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미우 구하기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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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먼 스페이스 (Transhuman Space) 배경으로 미딕 (Mythic) 규칙을 사용한 플레이를 해보았습니다. 주인공은 다음 두 명입니다.

새끼고양이

냐~

하나는 지능 향상 아기고양이 미우, 또 하나는 현재 미우의 뇌에 이식된 인공 지능 이식물입니다. 정말 하드 SF나 동화가 아니면 어려울 것 같은 엉뚱하면서도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설정이었습니다.

이야기는 베트남의 한 실험실에 있던 지능 향상 고양이 미우 (처음 시작했을 때는 ‘키티’)가 낯선 차에서 깨면서 시작합니다. 머리는 아프고 눈앞에는 느닷없이 인터페이스 디스플레이가 보이는 키티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차량에 폭탄이 설치된 것이 발견되면서 모두가 대피해서 나옵니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서 낯선 목소리가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키티가 머뭇거리자 강제로 몸을 조종해서 공항으로 도망시키지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티엔 바 딘. 태평양 전쟁 참전용사로, 고도의 지능과 자아 개념을 갖춘 인공 지능인 그는 키티에게 멋대로 미우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 뒤 환태평양 사회주의 연합의 이념과 미우 자신의 생명을 위해 유럽 연합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우는 마음씨 좋아 보이는 유럽 관광객 가족을 발견해 데려가 달라고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만 세관에서 압수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미우는 도망쳐서 비행기 하나로 몰래 숨어들지만 미우를 쫓는 사람들은 비행기 이륙을 멈추고, 다시 뛰쳐나와서 출발 직전인 유럽 연합행 비행기를 발견해 화물칸이 닫히기 직전에 뛰어듭니다. 마침내 무사히 유럽 연합으로 향하게 된 미우는 티엔이 틀어주는 군가를 들으며(?) 잠이 듭니다.

재밌게 한 플레이였지만 시간은 꽤 걸렸습니다. 특히 진행자 없이 돌리다 보니 하나하나 질문하고 판정하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죠. 그런 면에서 진행자를 포함한 서술권의 확실한 역할 분배는 시간 절약의 이점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단 누군가 권한을 가지고 서술한 것에 수정이나 추가하는 것과, 어떤 상황이 나왔는데 어느 쪽에도 서술권이 없어서 서로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나 처리 시간 면에서 크게 다르니까요.

그래서 돌아가면서 한 장면씩 진행을 하고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가할 것이 있을 때만 미딕의 상황 판정 규칙을 사용하는
것도 제안했습니다만, 그렇게 하면 이의나 추가의 빈도에 따라서는 사실상 전통적 진행자 구조와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요즘 생각하는 것인데, 전에 판정 스트레스 글에서 썼듯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둔 규칙과 극적 현실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는 규칙의 차이입니다. 전자는 어떤 결과를 바라면서 판정을 하되 그 가상현실의 물리 혹은 논리 법칙에 대비해서 성공 여부를 판정하고, 후자는 물리나 논리 법칙과 상관없이 판정 성패는 극적 결과를 정하고 물리적, 논리적으로는 참여자가 모두 공감만 하면 괜찮은 방식이 보통인 것 같습니다.

미딕은 판정의 극적 의미와 상관없이 그 판정의 논리적 확률에 비교해서 판정한다는 점에서 가상현실 표현이 기반인 규칙입니다. 그러한 논리 확률과 바라는 극적 결과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 판정 스트레스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어떻게 보면 모든 가상현실 판정과 다르지 않죠. 또 미딕에서는 그 확률을 참가자가 스스로 정한다는 면에서 바라는 극적 결과가 일어나게 확률을 높이는 압력과 자신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확률에 맞추는 압력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우가 화물칸에 뛰어드는 판정은 확률상 굉장히 어려웠지만 저와 승한님 둘 다 성공을 바라는 판정이었는데 거의 실패할 뻔했었죠. ‘미우가 무사히 탈출한다’하고 ‘미우가 실패해서 잡혀 죽는다’하고 극적 만족감 면에서 동등할 리가 없는데도 가상현실을 엄격하게 따라가자면 바라지 않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이 가상현실 판정의 근본적인 모순이 아닌가 합니다.

