈등을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비슷한 이유로 저는 명중 판정을 싫어합니다..(..) 좀 느슨한 판정이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서술할 에누리가 있는데, 명중 판정에서 실패하면 '영웅적이고 뛰어난' 인물의 '영웅적인' 헛손질밖에 나오는 서술이 없거든요. 결국 실패하면 꼴만 우스워진다는 점에서 당연히 판정 실패보다 성공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고, 판정에 실패해서 재미없어질 여지가 있다면 판정을 안하니만 못하니까요.

  3. Asdee 2007/08/06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년형/성인형/소녀형 이라... 이해도 쉽고 멋진 표현이네요^^;

    음. 좀 사족인지 모르겠지만... NPC는 좀더 단순한 편도 좋지 않나 라는 생각도 요즘 해요. NPC 설정에 종종 버닝하곤 했는데, 플레이어들이 관심이 없다면 NPC의 고뇌 같은 걸 부각시키려는 건 무의미하단 걸 깨달았습니다. (-_-); 예전에도 이야기하셨지만,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PC들이니까요.

    • 로키 2007/08/06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 예, 확실히 자세한 조연 설정은 참가자 흥미 없이는 무의미하죠. 하지만, 주인공 배경에 나온 조연이라면 참가자 흥미가 급상승한다는 게 꽁수이기도 합니..(..) 주인공과 관련이 깊으면 그 조연을 부각시키는 건 (지나치지만 않으면) 주인공을 더욱 주인공답게 만들어주니까요.

      그 외에 대개의 조연은 말씀대로 좀 단순하고 전형성이 있어도 좋은 것 같습니다. 깊이있는 배경과 설정, 갈등은 주인공과 몇몇 조연으로 한정하고요. 강조점이 너무 많으면 아무것도 강조하는 효과가 없으니까요.

  4. 괴인 2011/07/26 1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RPG에 대한 접근 방법의 차이가 결국 인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또다른 현실을 살고,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새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는 보통 성인형 인물을, '이 구리구리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밝고 꺄삐한 환타지를 즐기고 싶다'는 욕구는 소년형이나 소녀형 인물을 만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어느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고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건 이 다양한 인물들을 모두 한 배경세계와 이야기 속에 아울러서 캠페인을 무사히 진행시키고 엔딩을 보는 것이겠지요. 그 다음은 맞는 사람들, 맞는 캐릭터들끼리만 어울려 게임을 즐기는 것이겠고요.

    • 로키 2011/07/29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맞는 맘씀입니다.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취향이 충돌하지만 않으면 문제는 없겠지요. 취향 차이를 한창 통감할 때 쓴 글이라 그때의 흔적이 아무래도 남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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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도 다루었듯 RPG계에서 규칙에 대한 논의는 민감한 문제가 되기 쉽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분적으로는 인터넷 토론의 성격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규칙에 대한 논의는 흔히 기능이나 효용이 아닌 취향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취향은 근거 제시와 반론이 들어가는 생산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공감하거나, 존중하거나, 반대하거나, 싸움이 나거나 할 수는 있어도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게 아니므로 토론의 효과를 볼 수는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규칙에서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일까요? 우리가 어떤 규칙이 좋거나 나쁘다고 할 때, 그것이 개인적 취향을 넘어 객관적인 토론으로서의 의미가 있으려면 무엇을 다루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규칙의 목적, 혹은 기능이 아닐까 합니다. 즉 막연히 '좋다' 혹은 '싫다'는, 처음부터 취향 얘기이거나 취향 얘기로 흐르기 쉬운 얘기가 아닌, 'A 규칙책은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러한 스타일의 놀이에 적합하다'라거나 'B 규칙은 놀이 속에서 이러이러한 기능을 한다'는 식이죠.

예를 들면, '나는 포도원의 개들 (Dogs in the Vineyard)이 좋아'라든지 '나는 장면 신청 규칙이 싫어'는 공감이나 반감을 넘은 의미있는 찬성이나 반론을 할 수 없는 취향 표현입니다. 하지만, '포도원의 개들은 갈등에 새로운 수단을 도입할 때마다 추가로 주사위를 받으므로 상황이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극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데에 적합하다'라거나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에서 장면 신청 규칙은 참가자가 돌아가며 장면의 초점, 배경, 목적을 정하므로 진행자의 전통적인 장면 설정권을 상당 부분 참가자에게 이양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면 토론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점점 상황이 돌이킬 수 없게 되므로 오히려 새로운 주사위를 끌어들이지 못하게 위축시킨다'거나 '진행자도 토론과 제안을 통해 얼마든지 장면 설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식의 반론도 가능해지죠.

