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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의 편애라는 것

RPG는 여럿이서 하는 게임입니다. 또한 한 명의 참가자가 진행자로서 많은 권력을 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두가지 여건이 합쳐져서 가끔 진행자가 한 주인공을 편애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게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다른 주인공들 역시 이야기의 주역인데 한 명만 조명을 받거나, 물품과 경험치 등 게임내의 혜택을 독차지한다면 다른 주인공들을 맡은 참가자는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여기서 다루는 편애와 구분해야 할 것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행자가 어느 한두 참가자와 특별히 친하더라도 그것이 게임에 영향이 없다면 여기서 다루는 편애는 아닙니다. RPG로 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친분이 게임에 불공평한 영향을 미칠 경우 뿐이지요. 실력이나 기여도에 따른 포상 역시 참가자들이 수긍할 수 있다면 편애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참가자가 스스로 자기 주인공의 주목도나 성장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 참가자를 주변 인물로 남겨두는 것도 여기서 다루는 편애는 아닙니다. (진짜로 관심이 없는 것인지는 자세히 관찰해야 할 문제입니다만…)

편애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새삼 할 필요도 없지만, 문제는 진행자 자신이 느끼지 못하거나 멈추기가 힘든 경우입니다. 지속적인 편애의 경우 진행자는 타당하고 공평하게 포상이나 주목도를 분배하고 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어느정도 자신이 편애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이야기가 그런 식으로 진행돼서, 혹은 참가자들이 별 얘기가 없어서 넘어가는 경우도 있겠죠. 대체로 참가자들이란 진행자에게 왠만해선 지적이 없기 마련인 것도 문제.

저같은 경우도 진행자로서 편애를 하는 것은 아닌지 자의식을 느낀 경우가 몇번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잘 아는 참가자, 저에게 흥미가 가는 인물 설정에 더 주목하는 자신을 발견하거든요. 또한자기 인물의 방향성에 대해 적극적인 참가자가 관심을 더 많이 받게 되는 것은 누구든 경험했을 것입니다. 물론 참가자 스스로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데 별 관심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주인공이 들러리로 밀려나는 것은 불쾌한 경험일 것입니다.

진행자로서는 자신이 편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 주목도가 심하게 불균등하다.
– 주인공 중 한명의 이야기에 나머지 주인공은 쓸려가는 경우 (저는 어느정도 이런 짓을 한 경험이 있어서…<-)
– 주인공 한명의 설정만 반영될 경우 (역시 저한테 흥미가 가는 녀석 이야기만 나오게 되는 경우가 가끔…)
– 캠페인의 행방을 구상하면서 주인공 한명만 계속 생각하게 될 때
– 주변 인물(NPC)들이 한명의 주인공에게만 반응할 경우 등. (이거 심각하지요. 이렇게 되면 나머지 주인공들은 아무 힘도 쓸 수가 없으니…)
– 한 명의 주인공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

2. 경험치와 물품, 장비 등 게임내 자원의 분배가 실적과 상관없이 한명에게 쏠린다
– 특히 나타나기 쉬운 부분이 주관적인 기준이 반영되는 연기 포상. (어느 한 명에게만 계속 연기 포상이 간다면 그 참가자가 연기를 진짜 잘해서일 가능성도 있지만 자기 취향이나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반영된 것은 아닌지, 다른 참가자들에게서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인지 아니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성장 속도, 물품, 장비의 차이가 심하다. (역시 실력이나 열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성장 기회의 균등성, 타당성 등을 면밀히 생각해야 하며, 특히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기 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3. 규칙 적용의 차이
– 주인공 한명만 난이도가 쉽게 설정되거나 굴림 가산점이 많을 경우 (진행자는 진짜 느끼기 어려운 부분이고, 참가자들이 지적을 해야 합니다)

대충 이상과 같은 징후를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어느 것이든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말했듯 정작 참가자들은 아무 불만이 없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느 쪽이든 목적은 모두가 재미있게 RPG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만족하지 못했을 때에야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원활한 RPG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소통이라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낄 때 참가자들이 진행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편애와 같은 진행자 실책을 막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참가자가 재미있게 느끼는 시나리오란?

