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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뱀이 조여올 때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애니멀 플래닛을 보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보아뱀이나 비단그물뱀 같은, 먹이를 죄어 죽이는 큰 뱀이 공격할 때의 대응책이었습니다. 큰 뱀이 어깨를 물고 목을 조이면서 몸을 칭칭 감아오는 위기의 순간! 팔 하나밖에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첫 번째는, 꼬리 끝을 잡을 수 있다면 꼬리를 거꾸로 뒤로 구부리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면 뱀이 스르르 몸을 풀어버린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알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뿌리는 것인지,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인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요. 세 번째는, 호스나 샤워기에 닿을 수 있다면 뜨겁거나 미지근한 물을 뿌리는 것입니다.

물론 워낙에 위험한 동물이니 장담은 결코 할 수 없고, 혼자서 큰 뱀을 다루는 일은 없어야겠죠.  대응할 틈도 없이 목을 부러뜨리거나 양팔을 다 조여올 수도 있고요. 어쨌든 RPG에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적어둡니다. (포도원의 제다이 캠페인에 나오는 나이트 로어틸리아라면 알 만한 내용일지도? (…))

채찍꼬리도마뱀의 처녀생식에 대한 상상

주의: 이 글은 채찍꼬리도마뱀 암컷의 교미행위, 인간 여성의 동성애 등 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합니다. 이런 내용이 불편하신 분은 백 버튼을 상큼하게 눌러주시길.

애니멀 플래닛에서 나온 한 다큐멘터리에서 본 이야기인데, 채찍꼬리 도마뱀의 일부 종 (예를 들어 뉴 멕시코 채찍꼬리도마뱀)에는 수컷이 없다고 합니다. 암컷밖에 없는 이 종의 생식은 처녀생식으로, 새끼는 모두 그 어미의 유전적 복사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비록 유전자의 혼합은 없지만 생식에는 여전히 교미행위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채찍꼬리 도마뱀은 둘씩 짝지은 다음 서로 번갈아가며 상대방 위에 올라타서 마치 암수교미와 비슷한 동작을 해야 배란이 된다고 합니다. 채찍꼬리도마뱀의 이러한 특이한 습성은 아마 암수교미로 번식이 이루어지던 때의 잔재로 보인다는군요. (많은 고양이과 동물들도 교미행위 자체를 통해 배란이 되기 때문에 인공수정이 잘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 인간에 대입한다면 이는 처녀생식하는 레즈비언들로만 이루어진 사회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건 SF 소재로 꽤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그렇잖아도 남자를 만드는 Y 염색체의 유전 정보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약 천만년 후에는 Y 염색체 (그리고 인간 남자)가 사라진다는 이론도 있던데, 그때도 인류가 존재한다면 뭔가 다른 생식 방법 혹은 영원히 살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사라지겠지요.

이런 식으로 생식 방법이 달라지면 사람들은 어떻게 달라질지 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사회가 진짜 더 평화롭고 수용적일지는 차치하고라도 성과 번식의 완전한 분리가 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클론 생식으로 유지되는 사회에서는 자아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다를지… 어쩌면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아개념이 자기 어머니와 그 위의 어머니, 또 그 위의 어머니.. 하는 식으로 먼 과거까지 이어질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먼 미래까지 자신은 살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죠. 처녀생식이 시작된 시점으로부터 개체들이 그대로 내려오고 있으므로 외부인에 대해서는 극도로 배타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상당히 보수적인 사회일지도…

유성생식과 달리 클론생식은 유전적 변화에 의한 환경적응의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 사회는 급격한 환경변화나 유전병이 있을 때는 다른 활로를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유성생식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 방법에 대한 저항이 너무 크다면 두 난자의 유전정보를 합치는 SF적(..) 번식을 택할지도 모르죠. 어느 쪽이든 어머니와 다르게 생긴 자식이라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충격일 것입니다. 특히 자아의 영속성을 (유성 생식하는 사회 이상으로) 생식에서 찾는 경우 영아 살해 같은 어두운 면도 나타날듯 하네요.