즉, 어떤 규칙이 '좋다' 혹은 '나쁘다'는 가치 판단은 '어떤 목적에 좋은가? 어떤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가?' 하는 고려가 먼저 들어가지 않으면 개인 취향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포도원의 개들은 쓸모없는 규칙이다'라고 하면 포도원의 개들을 좋아하는 사람하고 싸움나기 딱 좋지만, '포도원의 개들은 주사위의 내용이 "절름발이 2d10"이든 "명사수 2d10"이든 서술에 넣는 상황이 달라질 뿐 규칙상 동일한 가치를 가지므로 치밀한 전술적 시뮬레이션에는 쓸모없는 규칙이다'라고 한다면 수긍하든, 반론하든 소모적인 언쟁을 넘어선 토론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렇다면 왜 규칙과 그 목적, 혹은 기능에 대해 생산적 토론이 필요한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몇 가지 효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자기가 하려는 플레이에 적합한 규칙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규칙을 사용하는지는 취향이나 친숙도, 시간 사정, 경제성 등 여러 가지 고려가 들어가므로 순수히 기능성만으로 규칙을 고르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자신이 하려는 플레이를 원활하게 하는 규칙을 선택할 사정이 된다면 규칙에 대한 활발한 토론은 규칙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겠지요.

두 번째, 자신이 현재 사용하는 규칙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규칙 중 자기가 원하는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 것이 있다면, 혹은 더 좋게 고칠 방향이 있다면 기능 중심적 생각과 토론은 플레이에 적합한 경향성을 만들도록 규칙을 수정하는 지침이 될 수 있죠.

세 번째, 규칙을 새로 디자인하는 사람에게 특히 규칙에 대한 토론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봅니다. 내가 지금 만드는 규칙이 플레이중 어떤 기능을 할 것인지, 다른 규칙과 어떤 식으로 맞물린 것일지 생각하는 것과 안 하는 건 차이가 크죠. 특히 'HP 규칙은 다들 쓰니까' 하는 식의 타성에서 벗어나 HP가 실제로 플레이중 어떤 기능을 하는지, HP가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지원하는지 하는 고려가 막연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효용이 클 것입니다.

이처럼 개인적 취향을 넘어 (비교적) 객관적인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규칙을 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방법과 효용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규칙에 대해 보다 평화적인(?) 토론을 하는 데 일조하면 좋겠습니다.
2007/07/19 10:57 2007/07/19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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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07/07/21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공감이 가네요. 비슷하게 아는 분과 이야기하면서, 각 시스템들이 가진 '색깔'을 규정지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GURPS 같은 범용룰이라도 뭔가 나름의 특색이 있어서요. "어떤 세계"를 구현하는가(혹은 어떤 세계를 구현하는데 적합한가)...의 문제겠지요. 아마.

    룰의 "기능성"은 그러한 지향점을 얼마나 잘 살리며, 또 어떤 한계나 모순을 지니는가이겠죠? 흔한 경우로, 대체로 잘 돌아가지만 몇몇 경우에서 밸런스가 깨진다거나... :D

    • 로키 2007/07/22 1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런 식으로 기능적으로 분석하면 어떤 규칙의 최적의 활용법이라든지, 하려는 놀이에 최적으로 고칠 방법이라든지 하는 게 많이 나오지 않을까 해요. 밸런스 자체도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어떤 목적의 밸런스인지가 중요하겠죠. 전투력, 서사 형성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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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는 TRPG에서 시작했다지만 저는 ORPG로 시작해서 쭉 ORPG만 했기 때문에 RPG에서 '말'을 한다는 게 생소합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RPG.net 게시판 글 (영문)에서 인터넷 전화인 스카이피로 하는 음성 RPG 얘기를 보고 호기심이 동하더군요. (주사위는 여기서 굴리는 모양입니다.) 말로 하면 확실히 글로 쓰는 ORPG보다는 훨씬 빠를 테고, 채팅에서처럼 말이 마구 엉키고 순서가 바뀌는 일도 없겠죠. 말투나 음성으로 전달할 수 있는 정보도 많을 테고요.

하지만, 솔직히 그 외에는 별다른 이점은 없어 보입니다. 표정과 손짓이 보이는 대면상황이라면 몰라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무슨 라디오 드라마 녹음하는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일단 '연기'로 들어가면 아무리 얼굴에 철판 깐 사람도 쑥스럽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듭니다. 채팅으로는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는 대사도 말로는 못할 게 많을 것 같고, 진행자가 자세하거나 극적인 서술을 하기도 어색~할 것 같네요. 또 혼자 있으면 상관없어도 옆에 누가 있으면 참..(..)

어쨌든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사실이고, 특히 속도가 유혹적입니다. 실제 해보면 미친 듯 웃다가 끝날 것 같긴 하지만(...), 기회가 되면 한 번쯤 해보고 싶네요. 실패한 시도라 해도 새로운 시도에서는 늘 배울 게 있으니까요.
2007/05/16 08:45 2007/05/16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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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큼이 2007/05/16 1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순히 배경음악을 까는 용도로 쓰는 사람도 있더군요.

  2. 이방인 2007/05/16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TRPG로 시작했지만 TRPG싫어합니다(...) 때려 죽인다고 해도 제가 지금 OR에서 하는 대사들을 TRPG에서 같은 느낌으로 연기할 자신따위 없어요(...) 남자 마스터의 여자 연기랄지, 남자 플레이어의 여자 연기랄지(...) 전혀 집중하거나 몰입할수가 없죠. 뭐 TR은 TR나름대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장점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전혀 몰입하는게 불가능한 TR은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그... 육성으로 대사 하는게 그렇게 쉬운건 아니라니까요(...)

  3. 불량중년 2007/05/16 19: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화상 캠으로 얼굴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채팅만 있는 OR에서 음성이나 시각자료를 폭넓게 사용한다는 느낌으로 도입해보는 것도 괜찮을듯 싶습니다.

