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러드 핵 간단한 소개

블러드 핵은 OSR RPG인 “블랙 핵”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 뱀파이어 RPG입니다. 당연히 WOD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블랙 핵 감상문은 악마김씨님이 쓴 http://rpg-talk.net/Board/3714 를 참조하세요. 아래는 블랙 핵 규칙입니다.

 

블랙 핵 한국어판: https://the-black-hack.jehaisleprintemps.net/korean/

한국어판 추가 자료: https://the-black-hack.jehaisleprintemps.net/korean/additional-things.html

(번역: 오시욱님)

 

블러드 핵의 특징

블랙 핵의 기본적인 규칙은 위의 감상문과 한국어판에 나와있으니, 여기서는 블러드 핵만의 특징을 설명하겠습니다.

 

  1. 뱀파이어

블러드 핵의 뱀파이어는 인간보다 강한 괴물입니다. 우선 뱀파이어는 초자연적인 불로불사의 언데드이기 때문에 노화, 독, 호흡, 식사(피를 제외한) 등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또한 전자기기에도 감지되지도 않지요. 게다가 뱀파이어는 밤의 사냥꾼이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고, 피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뱀파이어의 육체는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피해는 절반만 받으며, HP가 0 이하로 떨어져도 행동불능이 될 뿐 죽지 않습니다. 물론 태양빛과 불, 은 무기에 닿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1. 피와 인간성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의 영향을 받은 뱀파이어 RPG답게 블러드 핵에서는 피와 인간성이라는 수치가 등장합니다. 각 수치는 소모품 주사위(Usage Die)로 되어 있어서, 줄어드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주사위를 굴려서 1-2가 나오면 아래 단계로 떨어집니다. (d20→d12→d10→d8→d4→없음)

피는 뱀파이어가 살아가기 위한 식량으로, 인간이나 동물에게서 얻습니다. 기본적으로 일정 시간이 지날 때마다 줄어들며, 피를 소모해서 HP를 회복하거나 특수 능력을 사용할 때도 역시 줄어듭니다. 피가 완전히 없어지면 피에 굶주린 야수가 되며, 그 상태에서 피를 더 쓰면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집니다. 뱀파이어는 레벨이 높아질수록 피를 더욱 많이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은 다른 소모품 주사위와는 달리 d4부터 d20까지 올라가는데, d4면 성인에 가깝고, d20이면 괴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간성이 d20을 넘으면 완전한 야수가 되어 NPC로 전락합니다. 뱀파이어는 인간성이 높을수록 피를 덜 먹고 각종 뱀파이어의 약점에서 벗어납니다. 반면 인간성이 낮아질수록 힘과 피해가 강해지는 대신 여러 가지 제약을 받습니다.

 

  1. 네 가지 가문

블러드 핵에서는 마법사 가문 아눈나키, 새롭게 떠오르는 전사 가문 드라쿨, 변신술사이자 사냥꾼인 엔키두, 유혹자이자 연인인 릴림 이렇게 네 가지 가문이 있습니다. 각 가문마다 다양한 특징과 장점이 있습니다. (레벨 당 얻는 HP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가문 능력 등)

 

  1. 특수 능력과 혈마법

블러드 핵의 뱀파이어들은 하늘을 날거나, 동물을 지배하거나, 인간을 조종하는 등 다양한 특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특수 능력은 하급, 중급, 상급으로 나누어지며, 레벨이 오를 때마다 일정 개수의 특수 능력을 얻습니다. 일부 능력은 피를 소모해야 합니다. 혈마법은 무척 강력하지만, 많은 시간과 피를 소모하는 능력입니다.

 

  1. 각종 적과 NPC

블러드 핵에서는 평범한 인간부터 고대 뱀파이어까지 뱀파이어물에 어울리는 40가지 적과 NPC가 등장합니다. 각각 짧은 소개글과 수치, 특수 능력이 있습니다.

 

결론

앞에서도 말했듯 블러드 핵은 d20 규칙에 ‘뱀파이어:더 마스커레이드’의 분위기를 섞은 RPG입니다. 다른 블랙 핵 자매작과 마찬가지로 블러드 핵 역시 무척 간결한 작품이지만, 60페이지도 안 되는 내용 안에서 깔끔하게 잘 만들었네요. 다만 GM 가이드나 세계 설정이 거의 없다시피 하므로 이미 d20과 WOD의 문법에 익숙할수록 플레이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기획회의 486호(2019.04.20)에 기고한 글입니다. (리디북스 링크)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이야기놀이, TRPG

 

어느 놀이 이야기

“여러분 앞에는 3m 정도 높이의 커다란 문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었고, 튼튼해 보이네요. 덫은 없어 보이지만 문을 열지 못하도록 반대편에서 막은 것 같습니다.”

“문 상태는 어떤가요?”

“적어도 몇백 년은 된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썩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들이받아서 부수겠습니다.”

“근력 판정을 하세요.”

“주사위를 굴려 보겠습니다… 성공했네요!”

“문은 우지끈! 하는 소리를 내면서 부서집니다. 문 안쪽 방 한가운데는 거대한 악마상이 있고, 석상 앞에는 붉은 피부의 괴물이 이쪽을 바라봅니다. 한눈에 봐도 무척 화난 것 같네요.”

“두말할 것도 없네요. 칼을 뽑습니다.”

“저는 일행들에게 축복의 마법을 걸겠습니다.”

“좋아요, 전투 준비하세요.”

위의 이야기는 즉흥극도 아니고, 소꿉놀이도 아니다. 더더구나 컴퓨터 게임도, 보드게임도 아니다. 바로 TRPG를 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다.

