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와 행동하기

김주현님의 블로그에 있는 끼어들기에 대한 잡담을 보고 떠오른 생각들입니다. 보여주기 위한 장면에 주인공이 끼어들면, 즉 행동을 할 경우 진행자의 대응에 대한 글인데, 이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RPG 자체가 보여주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행동하기 위한 게임이므로 보여주기만을 위한 요소는 되도록 없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게임에 나오는 모든 요소에 다 시나리오 관련성을 부여하려면 준비하기가 너무 어렵겠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참가자에게 서술적 권한을 주는 규칙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극점수를 1점 들이고, 물통을 엎자 그 밑에 통풍구 입구가 나온다든지. 물론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진행자의 권한입니다. 물통을 엎자 그 속에서 옥쇄라든지 금화라든지 벌거벗은 미녀라든지 굴러나온다는 건 거부사유.

역시 ‘보여주려는’ 동영상이었는데 주인공이 총을 난사한다는 ‘행동’을 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는 진행자가 준비한 것이 무용지물이 된다는 점 말고는 큰 문제는 없고, 오히려 권장할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겁스 단점 발현이나 페이트 면모 강제발동과 같은 규칙을 통해 유발할 수도 있지요. (‘네가 죽도록 싫어하는 악당 박씨가 화면에 나와 떠들고 있어. 쏴버려!’) 동영상에 나오는 정보는 다른 경로를 통해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주인공들이 더 고생할 뿐이죠. (캬하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할 테고, 그게 RPG의 재미 아닐까요.

정리하자면 보여주기 위한 요소에 참가자들이 개입해서 행동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은 참가자들에게 더 많은 능동성을 허용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능동성을 통해 행동하기 위한 놀이라는 RPG의 본질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담으로 진행자가 준비한 악당의 20분짜리 장광설 같은 것은 플레이 중에는 중요한 부분만 요약하고 (“사당역으로 돈 가지고 나와!”) 그 전체 내용 (악당 박씨의 어린시절 등)은 캠페인 사이트나 회지 같은 곳에 올리는 것도 추천합니다. 귀중한 플레이 시간을 절약하면서도 참가자가 원한다면 뒷이야기라든지 배경 세계에 대한 깊이있는 내용을 알 수 있으니까요.

5 thoughts on “보여주기와 행동하기

  1. 아사히라

    동의합니다.
    보여주기 위한 장면~ 이라는것자체가
    마스터가 준비한 이야기의 퀄리티 정도는 끌어올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캐릭터의 행동은 자유죠.

    Reply
  2. 김주현

    잘 읽었습니다.PC의 끼어들기를 인위적으로 제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보여주기만을 위한 요소는 없는 편이 좋은가는 잘 모르겠네요.
    보여주기의 정의도 문제인게 여기서 말한 것은 마스터의 보여주기이지만 NPC의 ‘행동’이 플레이어들에게는 ‘보여주기’ 인 것처럼 PC의 행동이 마스터에게는 보여주기가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면 한 PC의 행동이 다른 플레이어에게는 보여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Reply
  3. 펠군

    플레이어에게 서술적 권한을 어느정도 인정하는 것은 일본 시스템들이 좀 그런 경향이 강하기는하죠…너무 강해서 탈이지만…말입니다

    Reply
  4. 성큼이

    제가 볼 땐, PC의 행동이 마스터에게 보여주기가 될 수 있다… 라는 해석은 곤란하다고 봅니다. 플레이는 어디까지나 PC를 중심으로, PC들의 능동성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야 하기 때문이죠. 물론 특정 PC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곳(즉 무슨 짓을 해 봐야 결과가 별로 달라질 게 없는 곳)에서 지나치게 씬을 많이 잡아먹는다든가 하는 건 곤란하니까, 그럴 때는 마스터가 개입해서 원활하게 진행시켜가면 된다고 봅니다.

    Reply
  5. 로키

    아군// 그렇지…RPG에서의 모든 요소가 그렇듯 보여주기 위한 요소도 뜻대로 안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유념해야 할듯.

    주현님// 성큼님과 마찬가지로 저도 RPG는 주인공의 능동성이 중심이라고 봅니다. 게다가 참가자의 ‘보여주기’와 진행자의 ‘보여주기’의 차이라면, 참가자의 행동은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치더라도 진행자가 그에 반응해 역시 능동적이 되는 반면 진행자의 보여주기는 참가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가자가 끼어들기 원하지 않는 요소는 나중에 따로 글로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같은 맥락에서 진행자의 묘사는 ‘보여주기 위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주인공이 행동하기 위한 보여주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어디로 갖고 나와야 할지 알려준다든가, 전투를 할 방의 구조를 알려준다든지 하는 용도로요. 주인공의 행동을 유도하는 보여주기여야지, 주인공의 행동을 억제하는 보여주기가 아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요.

    펠군님// 아, 그런가요. 물론 참가자의 서술권도 지나칠 수 있고, 그래서 페이트 규칙책 같은 경우 진행자가 제어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제시하고 있죠.

    성큼님// 동의합니다. 참가자의 능동성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는 진행자가 게임의 전체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지요.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