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그림자] 파다완의 의문

동환님의 제안으로 아를란이 알로스 자르트레인의 죽음을 전해듣는 부분과 공의회의 행동에 대한 그의 의문을 외전 소설 처리해보았습니다. 댓글을 통해 게시판 RP처럼 처리해도 괜찮을 것 같고, 그냥 의견을 얘기하는 자리로서도 괜찮을 것 같네요. 안습인 건 제 멋대로 하라 그러면 정말로 행동마다 묘사가 이 정도 나올 거라는 점..(..)

글에 나오는 사건 자체는 다른 외전 소설인 풀섶에 숨은 뱀에 나온 것이고, 아를란의 침묵의 결과는 공화국의 그림자 45화에 나옵니다. 배경이 되는 설정은 티로칸아를란 정보.

조우 지점으로 이동하는 동안 카프리콘 기내는 조용하다. 검은 진공에 별들만 밖에 끝없이 펼쳐진 뷰포트에도, 침묵하는 센서에도 그들을 호위하는 두 척의 전투기는 잡히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조용하고 신속한 두 조각 그림자는.

선실 문이 열리는 치익- 소리는 그 정적 속에 크게 울린다. 그 문으로 들어서는 젊은이를 보며 새삼 그가 얼마나 어린지 생각하게 된다. 스물 정도면 그렇게까지 어린 나이도 아니고 멀쩡한 허우대는 지나칠 정도로 튼튼하지만, 언제 이유도 모르고 얻어맞을까 두려워하는 어린 동물 같은 눈빛을 가끔 보일 때면 성장이라는 것이 파다완 아를란에게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알 수 있다.

“저… 묻고 싶은 것이…”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낸다. 지금이라도 등을 돌려 도망치고 싶은 자신을 억지로 떠밀며. 성장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악전고투라면, 적어도 이를 악물고 그 싸움을 해낼 용기는 그에게 있다. 아무 가르침도 없이 맹목적인 분노와 두려움에 질렸던, 사납고 길들여지지 않은 이전의 모습에 비하면 큰 변화이다.

“아까 전에… ‘두’ 사람을 잡아갔다는 것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왕녀님을 수행했던 나이트는 세 사람이었는데…”

이 질문에 대답하면 그에게는 고통일 수밖에 없다. 파다완의 부주의가, 그의 치기어린 감정이 초래한 결과에서 그를 보호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확고한 진실이 아니면 무엇이 그에게 수행의 기반이 될 수 있을까. 거짓을 통해 포스의 길을 깨달아가라고 할 수는 없다.

나이트 알로스 자르트레인의 죽음을 전해들으면서 아를란의 얼굴에서는 차차 핏기가 빠져나가고, 그는 힘이 풀린 듯 의자 하나에 주저앉는다. 검은 눈빛은 생기가 사라진 채 차갑게 굳어있다.

“그랬습니까…”

속삭이듯 말하는 목소리는 쉬어 있고, 무릎에 얹은 손은 가볍게 떨린다. 살생과 죽음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극단적이던 그에게, 자신의 침묵이 원인이 되어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로 다가올지.

“사람 죽이기 참 쉽군요. 그냥 가만히 입만 다물고 있으니까 하나 죽고, 나머지 둘은 언제 죽을지 모르고…”

자조 섞인 목소리에는 가벼운 히스테리가 묻어난다. 물론 알로스를 죽인 것은 피나틸리아이지 아를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그도 잘 안다. 그가 입을 열지 않아서,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위치 추적기를 옮겨서 도와준 (그의 집착, 그의 번뇌, 연인인 적 없는 연인, 그의) 피나틸리아는 그가 협력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길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알로스를 죽일 생각은 꿈에도 없었으리라. 그저 부주의했고, 그저 경험이 형편없이 부족했고, 그저 생각하지 못했고, 그저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그리고 알로스 자르트레인이 그저 죽었을 뿐. 누가 그의 죽음을 바라고 누가 바라지 않았건, 옷에 숨은 위치 추적기와 파다완의 침묵, 시스 로드의 무심한 살의가 한 목숨을 앗아갔다.