르귄 할머니의 ‘어둠의 왼손’이나 ‘세그리 행성 보고서’에서처럼 한가지 중요한 차이는 이렇게도 근본적인 사회적 차이점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 SF의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레즈비언들의 행성’은 역시 언젠가 등장시켜보고픈 내용인 겁니..(퍽)

Canis Sapiens – 늑대에게 인간을 느끼다

제가 좋아하는 채널 중 하나가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인데, 딱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Growing Up… 하는 프로이죠. 야생 동물의 새끼를 사람이 키우는 이야기인데, 동물의 종류에 따라 Growing Up Tiger, Growing Up Lion 하는 식으로 제목이 달라집니다. 오늘은 새끼 늑대들을 다룬 Growing Up Wolf였는데, 여기에서 나온 늑대 무리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어서 적어봅니다. 캠페인과 인물 발상도 떠오르고 해서…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늑대란 인간처럼 매우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동물이란 곧 정치적인 동물이지요. 보통 늑대 무리에서는 우두머리 (알파) 암수만이 성공적으로 (즉, 다 클 때까지) 새끼를 기를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알파 암수끼리 독점적으로 교미하지만, 알파 암놈과 숫놈이 서로 가까운 친족인 경우는 무리 중 다른 짝을 찾기도 합니다.

야생에서는 저런 모습이 나타나겠지만 인간의 개입은 다양한 변형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프로그램은 반 정도밖에 못 봤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 경우 베타 암놈인 ‘머라이아’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새끼들을 인간에게 익숙하게 하기 위해 생후 2개월간은 어미에게 떼어놓고 사람이 새끼들을 키웠지요.

처음부터 계획은 2개월간의 양육을 마친 후 새끼들을 다시 무리에 흡수시키는 것이었지만, 막상 때가 되자 문제가 된 것이 무리의 알파 암놈이었습니다. ‘로슬린’이라는 이 녀석은 회색과 갈색의 털을 가진 다른 늑대들과는 달리 엷은 잿빛 털이 거의 흰색으로 보이는 늠름한 암놈으로, 성격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리의 알파가 되는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를 3분 반만에 살해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냉혹하고 포악한 로슬린이 새끼 늑대들을 죽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요.

완전히 새끼들을 무리에 합류시키기 전날 밤, 새끼 늑대들을 어른들과 창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놓자 머라이아는 새끼들과의 재회에 정신없이 기뻐했습니다. 2개월 전 갑자기 사라진 새끼들을 매일매일 찾아다니고 불렀던만큼 기쁨도 컸겠지요. 하지만 다음날 창살을 치우면 로슬린의 반응이 어떨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새끼들과의 접촉이 가능해지자 로슬린은 새끼들에게 적대적이라기보다는 엄격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새끼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무리의 어른들, 특히 우두머리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리 동물인 늑대로서의 성장에 중요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로슬린은 새끼들이 본능적으로 뛰어오르면서 입을 핥자 음식을 토해서 주는 등, 차차 머라이아의 새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아마 머라이아. 로슬린은 새끼들에 대한 소유욕을 느꼈는지 머라이아가 새끼들을 가까이 할때마다 쫓아가서 제지를 가했고, 결국 머라이아는 우두머리의 뜻에 따르기 위해 새끼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이를 드러내고 쫓아내야 했지요.

결국 완벽한 결말은 아니라도 새끼들의 무리 합류는 생각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머라이아의 새끼들을 키우면서 로슬린도 이전의 냉혹한 성격이 다소 누그러졌고, 엄마 노릇하느라 지쳐서 로슬린이 잠든 사이 머라이아도 잠깐잠깐씩 새끼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새끼 늑대들이 무리 속에서 자라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희생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 세상으로 옮겨도 꽤 말이 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새끼 아이를 사이에 둔  암놈 여성끼리의 갈등이라든지, 양모와 친모의 사회적 지위가 다를 때의 사회적 역학, 어머니라는 위치가 가지는 정치적 가치 등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