어제는 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행자로서의 자학의 시간을 가졌다죠..(…) 둘다 각각 진행한 시나리오가 너무 맥이 빠지고 어색했다고 자아성토를 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17세기 극장 대모험 2화에서 특히 심했지요. 재밌는 점이라면 진행자는 그렇게 느꼈는데도 둘다 정작 시정을 위해 참자가들의 의견을 묻자 괜찮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진행자의 재미와 참가자의 재미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행자는 이야기 전체의 구성력과 개연성 등을 본다면 참가자들은 자신의 선택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자신이 맡은 인물이 얼마나 의미있는 행동을 했는지 보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즉 이야기로서의 질이 높은 시나리오보다는 자신의 의미있는 선택이 반영된 시나리오가 참가자들에게는 재미있다는 점에서 진행자와 참가자의 입장은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둘 다 갖추면 더욱 좋겠지만, 소설이나 영화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정해진 매체의 기준으로 RPG를 잴 수는 없겠죠.

또하나, 참가자가 원래 의견표시에 인색한 면도 있습니다. 진행자는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참가자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참가자들은 안 좋은 부분이 있어도 왠만해서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진행자에 대한 배려도 있고, 자기 의견 때문에 전체적인 진행이 크게 바뀌지 않을까 하는 부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규칙책인 안방극장 대모험의 장면신청 규칙은 참가자들의 재미를 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참가자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진행에 반영하고, 좋건 싫건 어떤 식으로든 의견을 표시할 것을 강제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참가자들이 장면을 신청할 때 뜸을 들이는 것 같습니다만..(웃음)

진행자와 참가자가 함께 재미있을 수 있는 시나리오란 많은 생각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구성력과 개연성, 줄거리 등 좋은 이야기의 구성요소를 갖추었으면서도 참가자의 선택과 주인공들의 행동이 반영된… 그런 데에서 협동 놀이인 RPG의 어려움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전투, 무엇이 문제인가

며칠 전에는 하룻저녁에 세분이나 RPG 전투가 싫다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 분은 전부터 알고 지냈지만 두분은 새로 소개받은 분이어서 기분이 묘하더군요. 전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분들의 취향이나 경험상으로는 전투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RPG 속의 전투,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 소지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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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진행자가 참가자들 물먹이기가 상당히 쉽다는 점. 대개의 규칙에서는 적의 힘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진행자가 적을 말도 안되게 강하게 만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원성을 좀 들을 각오가 돼있다면야…) 그리고 실제로 일부 진행자들이 줄거리를 자기 뜻대로 진행시키기 위해, 혹은 적으로 나오는 등장인물에 대한 애착, 혹은 지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주인공들에 비해 심하게 강한 적들을 내보내는 일이 있습니다.

물론 줄거리상 적이 강한 게 말이 되는 경우도 많겠지요. 방금 수련을 시작한 햇병아리가 무림의 최고 고수에게 물정 모르고 덤빈다든가, 위험하다고 수없이 경고받고서도 드래곤과 싸운다든가. 하지만 참가자들이 선택하지 않은 전투인데 너무 적이 강해서 형편없이 진다거나, 혹은 전투면 전투마다 깨진다면 아무래도 참가자들은 재미없어질 것입니다. 이럴 경우 전투가 싫어지는 건 고사하고 RPG 자체가 싫어지지 않는다면 다행입니다.

또 한가지 전투가 싫어질만한 이유라면 주인공에 대한 참가자의 애착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주인공이 다치거나 지는 것이 싫을 수 있겠지요. 특히 전투는 주인공이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는 갈등이기 때문에 그 위험을 무릅쓰기 싫은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행자가 습관적으로 너무 강한 적을 내보낸다면 이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집니다.

전투 규칙은 또한 다른 규칙보다 복잡한 경우가 많습니다. 기본 판정은 비교적 단순해도 전투 판정에는 종종 수많은 선택 사항과 변형이 붙어서 복잡해지지요. 전투 판정이 기본 판정과 전혀 다른 하위 체계를 이루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결과 첫째, 전투 규칙은 더 배우기가 어려워지고 둘째, 전투가 느려집니다.

전투 규칙을 배우기 어렵다는 것은 가뜩이나 RPG를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인 규칙 학습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게다가 전투 규칙을 제대로 모르면 활약의 기회를 빼앗기거나 자기 주인공이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을 수 있습니다.