  4. 진야의 방문자 2007/05/16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전화로 한다면 어색하기만 하거나, 웃기만 하다가 끝날 거 같긴 합니다.
    이방인 님의 말은 공감이 가기엔 우리 팀이 연기를 별로 안하는 군요. 상상만으로는 공감이 갑니다만, OR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어째서 그런 언어(?)를 알고 있는 거야~' 라면서 몸서리 칠지도 모르겠습니다^^.

  5. 로키 2007/05/17 0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큼이// 호, 그런 활용도 있군요. 곰오디오나 윈앰프로 하는 음악방송에 비해 잡음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이방인// 예, 확실히 무겁거나 깊이 있는 감정 표현을 하기는 좀 그렇죠..(..) 상상의 여지가 훨씬 제한이 많은 점도 그렇고요. 육성 연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TRPG는 ORPG에 비해 가벼운 분위기로 가기가 쉬운 것 같고, 전화를 이용한 RPG도 비슷하지 않을까 해요.

    불량중년// 언제나 걸리는 건 기술적 문제긴 하지만, 폭넓게 구현할 수 있다면 좀 더 입체적인 플레이가 되겠죠.

    생각해 보면 플레이 자체는 채팅으로 하고 음성 링크는 열어둔 채 부연설명이라든가, 짧은 지시 같은 부분은 말로 하면 플레이 속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말하자면 채팅창은 플레이 채널, 전화는 잡담 채널 식으로요. 플레이하다 보면 잡담하느라 가는 시간도 꽤 있고, 짧은 말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도 ('아, 그건 그 얘기가 아니라 이 뜻이에요') 타자로 치려면 오래 걸리니까요.

    진야의 방문자// 역시 닭살스럽거나 진중한 내용은 좀 기각이죠? ㅋㅋ 그래도 가볍고 코믹한 내용이나 감정적으로 건조한 일상물은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전에 했던 캣 플레이 같은 경우 주인공들이 전부 고양이인 동화적인 느낌의 플레이였는데, 그런 경우는 육성으로 플레이해도 재밌었을 것 같아요.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냥~' 하면서 말이죠. 포도원의 제다이처럼 극적인 건 정말 어색해서 웃다가 끝나겠죠..(..)

  6. 뮤이든 2007/05/17 0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화상을 이용하면 거의 티알하듯 할 수 있을거 같네요.
    우선 화상을 통해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목소리도 직접들으니 더욱 정확한 상호 의사소통과 빠른 행동이 가능할태고..
    TR와 OR이 합쳐저 오히려 슬쩍 화상만 가리고 닭살돋는 대화를 한후 슬그머니 다시 나타난다 던가... 재미있을꺼 같습니다.

  7. 소년H 2007/05/17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따지자면TR에서 시작한 건데..(물론 TR 한 게 OR보다 훨씬 적지만..1/4에서 1/5 정도?)

    이 두 개는 장르 내지는 아예 다른 놀이라 느껴지던데요. 비교하자면 가까운 경우 무협과 판타지 쯤 될 수 있고(...이건 웃기는 비유고 구연동화와 TV드라마가 더 가깝겠네요.) 먼 경우 극장영화와 소설?

    전화로만 이용하면 티알과는 또 다르겠죠. 이른바 바디 랭귀지..라는 게 있고. 흔히 농담으로 나오는 게 '채팅창에서 우와 큰일이네요 하고 호들갑 떨면서 코후비고 있는' 뭐 이런 식의 이야기니(...) 화상 채팅이면 음...동영상 채팅이라 하더라도 후각이 모자라서? (...)

    근데 전 티알에서 닭살돋는 연기가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고 보는게..일단 저번에 로키님에게 말했듯이 연기와 RP는 비슷한 면이 있지만 약간 다르기도 하고, 뭐 저도 간드러진 여자 연기 TR 하다가 스스로 부끄러워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해본 적도 있고.. 뭣보다 말입니다. 닭살이 돋고, 폼을 내고(이른바 열혈 연기) 이런 건 스스로 대사를 외치면서 해야 의미가 있는 거지 오알에서 낄낄대며 그냥 타이핑으로 하는 것보다 진국 아니겠습니까..

    어쩐지 덧글로 오알과 티알 이야기가 되어 버렸는데, 근데 로키님 답변 보다가 든 생각 하나. 반대로 전화로는 플레이를 하고 채팅 채널로는 잡담을 하는 것도 가능하겠네요. 특히 PC들간의 대화가 많은 캠페인같은 거라면요..

  8. 로키 2007/05/17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뮤이든// 푸핫.. 뭐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으면 그것도 나름 멋지겠네요.

    소년H// 저야 ORPG밖에는 해본 적이 없으니 사실 비교할 건덕지가 없긴 합니다만.. 어쨌든 일단은 말로 하면 어색할 거라고 생각해요! (우긴다)

  9. 소년H 2007/05/18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그, 만난다고 했을 때 TR이나 해볼까요? (이것이 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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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song님의 글과 그에 대한 성일님의 댓글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트랙백 주거니 받거니, 그 두번째! (..)

