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크 플레이테스트

승한님과 석한님과 함께 쇼크 (Shock: Social Science Fiction) 플레이테스트를 했습니다. 쇼크는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관념을 위협하는 새로운 추세나 사상, 세력 등이 출몰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충격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래서 사회와 개인의 이야기가 얽히고, 개인의 이야기는 사회를 바꾸어가는 것이 묘미인 듯.

설정

세계와 인물 설정표 보기

일단 이 세계의 패러다임이랄까, 사안은 왕의 신권, 왕을 수호하는 요정의 존재, 그리고 도덕적 기준으로서의 종교 세 가지로 정했습니다. 충격은 계몽주의로 정했고요. 여기에 더해 각 사안과 관련이 있는 세부사항을 만들면서 (“왕의 이름은 메가리히트 벨라로스 2세” “닭과 소 같은 가축이 병들어 쓰러지는 현상은 천벌이라는 소문이 돈다” 등) 배경이 더 구체적인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사안과 쇼크를 먼저 만들고 이들을 뼈대로 살을 붙이는 방식은 배경의 중심적 갈등과 주제의식에 직접 관련 있는 설정이 나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극적으로 중요한 부분 관련 설정이 가장 자세한 만큼 강조점이 확실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주제 중심 설정은 다른 배경 설정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계 설정을 마친 다음에는 각자 주인공을 만들었습니다. 주인공을 꼭 세계의 사안이나 세부사항과 관련시켜야 한다는 얘기는 없었던 것 같지만, 스스로 세계를 설정한 만큼 관련을 시키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아버지를 죽인 요정에게 복수하려는 엘리자베스 스미스, 나서 자란 자기 영지를 지키려고 하는 프로메테아, 나라에 충성하는 무신 프리온(..) 셋을 설정했습니다.

쇼크에는 진행자가 없는 대신 각자 자기 왼편에 있는 사람이 적수가 되어 주인공의 목표를 반대하는 인물을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승한님의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적수는 엘리자베스의 안전을 위해 복수를 포기시키려는 존 스미스 (담당 로키). 제 주인공 프로메테아의 적수는 프로메테아의 서출 동생 프리온에게 영지를 계승시키려는 프리온의 심복 에비안 (담당 석한님), 석한님의 프리온의 적수는 인망 높은 무신을 경계하는 국왕 벨라로스 2세 (담당 승한님)가 되었습니다.

요약

요정에게 대항하려고 계몽주의 동지들과 계획을 짜다가 귀가한 엘리자베스를 보고 존 삼촌은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로사에게 두 사람의 안전을 생각해서 요정 몰락 계획을 포기시킬 것을 호소합니다. 엘리자베스는 인간이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아버지의 뜻이었다고 역설하지요. 결국 로사는 딸의 의지를 이해하면서도 부디 안전을 생각하라고 당부합니다.

한편, 왕이 파는 대운하가 리르 영지를 관통할 계획이 알려지자 프리온의 부관 에비앙은 프로메테아가 운하 계획에 적극 찬성한다는 소문을 몰래 퍼뜨립니다. 이에 요즘 세력을 얻고 있는 계몽주의자들이 대표로 찾아가 항의하지요. 프로메테아는 왕께 간언하겠다고 잘 얘기해 돌려보내지만, 에비앙의 계획대로 영지민의 신뢰에는 손상이 갑니다. 한편, 프로메테아는 왕은 국민을 위해야 한다는 계몽주의자들의 주장에 솔깃하는 것을 느낍니다.

왕은 의심과 질투의 대상 프리온을 실각시키고자 역모를 일으키게 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왕이 군대를 동원해 운하를 파게 하자 병사들의 상황이 비참해지고 국방 태세가 약해지는 것을 보다 못한 프리온이 왕에게 간언을 하다가 끌려나옵니다. 왕의 매수를 받은 프리온의 부하가 프리온에게 장군께서 왕이 되셔야 나라가 평화로워진다고 간언하자 프리온은 마음이 흔들립니다.

감상

재밌는 내용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설정 과정에서 나온 배경 내의 갈등과 각 주인공의 사정과 목표가 얽혀서 배경과 인물, 그리고 극의 연관성이 강한 점이 좋았습니다. 폭정, 반란의 태동, 혈육 간의 갈등 등, 진행자가 따로 없어도 (어쩌면 없어서 더욱) 인물 설정을 재미있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는 느낌입니다.

