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지다 1화 –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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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위험한 사랑의 상상은 날 위안한다
결국은 허무하게
모래처럼 날려 사라질
소진할 열정의 달콤한 폭주

차갑고 농밀한 나의 열정이
내 눈 먼 영혼을 잠식하면
뜨겁고 농염한 죄의 입맞춤
타락의 나락, 그 황홀

–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김윤아 노래)

요약

젊은 요정 군주 레드리스는 요정들의 성소인 아르베스 숲에서 황녀 아르테미시온과 깊어가는 감정을 느끼지만, 다음 황제에 대한 결정이 내려지면서 아르테미시온은 곧 죽을 운명이 됩니다.(주:엔님의 세상을 바꾼 사랑 참조) 레드리스의 사촌형 나이라하는 아르테미시온과 연을 끊으라고 레드리스에게 경고하고, 레드리스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갈등합니다.

요정 기사 핀웰은 제국에 대한 반란군을 색출하러 와일드 헌트를 이끌고 요정 기사들과 함께 한 인간 마을을 살육합니다. 핀웰의 인간 부하인 요르문트는 학살에 경악하고, 몰래 인간 어머니와 어린아이를 탈출시켜주다가 발각당합니다. 핀웰은 요르문트의 간청대로 그들을 살려주는 대신 요르문트에게 미래에 자신의 요구 세 가지를 들을 것을 맹세하게 합니다.

세월이 흐른 후, 레드리스의 대녀 스즈는 오라비 렌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가 이를 알게 된 전 약혼자 세이야가 렌을 눈앞에서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레드리스는 때마침 난입(!)해 세이야가 스즈마저 죽이는 것을 막고, 렌의 죽음은 병사로 처리하고 시체는 화장하도록 지시합니다. 스즈는 렌과 사랑을 속삭이던 이니스 강변으로 혼자 떠납니다.

다시 레드리스와 핀웰의 시간대로 돌아와서, 아르베스 숲과 주변 마을의 요정 수호자인 펜나르는 인근 마을 사람 자비에르의 다급한 애원으로 ‘꽃의 귀부인’이라는 요정이 여신을 위한 제물로 납치해간 자비에르의 아들을 구출하러 달려갑니다. 펜나르는 오래 전에 사랑하는 사이였던 꽃의 귀부인에게 아이를 되찾으려고 분투하지만 결국 그녀의 환술과 자신의 마음에 지고 맙니다. 꽃의 귀부인이 자비에르를 조종해 아들의 목을 졸라 죽이게 하는 동안 펜나르는 자비에르의 절규와 죽어가는 아이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꽃의 귀부인과 사랑을 나눕니다.

감상

정말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첫 플레이였습니다. (…) 공통적인 평가는 일단 ‘재밌었다’입니다. 상당히 감정적으로 몰입도 되고, 장면들도 짤막짤막하지만 극적이고요. 아무도 혼자서는 생각해낼 수 없었을 서술이 4인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장 속에서 나오는 과정이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전통적인 진행자 중심 구조에서는 사실 자기 주인공이 등장하는 차례가 아니면 참가자의 완전한 관심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폴라리스처럼 권한 분산형 플레이에서는 자기 주인공이 나오는 장면이 아니어도 각자 역할이 있으므로 장면 하나하나마다 굉장히 관심도가 높았습니다. 마음 (주인공 조종)보다 달그늘 (주인공의 적과 시련 조종)이 더 재밌었다는 얘기도 나오고요.

진행자 중심 구조는 일행 개념과도 직결되는데, 폴라리스에서는 일행 개념을 파괴해서 집단 모험 형식으로는 하기 어려운 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사실 개개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는 장면들 진행하면서 일행을 유지하기는 좀 어려우니까요. 일행 구조를 벗어나고 나니 내밀한 감정과 인간관계, 성적 영역을 다루는 등 이야기 자체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점도 재미있었어요. 일행이 있으면 아무래도 모두의 모험이 초점이 되지 개별 주인공의 감정과 관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에 중요했던 요인은 물론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참가자 4인이 서로 친하고, 호흡도 잘 맞고, 감각도 있고, 배경과 인물에 대해 관심이 깊은 점이 재미의 원동력이었겠죠. 규칙이나 구조는 그런 능력과 관계를 보조해주는 도구였고요.

레드리스 장면은 아무래도 처음이었던 만큼 규칙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인물의 행동 뿐만 아니라 그 행동의 결과까지 서술한다는, 다른 RPG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제에 익숙해져야 하기도 했고, 또 서술권의 경계를 확고히 하는 등 준비체조 성격이 강했죠. 그러는 동안에도 뱀프님의 훌륭한 묘사라든지 젊고 순수한 레드리스의 감정 표현, 국가의 건설 캠페인 때부터 비련의 주인공으로 관심을 모았던 아르테미시온의 아련한 슬픔이 깔린 천진함 등이 와닿더군요.

