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코루선트에서는…

포도원의 제다이를 위한 일종의 막간극 성격일까요. 물론 주인공들은 아직 모르지만, 제가 센을 잊은 게 아니라고 시위하기 위해(?)

“좋은 밤입니다, 나이트 로크락. 행선지는 어떻게 되십니까?”

통신 시스템에서 나오는 따스한 인사에 로크락은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최대한 태연하게 얘기해야 했다. 정말로 일상적인 상황인 것처럼. 마치 잘못한 게 없는 것처럼.

“좋은 밤입니다, 관제사. 일전에 등록한 사항대로 몽 칼라마리에 며칠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쪽 기술자들에게 좀 상담할 게 있어서 말이지요.”

그는 말을 끊었다. 너무 구구절절 얘기했다가는 변명처럼 들릴 것이고, 그러면 의심을 받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보려고 계기판을 이것저것 조작하기 시작했다.

“먼 길이지만 편하게 다녀오시기 바라겠습니다, 나이트 로크락. 포스가 함께 하시길.”

“포스가 함께하길.”

목이 바작바작 말라붙어서 목소리가 순간 갈라졌다. 로크락은 혹시 상대가 이상한 기색을 챌까봐 신경을 곤두세웠지만 출발 허가 신호는 정상적으로 떨어졌고, 상대의 마음이 변할세라 그는 서둘러 이륙절차를 시작했다.

제다이 템플의 비행격납고가 저 뒤로 멀어지고 ‘아쿠아룩스’ 호가 코루선트의 하늘에 높이 떠오른 후에야 그는 어느정도 긴장을 풀며 조종석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아노비스 상공을 가득 메운 시스 함선들의 폭격도, 석달 밤낮 작업한 데이터베이스가 날아갈 위기도 이겨낸 바 있는 그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거짓말에는 목이 막혀버리는 기분이었다.

“후… 이래서 죄짓고는 못산다니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옆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항법사 자리는 비어 있었다. 하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다시 한번 로크락은 자신이 꿈을 꾸었거나 환각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밤중에 불편한 잠에서 깨어났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붉은 암늑대의 눈을 처음 마주친 순간 그랬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항법사 자리에 얌전히 앉아 그를 격려하듯 바라보던 늑대의 존재가 사라진 지금 마치 혼자 버려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도 이제는 혼자나 다름없으니.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화면에 항로 좌표를 불러왔다. 시간이 없었다. 비록 발견이 늦어지도록 밤에 작업하고 경보에 시간지연을 걸어놓기는 했지만 그 이전에도 혹시 이상이 발견되면 그가 한 짓이 발각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당연히 몽 칼라마리로 갈 수는 없었다. 수평선에서 수평선까지 광대하게 펼쳐진 바다의 기억,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을 애써 뿌리치며 로크락은 다른 행선지를 찾아 지도를 뒤졌다. 일단은 페를르미안 교역로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일단 추적이 시작되면 빠른 출구가 필요했다. 어쩌면 왔던 길을 되밟아 하이디안 통로로…

그 와중에도 그는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그가 좀전까지 돌렸던 프로세스를 되짚고 있었다. 정말로 프로토타입이 저장된 모든 파일을 찾아내서 지운 것일까? 철저한 보안 속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인지라 파일 수는 제한되어 있기는 했지만 어쩌면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전체 그리드의 크래쉬까지 유도한 것은 바라는 바는 아니었지만, 제거를 철저하게 하려면 가장 빠른 방법이긴 했다. 복구 설명서는 작성해 놓았으니 큰 곤란은 겪지 않겠지. 아마도.

모순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직접 복구를 지휘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렇게도 애지중지 관리하던 시스템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이 거의 물리적인 존재감으로 새삼 부딪쳐 왔다. 태어나자마자 몸담아왔던 공의회에 등을 돌렸다는 사실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처음 이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강박적으로 그래왔듯 프로토타입의 데이터가 잘 저장되었나 확인한 후 그는 다시 항로 좌표에 주의를 돌렸다. 공화국에 몽 칼라마리인이 눈에 띄지 않고 숨을 곳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결국에는 공화국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또다시 찬바람이 가슴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그는 항법 컴퓨터에 좌표를 입력했다.

옆에서 작은 삑삑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BR-100이 물잔을 내밀며 계기판의 빛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BR-100의 정기적인 물 배달은 탈수가 쉽게 되면서도 작업에 열중하면 수분보충을 잊는 그를 위해서 센이 만들어준 루틴이었다. 그때 그녀석 나이가 열살이었던가 열한살이었던가. 로크락의 목줄기를 붙잡고 강제로 물을 먹이는 명령만 제거한 후에는 (덕분에 제다이 템플 사람들은 정신없이 도망다니는 넬바니안 꼬마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추격하는 몽 칼라마리인이라는 진기한 구경거리를 볼 수 있었다) 손댈 필요 없이 쭉 써오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이 말썽만 부리는 제자 녀석.”

물잔을 입에 가져가며 로크락은 변방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제자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는 다시 한번 빈 항법사 의자에 원망스러운 시선을 던졌다. 제자에게 말로만 들었던 ‘인도자’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은 존재, 혹은 환영이 그가 고민하던 그 순간에 그의 눈앞에 나타났던 것은 일종의 환각 전염이었을까, 다크포스의 속임수였을까, 아니면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다른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그는 평생을 바쳤던 모든 것에 등을 돌린채 드넓은 우주를 마주하고 있었다. 평생 이렇게 자유로운 것도, 이렇게 막막한 것도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나이트 로크락, 아니 로크락은 ‘아쿠아룩스’의 대기권 이탈을 기다렸다.

4 thoughts on “한편 코루선트에서는…

  1. 이방인

    오오?… 막간극입니까? 막간극입니까? (거품을 물고 광분한다(…)) 이런거 너무 좋아요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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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카스트

    좋네요.

    하나 덧붙이자면 그 드로이드는 멱살을 잡고 물이 든 잔을 들이대며 “마셔” 라고 무뚝뚝한 소리를 하다가도 슥 돌아서면 온갖 내숭을 떨곤 하는 환상적인 인공지능을 보유했다는 이야…(후다닥).

    그나저나 로크락도 이러니저러니해도 인도자를 볼 수 있었던 거군요. 재미있는 설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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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내숭 드로이드라니 그런 무서운! (..) BR-100이면 센의 시트에 있는 것과 같은 모델인데 (Mk.2 내지는 100.1일지도), 그렇다면 센의 드로이드 역시 내숭? 뭐 수리 드로이드인만큼 프로토콜 드로이드와는 달리 보통 말은 안하겠지만요.

      로크락이 인도자를 볼 수 있었던 건 매우 예외적인 일회성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인도자가 며칠 안보인다고 느끼지 않으셨는지요? (어이, 잊어버렸던 것 가지고 끌어맞추지 마! <-) 게다가 정말로 인도자였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로크락의 의심대로 환영이나 속임수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로크락도 어차피 센에게 들은 얘기 말고는 인도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말이죠. 원래 막간극은 해답보다는 질문을 많이 제시하는 법입..(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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