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수염의 신부 마스터링 후기

3월 10일 오후 신촌에서 푸른수염의 신부(Bluebeard’s Bride) 플레이를 진행했습니다. 푸른수염의 신부는 옛날이야기의 유명한 아내 연쇄살인범 푸른수염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이 룰에서는 제목처럼 그와 결혼한 신부가 주인공입니다.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폭력과 무력감, 그리고 그로 인한 공포를 소재로 다루는 페미니스트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푸른 턱수염을 기른 남자가 열쇠꾸러미를 든 여성을 끌어안는 표지.

일단 예쁜 책으로 먹고 들어가는…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받았던 질문 하나, 플레이어가 4명인데 신부는 몇 명인가요? 답은 한 명입니다! 각 플레이어는 각자 다른 신부가 아닌, 신부의 한 면모, 즉 ‘자매(Sister)’를 맡습니다. 자매들은 결혼반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신부의 행동을 통제하며, 결혼반지를 쥐지 않은 신부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다양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남편인 푸른수염을 과연 믿을 수 있을지, 저택의 이상한 현상은 남편이 저지른 범죄 때문인지 아니면 전처들이 이상해서 그런 건지 자매들끼리 나누는 대화야말로 플레이의 핵심이었고, 제일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플레이어 에고님의 한 마디.

– 어 마치 그 영화 같네요. 그거 뭐였죠? 어린애 조종하는 영화. –

…네? 아니 그 호러영화는 대체 뭡니까.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감정들.

그… 그런…?

‘어린애 조종하는 영화’… 맞긴 맞죠. 그렇게 표현하니 장르가 전혀 달라지는 기분입니다만.

예, 사실 카를 융이 정리한 아키타입이니 여성적인 원형이니 말해도 입만 아프고, 인사이드 아웃이라고 설명하면 쉽습니다. 한 사람의 여러 면모를 의인화해서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는 서사기법이죠. 사실 사람이란 늘 한 가지 생각이나 행동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자신 안에 여러 사람이 숨어있다고 생각해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푸른수염의 신부의 여러 내면, 즉 자매들은 그러한 다중성을 표현합니다.

이렇듯 신부의 내면을 표현하는 자매들은 자기끼리도 나름 인간관계와 사연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플레이에서 뫄이쩡님이 맡으신 큰애기(신부의 순진무구하고 자유분방한 면)는 술만 취하면 음담패설을 하고 신부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에고님의 요부(신부의 육감적인 면이자 주도권을 잡으려는 권력욕)와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부는 마을에서 혼삿길이 막혔다는 전설이 요부는 아본님이 플레이하신 어머니(남을 보살피면서 또 한편으로는 권위를 세우는 면모)는 너무 고지식하고, 적당히 계책을 써서 사람을 부려먹는 요령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죠.

또한 각 자매는 푸른수염과 신부의의 관계에도 입체적인 깊이를 더합니다. 큰애기는 푸른수염이 들꽃을 꺾어서 서툴게 엮어주는 마음에 감동했고, 별의불꽃님이 맡으신 마녀(신부의 초자연적이고 여성적인 힘)는 귀족인 푸른수염이 웃옷을 벗고 집안 농삿일을 직접 도와주는 겸손한 태도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살인마인 푸른수염이 어떻게 뭇여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는지, 그의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하는 기회이기도 했죠.

이러한 캐릭터 메이킹 단계는 마스터(저택관리인이라고 합니다)에게는 황금과 같은 플레이 준비 단계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을 괴롭히고 겁줄 수 있는지 플레이어들이 직접 알려주는 시간이니까요! 플레이를 미리 준비할 수 없고 즉흥성이 많이 작용하는 ‘푸른수염의 신부’에서는 메이킹 단계에서 하는 메모가 저택관리인에게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메이킹 단계 이후의 쉬는시간에 제가 노트에 적은 메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책에 나온 방 제작의 테마를 참고해서 각 자매별로는 다음과 같은 테마를 대충 잡아보았습니다.

  • 요부: 몸 > 여성성
  • 큰애기: 성 > 변태성, 모성 > 희생
  • 마녀: 몸 > 미의 기준, 종교 > 의식, 종교 > 지하세계
  • 어머니: 모성 > 희생, 종교 > 처벌

그리고 메이킹 단계에서 나왔던, 갈등의 소지가 보이는 인상깊은 이미지 역시 적었습니다.

  • 마녀: 머리칼이 단정치 못함
  • 큰애기: 눈웃음을 치고 다님
  • 요부: 가족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음
  • 마녀: 피 섞인 우유로 신성모독적 의식을 치렀음 (흰 피부 + 피? 목욕물에 번지는 피?)
  • 요부: 말이 많음
  • 큰애기: 자유, 자신만의 공간이 소중
  • 어머니, 요부: 도시남자의 깔끔한 냄새, 남성적 힘에 끌림

적어놓은 것을 모두 사용하지는 못했고 여기에 따로 적지 않은 내용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습니다만, 이렇게 단편적인 내용을 적기만 해도 생각이 훨씬 정리가 되고 대충 어떤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겠다 하는 윤곽이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좀더 집요하게 괴롭힐 수도 있었는데 아쉽다!