반면 장점이라면 실패하면 해악이 따른다는 긴박감, 그리고 참가자가 예상하고 바라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의외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두 가지는 다른 방법으로도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요즘 나오는 규칙이 흔히 그렇듯 미딕도 완전히 가상현실에만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판정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극점수가 그 대표적인 예죠. 실제로 미우가 화물칸에 뛰어드는 판정도 극점수를 소모해서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극점수와 같은 규칙은 이처럼 가상현실과 극적 욕구의 괴리를 어느 정도 좁히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판정 외에 미딕의 다른 일면은 재미있게도 전혀 가상현실이 아닌 극적 현실 제조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작위 사건이 발생할 때면 주사위를 굴려서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 적수에 대한 신뢰’라든지 ‘새로 등장할 인물: 법적 방해자’ 등 새로운 상황을 무작위로 제조합니다. 이건 확률을 조작하는 규칙 없고, 앞뒤를 봐서 논리가 맞지 않으면 다시 굴려도 된다는 점에서 판정이라기보다는 생각을 자극하는 창의적 제약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이 미딕을 사용한 첫 플레이에 대한 제 감상입니다. 2부에서는 미우의 이야기를 완결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재밌는 플레이 함께 해주신 승한님께 감사드립니다~

4 thoughts on “꼬마 미우 구하기 1부

  1. Wishsong

    장면과 이야기 자체가 참가자들의 서술로 모든 것이 만들어지고 참가자에 의해 움직이는 만큼, 참가자들의 ‘이야기 구현 욕구’가 최대한으로 충족되는 느낌이었어요(성공/실패는 둘째로 치고). 또한 단순한 ‘이야기 만들기’로 그치지 않도록 참가자들이 생각해 내는 이야기들의 실현 가능성을 판정하는 페이트 차트와, ‘참가자들이 예측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외부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실시하는 랜덤 이벤트 등이 무척 인상 깊었죠.

    아쉬웠던 점은 일단 로키님이 지적하신 시간 걸리는 문제, 그리고 미우가 티엔에게 너무 쉽게(?) 설득되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강하게 으르고 어르는 게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건 제가 아무 생각없이 ‘yes’를 한 게 가장 큰 원인이겠죠;

    그리고 한가지 에러 플레이를 발견했습니다. 판정시 십의 자리 숫자-일의 자리 숫자가 일치하게 되면(11, 22, 33….) 무작위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무작위 사건은 미딕의 서술에 흥미를 더해주는 만큼, 다음번에는 잊지 않고 챙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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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확실히 참가자에게서 직접 서술이 나오니까 진행자에게서 먼저 나오는 것보다 참가자의 의견이 직접 반영되는 면은 있네요. 참가자만 있을 때 서술권의 공백이 생겨서 시간이 걸리는 문제와 확률 결정의 역설적 동기부여 부분은 좀 아쉽긴 하지만, 말씀대로 이야기를 만드는 데 많은 효용이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미우의 반응은 상황상 적절했던 것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일단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인 새끼고양이가 불확정한 상황에 내던져진 상태에서 의지가 확고한 성인이 너의 목숨이 위험하다면서 지시를 내렸으니 자연스러운 반응 아닐까요? 게다가 꼭두각시 기능까지 감안하면 이건 거의 스톡홀름 증후군..(..)

      아, 저도 그 규칙을 잊고 있었네요. 다음번에는 적용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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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백휘광영

    어딘가에서 링크를 보고 흘러들어와서 잘 보았습니다.
    상당히 흥미로운 시스템이군요

    여담이지만 일반적으로 국제선에 탑승할 동물들에 대하여는 “검역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셨다면 조금 혼돈이 덜 하셨을것 같네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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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아하 그렇겠네요~ THS 세계에서는 지능향상 동물은 어느 정도 인권을 인정받기는 하지만 그래도 검역증명서는 필요할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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