TRPG?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 즉 TRPG는 플레이어들이 테이블에 모여 상상 속 무대에서 살아가는 캐릭터를 맡아서 캐릭터의 말과 행동을 선언하는 역할연기 놀이이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가진 능력과 성격 등을 바탕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캐릭터들의 행동이 성공했는지는 정해진 규칙과 지침에 따라 결정한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은 게임마스터 역할을 맡아 캐릭터들이 만날 친구나 적, 그리고 세계 그 자체를 연기하고 전체 플레이를 조율한다.

난독증도 치료하는 TRPG의 매력

2017년, 미국 잡지 《뉴요커》에서는 ‘던전스 & 드래곤스의 기이한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TRPG의 대표주자인 ‘D&D(던전스 & 드래곤스)’가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서는 자신의 보드게임 카페에서 아이들을 위해 D&D의 게임마스터를 맡고 있는 존 프리먼이 겪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어느 날, 어느 플레이어의 어머니가 길가에서 존을 불러 세우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을 걸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그 여성의 아들은 난독증을 앓고 있었고, 몇 주 전부터 D&D를 플레이하기 전에는 단 몇 초도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그 아이는 밤을 새워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쓴다고 한다. “어떻게 했든 간에, 그 비법을 알려주세요.”

난독증을 앓고 있는 아이조차 글을 쓰게 한 TRPG의 매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TRPG는 게임이다

아이가 TRPG에 푹 빠진 이유는, TRPG가 즐거운 놀이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형식을 갖추고 규칙을 추가한 놀이, 즉 ‘게임’이다.

사람이 즐기면서 무언가를 할 때 발휘되는 잠재력은 무척 크다. 공자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라고 말했다. 이 아이 역시 자기 캐릭터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놀이로 인식했기에 장애마저 극복하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글을 쓸 정도로 몰두할 수 있었다.

게임이 즐거운 이유는 무엇인가? 《GAME-상호작용 이야기》(이용설 저)에서는 게임을 스토리텔링과 상호작용성을 조합한 매체로 본다. 스토리텔링은 상대에게 알리려는 내용을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책이나 TV, 영화처럼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매체와는 달리 게임은 플레이어가 취하는 행동에 반응을 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이 행동과 반응이 연쇄 과정을 일으키면서 상호작용성을 만든다. 즉, 게임은 사용자를 스토리텔링 속에 참여하게 하는 매체이다. 직접 경험해서 받아들이는 내용이 얼마나 강력한지는 순자가 “듣지 않음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TRPG는 즉흥극이나 소꿉놀이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형식을 갖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TRPG는 플레이어가 선언한 행동이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혹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 속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결정하는 분명한 규칙을 가졌다. “내가 너를 칼로 찔렀어.” “아냐! 네가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내가 널 총으로 쐈어!”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TRPG에서는 규칙을 사용해 결과를 명확하게 정한다.

이처럼 TRPG가 게임이 된 이유는, TRPG가 게임말을 가지고 테이블 위에서 상대의 말과 싸워 이기는 미니어처 워게임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이다.

TRPG의 탄생과 발전

TRPG의 역사는 게리 가이각스가 TRPG 회사인 TSR을 세우고 D&D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게리 가이각스는 플레이어들이 각자 게임말을 하나씩 맡아 플레이하는 미니어처 워게임 ‘체인메일’을 만들었는데, 이후 게리 가이각스는 체인메일을 데이브 아네슨의 아이디어에 따라 가상의 세계에서 캐릭터들이 모험을 하는 형식으로 바꾸어서 1974년 최초의 D&D를 완성했다.

하지만 TRPG는 탄생할 때부터 워게임이나 보드게임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TRPG의 진짜 목표는 정량적이고 명확한 승리 대신 플레이어들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를 즐기는 데 있기 때문이다.

게리 가이각스와 데이브 아네슨은 D&D 플레이어 핸드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잠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재미를 위해서다. 각각의 플레이들은 재미를 맛보면서 “승리한다” – 그러므로 당신이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면 당신은 승리한 것이다! 당신의 캐릭터가 죽는다고 해도 재미를 맛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당신은 언제나 새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

롤플레잉 게임에서 이기는 것은 실제의 생활에서 이기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이어가고, 그것을 통해 살아가는 것이다. 재미는 게임을 즐기는 데 있는 것이지, 끝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게임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게 되고,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레전드 오브 더 파이브 링스, ‘세븐스 씨’ 등의 TRPG을 만든 게임 제작자 존 윅은 “만약 체스 말에 이름을 붙이고, 각 말이 가진 동기에 따라 말을 움직인다면, 이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이다.”라고 말했다. 즉, TRPG는 승리를 위해 사용하고 소모하는 게임말을 캐릭터로 삼아 동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하면서,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게임이 된 것이다.

이후 TRPG는 ‘크툴루의 부름’, ‘트레블러’,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 등의 작품이 나오면서 호러, SF, 어반 판타지 등 여러 장르로 뻗어 나갔고, 2000년대 이후에는 인디 RPG의 붐과 함께 ‘폴라리스’, ‘평온한 한 해’, ‘퀼’ 등 게임마스터를 두지 않거나, 플레이어들이 게임마스터처럼 세계를 관리하거나, 아예 혼자서 즐기는 규칙을 제공하는 등 실험적인 게임들도 많이 등장했다.