푸른수염 이야기는 아시죠? 돈많은 신랑 푸른수염, 수많은 전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막연한 소문의 주인공인 그는 순진한 신부에게 저택의 열쇠꾸러미를 건네주면서 이 저택의 모든 방에 들어가도 좋지만 단 하나의 방만은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금지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아직 초야도 치르지 않은 신부를 집에 두고 멀리 여행을 떠나죠.

플레이는 신부가 남편 없이 집에 남겨진 시점부터 시작합니다.

– 신부는 손에 든 열쇠 꾸러미 중 한 개의 열쇠에 눈이 끌리죠. 자매 중 어머니가 반지를 쥐고 있군요. 열쇠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세요. –

– 유독 크고 긴 금색의 열쇠는 도금한 듯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어요. 금빛인데도 화려하지 않고 수수한 느낌이네요. –

이렇게 열쇠의 묘사가 나오면 저택관리인은 그 열쇠의 분위기에 맞추어서 방을 생각해내고 묘사합니다. 저는 열쇠 묘사와 어머니의 테마 중 하나인 종교를 결부해서 오래된 예배당을 떠올렸습니다. 푸른수염에게 시집오면서 어머니는 기르던 닭을 두고 온 점을 아쉬워했기에 닭 이름이 로키2호에서 로키10호였고 로키1호는 마녀가 금단의 의식을 위해서 잡았다는 점은 일단 제쳐둡시다 모성 > 희생이라는 주제와 연관지어 푸른수염 때문에 자녀를 빼앗긴 어머니라는 테마를 잡았습니다.

– 열쇠가 맞는 문은 옅은 금빛의 정갈한 나무로, 손잡이는 맞잡고 기도하는 두 손의 형상입니다. 나무로 깎은 손바닥 사이로 열쇠를 밀어넣자 부드럽게 잠금이 풀리네요. 손 모양 손잡이를 잡고 밀치자 문이 열립니다. 방이 손짓하고, 신부가 들어가자 등뒤로 문이 닫힙니다. –

황금빛 햇살이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경건한 예배당 안에서 아이를 돌려달라고 제단 앞에서 울며 기도하는 하녀, 끔찍한 유혈의 현장, 그리고 자신의 눈과 정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기묘하고 끔찍한 현상들을 신부는 목격합니다. 우는 하녀를 달래기도 하고 다리에 기어오르는 어린아이 유골을 걷어차 버리기도 하지만, 푸른수염은 어린아이를 빼앗은 것이 아니라 갈곳 없는 불쌍한 아이들을 키워주었을 뿐이라고 스스로 납득하죠. 제단 뒤의 금빛 휘장을 신부는 신실의 징표로 보관합니다. 정숙한 아내가 감히 남편을 의심하는 불경을 저지를 수야 없죠.

남편에 대한 신뢰는 다음 방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분홍색 꽃이 장식된 예쁜 열쇠로 연 유리 온실은 처음에는 푸른수염이 선물했던 바로 그 정겨운 고향의 들꽃이 가득해서 탄성을 자아냈죠. 큰애기는 꽃을 따서 화관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때 정원에 얕게 묻혔던 여인이 흙에서 벌떡 일어나 온몸에 꽃이 휘감기고 눈에서도 꽃이 자라는 형상으로 여성은 아름다운 꽃이어야 한다며, 오직 복종하고 오직 아름다워야 한다고 종용하고, 신부의 탄성은 비명이 됩니다. 게다가 신부의 머리에 두른 화관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 뜯어내듯 벗어버리자 두피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꽃의 여인, 어쩌면 푸른수염의 전처였을지 모르는 그 여성의 주의를 다른 희생자에게 돌리고 나온 신부의 마음에는 이제는 의심이 가득했습니다. 목재 열쇠로 연 목공예실에서 신부는 또 다시 몸의 반이 나무인 기괴한 형상의 아이들을 보고 기겁하지요. 하지만 ‘너희 어머니에게 가라’는 목공의 명령에 방 구석의 괴상한 나무 형상과 합쳐지는 아이들을 보고 푸른수염이 잘못한 게 아니라고, 괴물 여인과 속아 결혼해서 괴물 아이들을 낳은 불운하고 불쌍한 사내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되뇌입니다.

행실이 정숙한 여인에게는 저런 불행이 닥치지 않는다고 어머니는 모두를 안심시킵니다. 나는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이전 여인들과는 달리 푸른수염을 행복하게 해드리겠다고 큰애기는 다짐합니다. 저렇게 잘난 남자에게 여자가 없을 리 없다고 의심했던 요부는 차라리 전처의 증거가 드러나자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전에는 푸른수염의 구애에 넘어갔던 마녀가 오히려 의심을 품기 시작하지만, 나머지 셋은 들으려고 하지 않죠. 이렇게 신부는 푸른수염에 대한 신뢰를 재확인합니다.

