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와 사람 이야기, Contenders

(아사히라군이 도전자에 딱 어울린다고 추천한 록키–로키 아님–주제곡!)

J. J. Prince의 ‘도전자’ (Contenders)는 내기 권투로 돈을 벌어 불우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인물들의 꿈과 삶 이야기를 그리는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아픈 아내의 병원비를 대려고 낮에는 막일을 하고 밤에는 링에 뛰어드는 가장일 수도 있고, 사업을 시작할 꿈을 안고 밤마다 장롱에서 통장을 꺼내보며 멍투성이 얼굴 가득 웃음짓는 청년일지도 모릅니다. ‘도전자’는 하나같이 포기할 수 없는 마음과 사연을 안고 링 위에 맞선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내기 복서들을 둘러싼 휴먼 드라마를 구현하는 방법도 흥미로운데, 도전자 규칙은 희망과 고통, 돈 특성치가 권투 링 안팎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희망은 주인공의 인간관계를 만날 때면 늘릴 수 있는데, 시합 중 불리한 구석에 몰렸을 때 이 희망을 소모해서 능력 페널티를 만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기다리는 동생들이 떠오르는 순간 ‘이렇게 주저앉을 순 없어!’ 하고 벌떡 일어나는 분위기랄까요. (열혈!)

삶에서 괴로운 일이 벌어질 때마다 오르는 고통도 시합 중 ‘독이 올라서’ 상대를 제압하고 피해를 입히는 판정에 보너스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돈은 권투나 다른 일을 해서 벌고 훈련할 때 소모하며, 무엇보다 인간관계는 늘 돈이 들어갑니다. 그게 아픈 가족이든, 사업이든 말이죠. 희망과 고통은 또한 주인공의 미래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이 되는지도 결정합니다.[footnote]그런 면에서 이전에 소개했던 니코틴 걸즈 [Nicotine Girls]와 비슷하며, 실제로 도전자는 폴 세가의 니코틴 걸즈와 주인님과 함께 [My Life with Master]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footnote]

진행자 없는 RPG로서 도전자는 진행 방식도 흥미롭습니다. 모든 참가자는 주인공을 하나씩 만들며, 돌아가면서 한 주인공씩 주역이 되는 장면을 만듭니다. 현재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참가자는 조연을 맡을 수 있습니다. 폴라리스 (Polaris)처럼 엄격한 역할분담은 없지만, 폴라리스의 방식을 참조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건너편 참가자는 적대적인 인물을 한다든가, 왼편 참가자는 인간관계, 오른편 참가자는 트레이너 등 동료를 하는 식으로요. 물론 사람이 많거나 적어지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요.

장면의 종류와 효과, 할 수 있는 판정은 미리 정해져 있어서, 예를 들어 인간관계를 만나는 장면을 하면 희망 판정을 해서 희망이 증가하는지 정하며, 일 장면을 하면 돈 판정을 해서 돈을 버는지 정합니다. 그 외에 훈련, 위협, 시합 장면 등 다양한 장면이 얽히면서 수치를 조정하고, 권투 실력을 올리고, 희망을 확보하거나 상대의 희망을 없애는 전술적 판단과 각 주인공의 삶에 대한 입체적 조명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 인상깊습니다.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시합 장면에서 하는 권투 판정도 간단하면서도 전술적 판단을 요구합니다. 각 라운드마다 공격 위주, 방어 위주 등 전술을 정해서 파괴력과 제어력 사이에 선택한 후 제어력 판정에 성공하면 파괴력 판정을 하며 (이때 각 권투 관련 능력이 보너스가 됩니다), 상대의 방어 판정에 대한 성공 정도에 따라 승리 점수 (VP)를 받습니다. 이 VP로는 상대의 권투 능력을 저하시킬 수도 있으며, 마지막 라운드까지 승부가 나지 않으면 VP가 많은 쪽이 판정승을 올립니다.

시합 중에는 위에서 언급했듯 주인공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고통과 희망도 중요하게 작용하므로 시합은 주인공의 삶과 유리된 장면이 아니라 주인공의 모든 것을 건 응축적 투쟁의 장이 됩니다. 직접 시합에 나오지 않은 주인공도 시합 결과에 돈을 건다거나 관중석에서 경기를 남들에게 해설해주는 등 (‘지금 빌리는 스네이크의 약점을 끌어내는 거야. 보이지, 잽을 하기 직전에 고개를 돌리는 저 습관?’) 시합 장면에 등장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어느 한 주인공이 복서로서 명성이 10점에 도달하면 최종 장면을 하나씩 한 뒤 마지막으로 하룻밤 동안 시합을 연속적으로 벌이고, 각 참가자는 자기 주인공의 최종 결말을 서술합니다. 최종적으로 희망이 고통보다 높으면 행복한 결말, 고통이 더 높으면 불행한 결말, 희망과 고통이 같으면 아직 은 어느 쪽도 아닌 결말을 서술해야 합니다. 엔딩 조건이 확실한 만큼 도전자는 깔끔한 단기 캠페인에 적합해 보이는 규칙입니다. (‘주인님과 함께’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결론적으로 도전자는 피와 땀과 눈물에 젖은 열혈 휴먼 스포츠 드라마 (..길다)를 만들면서 전술성과 극적 재미를 동시에 즐기기에 좋은 것 같습니다. 일독하면서 번역도 해놓았으니 언제 꼭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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