꺼지지 않는 TRPG의 인기

하지만 ‘규칙에 따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게임’이라는 TRPG의 형식은 오늘날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CRPG)이 계승했고, 그에 따라 TRPG가 다른 게임에 비해 가지고 있던 장점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 1970년대 중반 D&D에 영감을 받아 그 경험을 모사하기 위해 등장한 CRPG는 이후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 콘솔의 발전과 함께 플레이어들에게 화려한 영상과 사운드를 제공하며, 인간 게임마스터가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펼친다. 게다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같은 가상 세계 안에서 동시에 협력해서 플레이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TRPG는 오히려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D&D 5판의 출판사 위자드 오브 더 코스트는 1997년 TSR을 합병한 이후 가장 많은 D&D 판매 실적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2016년 한 해 동안 D&D를 즐긴 미국인의 수는 860만 명에 다다른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또한 TRPG를 즐기는 미국 성우들이 진행하는 D&D 플레이 ‘크리티컬 롤’은 2016년 1월 기준으로 트위치에서 누적 시청 시간 3700만분을 기록했고, 유튜브에서는 17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TRPG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90년대 중반 D&D(1983년 개정판)가 한국에 소개된 후 잠시 인기를 끌면서 몇몇 작품들이 추가로 소개되었다가, 초여명의 ‘겁스’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긴 침묵에 빠졌던 한국의 RPG 시장은 크라우드 펀딩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웹툰 작가 및 성우 등이 ‘던전월드’를 플레이한 영상 ‘침X펄X풍 TRPG’가 화제가 되었다.

CRPG의 등장과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여전히 TRPG를 즐길까? CRPG가 대체할 수 없는 TRPG만의 강점은 무엇일까?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한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

CRPG와 TRPG의 가장 큰 차이는 즉흥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유무이다. CRPG는 제작자가 완성한 스토리텔링이다. CRPG의 이야기에는 바꿀 수 없는 끝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이 게임 안에서 할 수 있는 행동과 이에 대응하는 게임 세계의 반응 역시 제작자들이 준비한 내용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무리 방대한 내용과 다양한 공략법이 준비된 대작 RPG라도 몇십 시간 동안 플레이를 즐긴 다음에는 콘텐츠 대부분을 소진한 채 다음 작품이나 업데이트, 또는 DLC가 나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직접 MOD를 만들거나 혹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이메일, SNS를 통해 제작자에게 피드백을 주기도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든 간에 즉석에서 해결할 수는 없으며,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TRPG는 즉흥적인 창조력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소통이 필수적인 게임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가는 놀이는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임마스터는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하더라도 모든 경우의 분기와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없으며,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도 없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고, 심지어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도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참석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함께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혼자만의 결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TRPG는 모두 같이 즐기는 게임이며, 다른 플레이어들을 무시하는 순간 플레이는 재미없어 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게임마스터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부사항을 덧붙이고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결말이나 반전을 만들곤 한다. 심지어 즉석에서 새 규칙을 고안할 때도 있다. 플레이어 역시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선언을 할 뿐만 아니라, 게임마스터에게 제안을 던져 이야기의 방향을 새로 정하기도 한다.

테이블에서 만들어지는 맥락

이렇게 모두가 함께 창조력을 발휘해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테이블에는 플레이에 참여한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문화나 배경지식, 즉 그 테이블의 맥락이 생긴다.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플레이어들은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서로를 믿고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므로 맥락이 만들어진 테이블에서는 불확실성이 플레이를 위협하는 불안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질리지 않고 언제까지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된다. 맥락은 CRPG처럼 복제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며, 오직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플레이를 해야 비로소 형성된다.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작품

결국, TRPG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미리 완성된 기성품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시행착오를 거치고 좌충우돌하며 점점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오직 우리만이 그 내역을 알고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겁스에서는 “RPG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런 설명을 했다.

다른 문화는 최대 다수의 관객을 노리고 만들어지지만, RPG 플레이는 참여한 사람들 모두가 순전히 자기들을 위해 만들어내는 “수제품”입니다.

자기 자신이 빚어낸 작품은 그 어떠한 걸작보다도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TRPG는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올드 스쿨 RPG 원칙 해설서,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

프린키피아 아포크리파

 

올드 스쿨 RPG의 마스터링 및 플레이 원칙을 설명한 자료집, 프린키파 아포크리파입니다.

이 작품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4.0 인터내셔널 라이선스 아래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습니다.

출시 예정작: 푸른 수염의 신부

이야기와 놀이 출시 예정작, 푸른 수염의 신부를 소개합니다!

푸른 수염의 신부는 부유한 귀족 푸른 수염의 신부가 된 여성의 선택을 다루는 호러 RPG입니다. 물론 옛 동화 ‘푸른 수염’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입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저택에서 결혼식을 마친 다음, 새 신부는 신랑에게서 열쇠꾸러미를 받습니다.

“나는 볼 일이 있어 며칠 동안 나가봐야 하오. 이 열쇠들은 집 안의 모든 방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요. 어디든 열고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이 작은 열쇠는 회랑 마지막에 있는 방을 여는 열쇠인데, 이 열쇠는 사용하면 안 되오. 이 곳만큼은 절대 들어가지 마시오.”

신랑은 길을 떠나고, 신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신부의 여러 인격인 ‘자매’ 중 하나가 되어 신부를 이끄는 역할을 합니다. 자매들은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반목하면서 신부를 집 안의 다양한 방으로 이끕니다. 신부는 각 방에서 여러가지 끔찍한 공포를 마주하면서 점점 망가지고 다치며 이 저택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파헤쳐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방에서 지금까지 여러분이 내린 선택에 따라 결말이 정해집니다. 신부는 그 모든 공포와 참상에도 불구하고 신랑을 믿고 따를 것인가요? 아니면 불충하게도 푸른 수염을 피해 멀리 달아날 건가요?