“말했어야 했습니다. 말했어야 했는데…”

잠시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가 아를란은 벌떡 일어서서 이리 걸었다 저리 걸었다 한다. 거의 공황 상태에서 자꾸 가빠지려는 숨을 억지로 가라앉히려는 노력도 별로 성과가 없다. 시체가 흩어진 바닥에 앉아 검은 로브 입은 모습을 멍하니 올려다보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런 그에게 순간 겹친다.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기랄… 그때 그 여자가 그 얘기만 하지 않았더라면…”

감정에 지쳐서 아를란은 작업대에 한 손을 짚어 몸을 지탱한 채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친다. 그리고 천천히, 조각조각 진실은 더듬거리며 떨리는 말이 되어 나온다.

“마스터 티로칸이… 나이트 로어틸리아와 그녀… 피나틸리아의 마을에 갔을 때… 그녀의 마을… 부모가 모두…”

그의 얼굴이 감정과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나라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단 가장 어려운 말을 하자 갑자기 차분해진 그는 공허한 시선을 낮춘다. 혼잣말처럼 던지는 나지막한 물음 뒤에 숨은 혼란과 배신감이 지친 표정과 기운 없는 목소리에 묻어난다.

“왜 공의회에서는 그런 일을 숨긴 겁니까.”

어쩌면 공의회에서는 피나틸리아와 로어틸리아가 그 일로 괴로움을 겪기 바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분노로 다크 포스에 빠지는 것을 우려했을지도. 그 사건이 마스터 티로칸의 잘못이 아니었다면 그를 정당하게 보호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 하는 지식이 아를란을 자기파괴로 내몰고 피나틸리아를 다크 포스의 유혹에 빠뜨렸는데, 공의회의 침묵이 반드시 잘못이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러나 그 판단은 누구의 몫인가. 타인에게 얼마만큼의 진실을 전할지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얼마나 있는가. 확고한 진실의 기반이 없이 라이트 포스를 따른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거짓이 참된 포스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면, 시스가 하는 거짓말과 제다이 공의회의 침묵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알로스의 죽음이 보여주듯 침묵은 어떤 진실보다, 어떤 거짓보다 파괴적일 수 있는데.

모든 언어를 쏟아낸 듯 조용해진 채 젊은 파다완은 해답을 구하고 있다. 젊은이의 눈빛 뒤에서는 아직 성장이라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어린아이가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6 thoughts on “[공화국의 그림자] 파다완의 의문

  1. 소년H

    아니 이건 틸은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
    그런데 저런 심정 묘사라니 ‘피나 PC화!’ 계획에는 또 어려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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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아를란은 뭘 하려고 해도 걸림돌이죠..(..) 뭐, 패면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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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orches

    이런 뇌를 녹이시는 소설을.. 격침당했습니다. 를란이.. 를란이가 ;ㅅ;
    깊은 산 속 옹달샘 찾은 새벽 토끼마냥 살짝 들릴려고 했는데 말입지요. 로키님 나빠요.
    추신 – 이번에 했던 외전 플레이.. 미처 로그를 저장하지 못하고 꺼버린 듯 싶습니둥. 아무리 찾아도 없다능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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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아, 그 로그 저한테 있으니까 나중에 올릴게요. 너무 살며시 다녀가지만 마시고 댓글 남기시면 저야 좋죠. 아를란의 고민에 대해 미셸이 나름 가르침을 주는 것도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만, 코루선트에서 만난 때에 비해서는 많이 까칠해진 그녀인지라(..)

      추신: 다음에 쓰려고 생각하는 외전에서는 다룬이 미셸을 멋지게 배반할 것 같군요. 본편의 추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쨌든 미셸이 다룬 구해준 걸 그의 말대로 후회하기 시작할지도 모르는 일. 자 공화국 놈들은 다 글렀다, 미셸! 다크포스의 길로!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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