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is Sapiens – 늑대에게 인간을 느끼다

제가 좋아하는 채널 중 하나가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인데, 딱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Growing Up… 하는 프로이죠. 야생 동물의 새끼를 사람이 키우는 이야기인데, 동물의 종류에 따라 Growing Up Tiger, Growing Up Lion 하는 식으로 제목이 달라집니다. 오늘은 새끼 늑대들을 다룬 Growing Up Wolf였는데, 여기에서 나온 늑대 무리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깊어서 적어봅니다. 캠페인과 인물 발상도 떠오르고 해서…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늑대란 인간처럼 매우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인 동물이란 곧 정치적인 동물이지요. 보통 늑대 무리에서는 우두머리 (알파) 암수만이 성공적으로 (즉, 다 클 때까지) 새끼를 기를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알파 암수끼리 독점적으로 교미하지만, 알파 암놈과 숫놈이 서로 가까운 친족인 경우는 무리 중 다른 짝을 찾기도 합니다.

야생에서는 저런 모습이 나타나겠지만 인간의 개입은 다양한 변형을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프로그램은 반 정도밖에 못 봤기 때문에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 경우 베타 암놈인 ‘머라이아’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새끼들을 인간에게 익숙하게 하기 위해 생후 2개월간은 어미에게 떼어놓고 사람이 새끼들을 키웠지요.

처음부터 계획은 2개월간의 양육을 마친 후 새끼들을 다시 무리에 흡수시키는 것이었지만, 막상 때가 되자 문제가 된 것이 무리의 알파 암놈이었습니다. ‘로슬린’이라는 이 녀석은 회색과 갈색의 털을 가진 다른 늑대들과는 달리 엷은 잿빛 털이 거의 흰색으로 보이는 늠름한 암놈으로, 성격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리의 알파가 되는 과정에서 자기 아버지를 3분 반만에 살해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냉혹하고 포악한 로슬린이 새끼 늑대들을 죽이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요.

완전히 새끼들을 무리에 합류시키기 전날 밤, 새끼 늑대들을 어른들과 창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놓자 머라이아는 새끼들과의 재회에 정신없이 기뻐했습니다. 2개월 전 갑자기 사라진 새끼들을 매일매일 찾아다니고 불렀던만큼 기쁨도 컸겠지요. 하지만 다음날 창살을 치우면 로슬린의 반응이 어떨지는 미지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새끼들과의 접촉이 가능해지자 로슬린은 새끼들에게 적대적이라기보다는 엄격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것은 새끼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무리의 어른들, 특히 우두머리에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무리 동물인 늑대로서의 성장에 중요하니까요. 뿐만 아니라 로슬린은 새끼들이 본능적으로 뛰어오르면서 입을 핥자 음식을 토해서 주는 등, 차차 머라이아의 새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아마 머라이아. 로슬린은 새끼들에 대한 소유욕을 느꼈는지 머라이아가 새끼들을 가까이 할때마다 쫓아가서 제지를 가했고, 결국 머라이아는 우두머리의 뜻에 따르기 위해 새끼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이를 드러내고 쫓아내야 했지요.

결국 완벽한 결말은 아니라도 새끼들의 무리 합류는 생각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낳았습니다. 머라이아의 새끼들을 키우면서 로슬린도 이전의 냉혹한 성격이 다소 누그러졌고, 엄마 노릇하느라 지쳐서 로슬린이 잠든 사이 머라이아도 잠깐잠깐씩 새끼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새끼 늑대들이 무리 속에서 자라기 위해서 어느정도의 희생은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인간 세상으로 옮겨도 꽤 말이 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새끼 아이를 사이에 둔  암놈 여성끼리의 갈등이라든지, 양모와 친모의 사회적 지위가 다를 때의 사회적 역학, 어머니라는 위치가 가지는 정치적 가치 등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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