그도 아니면, 호기심을 못 이겨 마지막 방의 문을 열고 진상을, 그리고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요?

푸른 수염의 신부는 내년 중후반 펀딩을 통해 한국어 출간을 할 예정이며, 번역은 로키(이지형)님이 맡습니다. 물론 룰북 뿐만 아니라 신부가 마주칠 여러 방과 물품 등을 소개하는 ‘Book of Rooms’, 여러 가지 대체 배경을 소개하는 ‘Book of Mirror’, 푸른 수염의 신부 플레이 흐름을 이야기로 재편성해서 소개한 ‘Book of Lore’도 같이 낼 예정입니다.

그럼, 내년 출간을 기대해주세요!

The Sisters Adeline: Groundskeeper’s Notes on a Game of Bluebeard’s Bride

“You know what thinking is? It’s just a fancy word for changing your mind.”
– Dr. Who

On March 10, 2019 I was Groundskeeper for a game of Bluebeard’s Bride in the Shinchon area. The game is based on the fairytale of the famous serial black widower Bluebeard, but as you can tell from the title this game focuses on the bride who married him. I personally think of it as a work of feminist horror that focuses on the violence, helplessness, and horror felt by women in partriarchy.

The cover incribed with the letters "Bluebeard's Bride," under which is a woman holding a ring of keys caught in the arms of a man with a blue beard.

Also the book is fricking gorgeous??

So there we were, five women gathered in a room on a fine Sunday. The first question I got going in was, we have four players. How many Brides are there? The answer: One! Each player plays not a different bride but an aspect of her, called a Sister. The Sisters control the Bride’s actions based on their control of her wedding ring, and Sisters who do not currently hold the ring can also speak and act to an extent. In fact some of the best fun in the game was the Sisters’ increasingly anxious speculations about whether they can trust Bluebeard, and whether the strange happenings in the mansion were due to his crimes or the faithlessness of the other brides. I found this an innovative and enjoyable approach to having a single-protagonist adventure with multiple players, not to mention a sparkling examination of the female protagonist’s inner life.

At this point Ego, who would later choose to play the Fatale, asked:

– This reminds me of that movie. What was it called? About mind-controlling a kid. –

We experienced a couple minutes of confusion trying to figure out what kind of horror movie she was talking about, until we realized…

The five emotions from Pixar's Inside Out: Clockwise from top, Joy, Fear, Sadness, Anger, and Disgust.

Ohhhhh.

This is the single easiest way I know to explain the concept of the Sisters. Carl Jung who? Female archetypes what? It’s Inside Out with a grown woman, complete with five temperamental sprites living in your head! No one has just one thought or emotion all the time, right? Much like IO, Bluebeard’s Bride employs a lively narrative device to express the complexity in all of us.

The Sisters, who each express an aspect of the Bride’s self, have relationships and stories of their own that builds up their characters and spices up the game. For instance, the Virgin (the Bride’s naïvete and love of freedom), played by Mwai-jjeong, disliked Ego’s Fatale (the Bride’s sensuality and her will to dominate) because the Fatale would make lewd jokes whenever the Bride got drunk, bringing down her reputation. (I guess we know why she had to look outside the village for a husband, eh?) The Fatale in turn thinks the Mother (the caring but also authoritarian aspect of the Bride), played by Arbonne, is too rigid in her morality and needs to learn the art of manipulating people.

Each Sister also added more depth to the relationship between Bluebeard and the Bride during the Wedding Preparation phase. The Virgin was moved by Bluebeard’s gesture of picking wildflowers and clumsily weaving a garland for her. The Witch (the Bride’s supernatural and feminine power) played by Starfire fell for him when the nobleman took off his fancy shirt to help her family’s farmwork. A gander at his half-naked body didn’t hurt, either. I especially loved this look into the more human sides of Bluebeard that helped bring home how a serial murderer of women could charm so many of them into marrying him, though his fortune certainly helped of course.

The Wedding Preparation is also a golden opportunity for Groundskeepers like me because the players are sitting there and telling us how to torment and scare their characters. With Bluebeard’s Bride, which does not take to advance preparation and where improvisation is (ahem) key, the notes taken during this step help guide and shape the Groundskeeper’s creativity.

Below are excerpts of the notes I took during the break I called after character making:

First, I referenced the Room Threats from the book to outline themes by each Sister.

  • Fatale: Body > Gender (the Fatale is not womanly enough to be a good Bride), Religion: Instruction (she is certain Bluebeard is unfaithful to her because he is far too eligible and attractive to settle for a country girl)
  • Virgin: Sexuality > Perversion (she smiles at men in ways that make her loop cheap)
  • Witch: Body > Beauty Standards (her hair is too wild), Religion > Rituals (she sacrificed one of the chickens in a forbidden ritual), Religion > Underworld (she has already touched the pagan & forbidden)
  • Mother: Motherhood > Sacrifice (she regrets leaving behind the chickens she was raising to marry Bluebeard), Religion > Punishment (the Witch did a forbidden thing!)

I also took note of images from the chargen process that left an impression on me and seemed to suggest further conflict.

  • Witch: Her hair is not neat enough, conducted a blasphemous ritual with blood-tainted milk (white skin + blood? Blood spreading in bath water?)
  • Virgin: Smiles too much, loves freedom and her own space
  • Fatale: Talks too much, is conscious of her humble origins
  • Mother, Fatale: Drawn to the fresh urban smell and masculine strength of Bluebeard

I wasn’t able to use everything I wrote down and had additional inspiration from outside my notes, but getting down even these fragmented impressions helped me organize my thoughts and gave me ideas for images and motifs to use during play. These notes also make me wistful, by the way, because I could have done so much more to mess up the Sisters.