판정은 방식이 괜찮기는 한데, 성패를 따지는 게 꽤 혼란스러웠다는 느낌입니다. 일괄적으로 높게 나오거나 낮게 나오는 게 성공이 아니라 한 능력은 정한 수에 비해 주사위 값이 높을 때 성공, 대립항을 이루는 능력은 낮을 때 성공인 식이라 시트를 일일히 보지 않고는 성패를 가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나의 숫자를 기준으로 영역에 따라 어떤 때는 높은 결과가 성공, 어떤 때는 낮은 결과가 성공인 점은 트롤베이브 (Trollbabe)와도 비슷하지만, 트롤베이브는 숫자가 하나이고 마법, 전투, 사회 각 영역에서 어느 결과가 성공이 되는지 정하는 기준이 일률적이라 성패를 가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던 반면, 쇼크는 숫자가 두 개인 데다 대립항 (예를 들어 권력과 개인적 능력) 중 어느 쪽이 높거나 낮으면 성공이라는 일률적인 기준이 없어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쇼크와 트롤베이브보다 성패가 헷갈리는 원인이라면 트롤베이브는 주인공에게만 능력치가 있고 주인공의 성패만 따지는 반면, 쇼크는 규칙상 주인공과 조연이 각각 능력치가 있고 성패도 각각 따진다는 점입니다. 결국 지금 굴림 결과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두 개의 시트를 각각 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으로 혼란스럽게 되어 있지요.

덧: 개발자 중 폴라리스 (Polaris)를 만든 벤 레만 (Ben Lehman)이 있는 걸 보면 저 능력 숫자는 트롤베이브 외에 폴라리스의 영향도 있을 지도요. 폴라리스에서는 사회 관련이냐 개인 관련이냐에 따라 얼음 (사회) 혹은 빛 (개인)에 대해 1d6을 굴려서 낮게 나오면 성공이죠. 사실 쇼크에서도 주요 축은 개인과 사회, 혹은 변화와 정체이기도 하고요.

제안: 그런 의미에서 대립항을 ‘개인’과 ‘사회’ 하나로 해서 개인 능력을 사용할 때는 능력 숫자보다 낮으면 성공, 사회적 관계를 이용할 때는 능력 숫자보다 높으면 성공으로 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즉 수가 낮을 수록 사회적 관계에 강하고, 수가 높을 수록 개인의 영역이 강하다는 뜻이 되겠죠. 이렇게 하면 수가 하나로 줄고 언제 높거나 낮게 굴리는 게 좋은지 기준이 일률적이어서 트롤베이브 짝퉁 더 명확할 것 같네요.

성패를 바로 가르기 어려웠던 점은 단점이지만, 그 외의 판정 규칙은 전술적 재미도 있고 참여자의 극적 욕구를 반영할 수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기 성공을 위한 주사위 (d10)도 굴릴 수 있고, 상대방의 성공을 방해하는 주사위 (d4)도 굴릴 수 있어서 둘의 비율을 어떻게 할까 하는 판단의 재미가 있더군요. (정석은 2d10 1d4인 듯.) 주인공도, 적수도 맡지 않은 관객이 1d4를 굴려 자신이 원하는 쪽의 성공 혹은 실패에 더해줄 수 있는 규칙으로 관객에게 권한을 준 점도 재밌고요.

판정에서 또 재미있는 점이라면 실패를 다루는 방식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판정에 실패하면 원하는 극적 결과를 관철하지 못하는 대신 주인공의 특징이 늘어나서 나중에 굴리는 주사위가 많아지는 성장을 하는 점도 그렇고, 실패한 판정에 주인공과 세계의 연결고리를 걸고 다시 굴릴 수 있는 점도 혜택과 위험을 저울질할 수 있는 게임적, 극적 판단이 되어서 흥미롭습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 중 프로메테아는 처음에는 설득에 실패해서 영지민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특징이 생겼지만, 자기 친족인 왕에 대한 애정을 걸고 다시 굴린 결과 잘 얘기해서 항의하는 영지민을 돌려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다시 굴려서도 실패했다면 왕에 대한 애정이라는 연결고리를 바꾸어야 했겠죠. 자기 위치를 애매하게 한 왕에 대한 반감이 생겼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결과적으로 쇼크는 판정이 좀 혼란스러운 데는 있지만 세계와 인물이 함께 변하는 극적인 이야기를 꾸미기 좋은, 그러면서 게임적 판단 역시 유도하는 규칙이라는 것이 첫인상입니다. 어떻게 끝날지 과연 대운하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며 프리온의 힘으로 2메가 왕을 거꾸러뜨릴 것인가 궁금하기도 해서 기회가 되면 끝까지 해봐도 좋을 것 같군요. 좋은 시간 함께해주신 두 분, 그리고 좋은 규칙 소개하고 설명해주신 승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8 thoughts on “쇼크 플레이테스트

  1. 이의종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 드립니다.