RPG의 게임성을 다룰 때도 비슷한 생각이었지만, 규칙을 매개로 해서 밀고 당기는 활동에서 나오는 역동적 긴장은 RPG의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역동적 긴장의 내용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크게 다음 세가지입니다.

1. 진행 방식에 대한 긴장

링크한 Wishsong님의 글에서 볼 수 있는 예입니다. 목적의 실행에 어떤 수단을 취할 것인가, 어떤 수단이 합리적인가를 가지고 밀고 당기는 것이지요. 진행자는 빨간 휴지와 파란 휴지 사이에 선택시키고 싶은데 참가자가 그 선택 상황을 벗어난다면? 참가자와 진행자 사이의 두뇌싸움이 되기 쉬우며, 가장 지적, 논리적 도전이 되는 내용의 긴장인 것 같습니다. 세션 글에서 성일님이 지적하셨듯 플레이의 병리현상이 나타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죠.

2. 극적 방향에 대한 긴장

1번이 수단에 대한 긴장이라면 이것은 목표에 대한 긴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Asdee님의 댓글에 대한 답변에서 제시한 것으로, 선택의 방향에 대해 참여자간에 밀고 당기는 것을 극적 방향에 관련한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기업을 고발해야 하는가? 도시의 경제가 무너져도? 이것은 극적이고 도덕적인 도전이며, 역동적인 긴장 중 제게는 가장 흥미로운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자칫하면 비생산적인 의견대립으로 흐를 수도 있고 참여자의 심리나 신념의 영역을 건드릴 위험도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3. 대립과 상생 사이의 긴장

마지막으로 대립과 상생 자체 사이에도 긴장이 존재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언제 양보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죠. 핏대올리고 싸우느라고 플레이가 깨져버리는 것, 서로 눈치보고 사양하느라고 아무도 즐겁지 못한 것, 이 양 극단을 피하면서 여럿이서 함께 즐거운 것 자체가 하나의 역동적 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회적, 때로는 권력적인 성격의 긴장이며, 1번과 2번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지만 개념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합니다.


역동적 긴장을 이렇게 분류해 본다면 모든 것이 합의로 정해지는, 명문규칙 없는 RP (소위 '소꿉놀이')와 명문규칙이 있는 RPG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가절하의 의미 없이 편의상 소꿉놀이라는 용어를 쓴다면 (저도 소꿉놀이 좋아라 하니까요), 소꿉놀이에서는 명문으로 정해진 규칙의 매개가 없이 상생과 합의에 좀더 중점을 두고 RPG에서는 명문규칙이라는 객관적 기준에 의지해 밀고 당기는 데에 좀더 중점을 둘 뿐일지도요.

중요한 건 소꿉놀이든 RPG이든 위 세가지 역동적 긴장의 모습은 모두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제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그렇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합의로 정한다 해도 바로 그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역동적 긴장은 계속해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갈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귀기울이고 언제 의견을 내세우며, 언제 누가 진행을 주도해나갈 것인가. 명문화된 기준이 없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웠을 뿐이죠.

결국 역동적 긴장은 다층적으로 작용하며, RPG 뿐만 아니라 여러사람이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 전반에 작용하는 원리가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대립과 협력을 반복하며 이어지는 과정에서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지 못했을 방향과 생각들이 나오고, 그러면서 놀이는 더욱 풍부하고 재밌어진다는 것이 제 경험이죠. 그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RPG를 그렇게도 재미있는 놀이로 만드는 게 아닐까요.
2007/04/18 10:18 2007/04/1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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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플레이어-마스터와의 관계(미완성)

    Tracked from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2007/06/10 00:37  삭제

    &nbsp;다시한번, 덧붙여서.&nbsp;(이전에 세션에서 제 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신 성일님의 말씀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겠군요.)&nbsp;사실 로키님이 '역동적 긴장'이라는 용어로 제가 생각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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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7/06/10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허락도 안 받고 무단 인용해서 죄송합니다;

    • 로키 2007/06/11 0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인용은 출처만 밝히시면 자유죠~ 일반적으로 그렇고, 이 블로그 저작권 자체가 CC(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이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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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레이디의 그늘 캠페인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진행자와 참가자들의 시험기간이 서로 달라서 근 한달간 플레이를 쉬게 된데다가, 진행자 사정으로 방학중 플레이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한달 쉬는 것도 캠페인 존속이 불확실한데 ORPG에서 네 달을 쉰다는 것은 대개의 경우 캠페인을 그만둔다는 얘기나 다름없으니까요.

이 시점에서 제가 제시한 방향은 플레이의 체제를 아예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가 아닌, 글로 쓰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말이죠. 얼마전에 인상깊게 읽었던 안인중님의 PBS(Play by System)와 TRPG (외부 링크, 다이스&챗 로그인 필요) 시리즈, 蘭님과 나누었던 PBEM 얘기, 그리고 게시판 플레이용 규칙인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번역과 같은 맥락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거기서부터 얘기가 시작돼서 결국 방학이 끝날 때까지는 캠페인을 수정주의 역사 규칙으로 전환해 위키상에서 플레이하기로 했습니다. 규칙 뿐만 아니라 캠페인의 시간축 자체가 달라져서, 본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 (제 생각에는 약 100년 후)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형식의 외전 플레이가 되었습니다. 설정 결과 세 주인공이 서로를 배신하고 후대까지 악명이 자자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게 되었죠. (...) 그리고 이 미래가 바로 외전의 시간대인 것입니다.