You know the story of Bluebeard, right? Sketchy rich guy plagued by rumors about his mysteriously disappeared wives. He hands the keys of his palatial mansion to his newest innocent bride and gives her free run of the house except for one room. Then he is urgently called away and forced to travel before the newlyweds can even consummate their marriage.

The play begins with the Bride at home, after her groom has ridden away.

– The Bride finds her gaze drawn to one of the keys on the ring. Mother, tell me what it looks like. –

– It is gold-colored, and extraordinarily large and long. The gold has flaked off in places, as though it has been plated. Despite its coloring it comes across as austere rather than luxurious. –

Once a Sister gives a description of a key, the Groundskeeper describes a room based on the key. I linked the key to Religion, one of the Mother’s motifs, to come up with an old chapel. Since the Mother missed the chickens she had to leave behind to marry Bluebeard, I further linked this place to the threat of Motherhood > Sacrifice to make it about a mother who had her children stripped from her by Bluebeard.

– The door that matches the key is of clean-grained wood of a pale gold hue. The handles are two hands held palm together in prayer. When you push the key between the wooden palms the lock opens smoothly. When you take the hand-shaped handles and push, the doors open. The room beckons. You enter, and the door closes behind you. –

In the chapel, where golden sunlight spills through stained glass, the Bride meets a crying maidservant who weeps and prays before the altar to get her children back. The Bride witnesses horrible bloodshed when the glued-together remains of small children’s ashes and bones fall upon a priest, tearing him apart. She is forced to doubt her own perceptions, however, when the priest she just saw die emerges from the confessional as though nothing had happened. After trying to console the weeping maid and kicking away the ash-children who tried to climb up her legs, she tells herself Bluebeard didn’t take anyone’s child away–he was just taking care of children who had no one else to turn to. She takes the gold brocade behind the altar as a token of Faithfulness. It is pure blasphemy for a wife to cast aspersions on her husband, after all.

That faith is challenged in the very next room. A pretty key adorned with pink flowers opens a glass hothouse filled with the very wildflowers that Bluebeard had picked for her, drawing cries of admiration from our bride. The Virgin instantly sets herself to weaving a garland for her hair from the blooms, improved to be more vivid and fragrant than the wild ones that grew behind her house. At that moment a woman rises up from a shallow grave mere feet away, the flowers wrapped around her body and growing out of her eyes. She harangues the Bride, saying women must be perfect flowers of silence and obedience; the Bride’s cries turn to screams of horror. The garland she has woven into her hair dig roots into her scalp, and frantically tearing them out leaves her bleeding.

The Bride turns the flower woman’s attention to another victim and escapes, but her mind is filled with doubt. Was the woman a former bride of Bluebeard? What happened to her?

The next room is a woodcrafting workshop opened with a wooden key, and the Bride is frightened to find yet more strange children made half of wood. When the carpenter tells the children to “Go to your mother” they go and cleave to a grotesque wooden form in the corner, and the Sisters tell each other that Bluebeard must have been tricked by a monstrous wood woman into having strange children with her.

The Mother puts the rest at ease, telling them such misfortune does not befall a woman of worth. The Virgin tells herself that she is more beautiful than any flower, and will make Bluebeard happy unlike the prior women. The Fatale, formerly suspicious of Bluebeard, actually feels herself eased by the evidence of a former wife. It’s the Witch who feels new suspicions spring up, but the other three won’t listen and the Bride reaffirms her Faithfulness to Bluebeard.

When the Sisters open a beautifully crafted and bejeweled door whose lock fits a sparkling silver key, a room full of jewelry greets the Bride with its splendors, overwhelming her with her bridegroom’s wealth and his love for her. The moment the Fatale tries on a diamond necklace, however, the Bride falls over from its crushing weight, and the Sisters are overcome with the visions of the many women who wore the same necklace and how they died. The Virgin tries to tear it off but only succeeds in cutting her hand. The Bride crawls from the room, staggering under the weight of lives and blood and the conviction that Bluebeard killed his brides. As soon as she makes it outside the door the diamonds shatter like glass, the unnatural weight disappearing with them.

This, hilariously enough, was the moment the Mother and Virgin turned away from Bluebeard for good. “He gave us fake diamonds?!” We all burst out laughing at that. Murder is one thing, but fake jewelry is absolutely unforgivable. You know?

With two tokens of Faithfulness and two of Disloyalty, the Bride is torn between belief in and suspicion of Bluebeard. A search for the door opened by the night-black lacquered key that the  Witch is drawn to leads them to a basement the Bride didn’t know existed, one enveloped in a darkness so deep it stifles the light of her candle.

There is light in this darkness, however. Wherever the Bride stepps the wildflawers from home, the same flowers Bluebeared once plucked for her, spark with illumination to light her way. They aren’t the “improved” variation that overwhelmed her with its scent in the hothouse but the small, unassuming blossoms she remembered from home, each a tiny but clear point of light.

She finds them at the center of the room, not the lurid litany of beauty and death that was etched across her mind in the jewelry room, but sad and shy shadows in the darkness. They ask the Bride, Adeline (that is what the players decided to call her), to stay: It’s comfortable and safe here, they say. Don’t return to the world of men that took their lives so cruelly.

Adeline, however, says no. She won’t hide from the sun like that. She will take the evidence to the town and stop Bluebeard. She consoles them in turn, telling them they can be brave no matter how hard and scary things are. When she has gone around the circle of grieving women she finds herself back aboveground, in front of the house. She turns her back on Bluebeard’s mansion and goes home, holding gold brocade, flower petals, broken glass, a block of wood, and a small clump of wildflowers.