반짝반짝한 은색 열쇠가 맞는 아름다운 은세공 문을 열자 색색의 보석이 찬란한 방이 신부를 맞이합니다. 찬탄을 금치 못하며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던 신부는 요부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목에 채우자마자 그 숨막히는 무게에 쓰러지고, 이 목걸이를 걸었던 수많은 여인들의 환영, 그들이 죽어간 모습에 시달립니다. 큰애기가 목걸이를 벗어보려고 하지만 손을 다칠 뿐. 어렵게 방에서 기듯이 나오면서 신부는 푸른수염이 전처들을 죽였다는 확신을 얻고, 그 순간 다이아몬드가 유리처럼 깨어지면서 그 부자연스러운 무게도 사라집니다.

여기서 ‘아니 감히 유리를 다이아로 속여!’ 하고 큰애기와 어머니는 분노하면서 푸른수염에게서 완전히 마음이 돌아섭니다. 이 시점에서 전원 빵 터졌던… 살인은 몰라도 보석을 속이는 짓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거죠. 다 그런 겁니다.

신뢰의 징표 둘, 부정의 징표 둘을 모은 상태에서 신부의 마음은 남편을 믿고 싶은 욕망과 불안감 사이에 일렁였습니다. 그리고 마녀가 선택한 새까맣게 옻칠한 열쇠는 있는지도 몰랐던 숨겨진 지하실, 촛불의 불꽃도 버티지 못하고 꺼져버린 무거운 어둠이 가득한 방을 열었죠.

촛불은 꺼졌지만 이 어둠 속에도 빛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핀 그 정겨운 들꽃, 푸른수염이 한때 엮어주었던 그 꽃이 발을 디디는 곳마다 은은한 빛을 발하면서 주변을 밝혀주었죠. 온실에 가득 피었던 그 숨막히는 향기의 개량종이 아닌, 기억 그대로의 작고 수수한 꽃. 신부 아델린 자신처럼 꾸밈없는 모습으로 밤하늘의 별처럼 작지만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그녀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보석이 빛나는 방에서 현란하게 아로새긴 아름다움과 죽음의 향연이 아닌, 어둠 속의 짙은 그림자가 되어… 그들은 이곳에 남아달라고 신부에게 부탁했습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이곳에서 함께해달라고. 자신들을 무참히 죽인 남자의 세계로 다시 나가지 말라고.

그러나 신부, 아니, 아델린은 그렇게 햇빛을 피해 숨어살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마을로 이 증거를 가져가 푸른수염의 살인행각을 막아야 한다고, 아무리 힘들고 무서워도 용기를 낼 수 있다고 그들을 어루만지고 위로한 그녀는 어느새 다시 지상으로 나와있었습니다. 그리고 푸른수염의 저택을 등지고, 손에는 십자가와 꽃잎과 피투성이 유리, 나무조각과 작은 야생화를 쥐고 고향 마을로 돌아갔습니다.

결혼한지 하루만에 웨딩드레스는 찢어지고 피투성이가 된 채 친정에 혼자 돌아와 남편이 살인자라고 목소리 높이며, 이것이 증거라고 잡동사니를 내민 아델린의 말을 사람들은 믿어주었을까요? 세상이 믿어주었는지가 중요할까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수많은 여인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밀어내면서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나만은 사랑받고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되뇌이다가 결국 그녀들을 믿어주고 손을 잡고 위로하고, 마침내 더 이상의 희생자를 막아보려고 되돌아간 그 변화, 그 용기가 아니었을까요?

페미니스트 호러를 표방하는 푸른수염의 신부를 준비하면서 제가 가장 어렵고 불편했던 점은 자칫 ‘페미니스트’라는 취지가 희미해지고 ‘호러’만 남아서, 여성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기보다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선정적인 구경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습니다.

이 딜레마의 답은 제가 아닌 플레이어들이 찾아냈습니다. 저택에 나오는 아내들을 두려워하고 배척하면서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나는 더 순종적으로, 더 아름답게, 더 현명하게, 더 성숙하게 살아감으로써 승자가 되겠다고 악을 쓰다가 결국 아, 나도 너희와 같구나. 우리는 같은 두려움과 아픔을 느끼는구나. 우리의 운명은 서로 분리할 수 없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이어진 자매들의 대화가 결국 플레이의 심장이자 양심이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저택관리인으로서 저의 역할은 방마다 플레이어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거나 계속 공포의 수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플레이어들에게 저택을 보여주는 저의 진짜 역할은 자매들이 계속 대화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죠.

물론 저택에서 일어난 일들이 실제로 무섭고 슬픈 일이었으니 그런 잔상이 남아있는 것은 당연했고, 또 그런 기억을 목격하는 신부의 트라우마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아픔과 공포 한가운데서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고민하는 플레이가 될 수 있도록 저는 플레이어들의 신호를 따르고 수위조절을 할 뿐, 나머지는 플레이어들의 몫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끝없이 생각하고, 공감하고, 변해가는 신부의 이야기가 이 플레이 중 우리 모두가 붙잡은 하나의 끈, 우리를 이어준 끈이자 결국에는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구명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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