이렇게 채팅으로 하는 동시성 플레이에서 위키로 하는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환한 것은 여러가지 흥미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한다고 봅니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은 캠페인 자체의 존속. 안인중님의 말씀마따나, RPG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지만 사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일주일에 3~4시간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채팅 플레이가 어려운 사정이 있어도 비동시성 플레이 체제로 전환하면 형태는 달라도 캠페인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꾸준하게 유지될 때의 얘기지만요.

여기에 부수되는 것이 시간 부담이 줄어든다는 점입니다. 한번에 뭉텅이 시간을 내야 하는 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비동시성 플레이는 틈이 날 때 짬짬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입니다. 또하나, 이건 비동시성 플레이 전반이라기보다는 수정주의 역사의 특징이지만 TRPG 규칙을 사용하는 비동시성 플레이와는 달리 진행자가 계속해서 글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습니다. (사실은 진행자도 없긴 합니..퍽)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포도원의 개들을 잠시 게시판 플레이로 했을 때 느낀 점인데, 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규칙을 비동시성 플레이에 그대로 사용하려고 하면 동시성 플레이의 열등한 대체물밖에 될 수가 없더군요. 제아무리 급하게 글을 올려도 채팅 기준으로는 속터지도록 느리니... 반면 수정주의 역사의 경우 일주일에 글이 3~4개만 올라와도 플레이가 충분한 속도로 진행되므로 글로 하는 플레이에 보다 적합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는 비동시성 플레이에 특화된 체계와 규칙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비동시성 플레이가 제공하는 또다른 가능성이라면 캠페인의 사건을 신선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수정주의 역사 자체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동시성 플레이와 비동시성 플레이의 성격과도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 채팅이나 대면상황은 닥쳐오는 사건을 그때그때 '겪는' 데에 적합하다면, 시간 간격을 두고 생각해 가며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사건의 의미와 진상을 '음미하는' 데에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정주의 역사라는 규칙 고유의 특성상, 캠페인의 사건을 미래에서 바라본다는 점은 더더욱 캠페인에 새로운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미래의 이야기를 외전으로 먼저 진행했기 때문에 나중에 본 캠페인으로 돌아왔을 때는 일정한 방향성, 혹은 제약이 생겨 있을 테니까요. 어려움도 있겠지만 확실히 생각해볼 거리는 풍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태(?) 이전부터 다소 침체되어 있었던 캠페인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점들을 기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대치일 뿐이고, 예상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그중 첫번째는 꾸준한 흥미유지가 가능할까 하는 점입니다. 동시성 플레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지만 비동시성 플레이는 많은 경우 정기적으로 모여야 하는 제약이 없기 때문에 흥미를 잃으면 슬그머니 그만두기도 쉽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소재가 세 참가자분이 만든 인물인만큼 어느정도 흥미의 요소는 갖춰졌지만, 흐지부지되지 않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이끌어 가는데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캠페인의 미래가 어느정도 결정된다는 어려움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했듯 새로운 자극이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제약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채팅 플레이로 돌아왔을 때 정해진 미래에 맞추기 위해 진행자가 치밀한 구성을 짜고 그 속에서 참가자들이 선택을 제약받을 위험도 있죠. 100년 후의 미래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꼭 당대의 진상에 부합하라는 법은 없는만큼 옴쭉달싹도 못할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캠페인의 큰 줄기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정도의 제약은 오히려 창의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문제라기보다는 흥미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지만요.

세번째는 선택한 매체 고유의 특징이지만, 위키라는 매체의 생소함이 있습니다. 전에 정보관리에 대한 단상 위키 편에서 다루었듯 위키는 아직 생소하고 사용편의가 떨어지는 매체에 속합니다. 그래서 게시판 플레이가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버젼 비교, RSS 내보내기, 백링크 기능, 풍부한 구문 지원 등 위키의 지나치게(..) 뛰어난 기능성 때문에 결국 위키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성 부분은 자세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극복하고자 했습니다. 앞으로의 플레이에 어떻게 하면 위키라는 매체의 단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활용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이상과 같이 플레이 체제를 동시성 플레이인 ORPG 채팅에서 비동시성 플레이인 위키 플레이로 전환한데 대한 제 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비동시성 플레이는 동시성 플레이의 대체물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능성들을 제공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플레이 경험만이 증명해 주겠죠. 방학이 끝난 다음에 이러한 기대와 문제의식이 얼마나 드러났는지 비교해 보아도 재미있을듯 합니다.
2007/04/16 01:44 2007/04/16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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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카스트 2007/04/16 0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달씩이나, 확실히 포도원의 제다이 플레이도 안심할 때는 아니군요.

    RPG를 하기 힘든 것은 여러 사람이 동시에 3~4시간 (그리고 가끔 그 이상)을 내야 한다는 점도 있지만 역시 일주일에 3~4시간을 낸다는 자체도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취미생활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데 저런 시간을 항상 낸다는 것도 쉬운 일인 것만은 아니죠.