Did the villagers believe Adeline when she came home alone a mere day after her wedding, her wedding dress torn and bloody, claiming her rich husband is a murderer and holding out a small pile of knick-knacks as proof? Would you have believed her? I think the important thing is that she went from ignoring and pushing away the voices of other women’s pain, telling herself that she is different and she alone would be loved, safe, and happy, to believing them, holding them by the hand, and finally going back to try and stop the carnage. To me the story of that change, that courage, was the true story of our session.

Going into this game, my biggest concern was the balance between the “feminist” and “horror” aspects of its premise. Fall off that tightrope and I feared that only the horror would remain and the worst parts of the genre at that, making a numbing show of violence against women rather than empathizing with their pain.

It was the players, not I, who found the answer to this dilemma. Adeline started out fearing and disbelieving the brides in the mansion, insisting that she was different, that she would “win” an unwinnable game by being more pious, more obedient, wiser, and more mature. After witnessing the depth of their pain she finally realized she was just like these women. That they felt the same fear and the same pain, and their fates were inseparable from hers. It was the conversations between the Sisters, veering between fear and hope and a hundred other emotions, that led to this conclusion. These conversations were the heart and conscience of the game.

Once I had this insight I realized that my role as Groundskeeper wasn’t just to scare the players or to keep ratcheting up the horror. That may have worked for a different game, don’t get me wrong, but the more sad than frightening final room with the ghosts of the women felt right for that moment and for that particular table.

I am not opposed to the concept of showing women’s pain, of course. The house rightfully holds sad and horrific memories of violence, and the Bride would be traumatized for experiencing these memories. My role as Groundskeeper, I came to believe, was to follow the players’ signal and to support them so that they are not numbed by the horror but can feel and empathize with the victims.

The change in Adeline as she went from rejection and othering of women’s suffering to empathy and solidarity was a continuing thread in a sometimes difficult session. It was something we could all hold onto, a bond that held us together. Enough of these threads may, in time, weave together into a lifeline that will save us in the end.

(Translated from the original Korean post)

푸른수염의 신부 마스터링 후기

3월 10일 오후 신촌에서 푸른수염의 신부(Bluebeard’s Bride) 플레이를 진행했습니다. 푸른수염의 신부는 옛날이야기의 유명한 아내 연쇄살인범 푸른수염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 룰에서는 제목처럼 그와 결혼한 신부가 주인공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무력감, 그리고 그로 인한 공포를 소재로 다루는 페미니스트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푸른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열쇠꾸러미를 든 여성을 끌어안는 표지.

일단 예쁜 책으로 먹고 들어가는…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받았던 질문 하나, 플레이어가 4명인데 신부는 몇 명인가요? 답은 한 명입니다! 각 플레이어는 각자 다른 신부가 아닌, 신부의 한 면모, 즉 ‘자매(Sister)’를 맡습니다. 자매들은 결혼반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신부의 행동을 통제하며, 결혼반지를 쥐지 않은 신부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남편인 푸른수염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저택의 이상한 현상은 남편이 저지른 범죄 때문인지 아니면 전처들이 이상해서 그런 건지 자매들끼리 나누는 대화야말로 플레이의 핵심이었고,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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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놀이 2019년 계획

안녕하세요, 이야기와 놀이입니다.

이야기와 놀이 2019년 계획을 간략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1. 울타리 너머, 또 다른 모험으로

이야기와 놀이의 다음 작품인 <울타리 너머>는 2월 말, 또는 3월 초에 텀블벅을 통해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책이 세 권이나 되는 만큼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2. 노벰버 매트릭스

<스프롤>의 첫 번째 자료집인 <노벰버 매트릭스>는 <울타리 너머> 프로젝트가 완료된 후 올해 하반기 출시 예정입니다. 간단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최대한 빠르게 출간하려고 합니다. 물론 스프롤 후원자분들께는 크라우드 펀딩의 결과 여부와는 관계없이 PDF를 드리겠습니다.

 

3. 새 작품

현재 몇몇 작품의 국내 출판을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확정된 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야기와 놀이를 사랑해주신 모든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찢기 RPG (Tearable RPG)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무료 RPG 하나를 번역합니다.

찢기 RPG (Tearable RPG)는 Third Act Publishing의 Jim MCClure와 Jim Merritt가 제작한 게임으로, 캐릭터 시트를 찢으면서 진행하는 RPG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캐릭터가 가진 기능의 글자를 찢으면서 판정을 성공시킵니다. 캐릭터는 더 이상 시트를 찢을 수 없을 때 게임에서 제거됩니다. 플레이는 시나리오 목적이 달성되거나, 모든 캐릭터들이 제거되면 끝납니다.

 

원본은 여기에 있습니다: https://www.drivethrurpg.com/product/202680/Tearable-RPG

번역본 (문서판): 찢기 RPG

 

모두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다잉(Undying) 소개글

 

 

언다잉은 인간의 피를 먹고 사는 포식자들, 즉 흡혈귀들의 삶과 음모, 계급 다툼을 다룬 RPG입니다. 이 주제를 본 순간 분명 ‘뱀파이어: 더 마스커레이드’를 떠올린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언다잉은 V:tM을 AWE 식으로 재해석한 게임이니까요.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언다잉은 V:tM과 몬스터하트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으로, 언다잉은 기타 AWE 자매작들과는 달리 주사위를 쓰지 않습니다. 대신 언다잉은 흡혈귀답게 ‘피’라는 게임 속 자원을 사용해 이야기에 변수를 만듭니다.

