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 플레이에 대한 생각

어쩌다 보니 아침부터 전생의 사랑을 소재로 한 뮤직 비디오를 연이어 두 편 보았습니다. 뭐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는지는 차치하고 (도탄에 빠진 반란 농민의 한복이 얼마나 하얗고 깨끗한지, 새삼 우리가 백의민족이라는 자긍심을 느꼈습..), 어쨌든 전생이라는 소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생각 하나: 과거의 발견

이와 관련해서 떠오른 것이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뱀파이어 캠페인인 소년H님의 시카고 2007입니다. 시카고 2007에서는 주인공의 과거사도 플레이 소재가 될 수 있는데, 재밌는 건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은 수치상으로 별개라는 점입니다. 한 100년 전에는 알았던 것이라 해도 이후 잊어버렸을 수도 있으니까 과거 플레이에서 성장했다고 그걸 현재에 반영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사 자체도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플레이중 ‘발견’하는 성격이 강해 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플레이하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대략의 내용은 있을지 몰라도 사건의 세부는 플레이중 드러나겠죠.

이 두 가지를 종합하면 플레이상 과거란 현재와 불가분의 연속성을 이루는 고정체가 아닌 일종의 평행 시간대일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시간대와 끝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거의 사건은, 혹은 그 기억은 현재의 사건과 인간관계에 계속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현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은 과거에 대한 인식을 계속 수정해 갑니다. 기억과 기록이 결코 완전하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은 심리학, 역사학, 범죄 수사, 재판 등 수많은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거의 성격은 전생을 소재로 삼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생과 현생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야 뭐 자명하고, 생전의 기억도 믿을 게 못 되는데 죽음을 넘은 기억은 또 어떨까요. 과거와 현재를 평행 진행하며 과거의 진실을 깨달아 가고, 과거의 의미가 현재의 사건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는 플레이는 전생 플레이에 특히 적합해 보입니다.

생각 둘: 수정주의 전생?

또하나 떠오른 생각은 수정주의 역사 (Revisionist History) 규칙을 고쳐서 공통의 전생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루어도 재밌겠다는 것. 권위도나 연구 자금 대신 인과나 업보, 인연 등이 있겠고, 전생의 사건 못지않게 현생도 중요하게 다루어야겠죠. 전생의 반복을 유도하는 과거의 힘과 이를 청산하려는 의지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도 흥미롭겠고 (전생에 죽인 사람에게 속죄한다거나), 전생의 진실을 깨달아서 현재의 문제를 푸는 것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보물을 묻은 곳은… 바로…!’)

여러모로 전생이란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입니다. 운명과 자유의지, 진실의 성격, 기억의 주관성 등 많은 주제를 다룰 수 있죠. 전생 소재가 다시 유행을 타는 건지 우연히 그랬는지는 몰라도 같은 소재의 뮤직 비디오를 두 편이나 보니 떠오른 생각입니다.

2 thoughts on “전생 플레이에 대한 생각

  1. 소년H

    한복의 깨끗함 만세? (…)

    다만 전생의 경우, 과거-현재와 달리 어떻게 서로 연결되느냐가 문제죠. 보통 전생물에서는 최면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현재 캐릭터가 전생을 꿈꾸듯 가긴 가지만요.

    반대로 아예 ‘내 전생이 이 어딘가에 연관되어 있어’라면서 그 유적을 탐사한다거나 하면서 연관이 되고..하는 식도 괜찮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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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반란의 원인은 ‘표백제 대신 쌀을 달라!’였다는 데 한표. (..)

      전현생의 연결은 꿈/최면 -> 물리적 증거 하는 순서로 가는 게 무난한 것 같아요. ‘나의 지구를 지켜줘’가 그런 식이었죠. 결정적인 순간에 픽 쓰러져서 각성(..)하면 꿈도 더 길고 확실해질 테고, 그런 단서를 연결해서 마침내 유적이나 물품을 발견하는 식이 정석일듯 해요. 물론 그 반대라든지, 여러가지 변형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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