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

오늘 뱀프님과 엔님과 한 얘기입니다만, 제게 RPG의 재미란 근본적으로 ‘나의 로망이 남에게 재해석받고 남을 통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멋진 것, 혼자 했던 몽상을 나만의 백일몽에 그치지 않고 남에게 보이고, 남이 거기에 새로운 의미와 색채를 부여해 ‘우리의’ 공동 상상 공간을 만드는 과정. 자신의 상상을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표현의 욕구와 타인의 상상을 음미하고 싶은 감상의 욕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창조적 과정이 되어 순환하는 그 계속적인 의사소통에서 저는 RPG의 재미를 느낍니다.

저에게 RPG 재미는 위와 같이 극적 욕구와 소통이 초점인 만큼 좋아하는 RPG 규칙도 모두의 로망을 끌어내고, 극적 발언권을 보장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함께 끌어가는 구조에 중점을 둔 규칙들입니다. 전투의 전술이나 가상공간의 물리 규칙은 대체로 훨씬 뒷전이지요. 전술이나 물리 규칙의 일관성 쪽은 CRPG에서 훨씬 잘 되어 있는데 RPG에서는 별로 따지고 싶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는 진행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진행을 할 때 저는 주인공 (PC) 배경과 관련 인물을 분석하고 활용하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배경 설명에 나와 있든, 해석하고 유추한 것이든, 참가자와 토의한 것이든 남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인물과 배경에서 새로운 사연과 이야기를 발견해 제 것으로,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비할 데 없는 재미거든요. (이 할아버지는 너그러우면서도 위엄이 넘칠 것 같아. 저런, 이 녀석은 헤어진 여자에 대해 무서운 고뇌에 시달리는 불쌍한 인생이었군. 이쪽은 꾸밈없이 혈기왕성한 젊음의 표상?)

다른 모든 RPG인에게도 RPG를 하는 동기, 자신이 생각하는 RPG의 재미가 한 가지이든 여러 가지이든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 재미가 어떤 것인지, 그 재미에 자신의 플레이 방식이나 사용하는 규칙이 어떻게 도움되는지 하는 생각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론의 실마리이겠지요.

2 thoughts on “내가 생각하는 RPG의 재미

  1. 아사히라

    주사위를 굴리기 전의 두근두근함!
    실패의 존재로 더 빛을 발하는 성공의 짜릿함!
    이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니크한 캐릭터들로 이끌어나가는 게임!

    이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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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키

      그렇군! 확실히 서로 원하는 게 다르네. 팀의 선택이 비교적 자유로운 온라인 환경에서는 특히 이렇게 플레이에서 원하는 걸 서로 비교해서 팀원 선택에 참조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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