피, 빚, 지위, 인간성

언다잉의 핵심은 피, 빚, 지위, 인간성입니다. 모든 포식자는 이 네 가지를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며, 포식자의 운명 또한 이 네 가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피: 피는 포식자의 생명이자 힘입니다. 포식자는 하루에 1점씩 피가 줄어들며, 피가 바닥나면 죽음과도 같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피는 포식자가 각종 이능을 발휘하고 적들과 싸울 때 사용하는 자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포식자는 사냥하고, 피를 마셔야 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빚: 모든 포식자는 각종 의무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빚은 남들에게 지우는 의무입니다. 포식자 사이에서 빚은 마치 화폐처럼 사용되어서 공동체를 지탱합니다. 빚은 작은 빚과 큰 빚이 있는데, 작은 빚은 상대에게 각종 수고스러운 일을 시키거나 자원을 소모하도록 만들며, 큰 빚은 상대에게 목숨을 걸거나 큰 희생을 감수하도록 만듭니다.

지위: 지위는 포식자 공동체에서 캐릭터의 현재 위치가 얼마나 높은지 나타냅니다. 지위가 높은 포식자는 공동체 내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좋은 사냥터도 얻을 수 있습니다(사냥터가 좋을수록 더욱 안전하게 사냥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떄에 따라서는 사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포식자 공동체는 음모와 계략이 난무하는 사회이므로 한때 우두머리였던 사람이 곧바로 불가촉천민으로 떨어질 수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지위는 상대에게 지운 빚과 진 빚,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 각종 플레이어 액션 등으로 결정됩니다.

인간성: 마지막으로, 인간성은 포식자가 얼마나 사냥감, 즉 인간들과 가깝게 지내고 그들을 아끼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성이 높을수록 포식자에게는 그만큼 사회적인 약점이 많아지며, 축적할 수 있는 피도 적어집니다. 하지만 인간성이 낮아지면 마음속 야수에 굴복하여 영영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도 커집니다. 특이하게도 언다잉에서는 플레이가 끝날 때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캐릭터의 행동을 보고 새롭게 인간성 단계를 정해줍니다.

정형화된 플레이

언다잉은 AWE RPG답게 플레이어북과 플레이어 액션, GM의 강령/원칙/GM 액션으로 플레이어와 GM이 포식자들의 투쟁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내합니다. 그뿐 아니라 언다잉은 플레이의 구조까지 ‘밤 장면’과 ‘막간 장면’으로 나누어 이야기의 구조를 정형화시켰습니다.

우선 밤 장면은 포식자들의 공동체를 흔들 만한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면 캐릭터들이 자기 야망을 추구하면서 서로 협력하거나 배반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룹니다. 사건이 해결되고 공동체가 안정을 되찾으면 막간 장면이 시작됩니다. 막간 장면은 몇 개월부터 몇 세기에 이르는 시간 동안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포식자 공동체에서 어떤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지 거시적으로 다룹니다. 그러다가 무언가 현 상태가 흔들리고 혼란이 발생하면, 시점을 확대해 다시 밤 장면을 플레이하게 됩니다.

밤 장면은 언다잉 플레이의 핵심입니다. 밤 장면에서 플레이어는 사냥을 하고, 피를 마시며, 사냥감을 홀리거나,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포식자와 거래하거나, 방해하거나, 싸울 수도 있습니다. 포식자들은 자신이 가진 피와 지위, 그리고 남에게 지운 빚을 써서 남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올라야 합니다.

플레이북은 각 포식자의 유형을 나눈 분류로(악마, 악몽, 꼭두각시 주인, 관능주의자, 늑대), 포식자가 어떻게 해야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지, 다른 포식자와 사냥감들에 맞서 어떤 특수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정합니다. 다른 AWE RPG와는 달리 언다잉의 PC는 ‘성장’의 개념이 없습니다. 오직 피와 빚, 인간성, 지위만이 포식자를 정의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포식자들은 어떤 존재인가? “전승”

언다잉은 포식자들이 무엇을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반면, 포식자들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는 각 테이블에 맡깁니다. GM과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시작할 때, 포식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승(Lore)을 정해야 합니다. 포식자들은 어떤 존재인지? 무슨 약점을 가졌는지? 태양빛 아래에서 어떻게 약해지는지? 피를 사용해 어떤 이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이 모든 사항은 책에 준비된 질문 목록과 플레이어들 사이의 논의를 통해 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언다잉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왕좌의 게임에 뱀파이어:더 마스커레이드를 섞은 RPG입니다. 인간과 야수 사이를 오가는 정체성의 고민? 탐미적인 시점? 물론 플레이어들이 원한다면 롤플레이로 나타낼 수는 있겠지만, 언다잉은 결국 포식자들의 영원한 권력 투쟁을 다루는 RPG이며, 오직 그 부분만을 중점적으로, 정말로 멋지게 나타냈습니다. 해외의 어떤 게이머는 언다잉을 ‘V:tM의 정수만을 뽑은 RPG’라고 하는데, 저 역시 동의합니다. 권력극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그리고 흡혈귀물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해볼 만합니다.

 

[Let’s Read] 미쓰라스 (7장)

7장: 전투

미쓰라스의 전투는 다음 컨셉을 지향합니다.

  • 무척 위험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영웅도 수적으로 밀리면 질 수 있습니다.
  • 반드시 누군가 죽어서 끝날 필요가 없습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거나,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도주도 가능합니다)
  • 비록 미니어쳐를 쓸 필요는 없지만, 각종 행동과 테크닉 등을 세밀하게 만들어서 전술적인 전투를 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위의 요소들을 모두 합쳐서 위험하고도 흥미진진한 전투를 지향합니다.