    비동시성 플레이-동시성 플레이의 일면만 각각 보아온 저로서는 동시성 플레이가 비동시성 플레이로 전향되었을 때의 변화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군요. 물론 플레이어의 경험에 따라 꽤나 다른 플레이가 되겠지만요.

    • 로키 2007/04/16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뭐 포도원의 제다이는 지금처럼 유지할 생각입니다. 캠페인 두개를 하기가 힘든 거지 방학중에 하나를 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요.

      글쎄요, 일주일에 뭉텅이로 3~4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을지 몰라도 일주일에 짬짬이 3~4시간마저도 낼 수 없다면 그 취미는 별로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활동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비동시성 플레이의 매력은 자투리 시간의 활용이라고 보이니까요.

      저도 어떤 변화가 나타날지 궁금하군요. 방학이 끝나고 나서는 어떤 글을 올리게 될지 말이죠. '아무도 글 안올려서 흐지부지 되다니 너무해..ㅠㅠ'만은 아니길..(..)

    • 아카스트 2007/04/16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주일에 짬짬히 3~4시간 내기 힘든 건 제가 할 수 없는 이과생이기 때문입(...). 게다가 요즈음 과제가 폭주하는 바람에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RPG와 글쓰기에 시간을 할당하기도 곤란해서입니다. 학생의 한계일까나요.

      뭐 플레이는 잘 되시길 빌겠습니다.

    • 로키 2007/04/16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런.. 이과생은 힘든 거군요. 법대생도 힘들다고 말해도 과제는 잘 없고 한학기에 한번 있는 시험이 중심이 되는지라.. 그래도 취미생활 중 RPG가 순위가 높은 건 바람직한 현상입..(음?)

  2. orches 2007/04/16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을 읽고 제가 순간 생각했던 비정기성 플레이의 문제점은.. 블로그나 위키나 (rrs를 사용하지 않고 어쩌다가 가끔 들어간다고 가정할 때)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확인할 길이 거의 없다는데 있달까요.. 그리고 세 사람이 만든 떡밥은 의의로 범위가 컸습니.. [시길의 한 당파를 말아먹은 세 pc들!] 이니까요.

    ps. 가볍게 스타트를 끊자! (물론 연구자금이나 권위도와는 좀 상관없을지도 모릅니.. 제목에 낚이시면 아니되십니..) 라는 마음으로 위키 페이지를 작성하면서 뻘뻘대었습니.. [웃음]

    • 로키 2007/04/16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확실히 그런 점도 있겠군요. 제로보드를 생각하다가 결국 도쿠위키를 택한데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죠. 그래서 비동시성 플레이에서는 필요한 기능이 갖춰진 매체를 고르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 글 올리셨군요. (와아 기뻐라~) 제가 보기에는 연구자금이나 권위도 올릴 조건은 충분한데.. 자세한 얘기는 그 글에 댓글을 달아서 하도록 하죠.

    • orches 2007/04/16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참 파닥파닥거리는 미끼를 물고 놓지 않았던 orches입니다! 실시간은 아니지만, 위키에 달린 덧굴을 읽고 기뻤어요 ^^ 더불어서.. 위키랑 룰을 사용못하고 버벅대는 것도 모자라서 걱정을 끼치고 있는 것같아서 무척 죄송스럽습니다 ㅠㅠ

    • 로키 2007/04/17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죄송이라뇨~ 오히려 저한테만 익숙하지 다른 분들에게는 생소한 규칙과 위키를 강요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죄송하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

    • orches 2007/04/17 06: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대한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버벅대는 부분이 생겼군요. (땀 뻘뻘..) 오른 연구자금 1으로 에르단에 대한 권위도를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연구원의 경우는 라피에가 맞아요. 근데.. 둘이 너무 이름이 비슷해서 저도 모르게 (시험기간이라 정신이 없기도 하고요..) 라피나라고 적었습니다. 고생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넙죽] 이제 위키에 가신다면 수정한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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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로빈의 마스터링 법칙 (Robin's Laws of Good Game Mastering)을 굉장히 재밌게 보았는데, 특히 참가자를 유형별로 구분해서 보다 재미있는 모험을 제공하는 내용이 아주 유용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유형에 경직되어 얽매이기 시작하면 오히려 역효과일 테고, '이 참가자는 무엇을 원하는가' 하고 생각하는 하나의 시작점으로서 유용한 도구인 것 같습니다.

책에서 구분하는 참가자 유형, 그리고 그 활용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가자 유형

파워 플레이어 - 경험치, 부, 마법물품, 능력 등의 보상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형입니다. 주인공을 더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투중시형 - 신나는 전투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유형. 파워 플레이어와 겹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지만, 전투 자체를 좋아하는 것과 인물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다른 동기라는 점에서 구분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두가지 유형에 다 속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니까요)

전술가 - 합리적 수단과 계획을 통한 문제해결을 가장 좋아하는 유형.

전문가 - 특정 인물 유형을 아주 좋아해서 캠페인이나 배경에 무관하게 그 범주에 속하는 인물만 하려고 하는 유형. (예를 들어 닌자) 누구든지 좋아하는 인물 유형은 있지만, 전문가 성격이 강할수록 자기 선호 인물을 하는 것이 역할놀이를 하는 목적이라, 선호 인물을 할 수 없다면 캠페인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자기 선호 유형에 가까운 인물을 만들려고 합니다.