핀웰 장면은 이제 좀 더 폴라리스의 규칙과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4인이 밀고 당기는 극적 긴장이 더욱 극명하게 살아났습니다. 와일드 헌트의 섬뜩한 아름다움, 요르문트에 대한 핀웰의 집착 등 요정의 어두운 면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했죠. 네 명이서 각자 다른 역할로 척척 손발이 맞는 점도 멋졌고요.

스즈 장면은 결과가 대체로 정해진 것이라 자유도는 좀 제약이 있었지만 감정의 깊이는 상당했습니다. 스즈의 복잡한 심리라든지 세이야의 광기, 아르테미시온의 죽음 이후 사람이 달라진 레드리스의 이중인격(..) 등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인연과 감정이 짧은 장면에도 잘 나타난 것 같습니다. 앞으로 스즈를 괴롭혀줄 일이 기대됩니..(퍽)

펜나르 장면은… 펜나르는 선량한 녀석이었는데! ;ㅁ; 역시 폴라리스에는 그딴 거 없다는 걸 절감했어요..(…) 자비에르 아들은 죽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역시 자유도에 제약이 있다는 점이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펜나르를 위해 최선을 다해 교섭했습니다. 폴라리스의 극적 긴장은 각자 자기편을 위해 서술을 힘껏 끌고가는 데서 나오니까요. 정해진 역사에서 벗어나 마음껏 싸울 수 있게 되면 또 어떤 게 나올지 기대되네요.

그래도 결국 펜나르가 자기 마음에 진다는 건 아이가 죽는다는 결과에 부합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카라에 대한 마음 사이에 있는 갈등도 표현하니까 적당한 데서 항복했습니다.  무엇보다 너무 멋진 장면이었으니까요! 자비에르를 조종해 애를 죽인다는 엔님의 발상도 압권이었고요. ㅡㅡd

정말 즐거운 플레이였고, 함께해주신 세 분께 감사합니다. 다음 주에도 재밌게 플레이해요~

5 thoughts on “별이 지다 1화 – 나는 위험한 사랑을 상상한다

  1. Wishsong

    대운하 관련 농담이 모두 편집되었군요! 제 정체성의 절반이 (;ㅁ;)

    그리고 핀웰의 대사 중에서 “우리의 검과 노래 앞에 그 누가 물러서리?” 를 “물러서지 않으리?” 로 바꿔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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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Pingback: The Adamantine Watchtower of...

  3. ramiall

    안녕하세요! 폴라리스 책을 구입하고 플레이 전에 (맴버모집 전에) 인터넷 넷상에서 이런저런 관련 글들을 보다가 여기까지 찾아들게 된 학생입니다. 올려주신 흥미로운 감상 글을 보고 큰 관심이 생겨 위에 올려주신 링크를 눌러보았는데 글자가 전부 요정어로 변환되어 읽을수가 없더라고요! 그러고보니 글을 써주신 연도가 2008년이라, 링크가 깨진것이 납득이 가기도 합니다. 혹여 만약이라도 (천의 하나, 만의 하나라도) 링크 복구가 가능하다면 리플레이 글을 열람할 수 있을까하는 아쉬움에 짧게나마 댓글을 달아봅니다. 물론 당연히 못보게 된다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이건 제게 도전하고 실패하는 것과 포기하고 실패하는 것의 차이일 뿐으로 로키 님께 강요를 하려는 생각은 쌀톨만큼도 없습니다.
    덧붙여 블러그의 좋은 글들 정말 감사합니다. 막연히 미국의 카드스토리텔링 게임이라는 이미지로, 이러한 게임 놀이가 있구나하고 인식하고 있다가, orpg, trpg라는 것을 알고 이제서야 뒤늦게 게임에 도전해보려 했지만, 제대로 된 정보도 방식도 인연도 없어서 막막하던 차에 정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실제 플레이는 한번도 해보지 않았으나 그저 이렇게 책에 실린 리플레이 글과 올려주신 공개 캠패인 시트들을 읽기만 하는 것으로도 가슴이 뛰고 행복해집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항상 행복하시고, 시원한 여름 되실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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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Post author

      안녕하세요! 폴라리스와 리플레이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인코딩이 UTF-8로 되어 있으면 말씀하신 요정어가 되고 텍스트 인코딩을 한국어로 바꾸니까 되더라고요. (파이어폭스 기준으로는 보기 > 텍스트 인코딩 > 한국어) 도움이 되시면 좋겠고 문제가 지속되면 알려주세요.

      그 외에 폴라리스 플레이 관련 컨텐츠로는 같은 ‘별이 지다’ 플레이를 위시송님이 다룬 글 ( http://egloos.zum.com/Wishsong/v/3565715 ), 이전에 제가 했던 톨스타 멸망기 등이 있고요 ( http://blog.storygames.kr/entry/fall-of-tallstar ), 그 외에 폴라리스 컴패니언북에도 리플레이를 수록하고 있고, 본 블로그의 폴라리스 태그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http://blog.storygames.kr/entry/tag/%ed%8f%b4%eb%9d%bc%eb%a6%ac%ec%8a%a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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