전투 규칙의 복잡성 때문에 전투가 느려지는 것은 ORPG에서 더욱 심각해지는 문제로, 전투 하나로 한 세션이 다 지나가는 경우도 흔히 보입니다. 전투가 좋은 참가자에게는 더 좋을 수도 있지만, 전투가 별로 취향이 아닌 참가자에게는 지루하겠지요. 게다가 전투를 좋아하는 참가자조차도 그 느린 진행 속도에는 짜증이 날 수 있습니다. 전투가 느리면 느려질수록 전투의 긴박감이란 증발해 버리기 쉬우니까요.

전투 자체의 문제는 아니지만 전투가 많아지면 생길 수 있는 문제라면 극중 문제 해결 수단의 획일화입니다. 모든 종류의 갈등에 ‘머리통을 깨부숩니다’로 대응한다면 (그리고 그런 대응이 늘 허용된다면) RPG의 미덕 중 하나인 다양한 해결책과 발상의 모색은 사라져 버릴 겁니다. 물론 스트레스 해소에 오크 머리통 깨부수기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그런 건 개인적으로 CRPG에서 훨씬 하기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피해를 감수하며 오크와 직접 싸우는 것보다는 적대 오크 클랜간의 대립을 부채질해 서로 피튀기며 싸우게 한 다음에 약화된 승자 쪽을 간단하게 쓸어버린다… 하는 쪽이 좀더 RPG 특유의 묘미가 느껴지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전투 중심의 RPG는 종종 진정성이랄까, 진실성이 떨어집니다. 예전에 힘의 종류라는 글에서 다루었듯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서 보통 가장 중요한 힘은 정치적, 금전적, 종교적 힘, 그리고 개인이 속한 집단의 힘이지 개인의 팔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팔뚝 힘 센 것을 가장 으뜸으로 치는 많은 게임의 논리는 사람에 따라서는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투가 RPG에서 가장 인기있는 활동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역시 전투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고 적을 쓸어넘기는 것만한 재미가 없지요. 또 전투력은 실제 사회에서 더 중요한 사회적 힘과는 달리 가장 개인적인 능력이라는 점에서 가장 단순명쾌합니다. 이런저런 사회적인 압박에서 벗어난 원초적인 스트레스 해소랄까요.

두번째는 대개의 RPG 규칙이 전투를 가장 비중있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D&D, 7번째 바다, 겁스… 아마도 첫번째 이유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대개의 규칙책에서는 전투 규칙이 가장 복잡하고, 전투야말로 가장 전술적인 재미가 있는 게임 내 활동이기 쉽습니다. 바바 히데카즈의 글 파워 플레이에 나왔듯 말이지요. 규칙에서 어떤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 어떤 부분을 다루지 않느냐에 따라 플레이중 강조점이 크게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면에서 대개의 기성 규칙은 전투 중심적이며, 그 때문에 플레이 역시 전투 중심으로 흐르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위에서 말한 폐해들이 상당 부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 RPG가 모의전쟁 게임에서 시작했다는 점, RPG 인구가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 등 여러가지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룰 성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위에서 말했듯 전투가 취향에 맞는 사람이라면 아무 문제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전투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또 전투 과다로 인한 폐해 때문에 전투, 심지어는 RPG 자체가 싫어지는 사람에게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해결책은 불행히도 가장 실행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참가자들이 원하는 것을 서로 자유롭게 의논해서 파악하며, 늘 참가자의 의견을 반영하고 그들이 지루하지 않게 배려하라… 같은 원론적이고 당연한 소리로 해결될 건 별로 없으니까요. RPG는 곧 의사소통입니다. 그걸 모르는 RPG인은 없죠. 하지만 블로그에서 누가 떠든다고 갑자기 실천되는 부분은 아닙니다.

실험적인 인디 규칙책 같은 경우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늘, 안방극장 대모험, 트롤베이브, 포도원의 개들, 라이서스, 페이트 등등 많은 인디 규칙이 전투와 비전투 판정을 동일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놀이가 전투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막아주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바 있습니다. 또 판정 자체도 간단해서 전투라고 특별히 느리지도 않았죠.