미쓰라스는 전투 요소를 다음 여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전투 스타일, 전투 라운드, 전투 행동, 무기 크기/길이, 교전, 특수 효과.

전투 스타일

전투 스타일은 문화권이나 직업, 무기 유파 등에 따라 배우는 무기와 방어구의 종류입니다. 예를 들어 야만인들은 창, 도끼, 활을 전투 스타일로 배우는 반면, 로마 군단병은 투창과 소검, 단검, 방패를 전투 스타일로 배우는 식입니다.

전투 스타일은 사용 무기 모음일 뿐만 아니라 해당 문화권/직업/유파의 특징이며, 각 전투 스타일마다 특정 전투 상황에서 유리한 전투 특성을 한 두 가지씩 얻습니다. (예: 기마 민족은 말 위에서 싸우면 유리한 특성을 얻고, 군단병은 진열을 짜서 싸우면 유리합니다). 자신의 전투 스타일 바깥의 무기를 사용하는 캐릭터는 무기가 얼마나 다른지에 따라 페널티를 받습니다.

전투 라운드

각 전투 라운드는 5초 동안 벌어지는 행동을 기준으로 합니다. 전투 라운드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선권: 모든 전투 참가자는 1d10을 굴려 우선권 보너스를 더해 가장 높은 참가자부터 차례로 움직입니다. 우선권이 같을 경우 동시에 움직입니다. 무거운 갑옷을 입으면 우선권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우선권 순서는 특별한 행동이나 효과가 없는 한 계속 그대로 유지됩니다.

2) 사이클: 각 참가자는 자신의 순서가 되면 행동 점수(AP)를 써서 능동 행동을 한 가지씩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한 가지 능동 행동을 하면 한 사이클이 끝나며, 행동 점수가 남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다시 사이클이 시작됩니다. 참가자는 자신의 순서가 아닐 때에도 언제든지 대응 행동을 할 수 있지만, 대응 행동을 할 때에도 행동 점수를 써야 합니다. 모든 참가자가 AP를 다 쓰면 다음 라운드가 됩니다.

전투 행동

전투 행동은 능동 행동, 대응 행동, 자유 행동으로 나뉩니다.

1) 능동 행동: 자신의 차례에 공격이나 주문, 이동 등 행동 점수를 사용하는 행동입니다.

2) 대응 행동: 방어, 주문 받아치기 등 자신의 차례가 아니더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행동 점수를 사용하는 행동입니다.

3) 자유 행동: 무기 떨어뜨리기, 말하기, 상황 파악 등 행동 점수를 사용하지 않고도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무기 크기/길이

미쓰라스에서는 무기마다 크기와 길이가 있습니다. 큰 무기는 무기로 방어를 할 때 방어자가 받는 피해를 줄여주며, 긴 무기는 적이 공격하지 못하는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지만 무기의 길이 보다 짧은 거리에서 싸우면 불리해집니다. 적과의 교전 거리는 이동 행동, 또는 특수 효과를 사용해 늘리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전투 방식

미쓰라스의 전투는 공격자와 방어자가 서로 행동 점수를 사용해 공격, 또는 방어를 하는 방식입니다. 공격자가 먼저 공격 굴림을 해서 명중시키면, 방어자는 방어 굴림을 해서 공격자보다 성공 단계가 같거나 높다면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공격자가 공격을 실패하면, 방어자는 그냥 넘기거나 방어 굴림을 해서 성공시 특수 효과를 발동시킬 수 있습니다.

특수 효과

캐릭터는 전투 판정에서 이길 때, 단순히 적에게 피해를 주거나 공격을 막는 것 외에 다양한 효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무장 해제, 갑옷 통과, 넘어뜨리기, 피해 늘리기, 눈 멀게 하기, 무기에 피해 주기, 부위 공격, 붙잡기, 꿰기 등등…) 미쓰라스의 전투를 전술적으로 만드는 가장 큰 요소입니다. 특수 효과는 공격으로 주는 피해와는 별도로 발휘되며, 성공 단계 차이가 많이 난다면 겨루기에서 이긴 캐릭터는 복수의 특수 효과를 섞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근접 전투

근접 전투 항목에서는 캐릭터가 서로 근접 무기가 닿는 거리에서 싸울 때 벌어지는 각종 상황을 설명합니다(각종 상황 수정치, 돌격, 은폐, 회피, 공중 전투, 밀려나기, 다수의 적, 제압 공격, 기습, 맨손 전투, 휩쓸기, 붙잡기 등등…). 근접 전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교전’이 있는데, 한 번 교전에 들어간 캐릭터와 상대는 쉽게 상대를 떨쳐버릴 수 없으며, 행동을 사용하거나(거리 변경 등) 특수 효과를 발휘해야 상대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장거리 전투

장거리 전투 항목에서는 장거리 전투의 상황 수정치, 거리 페널티, 장거리 무기가 가진 특성치, 각종 상황 등을 설명합니다.

피해 부위와 피해 단계

미쓰라스는 각 신체 부위별로 HP를 계산하며, 피해를 받은 부위는 현재 HP가 얼마나 남았는지에 따라 작은 상처(1HP 이상 남았을 때), 큰 상처(0HP 이하일때), 심각한 상처(원래 HP의 -값 이하로 떨어질 때)로 나뉩니다. 캐릭터는 어느 한 부위라도 심각한 상처를 받으면 전투불능에 빠집니다.

추가 규칙: 졸개와 부하

졸개와 부하는 영웅의 칼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적들입니다. 이들은 기본 캐릭터보다 HP도 낮고, 쉽게 쓰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