배우 - 인물 연기에서 재미를 느끼는 유형. 자기 주인공답게 행동하는 것,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연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야기꾼 - 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데서 가장 재미를 느끼는 유형. 극적 재미를 위해 놀이의 다른 많은 요소를 희생할 수 있습니다. 제가 확연히 속하는 유형.

무심한 참가자 - RPG에 큰 관심없이 친구따라 강남온 유형. 자신이 중심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모두와 함께 뭔가를 하고 있다는데 중점을 둡니다. 소극적인 참가자를 모두 이 유형에 넣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소극적 참가자의 동기가 무엇인가에 따라 다를듯. 어쨌든 책의 조언은 이런 유형에게는 연기나 주인공 자리를 강요해서 괴롭히지 말고 내버려 두라는 것인데, 그점이 꽤 신선하다고 느꼈습니다. 한국 RPG의 현실상 보기 어려운 유형이기는 합니다.

물론 이들 유형은 고정된 목록이 아니라 생각의 시작점일 뿐이고, 많은 참가자들은 두가지 이상의 유형에 속하거나 여기 나열되지 않는 유형에 속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탐험가 등) 어느 쪽이든 중요한 것은 유형 구분이 아니라 각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참가자 유형의 활용

참가자 유형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 모험에서 참가자의 동기를 충족시켜주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가자 유형보다는 오히려 참가자 동기라든지 참가자 욕구라는 말이 어울릴지도요.

예를 들어 파워 플레이어는 경험치나 보물, 새로운 힘 등을 얻을 수 있는 모험이 재밌을 것이며, 전투중시형은 흥분되는 전투 기회가 없으면 지루할지도 모릅니다. 전술가는 제 아무리 극적인 얘기라도 합리적 문제해결과 계획수립 기회가 없었다면 허무할 것이며, 전문가는 자기 선호유형의 특징이 살아날 기회가 없었다면 별 재미가 없겠죠. 배우는 자기 인물의 갈등과 성격이 충분히 드러났는지, 이야기꾼은 전체 서술의 흐름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볼 것입니다.

그래서 책에서는 모험을 만든 후에는 항상 각 참가자별로 그 참가자의 동기가 충족될 요소가 있었는지 확인해볼 것을 조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공주를 구출하는 모험이라면 팀의 파워 플레이어를 위한 마법물품은 충분히 있는지, 전술가를 위한 문제해결의 기회는 있는지 등등. 이렇게 하면 기존 시나리오를 사용해도 참가자들에 맞게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가자 욕구에 맞는 모험을 만들어라...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당연한 얘기이면서도 상당히 좋은 조언입니다. 특히 참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 보는 시작점으로서의 유형은 꽤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7/04/10 21:56 2007/04/10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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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이것까지 고려해야 하는구나.

    Tracked from 모튼군의 망상공간 2007/03/24 09:52  삭제

    <P>마스터링은 하면 할수록 는다고는 하는데,</P> <P>역시 이런 이론도 챙겨야 한다.</P>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Tealeaf 2006/04/26 0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이쿠.. 제가 한번 올리려고 했는데 로키님이 먼저 보셨군요.
    '무심한 참가자'의 경우도 본적이 있는데,
    정말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거부하더군요..;
    뭘 원하는지 몰라서 결국 버려뒀던 기억이 납니다;

  2. 엘에스디 2006/04/2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크 타워에도 이 내용이 나왔던 듯 'ㅁ' 재밌었죠 (...)
    그 외에 동인계, 연애 매니아, 용자, 오타쿠 등의 유형도 (...)

  3. 로키 2006/04/28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ealeaf// 뭐 아마 그게 그 참가자가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역시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뭐하고 싶냐고 물어보는 거겠지만, 그럴 때 대답이 잘 없는 분들은 정말 미치는 게지요. 엘에스디// 호, 도크타워에도 나왔었나요. 혹시 몇일분인지 기억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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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는 무엇인가를 '하는' 놀이인만큼 참가자가 적극적인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오늘 한 언더월드 3기 21화 플레이에서 시하야님의 관전 후 지적을 듣고, 때로는 적극적인 태도의 참가자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적극성에 편중이 생겼을 때나 과도할 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요.

적극성의 편중과 과도함이 유발할 수 있는 문제는 두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일부 참가자만 적극적일 경우 소극적 참가자를 더 소극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지나치게 대사량이 많을 경우 특히 ORPG에서는 진행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소극적인 참가자의 소극화 가중. 이것은 적극성의 편중에 의해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사실 모든 참가자가 똑같이 적극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서 재미를 느낄테고, 어떤 사람은 지켜보면서 간간히만 얘기해도 재미를 느낄지 모르니까요. 예전에 참가자 유형에 대한 글에서 언급했듯, 참가자의 욕구에 따라서는 적극성을 지나치게 유도하는 것은 오히려 그 참가자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문제삼는 이유는, 한두명의 참가자가 너무 적극적이면 나머지 참가자들 (특히 원래 소극적이었다면)은 자신들이 행동할 이유나 기회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행자가 뭔가 상황을 제시해도 '저 참가자가 반응하겠지, 뭐'라고 생각하고 가만 있는다거나, 다른 참가자가 열심히 말하는 통에 개입할 틈이 없다거나요.