결국 제목 그대로 대안은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문제점만 잔뜩 늘어놓은 느낌이군요. 어쨌든 취향이 아니든, 과거에 경험이 안 좋았든 전투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RPG인도 즐길 수 있는 RPG계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다양성이라면 또 굉장한 게 RPG의 힘이라고 생각하니까요. ^^_M#]

진행자의 놀이 속 권력

진행자(GM)가 게임 밖에서 가진 권력에 대한 CBM님의 글을 보고 놀이 속 진행자의 권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RPG를 하다 보면 진행자는 다른 참가자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죠. 어떻게 보면 이야기를 진행하고 세계를 돌리는 진행자의 역할 성격상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만큼 큰 권한은 또한 남용되기도 쉽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나치게 강한 적을 내보내서 주인공을 몰살시키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랬다가는 참가자들의 원성도 심하고, 보통 진행자가 스스로 자제하기 마련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주 극단적인 경우는 피한다고 해도 진행자가 주인공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참가자들을 쉽게 무력하게 만듭니다. 이른바 ‘학대당한 플레이어 증상’을 종종 보게 되는데, 자기 주인공이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것이 두려워 참가자들이 몸을 사리는 경우입니다. 스스로 적극적인 선택이나 발상을 했다가 진행자의 철퇴가 내릴까봐 주어진 길, 보이는 길만 쫓아가는 것이지요. 참가자가 제어할 수도 예상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인해 주인공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위험을 저울질하는 신중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아예 피하는 무행동을 유도합니다. (자녀양육에도 비유할 수 있겠죠. 어떤 경우에 벌을 받고 어떤 경우에 괜찮은지 기준이 확실하면 그건 교육이지만, 기준이 없이 부모 기분대로라면 학대인 것과 비슷한 원리.)

또한 이야기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거나 판정 결과를 바꾸는 극점수 규칙 역시 많은 경우 진행자의 권력 증대를 유도합니다. 극점수를 부여하는 권한이 진행자에게 있는데다 대개의 경우 진행자의 극점수는 무한대이거나 참가자보다 훨씬 많은데 반해 참가자의 극점수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참가자의 적극성을 유도해낼 수 있는 중요한 장치인 극점수는 오히려 참가자들의 무력감을 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제 경험입니다.

기존 규칙책에서는 이와 같이 진행자의 권력이 크고 참가자들의 권력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진행자가 원하는 것, 진행자와 참가자의 관계가 놀이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쉽고, 참가자들의 욕구와 선택, 참가자들 상호간의 관계는 덜 중요해지기 쉽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강조하자면 진행자가 세계와 그 구성원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규칙을 해석하는 역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이러한 권한은 놀이의 진행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니까요. 진행자 없는 놀이에 대한 많은 시도가 있지만 여전히 진행자와 참가자의 역할 분담은 역할놀이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 사람이 많은 권한을 가짐으로써 세계는 보다 일관성을 가지게 되고 규칙해석은 보다 빨라지니까요. 진행자가 가진 권한은 놀이를 더 재미있게 합니다. 문제는 이 권한이 참가자를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참가자를 주변인으로 만들기 또한 쉽다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진행자가 가진 권한의 긍정적인 부분을 유지하면서도 참가자를 놀이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새로운 시도와 실험의 산실인 인디 규칙책들이 많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 규칙들은 많은 경우 놀이를 해본 경험과 고민에서 우러나온 것들이고, 따라서 기존 규칙 사용자들에게도 시사해주는 점이 많거든요. 그런 면에서 배울 점이 많은 규칙책을 몇가지 들어보겠습니다.

과거의 그늘 홈페이지(영문) | 소개글

‘과거의 그늘’에서 주인공은 절대로 진행자의 뜻대로 다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이 다치는 것은 참가자들이 원할 때 뿐입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이 다치거나 죽는 위험이 생기려면 ‘본때 보이기’라는 규칙을 사용해야 하는데 본때 보이기 선언은 참가자만 가능하거든요. 진행자는 본때 보이기를 선언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참가자들의 심적 부담은 엄청나게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한’ 주인공은 안전하니까요. 실연의 절망에 몸부림치며 무력해지는 일도(심적 피해), 화살에 꿰여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일도(신체적 피해) 없을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그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더이상 참가자들은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진행자의 철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인공들이 다치는 일은 아예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인공이 피해를 입을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한, 즉 참가자가 본때 보이기를 선언하지 않는 한 주인공의 행동은 영구적인 효과를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름없는 단역은 본때를 보이지 않고 죽일 수 있지만, 이름이 있는 주요인물은 본때를 보이지 않는 한 죽이거나 영구적으로 파멸시킬 수가 없습니다. 즉 참가자에게 이득과 위험을 저울질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그늘 규칙을 사용하지 않는 많은 팀에서도 볼 수 있는 암묵적인 합의이지만, 규칙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확실한 안전장치라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 안정성 위에서 참가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죠. 자기 주인공의 운명에 대한 최소한의 제어권을 가지고…