    요즘 제 관심을 많이 끄는 RPG라 궁금해서 덧글 달아봅니다. 오오 쇼크 오오… Social ‘Science Fiction’이라는 제목 때문에 그런가 미래 배경으로만 플레이할 수 있을 거라는 편견을 무의식중에 갖고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가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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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그 동안 세션에 쓰신 글들 잘 봐왔는데 반갑습니다.^^ 쇼크는 아마도 미래 사회가 더 변화의 속도가 빨라서 기본적으로는 SF 배경을 상정하고 있는 듯하지만, 기본 가정은 어떻든 실제로는 범용적이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제목을 잘못 붙였을지도요..(..)) 제 경험상으로는 기존 관념, 변화의 세력, 이야기 목표 같은 추상적인 요소만 있었고 특정 장르나 배경을 유도하는 규칙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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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예, 괜찮더라고요. 힘들이거나 부담 가는 일 없이 이야기가 나온다는 점에서 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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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ishsong

    개인적으로 쇼크의 판정 방법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쇼크의 주사위 굴림이 온라인으로 보기에는 약간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주사위를 직접 볼 수만 있다면 간단했을 텐데… 누나 말대로 <포도원의 개> 전용 주사위 스크립트를 썼으면 더 나았을 것 같아. 캐릭터 시트도 보기 쉽도록 고쳐 놓았으니까 다음 번에는 좀 더 원활하게 플레이할 수 있을 것 같아.

    대립항을 ‘개인’과 ‘사회’로 처리하는 건 좀 이견이 있어. 물론 편해지기는 하겠지만, 대립항은 단순히 개인-사회로만 볼 수 없다고 봐. 예를 들어 우리가 만들었던 대립항 중 하나인 ‘과학-신화’ 같은 경우는 개인과 사회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잖아? 다른 예로 ‘힘’-‘지능’ 같은 것도 할 수 있겠고…

    어쨌든, 다음 번에는 좀 더 깔끔하게 준비를 해서 정식으로 플레이하고 싶어. 좋은 리뷰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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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그 대립항에 대해서 이해가 잘 안 가는 건 왜 대립항이 두 쌍인가 하는 거야. 사안의 수는 참여자 수에 따르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어차피 대립항 두 개로는 사회적 갈등을 다 나타내기는 어렵지 않겠어? 그래서 대립항 두 가지는 좀 자의적인 숫자라는 생각이 들어. 따라서 개인 대 사회 내지는 변화 대 전통처럼 포괄적인 단일 항목을 사용하는 편이 더 간단하고 덜 자의적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이건 극적 수치이지 개인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표현하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물론 난 책을 보지는 않았으니까 일단은 추론일 뿐이지만.

      나도 다음에 이어서 할 수 있으면 좋겠네. 역시 한 번 시작한 건 끝을 보는 게 개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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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Wishsong

    전에 구상했던 대체 하우스 룰.

    1. 서로 반대되는 “선호 능력”과 “기피 능력”을 각각 2쌍씩 만듬.
    예) 교섭 / 폭력, 주도면밀한 계획 / 본능에 충실

    2. 선호능력과 기피능력의 성공 능력을 결정한다. 선호능력과 기피능력의 능력치 합은 11점이어야 한다. 능력의 수치는 3 ~ 8점이다.
    예) 교섭 6 / 폭력 5, 주도면밀한 계획 8 / 본능에 충실 3

    3. 갈등 굴림 시, 굴림 결과가 능력치 미만으로 나오면 갈등 성공.

    4. 굴림 결과가 능력치를 초과하면 갈등 실패.

    5. 굴림 결과가 능력치와 정확히 일치하면 갈등의 상승.

    6. 4면체 결과는 무조건 상대방 결과에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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