게다가 이러한 과정은 악순환이 되기 쉽습니다. 적극적 참가자는 좀 가만 있으려 해도 다른 참가자들의 반응이 없으면 '앗, 큰일났다! 내가 어떻게든 해야!' 하고 나서게 되고, 그러면 또 소극적 참가자들은 '음...이번에도 내가 나설 필요는 없겠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상황이 심해지면 결국 플레이는 적극적 참가자들만 계속 반응하고 행동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고 말지요. 이 현상이 심해지면 예전에 다루었던 편애와도 맞닿을 수 있다고 봅니다.

두번째로, TRPG에서도 어느정도 그렇겠지만 특히 ORPG에서는 진행자의 '버퍼링' 문제가 있습니다. 타자로 치다 보면 정보량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고, 치는 동안에도 참가자들의 행동으로 인해 이미 상황이 변해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이나 선언이 많으면 진행자가 처리해야 할 분량은 더 늘어나고, 그 결과 진행은 느려집니다. 이것은 적극성이 지나치거나 시간적으로 집중되어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활발한 선언과 질문 자체를 문제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RPG는 참가자의 선택과 판단 위에 성립하며, 이들 요소를 부정하는 것은 취미로서의 RPG를 부정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참가자로부터 들어오는 정보가 한꺼번에 몰리면 진행자로서는 처리에 지연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참가자의 입력을 어느정도 분산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때로 적극적인 참가자는 그 사실을 잊고 진행자에게 너무 빨리, 많은 대응거리를 주어서 본의아니게 진행을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제기해 보았지만, 특정한 상황 (편중됨, 혹은 과도함)에서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적극적 참가 자체를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적극적 참가는 전개를 예상 외의 방향으로 이끌고, 게임내의 결과를 통해 진행자와 다른 참가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등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으니까요. 이러한 이점을 취하면서 문제의 소지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적극적 참가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참가의 적극성을 다른 참가자들에게 돌리는 것이 한가지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주인공에게 주목을 끄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일행에게도 주목이 돌아가도록 신경쓰는 것이죠. 다른 주인공에게 도움을 구하거나, 사건을 다른 주인공과 연관짓거나 ('그리고 보니 그 용의자 갑돌씨하고 동향 사람이네?'), 다른 주인공의 대사나 행등에 적극 대응하는 식으로 말이죠. 가장 능동적인 참가자들은 진행자 경력 또한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더욱 이러한 역할에 적합하다고 봅니다.

둘째, 진행자가 할 수 있는 일로는 무대 조명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이 있습니다. 시하야님이 얘기하신 건데, ORPG에서는 '이번 장면은 을순이 처리해 주세요' 하는 식으로 상당히 구체적인 지정도 좋아 보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종의 대화권 설정 의미도 있기 때문에 대사의 양과 흐름 또한 제어할 수 있습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Primetime Adventures) 같은 경우는 화면 존재감과 장면 신청 규칙을 통해 무대 조명 분배를 규칙 자체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셋째, 역시 적극적 참가자가 할 수 있는 일로 가장 쉬우면서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바로 조금 기다리는 것입니다. 진행자가 한참 장면 첫머리 묘사를 치고 있을 때 아무리 떠오르는 질문이 많아도 다 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또 어떤 대사에 다른 참가자들이 바로 대답하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진행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다른 참가자들의 적극성을 유도하는 것 외에도, 조금 기다리는 것을 습관화하면 훨씬 다듬어진 대사와 선언이 나온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참가자의 적극성이 편중되거나 과도할 때 유발할 수 있는 문제와 그 대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참가자의 적극성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RPG는 뭔가를 '하는'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RPG는 동시에 뭔가를 '같이 하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보다 대사량이 월등히 많은 참가자라면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RPG를 모두와 함께 하고 있는가, 아니면 혼자서만 하고 있는가.
2006/11/26 06:17 2006/11/26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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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승민 2006/11/26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스터링만 줄기차게 하다보니 가끔 플레이어를 할 기회가 떨어졌을때 너무 기뻐서 왕왕 저런 "과도하게 적극적인" 참가자가 됬던 기억이 있습니다. ;;;

    말씀하신 방법들 역시 진행자의 재량으로서 절제가 가능한 부분들이고, 역시 RPG플레이 현장(?)에서는 마스터와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의사조율이 가능하다는 RPG의 기본 성격상... 그냥 대상이 되는 플레이어에게 "비중이 좀 지나치게 너 중심으로 돌아가는 면이 있는데, 그걸 다른 사람들의 개성도 같이 띄워주는 방향으로도 표현해봐"라고 직접 조율하는 것도 나쁘지 않더군요.

    즉 제 경험상으로는 말씀하신 "첫째"가 가장 즉효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기본 예의만 있다면 다같이 재미있게 즐기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선의는 누구에게도 있더군요.

    • 로키 2006/11/28 1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그래요..^^ RPG를 제일 재밌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인 참가자의 적극성에 '과도' 같은 말을 쓰자니 참으로 얄궂지만 말이죠. 스스로 적극적이면서 다른 참가자의 적극성 역시 끌어내는 참가자는 진행자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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