과거의 그늘은 극점수 규칙도 특이한데, 극점수를 부여하는 주체는 진행자가 아닌 참가자입니다. 즉, 놀이를 시작할 때마다 각 참가자는 스스로는 사용할 수 없고 다른 참가자에게 줄 수만 있는 극주사위를 받지요. 그리고 다른 참가자의 연기가 멋졌다든지, 다른 주인공의 이 행동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때가 있으면 그 극주사위를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기존 극점수 규칙에서는 진행자의 취향, 진행자와 참가자의 관계가 중요했다면 과거의 그늘에서는 참가자들의 취향과 참가자간의 관계가 그 중요성을 대체하는 것이지요. 이 또한 참가자들을 놀이의 중심으로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안방극장 대모험 홈페이지(영문) | 실제 플레이

가상의 TV 드라마를 만드는 규칙 안방극장 대모험은 아예 부상 규칙 자체가 없습니다. 물론 실패는 할 수 있는데 이게 재밌는 점이, 진행자(여기선 PD)가 판정의 난이도만큼 ‘예산’을 소모한다는 사실입니다. 겁스나 D&D로 비유하자면 적이나 함정을 만드는데 한정된 점수가 주어진 것과 비슷하달까요. 참가자들에게 어려운 도전을 제공하는 것은 진행자 마음이지만 그만큼 유한한 자원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판정의 남용은 훨씬 제한됩니다.

과거의 그늘과 비슷하게 안방극장 대모험에서도 극점수(팬레터)는 참가자끼리 주고받습니다. 예산과 팬레터 사이에는 흥미로운 상호관계가 있지만, 얘기가 길어지니 넘어가도록 하죠.

이와 같이 진행자의 권력을 제한해서 참가자에게 보다 적극적이고 중심적인 위치를 부여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고, 그런 방법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주인공의 부상과 죽음을 진행자의 자의에 맡기지 않는 것. 위에서 말했듯이 참가자의 위축을 막는 효과가 큰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이 본때 보이기와 비슷한 규칙이든 난이도의 제한이든 적 능력치의 제한이든 간에 참가자에게 ‘몸을 사릴’ 이유를 너무 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대개의 경우는 부상과 죽음을 참가자가 예상하거나 제어할 수 있는 상황에 맡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무 보호수단 없이 용암으로 뛰어들면 다친다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전혀 구분의 근거가 안 보이는 두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보물, 오른쪽으로 가면 전원 몰살이라는 식의 경우가 많은 게 문제입니다.

두번째, 극점수 규칙의 참가자 중심적 활용. 사실 제가 보기에 진행자에게는 극점수 규칙이 필요없습니다. 극이나 극점수란 주인공이 주인공답기 위한 것, 그리고 참가자를 놀이의 적극적인 주체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극점수는 참가자끼리 주고받거나 진행자의 취향과는 별개로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주어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진행자의 취향에 따라 극점수처럼 중요한 자원이 움직이는 것은 진행자를 더더욱 놀이의 중심으로 만들어 버리니까요.

마지막으로 저를 포함한 모든 역할놀이 진행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놀이의 주체는 참가자이지 진행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행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놀이의 무게 중심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진행자에게 쏠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끝없이 참가자 쪽에 비중을 두어야 진정 모두 함께 즐기는 역할놀이가 된다는 것이지요. 역할놀이의 의의는 ‘참여’이지 ‘구경’이 아니니까요. 진행자는 참여를 넘어 주도 쪽으로 가기가 쉬운 반면 참가자는 소극성을 넘어 구경꾼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참가자의 적극성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진행자가 권한을 갖되 권력은 제한받는 것은 그 중요한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